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세계지리/세계의 여러 나라/유 럽/프랑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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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국기와 개요[편집]






''공식명칭:French Republic


정치체제:공화제


수 도:파리(Paris)


인 구:6,018만 529명(2003)


면 적:54만 7,030㎢


소 득:1인당 GDP 2만 2,670달러(2002)


공 용 어 :프랑스어


화폐단위 :유로(Euro)


주생산물 :소 / 우유 / 밀 / 포도 / 철광석








프랑스의 자연[편집]

France-自然 프랑스의 국토는 북극에서나 적도(赤道)에서나 거의 같은 거리인 북위 42∼51 에 위치하고 있으며, 유라시아 대륙 서단(西端)의 지협부(地峽部)를 차지하고 전체적으로는 대각선(對角線)이 1천㎞ 인 6각형에 가까운 정돈된 모양을 갖추고 있다. 그 3면은 영불(英佛)해협·대서양·지중해에 면하며 다른 3면은 역사상 큰 역할을 해온 나라들과 국경을 맞대고 있다. 이 뛰어난 교통상의 위치로 해서 유럽문명의 십자로라는 말을 들어 왔고 항상 그 중심이 되어 있었다.지세는 일반적으로 남동부(南東部)가 높고 북서방(北西方)으로 갈수록 낮아지며 알프스·피레네 산맥을 제외하고는 비교적 완만하여 국토의 2/3가 평야와 구릉으로 이루어져 있다. 오늘날의 지형은 알프스 조산운동(造山運動)과 헬시니아 조산운동에 의해 형성되었다. 전자(前者)는 알프스·피레네·쥐라 등의 험준한 습곡산지(褶曲山地)를 이루고, 후자는 중앙산지와 거기에서 북서쪽으로 뻗는 아르모리칸 산지 및 북동쪽으로 뻗는 보즈·아르덴느 산지를 형성했다. 이들 산지는 침식(浸蝕)이 진행된 노년기(老年期)의 지형을 나타내고 일반적으로 완만하다. 중앙산지의 북쪽에는 파리 분지(盆地), 남서쪽에는 아키텐 분지가 펼쳐지고 남동쪽은 알프스와의 사이에 손강, 로온강의 좁은 계곡이 뻗친다. 아르모리칸 산지는 노르망디 반도와 브레타뉴 반도에 걸쳐 200m 내외의 완만한 구릉을 이루고 있으며 이들 산지의 사이를 르와르강·센강·가론강 등이 흐르고 있다.

프랑스의 기후[편집]

멕시코 만의 흐름과 지중해의 영향을 받기 때문에 고위도(高緯度)인 데 비해서는 온화한 편이다. 해양성 기후의 지중해성 기후가 분명히 나타나는 것은 해안의 좁은 지역뿐이며 해안으로부터의 거리, 해발고도, 국지적(局地的) 풍향(風向)에 따라 변화무쌍한 기후가 된다. 연평균기온은 지중해안의 코트 다주르에서 15 , 파리의 북방에서는 10 전후이다. 기후의 연교차(年較差)도 크지는 않으나 동쪽으로 나감에 따라 내륙적이고 연교차는 20 전후가 된다. 강수량은 산악부에서는 2,000㎜가 넘고 내륙에서는 500㎜ 전후이다.

파리 분지[편집]

Paris盆地 센(Seine)강과 르와르강 유역에 전개되는 프랑스 최대의 평야이다. 동서 약 400㎞, 남북 350㎞인데, 이 대분지에서는 안으로는 완만한 사면을 이루고 밖으로는 가파른 벼랑을 이루는 케스타 지형을 볼 수 있다. 분지를 중심으로 하는 지역은 일 드 프랑스라고 불리며 수도 파리를 지나는 프랑스의 심장부이기도 하다.

센강[편집]

Seine江 랑그레 고지(高地)에서 시작되어 파리 시내를 뚫고 영불해협으로 흘러들어가는 강이다. 연장 776㎞이며, 예부터 중요한 내륙수로(內陸水路)로서 이용해 왔고, 또한 꽃의 도시 파리를 아름답게 장식하고 있다.

루아르강[편집]

Leare江 프랑스 평원을 가로질러 비스케만(灣)으로 흘러드는 프랑스 최대의 강(1,020㎞). 유역지방은 기름진 충적토(沖積土)로서 풍요한 농업지대를 이루고 있다. 또 샹볼 등 아름다운 고성이 점재(點在)하는 관광지이기도 하다.

몽블랑산[편집]

MontBlanc山 프랑스·이탈리아 국경상에 있는 알프스 산맥 중의 최고봉. 해발 4,810m 이며 등산기지는 샤모니이다.

