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시사/현대사회와 시사/사회·환경·학술·문화/학술·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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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곡[편집]

歌曲

시조(時調)를 노래하는 전통 성악곡의 한 갈래. 시조(시)를 가사로 하는 음악으로서의 시조가 비교적 단순한 선율인데, 반대로 가곡은 복잡한 선율 구조이며, 곡목수가 많고 전문적인 창법을 요구한다. 연주 형태에 따라 남창(男唱)·여창(女唱)·남녀교창(男女交唱)으로 구분짓는다. 판소리와 함께 조선 후기 성악곡의 양대 산맥을 형성했던 가곡의 기원은 고려가요 『정과정곡(鄭瓜亭曲)』과 밀접한 관계를 보이는 조선 중기의 가요 만대엽(慢大葉)·중대엽(中大葉)·삭대엽(數大葉)에서 찾아볼 수 있다.

가사[편집]

歌辭

경기체가가 고려 말기에 들어 쇠퇴하면서부터 나타난 문학의 한 장르로서 조선 사대부 사회에서 널리 유행하였던 노래. 발생 과정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으나, 경기체가·고려속요와 관련이 깊은데, 종구(終句)는 시조의 종장(終章)과 매우 비슷한다. 대표적인 작가와 작품으로는 송순의 면앙정가, 정철의 『속미인곡』·『사미인곡』·『관동별곡』 등이 있다. 그 외에도 유배가사·내방가사·기행가사 등이 있다.

간다라 미술[편집]

gandhara art

파스키탄 북서부 폐샤와르 지방의 간다라 지방에서 1세기를 전후하여 600년 동안 번성했던 그리스·로마풍(風)의 불교미술. 불교와 헬레니즘 문화가 융합하여 형성된 미술양식으로서 1∼2세기에 최고 전성기를 이루었으며, 실크로드를 거쳐 둔황(敦煌)에 전해졌고 다시 동아시아 전역에 전파되었다.

갑신정변[편집]

甲申政變

1884년, 김옥균·박영효·서재필·서광범·홍영식 등 개혁파 인사들이 근대화를 꾀하기 위해 일으킨 정변. 1884년 12월 4일 우정국 개국식을 이용하여 청(淸)과 수구파를 몰아내고 조선의 근대화와 자주화를 이루기 위하여 수구파 요인을 암살하고 왕을 보호하면서 정권을 잡았다. 이들은 14개조에 달하는 정강을 발표하는 등 의욕을 보였으나 청의 힘을 업은 수구세력의 반격으로 3일 만에 막을 내렸다. 이 사건을 일러 '3일천하'라고도 한다.

개념 미술[편집]

槪念美術

현대미술에서 종래의 예술지향적 형태에서 벗어나 반미술적 제작 태도를 보이는 경향. 감상할만한 작품을 만든다는 지금까지의 예술가 의식을 버리고 작품 그 자체보다도 제작의 의사나 과정이야말로 예술 그 자체라고 생각하는 것을 말한다. 대표적인 작가로는 조셉 군주드, 더글러스 후에블러 등이 있다.

개인 콤플렉스[편집]

個人 complex

개인의 체험으로 생긴 심리 상태. 에디푸스 콤플렉스와 같이 누구에게나 존재하는 일반적인 것이 아니다. 물에 빠져 익사 직전에 구출된 뒤, 물에 들어가지 않으려는 것과 같은 지극히 개인적인 콤플렉스 등을 말한다.

거창양민 학살사건[편집]

居昌良民虐殺事件

1951년 2월, 공비 토벌 임무를 띠고 경남 거창군 신원면에 들어난 육군 11사단 9연대 3대대 병력 800여 명이 한동석 소령의 지휘 아래 신원면 주민 500여 명을 인근 산기슭에서 무차별 학살하는 만행을 저지르고 공비를 소탕한 전과로 왜곡 보고한 사건. 사건 관련자들은 무기, 10년, 3년의 징역을 선고받았으나 이승만 대통령의 특사로 석방되었다.

