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세계지리/세계의 여러 나라/양극지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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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극지방[편집]

兩極地方

극지(極地)란 지구의 자전축(自轉軸)이 지표와 교차하여 생기는 북극점 및 남극점을 중심으로 하여 퍼지는 고위도 지역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 범위를 정하는 데는 목적에 따라 몇 개의 다른 방법이 생각되었는데, 예를 들면 위도 약 66

33

의 극권(極圈)은 천문학적 의의(意義)에 바탕을 두고 극지를 다른 것에서 분리시키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 지리학적으로는 다른 경계선을 취하는 것이 보통인데, 북극 지방에서는 최난월(最暖月) 평균기온 10

의 선이 대략 수목의 한계선에 일치하며, 이것이 사용되는 일이 많다.남극 지방에서는 협의(狹義)로는 남극대륙과 그 인접 도서를, 광의로는 남위 50∼60

부근에서 볼 수 있는 해양의 남극 수속선(收束線)부터 남쪽 지역을 극지로 하는 것이 보통이며, 후자(後者)에서는 대륙 주변의 해양도도 상당히 포함되게 된다.극지에는 지리적 극점 외에 ‘접근하기 어려운 극(도달 불능극)’·‘자극(磁極)’·‘지자기극(地磁氣極, 磁軸極)’ 등이 있다.도달불능극은 북극에선 주변의 육지로부터 가장 먼 지점, 남극에서는 대륙의 어느 해안으로부터도 가장 먼 지점으로서, 각각 북위 84

서경 170

부근 및 남위 82

동경 55

부근이다.자축극은 지구상의 지자기가 평균적으로 분포하는 것으로 보고, 이것을 내부에 하나의 막대자석이 있는 것으로 하여 나타낸 경우 이 자석의 극에 해당하는 곳으로서, 북위 78.5

서경 70

부근이 북자축극, 남위 78.5

동경 110

부근이 남자축극이다. 자극은 지자기의 수평분력(水平分力)이 0 이 되는 곳으로서, 매년 이동하고 있다. 북자극은 1965년에 북위 75.5

서경 100.5

에 있었고, 남자극은 1964년에 남위 67.5

동경 140

에 있었다.고위도 지방은 여러 가지 점에서 다른 지역과 다르다. 태양고도가 낮고 현저한 저온이 지배하며, 밤낮의 길이도 계절에 따라 극단적으로 다르고, 천문학적 극권보다 고위도인 지방에서는 태양광선의 굴절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적어도 1일 이상 태양이 지평선 아래로 지지 않는 날, 지평선 위로 뜨지 않는 날이 있다. 북극점에서는 186일 10시간 낮이 계속되고, 178일 14시간이 밤이다. 태양으로부터 오는 미립자류(微粒子流)에 원인하는 오로라, 지표 부근이 차기 때문에 일어나는 신기루나 그 밖의 광선의 이상굴절현상 등도 극지의 특색이라 하겠다.

북극지방[편집]

북극지방의 자연[편집]

北極地方-自然

북극지방은 주변이 유라시아·북아메리카의 두 대륙으로 둘러싸인 지중해인 북극해를 중심으로 한다. 주변의 육지는 오래된 순상지(楯狀地)가 많고, 빙식(氷蝕)을 받은 파상 대지(波狀臺地)나 넓은 해안평야가 큰 면적을 차지한다. 북극해의 해저지형을 보면, 엘즈미어 섬(Ellesmere島) 방면에서 노보시비르스키 제도(Novosibirskie諸島)로 뻗는 1,800㎞에 이르는 로모노소프 해령(海嶺)과, 이와 300∼400㎞ 떨어져서 평행으로 달리는 멘델레프 해령에 의해서 모두 깊이 4,000m를 넘는 3개의 해분(海盆)으로 나뉘어 있으며, 가장 깊은 곳은 5,449m에 이른다. 대륙붕(大陸棚)이 넓게 발달한 것도 북극해의 큰 특징 가운데 하나이다.해변의 대부분은 여름에도 녹는 일이 없는 다년성 해빙(海氷, 極氷)으로 뒤덮여 있다. 해빙 이외에 엘즈미어 북쪽의 붕빙(棚氷, 육지 얼음과 바다 얼음의 중간적인 존재로서, 얼음의 대지가 돌출한 부분)으로부터 공급되는 두께 30∼50m, 면적 500㎢ 에 이르는 빙도(氷島)도 북극해 내에서 발견된다. 보통의 빙산은 북극해 내에서는 적으며 연안에서 많이 생겨나고, 피라미드 형(型)의 것이 많으며 대서양으로 유입한다. 여러 번의 표류관측에 의해, 북극해의 표면 해류도 알려지게 되었다. 보퍼트 해분(Beaufort 海盆)의 시계 방향으로 도는 대환류(大還流)와 시베리아 앞바다로부터 대서양으로 향해서 흐르는 것이 현저하며, 1일 2∼3㎞의 속도이다.

북극지방의 기후[편집]

북극(北極)의 기후는 가혹하나, 겨울철의 저온은 넓은 바다가 커다란 열원(熱源)이 되므로 얼음 위에서는 완화되어 가장 추운 달의 평균기온은 얼음 위나 북극해 연안지방에서는 -30∼40

정도이며, 가장 저온이 되는 곳은 아(亞)북극지역인 시베리아이다.여름에는 해빙(海氷) 위에서 넓은 지역이 0

내외가 되고, 그밖의 지역은 그린란드의 내륙 지방을 제외하고는 모두 0

를 상회한다. 강수(降水)는 강풍을 수반하는 눈(雪)의 형태로 되는 일이 많은데, 강수량을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대부분의 연안지역은 물로 환산하여 연간 250㎜ 이하, 북극해의 중심지역에서는 100㎜ 이하로 생각되고 있다. 겨울에서 봄까지는 비교적 날씨가 좋으나, 때로는 심한 눈보라가 몰아친다. 여름철에는 흐리고, 안개가 많은 날씨가 지배하며, 가을엔 날씨가 가장 나쁘다. 알류샨이나 아이슬란드를 중심으로 하는 저압대에서는 악천후가 지배적이고, 강수도 많다.

북극해[편집]

北極海

북아메리카대륙과 유라시아대륙 사이의 해양. 지리학적으로는 지중해의 하나이며, 북빙양이라고도 한다. 남극지방에 남극대륙이 있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북극지방은 북극해로 형성되어 있다. 정의방법에 따라 면적·부피·평균심도가 다른데 일반적으로 부속해를 포함한 면적은 1,409만㎢이고, 부피는 1,698㎦이며, 평균심도는 1,205m이다. 이 가운데 북극지중해만은 면적 227만2,000㎢이고, 부피 108만7,000㎦이며, 평균심도 392m이다.

범위와 경계[편집]

範圍-境界

북극해는 베링해협에 의해 태평양과 나누어지고 대서양과는 퓨리헤클러해협, 데이비스해협 및 그린란드에서 스발바르제도·베어섬, 노르웨이의 노르카프를 잇는 선에 의해 나뉘어 있다. 북극지중해는 북극을 중심으로 한 북극해와 허드슨만·배핀만·북서항로(캐나다해협)로 이루어져 있다. 겨울철은 거의 전역이 두께 2∼3m의 얼음으로 덮이며, 여름철에는 주변 해역에 개수로(開水路)가 생긴다.

해저지형[편집]

海底地形

북극해에는 거의 북극점 근처를 지나 그린란드 북안에서 랍테프해안에 이르는 2개의 해령(海嶺), 즉 북극중앙해령(가켈해령)과 로모노소프해령(깊이 1,400m)이 있다. 두 해령과 거의 평행으로 엘즈미어섬 북안에서 동시베리아해 북부에 이르는 알파해령·멘델레예프해령이 있다. 이러한 해령으로 나누어져 캐나다 북안에는 거의 삼각형인 넓고 큰 캐나다해분(최대심도 4,000m)이 발달하고, 스피츠베르겐·젬랴프란차요시파·세베르나야젬랴를 잇는 선의 북안에는 난센해분이 발달하고 있다. 북시베리아 북안에는 너비 800㎞에 이르는 넓고 큰 대륙붕을 볼 수 있다.