코르시카섬[편집]

Corsica島 지중해상에 떠 있는 프랑스령의 섬. 1768년에 제노아로부터 할양(割讓)받은 것이다. 섬 전체가 산이어서 목축 외에는 이렇다 할 산업이 없고 관광지로서 알려져 있다. 본토로 이주하는 주민이 많고 나폴레옹의 탄생지로 유명하다. 면적 8,722㎢. 인구는 약 29만.

프랑스의 역사[편집]

-歷史 BC 7세기경까지는 도나우 지방에서 이동해 온 켈트인이 현재의 프랑스에 해당하는 갈리아 지방에 씨족사회(氏族社會)를 형성했는데 BC 58∼50년에 카이사르가 전 갈리아를 평정하고 로마의 속주(屬州)로 삼았다. 그후 5세기에 게르만 민족의 대이동으로 프랑크족의 족장인 크로비스가 제족(諸族)을 통일하고 메로빙 왕조(王朝)를 수립했다. 그 뒤를 이은 카롤링 왕조는 샤를마뉴 대제(大帝) 시대에 들어가 크게 번영했으나 그가 죽은 뒤로는 왕국이 분열되어 843년의 베르덩 조약에 의해 이탈리아, 동프랑크(독일), 서프랑크(프랑스)의 3왕국이 탄생했다. 그후, 노르만의 침입, 이슬람의 침입을 겪는 동안 십자군이나 고딕 건축으로 대표되는 중세 봉건사회가 성립되었다. 잔다르크가 등장한 백년전쟁, 지리상의 발견, 종교개혁과 그에 따르는 분쟁을 거쳐 중앙집권이 거의 확립되었고, 루이 14세 밑에서 절대왕제(絶對王制)의 전성시대를 맞았다. 그러나 1789년의 프랑스 대혁명에 의해 절대왕조는 붕괴하고 그 동란 중에서 나폴레옹이 등장, 국민의식과 인권사상을 각국에 보급했다. 그의 실각(失脚) 후, 왕정복고(王政復古)와 혁명이 되풀이되는 정치적 혼란이 계속되고, 루이 보나파르트의 제2제정, 파리 코뮌의 뒤를 이어 제3공화제가 성립되었는데 이 체제 밑에서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경험했다. 그리고 나치스 점령하의 대독(對獨) 레지스탕스 등 어두운 시대를 거쳐 전후(戰後) 제4공화제의 성립을 보았다. 그러나 식민정책의 실패로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약체화(弱體化)하여, 1958년 드골이 지도하는 제5공화제의 시대로 들어갔다.

프랑스 공동체[편집]

-共同體 구프랑스 식민지 중, 중앙아프리카·콩고(브라자빌콩고)·가봉·말라가시·세네갈·차드·모리타니의 7개국과 프랑스 본국 및 재외영토로 구성되는 정치적·경제적 연합체이다.

프랑스의 주민[편집]

-住民 선주민족(先住民族)은 켈트계의 고올인이지만 라틴계 로마인·게르만족·브리튼인 등 여러 민족의 혼혈로 이루어져 있다. 피레네 산맥의 바스크 지방에는 체격·용모 등이 프랑스인과는 다른 바스크인이 살고 있다. 언어는 인도-유럽어족(語族), 로망스 제어(諸語)의 하나인 프랑스어를 쓰고, 옷크어 등 지방어도 있다. 종교는 국민의 82%가 가톨릭이며 주민은 실증적(實證的)·합리적이어서 좋은 뜻에서 개인주의적이다. 한편, 사회의 급격한 변화를 꺼려 하고 고전을 존중한다.

프랑스의 정치[편집]

-政治 알제리 문제를 계기로 한 정치적 혼란을 수습한 드골 장군은 대통령에게 강대한 권한을 주는 헌법을 공포했다(1958. 10. 8). 이 헌법에 바탕을 둔 제5공화제의 특색은 입법부에 대한 행정부의 우위에 있는데, 내각은 대통령이 임명하는 수상과 각료로서 구성된다. 국회는 2원제(二院制)로서, 국민회의(下院)는 2회 투표, 소선구제(小選擧區制)의 직접·보통선거로 선출되는 577명의 의원(임기 5년)으로 구성되며, 상원(上院)의원은 국민의회 및 지방의회 대표에 의한 간접선거로 선출된다(정수 319명, 임기 9년, 3년마다 1/3개선). 정당은 중도파(中道派)의 신(新)공화국 연합을 비롯하여 전통적인 소당(小黨) 분립인데, 소선거구제로 인해 정국은 일단 안정을 보이고 있다. EC를 기초로 하는 유럽의 단결을 꾀함과 동시에 타국에 구속되지 않는 자유로운 입장에서 ‘위대한 프랑스’의 실현을 지향했다. 자유진영에서는 최초로 중공을 승인했고 NATO에서의 탈퇴, 독자적인 핵전력의 개발 등이 그 좋은 예이다. 드골 대통령의 퇴진 후 1969년 9월 조르주 퐁피두 수상이 제2대 대통령에 당선되었으나 1974년 급서했으며, 1974년에 지스카르 데스텡이 제3대 대통령에, 1981년 5월 사회당의 프랑스와 미테랑이 제4대 대통령에, 1995년에는 신 드골주의자 자크 시라크가 제5대 대통령에 취임했다.

