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세계사/중세 유럽과 아시아/중세 유럽의 성립/4 ~ 6세기경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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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 6세기경의 세계〔槪說〕[편집]

4세기부터 6세기에 걸쳐 서양에서는 북유럽의 게르만족과 슬라브족의 민족 이동이 일어나 로마 제국의 국경이 허물어지고, 이로 말미암아 서로마 제국은 멸망하였으며, 서유럽 일대에 야만적인 게르만 부족국가가 일어나 유럽 봉건사회의 기틀이 되는 것이다.한때 지중해를 ‘우리의 바다’라 호언하던 로마도 3세기 말에 이르자,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필사적인 재건 개혁도 헛되이 쇠퇴 일로를 걸었다. 인구는 감소되고 경제는 굳어 실물(實物) 경제화했으며, 토지는 일부 대토지 소유자에 독점되어 자유농민과 중간층은 몰락하였다. 뿐만 아니라 왕년에 막강함을 자랑하던 로마군이 게르만 용병으로 채워져 무력화(無力化)하고, 마침내는 475년 서(西)고트족의 동로마 국경 침입을 당하게 되자 사상 유례가 드문 일대 민족 이동을 유발하고 말았다.제일 먼저 국경을 침입한 서고트족은 아드리아노플 전투에서 동로마군을 격파, 콘스탄티노플을 위협했고 서진(西進)하여 서로마군을 격퇴, 이탈리아 반도로 남하했다. 이리하여 410년 ‘영원의 도시’ 로마가 함락되고 잇따라 게르만의 여러 부족들이 로마의 다른 영토를 유린하였다.게르만 민족 이동의 결과, 서유럽에는 서고트 왕국(에스파냐), 동고트·롬바르드 왕국(이탈리아), 반달 왕국(아프리카 북안), 부르군트 왕국(남프랑스), 앵글로색슨 왕국(영국) 등 여러 나라가 건국되었다.동유럽에는 게르만보다 조금 늦게 슬라브 민족의 대이동이 시작되어 동로마 제국 영토를 위협하였으나, 6세기 초에 즉위한 유스티니아누스 대제가 이를 막았다. 대제는 로마 제국의 재건을 꿈꾸어 한때 이탈리아는 물론 에스파냐, 북아프리카 등 옛 로마의 영토를 탈환하였고, 안으로는 로마법을 집대성, 유스티니아누스 법전을 편찬하여 법제사상 큰 영향을 끼쳤다.그 후 동로마 제국의 영토는 다시 동부 지중해 연안 지역으로 줄어들지만 14세기까지 계속된 제국은 줄곧 서유럽과 중동아시아를 잇는 사이에 자리하여 문화적으로 중개역을 담당하였으며, 그리스와 동방의 문화적 전통을 융화, 계승하여 화려한 비잔틴 문화를 이룩했던 것이다.동양의 4세기

6세기는 진(秦)·한(漢)제국과 수(隋)·당(唐)제국의 두 통일 제국 시대의 사이에 있는 분열시대이다. 서진(西晉)이 멸망(316)하고 강남 지방에 동진 왕조가 재건되었고, 그후 송·제·양·진의 여러 왕조가 교체하였으며, 화북지방에서는 5호 16국이 흥망성쇠를 거듭하다가 북위에 의해 통일되었다. 다시 동·서 양위(兩魏), 북제·북주로 분열하더니, 수에 의하여 남북이 재통일(589)되어 중국에 다시 통일제국이 성립하게 되었다. 이 남북조시대는 문벌귀족사회로 특징지어지고 있다. 이리하여 관료의 상층부는 각 문(門)의 귀족이 독점하게 되었다. 남북 양 왕조가 문벌 귀족사회라고는 하지만, 남조에서는 문벌이 자율적으로 질서화하고 있다.경제면에서 개관하면 분열시대였기 때문에 진·한 시대처럼 전국적인 상업 활동이나 화폐경제의 고도한 발전을 볼 수 없었다. 교환수단으로서 곡물·포백(布帛)을 사용하는 현물경제가 시행되고 있었다. 그러나 이 시대에 중국 토지제도사에서 주목할 만한 새로운 제도가 나오고 있다. 3국을 통일한 서진의 무제가 점전·과전법을 시행(280)하고, 북중국을 통일한 북위는 균전법을 발포했다(485). 이 균전법은 후에 북주·북제가 답습하는데, 그 실시 상황은 때로 이완(弛緩)이 있었지만 어느 정도 실행되면 수·당의 토지법(=균전제)로 계승되었다. 척발족의 북위왕조 치하에서 중국 유가(儒家)의 이상인 토지 균분(均分)이라는 이념하에 균전법이 발포되었지만, 남조에서는 아무런 토지정책이 없이 호족대가(豪族大家)의 대토지 소유 발전을 방임하였다. 그리고 서진말(3세기 말) 이래 북방민족들의 중국 내지 침입으로 명문 호족을 비롯해서 일반 서민에 이르기까지 많은 인구가 강남지방으로 이동하여 종래 미개척 지역이었던 이곳이 개발되자 화북과 강남은 대략 대립되는 두 개의 경제 중심지를 형성했다.후한말 이래는 동란으로 계속 인구가 격감했는데, 이는 생활의 빈곤으로 인하여 호족의 비호하에 들어가서 호족에서 탈락하는 자가 많았기 때문이다. 남북조시대에는 일반 양민층의 붕괴가 현저하고 5호시대에는 많은 노예가 발생하고 있었다. 노예 증가의 결과로 천민계급이 분화하여 의식객(衣食客)·부곡(部曲) 등이 나오고 있는데, 이런 점에서 6조시대는 노예제가 성행한 시대라고 할 수 있다.문화면에서는 불교와 노장 사상이 사상계의 주류를 이루고, 종교 방면에서는 불교가 지식계급간에 침투해서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이 불교의 영향으로 도교가 종교로서의 체계를 확립한다. 문학예술이 유교의 속박에서 벗어난 것도 이 시대이다. 6조시대의 문학예술은 무력하고 퇴폐적인 귀족적 성격이 농후하고 형식 지상주의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