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이동

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시사/정치와 생활/근대정치의 전개/의회정치의 위기

위키문헌 ― 우리 모두의 도서관.



의회정치의 논리

[편집]

議會政治-論理

주권을 가진 국민에 의해서 정기적으로 선출된 대의원으로써 구성되는 의회(국회)에서 국가의 최고의사(最高意思)가 결정되는 정치방식을 의회정치라고 부른다. 여기에서 말하는 국가의 최고의사란 보통은 법률이라는 형태를 취한다. 이와 같은 정치 방식이 생겨난 모국(母國)은 영국이지만, 주로 19세기부터 20세기에 걸쳐서 그밖의 많은 나라에서도 채택되어졌던 것이다.

그러면 본래의 의회정치의 논리는 대체 어떠한 것일까. 그 논리에 따르면 자유롭고 평등하고 독립적인 이성적 개인(理性的個人)을 전제로 하고, 바로 이러한 사람들에 의한 대표자의 선출→이러한 대표자들에 의한 의회의 구성→이 의회에서의 이성적인 토의와 다수결 원리(多數決原理)에 따르는 법률의 제정→정부를 통한 이 법률의 일반국민에의 적용 ……과 같은 정치통합(政治統合)의 상승형(上昇型)의 환류형 피라미드를 구성하고 있었다. 즉 본래의 의회정치의 논리에 따르면 자주성을 가진 이성적인 개인을 기반으로 하고, 의회정치를 정치통합을 위한 통로(通路)로 함으로써 아름다운 민주정치의 이상상(理想像)을 그리려고 하였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의회정치의 기본적인 기능으로서, '다수결·대표·심의(審議)의 원칙'을 드는 것도, 그리고 의회정치를 '통의와 합의(合意)에 의한 정치', 또는 '토의와 설득에 의한 정치'로 보는 까닭도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어쨌든 이와 같이 형성된 의회의 의사가 국정의 기본적인 방향과 내용과 기준을 지시하며, 의회가 국정 전반에 걸쳐서 감독하며, 끊임없이 국정을 국민의 주권적 의사(主權的意思)에 서로 일치시키는 것이야말로 의회정치의 기본논리인 것이다.

의회정치의 위기

[편집]

議會政治-危機

그러면 이와 같은 아름다운 의회정치의 논리는 현실적으로 역시 아름답게 실현되어 간 것일까. 그러나 그 대답은 부정적으로 나타났다.

원래 현대의 의회정치는 대의정치(代議政治)의 형태를 취하는 관계로 선거인(選擧人)과 대표자와의 사이에 의사와 감정상의 괴리(乖離)가 생겨날 충분한 가능성을 그 자체내에 지니고 있다. 그러나 선거자격이 일정한 '재산과 교양'을 갖춘 시민층에게만 한정되어 있었던 근대 초에 있어서는 양자(兩者)의 동질성(同質性)이 어느 정도 확보되어 있어, 대표의 원리도 현대에서처럼 실질적인 파탄을 보이는 일은 없었다. 그러나 대체로 19세기 후반으로부터 방대한 수의 대중이 참정권(參政權)을 획득하여 정치무대에 등장하게 되자 의회정치의 지배원리에도 커다란 변화가 보이기 시작했다. 즉 선거권의 확대화와 이른바 대중민주주의(大衆民主主義)의 출현은 의회정치의 운영에 일대 위기적 사태를 초래케 했으니, 그것의 중요한 것은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동질성의 소멸

[편집]

同質性-消滅

원래 의회정치는 자유로운 토의와 다수결에 의한 통합을 기본원칙으로 하고 있는데, 이러한 원칙이 원활히 적용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국민사회가 구조적으로 '동질적'으로 되어야 한다.

즉 국민사회에 있어서 계층과 계층, 계급과 계급 사이의 대립이 날카롭게 되지 않아야 하는 것이다. 근대 초에는 국민사회 안에 그렇게 날카로운 대립관계가 보이지 않았으므로 자연히 국민의 의사도 적절하게 조화될 수 있으리라고 기대될 수가 있었다. 그러나 근대사회의 발전에 따라서 조성된 이해의 다원화(多元化)와 분극화현상(分極化現象)은 의회정치의 전제가 되는 동질사회에 금이 가게 함으로써 의회정치의 원리에 중대한 변화를 낳게 했다. 즉 사회가 점차로 여러 개의 이질적(異質的)인 집단으로 분열되어 그것이 날카롭게 대립하게 되자, 의회정치의 예정조화의 이념도 소실되어 갔다. 이런 상황하에서는 토의를 위한 공통의 광장은 소멸되고, 다수결은 잘못하면 다수자의 전결(專決)로 화하고, 소수자의 이익은 거의 무시되기가 일쑤였다. 그 결과 소수파는 통상적인 의사방해(議事妨害)의 테두리를 넘어서 실력행사 또는 심의거부(審議拒否)의 과격한 행동으로 나오게 됨으로써 의회정치의 운영에 있어서는 가끔 정돈상태가 노출되게 되는 것이다.

