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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의 마물루크 왕조와 문화〔槪說〕
[편집]13세기의 이슬람 세계는 서방으로부터 십자군에 덧붙여서 새로이 동쪽에서 내습해 온 몽골군의 격심한 침략을 받지 않으면 안되었다. 이 틈바구니에서 동서의 강적을 잘 격퇴하고 이슬람 국가의 독립을 유지한 것이 이집트였다.이집트는 아유브 왕조 칼리프의 앗사리프(재위 1240
1249)가 제5회 십자군에 빼앗겼던 예루살렘을 수복하고 프랑스 왕 루이 9세의 제6회 십자군을 물리쳤으나 그의 사후 궁정 여노예 출신이며 칼리프의 비(妃)였던 샤자르가 투르크계 마물루크(노예) 군단의 지휘자인 아이바크(재위 1250
1257)와 결탁, 마물루크 왕조를 성립시켰다. 이 왕조는 투르크계 마물루크 출신자에 의한 바하리 마물루크 왕조(1250
1390)와 알메니아계 마물루크 출신자에 의한 부르지 마물루크 왕조(1382
1517)의 두 시기로 나누어진다.바하리 마물루크 왕조의 기초를 확립시킨 것은 몽골군의 침입을 격퇴하고 제4대 술탄이 된 바이바루스였다. 그는 십자군에 대한 성전(聖戰)을 진행시켜 시리아를 수복하고, 누비아에 원정하여 남방에도 영토를 확대시켰다. 또한 유럽 제국과의 통상 관계를 중시하고 동방 무역의 발전에도 노력했다. 13세기 후반부터 14세기 전반이 이 왕조의 최성기로 왕도 카이로는 바그다드에 대신해서 번영을 자랑했다.
마물루크 왕조
[편집]-王朝 Mamlk
시리아, 이집트를 지배한 투르크계(系) 이슬람 왕조. 마물루크란 주로 백인노예(白人奴隸)를 의미하는 아라비아어(語)이며, 10세기경부터 서(西)아시아 각지에 많아진 투르크계(系) 군대노예(軍隊奴隸)를 말한다. 아유브 왕조의 마물루크 출신 군사령관(軍司令官) 아이바크가 이 왕조를 타도하고 마물루크 왕조를 창건하여 이집트에 군림(君臨)하였다. 제4대 술탄 바이바루스가 이 왕조 제일의 영주(英主)인데, 그는 1258년 바그다드를 공략하여 진격을 계속한 몽골군을 격퇴하고, 십자군에 대해서는 철저한 공격을 가함으로써, 지중해 연안의 여러 도시를 보유하고 있었던 크리스트교 세력을 완전히 일소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사라센 제국의 칼리프가 카이로로 망명한 것도 이 때이다. 왕조의 중기 이후는 시리아를 확보하고, 키프로스를 공략, 다시 아라비아 반도에 진출하여 제법 강성하였는데, 마침 포르투갈의 신(新)인도 항로 발견에 의한 관세수입(關稅收入)의 격감(激減)이 왕조의 재정(財政)에 파탄을 초래하여 마침내 오스만 투르크 제국(帝國)에 병합(倂合)되었다.
바이바루스
[편집]Baybarus (1223
1277, 재위 1260
1277)
마물루크 왕조 제4대 술탄으로 투르크계의 마물루크 출신이다. 아인 쟈르크의 싸움에서 몽골군을 격퇴하여 공적을 세우고 제3대 쿠투즈를 죽이고 술탄이 되었다. 제2의 살라딘을 목표로 십자군에 대한 성전을 진행시켜 시리아 십자군의 근거지를 차례로 공략했다. 이 사업은 제7대 카라윈(재위 1279
1290)에 의해서 완성되었다. 또한 몽골군에 의해 바그다드로 쫓긴 아바스 왕조의 칼리프 일족을 볼모잡아서 보호하고 이란을 지배한 일 한국(汗國)에 대항하기 위하여 남러시아의 킵차크 한국과 동맹을 맺었다. 다시 비잔틴 제국이나 시칠리아 왕국, 에스파냐의 세비야와도 외교 통상 관계를 맺었다.
카이로
[편집]Cairo
파티마 왕조부터 마물루크 왕조까지의 왕도(王都). 사라센 제국 시대, 카이로의 남쪽에 군영부(軍營府)가 설치되어 후스타트라 불리고 있었다. 969년 파티마 왕조는 이집트를 정복하자 후스타트 옆에 신도시를 건설하여 카히라(승리자)라 이름을 붙여 973년 이곳에 도읍을 옮겼다. 이 때 건립된 아즈할 사원은 후에 이슬람 세계 최대의 신학교가 되었고 세계 최고(最古)의 대학이 되었다. 아유브 왕조의 살라딘은 왕성의 규모를 확대하였으며, 마물루크 왕조 시대에는 인구도 한층 증가하여 번영을 계속했다.1517년 마물루크 왕조가 오스만 투르크에게 멸망하고 나서 잠시 쇠퇴하였다. 그러나 18세기 말 나폴레옹이 이집트를 원정하여 카이로의 근대 도시화에 착수하였고 그 사업이 무하마드 알리에 계승되어 카이로의 새로운 번영이 시작되었다.
이븐 할둔
[편집]Ibn Khaldn (1332
1406)
이슬람 최대의 역사 철학자. 튀니스 태생으로 이집트의 마물루크 왕조를 섬겼다. 저서 『실례의 서(實例-書)』의 서설에서 그는 역사의 실증적·합리적인 파악에서 그 법칙적 인식에까지 나아갈 것을 주장하여 일종의 환경 결정론적인 독자적인 역사 이론을 전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