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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세계음악/서양의 경음악가/하와이언

위키문헌 ― 우리 모두의 도서관.

버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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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nry Berger(1844-1929) 로열 하와이언 밴드를 지휘하여 수많은 유능한 뮤지션을 배출시키고 근대음악 이론의 도입, 하와이의 민요를 다수 채록하고 또한 자신도 옛 국가 <하와이 포노이> 등 많은 작품을 작곡하여 하와이의 음악사에 큰 공헌을 하였다. 독일인으로 베를린에서 태어나, 하와이로 온 후는 이름을 헨드릭 베르게르에서 헨리 버거로 고쳤다. 4대의 국왕 아래 헌신하고, 평생을 하와이에서 보낸 기구한 운명으로 하와이와 맺어진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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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rles Edward King(1874-1950) 전통적 멜로디를 보면(譜面)에 기록하고 매우 많은 작품을 발표하였기 때문에 하와이의 스테펜 포스터라고 불렸다. 명문(名門) 출신으로, 호놀룰루에서 탄생. 영국왕을 존경한다는 뜻에서 '킹'이라는 영광스런 이름이 붙여졌다. 교사 또는 관리로서 수십년간 일하는 동안에 음악과도 밀접한 관계를 맺었다. 스틸 기타나 우클렐레도 능숙하였지만, 그보다도 하와이 음악을 집대성하고, 자신도 그 추진자로서 활약했다는 점에 그의 참다운 값어치가 있다고 하겠다. 40세쯤 되면서부터 본격적인 작곡활동을 하기 시작했는데, 현재까지도 전해지는 그의 작품은 음악사상 불멸의 빛을 발하고 있다. <하와이의 결혼의 노래>, <섬의 노래>, <레이 알로하 레이 마카마에>, <어젯밤에는 어찌했나?> 등 그의 작품은 수없이 많으며, 고상하고 우아한 감각이 넘쳐흐른다.

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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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nny Cunha(1879- ? ) 재즈와 하와이언을 결부시킨 하와이 출신의 피아니스트. 이미 고인이 되었으나, 음악사상 잊을 수 없는 사람이라 할 수 있겠다. 호놀룰루에서 태어나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센트 메리(오클랜드) 및 예일대학에서 교육을 받았는데, 피아노의 솜씨가 훌륭하여 그가 즐겨 연주한 <모아나르아>는 학교 안에서도 유명해졌다. 차차 음악에 접근하기 시작한 그는 하와이언의 에스 프리인플러와 래그 타임을 결부시켜 하파 하오레 송(하와이언 재즈를 도입한 노래)의 작곡을 열심히 하였다. 또한 하와이언 티피카의 편성에 피아노를 넣는다는 시도도 역시 서니가 처음이었다. 그의 작품·편곡은 조니 노블에 큰 영향을 주었으며, 초기의 히트 작품을 많이 작곡하였다. <와이키키 머메이드>, <호놀룰루 톰보이>, <호놀룰루 플러 걸>은 지금도 연주되는 넘버이며, <와이키키 해변>도 1909년에 그가 편곡한 것이다.

노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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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hnny Avery Noble Jr(1892-1944) 흔히 조니 노블의 이름으로 불리며, 하와이의 재즈왕, 작곡왕의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 호놀룰루에서 태어났다. 드럼스, 바이브를 연주하는 한편 <훌라 블루스>를 비롯한 다수의 히트 송을 발표하였다. 오늘날의 스탠더드 가운데서도 그의 작품은 큰 위치를 차지하고 있으며, 특히 <하와이의 초가집>, <오랜 하와이의 노래>, <당신에게 레이를> 등 유명곡 외에 많이 있다.