프랑스의 산업[편집]

-産業 프랑스의 경제는 1947년 이래 여러 차례에 걸친 근대화 계획, 경제사회 개발계획을 착실히 쌓아올려 많은 발전을 보았다. 유럽 여러 나라 중에서 농업생산이 가장 많은 나라이며, 동시에 항공기·자동차·화학공업의 발전도 눈부시다. 또한 지중해안이나 알프스 등의 명승지, 파리 등 역사적 건조물이 풍부한 아름다운 도시를 갖고 있어 관광산업도 주요 산업의 하나이다.

농목업[편집]

農牧業 프랑스는 천혜(天惠)의 자연 조건에 의해 EC 12개국 중에서 최대의 농업생산을 이룩하고(국내 총생산의 약 3%), 중요 식료품도 완전히 자급자족할 수 있다. 경지 면적 17만 9,000㎢ 는 EC 전체의 약 35%에 해당한다(프랑스 국내에서는 국토 총면적의 약 60%). 또한 농업종사자는 경제활동 인구의 약 8.8%를 차지한다. 주요 생산물은 밀을 비롯하여 보리·귀리·옥수수·사탕무·포도주·낙농제품 등이다. 또한 포도는 지중해안·보르도·샹파뉴·르와르 계곡과, 북부를 제외한 거의 전국에서 생산되며 포도주는 6천만 h 전후로서 질적으로나 양적으로 세계 제1위이다. 한편 목축도 성하여, 노르망디와 산지를 중심으로 소·말·양이 사육되고, 국토의 약 25%가 임야여서 목재 등의 임산물이 산출된다.

자원·광업[편집]

資源·鑛業 에너지 자원으로는 북부와 로렌의 석탄, 알프스·피레네의 수력전기, 라크 지방의 천연가스 등인데, 에너지의 전환으로 국영탄광의 출탄량(出炭量)은 줄고 있으며, 최근에는 사하라 사막의 석유나 원자력 발전에 기대를 걸고 있다. 철광업은 역사가 길며, 그 외의 주요산업으로는 에너지·화학·기계·섬유공업 등이 있다. 특히 프랑스의 전통적 공업부분인 석탄업이 쇠퇴하고 석유와 천연가스가 이에 대체되어 가고 있다.

공업[편집]

工業 프랑스의 공업 인구는 산업별 총인구의 약 15.9%를 차지하고 있다. 북부의 철강업은 세계에서도 손꼽는 양질의 철강을 생산하며 기계공업에 있어서는 수송용·농업용 기계 등이 높은 수준에 있다. 특히 르노나 시트로엔 등의 자동차와 카라벨·콩코르드의 개발로 유명한 항공기공업을 들 수 있다. 또한 화학공업도 석유화학공업이나 비료를 중심으로 눈부신 성장을 보이고 있다. 더욱이 전통적인 공업분야에 있어서는 파리를 중심으로 한 뛰어난 디자인의 각종 의류제품과 리용의 견직물, 북부 플랑드르 지방의 면마(綿麻)공업 등이 세계적으로 알려져 있다. 그 밖에 지방 도시에도 각기 지방색이 풍부한 식품공업·섬유공업 등을 볼 수 있다.

프랑[편집]

franc 프랑스가 사용하던 통화 단위로서, 1996년 6월 현재 1달러는 5.15프랑에 해당했다. 1968년의 대학 분쟁에 이어 일어난 경제적 위기로 프랑 절하를 해야 할 국면에까지 몰렸으나 드골의 독특한 수완으로 이를 극복하였다. 그러나 드골이 물러나고 1969년 6월 퐁피두가 대통령에 취임하자, 계속적인 국제수지 역조와 경제 불안을 극복하기 위해 퐁피두 정부는 동년 8월 마침내 프랑화(貨)의 11.1% 평가절하를 단행한 바 있다.

