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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시사/정치와 생활/정치의 이데올로기/내셔널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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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셔널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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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tionalism

역사적으로 나타난 내셔널리즘을 추상적으로 정의하는 일은 극히 곤란하다. 이 곤란성은 내셔널리즘이 국민주의, 국가주의, 민족주의 등 여러 가지로 번역되고 있는 데도 반영되고 있다. 여기서 일단 정의를 시도한다면 내셔널리즘은 근대사회의 내재적 응결력(凝結力)의 중핵이 되는 네이션(민족 혹은 국민)의 내셔널한 정치적 신조이고, 역사적으로는 네이션에 기초를 둔 국가의 형성을 지상(至上)의 것으로 생각하고, 이것을 창건하고 확대해 가려는 네이션의 정신상태 내지 정치정책원리 및 운동으로서 나타난 것이다.

내셔널리즘이 내셔널한 정치적 신조라고 하는 것은 그것이 본래 내셔널한 특성을 주장하는 집단적 자기의식(集團的自己意識:民族意識)이 어떤 역사적 조건하에 단순한 문화적 자기주장에서 정치적인 것에로까지 승화되었을 때 비로소 출현하는 것을 말한다.

또 내셔널리즘이 일정한 정신상태라고 하는 것은 민족국가의 현실 내지 이상에 대한 충성의 염원이 기타 어떠한 집단에 대한 충성의 염원에 우월한다는 의식상태를 가리킨다. 이것은 자기의 민족에 대한 자랑·영예, 민족성이나 민족문화의 우수성에의 신앙, 따라서 민족의 일종의 사명감을 핵심으로 하는 애국심 내지 조국애와 깊게 결부되어 있다. 그리고 내셔널리즘이 민족국가의 정치원리를 의미한다고 하는 것은 민족국가의 독립을 지상의 것으로 생각하는 정신상태와 결부되어서 국가의 존립·유지·확대를 위하여서는 모든 수단을 동원한다는 현실주의 내지 권력주의적인 격률(格律)에 따라서 국가가 행동하는 것을 가리킨다. 이것은 근대 민족국가가 권력다원성(權力多元性)의 세계에서 자기의 존립을 확보하지 않으면 아니되었던 역사적 구조(構造)에 유래하고 있다.

근대 내셔널리즘의 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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近代 nationalism-系譜

내셔널리즘은 근대 민족국가의 현실 내지 이상에 대한 네이션의 충성심 때문에 그들에게 강력한 내재적 응집력(內在的凝集力)을 제공하였다. 국가의 응집성이란 물방울이 표면장력에 의하여 둥글게 모이려고 하는 성질을 갖고 있는 것을 닮아 대외적으로는 그 자신이 하나로 되고자 하는 성질의 것으로서, 그 국가를 다른 국가로부터 구별하는 기능을 갖는다. 또 대내적으로는 국가에의 국민 각자의 적극적 참가를 나타내고 정서적으로는 충성심(忠誠心)으로서 나타난다.

이러한 국가의 응집성은 근대적 합리주의로부터는 나오지 않는다. 절대왕정(絶代王政)에 대하여 합리주의적 계몽사상은 시민 혁명을 지도하여 개인적 기본권 확립을 요구하였으나, 그 국가체제는 주지적 이성(主知的理性)이 확인한 개인적 자유와 자기보전과의 공리적(功利的) 목적으로부터 계약에 의한 원자론적 개인의 역학적 결합체여서 거기에는 자연적·전통적 공동성의 근거는 아무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시민의 공공활동에의 적극적 참가와 충성심은 각인의 타산적 이성에서는 생기지 않기 때문이다.