해류와 수괴[편집]

海流-水槐

표면해류의 유속은 약해 10㎝/s 또는 그 이하이다. 흐르는 방향, 유속은 해빙(解氷)과 같다. 주된 표면해류는 랍테프해·동시베리아해에서 북극을 지나 북극해 중앙부를 가로질러 그린란드 북안에 이르는 북극해류이며, 서푸람해협에서 해빙을 동반한 동그린란드해류가 되어 대서양을 흘러든다. 표면에서 200m까지는 표층수(表層水) 또는 북극수라 불리는 수괴인데 밀도 성층(成層)이 뚜렷하다. 그 아래층 300∼500m에는 중층수(中層水)가 있고, 수온의 최대값은 0.5

이다. 염분은 평균적으로 약 34.95‰이다. 스피츠베르겐 서부로부터는 0.5∼1.5

의 비교적 따뜻하고 염분이 많은 대서양수가 흘러들어 북극지중해를 시계 반대방향으로 순환하고 있다. 그 아래층에는 저온의 저층수(底層水)가 있다. 대서양수와 저층수의 두 수괴가 북극해 해수 부피의 90%를 차지한다.

해빙과 빙사[편집]

解氷-氷山

북극지중해는 거의 4계절 내내 해빙으로 덮여 있다. 동그린란드해류·캐나다해류는 모두 빙산 및 해빙을 동반하여 남쪽으로 흐른다. 빙산은 주로 그린란드 빙관(氷冠)에서 흘러나오며 남쪽 한계선은 뉴펀들랜드 부근까지로 되어 있다.

북극지방의 생물[편집]

-生物

식물[편집]

植物

북쪽으로는 버드나무·자작나무 등의 관목군락이 넓은 면적을 차지하고, 극지의 중심부에서는 담자리꽃나무류 등의 왜성관목 외에 벼과·사초과·골풀과 등의 초본에 선태류·지의류가 많이 혼합된 식생을 이룬다. 북극권은 고산과 달라서 지형이 평탄하고 적설이 적기 때문에 눈사태가 난 비탈진 면이나 붕괴지 등의 식물군락은 발달하지 않고, 약간 들쭉날쭉한 구조토가 넓은 면적을 차지하고 있다. 식물군락은 볼록한 지형에서 자라는 건조형과 오목한 지형에서 자라는 습윤형이 모자이크 상태로 뒤섞여 있는 것이 많다.

동물[편집]

動物

바다에는 식물플랑크톤과 해빙 밑부분에 규조가 번식한다. 이러한 것들을 따라 식물식성인 요각류와 크릴 등의 동물플랑크톤이 증가한다. 대구 등의 어류와 수염고래가 동물플랑크톤을 잡아먹고 흰줄박이돌고래·북극곰 등은 어류·물범·수염고래 등을 먹는다. 바다새는 여름철에 남쪽해역에서 찾아온다. 순록·사향소·레밍 등의 동물도 여름엔 활발히 움직이며 북극해 중심부에서 가끔 북극곰과 북극여우 등을 볼 수 있다.주변 육지의 경관(景觀)의 특색은 툰드라(凍土)이다. 왜소한 관목이나 물이끼 등의 유체(遺體)가 쌓이고, 툰드라로 인해 배수가 잘 안 되어 이탄지(泥炭地)가 형성된다. 짧은 여름철에는 많은 꽃이 피며, 또 레밍·사향소·북극 영양(羚羊) 등과 많은 조류도 활동한다.

북극지방의 주민[편집]

-住民

북극의 북아메리카는 에스키모인이 차지하고 있다. 알래스카의 남쪽에서 그린란드·래브라도의 동부 연안에 이르는 9,600㎞에 걸쳐서 약 5만의 에스키모인이 거주하고 있다. 유럽의 툰드라 지대에는 라프족이, 아시아 북부지역에는 사모예드족이 살고 있다. 이들은 주로 순록을 기르며 사냥과 고기잡이를 하고 있다.

북극 탐험의 역사[편집]

北極探險-歷史

인간의 생활 무대에 둘러싸여 있는 북극지방에서 그 주변부는 상당히 오랜 옛날부터 인류에게 알려져 있었다. 이미 기원전 4세기에 피테아(Pytheas)는 북쪽 항로를 찾아서 북극권을 넘었다. 노르만 사람인 에릭이 그린란드 서해안을 개척하기 시작한 것은 서기 985년이었다. 1553년 윌로비(H.Willoughby)는 노바야젬랴(Novaya Zemlya)를 발견하였고, 또 바렌츠(W.Barants)는 1596년에 베어섬(Bear島)을 발견하고, 스발바르를 탐험하여 바렌츠해(Barents海)에 이름을 남기고 있다. 17세기에는 허드슨(H. Hudson)과 배핀(W.Baffin)의 활약이 있었고, 18세기에는 베링해협·알래스카 등지를 탐험한 베링(V.Bering)이 있었다.19세기에 들어서자 신대륙의 발견·극점 도착·북서 항로·북동 항로의 개척 등 여러 가지 목적으로 많은 탐험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1845∼1848년에는 영구의 프랭클린(J.Franklin) 일행이 캐나다의 북쪽을 지나는 북서항로를 찾았으나, 전원 조난이라는 비극이 일어났다.북서 항로의 개척은 1903∼1906년 사이에 아문센(R.Amund­sen)에 의해서 이루어졌으며, 시베리아의 북쪽을 지나 베링 해협으로 빠지는 북동항로의 개척은 1878∼1879년 노르덴숄드(N.Nordenjld)가 달성하였다.한편, 1893∼1896년에는 난센(F.Nansen)이 프람호(Fram號)로 북극해를 표류하여, 많은 관측 결과를 가져왔다. 극점 정복도 여러 사람이 시도하였는데, 피어리는 1891년부터 몇 차례에 걸친 탐험을 하고, 마침내 1909년 4월 6일 처음으로 북극점 위에 섰다.제1회 국제 극지 관측년(국제極年)인 1882∼1883년에는 독일·미국·영국·러시아·스웨덴·노르웨이 등 여러 나라가 북극지방에 월동 관측기지를 설치하고 공동 관측을 하였다. 그린란드의 빙상(氷床) 횡단은 1888년 난센이 이루었다.20세기에 들어서면서 많은 과학적 조사가 실행되어, 지식은 비약적으로 증대하였다. 아문센과 노빌레(U.Noblie) 등의 비행선에 의한 북극 횡단도 잊을 수 없다. 프람호를 뒤따르는 표류 관측은, 극점에서 그린란드 동해안까지의 1937∼1938년의 파파닌(I.Papanin)의 표류 관측소, 1937∼1940년의 세도프호에 의해서 행하여졌으며, 제2차 세계대전 후는 구소련이나 미국의 T3 등 많은 표류관측으로 이어져 있다.한편, 미국은 원자력 잠수함의 완성과 더불어 북극 해역에서의 행동력을 시험하였는데, 노틸러스호는 1958년 8월 3일 북극점을 바다 밑으로 방문하고, 스케이트호는 북극점에서 해빙(海氷)을 뚫고 부상하는 데 성공하였다.

북극의 탐험가[편집]

北劇-探險家

난센[편집]

Fridtjof Nansen (18 61.10.10∼1930.5.13)

노르웨이의 북극탐험가·동물학자·정치가. 오슬로 근교 프뢴 출생. 크리스티아니아 대학(현 오슬로대학)에서 동물학을 공부하였다. 1882년 그린란드를 탐험하고 돌아와서는 베르겐의 자연사박물관에 근무하였다. 1888년 그린란드를 횡단, 고트호프에서 월동하는 동안 에스키모의 생활을 연구하여 '그린란드의 최초의 횡단'(1890)과 '에스키모의 생활'을 썼다. 1893∼1896년 프람호(號)로 북극탐험에 나섰으며, 북위 83

59

까지 표류하다 F.H. 요한센과 함께 배에서 내려 개썰매와 카약을 이용하여 북위 86

14

지점에 도달하였다. 이 지점은 당시까지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최북방이었다. 이 탐험기록을 '극북(極北)'(1897) '노르웨이의 북극탐험'(1900∼1906) 등에 남겼는데 북극연구에 좋은 자료이다. 1897년 모교의 동물학 교수, 1906∼1908년 노르웨이의 영국주재 초대대사 및 해양학(海洋學) 교수를 역임하였다. 1910∼1914년 북대서양 북극해 및 시베리아의 탐험에도 참가하였다. 1918년에는 국제연맹의 노르웨이 대표였으며, 제1차 세계대전 후 인도주의적 입장에서 포로의 본국송환·난민구제에 힘썼으며, 1921∼1923년 러시아적십자 기근구제사업의 총관리자가 되었다. 이와 같은 평화사업에 공헌한 업적으로 1922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하였고, 1927년에는 국제연맹군축위원회의 노르웨이 대표가 되었다. 그 밖의 주요 저서에 '북극해의 해양학'(1902) '시베리아를 지나서'(1922) '아르메니아와 근동(近東)'(1928) 등이 있다.