게이츠[편집]

William H. Gates(1955 - )

1980년대 이후 전세계 컴퓨터시장을 석권하고 있는 마이크로소프트사의 회장. 20세에 하버드대학을 중퇴하고 마이크로소프트사를 설립, MS-DOS를 비롯한 윈도 등 초히트 상품을 연속적으로 선보여 컴퓨터 소프트웨어에 관한 한 난공불락의 아성을 쌓고 하드웨어 생산업자들마저 자신이 설정한 표준에 따르도록 유도했다. 94년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가 「올해의 인물」로 선정했으며, 95년에는 미국 『포브스』지가 세계 제1의 갑부로 선정했다. 저서로 『미래로 가는 길』 『빌 게이츠의 생각의 속도』 등이 있다.

경극[편집]

京劇

중국의 대표적인 전통연극으로 북경(北京)의 극이라는 뜻이다. 각종 지방극이 18세기 후반에 수도 북경에서 서로 융합·발전되어 경극의 형식이 완성되었다.

경연[편집]

經筵

학식과 덕망이 탁월한 학자들을 궁중에 초빙하여 임금에게 경서를 강의토록 한 일. 고려 예종 때 궁중에 청연각을 두어 처음 실시하였으며, 조선시대에 들어와 본격적으로 실시되었다. 세조 2년에는 경연청을 두었으며, 성종 2년에는 경연특진관을 두었다. 1903년까지 이어져오다가 이후에는 거의 시행되지 않았다. 이 제도의 의의는 신하의 의견을 강론을 통하여 임금이 수렴했다는 점과 왕의 정치사상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는 점이다. 이와 유사한 기관으로는 세자를 교육시키는 것은 세자시강원이 있었다.

계몽주의[편집]

啓蒙主義

17세기말에 영국에서 일어나 프랑스 및 독일로 전파된 사상 운동. 서구 중심의 봉건적·신학적 사상에서 벗어나 이성·인간성을 중시하였다. 계몽주의에 바탕을 두 합리주의적(合理主義的) 정신은 근대 산업자본주의 발달에 원동력이 되었다. 대표적인 계몽주의 사상가로는 볼테르·로크·루소 등이 있는데 그들의 사상은 프랑스 혁명의 도화선이 되었다.

고려가요[편집]

高麗歌謠

고려시대에 평민들이 즐겨 부르던 민요적 시가. 주로 남녀간의 사랑, 자연에 대한 예찬, 이별의 아쉬움 등을 나타냈으며, 형식은 분절식 3음보이며 후렴구가 있다.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악학궤범』 에 「동동」·「처용가」, 『악장가사』 에 「정석가」·「청산별곡」·「사모곡」·「이상곡」·「가시리」·「쌍화점」·「처용가」·「만전춘」, 『시용향악보』 에 「상저가」·「유구곡」이 보인다.

골품제도[편집]

骨品制度

신라시대의 신분계급제도. 성골(聖骨)·진골(眞骨)·6두품(六頭品)·5두품(五頭品)·4두품(四頭品) 등이 있었다. 이 신분 제도는 개인은 물론, 친족집단의 사회적 신분을 나타내는 것으로 사회·정치 활동은 물론 복장·가옥의 규모까지 제한을 하였다. 이 폐쇄적인 제도는 지식 계층의 불만을 누적시켜 신라 멸망과 고려건국의 주도적 역할을 하도록 하였다.

광대[편집]

廣大

일명 재인(才人)이라고도 부르는데, 조선시대의 민속 예능인을 아울러 부르던 말. 즉 가면극·인형극·줄타기·땅재주·판소리에 능한 예능인이다. 원래는 탈꾼과 꼭두각시꾼을 이르는 말로 쓰이다가 확대되어 예능인의 총칭으로 쓰였으나 조선 후기에 와서 판소리를 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로 축소되었다.

교향곡[편집]

symphony

관현악으로 연주하는 소나타. 18세기 중엽의 하이든에서 모차르트·베토벤을 절정으로 하여, 슈만·브람스·말러 등의 낭만파·음악가는 물론 현대의 시벨리우스·오네게르·쇼스타코비치 등도 많은 작품을 남겼다. 서양 음악 가운데 악기 편성 규모가 가장 크다. 교향곡을 연주하는 관현악기는 현악기군, 목관악기군, 금관악기군 등으로 나뉘고, 그 편성은 최소 75명 가량이 필요하고 악기 종류도 다양하다.