근대 내셔널리즘 사상은 이러한 힘과 공리(功利)의 2원적 요인에서 설명된 국가기계론에의 비판에서 생겨난 것이다. 주지적·합리적 계몽사상, 특히 로크 철학에 강하게 영향받았으면서도 감정철학(感情哲學)의 입장에서 그 비판을 개시하여 영국 내셔널리즘의 방향을 찾아가기 시작하던 샤프츠버리(Anthony Ashley Shaftesbury, 1671-1713:영국의 도덕철학자), 『사회계약론』으로 새로운 자연종교 즉 공공정신·애국심의 종교적 근거로서의 국가종교를 제안한 루소, 사회적·역사적 환경 속에서 가장 결정적인 요인을 네이션 또는 민족정신에서 구한 헤르더(Johann Gottfried von Herder, 1744-1803:독일의 철학자) 등은 다같이 계몽사상에 있어서의 계몽적 전제에의 대립에서 내셔널리즘 사상을 형성하였다. 이와 같이 초기 내셔널리즘이 사상적으로는 자본주의의 선진적·확대적 민족 또는 그 지도적 계층 편에서가 아니고 오히려 그 압박과 파괴적 영향을 받은 후진적인 여러 국민·여러 계층에서 형성되었다는 것은 주목할 만하다.

영국혁명, 특히 미국의 독립 혁명에 있어서는 자연권 사상과 같이 공동체 사상으로서의 패트리어티즘(Patriotism:집단에 대한 사랑)이 강조되었으나, 그것은 민중의 심정에서 끓어오르는 애국심이라기보다는 스토아적 덕(德)의 정신이 지도하는 명망가(名望家)의 패트리어티즘이었다.

이것에 반하여 프랑스 혁명은 계몽사상의 성과인 '인권선언'과 같이 네이션의 주권을 강조한 의미에서 내셔널리즘의 세계사상 최초의 실천적 표명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루소가 말하는 민중적 내셔널리즘이 아니고 유덕자(有德者)의 위에서의 계몽적 지도에 의한 내셔널리즘이란 점에서 전자와는 다르고 네이션의 주체적 자각이 결여되어 있었다.

예를 들면 시에예스(Sieyes, 1748-1836:프랑스의 혁명가)가 정부는 네이션에 의해 창조되어 그것에 종속하는 것이며, 법은 루소의 일반의지(一般意志)와 같은 공동의지에서 흘러나온 것이라고 하여, 네이션의 개념에 의하여 법형식적(法形式的) 국민주권에 구체적 내용을 부여하고, 그것에 의하여 민족국가를 현실의 정치제도로 한 것은 부정될 수 없다. 그러나 사회구성을 자연법론 혹은 기계론에서만 이해하고 있던 시에예스에게 네이션은 '공통의 법률 아래에 생활하면서 결합되는, 동일의 입법의히에 의하여 대표되는 단체'였다.

이 개념은 공통의 입법과 정부를 설정하는 계약(契約)이 개인의 집합체를 국가로 되게 한다는 로크적 계약론과 별로 차이가 없다. 개인주의적 '인권선언'과 네이션 주권의 두 원리가 통일되지 않은 채 1789년 헌법의 이념 속에 병존(竝存)하고 있다 하겠다. 그러나 라파예트(Lafayette, 1757-1834:프랑스의 군인·정치가, 미국 독립전쟁에 참전)가 지휘하는 국민군은 개인의 결합체인 시민사회적 공동체의 형성을 목표로 하는 패트리어티즘이긴 하나, 농민·상퀼로트(급진파의 소시민·노동자)의 일체감에 호소하여 개인적 이기심을 극복한 공동체의 정신을 불러 일깨우는 내셔널리즘에 서는 것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혁명에 대한 군사적 간섭이 민중의 참다운 조국애를 불러일으켜 국민개병제(國民皆兵制)를 가능케 하였다. 이러한 상황하에서 내셔널리즘은 주지적 이성에 호소하는 것이 아니라 혼(魂)의 깊숙한 곳으로부터의 외침, 종교적 신념에서 용솟음치는 것이다.

이러한 내셔널리즘에 있어서의 종교적 감정의 고양(高揚)의 결과로서 혁명의 과정에서 가톨리시즘의 의식(儀式)에 대신하여 제단·성역·순교자에의 민족적 예배가 민중의 감정 속에 깊이 아로새겨져 갔다.

이와 같이 내셔널리즘은 프랑스 혁명의 실천에 거대한 에너지를 제공하고 그 과정에서 스스로를 현실화하여 갔으나 스스로는 타민족에의 지배에 떨어져 결국은 로베스피에르의 좌절, 바뵈프(Francois Emile Babeuf, 1760-97:프랑스의 혁명가, 공산주의사상의 선구자) 주의의 실패가 보여주고 있는 바와 같이 '도덕의 왕국'은 오히려 현실주의적 정치가에 의하여 효과적으로 이용되는 데 그쳤다.