피어리[편집]

Robert Edwin Peary (1856.5.6∼1920.2.20)

미국의 탐험가·군인. 펜실베이니아주(州) 크레슨 출생. 1881년 미국 해군의 토목기사가 되어 니카라과 운하의 조사대장이 되었다. 1886년에는 그린란드를 탐험, 1891∼1892년에도 재차 탐험하였다. 그 결과 극지방하(極地方河)가 북위 82

까지 연장되어 있음을 판명하고, 빙하의 형성, 에스키모의 민속(民俗) 등에 대하여 중요한 공헌을 하였다. 그후 북극을 탐험하고, 1898∼1902년에는 북위 84

17

, 1905∼1906년에는 북위 87

6

도착하였고, 1909년 4월 6일 드디어 북극점에 도달하였다. 1891년의 탐험대원이었던 F.A. 쿠크가 피어리보다 먼저 북극점에 도착하였다고 주장하여 논쟁이 있었으나, 과학적인 조사결과 피어리의 주장이 옳다고 입증되었다. 11년 소장이 되어 퇴역하였다. 저서에 '거대한 얼음을 넘어 북쪽으로 Nothward over the Great Ice'(1898) '북극에 가까이 Nearest to the Pole'(1907) '북극 The North Pole'(1910) 등이 있다.

허영호[편집]

許永浩(1954∼ )

산악인이자 탐험가. 충북 제천 출생. 1995년 12월 12일 남극대륙 최고봉인 빈슨 매시프산(해발 5,140m)을 올라 세계 최초로 3대 극점과 7대륙 최고봉을 정복했다. 1994년 1월 남극점, 11월 오세아니아의 카르스텐츠(뉴기니, 4,884m), 1995년 3월 북극점, 9월 유럽의 엘부르스(러시아, 5,642m)를 차례로 올랐다. 1982년 5월에는 히말라야산맥의 마칼루봉(해발 8,481m)을 밟아 처음으로 8,000m 등정에 성공했고, 1983년 10월 마나슬루봉(해발 8,163m) 등정, 중국-네팔 에베레스트 종단 같은 수많은 증정과 탐험기록을 세웠다.

그린란드[편집]

Greenland

북아메리카 대륙의 동북쪽 북위 59

45

에서 83

39

사이에 위치하며, 면적이 약 218만㎢ 에 이르는 세계 최대의 섬으로서 덴마크의 유일한 해외영토이다. 덴마크어로는 그뢴란(Grnland)이라고 한다. 면적의 85%는 평균 두께 1,500m, 최대 3,000m를 넘는 빙상(氷床, 大陸氷)으로 뒤덮여 있다. 기반은 전체적으로 중앙부로 갈수록 낮아지고 있다. 가장자리에서는 빙원(氷原) 위에 돌출한 이른바 누나타쿠(岩峰)가 분포한다. 누나타크 중 주된 것은 동부의 군비외른스반(3,700m)·포렐산(3,460m) 등이다.빙상의 기반은 선캄브리아대의 편마암·화강암으로 이루어지며, 빙상의 표면과는 달리 섬의 둘레가 높고, 내륙부는 낮아져서 중앙부는 해면보다 낮은 분지모양을 이룬다. 빙상은 해안에 이르러 절벽을 이루다가 바다에 무너져내려서 빙산이 된다. 빙산은 서해안에서는 북상하는 난류에 의해 데이비스 해협 부근에서 대부분 녹아버리지만, 동해안에서는 남하하는 동(東) 그린란드 해류에 운반되어 뉴펀들랜드 근해에 이르러서 북대서양 항로를 위협한다.얼음에 뒤덮이지 않은 지역에는 지난날 얼음의 확대기에 빙식을 받아 형성된 피오르드가 발달하여, 출입이 심한 해안선을 이루고 있다.연안 지역의 기후는 툰드라 기후로서, 여름철의 3∼5개월은 평균기온이 0∼10

이다. 겨울철의 기온은 남쪽과 북쪽이 상당히 다르며, 최한월은 -50∼38

로 되어 있다. 내륙은 빙설(氷雪)기후로서, 연평균 -28∼-30

에 이른다. 강수량은 남쪽 연안에서 2,000㎜를 넘으나 북쪽에서는 매우 적어 100㎜ 이하인 곳도 있다.툰드라 지대에서는 소수의 작은 관목 이외에 300종을 넘는 개화(開花)식물이 생육하고, 여름철에 선태류·지의류·고산식물 등이 자라고, 가장 기후가 온화한 남서부 해안에서는 침엽수림을 볼 수 있다. 동물은 북극곰·북극토끼·북극여우·북극이리·순록·사향우(麝香牛) 등 육지동물과 물개·바다표범 등 바다동물 및 대구·청어 등 한류어가 많다.982년 노르웨이인 에리크가 최초로 섬에 상륙하여 ‘초록섬’이라고 명명하였다. 985년부터 이주가 시작되었고, 1261년 노르웨이가 지배했으나, 그후 약 300년 동안은 일반사람들의 관심 밖에 있었다. 16세기 이후 북서항로의 개척자들이 다시 발견하여, 1721년 선교사 H. 에게데가 고트호브에 식민지를 개척함으로써 오늘날 덴마크령의 기초를 닦았으며, 다시 19세기 후반 이후에 난센·피어리 및 밀라우스와 L. 에릭슨 등에 의해 북극탐험이 이루어짐으로써 그 전모가 밝혀졌다.원주민은 에스키모인이었으나, 오늘날의 주민 가운데는 순수한 에스키모인은 극히 적고, 에스키모인과 유럽인의 혼혈족인 그린란드인(Greenlanders)이 주축을 이루며, 그밖에 소수의 유럽인이 산다. 인구의 대부분이 기후조건이 좋은 남서부에 집중되어 있다.주산업은 모피수(毛皮獸) 사냥과 대구·청어 등의 어업이다. 그밖에 짧은 여름기간에 근채류가 재배되고, 양·소가 사육되어 나르사크에서는 식육가공법이 활발하다. 광물자원은 빙정석(氷晶石)·납·아연 등이 풍부하며, 남부의 이빅투트에 있는 광산의 빙정석은 중요한 수출품이 되고 있다.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미국이 공군기지·관측소를 건설하였고, 오늘날은 학술연구와 더불어 군사적 요충으로서의 중요성이 증대하여 미국·덴마크 두 나라는 그린란드 공동 방위협정을 맺고 툴레(Thule) 등지의 기지를 강화하였다.

남극지방[편집]

남극지방의 자연[편집]

南極地方-自然

남극대륙은 붕빙(棚氷)을 포함하여 1,400만㎢ 에 이르는 면적을 가지며, 그 98% 이상이 평균 두께 1,800∼2,000m의 얼음으로 뒤덮여 있다. 근소한 노암(露岩)을 통하여 알 수 있는 지질이나 대지형으로부터, 이 대륙은 지체구조적(地體構造的)으로 크게 둘로 구분된다.하나는 동경(東經)에 들어가는 부분이 넓어 동남극대륙이라 불리는데, 지질적으로 오래된 순상지(楯狀地)를 이루고 있다. 주로 선(先)캄브리아기의 편마암·화강암 등의 결정질(結晶質) 암석으로 형성되며, 그 위에 무습곡(無褶曲)의 고생대∼중생대의 퇴적암을 싣고 있는 곳도 있다. 이것을 관통하는 중생대의 조립(粗粒) 현무암 암상이나 제3기∼제4기의 현무암질 화산도 분포하는 곳이 있다. 고생대의 빙성력암(氷成礫岩)이나 그로소프테리스 식물군 화석의 존재 등으로도 이른바 곤드와나 대륙의 일부로 생각된다. 다른 하나는 서경(西經) 지대에 들어가기 때문에 서남극 대륙이라고 불리는데, 환태평양조산대의 일부를 이루는 곳이 넓고, 고생대∼중생대의 습곡지층이나 화강암류, 제3기∼제4기의 화산대도 보인다.로스 해(Ross 海)·웨들 해(Weddel 海)의 큰 만입(灣入)도 현재는 서남극에 포함하여 생각되고 있다. 빙상(氷床)은, 동남극에서는 하나의 거대한 돔(dome)형을 이루는데 가장 높은 곳은 4,000m를 넘고, 가장자리에서는 갑자기 낮아진다. 빙상 아래의 기반은 상당히 기복이 심하다. 동남극에서는 해수준(海水準)보다 높은 곳이 넓고, 얼음 아래에 매몰된 높이 3,000m를 넘는 대산맥도 확인되고 있다.서남극에서는 바다수준 아래 높이에 있는 기반의 지역이 넓고, 가장 낮은 곳에서는 바다수준 아래 2,500m를 넘는다. 만일 얼음이 녹아 없어지면 서남극의 육지는 몇 개로 분단될 것이다. 내륙에서 빙상으로부터 머리를 내놓거나 또는 연안에 산재하는 노암(露岩)은 대부분 지난날 빙상으로 뒤덮여 있었음을 모렌이나 빙식곡이 보여주고 있다. 이 점에서 지난날 빙상은 200∼1,000m의 두께는 됐으리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연안에서는 얼음에서 노출한 후 한때 해면 아래로 가라앉아 있었던 곳도 있다. 주빙하(周氷河) 지형의 분포와 25