정당의 과두제화

[편집]

政黨-寡頭制化

원래 정당은 '그 성격상 자발적으로 결합·형성된 클럽에서부터 출발된 하나의 사회기관'(E. Barker)이었기 때문에, 자유롭고 평등한 민주사회에서는 그 조직은 지극히 민주적이어야 함은 물론이다. 그러나 이른바 대중민주주의시대에 이르러서부터는 당원(黨員)의 양적 증대와 정치투쟁의 격화 등의 요인으로 인하여 정당의 조직은 점차 집권화(集權化)의 길을 달려, 마침내 정당의 운영에 있어서는 '아래로부터 위로'라는 민주적 원칙보다는, 도리어 '위로부터 아래로'라는 비민주적 원칙이 지배되기 쉽다.

정당은 그 목적을 수행하기 위해 그 자체의 조직을 가지며, 간부당원(幹部黨員)들과 일반당원들로써 구성되고 있다. 그리고 어떠한 나라에 있어서의 정당도 대체로 중앙 본부와 지방 지부가 있어 서로 유기적인 활동을 한다. 각국의 정당의 조직은 나라에 따라서 각각 다르며, 특히 미국의 정당의 조직은 나라에 따라서 각각 다르며, 특히 미국의 정당조직에서처럼 지방분권적(地方分權的)인 성격이 뚜렷이 보이고 있는 것도 있지만 대체로 중앙집권적인 경향이 농후하다.

일반적으로 봉건적인 전통적 조직이 그 구성원의 절대적인 복종을 기초로 하고 있는 데 반하여, 근대의 정당의 조직은 그 구성원의 자유로운 합의(合意)를 기초로 한다. 정당이 참으로 국민의 의사의 전도관(傳導管) 즉 매개기구로서의 역할을 하려면 일반 국민과 항상 접촉하고 있는 일반당원의 의사가 정당운영에 실질적으로 반영되도록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정당 사이에 날카로운 대립과 투쟁이 보여지는 마당에서는 ① 고도의 직업적 기술에 의한 능률적인 사무의 수행과, ② 투쟁조직으로서의 단결강화 등이 필요하게 되는데, 이러한 필요성은 정당운영의 과두제화(寡頭制化)를 가져오게 하기 쉽다. 즉 능률적인 사무의 수행의 필요성은 당내관료제(黨內官僚制)의 대두를 가져오며, 그리고 투쟁조직으로서의 단결강화의 필요성은 엄격한 당규율(黨規律)과 철저한 계급질서적인 피라미드 형의 당조직을 갖게 하는 것이다.

또한 당원의 양적 증가는 정당조직의 과두제화를 촉진시켜 주는 요인이 되고 있다. 원래 '밑변(底邊)의 확대는 꼭지각(頂角)의 둔각화(鈍角化)를 초래한다'라는 것은 기하하학의 일반법칙이 되고 있다. 그러나 무릇 인간집단에서는 밑변의 확대, 즉 성원의 수의 증대는 거꾸로 꼭지각의 예각화(銳角化), 즉 소수지도자의 지배를 초래하고 있다.

이와 같이 당조직의 정점(頂點)에 자리잡은 소수의 당 수뇌부는 권력투쟁과 당의 운영에 있어서 참으로 중대한 역할을 한다. 당 수뇌부의 선임방법과 정책결정에 있어서의 토의와 결의방법은 모두 민주적인 절차를 밟도록 되어 있다. 그러나 이것은 형식에 불과할 뿐, 실제로는 대부분의 중대한 문제는 소수의 간부에 의한 막후회의(코커스)에 의해서 결정되기 일쑤이다. 이리하여 당규(黨規)의 엄격화는 당간부에 대한 비판을 감소시키며, 마침내 일반당원들로 하여금 정당 본래의 이념에 충실하기보다는 오히려 당간부에게 더욱 충성을 바치게 되는 것과 같은 사태도 보이게 된다. 어쨌든 정당의 과두제화와 또한 이것에 따르는 정당에 의한 의원(議員)들에 대한 철저한 통제는 현대민주정치가 당면한 여러 가지 문제 중의 하나로 되기에 이르렀다.

행정권과 관료의 우월화

[편집]

行政權-官僚-優越化

본래의 의회정치는 국가의 기능이 근대 초의 이른바 '야경국가(夜警國家)'에서 20세기의 '사회복지국가(社會福祉國家)'로 전환되어 가자 크게 변모되기에 이르렀다. 널리 알려지고 있는 바와 같이 근대 초의 '야경국가'에서는 '가장 적게 정치하는 것이 가장 좋은 정치'로 보였지만, 현대의 '사회복지국가'에서는 그와는 반대로 '가장 많이 공급하는 정치'로 보이게 되었다. 즉 현대국가는 국민의 전반적인 생활에 걸쳐서 인간다운 생활을 보장해 주도록 국민생활을 보호하고 도와주고 규제하며 또한 직접 봉사해야 할 책임을 지게 된 것이다. 이러한 사정으로 말미암아 현대국가는 그 행정사무의 양적 증대와 질적 분화(質的分化)를 능률적으로 처리해 나가기 위해서는 '통합된 행정계획'이라는 것을 그 중요한 과제로 하는 이른바 '행정국가'로 변모되어 간다.