루소적 내셔널리즘의 관념성은 정치운동의 경제적·사회적 조건을 객관적으로 파악하는 데 실패하고, 정신적 측면을 강조한 나머지 운동의 물질적 기초를 정책에 부여할 수가 없었다. 오히려 권력주의적 정치가 시에예스·카르노의 내셔널리즘이 계몽사상과 루소적 내셔널리즘의 통합에 의하여 민족적 이익을 추구하는 나폴레옹의 현실주의적 내셔널리즘의 길을 열었던 것이다.

프랑스 혁명에 대한 간섭전쟁(干涉戰爭), 그것에 잇달은 나폴레옹 전쟁은 한편으로는 중남미 제국(中南美諸國)의 구체제를 파괴함과 동시에 다른 편으로는 여러 민족의 광범한 저항운동을 불러일으켰다. 이를 계기로 대내적으로는 정치적 지도권을 일부 소수의 특권귀족층의 독점에서 해방시켜 국민적 기반에로 확대하는 이상(理想), 대외적으로는 오랫동안 국제사회의 조직원리로서 통용하여 왔던 왕조주의(王朝主義)를 타파하여 네이션을 기반으로 하는 독립국가를 형성하는 지향(志向)이라는 두 면의 동향이 곧 국민

내셔널리즘의 이데올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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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tionalism-ideologie

내셔널리즘의 이데올로기를 특징짓는 점은 첫째 민족적 전통의 강조이다. 이것은 국어·습속(習俗)·예술 기타의 민족문화의 보존과 신장의 요청으로 나타나고, 또 자국(自國)의 역사에 있어서의 외적격양(外敵擊攘)의 전통을 강조하는 일과, 나아가 자국의 위신이나 영광을 높인 과거의 민족적 영웅을 찬양함으로써 발현한다.

둘째는 민족적 이익의 강조이다. 그것은 대내적으로는 부분적·지역적 이해의 국가적 이해에의 종속, 대외적으로는 영토나 수익의 옹호·확대의 요청으로서 나타는 일이 가장 많다. 이 민족적 이익의 관념은 어떤 때는 계급적 대립을 초월한 이익으로서 국민 속에 뿌리를 박고, 어떤 때는 허위의식으로 되어 사회적 모순을 은폐하고 계급의식을 억압하는 이데올로기적 역할이 전면에 나온다.

셋째는 민족적 사명의 강조로서, 어떤 네이션의 세계에 있어서의 존재이유와 장래의 행동목표를 단적으로 제시하여 국민을 정신으로 고무하고, 혹은 잠재적·현대적(顯在的)인 '적국민(敵國民)'을 정신적으로 무장해제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이러한 사명감은 선민의식(選民意識)을 수반하여 보편화에의 충동이 강하며 현저하게 외향적이라고 할 수 있다. 내셔널리즘의 제국주의에의 발전과 국제정치에 있어서의 이데올로기 전(戰)의 확대는 서로 얽혀 사명감의 국제화에 박차를 가해 그와 함께 정치적 허위선전화의 경향도 뚜렷하게 되었다. 미국의 '장대(壯大)한 사명', 제정러시아의 '제3의 로마' 프랑스나 러시아 등의 혁명정권에 있어서의 피압박민족 및 계급의 해방, 나치스 독일의 세계금권지배 폐절(世界金權支配廢絶)을 위한 '신질서', 제국주의 일본의 아시아 인을 위한 아시아 건설이라는 '대동아공영권(大東亞共榮圈)' 등 모두 근대의 민족적 사명감의 저명(著名)한 사례이다.