에 이르는 수온을 갖는 염호(鹽湖)의 존재 등도 알려져 있다. 여름철에 녹는 호수가 많은 연안의 노암은 오아시스라고도 불린다.화산에서는 로스해의 에레부스산(Erebus山, 4,023m)이 유명한데, 대륙 주변에 생긴 알칼리 현무암질 화산암으로 형성되는 활화산이다. 남극반도에서 그 북쪽으로 잇달아 있는 호상열도(弧狀列島)에도 화산이 많은데, 1967년에는 디셉션섬에서 큰 분화가 있었다. 해양도 케르게일렌(Kerguelen)·부베(Bouvet) 등은 모두 화산도이다.

남극지방의 기후[편집]

남극의 기후는 지구상에서 가장 낮은 기온과 심한 눈보라로 특징지어진다. 고위도인 외에 해발고도가 높고 대륙이 넓으면 설면(雪面)에서 태양광선의 반사(反射)가 심한 점 등으로 인해서 극심한 저온이 나타난다. 내륙의 보스토크 기지(해발 3,420m)에서는 연평균 -56

, 최저기온 -88.3

까지 내려간 기록이 있다. 연안에서는 연평균 -11∼17

로 상당히 완화된다.대륙 내부에서는 바람이 약하나, 연안에서는 대륙 사면(斜面)에서 내리닥치는 냉기로 생기는 사면 하강풍과 저위도 지방에서 침입하는 저기압으로 강풍이나 블리자드(눈보라)의 빈도가 높다. 모슨이나 미르니 기지에서는 연간 평균 초속 12m, 데니슨 곶(岬)에서는 초속 19.5m 의 풍속 기록을 갖고 있다. 주변의 바다에는 ‘포효하는 40도선’·‘절규하는 60도선’ 등으로 불리는 이른바 폭풍권이 있어, 넓은 대양에 전선대(前線帶)가 형성되고, 저기압이 서북쪽에서 동남쪽으로 수없이 이동한다. 강수량은 명확히 알기는 어려우나 내륙에서는 연간 50㎜(물도 쳐서) 이하인 곳이 넓은 듯하며, 연안에서는 300∼450㎜ 정도이다.

남극해[편집]

南極海

남극대륙의 주변을 둘러싸는 해양. 남대양·남빙양(南氷洋)이라고도 불린다. 국제수로국(國際水路局)은 대서양·인도양·태평양이 남으로 뻗어있기 때문에 남극해의 명칭이 따로 부여되어 있지 않다. 부속해로 스코시아해·벨링스하우젠해·웨델해·아문센해·로스해 등이 있다.남극해의 범위를 한정하는 설로는 남반구 각 대륙의 남단과 이어졌다고 하는 설, 거의 남위 35∼45

에 있는 아열대수렴선(亞熱帶收斂線)으로 보는 설, 남아메리카의 선단이나 남극수렴선에 거의 일치하는 남위 55

로 보는 설 등이 있다. 남위 55

이남의 해양면적은 약 3,200만㎢, 남위 40

이남에서는 약 7,500만㎢이다. 남위 50

이남에서는 수심 3,000m의 해역이 80%를 차지하며, 해령(海嶺)에 의해 아프리카 남부의 대서양-인도양해분(海盆;최심부 5,458m), 오스트레일리아 남부의 남인도양해분(최심부 5,458m), 남동태평양해분(최심부 6,414m) 등 3개의 커다란 해분으로 나뉜다. 게다가 사우스샌드위치 여러 섬의 동쪽에는 길이 1,000㎞에 이르는 사우스샌드위치 해구(海溝)가 있고, 최대수심 8,246m(메테올해연)이다.해저퇴적물은 남극대륙에서 유빙의 북부한계부근까지는 육생의 것이 많고, 빙하로 옮겨진 조약돌이나 진흙이 빙산의 융해나 혼탁류로 퇴적되고 있다. 남극대륙 가까이는 동쪽에서 서쪽으로 부는 바람 때문에 서향의 약한 해류가 있고, 남극환류와의 사이에 해양전선(남극발산선)을 형성하지만 뚜렷한 것은 아니다. 남극주변에서는 저온 때문에 표층수도 냉각되고 결수(結水)로 인해 해수중의 염분이 증가하고 밀도가 커져서 대륙사면을 따라 해저로 가라앉는다. 이것을 남극저층수라 하며, 웨델해를 비롯하여 대륙주변에 생성되어 주로 대서양의 해저를 북상하고 인도양·태평양에도 들어간다(해양대순환).남극해의 동류하는 남극 표층수는 북쪽으로 흐르는 성질을 갖고 남극수렴선에서 밀도가 작은 아남극(亞南極) 표층수와 혼합한 뒤 그 아래로 잠입하여, 남극 중층수(中層水)를 형성하는데 그 깊이는 500∼1,000m이다. 북쪽으로 퍼지는 남극표층수를 보충하기 위해서, 북쪽의 심층부에서 상승하는 주극심층수가 있다. 그 수송량은 약 6,000만㎥/s이며, 표층으로 영양염을 공급하여 플랑크톤 번식에 기여하고 있다. 남극해는 3∼4월부터 대륙주변에 해빙이 발달하여, 9∼10월에는 2,000만㎢에 달한다.해빙은 장소에 따라 다르지만 남위 50∼60

까지 발달하며 바람이나 해조류에 의해서 따뜻한 바다쪽으로의 이동과 동시에, 이합집산(離合集散)을 하여 빙구(氷丘)나 개수면을 만드록 있다. 여름에는 연안 가까이까지 후퇴하지만 장소에 따라서는 해안에서 40∼50㎞까지 정착빙이 남는 경우가 있다. 남극해의 해빙·해수·수괴는 상호관련된 전 지구의 기상에 커다란 영향을 주기 때문에 현재도 연구추진이 계획되고 있다. 해빙역에는 남극대륙의 빙하 또는 붕빙(棚氷)에서 분리된 빙산이 여기저기 퍼져 있다. 대륙붕상에는 해저에 착저한 것도 많다. 붕빙에서 분리된 빙산은 표면의 평탄한 탁상빙산(卓狀氷山)이 되고, 두께는 약 300m, 길이는 때로 200㎞에 달하는 것도 있다.최근의 조사에 의하면 남극해의 빙산 수는 20만∼30만개 이상, 전질량은 약 9조t이라고 견적되어 있다. 남극수렴선(남위 50

∼60

) 부근에서 해빙은 인·질소·규소 등의 영양염이 특히 많고, 남극해는 세계의 해양 중 가장 생물이 풍부하다. 여름 일사량은 중·저위도와 크게 차이가 없고, 규조류가 번식한다. 이것을 포식하는 동물 플랑크톤, 그리고 이들을 포식하는 고래·물범류·해류·물고기 등이 일련의 먹이연쇄를 형성하고 있다.남극 플랑크톤의 생태를 중심으로 하는 남극해 해양생태계(海洋生態系) 및 해양생물자원(海洋生物資源)에 관한 국제공동연구가 1977년부터 10년 개획으로 추진되고 있다.