알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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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hnny Almeida(1897- ? ) 하와이의 작곡왕이며 맹인연주가. 또한 가수로서도 유명하다. 클래식한 전통을 지키고, 그 자신의 생애 그것이 바로 산 음악사이기도 하다. 조니 알메이다는 파우오어 골짜기에서 태어났다. 모친은 레이 만들기에 일손이 바빴으며, 그 손에 묻은 나무진(樹液)으로 말미암아 눈을 다쳐, 10세 때는 완전히 앞을 보지 못하게 되었으나, 12세경부터 음악에 정진, 만돌린을 비롯해서 우클렐레 및 노래공부 등을 시작하였다. 21세쯤부터는 작곡도 하여 약 200곡이나 되며, 모두가 독학이었다고 하니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와이에서 말하는 '루어우 스타일'의 전통을 지켜, 고전적인 창법을 애호하는 많은 팬으로부터의 인기가 높았다. 히트 송으로는 <흔들리는 의자>, <나의 노란 진저의 레이>, <아 오이아> 등 하와이풍 가사로 된 것이 대표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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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rew Aiona Long(1902-1966) 색소폰 주자이며, 재즈 악기를 하와이언에 적용시켜 스윙 하와이언으로 그 이름을 떨쳤다. 후피와 동일 시대의 대표적 스타이다. 아이오나는 호놀룰루의 카리히구(區)에서 태어났다. 성장 후에 클라리넷과 색소폰을 익혀, 그 후 미본토(美本土)로 간 뒤에도 이 두 악기의 주자로서 로컬 밴드에서 취주하였다. 1930년 초기에 섬 코키, 대니 스튜어트 등과 유명한 아이란다스를 구성, 잇달아 히트 레코드를 냈다. 그들의 절찬을 받은 연주는 어느 것이나 모두 이 무렵의 것이다. 작품은 매우 많으며, 대표작으로는 <남해의 매혹의 섬>, <나의 와이키키의 장미> 등을 들 수 있다.

오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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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rry Owens(1902- ? ) 호텔 스타일의 오케스트라를 조직하여, 미국인 사이에 저항없이 하와이 음악을 침투시켰다는 점에서 큰 공적을 남겼으며, 또한 히트 작품을 많이 남겼다는 점에서도 유명하다. 네브래스카주 태생으로, 작곡에는 천재적인 재능을 지녔으며, 1923년에는 빈센트 로즈와 함께 만든 <린거 아호와일>을 히트시켜 유명해졌다. 1934년에는 하와이의 오케스트라 지휘자로 초빙되고, 이 때부터 10년 동안 연주를 하는 한편 히트작품을 쓰기도 하였다. 대표작인 <스위트 레이라니>는 세계적으로 유명하며, 현재는 악단에서 은퇴하였다. 대표적인 곡으로는 <하와이언 파라다이스>, <푸프레 공주>, <하와이는 부른다>, <하와이의 환대>, <연인이여 안녕> 등 모두가 부동의 위치를 이룩하고 있다.

후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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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lomon Hoopii(1903-1957) 스틸 기타의 테크니션으로서 너무나도 유명하다. 흔히 솔 후피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그는 중국과 하와이의 피를 이어받아 호놀룰루에서 태어났다. 솔 K. 브라이트와 함께 M. K. 모케에게 스틸을 사사하고 그 후의 연주에 커다란 영향을 받았다. 그의 이름이 유명해진 것은 컬럼비아 레코드에 취입하면서부터이며, 1929년의 일이다. 그이 특징은 담백한 파르세트(假聲)와 적확한 리듬, 놀라운 핑거 워크에 있다. 그러나 그의 전성시대는 1945년 이전의 SP시대이며, 그 후는 지나친 음주 등으로 당뇨병에 걸려 시애틀에서 사망하였다. 그러나 제1기 황금시대를 쌓은 스타로서 많은 하와이언 팬을 획득한 공적은 무시할 수 없다. <하와이언 허니문>, <버리면 싫어> 등의 작품이 있다.

아이작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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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vin Kaleolani Isaacs(1904- ? ) 가수로서 알려진 사람이나, 후에는 오직 작곡에만 전념하였다. 어빈은 호놀룰루에서 태어났다. 14세 때 <카 우이오 나 라니>를 작곡한 이후, 가수 겸 작곡가로서의 길을 걸어왔다. 1935년부터 6년 동안 해리 오웬스의 로열 하와이언즈로 피처드 싱어로서 활약, 그 지위를 확립시켰다. 그 후 자신의 그룹을 거쳐 레코드 회사의 사장이 되었다. <아나라니 에>, <타하우아 라>, <레이 모미> 등의 히트작품이 많으며, 또한 그의 아들은 에디 판과 함께 하와이 콜즈에서 스틸 기타를 연주하였다.