루소의 내셔널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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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usseau-nationalism

루소는 내셔널리즘의 사상적 원천(源泉)으로 불리고 있다. 루소의 내셔널리즘은 사상적 전환이 양성(釀成)되고 있던 18세기 중간쯤에 생겨났다. 그리스도 교적 경건주의가 개인의 내면생활에 침잠(沈潛)하고 공공생활에서 도피하여 그 분야를 계몽주의의 지배에 맡겼을 때 이성에 억압되고 무시된 감정의 반역이 시작되어 새로운 신앙의 부활이 사회생활을 위해 요구되었다. 루소가 『사보이야 신부(神父)의 신앙고백』에서 표명하고 『사회계약론』에서 제안한 새로운 자연종교, 즉 국가종교(國家宗敎)야말로 그의 내셔널리즘의 근본정신이었다. 공공정신, 애국심의 종교적 근거인 국가종교는 모든 신앙에의 관용을 승인은 하나, 기성종교에 대체되는 새로운 신앙의 확립을 적극적으로 선언하고, 신의 존재, 피안(彼岸)의 지복(至福), 악덕에의 형벌, 사회제약과 법의 신성, 공공생활에의 적극적 참가를 그 교리(敎理)로서 선포하였다.

루소의 사회계약은 민족정신에 의하여 형성되고 유지되는 일반의지에 기초하여 자유평등한 개인을 도덕적 공동체에 결합하는 제도이다. 사람은 그 시민이 됨으로써 문명의 퇴폐에서 자기의 도덕적 자유를 키지고 또 완성할 수가 있다. 사람은 이 공동체에 있어서 스스로 주권자임과 동시에 스스로 제정한 법에 복종하는 자율(自律) 혹은 공동 자아(自我)의 회복에 의해서만이라는 전제하에서 자기의 정치적 소외(疎外)에서 해방되게 되는 것이다 이 공동체에 있어서만이 각인은 참다운 애국자로서 조국을 사랑하는 감정을 스스로 의식할 수가 있다. 루소의 내셔널리즘은 19세기 중의 내셔널리즘과 같이 강대민족의 대국주의나 이익, 타민족에의 침략 내지 정복을 승인하는 것은 아니었다.

시민혁명과 내셔널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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市民革命-nationalism

영국혁명은 귀족의 부르주아화에의 지향(志向)에, 미국독립 혁명은 공화주의적 청교도의 산업자본주의에의 지향에 기초한 것이었다. 이들 양혁명에 있어서도 자연권 사상과 함께 공동체 사상으로서의 패트리어티즘(집단에 대한 사랑)이 보였으나 그것은 유덕자(有德者)의 것이고, 여러 개인의 결합체인 시민사회적 공동체를 목표한 것이었고, 민중의 일체감에 호소하여 개인적 이기심을 극복한 정신을 내면에서 각성(覺醒)케 하는 내셔널리즘은 아니었다. 여기에 반하여 정치 혁명에 그치지 않는 '사회 혁명'으로서의 프랑스 혁명에 있어선 농민·상퀼로트 등 일반민중의 혁명에의 참가와 외부로부터의 군사적 개입·간섭의 압력이 얽혀 참된 조국애를 불러일으켜 국민개병제를 가능케 하고 민중의 감정에서 우러난 내셔널리즘이 나타났다. 그러나 그것도 로베스피에르의 좌절(挫折)을 거쳐서 나폴레옹의 민족적 이익의 추구에 포섭되어 그 이후의 내셔널리즘 체제의 기초를 만들었다.

자유주의와 내셔널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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自由主義-nationalism

프랑스 혁명 이후부터 1870년대까지의 내셔널리즘은 마치니가 묘사한 것과 같이 개인주의 및 국제주의와의 아름다운 조화를 유지하였다. 민족국가의 절대주권을 강조하면서 각 민족국가내에 있어서의 개인적 자유와 국제평화의 수립 및 유지에 대한 모든 민족국가의 책임을 중시하고 있었던 것이다.

자유주의적 내셔널리즘은 각 민족국가가 각기 독립국가를 갖기 위해서 각 제국을 구성하는 민족에 따라서 분해(分解)되고 한 민족이면서도 분할이산(分轄離散)의 상태에 있는 것이 서로 모여 하나의 새로운 국가를 형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동시에 각 민족국가의 시민은 자유가 아니면 아니 된다. 그들은 개인적 자유(언론·출판·신앙·결사 등)를 갖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하여 이와 같이 모든 민족국가가 민족을 주지(主旨)로 하고 자유를 기조(基調)로 하는 것이라면 자유무역은 각 국가의 내부 또는 각 국가간에 번영하고, 곧 전쟁을 방지하고, 국내적으로나 국제적으로나 평화를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자유주의적인 내셔널리즘은 민족과 자유를 기초로 하였을 뿐만 아니라 민주주의를 포섭하고 대의적(代議的) 민주정치의 원리를 승인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아름다운 조화의 꿈은 1870년 이후의 자본주의의 제국주의적 단계에의 발전과 함께 깨어졌다.

