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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세계지리/세계의 여러 나라/남아메리카/칠 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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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레의 국기와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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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식명칭:
Republic of Chile

정치체제:공화제

수 도:산티아고(Santiago)

인 구:1,521만명(2000)

면 적:75만 6,626㎢

소 득:1인당 GDP 4,240달러(2001)

공 용 어 :에스파냐어

화폐단위 :페소(Peso)

주생산물 :밀 / 콩 / 고등어 / 구리



칠레의 자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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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ile-自然

동서는 불과 150㎞이지만, 남북은 4,200㎞나 되는 기다란 나라로, 아르헨티나와의 국경인 안데스 산맥과 태평양 연안에 있는 해안산맥, 그리고 그 사이에 끼여 있는 중앙저지로 나누어진다. 안데스 산맥에는 6,000m가 넘는 산들이 즐비하고, 남쪽으로 내려감에 따라 높이가 낮아진다. 중앙저지는, 북부에서는 부나 고원이 되고 사막지가 많으나, 중부에서는 비옥한 농업지대가 된다. 해안산맥은 600∼2,000m의 높이이며, 남부에서는 바다로 들어가면서 굴곡이 많은 해안을 만든다.

칠레의 기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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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토가 남북으로 길고 높은 산이 있기 때문에 여러 기후형을 볼 수 있다. 북부는 연안의 한류(寒流) 때문에 강우(降雨)가 없고 사막기후가 된다. 그리고 남쪽으로 내려감에 따라 비가 많아지며, 중부에서는 겨울에 비가 많은 지중해성 기후가 된다. 남부의 파타고니아 지방은 남아메리카에서 비가 많은 지역이다.

아타카마 사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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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tacama砂漠

북부의 해안산맥과 안데스 산맥 사이에 있는 아타카마 분지(盆地)는 남북 약 1,000㎞, 동서 약 30㎞이며, 세계에서도 가장 강우(降雨)가 적은 지역으로서 아타카마 사막이라고 불린다. 19세기 후반에는 볼리비아·페루와의 국경 분쟁으로까지 발전한 초석(礎石)의 산지이다.

푸에고 섬·마젤란 해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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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uego島·Magellan海峽

칠레의 남쪽 끝에는 마젤란 해협으로 격리된 푸에고 섬이 있다. 인구 약 1만명. 이 섬의 동쪽

절반은 아르헨티나의 영토이다. 마젤란 해협은 1520년 마젤란(1480∼1521)이 세계 일주를 할 때

이름붙인 해협으로서 항해상의 난소(難所)이며, 따라서 파나마 운하 개통까지는 유럽과의 중요한 교통로였다.

칠레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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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歷史

아라우카노족, 아타카마족 등이 살고 있었으나, 1541년 에스파냐인의 정복으로 식민지가 되고, 페루 부왕령(副王領)의 통치하에 들어갔다. 18세기 말엽부터 칠레 태생의 백인들이 에스파냐의 지위에 반대하기 시작하였으며, 1818년에 독립하여 칠레 공화국을 건립하였다.독립 후 영국 자본의 원조로 볼리비아·페루와 태평양전쟁을 일으켜 넓은 초석지대(硝石地帶)를 얻었다. 1936년에 지주·교회 등의 보수세력에 대항하는 노동자의 통일조직인 인민전선이 형성되어 1938년에 정권을 잡았다. 제2차 세계대전 후에는 영국 대신에 미국자본이 진출하여 정치는 우경(右傾)화하였으며, 1958년에는 20년 만에 보수정권이 탄생하였다.1970년 9월 선거에서 공산당의 살바도르 아옌데 고센스 박사가 대통령에 당선, 세계 최초로 의회에 의한 사회주의 정권을 탄생시켰으나, 1973년 9월 피노체트 장군이 일으킨 우익 군사 쿠데타로 붕괴되었다. 피노체트 정권은 1990년 3월 에일윈에게 대통령 자리를 내줄 때까지 집권했다.

칠레의 주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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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住民

주민은 에스파냐와 인디언 혼혈이 66%, 기타 백인계가 29%를 차지한다. 인디오는 남부에 거주하는 아라우카노족이 주이나 5%밖에 되지 않는다. 언어는 에스파냐어, 종교는 가톨릭교도가 90%를 차지한다.

칠레의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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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政治

1970년 9월, 대통령 선거에서 인민통일전선의 살바도르 아옌데가 당선되어 서부진영에서는 최초로 선거에 의한 공산정권이 수립되었으나, 1973년 9월 군부 쿠데타로 아옌데는 살해되었다. 1974년 7월 피노체트 의장은 군사평의회에 의해 정식으로 대통령에 취임하였으며 1990년 3월 물러날 때까지 군부에 의한 독재정치를 행하였다.칠레의 정치는 대통령중심제(임기 6년)이며, 의회는 양원제로 상원 47석(임기 8년), 하원 120석(임기 4년)이다. 의회는 1973년 군사쿠데타 직후 의회 및 정당해산조치로 정치활동이 전면 금지되었으나 1988년 1월 전면 합법화 조치가 취해졌으며, 1989년 12월 상하원 의원선거로 현재의 의회가 재구성되었다.

칠레의 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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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産業

남아메리카의 여러 나라 중에서는 광업이 비교적 발달한 나라이다. 구리 초석·철광 등 주요 광산물의 개발은 외국 자본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아옌데 정권의 급진적인 사회주의 정책으로 혼란에 빠져 있던 칠레의 산업은 1980년에 들어와 경제성장률 6.5%를 기록하면서 안정을 되찾기 시작하였다. 최근에는 농업·식량 생산의 진흥, 건설·운수 등에 국가예산 지출의 중점을 두고 있다.