알로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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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l Aloma(1908- ? ) 호놀룰루에서 태어나 고교를 졸업하자 곧 스테이츠로 가서 영화음악, 재즈 오케스트라의 사이드 맨을 거쳐 하와이언 그룹을 결성, 이후 태반을 스테이츠에서의 연주로 보냈다. 찰스 E. 킹의 조카이다. 스테이츠에서의 출연과 레코드의 취입으로 다수의 팬을 획득하였으며, 기염을 토한 믿음직한 존재였다. 섬세한 연주는 스틸 기타의 감각과 공통된 점이 있으며, 콧소리 같은 독특한 보컬에 특징이 있다. 옛곡의 편곡을 많이 시도하여 근대적인 해석을 꾀하고 있으며, 또한 레코드를 통하여 수많은 자기 작품도 발표한 바 있다. 전자에는 <마우이의 아가씨>, <하와이의 추억> 등이 있으며, 후자로는 <남해의 메아리>, <그대가 안녕을 말한 밤>, <하와이의 밤>, <와이피요 폭포> 등이 있다.

에드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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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bley Edward(생몰연도 불명) 1910년경에 태어났을 것으로 추정되는 그는 라디오 프로 '하와이 콜스'의 창시자로서 유명하다. 음악가는 아니나 이 프로를 통하여 하와이 음악을 온 세계에 알렸다는 점과 다수의 스타를 배출시켰다는 점, 그리고 이러한 일류의 멤버로 하여금 하와이 음악 연주의 수준을 높이도록 하였다는 점 등 그의 공적은 매우 크다. 그러나 멤버의 선정에 약간 편파적인 점이 있다는 것과 존 칼라파나의 펜네임으로 옛곡을 함부로 개작하였다는 점 등은 그의 위대한 이름을 손상시켰다. 최근의 히트로는 레온 포바와 협력하여 옛곡을 어레인지한 <진주조개의 노래>가 있다.

파히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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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illip Gabby Pahinui(1921- ) 하와이언 포크 싱어로서, 전통적인 창법과 슬랙 키 기타로 유명하다. 슬랙 키란 각자가 자유로운 튜닝으로 연주를 하는 것으로 19세기부터 발달한 하와이의 독특한 기타 주법이다. 그는 코나(하와이섬) 출신으로, 자신이 익힌 기술은 모두 할머니로부터 배운 것이었다. 매우 소박한 존재이기 때문에, 일반적으로는 별로 알려져 있지 않다. 허스키한 목소리와 소탈한 느낌으로 옛노래를 부르는 그는 현대의 '하와이 음유시인'이라 하겠으며, 훌라의 정수(精髓)를 강력하게 호소한 소울풀한 가수였다.

룬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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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die Lund(생몰연도 불명) 가스톤 길베르트와 함께 타히티 음악의 작곡자·편곡자·연주가로서 유명하다. 스스로 그룹을 결성함과 동시에 섬 출신의 뮤지션 양성이라든가 탤런트의 발굴, 지방에 묻혀 있는 옛노래를 채집, 편곡하는 등 현대 폴리네시안 뮤직의 발전에 기여하였다. 미국인과 폴리네시아인 사이에서는 인기가 대단하여 취입 레코드도 많았다. 그의 대표적인 히트곡으로는 <타히티 누이>가 있다.

케아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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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noa Keawe(1918- ? ) 전통적인 훌라와 파르세트의 솜씨가 뛰어난 여성 가수. 호놀룰루에서 태어났다. 레너 마샤드식의 전통적 창법을 철저히 사용하였으며 오늘에 이르고 있으나, 레코드는 거의 소개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별로 알려지지 못하고 있다. 향토색이 풍부한 파르세트 목소리가 그녀의 타고난 천분이며, 나중에는 후배의 양성에 힘썼으며 훌라의 명수로서 자신이 경영하는 클럽에 출연하였다.

아파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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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fred Aholo Apaka Jr.(1919-1960) 호놀룰루에서 태어났다. 고등학교에서 노래를 부른 것이 계기가 되어 음악의 길에 들어섰으며, 특히 작곡가로서 유명한 돈 맥다이어 마드 시니어의 인정을 받았다. 그가 가수로서 각광을 받고 하와이 최대의 가수로 불리게 된 것은 1955년 이후로서, 1960년 사망하기까지가 전성기인데, 그 절정에 군림하고 있을 때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난 것이다. 정통적인 창법에 철저하였으며, 32마디에 절대적인 장점을 발휘하였던 아파카는 최대의 스타가 됨과 동시에 하와이의 노래와 음악을 전 세계에 인식시켰다. 그가 죽은 후에도 그의 팬은 꾸준하였으며, 스테레오에 재생된 앨범이 많이 발매되었음을 보아도 그의 인기가 얼마나 높았던가를 알 수 있다. 그의 노래는 훌라보다도 32마디의 노래에 그가 지녔던 저력을 발견할 수 있다. 현재도 그를 추모하는 콘서트가 카피오라니 공원의 와이키키 셸에서 개최되었으며, 그의 이미지를 부각시키기 위하여 부친(아파카 시니어)이 출연하여 아들을 유명하게 만든 노래를 불렀다.