남극지방의 생물[편집]

-生物

동물[편집]

動物

눈과 얼음으로 덮여 있는 남극대륙에서 생물을 볼 수 있는 지역은 남극해와 연안의 노암지역에 한정된다. 남극해에서는 남극난바다 보리새우가 먹이연쇄계(食物連鎖系)의 중심을 이루며, 수염고래·물범을 비롯하여 조류·어류의 먹이가 된다. 보리새우의 먹이가 되는 플랑크톤은 일사량이 많은 여름에 급증한다. 크릴새우는 미래의 단백질원으로서 1960년대부터 어업이 개시된 한편, 해양생태계의 실태를 규명하기 위하여 1980년부터 국제적인 협동연구가 10년계획으로 추진되고 있다.남극대륙은 난바다 쪽인 남극수렴선이나 남극환류(南極環流)에 의해 다른 대륙으로부터 격리되어 있으므로 연안해역의 어류와 저생생물(底生生物)에는 남극의 고유종이 많다. 약 110종에 이르는 남극해의 어류 가운데 약 80%가 고유종이라고 한다. 낮은 수온에도 불구하고 이매패(二枚貝)·권패(卷貝)·해삼·성게·해면동물(海綿動物) 등의 저생생물도 연안에 서식한다. 펭귄은 겨울에는 난바다의 부빙역(浮氷域)에서 지내고 여름에는 연안의 노암 위인 집단영소지(集團營巢地)에서 번식하는데, 남극 전역에 2,700만 마리가 있다고 한다. 황제펭귄은 57만 마리로 추정되며 주로 해빙(海氷) 위에 집단영소지를 만들어 겨울철에 알을 낳고 새끼를 기른다. 비상성(飛翔性) 해조류(海藻類)는 약 40종으로서, 알바트로스·슴새·바다제비·갈매기과 등으로 나뉜다.태반의 조류는 크릴새우·오징어·어류를 잡아먹으며 총 6,500만 마리로서 그 먹이생물량이 연간 550만t에 이른다. 펭귄을 포함한 조류의 먹이 생물량은 연간 3,900t으로 고래류의 먹이생물량과 같으며, 물범류의 절반에 이르고 있다. 기각류(?脚類)로는 물범과의 웨델·로스·게먹는물범 등과 강치과의 남극물개가 서식하는데, 총 1,700만 마리 가운데 보리새우를 잡아먹는 게먹는물범이 약 90%를 차지한다. 기각류의 연간 포식량은 약 8,000만t이다.육생동물(陸生動物)은 무척추동물뿐이며 종류도 적다. 2종의 모기류, 9종의 벼륙류, 120종 정도의 진드기류 외에 바퀴벌레류·연충류(?蟲類)·원생동물(原生動物)이 발견됐는데 대부분 지의류·선태류가 공존한다.

식물[편집]

植物

남극에 자생하는 현화식물(顯花植物)은 패랭이꽃과 남극푸른패랭이꽃, 벼과 남극벼참억새 2종이다. 남극 고유종은 아니고 남아메리카나 아남극(亞南極)의 섬에도 분포하나 남극대륙내에서는 남극반도의 남위 68

이북에만 분포한다. 남위 68

이남의 식생(植生)은 선태류·지의류 및 그밖의 은화식물(隱花植物)에 한정된다. 연안의 해조영소지(海鳥營巢地)가 있는 곳에서는 선태류의 식생과 토양동물상(土壤動物相)을 볼 수 있다. 내륙의 산악지대에서도 조류(鳥類)의 영향이 있는 곳에서는 지의류가 눈에 띈다. 또 빙설조(氷雪藻)라 불리는 눈과 얼음에 덮인 조류(藻類)가 나타나기도 한다. 남극의 식물상(植物相)은 북극에 비하여 매우 빈약하다.

해빙[편집]

海氷

남극대륙 주변의 해빙은 예로부터 많은 항해자의 접근을 가로막았다. 해빙 면적은 여름이 끝나는 2월경에는 350만∼450만㎢로 축소되지만, 계절이 바뀜에 따라 난바다쪽으로 확장되어 최성기(最盛期)인 9∼10월에는 1,800만∼2,000만㎢가 된다. 여기에다 남극의 빙상과 빙붕 약 1,360만㎢를 더하면 설빙(雪氷)면적은 3,200∼3,400만㎢가 되므로 지구 냉원역(冷源域)으로서의 효과는 매우 크다. 반면 북극의 해빙은 겨울철에는 약 1,800만㎢, 여름철에는 약 900만㎢이다. 넓은 의미의 해빙은 바닷물이 언 것과 육지의 얼음이 바다에 떠서 빙산(氷山)을 이룬 것을 말한다. 남극대륙 연안 가까이에서는 동쪽에서 서쪽으로 부는 바람 때문에 해빙·빙산도 시계바늘 반대방향으로 표류하고 지구 자전(自轉) 때문에 왼쪽으로 기우는 힘이 작용한다. 난바다에서는 편서풍이 매우 강하여 시계바늘방향으로 표류한다.겨울이 되면 연안에서 난바다 쪽으로 걸쳐 정착빙(定着氷)이 발달한다. 두께 150㎝ 정도로서 강설(降雪)이 있으면 2m 가량, 장소에 따라서는 4m에 이르는 곳도 있다. 정착빙은 조건이 좋은 곳에서는 해안에서부터 30∼40㎞까지 뻗어나가지만 전기압이 오면 난바다 쪽의 정착빙은 유빙(流氷)이 된다. 경우에 따라서는 깨진 얼음이 서로 겹쳐 두께 10∼20m의 빙구빙(氷丘氷)이 된다.해빙의 확장은 해안선의 형태, 바람, 해조류(海藻類), 해저지행 등에 지배되어 장소에 따라 다르다. 로스해(海) 서부는 여름에는 비교적 빨리 개수면(開水面)이 생기며, 때로는 빙붕 가장자리까지 개수면이 된다. 1841년 영국의 J. C. 로스가 ‘에레호스’호와 ‘타라’호로써 로스해를 항해한 것이 그때이다. 또 웨델해(海) 동부도 개수면이 되기 쉬워 예로부터 많은 배들이 해안까지 접근했으며, 해안의 빙붕 위에는 관측기지가 설치되었다. 반면 웨델해 서부에는 해빙이 집적되어 여름에서 항해가 곤란하며, 벨링스하우젠해와 밸러니제도 남부 및 뤼초홀름만 서부 등은 다년성(多年性) 해빙이 집적되어 항해하기 곤란한 해역이다. 남극에서 볼 수 있는 빙산은 빙붕 앞쪽 끝이 분리된 평탄한 표면의 탁상빙산(卓狀氷山)이 많다. 그 중에는 길이가 200㎞에 가까운 거대한 것도 있다.빙산은 물속에 깊이 잠겨 있으므로 해류에 의해 운반된다. 그 때문에 바람에 따라 흐르는 유빙과 반대의 움직임을 보이는 경우도 있다. 빙산은 북쪽으로 갈수록 남극환류에 실려 동쪽으로 가다가, 남위 50∼60

를 달리는 남극수렴선 이북에서 소멸되는 것이 대부분이다. 남극해에 떠있는 빙산은 약 20만개로 추정되지만 북반구에는 4만개 정도이다.

오로라[편집]

Aurora

지구 밖에서 입사(入射)하는 전자나 양성자가 지구의 초고층 대기와의 충돌에 의해 발광하는 현상. 주로 극지방에서 볼 수 있기 때문에 극광(極光)이라고도 한다. 오로라는 본래 로마신화의 ‘여명의 여신’ 아우로라(그리스신화의 에오스)에서 유래했다. 아우로라는 장미색 피부를 가진 금발의 아름다운 여신이며 태양신 아폴로의 누이동생이다. 중위도에서 볼 수 있는 극광이 새벽빛과 비슷하기 때문에 18세기경부터 극광을 오로라라고 부르게 되었다. 또 지구 이외에서는 목성에 오로라가 있다.

종류[편집]

種類

오로라는 극관(極冠)글로오로라, 오로라대형(帶型), 중위도(中衛度)오로라 등 크게 셋으로 나누어진다. 이 가운데서 가장 현저한 것이 오로라대형 오로라이고, 보통 오로라라고 하면 다시 커튼형오로라, 패치상(狀) 맥동성오로라, 희미한 부정형(不定形)오로라(diffuse auora)로 나뉜다.

분포[편집]

오로라가 가장 자주 보이는 곳은 남북 양극지방의 지구자기위도 65∼70

의 범위로서 이 지역을 오로라대(auroral zone)라고 한다. 오로라대보다 고위도(극관지역)나 저위도에서의 출현빈도는 감소한다. 출현하는 위도는 지방시(地方時)에 따라 다르며, 야간에는 65∼70

에 많으며, 주간에는 75∼80

로 위도가 높아진다. 이렇게 오로라의 출현이 지방시에 따라 위도변화를 보이기 때문에 오로라출현대(지구를 극지의 상공에서 내려다 보았을 때 동시에 오로라가 보이는 영역)를 오로라대와 구별해서 오로라오벌(aurora oval)이라고 한다. 일련의 오로라오벌은 대개 2종류의 오로라로 구성되는데, 주간에서 저녁을 거쳐 심야에 이르는 시간에는 커튼형오로라이고, 그 이후 아침까지의 반(半)은 주로 맥동성오로라로서 일반적으로 엷은 배경으로 동반한다. 과거에는 관측장치의 감도부족으로 인해서 맥동성오로라를 충분히 관측할 수 없기 때문에 이 부분을 희미한 부정형오로라라고 했었다.