규장각[편집]

奎章閣

조선시대의 역대 임금의 시, 친필, 그림 및 글씨를 비롯한 각종 문서 등을 관리하던 관청. 1776년에 정조가 즉위하면서 설치하였다. 정조는 즉위하면서 혼탁한 정치를 개혁하기 위하여 우문(右文) 정치를 표방하면서 규장각을 통하여 왕권강화를 꾀하였다. 당시까지 엄격했던 신분제도를 무시하고 규장각 검서관(檢書官)에 박제가·유득공·이제가 등 서자 출신을 과감히 기용하였다. 따라서 이들에 의해 실학 보급에 중요한 역할을 하기도 하였다. 1894년에 폐지되기까지 이곳 규정각에서는 많은 책을 편찬하였다. 현재는 서울대학교 중앙도서관에 규장각 장서가 보관되어 있다.

균역법[편집]

均役法

조선시대의 세법(稅法). 균역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만든 제도이다. 당시의 병역제도인 양역(良役)이 서민에게 무거운 부담을 강요하고 농민 경제에 위협을 주자 1750년에 균역청을 설치하여 세액을 줄여주고, 재정 부족분은 어(漁)·염(鹽)·선세(船稅) 등의 징수를 보충하였다. 이 제도로 일반 백성들의 경제적 부담을 덜어주는 한편, 관리의 재정적 횡포도 막고, 국가 재정의 균형을 잡았다는 데 큰 의의가 있다.

균전법[편집]

均田法

고대 중국의 토지제도. 북위(北魏)에서 5세기경부터 시작되어 당(唐) 시대까지 약 300여 년간 실시되었다. 많은 토지를 호족이 사적으로 소유하는 것을 억제하고 농민을 토지에 정착시키기 위해 실시하였다. 왕조에 따라 다소의 변화는 있었지만 대체로 21∼59세의 성인에게 일정한 면적의 토지를 지급하고 조세와 병역을 부담시키고 노령이 되면 다시 회수하였다.

그라스[편집]

Gunter Grass(1927 - )

독일의 대표적 현대작가. 제2차 세계대전으로 2년간 포로생활을 한 후 농사·석공 등의 일을 하다가 뒤셀도르프에서 조각을 공부하였다. 1956년부터는 파리에서 생활하였고, 1960년부터는 서베를린에서 생활하고 있다. 시집 『두꺼비들의 재능』, 희곡 『대홍수』, 소설 『고양이와 쥐』 등 다방면에 걸친 작가활동을 하고 있는데, 아이러니와 위트가 넘치며, 익살과 직설적인 현실 폭로로 속세와 시대를 비평하는 것이 특징이다. 대표적 장편소설 『양철북』(1959)은 대전 후 불모지였던 독일 문학계에서 주목을 끌었다. 1965년에 뷔히너상을 받았으며, 1999년 그의 대표작 『양철북』으로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나선정벌[편집]

羅禪征伐

조선군(朝鮮軍)이 청(淸)의 요청을 받고 1654년(효종5년) 이래 러시아를 두 차례나 정벌한 일. 17세기에 이르러 러시아는 청나라 영토인 흑룡강 유역을 자주 침범하였다. 그러자 청나라에서는 조선에 원병을 요청하였다. 1654년, 효종은 곧 원군을 구성해 만주 호통강에서 러시아군을 격파하였다. 1658년에도 청의 요청을 받고 출병하여 러시아를 정벌하였다.

노벨상[편집]

-賞 nobel prize

국제적인 문화상의 하나로 세계에서 가장 권위있고 전통있는 상이다. 다이너마이트의 발명자이며 이것을 기업화하여 거부가 된 A.B. 노벨은 1895년 11월 27일 유언장을 남겨, '인류복지에 가장 구체적으로 공헌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도록' 그의 유산 약 3100만 크로네를 스웨덴의 왕립과학 아카데미에 기부하였다. 이에 따라 아카데미에서는 이 유산을 기금으로 하여 노벨재단을 설립하고, 기금에서 나오는 이자를 해마다 상금에 충당하는 방식을 택하여 1901년부터 노벨상을 수여하였다. 노벨상은 물리학, 화학, 생리·의학, 문학 및 평화의 다섯 부문으로 나누어, 해마다 각 선출기관이 결정한 사람에게 상금을 수여한다. 한편 경제학상은 스웨덴 국립은행이 창립 300주년기념사업의 하나로 기부하여 1969년부터 시상하게 되었다. (부록:노벨상 수상자 일람표 참조)