모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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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rling Mossman(1920- ) 베어푸트 바에서 개그와 코미컬한 노래로 알려진 싱어. 엄마는 유명한 비너 모스만(일찍이 여성그룹의 리더이며 작곡가)으로, 엄마의 영향으로 음악을 하게 되었다. 그의 그룹은 '갱스'라고 하며, 바니 아이작스(스틸 기타), 루이스 아카우(기타), 노먼 아이작스(베이스), 여기에 타히티 출신 여성인 바로아 티키(드럼)로 구성되었다. 유머가 섞인 사회(司會)나, 악기 위에 뛰노는 듯한 플레이는 즐거움을 주는 그룹으로서 정평이 있다.

마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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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m Makia(1922- ) 스틸 기타 플레이어로서, 스테이츠(미국)에 살면서 활약하였다. 호놀룰루 태생으로, 13세 때 음악가가 되기를 결심, 조니 알메이다에게 사사했다. 스틸, 베이스, 기타, 그리고 노래를 배워 수많은 밴드에 참가, 후에는 프래랜서로서 레코딩을 하였다. 감미로운 톤의 연주가 장기(長技)이며, 본국에 있는 뮤지션들들과의 공연이 많았다. 레이 키니, 래니 머킨타이어, 대니 쿠이아나 등과 함께 제1기의 황금시대를 이룩한 사람이다.

알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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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a Almeida(1922-1974) 부친과는 대조적인 연주자·가수로서 유명했다. 특히 기타 연주의 경우는 재즈적인 수법을 사용하여 현대적인 감각을 나타냈다. 호놀룰루에서 태어났으며 어려서부터 숙부(조니)의 양자가 되어 양아버지인 조니로부터 음악의 초보를 배웠다. 1940년에는 10명 편성의 하와이언 오케스트라를 조직하여 프로로서 본격적으로 출발, 1956년경부터 두각을 나타내게 되었다. 스윙한 비트와 모던 터치에 놀라운 솜씨를 보여 레코드의 취입이 매우 많았다. 그는 철저한 무지션으로서 작품은 아내인 레이라니를 사모하면서 자곡하였다는 <아일랜드 랑데뷰>뿐이다.

워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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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phne Walker((생몰연도 불명) 조지 투머하이와 함께 모던 마오리 음악을 대표하는 여성가수. 순수한 마오리인이다. 뉴질랜드에서는 절대적인 인기를 지니고 있으며, 에로티시즘을 발산하면서 부르는 분위기에는 독자적인 것이 있다. 레퍼토리는 모든 폴리네시언 음악에 걸쳐 광범위하여, 취입 앨범도 매우 많다.

카할레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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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unani Kahalewai(1925- ) 하와이가 낳은 불세출의 여성가수. 절대음감(絶對音感)을 지니며 그 관록과 함께 두드러진 존재이다. 1925년에 히로(하와이섬)에서 태어났는데, 풀 네임은 '마우나 로아산(山)의 산허리를 메우는 아름다운 눈'이라는 뜻을 가지며, 하와이에서 둘째가는 그 산의 이름을 가진 스케일의 크기가 그대로 나타나 있다. 3세 때 이미 라디오 콘테스트에서 우승하였다. 후에 알프레드 아파카의 지시로 소프라노에서 콘트랄토로 전향하였다. 얼핏 들으면 남성을 연상시키는 듯한 저음으로, 박력있는 목소리를 들려주었다. 감각은 뛰어날 뿐만 아니라 레치타티보풍의 노래나 슬랙 키 기타의 주법도 능숙하여, 최고의 가수라고 부르기에 조금도 손색이 없다. 후에는 작곡도 다루어, 감미로운 무드의 <하와이언 허니문> 등을 내놓기도 하였다.