프랑스의 무역[편집]

-貿易 수입품목으로는 석유·석탄·코크스 등의 연료와 양모·면화 등 섬유 원료가 압도적으로 많고, 수출품목으로는 석유화학제품·기계·자동차·철강재·섬유 제품에서 알코올 음료·곡물 등의 농산물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또 프랑스의 무역거래국을 살펴보면, 일찍이 프랑스의 식민지였던 개발도상국가와의 무역량은 많이 줄어들었고, 반면 EC국가들과의 무역이 점차 확대되어 수출·수입 모두 40%대를 차지하고 그 다음으로 중요한 무역거래국은 OPEC제국·미국·노르웨이·스위스의 순이다.

프랑스의 교통[편집]

-交通 프랑스 교통망의 특색은 절대왕정(絶對王政) 이래의 중앙집권적 정치체제를 반영하여, 모두 파리를 중심으로 발달되어 있는 점이다. 도로망은 총연장 153만 1,350㎞(1980)가 넘는데, 최근 자동차의 보급과 화물수송의 확대로 대도시 주변을 중심으로 하는 자동차 전용도로는 5,250㎞에 달한다. 또 철도망은 밀도에서는 독일이나 영국보다 뒤지지만, 신속성·쾌적성(快適性)에 있어서는 세계에 자랑할 만한 높은 수준을 지니고 있다. 40만㎞ 를 넘던 총연장도 자동차 수송의 발전으로 최근에는 오히려 축소되는 경향이 있다. 한편 하천 교통은 건설자재·석탄·석유 등의 수송에 큰 역할을 하고 있고, 지역적으로는 동부·북부의 여러 수로가 가장 발달되어 있다. 나아가서 급속한 발전을 보이는 항공에서는 오를리와 부르지의 두 공항을 갖고 있는 파리가 유럽 항공로의 중심지 역할을 하고 있다. 또한 마르세유·니스 등 국내를 연결하는 항공망도 갖추고 있다.

프랑스의 지방[편집]

-地方 프랑스는 지방색이 풍부한 산업과 다양한 생활양식의 분포를 보이고 있다.

아르덴·플랑드르[편집]

최북부인 이들 지방은 예부터 면마(綿麻) 공업의 중심지로 번영해 왔는데, 현재도 풍부한 지하자원을 바탕으로 근대적 공업지대가 형성되어 있고, 그 중심지는 릴이다.

노르망디[편집]

센강 하류, 파리 분지의 일부와 그 서쪽의 구릉지대를 포함하는 지역으로, 동부는 사과주·치즈의 산출로 유명한 비옥한 농업지대이다. 서부 해안지역은 2차대전 때, 연합국의 상륙작전이 이루어진 격전지이다. 한편 르아브르, 르왕 등의 여러 도시가 있다.

일 드 프랑스[편집]

파리분지를 중심으로 한 지역으로서 밀·사탕무우 외에 대소비지 파리를 앞에 두고 야채·과수 등의 원예작물의 재배가 성하다. 이 지역의 동쪽으로는 샴페인으로 알려진 술의 명산지 샹파뉴 지방이 펼쳐지는데, 랭스가 그 중심도시이다.

알사스[편집]

라인 지구대(地溝帶) 왼쪽 기슭으로 뻗치는 지역으로서, 칼리염·수력발전 등을 바탕으로 공업이 발달하고 있는 외에 포도원이 많으며 스트라스부르가 중심지이다.

로렌[편집]

머즈강과 보즈산지 사이에 펼쳐지는 공업지대로서 철강생산은 프랑스에서 제1이다. 또한 밀·삼·호프 등의 재배도 성하며 중심은 낭시이다.

브르타뉴[편집]

연안의 어업을 제외하고는 이렇다 할 산업이 없어 일반적으로 빈약한 편이다. 중심지는 르와르 하구(河口)의 낭트이다.

아키텐 지방[편집]

보르도에서 툴루즈에 걸친 가론강 유역의 분지로서 포도주·꼬냑 등으로 알려진 포도 재배의 중심이지이다.

피레네 지방[편집]

에스파냐와의 국경 산악지역으로서, 풍부한 수력을 이용한 전원(電源)개발과 알루미늄·제사(製絲) 등의 여러 공업이 성하다. 대서양쪽의 피레네는 바스크 지방이라고 불리며 특이한 풍속으로 알려져 있다.