오로라의 높이[편집]

오로라가 나타나는 높이는 지상 약 80∼수백㎞의 초고층 대기중인데, 극관글로오로라가 지상 80∼100㎞, 중위도오로라는 평균적으로 더욱 높아서 지상 300∼600㎞ 등으로 종류에 따라 고도가 다르다. 또 대형오로라는 출현시간, 위도 및 그 종류에 따라 고도가 변화한다. 일반적으로 주간에 고위도에서 출현하는 커튼형오로라는 백수십∼수백㎞로 높지만, 저녁부터 심야까지는 점차 하강해서 100∼수십백㎞가 된다. 심야에서 아침까지의 오로라는 주로 맥동성오로라로서 높이가 커튼형보다 낮아서 90∼100㎞ 정도가 많다.

오로라의 빛[편집]

오로라가 발광하는 곳은 초고층대기이며, 발광색은 공기의 주성분인 질소와 산소의 분자와 원자 및 그 이온이 입사입자(전자·양성자)에 의해 충돌되어 들뜨게 되고 다시 들뜬 입자가 낮은 에너지준위로 떨어질 때 방출되는 고유의 빛이다. 오로라의 대표적인 빛은 산소원자가 방출하는 녹색광(파장 557.7㎚) 및 적색광(파장 63㎚, 636.4㎚), 질소분자 이온이 방출하는 청색 띠스펙트럼(파장 427.8㎚ 등), 그리고 질소분자의 적색 또는 핑크색 띠스펙트럼 등이다. 이들 빛은 각각 높이와 분포지대가 다른데, 예를 들어 산소원자의 적색은 200㎞보다 높은 곳에서 강하고, 산소원자의 녹색과 질소분자 이온의 청색은 100∼200㎞에서 강하며 또 질소분자의 핑크색은 높이 100㎞ 이하에서 강하다. 따라서 활동적인 커튼형오로라는 상부가 진홍빛이고 중앙이 청록색, 하부가 녹색 또는 핑크색 등으로 다채롭다. 오로라 중에는 저녁때의 저위도와 아침녘의 고위도에서처럼 수소의 휘선(輝線)이 보이는 부분이 있거나 헬륨과 나트륨의 빛이 포함되기도 한다.

오로라의 활동과 원인[편집]

극관글로오로라는 태양의 플레어현상 때 태양에서 직접 날아오는 100만eV 이상의 고에너지 양성자가 직접 극관지방에 입사함에 의한 것이다. 입사입자는 고에너지의 양성자이기 때문에 입사고도는 깊고 따라서 오로라 고도는 낮다. 또 양성자가 전자를 포착해서 중성수소로 변환시키기 때문에 수소의 휘선(Hα, Hβ 등)이 강하다. 오로라대형 오로라는 항상 변동하고 있으며, 가장 현저한 활동은 오벌의 한밤중의 부분에서 밝기가 증가하여 격렬해지기 시작하고 수분 사이에 오벌의 폭이 수백㎞로 확대되면서 폭발적으로 발달된다(오로라폭풍). 태양풍 중의 자기장에서 남향(지구의 북극에서 남극으로 향한다) 성분이 중기하면 태양풍에서 지구자기권에 유입되는 에너지가 증가하고 그 결과 지구자기권 내에 큰 에너지가 축적된다. 이 에너지에 의해서 자기권 꼬리의 자기중성면 부근에서 입자가 급속하게 가속화되고, 다시 지상 수천㎞ 높이 부근의 자기력선에 인접한 전기장에서 속도가 더욱 촉진되며 자기력선에 유도되어 초고층대기에 입사된다. 이런 메커니즘을 통해서 입사되는 전자에 의해 발광하는 오로라가 커튼형오로라이다 커튼형오로라의 높이가 주간에서 저녁때를 거쳐 밤중에 이르는 사이에 점차 낮아지는 것은 이런 가속이 주간보다 야간에 현저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인공위성과 로켓에 의한 관측에서도 가속전압이 주간에서 심야에 걸쳐서 점차 증가하는 사실이 알려졌다. 이와는 달리 자기권 꼬리의 가속과정에서 직접 대기중에 입사되지 않고 일단 자기권내에 머물다가 다시 안쪽으로 진입하여 비교적 안정된 자기권내에 갇혔던 고에너지 입자가 자기적도면 부근에서 플라스마파통과 상호작용을 일으켜 산란됨으로써 대기에 입사되는 과정을 거치는 것도 있다.이런 과정을 통해 입사된 전자에 의해 발광하는 오로라가 맥동성오로라이다. 큰 자기폭풍 때에 가기권내에 갇혀 있던 고에너지 입자군에서 수일에 걸쳐 조금씩 높거나 낮게 누출되는 에너지에 의해 중위도 오로라가 발광한다.

오로라의 관련현상[편집]

오로라가 폭발적으로 활동할 때에는 일반적으로 오로라와 그 부근의 전리층 내에 강한 서향전류(西向電流)가 흐르고 있는 것이 극자기폭풍의 원인이 된다. 이 전류는 아침까지는 자기권에서 전리층을 향해 유입되어 오로라 속을 서쪽으로 흘러 저녁때에는 전리층에서 자기권으로 유출된다. 전류가 유입되는 영역이 강한 수소휘선이 보이는 영역에 대응되고, 전류가 유출되는 영역이 커튼형오로라의 가장 활발한 부분에 대응된다. 또 커튼형오로라활동에는 ‘오로라히스-오로라킬로미터파’라는 전파가 동반되며, 맥동성오로라의 활동에는 ‘코러스전파’와 지구자기맥동 등이 수반된다.

남극 탐험의 역사[편집]