비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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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hi Beamer(1931- ) 음악의 전통을 자랑하는 비머 가문의 한 사람으로서 호놀룰루에서 태어났다. 그의 특징은 얼핏 들으면 여성을 생각게 하는 섬세한 파르세트와 고대 하와이를 현대에 부활시키는 듯한 전통주의에 철저하다는 점을 들 수 있다. 그 때문에 폭넓은 팬의 지지라는 점에서는 손해를 보고 있다고 하겠으나, 동시에 열광적인 팬에게는 귀중한 존재이다. 따라서 레퍼토리에도 트레디셔널한 것이 많으나, 고대시(古代詩)를 직접 어레인지한 <카하라 푸나> 등은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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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uiokalani Lee(1932-1966) 가수 겸 작곡가. 인기가수 돈 호우와는 어릴 적부터 친구이며, 친구 돈 호우에 의하여 그의 작품이 유명해졌다. <당신만을>, <라하이나르나>, <배를 저어> 등이 대표작이다. 그의 작품은 매우 신선하고, 싱싱한 감각으로 작곡되었으며 경향을 살핀다면 파퓰러 송과 하와이를 테마로 한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그 때문에 하와이의 누벨 바그 작가라고 불려 급격히 인기 스타가 되었으나 그 절정기에 임파선암(淋巴腺癌)에 걸려 사망하였다. 1970년대 하와이에서는 그의 마지막 작품이라는 <젊은 시절>이 유행했다. 또한 그의 작품은 약 300곡이나 되며 <대단한 일이 아니냐> 등의 히트곡이 있다.

카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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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die Kamae(1935- ) 우클렐레 주자로 유명하다. 1935년에 호놀룰루에서 태어났으며, 할머니는 릴리우오카라니 여왕의 궁정 전속 훌라 댄서였다. 18세에 아마추어 콘서트에 출연, 이후 우클렐레 주자로서 이름을 떨쳤다. 반주 악기라는 관념을 갖기 쉬운 우클렐레를 솔로 악기로서 대성시켰다는 점에 크나큰 특징이 있다. 화려한 테크닉으로 청중을 매혹시키며, 라틴 계통의 넘버가 장기이다.

투머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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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orge Tumahai(1936- ) 근래에 소개된 모던 마오리를 대표하는 가수. 부친은 타히티인이고 모친은 마오리인으로서, 뉴질랜드 태생이다. 감미로운 느낌이 감도는 가수로서, 레퍼토리는 하와이언과 마오리가 중심이다. 뉴질랜드에서는 톱 레코딩 아티스트라고 하겠다.

칼레이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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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nny Kaleikini(1937- ) 명사회자이며, 젊은 가수의 호프로 알려져 있다. 대니는 1937년에 호놀룰루에서 태어났으며, 교묘한 화술의 재능을 인정받아 노래 자체보다는 사회자로서 유명하다. 그의 특징은 고대 악기의 하나인 오헤 하노 이프(단순히 오헤라고도 한다. 코로 부는 피리)를 부는 것이라 하겠다. 이 코로 부는 피리의 주자는 호놀룰루에서도 몇 사람 되지 않으며, 또한 그의 작품도 별로 많지 않아 <이바라니> 정도가 알려져 있을 뿐이다.

레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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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hauanu Lake(생몰연도 불명) 당시에 화제가 되기 시작한 트리오의 리더로서, 흔히 레이크 트리오로 알려져 있다. 마우이섬 출신인 사우스포의 우클렐레이스트 겸 가수. 트리오는 형인 토미 레이크(베이스), 일본인계인 알 마치다(기타)로 구성되어 있다. 하모니의 진행이 현대적이며, 더구나 옛 플라의 느낌을 잘 드러내고 있다는 점 등이 특징이다.

힐로 하와이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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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lo Hawaiians 하와이언 그룹을 언급하려면 한이 없겠으나, <멋진 하와이>와 <하와이의 추억>이라는 두 앨범으로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한 그룹이 이 힐로 하와이언스이다. 그룹의 이름으로 보아도 알 수 있듯이 하와이섬의 힐로시(市)를 중심으로 한 밴드로서, 매우 향토색이 풍부하고 오우센틱한 노래와 연주로 유명하다. 멤버는 키헤이 브라운(우클렐레), 버니 브라운(기타) 형제를 중심으로 한 것으로서, 여기에 아서 카우아(스틸 기타)와 모나 카리마(베이스)가 있다. 또 한 사람의 멤버인 바디 브라운(형제의 사촌)의 사망으로 해산되어 키헤이 브라운은 사촌인 카리마 브러더스와 함께 힐로 카리마스의 멤버가 되었다. 앞서 소개한 두 장의 레코드 외에 크라운 레코드(미국 회사) 등에도 취입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