이와 같이 국가의 행정기능의 확대에 따르는 행정사무의 양적 증대와 질적 분화는 전문가가 아닌 일반의원들에 의한 의회의 심의능력을 저하시키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의회의 심의도 본회의 중심주의(本會議中心主義)로부터 전문위원회주의(專門委員會主義)로 옮겨가게 되었으며, 또한 위임입법(委任立法)의 증대현상을 보이게도 되었다. 이리하여 정책결정의 핵심은 내각(방대하게 된 관료제)으로 옮겨가게 됨으로써 의회의 입법기능은 잘못하면 공허하게 되기 쉽게 되었다. 오늘날의 내각은 이미 의회의 '1위원회(一委員會)'가 아니라, 거꾸로 의회의 '주인공'이며 '지도자'로 되고 있는 형편이다. 이리하여 오늘날의 의회는 국가의 원리적 의사를 정립(定立)하는 기관이라기보다는 오히려 행정부의 조치의 추인(追認) 또는 행정부에 대한 권한위임을 하기 위한 기관으로 변모되어 간 것이다.

원래 의회정치가 그 권위를 자랑하며 그 신조(信條)를 소리높이 표방할 수 있었던 것은 의회가 국민의 자발적인 정치적 판단의 통합체(統合體)가 되는 동시에, 또한 정부의 통제자이며 정치의 비판자였기 때문이었다. 즉 밑으로부터의 자발적인 정치판단과 위로부터의 정부의 지배가 의회를 접합점(接合點)으로 하는 유일한 합법적 통로(通路)로서 순환된다고 보여지는 데에 바로 의회정치의 최대 의의가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시대의 변천은 마침내 의회가 가지는 본래의 기능인 자유로운 토론을 크게 저하케 했으며, 의회로 하여금 정책과 정부의 선택에 있어서 다수당(多數黨)의 사전결정(事前決定)의 등록을 위한 장소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 이리하여 주권을 가진 국민에 의해서 선출된 의원은 정부의 소수지도자 또는 정당간부에 맹종하게 됨으로써 정치적 결정권의 실질은 의회로부터 떨어져서 정부에로 옮겨가게 되었으며, 의회는 이러한 정부의 행위를 정당화시켜 주며, 또는 카무플라주시켜 주기 위한 단순한 단막극(單幕劇)의 무대로 떨어질 위험성이 없지 않게 된 것이다.

또한 이 밖에도 산업사회(産業社會)의 진전으로 말미암아 출현하게 된 수많은 각종 집단들이 의회 밖에서 의회 자체에 직접 압력을 가하게 되어, 의회는 ① 점점 복잡화되어 가는 개인과 집단의 이해의 대립을 의회내에 반영시켜 조정하기가 몹시 어렵게 되었다는 것, ② 앞서 지적한 바와 같이 정당의 당규(黨規)가 강화됨으로 말미암아 개개의 의원의 자유로운 발언이 봉쇄되어 간다는 것, ③ 매스컴에 의한 대중조작(大衆操作)의 가능성이 증대되어 간다는 것등에 직면하게 됨으로써 독자적으로 결정한다는 기능을 원활히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의회정치의 위기는 대체로 제1차대전으로부터 제2차대전에 이르는 시기에 특히 통절히 느껴졌다. 그렇게 느껴진 이유의 하나는 러시아 혁명의 실현이며 다른 하나는 파시즘의 대두였다. 이 양자(兩者)는 모두 재래의 의회정치 대신에 그들 나름대로의 정치체제를 부르짖고 나섰던 것이다. 어쨌든 러시아 혁명의 실현과 파시즘의 지배는 모두 의회정치에 대한 강렬한 충격이었다. 이러한 충격을 받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의회정치의 재생(再生)을 위한 온갖 대책이 제시되었다. 이를테면 직능대표(職能代表)에 의한 지역대표(地域代表)의 보충, 경제의회제(經濟議會制)의 설치, 행정부에 대한 의회의 광범한 관여권(關與權)의 부여, 비례대표제의 실시, 국회의원에 대한 국민의 소환제(召還制) 실시, 관료제에 대한 민주화의 강구 등이 그것이다.

이상에서 고찰한 바와 같이 오늘날 의회정치는 일대 시련에 부딪치고 있다. 그러면 의회제 민주주의는 부정되어야 하는 것일까. 결코 그렇게 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의회제 민주주의는 인류가 오랜 시일에 걸친 시행착오를 통해서 고안해 낸 가장 고귀한 정치원리이며 제도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의회제민주주의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애정을 가지고, 의회(국회)가 참으로 국민의 완전한 대표기관으로 되며, 또한 전문지식을 올바르게 흡수할 수 있는 기관이 되도록 진지하게 그 방책을 강구해 나가는 데 힘써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