뉴 에이지 음악[편집]

new age music

고전음악이나 포크뮤직을 포함하여 광범위한 음악 장르를 포괄하는 연주음악. 뉴 에이지 음악은 청소년 정서에 해가 되지 않고 청각적으로 부담이 없기 때문에 무공해음악이라고도 한다. '비트가 제거되어 있는 서정성이 깊은 음악' '재즈와 프로그레시브 록에 가까운 동양적 명상음악' 등으로 설명되기도 하나 그 음악적 특성상 정확한 정의를 내리기에는 무리가 있다. 현대 고전음악의 실험정신, 포크의 전통리듬과 악기, 재즈의 자연스러운 리듬과 멜로디, 록의 신디사이저 등 전자악기, 고전음악의 아쿠스틱 악기 등이 결합되어 형성된 경음악의 차원을 넘어 깊은 사랑과 예술적 품격이 담긴 음악이다. 대표적인 연주자는 조지 윈스턴 등이다.

다중음악[편집]

多重音樂

기존의 가치체계를 인정하지 않는 예술·문화 운동.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면서 유럽과 미국에서 나타나기 시작했다. 모든 예술 영역에 걸쳐 규범을 무시하는 시나 회화 등을 창작했지만 그 작품 세계보다는 별난 행위로 오히려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기성 체계와 규범에 대한 철저한 부정은 전후의 불안한 경제적 혼란을 배경으로 세계적인 움직임으로 번져갔다. 새로운 예술에 대한 대안이 없는 이 운동은 종전과 함께 진행되었으나, 타락한 유럽 문명에 대한 반항의식은 초현실주의 운동에 용해되었다.

당백전[편집]

當百錢

조선 말기인 1866년(고종 3년)에 대원군이 부족한 국가 재원을 채우기 위해 주조한 화폐. 경복궁을 중수하는 데는 당시로 가히 천문학적인 경비가 소요되었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 김병학(金炳學) 등의 건의로 주조에 들어가 그해 10월부터 사용하였다. 그러나 당시 화폐가치가 무려 20% 이상 떨어지는 등 부작용이 발생하자 이듬해 주조를 중단했다.

대동법[편집]

大同法

조선시대의 납세제도. 조선 중기 이후 시행되었는데, 각 지방에서 산출되는 특산물을 바치는 것을 공(貢)이라고 했는데, 대동법은 이것을 일률적으로 미곡(米穀)으로 가치를 환산하여 납부시켰다. 1608년(선조 41년)에 이원익(李元翼)의 주장으로 전국적으로 실시를 하였다.

대동여지도[편집]

大東輿地圖

1861년(철종 12년)에 제작된 조선 전도. 김정호가 27년에 걸쳐 전국을 돌아다니며 제작하였다. 22첩으로 나눈 이 지도는 한 단에 120리를 포함시켰다. 축척은 약 16만 6천분의 1에서 16만 8천분의 1정도이며, 산맥·하천·창고·역참 등이 표시되어 있다. 지도의 정밀도는 최근의 한반도 지도와 거의 같을 정도로 정확하며, 우리 생활에 활용하기 쉽도록 제작된 매우 주체성이 강한 제작방식을 택했다. 한 예로 산세 표시의 경우 누구나 실생활에 쉽게 이용할 수 있는 도법(圖法)을 사용하였다.

대승불교[편집]

大乘佛敎

인도에서 일어난 불교의 한 유파. 1세기를 전후해서 일어났다. 석가가 열반 후 100여 년이 지나자 불교계는 보수파와 개혁파로 분열되었다. 개혁파에서 대승불교가 성립하여 중국·한국·일본·티베트·몽고 등으로 전해졌는데, 이를 북방불교라고도 한다. 반면 보수파에서 성립한 유파를 소승불교라고 하는데, 스리랑카·미얀마·타이 등으로 전파되었다.

대승불교는 만인(萬人)의 구제와 사회의 이상화(理想化)를 주장하고 형식보다는 정신에 중점을 둔다. 그러나 소승불교는 오로지 수행과 금욕을 중점적으로 시행하여 개인의 완성을 목표로 한다.