제국주의와 내셔널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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帝國主義-nationalism

제국국주의 단계에 있어서의 내셔널리즘은 샤를 모라스(Charles Maurras, 1868-1952:프랑스의 시인·평론가)가 말한 바와 같이 '국가의 정책을 배타적으로 추구하는 것, 국가의 내적 질서를 절대적으로 유지하는 것, 국력을 부단히 증진시키는 것'을 의미하였다. 그것은 국가적 이익의 추구를 모든 것에 우선시키기 위해 대내적으로는 극히 반자유주의적·반민주주의적이다. 모든 사람을 일률적인 풍속·습관에 귀일시키고, 그것에 대하여 똑같이 불합리한 선동을 행하기에 이른다. 개인적 자유는 국가적 이익과 모순될 때에는 희생되고, 민주정치를 파괴한다. 대외적으로는 타국에 대한 침략전쟁을 미화시키기 위하여 이용된다. 이 의미에서 제국주의는 내셔널리즘의 최고의 형태이고, 내셔널리즘은 제국주의전쟁의 정신적 지주(支柱)가 된다. 내셔널리즘은 이 단계에서는 프랑스 혁명 등에 보였던 자유주의·민주주의와의 결합은 완전히 부정한다.

식민지 내셔널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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植民地 nationalism

제국주의의 침략하에 놓인, 식민지나 반식민지(半植民地)의 내셔널리즘을 '식민지 내셔널리즘'이라고 부른다면, 그것은 맥마흔 폴(Macmahon Paul, 1911-:오스트레일리아의 정치학자)이 주장하는 바와 같이, ① 외국의 정치적·경제적 지배에 의한 식민지정책과 제국주의에 대한 반항, ② 빈부의 격차에 대한 반감을 높인 민중에 의한 사회적·경제적 반항, ③ 서양에 대한 인종적인 반항이라는 3개의 반항의 합성물(合成物)로서 특징질 수 있다. 식민지에 있어서는 외국자본주의의 횡포에 대한 반감 때문에 19세기 유럽의 내셔널리즘처럼 무턱대고 그것을 예찬(禮讚)하는 일은 없었다. 오늘날 많은 식민지 내셔널리즘이 '중요산업의 국유화'나 '토지개혁' 등 사유재산권의 제한을 의미하고 개량주의적 슬로건이나 사회주의적 슬로건을 내세우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식민지 내셔널리즘의 지도자는 대체로 부르주아 층이나, 국내에 있어서의 노동자층의 정치적 신장(伸張)에 공포를 느끼고서 일부에서는 식민지 내셔널리즘을 반동화(反動化)시키는 경향도 나오고 있다.

사회주의와 내셔널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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社會主義-nationalism

마르크스는 민족을 소여(所與)의 경제적 질서의 운영에 관여하고 있는 제 계급과의 상호의존 속에서 포착·이해하고 실체적·역사적 존재로서 인정하였다. 그리하여 자기의 특수한 이익에 봉사함으로써 그 민족의 보편적 이익에 봉사하는 '민족적 계급'으로서의 프롤레타리아의 사회주의적 강령(綱領)이 그 민족의 진보에 기여하였다고 하여 '개명적(開明的) 애국주의자'는 이를 지지해야 한다고 하였고, 또 전체로서의 인류의 향복은 다만 사회주의에 있어서만이 실현되기 때문에 모든 것을 이 목적에 종속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였다. 그러나 제2인터내셔널 시대, 특히 1914년 제1차대전 발발에 즈음하여서는 세계 혁명의 이익보다는 민족공동체의 이익이 우선되었다. 레닌은 이것을 노동귀족의 이론에 의하여 설명하였으나 같은 문제가 코민테른에서도 볼 수 있으며, 오늘날의 사회주의 세계에 있어서는 사회주의 이념의 다양화라는 새로운 조건하에서 심각한 문제를 제출하고 있다. 중·소의 이념분쟁과 대립, 소련·체코슬로바키아 문제 등이 좋은 예라 하겠다.