지중해 지방[편집]

프로방스, 랑그독 등의 지방으로 나뉘며, 론강을 따라 아비뇽·아를·님·카르카손 등 긴 역사를 지닌 옛 도시와 코트다주르 등의 보양지를 지닌 프랑스 유수의 관광지대로 되어 있다. 이 밖에 리용을 중심으로 한 공업화의 진전이 눈부신 론강 유역, 동계올림픽의 개최도시 그레노블을 중심으로 한 쥐라·알프스 지방 등은 각기 지역적 특색을 지닌 산업 개발이 추진되고 있다.

프랑스의 도시[편집]

-都市 프랑스에는 파리·마르세유·니스 등 중요한 도시들이 많이 있다.

파리[편집]

Paris 센강의 중류부(中流部), 파리분지를 중심으로 발달한 대도시. 시역(市域) 인구는 963만 8,000명(2000)이다. 프랑스의 수도로서 정치의 중심뿐만 아니라 산업·경제·문화의 중심지이다. 루이 왕조의 궁정문화 시대부터 꽃의 도시로 알려져 왔고, 또한 국제 문화의 중심으로, 명소·고적 등이 많은 아름다운 도시로서 세계 사람들의 동경의 대상이었다.파리의 시가지는 19세기 말까지는 이미 오늘날과 같은 모습을 거의 갖추게 된 것으로 센강을 중심으로 대로·광장·공원·다리 등이 배치되고 정연히 늘어선 주택과 함께 드문 도시미를 이루고 있다. 도시의 기능으로 본다면 노트르담 성당이 있는 시테섬은 파리의 발상지이며, 신앙과 법의 중심지이다.센강의 좌안(左岸)은 문교의 중심으로 중세 이래의 전통을 가진 소르본대학이 있고, 그 주변은 카르체 라탕이라고 부르는 학생가(學生街)가 있다. 생 제르맹 대로를 내려오면 관청가가 있고, 그 일각인 샹드마르스 공원에는 에펠탑이 우뚝 솟아 있다. 센강 우안(右岸)은 산업·금융의 중심이어서 파리 시청에서 루브르궁, 콩코르드 광장을 거쳐 샹젤리제 대로로 연결되는 동서를 축으로 하여 그 주위에는 은행·증권거래소·상점·회사 등의 사무실이 집중되어 있다. 이들 중심가의 동부에는 가내공업과 노동자 주택이 혼재(混在)하고 북부는 몽마르트르 언덕을 둘러싸고 화가·화상(畵商)이 밀집하며 소극장·영화관 등이 있는 환락가를 형성하고 있다. 이 중심가의 서부, 에트왈 광장의 남쪽은 고급주택가이다. 최근에는 에트왈 서쪽 테프안스 광장에 새로운 업무가(業務街)의 건설이 추진되고 있다. 이 밖에 시역 양단에는 볼로뉴·방산느 등의 큰 산림공원이 있고 시내의 뤽상부르 공원을 비롯하여 아름다운 가로수 등 녹지대도 풍부하다.한편 파리 주변이 프랑스 제1의 공업지대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특히 서부 교외의 센강 연안에는 르노 자동차 공장을 비롯하여 기계·급속·화학 등의 근대적 공업지대가 형성되어 있다. 이들 경제활동의 집중에 의해 교외 주택지를 포함한 실질적인 파리는 파리의 시역을 넘어 크게 확대되어 인구 약 740만의 대도시 지역으로 발전되고 있다.

[편집]

Lille 탄층지역(炭層地域)으로 불리는 노르현의 중심도시. 인구는 18만 2,228 (1999). 북프랑스 공업지대의 중심으로 야금(冶金)·면직물·식료품공업 등이 성하다. 또한 벨기에 방면과의 교역 중심지이기도 하다.

됭케르크[편집]

Dunkerque 벨기에 국경에 가깝고 북해에 면한 항구도시. 화물항으로서는 낭트·보르도항에 비길 수 있다. 2차 대전중, 독일의 압박을 받은 영국군이 이 항구를 통해 철수한 일은 유명하다.

루앙[편집]

Rouen 센 강변의 공업도시. 인구 10만 6,035명(1999). 만조(滿潮) 때에는 외항선도 소항(遡航)할 수 있다. 프랑스 유수의 면직물 산지이며 금속·조선·식품공업 등이 성하다. 잔다르크의 처형지로서도 알려져 있다.

칼레[편집]

Calais 도버해협에 면한 항만도시. 어항으로도 유명하다. 도버해협까지 철도 연락선이 통하고 해저 유러터널이 개통되었다. 한편 레이스 등의 수공예품·금속·조선공업 등도 성하다.

르아브르[편집]

Le Havre 센 강변에 있는 항구. 공업도시. 인구 19만 651명(1999). 파리의 바다의 현관, 북미항로의 종점으로서 마르세이유에 이어 선박 출입이 많다.항구를 중심으로 조선·기계·면방·식품 등의 공업이 성하며 석유기지로서도 중요하다.