데카당스[편집]

decadence

퇴폐(頹廢)·타락(墮落)의 뜻. 19세기 말엽에 프랑스에서 일어난 문학의 한 경향이며, 지성보다는 관능 쪽에 더 비중을 두어 죄악과 퇴폐적인 것에 매력을 느낀 나머지 암흑과 문란 속에서 아름다움을 얻으려 하였다. 프랑스의 보들레르·랭보·베를렌, 영국의 오스카 와일드 등이 이 운동에 선구적인 역할을 하였다.

도가사상[편집]

道家思想

중국 고대 철학상의 한 유파. '도(道)를 이 세상 마지막의 근원으로 생각하였기 때문에 '도가'라고 한다. 노자(老子)·장자(莊子)를 대표로 하며, 허무·무위, 즉 우주의 절대적 존재를 무(無)라고 하는 사상으로서 전국시대(戰國時代) 말기에 일어나 진(秦)·한(漢) 초기에 성행하였다.

도교[편집]

道敎

중국의 전통 종교. 동한(東漢) 순제(順帝) 때의 장릉(張陵)이 '오두미교(五斗米敎)'를 창시하여 노자(老子)를 교주로 받들면서 형성되었다. 신선사상에 기반을 둔 기본 교의는 물론 '도(道)'인데, 도를 조화의 근원, 신명(神明)의 근본, 전지의 본원(本元)으로 간주한다. 따라서 도를 '신(神)'으로 삼고 노자를 가리켜 '천존(天尊)'이라고 부른다. 동한(東漢) 때에 형성된 이 종교는 서진(西晋)과 동진(東晋), 남북조(南北朝)를 거쳐서 발전을 보았으며, 수·당·송·원나라 때에 이르러 흥성하여, 유교·불교와 더불어 중국 3교(三敎)의 하나가 되었으나 명(明)의 중기 이후에는 쇠퇴되었다.

동편제[편집]

東便制

판소리 유파. 운봉·구례·순창·흥덕 등 주로 전라도 동쪽 지역에서 조선 순조 때의 판소리 명창 송흥록(宋興祿)의 소리제를 이어받았다. 비교적 우조(羽調)를 많이 쓰고 발성이 무거운 편이며, 소리의 꼬리를 짧게 끊고 굵고 웅자한 맛이 있다. 다시 말하면 그 소리 자체가 명확하고 씩씩하며 당당하다고 할 수 있다.

동학사상[편집]

東學思想

전통 주자학과 천주교에 반기를 들고 일어선 진보사상. 최제우(崔濟遇)가 창시한 이 동학의 근본 이론은 '인내천(人乃川)'이다. 그 의미는 '하나님'은 인간을 초월하는 존재가 아니고 바로 인간의 마음 안에 있는 존재이므로 사람이 곧 하느님이라는 것이 중심 사상이다. 최제우는 사람은 누구나가 평등하므로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아래 사람이 없다고 하였다. 따라서 봉건적인 가문에 따른 신분의 차이를 부정하였다. '인내천'의 철학적 의의는 사람의 지위는 끌어올리고 신(神)의 지위는 끌어내림으로써 신의 지배를 받아들이는 사고를 부정한 데 있다. 그럼으로써 유교의 천리(天理)나 천주교의 신학적 관념에서 인간을 벗어나게 할 수 있었다.

동학혁명[편집]

東學革命

전라도에서 전봉준이 중심이 되어 일어난 혁명. 1894년(고종 31년)에 일어난 이 혁명의 발단은 전라도 고부군수 조병갑(趙秉甲)의 탐학과 농민 혹사에 있었다. 전봉준이 수장이 된 이 혁명은 파죽지세로 일어나 삼남(三南) 일대에 퍼졌으나 결국 관군에 의해 진압되고 전봉준도 체포되어 처형되었다. 이 동학혁명을 계기로 청일전쟁(淸日戰爭)을 가져오게 했고, 안으로는 갑오경장(甲午更張)의 원인이 되었다.