울트라 내셔널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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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ltra nationalism

이 사상은 초민족(超民族)주의 혹은 민족지상주의로 불리우는 광신적 민족사명관이나 월관 등을 강조하는 대중운동의 사상이다. 자유주의적 내셔널리즘에 뒤이은 시기에 자민족(自民族)의 광역생활권(廣域生活圈)의 확립을 기획하여 인접지역내의 동일민족집단의 병합, 자국내에 있어서의 소수민족에의 부당한 압박을 격렬하게 추구하는 소위 전체적 민족주의, 혹은 아시아 지역에 있어서의 반식민지운동이 극단적 반서구(反西歐)·배외주의(排外主義)에 떨어진 경우의 민족운동에서 찾아볼 수 있다. 혹은 비스마르크적 독일의 범(汎)게르만 주의, 러시아·발칸 반도에 있어서의 그리스정교적 범슬라브 주의, 프랑스에 있어서의 불랑지슴이나 바레스 모라스의 '불의 십자단(十字團)즘'의 내셔널리즘, 아랍·터키에 있어서의 독림운동, 또는 일본을 맹주(盟主)로 하는 대아시아 주의 등은 이와 같은 이데올로기라고 할 수 있다. 유럽의 경우 반(反)유태주의와 같은 인종주의에 뒷받침되고 있는 경우가 많고 파시즘의 선구형태로 되었다.

애국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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愛國心

사람이 소속하는 국가사회에 자기를 동일화하는 감정으로 내셔널리즘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그것을 뒷받침하는 것은 ① 자기가 속하는 집단을 절대화하여 타집단을 공포·시기·경멸의 생각으로 보는 원시적 감정, ② 향토애 내지 향수이다. 이러한 감정은 역사교육에 의한 자기나라의 전통·사명 등의 주입, 민요·국가(國歌)·국기·건국 기타 역사적 대사건을 추상(追想)키 위한 의식이나 제사 등의 상징을 통하여 환기된다. 이렇게 하여 불러일으켜진 애국심은 어떤 때는 지배자가 행하는 대내억압(對內抑壓)과 대외침략의 가장 좋은 도구로서 동원되고 또 어떤 때는 역사적인 진보와 해방의 기동력으로서 작용한다. 특히 제국주의국가에 의하여 침략된 식민지 등에서는 침략자에 의한 생활환경의 파괴를 통하여 국민의 애국심은 강렬한 정치적 에너지를 발휘한다. 중국의 항일구국전선(抗日救國戰線)의 전개나 나치스 독일에 대한 소련의 '대(大)조국전쟁' 등등이 그 예라 할 수 있겠다.

배외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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排外主義

일반적으로 사회집단의 다른 사회집단에 대한 배척적·적대적 태도 내지 심정을 말한다.

배외주의는 폐쇄적인 원시집단(原始集團)에서는 이센셜리즘(集團歸屬感)의 대외적 측면으로서 나타나는 것이지만 다른 집단과의 커뮤니케이션의 증대와 함께 점차로 감소되고, 특히 자본주의적 상품교환경제를 기초로 하는 근대 시민사회에서는 약화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이 시민사회는 민족국가에 포섭되고 있기 때문에 애국심이나 울트라 내셔널리즘의 형태로 집단귀속감이 등장한다.

그것과 함께 배외주의적 심정도 완전히 합리화되지 않고, 특히 자본주의에 내재하는 여러 모순의 격화와 제국주의적 단계에의 이행(移行)에 수반되어 배외주의적 심정은 내부모순의 은폐 및 대외침략을 위한 이데올로기로서 지배계급에 의하여 동원되기에 이르고 있다. 파시즘이 그 좋은 예이다. 사회주의정당이 자국의 노동자계급의 이익을 구실로 이것을 사용하는 경우에는 사회배외주의(社會排外主義)라고 불린다.