오를레앙[편집]

Orl ans 르와르강 연안에 있는 소도시. 인구 11만 2,833명(1999). 잔다르크가 영국군의 점령으로부터 이 고장을 구출한 이래, 오를레앙의 소녀로서 이 고장의 이름은 더욱 유명하다. 현재는 교통의 요지로서 주변 농산물의 집산지이다.

낭트[편집]

Nantes 르와르 하류에 있는 브레타뉴 지방 제1의 상공업도시. 인구 26만 8,695(1999). 17∼18세기부터 상항(商港)으로 번성하여 왔고, 현재는 조선·식품·금속공업이 성하다.

보르도[편집]

Bordeaux 가론강 하류에 있는 프랑스 남서부의 정치·경제·문화의 중심도시. 인구 21만 5,118명(1999). 프랑스 최대의 포도 생산지를 지니는 보르도주는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제철·기계·조선 등의 여러 공업도 성하여 프랑스 제4의 대도시 지역을 형성하고 있다.

낭시[편집]

Nancy 모젤강의 지류를 따라 발달한 로렌 지방의 중심도시. 인구 10만 3,605명(1999). 알사스와 자르를 연결하는 교통의 요지로, 예부터 교통·상업의 중심지로 발전하여 왔다. 프랑스 동북부 공업지대의 중심으로 제철·기계·화학·섬유공업이 성하다.

스트라스부르[편집]

Strasbourg 라인강변에 있는 알사스지방의 중심도시. 인구 약 26만(1990). 중세에는 신성(神聖)로마제국에 속했으며, 역사의 변천에 따라 그 귀속이 독일·프랑스 사이에 오고갔다.시가지에는 대성당을 비롯한 역사적 건조물이 많고, 16세기에 창설된 스트라스부르대학은 유럽 각국으로부터 유학생이 모여들며, 특히 의학부는 유명하다. 최근에는 서구 동맹 본부가 있는 국제도시이기도 하다. 프랑스 유수의 하항도 갖고 있으며 광공업이 성하다.

리옹[편집]

Lyon 레만호에서 흐르는 론강과 쥐라 산지의 물을 모은 손강의 합류점(合流點)에 있는 프랑스 제3의 도시이다. 인구 약 153만(1992). 고올 시대의 유적이 남아 있는 리옹은 견직물이 세계적으로 유명한데, 최근에는 그 전통을 살린 견직물·화학·자동차 등의 여러 공업이 성하다. 시내에는 루이 14세의 마상상(馬上像)이 있는 베르클 광장을 중심으로 시청사를 비롯하여 각 시대의 양식을 보여주는 아름다운 건조물이 많다. 한편 대학·미술관이 있는 교육 도시이기도 하다.

마르세유[편집]

Marseilles 론 강변에 가깝고 지중해에 임해 있는 프랑스 제1의 대도시이며 인구 79만 7,486명(1999). 예부터 유럽과 아시아·아프리카를 연결하는 거점(據點)으로 번영해 온 지중해 최대의 항만도시이다. 현재에도 출입하는 선박의 톤수, 적출(積出)화물량에서 프랑스 제1위이며, 아시아에서 유럽으로 향하는 항로의 종점이기도 하다. 항만을 중심으로 조선·화학·식품 등의 여러 공업이 활발히 행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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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nnes 코트다주르에 있는 관광도시, 인구 7만. 매년 개최되는 영화제로 유명하다. 겨울에는 피한지(避寒地)로, 여름에는 해수욕장으로 유럽 각국으로부터 관광객이 끊일 사이가 없다.

니스[편집]

Nice 지중해안, 코트다주르 최대의 관광도시. 인구 34만 2,738(1999). 상항·여객항으로서도 발전하고 있고, 금속·섬유·식품·향수 제조 등의 여러 공업도 성하다. 매년 행해지는 카니발에는 취향(趣向)을 최대한 살린 출품(出品)이 유명하다.

툴루즈[편집]

Toulouse 가론 강변에 있는 아키텐 분지의 중심도시. 인구 39만 413(1999). 종교 및 상공업도시로 알려져 있다.

프랑스의 관광명소[편집]

-觀光名所 찬란한 역사와 풍부한 예술로 모든 이들을 매료시키고 연인들의 낙원이기도 한 ‘유럽의 보석상자’ 프랑스는 자유·평등·박애의 시민혁명의 초석 위에 휴머니티가 풍부한 예술을 꽃피운 나라이다.