랩 뮤직[편집]

rap music

상업음악 장르의 하나로 말과 노래가 뒤섞여 있는 형식의 노래. 랩이란 '내뱉듯 말하다' '비난하다' '수다떨다' 등의 의미를 지닌 속어이다. 랩 뮤직은 60년대 미국 뉴욕 할렘가의 흑인 젊은이들이 사회적 불만과 백인들에 대한 욕설을 노래에 담기 시작한 데서 비롯되었다. 1970년대에 들어 섹스와 마약, 패륜 등을 소재로 흑인들 사이에서 급속히 번져나갔으며, 1980년대 이 형식으로 노래한 흑인가수의 음반이 히트하면서 상업음악 장르의 하나로 확고히 자리잡게 되었다. 우리나라에서도 1992년 그룹 '서태지와 아이들'이 랩 뮤직 돌풍을 일으켰다.

레게[편집]

reggae

중남미 자메이카의 토속음악. 우리나라의 트로트 리듬과 비슷한 2·4박자의 리듬이 강약의 변화를 이루면서 경쾌한 느낌을 주는 것이 특징이다. 원래는 영국의 지배하에 있던 자메이카에서 흑인의 단결을 호소하는 노래운동 차원에서 출발하였다. 1970년대 이후 댄스뮤직으로 인기를 끌었고, 국내에선 김건모가 「핑계」로 인기 정상에 오르면서 레게 붐을 일으켰다.

리비도[편집]

Libido

프로이드가 가정한 성충동 에너지. 생애를 통해서 새로운 대상들에 부착되게 되고 여러 형태의 동기화된 행동을 통해서 표현된다. 리비도가 외부로 발산되어 역동적으로 움직여 일어나는 결과가 자살이며, 반대로 리비도가 외부로 발산되지 못하고 내부로 향하면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나르시시즘(자기애)이 된다.

만적의 난[편집]

萬積-亂 고려시대에 일어난 천민들의 봉기. 1198년 신종(神宗) 원년에 당시 정권을 장악하고 있던 최충헌의 사노(私奴) 만적이 있었다. 만적은 똑같은 사람이면서 종의 신분이 점에 불만을 가지고 같은 신분의 종들을 규합하여 '천하에 왕후(王侯)나 장상(將相)의 높은 신분이 될 씨는 따로 있지 않다'고 설득하였다. 이어 상전들을 죽이고 노비문서를 불사르는 계획을 세웠으나 사전에 비밀이 누설되어 만적은 처형되고 난은 실패로 돌아갔다.

만주사변[편집]

滿洲事變

일본이 만주에서 일으킨 침략 전쟁. 중국에서 만연하고 있던 배일사상의 억제와 국내 경제공황을 타게하기 위해 일으켰다. 1931년, 심양 북쪽에 있던 유조구에서

철로를 폭파함으로써 중일전쟁(中日戰爭)이 일어났다. 만주의 주요 도시를 점령했던 일본군은 만주국 건설을 선언하면서 국제연맹에서 탈퇴하였다. 이 침략 전쟁은 결국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으로 비약하게 되었다.

메세나[편집]

Mecena

고대 로마제국의 정치가로 문예보호운동에 헌신한 마에케나스(Maecenas:BC 67 - AD 8)의 이름에서 유래된 불어로 기업의 예술·문화·과학에 대한 후원과 자원을 의미한다. 미국의 경우 1967년 록펠러재단 주도로 기업예술지원회(BCA)가 창립돼 149개사가 참여하고 있으며, 우리나라에서는 1994년 4월 기업메세나협의회가 창립돼 200여개 주요 기업이 회원사로 참여하고 있다.

메소포타미아 문명[편집]

Mesopstamia 文明

중동 지역의 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강 유역에서 발생한 고대 문명. 기원전 7천년 경에 농경 촌락이 나타나 관개농업이 시작되었으며, 기원전 4천∼3천년 경에는 사제(司祭) 계급과 배·수레 외에 문자를 사용하는 최고의 도시문명이 번영하였다. 그 이후 셈 계(係)가 등장하여 바빌로니아·앗시리아 등의 왕국을 건설하였다.

멜로드라마[편집]

melo drama

18세기에 나타난 대중극. 원래는 극중 사건을 분류하기 위해 음악을 사용하던 것이었다. 후에 멜로드라마의 의미는 과장된 에피소드나 폭력에 대한 미덕의 최종 승리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극과 같이 취급하였고, 음악의 중요성은 차츰 줄어들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멜로드라마를 선정적인 사건을 다룬 감상적인 연극을 경멸조로 부를 때 자주 이용되고 있다.