군국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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軍國主義

군국주의란 '한 나라 또는 한 사회에 있어서 전쟁 및 전쟁준비를 위한 배려와 제도가 반항구적(半恒久的)으로 최고의 자리를 점하고, 정치·경제·교육·문화 등 국민생활의 다른 전 영역을 군사적 가치에 종속시키려는 사상 내지 행동양식'이다. 군사행동은 국가기능의 일부분에 지나지 않으나 그것이 과도하게 중요시될 경우나 단게에 있어서는 군국주의가 생겨난다. 군국주의의 폐해는 호전적(好戰的)·침략적이

되고 국가의 모든 정책은 일체 군사행동에 결부시켜 생각하게끔 된다.

군국주의에 있어서는 어떤 국가목적 수단으로서의 군사력이나 군대정신이 그 자체 목적으로 되는 경향이 있고, 군사체제를 통상의 사태로 보는 특징이 있다. 군국주의는 또 군대의 통수권의 자립·확대에의 지향(志向)에 의하여 정치적 지위의 강화를 목표로 하는 이데올로기 및 운동으로서도 나타난다.

인터내셔널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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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nationalism

인터내셔널리즘은 독립된 주권국가의 공존(共存)을 전제로 하여 국가주권의 제한에 의하여 조직화된 초국가적 사회의 형성을 이상으로 하면서도 그러한 전체사회의 부분으로서의 주권국가의 독립적 기능을 긍정한다. 중세적 보편국가(普遍國家)의 점차적인 붕괴와 더불어 성립된 유럽의 주권적 민족국가의 초기에 보여지는 국제주의는 왕조간(王朝間)의 그것이었으나, 그것은 프랑스 혁명과 나폴레옹 전쟁을 거쳐 19세기 전기에 있어서의 신성동맹(神聖同盟)에까지 그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 사이 시민계급은 서서히 성장하고 있었으나 곧 19세기 중엽 이후 그들을 담당자로 하는 자유주의적 인터내셔널리즘이 등장한다(유럽 협조).

그러나 그 후 자본주의가 제국주의단계에 돌입하고 양차대전의 경험을 거쳐 형성된 국제연맹 및 국제연합의 현실은 자본주의적 틀 속에서의 19세기적인 인터내셔널리즘의 발전의 여지가 거의 존재하지 않음을 나타낸다.

이것에 대하여 19세기 중엽부터 프롤레타리아 인터내셔널리즘이 등장하였다. 이것은 각국의 프롤레타리아트의 이해관계는 상호일치·공통한 것이며 그들은 자본주의를 타도함과 함께 사회주의를 건설할 투쟁에 있어서 국제적으로 굳게 단결하고 협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입장을 말한다.

세계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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世界主義

세계주의는 철학적으로는 이성(理性)을 공유(共有)하는 것으로서, 전 인류를 동포로 보는 입장이며, 멀리는 퀴닉학파(소크라테스의 제자 안티스테네스가 시작한 그리스 철학의 일파)가 당시의 국가 대립, 인종·귀천의 차별 등의 불합리한 습관에 대하여 만인은 똑같이 영지(英智)의 법칙에 따라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스토아 학파에 있어서도 존재의 본질은 인간이성(人間理性)이고 인간은 이성에 있어서 평등하고 이성의 법칙에 따르고 동일한 권리의무를 갖고 있다고 하였다.

근대에 있어서는 칸트의 보편적 인류공동체의 이념이다. 이것들은 일반적으로 인류를 이성적 국가 밑에 포섭하려는 사상이다. 그리스도 교의 종교적 세계주의도 모든 민족·국가·혈통·빈부의 차별을 넘어서 하나님 앞에 평등한 것으로서 인간을 본다.

정치적으로 세계주의는 내셔널리즘에 대한 것으로서, 현존하는 여러 국가가 해소(解消) 혹은 개혁되어서 국가간의 대립항쟁이 없어지고, 유일한 세계연방이 실현되어 전 인류가 그 시민으로 되는 것을 이상으로 하는 주의를 말한다.

따라서 국가 내지 민족의 횡적 관계에 있어서의 협조를 기초로 하고 인터내셔널리즘과는 구별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