南極探險-歷史

사람이 사는 대륙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남극이 알려지기는 북극지방보다 훨씬 늦었다. 확실한 기록에 의하면, 남극에의 접근은 1739년 부이베의 부이베섬 발견에서 비롯된다.1772∼1775년의 제임스 쿡의 두번째 항해에선 남극대륙의 주항(周航)이 이루어졌으며, 그 사이에 2회에 걸쳐 극권을 넘었으나 대륙은 알려지지 않았다. 19세기에 들어서면서 본격적인 지리학적 발견 시대가 된다.1819∼1820년에는 베링스 하우젠이 남극대륙을 주항하여, 피터 1세 섬이나 알렉산더 1세 섬을 발견하였다. 또 1820년 브랜스필드는 남극반도를 바라보았으며, 최초의 대륙 발견자가 되었다.1819∼1824년에는 이 밖에 윌리엄 스미스, 클라크, 웨들 등의 탐험이 잇달았으며, 남극해의 섬들이 발견되었다. 1839∼1843년에는 영국의 로스가 에레부스·테러의 두 배를 가지고 처음으로 유빙대를 돌아서 로스해 깊숙이, 에레부스 화산·로스 빙붕(氷棚) 등을 발견하였다.19세기말에서 20세기초에 걸쳐서는 대륙에 상륙하여 극점에 도전하는 이른바 ‘영웅의 시대’이다. 1895년에는 크리스텐센 일행이 아다르 곶(岬)에 첫상륙을 하였으며, 1899∼1900년에는 볼히그레핑크가 같은 지점에 상륙하여 첫 월동을 하였다. 1901∼1904년에는 드레갈스키, 노르덴숄드, 스코트 등이 남극 각지에서 활약하였다.스코트의 제1차 탐험에 이어 샤클턴은 1907∼1909년의 탐험에서 극점을 향해 전진하여 남위 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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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지 도달하였다. 이 일행은 남자극 조사·에레부스 등정(登頂)·베아드모아 빙하의 발견 등 많은 과학적 공헌을 하였다. 스코트는 1910∼1913년에 빅토리아랜드에서 대규모의 과학적 조사를 함과 동시에 극점 정복도 꾀하였다.한편, 아문센은 당초 북극점 도달을 목표로 삼았으나 피어리가 앞서 도달하였으므로 남극점으로 목표로 바꾸고, 1911년 12월 14일 처음으로 남극점 정복을 달성했다. 스코트는 약 1개월 늦게 1911년 1월 17일 남극점을 밟았으나 돌아오는 도중 악천후로 고생하다가 마침내 일행 4명이 전원 조난하는 비극을 낳았다. 이 무렵 모슨이나 필히너의 활약도 있었으며, 일본의 시라세(白瀨)도 1912년 로스해를 탐험했다.1928년 이후는 남극에 항공기가 등장했다. 즉, 윌킨스는 18 28년 남극에서의 첫 비행을 하였으며, 버드는 1929년 11월 29일 처음으로 하늘에서 남극점을 방문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 후는 미국의 하이점프 작전에서의 대규모적인 공중 사진촬영이나 로네의 탐험이 있었고, 처음으로 대륙 오지(奧地)까지 인공지진에 의한 얼음 두께 측정을 한 영국·스웨덴·노르웨이 3국 공동 탐험대의 성과도 눈부시다.1955∼1956년에는 1957∼1958년의 제3회 국제지구 관측년에서의 남극 공동관측을 목표로 10개국이 활동을 개시하였다. 이와는 별도로 1955년에는 각국이 모두 활발한 준비에 들어 갔다. 이때 남극관측에 참가한 나라는 아르헨티나·오스트레일리아·벨기에·칠레·프랑스·일본·뉴질랜드·노르웨이·남아프리카공화국·영국·미국·소련 등 12개국이었다.정확히 이때 영국의 V. 훅스는 뉴질랜드의 E. 힐러리의 협력으로 훼들해에서 남극점을 지나 로스해까지 남극대륙횡단에 성공하여 섀클턴의 꿈을 이루었다. 일본은 57년 2월에 뤼초홀름만의 동옹글섬에 기지를 개설하여 62년 2월∼66년 1월의 폐쇄를 제외하고는 각국과 협력하여 계속적인 관측을 하였고, 로켓에 의한 오로라 관측, 기상·설빙관측, 지학조사(地學調査) 등에 성과를 올렸다.또한 산과 산맥 주변에서는 약 5,000개에 이르는 운석이 채집되어 세계적인 관심을 모았다. 미국은 전부터 남극대륙의 국제법상의 지위에 대해 관심을 가져, 59년 12월에 남극에서 영토권주장의 보류를 하나의 조건으로, 과학조사의 자유와 국제협력, 환경보전 등을 확보하는 조항의 남극조약체결에 성공했다.현재 가맹국은 35개국이며, 남극문제를 해결하는 주체는 25개국으로 구성된 남극조약협의당사국(ATCP)이다. 생물자원 문제나 광물자원 문제가 새로이 생기면서, 관측이나 환경보전·자원문제를 어떻게 조화시켜 나가느냐가 남극조약상 커다란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현재 남극에는 한국의 ‘세종기지’를 포함, 17개국의 44개 과학기지가 건설되어 있다.

남극의 탐험가[편집]

-探險家

스콧[편집]

Robert Falcon Scott (1868∼1912)

영국의 남극탐험가. 데번포트 출생. 1882년 해군에 입대하였으며, 1901∼1904년 디스커버리호(號)를 타고 남극탐험을 지휘하였다. 이때 킹 에드워드 7세 랜드를 발견하여 남한(南限) 도달기록인 남위 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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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기록하였다. 1910년 테라 노바호(號)에 의한 제2차 남극탐험에 나서서 1912년 1월 18일 남극점에 도달하였다. 그러나 남극점은 1911년 12월 14일 노르웨이의 아문센에 도달하였기 때문에 첫 정복의 웅도(雄圖)는 깨어졌다. 그와 4명의 동행자는 귀로에 악전후로 조난, 식량부족과 동상으로 전원 비명의 최후를 마쳤다. 그의 유해와 일기(마지막 일자는 3월 29일) 등은 1912년 11월 12일 발견되었다. 마지막까지 용기를 잃지 않고 영국신사다운 최후를 마친 것이 알려져 국민적 영웅이 되었다. 저서로는 '탐험항해기'(2권, 19 05), '스콧 C.M.Scott 최후의 원정'(1913)이 있다.

아문센[편집]

Roald Amundsen

노르웨이의 극지탐험가. 선원의 아들로 보르게에서 태어나 소년시절부터 북극탐험을 꿈꾸었다. 크리스차니아(지금의 오슬로) 대학에서 의학을 공부하였으나, 1895년 1등항해사가 되고, 1997∼1999년 벨기에의 남극탐험대에 참가하였다. 이어서 탐험가 F. 난센의 조언을 얻어 북자극(北磁極) 및 북서항로의 탐험을 기획, 1901년 그린란드 해양을 조사하였다.1903∼1906년 소형선 이외아호(號)를 타고 대서양에서 북극해를 거쳐 태평양에 이르는 북서항로 항행에 사상 처음으로 성공하였으며, 이 항해에서 북자극의 위치를 확인하였다. 1909년 미국인 R.E. 피어리가 북극점에 도달하자 목표를 남극으로 바꾸어 10년 프람호(號)로 남극탐험을 떠났다. 로스해(海)의 고래만(灣) 대빙벽에 기지를 설치하고 개썰매로 남극점을 향해 출발한 지 55일 만인 1911년 12월 14일 인류사상 최초로 남극점 도달에 성공하였으며, 영국의 스콧 일행보다 35일 앞섰다.1918∼1920년 모드호(號)를 타고 북동항로 항행에 성공하였고, 1925년 미국의 L. 엘즈워스와 함께 비행정(飛行艇)에 의한 북극비행을 시도하였으나 실패, 1926년 다시 엘즈워스, 이탈리아의 U. 노비레와 함께 비행선(飛行船) 노르게호(號)로 스피츠베르겐으로부터 알래스카의 테러까지의 북극점 상공 통과 횡단비행에 성공하였다. 1928년 노비레 일행의 북극탐험대가 행방불명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구출하기 위해 비행정으로 포롬세 기지를 출발하였으나 돌아오지 못하고 조난사하였다. 그의 남극탐험에 쓰인 이외아호는 현재 샌프란시스코의 금문공원(金門公園)에 보존·전시되고 있다.저서에 '남극점'(1912) '북극해 최초 횡단'(1927, 엘즈워스와 공저) 등이 있다.

[편집]

James Cook (1728∼1779)

영국 해군·탐험항해자. 요크셔 출생. 캡틴 국으로 알려져 있다. 선원생활을 하다가 1755년 해군에 들어갔다. 7년전쟁중 캐나다에서 적군인 프랑스군이 지켜보는 가운데 위험한 수심측량을 감행해 상관에게 인정받았다. 그뒤 천문학·기하학 등을 배우고 1768년 학사원의 금성 태양면 통과 관측을 위한 조사대원으로 선발되어 1769년 엔데버호 함장으로 조사대원들을 이끌고 타히티섬으로 가서 관측을 성공시켰다.또한 뉴질랜드·오스트레일리아 동쪽연안과 뉴기니 남동쪽연안 등을 탐험하고 서쪽으로 돌아 세계를 항해하여 1771년 귀국하였다. 이듬해 레졸루션호와 어드벤처호를 이끌고 두번째 항해를 떠났다. 남극권에 이르러, 당시 일부 사람들이 믿고 있었던 테라 아우스트랄리스 인코그니타(Terra Australis Incognita;남방 미지의 대륙)가 실재하지 않음을 입증하였다. 그뒤에 뉴칼레도니아와 솔로몬제도 등 태평양 여러 섬을 탐방하고, 동쪽으로 항해하여 1775년 귀국하였다. 1776년 레졸루션호와 디스커버리호를 이끌고 다시 출항, 뉴질랜드에서 북상하여 샌드위치제도(하와이 제도)를 거쳐 북아메리카 베링해협 북쪽에 이르렀다. 그뒤 샌드위치제도로 되돌아갔으나 그곳에서 원주민에게 습격당해 죽었다.그는 뛰어난 항해자였으며 뉴질랜드·오스트레일리아 동쪽연안 등지의 정밀한 지도를 작성하였고, 또한 선원들의 직업병이던 괴혈병 예방에 성공하기도 하였다.