광공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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鑛工業

광업에 종사하는 사람은 전 노동력의 35%에 지나지 않으나, 전 수출액의 70%를 차지하며 칠레 경제의 기둥이 되어 있다. 구리는 가장 중요한 산물로, 그 산출액은 세계 2, 3위를 다툰다. 철광석의 생산도 증가하고 있는 외에 한때 전 세계 생산량의 95%를 차지하였던 초석의 생산량은 급속히 줄어들었다. 공업은 식품가공·섬유공업이 발달해 있었으나, 제2차 세계대전 이후는 시멘트·철강·플라스틱 공업이 발전하기 시작하였다.

농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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農業

전 국토의 불과 15%가 경작지인데, 그 대부분이 대지주에게 점유되어 반봉건적인 소작제도하에 농업이 영위되고 있다. 미국에서 잉여 농산물을 도입해 오므로 한층 더 식량자급은 어렵게 되고 있다. 주요 농산물은 보리·옥수수·감자 등. 목축은 남부의 파타고니아 지방에서 양·소가 사육되고 있다. 2차대전 후 북부에서 수산업이 급속히 발달하였는데, 주요 어획물은 정어리이며, 어분(魚粉)으로 가공된다.

무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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貿易

주요 무역 상대국은 미국·독일·브라질·일본·아르헨티나 등인데 구리·어분·종이류·고기·과일·목재 등이 수출된다. 주요 수입품은 석유 및 석유제품·수송기기·밀·기계부품·면화 등이다.

칠레의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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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社會

라틴아메리카에서 교육·문화 수준이 가장 높은 나라로 6∼14세의 어린이는 의무교육을 받도록 되어 있다. 대학은 국립 칠레대학·가톨릭대학·국립공과대학 등이 있고 진보적 학생동맹이 조직되어 있다.문학활동도 활발하여 서정시인 G. 미스트랄과 시인 P. 네루다를 탄생시켰을 뿐만 아니라 B. 스베르카소, M. 로하스 등의 유명한 작가도 있다. 또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C. 아라우, 초현실주의파 화가 R. 마타 등의 예술가를 배출하였다.칠레인들은 노래와 춤을 즐기는데, 오른손에 손수건을 들고 추는 민속춤 쿠에카에는 칠레인들의 정열적인 기질이 잘 나타난다. 또한 로데오는 칠레에서 가장 널리 보급된 경기로서 칠레 카우보이들은 챙이 넓은 모자와 판초, 화려한 의상과 박차 달린 장화를 신는다.

칠레의 교통·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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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交通·都市

남북으로 길쭉한 칠레에서는 철도·도로·연안 항로가 남북부를 연결한다. 동시에 높은 안데스 산맥을 넘어 볼리비아·아르헨티나와도 철도·도로로 연결된다. 철도는 전장 1만 100㎞, 도로는 7만 6,595㎞에 달한다. 항공은 국영회사에 의해 운영되며, 산티아고와 안토파가스타에 국제공항이 있다.수도 산티아고를 비롯한 많은 도시가 중앙저지에 몰려 있고, 또한 중부 해안지방에도 많은 소도시가 분포한다. 북부에는 안토파가스타(24만 3,038명, 1999) 등의 해항(海港)이 있다. 남쪽 끝 가까이에 푼타아레나스라는 소도시가 있을 뿐 남부에는 이렇다 할 도시가 없다.

산티아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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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ntiago

칠레의 수도. 칠레의 중부, 안데스 산맥과 해안 산맥 사이 분지에 있는 도시로서 1541년 에스파냐인에 의해서 건설되었다.제2차 세계대전중에 인구가 급격히 증가하여, 인구는 464만 635명(1999)이며, 남아메리카에서 제4의 도시이다. 좋은 기후와 아름다운 경치로 유명하다.

콘셉시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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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cepcion

남부 칠레의 농산물 집산지. 비오비오강의 어귀로부터 10㎞ 떨어진 곳에 있으며, 이 나라 제3의 대도시로서 무역항·군항인 탈카를 가지며, 근처엔 로타 탄전, 연산 60만t을 생산하는 와치파트 제강소가 있어, 칠레의 중화학공업지대로서 발전하기 시작하고 있다. 인구는 1999년에 약 36만 명으로 유명한 외항(外港) 도시이다.

칠레의 관광명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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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觀光名所

예술과 문화활동이 활발한 칠레의 관광명소는 다음과 같다.

아후 타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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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hu Tahai

1960년에 아키비아후(제단) 위에 복원해 놓은 7개의 석상들로써 칠레의 이스타섬의 가장 유명한 유적이다. 이 섬의 주민들은 석상을 세우는 것을 둘러싸고 씨족들간에 치열한 경쟁을 벌였는데 이 거대한 석상들이 모아이다. 7개의 모아이는 각각 그 크기와 모양이 달라서 뚜렷한 개성을 나타내고 있는데, 석양이 질 때 경치가 가장 아름답다.

모네다 궁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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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eda Palace

콜로니얼풍의 큰 궁전으로 19세기 중반부터 대통령 관저로 쓰이고 있다. 1743년 착공될 때 조페국 건물로 예정되어 있었던 것이기 때문에 모네다 궁전이라고 불리게 되었고, 1973년 아옌데 대통령이 피노체트의 쿠데타 때 여기에서 저항하다 최후를 마친 후로 유명해졌다. 궁전 북쪽으로 헌법광장, 남쪽으로 불네스 광장, 그리고 오이긴스 거리를 사이에 두고 자유광장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