명예혁명[편집]

glorious revolution

1688년부터 1년 동안에 걸쳐 영국에서 일어난 시민혁명. 유혈 사태 없이 전제정치를 해오던 스튜어트 왕국을 무너뜨렸기 때문에 '명예혁명'의 칭호를 얻게 되었다. 청교도 혁명과 함께 영국의 2대 혁명으로 꼽힌다. 청교도 혁명을 이룩했던 크롬웰이 죽고도 왕이 여전하게 전제정치를 하자 의회는 1679년에 '인신보호율을 제정하여 국민들의 인권을 보호하고, 제임스 2세 사퇴를 결의했으나 국왕이 프랑스로 도망치는 바람에 무혈혁명이 성공하였고, 윌리엄 3세가 옹립되었다. 윌리엄 3세는 권리장전을 선포함으로써 영국의 의회 정치가 확립되었고, 인권도 확실하게 보장되었다.

미국의 독립운동[편집]

美國-獨立運動

1783년, 북미 13개 주가 영국의 식민지 지배에서 독립하기까지 벌인 투쟁. 영국의 중상주의 정책에 불만이 고조되었던 식민지가 7년 전쟁 이후 본국에서는 사탕 조례와 인지 조례를 연달아 발표하였다. 그러나 이에 반발한 식민지 주민들은 '대표없는 입법없다'고 주장하여 강력히 반대하였으므로 곧 철회하였다. 1773년에는 차조례(茶條例)를 발표하여 식민지에 차를 전매시키자 보스턴 차(茶)사건을 일으켜 무거운 차세(茶稅)를 거부하였다. 결국 1775년에는 영국과 식민지간에 무력 충돌이 일어났으며, 다음해 6월에는 독립선언이 발표되었으나 독립군은 고전하였다. 그러나 프랑스의 지원에 힘입어 형세를 유리하게 이끌 수 있었으며, 1783년에서 독립이 승인되었으며, 1787년에 합중국 헌법을 제정하게 되었다. 따라서 3권분립에 의한 양원제를 주축으로 하는 민주적 공화제의 새 연방국가 탄생하였다.

발라드[편집]

ballade

자유로운 형식의 짧은 서사시(敍事詩)를 가리키는 말이었으나 변하여 이것을 바탕으로 작곡된 기악곡을 말한다. 18세기 후반에 등장한 발라드는 독일 낭만주의의 전형적인 가곡으로 여러 차례에 걸쳐 단순한 선율이 반복되면서 긴 극적 이야기풍의 줄거리를 노래하였다. 슈만은 이것을 합창곡에 사용하였고, 쇼팽도 기악곡 창작에 이 형식을 사용하였다.

방어기제[편집]

防禦機制

스트레스 및 불안의 위협에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실제적인 욕망을 무의식적으로 속이면서 대체하는 양식. 무엇이 위협적인지 분명치 않은 상황이나 자아개념을 위협하는 심미적 갈등이 있을 때 일어난다. 기만형, 대체형, 도피평의 3가지 유형이 있다.

백년전쟁[편집]

百年戰爭

1387년부터 1453년에 걸친 100여 년 동안 영국과 프랑스 사이에서 왕위 계승문제와 영토를 둘러싸고

치른 전쟁. 영국이 우세한 전쟁이었으나 1429년에 잔다르크의 활약으로 프랑스는 칼레를 제외한 영국 영토 전부를 회복하였다. 오랫동안 계속된 전쟁은 두 나라의 봉건제후는 물론 기사의 전사자가 많아 몰락한 반면, 왕권이 강화되어 중앙집권화가 촉진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벽화고분[편집]

壁畵古墳

묘실(墓室)의 벽면에 그림이 그려진 고분. 귀족이나 왕족의 커다란 묘에 초상이나 생전의 생활, 사후 세계를 그린 것이 많다. 고분벽화는 당시 사회상과 사상 등이 표현된 것이 많으므로 역사 기록으로도 매우 귀중한 역사 자료이다. 고분벽화는 동굴벽화와 더불어 가장 오래된 회화 형태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낙랑의 219호분, 고구려의 안악 3호분, 각저총, 무용총 등에 초상을 비롯 각종 생활 모습, 4신(四神), 일월성신 등을 그리고 있다. 백제시대의 무덤 가운데는 송산리 6호분, 능산리 2호분 등이 있다.