루브르 미술관[편집]

루브르(Louvre) 미술관은 센강의 우안에 자리잡은 세계 최대의 미술관의 하나이다. 건물은 13세기 초엽 요새로서 세워지고 그후 르네상스풍의 궁전으로 다듬어진 루브르 궁전의 대부분을 이용하고 있다. 이곳에는 유명한 밀로의 「비너스」,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모나리자」를 비롯한 동서고금의 일류 미술품 20만점 이상이 소장되어 있다.

개선문[편집]

1806년 나폴레옹에 의해 기공되어 그의 사후 준공된 세계 최대의 개선문이다. 프랑스 역사 영광의 상징으로 높이 50m. 개선문(凱旋門)의 바로 아래에는 무명용사의 무덤이 있는데 사계절 등불이 꺼지는 일이 없고 헌화가 시드는 일이 없다.

샹젤리제[편집]

샹젤리제(Champs-Eiys es)는 개선문과 콩코르드 광장을 연결하는 폭 70m, 길이 2㎞의 대로. 중앙의 롱포앙을 경계로 동쪽은 공원, 서쪽은 상점가로서 일류 상점·식당·카페·극장 등이 줄지어 서 있으며 화려한 거리의 노상 카페가 아름다움을 더해준다. 파리 제일의 번화가이다.

에펠탑[편집]

Eiffel Tower 프랑스 혁명 100주년인 1889년에 세운 높이 320.75m의 철탑으로 프랑스 기사 구스타프 에펠이 만국박람회를 기념하여 세웠다. 이 에펠탑은 파리의 상징처럼 되어 있으며 엘리베이터를 타고 정상의 전망대 3층 274m까지 오를 수 있다. 탑 아래 위치한 샹 드 마르스 공원 왼쪽에는 나폴레옹의 유해가 있는 앵발리드, 그 근처에는 로댕 미술관이 자리잡고 있다. 건너편 샤이오 박물관에서 보는 에펠탑의 야경은 장관이다.

사크레쾨르 대성당[편집]

La Sacr -Coeur 몽마르트르 언덕 위에 있는 이 대성당은 프랑스가 프로이센과의 전쟁에서 패한 뒤 침체된 국민의 사기를 고양시킬 목적으로 모금한 돈으로 만들어졌다. 1876년에 기공되어 1910년에 완성되었으나 제1차 세계대전에서 독일의 항복 후에 헌당식을 했다. 성당 앞에 잔다르크의 동상이 있고 비잔틴 양식으로 하얀 돔이 우아한 자태로 솟아 있는 모습이 무척 아름답다.

베르사유 궁전[편집]

Versailles宮殿 프랑스 절대 왕조의 영화를 회상케 하는 대궁전. 파리 남서부 18㎞ 지점에 있다. 루이 14세가 20년에 걸쳐 세운 궁으로 이후 루이 16세와 왕비 마리 앙트와네트가 호사를 누리다가 프랑스 대혁명으로 비운을 맞았다. 건물의 규모, 절대왕정의 예술품, 100헥타르나 되는 대정원·숲속의 샘 등은 그 아름다움이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또한 제1차 세계대전의 베르사유 조약이 이 베르사유 궁전에서 맺어지는 등 국제적 무대로서 자주 이용되었다.

콩코르드 광장[편집]

Concorde廣場 튈르리 공원과 샹젤리제 가로 사이에 있는 큰 광장인데 중앙에 높이 23m의 오벨리스크와 두 개의 분수지(噴水池)가 있다. 콩코르드 광장은 또 대혁명 당시는 혁명광장으로 불리어, 루이 16세 등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서 길로틴의 이슬로 사라졌다.

노트르담 성당[편집]

Notre Dame Cathedral 1015년부터 무려 350년이나 걸려 건조된 프랑스 제1의 고딕식 성당이다. 노트르담이란 성모 마리아를 가르키는 말로 이 성당은 성모 마리아를 위해 지어진 성당이다. 성당 내부에는 성경의 내용을 주제로 한 수많은 조각들이 있고, 탑의 옥상 난간에는 기괴한 조수(鳥獸)의 모양을 한 악마의 조각이 새겨져 있다. 남쪽과 북쪽에 있는 4가지 색깔의 스테인드글라스인 장미창이 유명하다. 나폴레옹 등 많은 국왕들이 대관식을 올린 곳이기도 한 이 노트르담 성당의 탑 꼭대기(높이 142m)에서는 파리 전시가를 한눈에 바라볼 수 있다.