남극관측기지[편집]

南極觀測基地

각국은 남극대륙에 관측기지를 설치하여 남극에 관한 조사·연구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국제지구관측년 이래로 미국의 맥머도기지, 러시아의 벨링즈하우즌 기지, 중국의 장성(長成)기지 등 46개 기지가 건설되어 있는데, 1988년 2월 한국도 킹조지섬에 세종(世宗)기지를 건설하여 극지연구는 물론, 남극대륙 진출의 전진기지를 구축하였다. 한국은 1986년 남극조약에 33번째로 가입하였고, 1989년 10월에는 남극조약협의당사국(총 23개국)의 지위를 획득함으로써 남극대륙의 자원개발을 위한 기득권 확보는 물론, 남극의 대기·기상·지질·광상학(鑛床學) 등 기초과학 분야뿐만 아니라 크릴새우 등 수산자원개발에도 한몫을 하게 되었다.

세종과학기지[편집]

世宗科學基地

남극대륙 북쪽, 사우스셰틀랜드제도의 킹조지섬 바턴반도에 있는 한국 최초의 남극과학기지.남위 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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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 서경 58

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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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7년 12월 16일 기공, 88년 2월 17일 준공. 연건축면적 1,650㎡. 본관동·연구동·하계연구동·거주동·장비지원동·발전 및 식품저장동·지자기관측동·지진파관측동 및 온실·기상관측탑 등으로 이루어져, 35명 이내의 연구 및 지원 인력이 상주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세종기지가 들어선 킹조지섬은 남극반도와 거의 평행하게 발달해 있는 사우스셰틀랜드제도의 여러 섬 중 가장 큰 섬으로, 남극 진입의 관문이라 할 수 있는 곳이다. 남극은 비교적 기후조건이 좋아 칠레·아르헨티나·우루과이·브라질·러시아·중국·폴란드 등 7개국의 상주기지가 설치되어 있다.한국이 남극에 과학기지를 설치하게 된 것은 1989년 11월 33번째로, 남극조약 서명 국가가 된 것을 계기로 해양연구소가 극지연구실을 설치하여 이를 추진하면서부터이다. 가장 큰 설치목적은 남극의 무한한 자원개발에 참여할 수 있는 연고권 획득에 있다.한편, 세종기지의 건설과 함께 제1차 대한민국 남극연구단(하계연구단·동계연구단으로 구성)이 파견되어 88년 2월∼89년 2월에 해저지형 및 지층 탐사, 저서생물·해양생물 채취, 육상지질 및 아석표본 채취, 육상 동식물 분포조사 등의 연구·조사활동을 하였고, 2003년 현재 17차 동계연구단이 파견되어 상주하면서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한국과 남극[편집]

韓國-南極

남극은 무주물(無主物)로 미국과 멕시코를 합친 지역보다 광대하며, 미래자원의 보고로서 석유·천연가스·철·구리·니켈·금·은 및 크릴새우·고래 등 수산자원이 풍부하여 오랫동안 세계각국이 그 영유권을 주장하여 왔고, 앞으로도 그 다툼은 계속될 전망이다. 이미 남극에는 남극조약 가입국들이 진출하여 관측기지를 설치하고 자원조사를 비롯한 각분야의 연구를 진행하고 있는데, 한국은 1978년부터 남극조약과 남극자원보존협약에 가입키 위한 기반을 조성하여 1984년부터 남빙양개발(南氷洋開發)을 본격적으로 추진하였다.1985년 11월 한국해양소년단의 남극관측대가 킹조지섬에서 리시 탐사작업을 벌였고, 남극 최고봉인 빈슨 매시프산에 올라 태극기를 꽂고 남극 최북단에 위치한 킹이일랜드섬을 탐사하였다. 11월 19일에는 남극해양생물자원보존위원회에 가입하였고, 1985년 12월 남극해저자원을 탐사하기 위한 남극수중탐험대가 조직되었다. 1986년 11월 남극조약에 가입, 남극개발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남극조약에 의하면, 상주기지를 설치한 나라는 남극조약협의당사국(ATCP)이 되며 남극과학탐사위원회(SCAR) 회원국이 되어 실질적인 남극대륙 관리권을 갖게 되나, 기지를 설치하지 못한 나라는 조약당사국이라 해도 연고권(緣故權)을 주장할 수 없고 남극대륙 운영에 관해 발언권이 주어지지 않는다.한국은 1987년부터 1·2단계로 상주기지 설치를 계획하여 1단계인 1987년 11월∼88년 3월 남극과학기지를 건설하고 마스터플랜을 작성하여 남극조약 국제회의 참여 및 자료수집을 계획하였다. 2단계인 1988∼1989년에는 영구기지 건설과 본격적인 탐사활동을 실행하였다. 1987년 4월 남극과학기지 설치를 위한 남극현지답사반이 파견되어 남극 타머반도 북쪽에 있는 킹조지섬을 중심으로 정밀조사를 실시하였다. 킹조지섬은 이미 소련·중국·칠레·아르헨티나·우루과이·폴란드·브라질 등의 상설기지가 건설된 곳으로, 식수 등의 공급이 유리한 위치에 있다.1987년 12월 21일 기공되어 1988년 2월 17일 준공된 한국 남극과학기지는 일명 세종기지라고도 하며, 본관(53평)·주거동(64평)·연구동(43평)·발전 및 식품저장동(120평)·장비지원동(49평)·지자기 및 지진파관측동(10평) 등 총 420평 규모이다. 상주인원은 해양·생물·지질·대기과학분야의 연구인력 6명과 의료·통신·발전·장비분야의 행정요원 9명 등 모두 15명이며 여름철에는 대학 및 연구기관 등에서 약 10명의 연구인력이 보충된다.남극 과학기지의 연구분야는 기상(지상기상·고층기상), 지질 및 지구물리(지자기·지질도 작성), 해양생물 및 물리·화학(생태계표본조사·해수화학), 전파통신(전리층조사·전계강도 측정), 빙하·지항(빙상·운석조사), 초고층대기물리(대기권의 이산화탄소농도 측정), 지구공학·극지의학(극지건축·극지적응조사) 등에 걸쳐 있다.한국 세종기지설치의 의의는 ① 남극조약협의당사국이 되기 위한 전제요건 충족, ② 미래자원 보고인 남극진출의 교두보 확보, ③ 극지공학 기술개발로 미래극지개발에 참여할 수 있는 기반을 구축하는 데에 있다. 준공 이후 세종기지 연구팀은 해양·지질학·기상학 등에 대한 연구에 착수하여 남극생태계표본수집과 관측과학분야를 연구하였고, 동절기에는 빙하에 대한 기본자료를 조사하는 한편, 해양생물·조류간의 먹이사슬과 지구물리·기상연구 등을 실시하였다.이러한 적극적인 남극과학활동 결과 한국은 1989년 10월 9일 남극조약 특별협의회의에서 핀란드·페루와 남극조약협의당사국으로 지정되었다.

남극조약[편집]

南極條約

남극 관측에 참가한 각국은, 남극에서의 국제협력이 전인류의 이익과 진보에 대하여 갖는 중요성을 인식하고, 1959년 12월 1일 남극조약을 체결하였다. 당초 이에 참가한 나라들은 아르헨티나·오스트레일리아·벨기에·칠레·프랑스·일본·뉴질랜드·노르웨이·남아프리카공화국·구소련·영국·미국의 12개국으로, 남극지역의 평화적 이용·군사기지나 군사연습 등의 금지·과학적 조사에서의 국제 협력·영토권의 보류·각국의 활동에 대한 자유로운 사찰·자연 보호등을 결정하고 있다. 기간은 30년이며, 적용 지역은 남위 60

이남이고, 1961년 6월 23일 발효하였다.

국제지구관측년[편집]

國際地球觀測年

1882∼1883년 사이에 전부터 칼 와이프레히트가 제창하고 있던 고위도 지역의 국제적인 공동관측이 행하여졌다. 이것이 이른바 국제극지(極地) 관측년(국제극년)이다.남극에서는 독일 탐험대가 사우스조지아에서 월동 관측에 종사하였다. 또한 50년 후인 1932∼1933년 두번째의 국제극년(極年)이 설정되어 20개국이 북극지방에서 탐험대를 조직하는 등 공동관측의 규모가 확대되었으며, 또 관측 방법이나 정밀도(精密度)의 현저한 진보가 있었다. 이러한 일들을 배경으로 하여 제3회 공동관측이 추진되었다.제2회 극년 이후 제2차 세계대전을 거치며 관측방법의 비약적인 진보에 의한 과학의 발달은 눈부신 바 있다. 이런 일에서 제2회 이후 25년째에 해당하는 1957년 7월 1일∼1958년 12월 31일 사이를 제3회 국제지구 관측년(IGY)으로 하고, 범위를 북극에서 남극에 이르는 전세계로, 나아가서 우주에까지 확대하여 세계가 지구물리학을 중심으로 공동관측을 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