로셰 데 돔[편집]

le Rocher des Doms 로셰 데 돔은 론 강 하류에서 앙데옹 산을 마주보고 있는데 이 곳에서는 아비뇽 근교의 생 앙드레 요새를 볼 수 있다. 이 요새의 테라스 또한 그 아름다움이 세계적이고 정원은 1830년 정비되어 거대한 하나의 예술품과도 같다. 도시에 상당한 양의 물을 공급하는 저수지도 이 안에 있다.호수 중앙에는 1894년, 카르노 광장에서 이곳으로 옮겨진 펠릭스 샤르팡티에의 작품인 비너스상이 서 있다. 또한 해시계와 쟝 아텐을 포함, 아비뇽의 위인들의 동상도 볼 수 있다.

교황청[편집]

Le Palais des Papes 아비뇽의 교황청은 화려한 외관을 가진 유럽의 고딕양식의 건물중에서 가장 귀족적인 기념물로 인정받는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답고 가장 견고한 건축물인 이 호화스러운 궁전은 14세기에 기독교의 본거지였고, 그후로 아홉 명의 교황들이 거쳐갔다. 그 대담한 건축술과 풍부한 장식용 미술품들은 화려했던 과거를 대변해준다고 할 수 있다. 영광의 정원(La Cour d'honneur)라 불리우는 궁전 안뜰에서는 매년 유명한 아비뇽 연극축제가 열리게 된다.

성 안드레 성당[편집]

Saint Andere 프랑스의 고딕양식을 가장 훌륭하게 보존하고 있는 성 안드레 성당은 보르도의 유서깊은 대표적인 상징물이다. 성 소랭 예배당, 성 미셀 예배당과 함께 보르도에 있는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 중의 하나이다.

리옹 미술관[편집]

Lyon Art Gallery 17세기 때 궁전으로 지어진 건물인데 현재는 미술관으로 사용하고 있다. 푸르비에르 언덕과 마주한 앙리 4세의 기마상이 서 있는 데로 광장에 있는 미술관이다. 그리스시대부터 근대에 이르는 각종 미술작품을 관람할 수 있다.

부르고뉴 대공 궁전[편집]

Palais des Ducs et des Etats de Bourgogne 시내 중심에 있는 바로크 양식의 건물로 14∼15세기에 걸쳐 부르고뉴 공을 위해 건축한 궁전인데 이 성의 고전적인 외관은 17∼18세기에 걸친 보수공사에 기인한다. 19세기에 파괴되어 현재는 원래 건물의 1/3정도밖에 되지 않으며, 서쪽은 시청사로, 동쪽은 보자르 미술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거울의 방[편집]

Mirror's room 1687년 망사르가 완성한 거울의 방은 화려함의 극치를 보여준다. 길이 75m, 높이 12m의 넓은 방을 17개의 벽면으로 나누어 578개의 거울로 장식하였다. 이곳에서는 주로 궁정축제와 중요한 행사들이 열리거나 주요 외국 사신들을 접대하였다.

그랑 트리아농[편집]

Grand Trianon 그랑 트리아농은 루이 14세가 멩뜨농 부인을 위해 지은 별궁이다. 원래 트리아농은 1670년부터 1687년까지 외관을 자기로 장식하고, 루이 14세가 몽떼스빵 부인과 함께 간식을 먹으러 잠시 들르던 곳이었으나 결국 견고하지 않은 자기는 파손되었고, 그동안 루이 14세의 애첩이었던 몽떼르빵 부인은 총애를 잃게 되었다. 그후 망사르는 6개월만에 대리석으로 된 견고한 트리아농을 새로 지었으며 지금까지 그 아름다운 자태를 유지하고 있다. 장밋빛 대리석으로 된 외관과 실내장식은 눈이 부실 정도이다.

엘리제 궁전[편집]

Eligee Palace 고급 쇼핑가로 알려진 포부르 생토노레 거리에 있는 아담한 궁전이다. 1718년에 세워진 이 궁전은 루이 15세의 첩이던 퐁파두르와 나폴레옹의 왕비 조세핀 등이 살던 곳이다.

몽마르트르[편집]

Montmartre 몽마르트르는 종교적 분위기와 시대에 따른 미술사조의 흐름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그 문화·예술적인 정체성을 간직하고 있는 곳이다. 또한 오늘날, 주거지역이기도 하면서 역사·문화적 중심지이기도 하여 오래된 파리의 전형적인 골목길을 거닐고 싶어하는 관광객이 꼭 들르는 곳이다. 창작과 예술의 장소, 이곳에서는 관광객들은 항상 계단 한 켠에서 그림을 그리는 무명화가들을 볼 수 있고, 또한 영화촬영현장을 발견할 수 있다.반면 이러한 예술적 모습을 띠는 지역이 밤에는 환락가로 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