병인양요[편집]

丙寅洋擾

프랑스 함대가 1866년(고종 3년)에 서울 근처까지 쳐들어온 사건. 당시 집권자인 흥선대원군이 프랑스 인 신부 베르뇌 등 9명을 살해하자 그 중 한 선교사가 청나라로 도망쳐 프랑스 인도차이나 함대 사령관에게 보고하여 두 차례에 걸쳐 쳐들어왔다. 프랑스 함대는 한때 강화도를 점령했으나 결국 아군에게 패배하여 강화성에 불을 지르고 퇴각하였다.

병자호란[편집]

丙子胡亂

조선 인조 14년(1637) 12월에 청(靑)이 침입한 난리. 청이 조선에 대해 군신(君臣)의 조약을 간청하였다. 그러나 조선의 척화신(斥和臣)이 반대하여 청태종(淸太宗)이 직접 20만 대군으로 침략하였다. 조선 조정은 남한산성(南漢山城)으로 피신했다가 다음해 1월에 삼전도에서 항복하였다. 이 결과 척화신 김상헌 등은 잡혀가 사형당하고 봉림대군은 볼모로 잡혀가는 등 수난을 겪었다.

보부상[편집]

褓負商

농업생산자, 소규모의 가내수공업자, 시장 상인 등과 소비자 사이에 물물교환을 해주던 행상. 토기 등 일용 잡화를 지고 다니는 부상(負商)과 장식품 등 세공품을 팔러 다니는 보상(褓商)을 아울러 말한다. 부상은 삼국시대 이후에도 있었던 듯하나 보부상은 잉여생산물이 많아지는 조선 초기 이후 매우 활발해졌다. 1866년(고종 3년)에는 조합과 유사한 조직체인 보부청을 설치하여 전국의 보부상 조직을 통합하게 되었다. 한때 정치적으로 이용되기도 했으나 교통수단의 발달과 더불어 상설시장이 늘어나면서 쇠퇴하였다.

북경 원인[편집]

北京原人

화석 인류의 하나. 지금으로부터 60만 년∼15만 년 전에 살고 있었던 원인(原人)으로 베이징(北京)의 서남방 약 50㎞지점에 있는 주구점(周口店)의 석회암 동굴에서 1927년에 발견되었다. 자바의 직립원인과 함께 홍적세(洪績世) 중기의 화석 인류로 알려져 있으며, 현생 인류와 유인원(類人猿)과의 중간적인 진화 단계의 원인이다. 그러나 이미 그들은 석기와 불을 사용하고 초기의 인류(人類)라고 생각되지 않을 정도의 문화를 가지고 있었다.

블랙 뮤직[편집]

black music

재즈·블루스·솔 등 흑인들이 주로 불렀던 노래들을 아우르는 말. "백인 가수들은 흑인 가수들만큼 영혼에서 우러나오는 깊이 있는 소리를 표현하지 못한다"라는 말이 있다. 그것은 피압박 민족의 표현물에는 영혼의 숨결이 스며 있다는 것을 뜻한다.

블록버스터[편집]

Blockbuster

90분에서 2시간 정도의 단일 와이드 프로그램을 지칭하는 말. 상대방송국의 짧은 프로그램보다 조금 일찍 시작해 시청자를 장악하는 전술을 뜻한다. 계획적으로 만들어진 거대한 베스트셀러를 뜻한다. '대형고성능 폭탄'이라는 뜻으로 막대한 자금을 투입, 붐을 일으키는 수법이다. 1970년대부터 미국에서 성행하게 되었는데 「죠스」, 「ET」, 「쉬리」 등이 대표적인 예다.

사군자[편집]

四君子

매화·난초·국화·대나무나 이를 소재로 하여 그린 그림. 수묵화가 발달하기 이전에는 대상을 윤곽선으로 그리고 속에 색을 칠하는 기법으로 그렸으나 10세기를 전후해서 주로 먹으로만 그리는 기법으로 정착되었다. 아마추어 문인 화가들에 의해 문인적인 교양의 하나로 추구되었다.

사기[편집]

史記

사마천(司馬遷)이 전설적인 인물인 황제(黃帝)로부터 전한(前漢) 무제(武帝)까지의 왕조(王朝)들의 사적을 기록한 책. 약 2천 년의 역사를 기전체(紀傳體)로 엮었다. 중국 최초의 정사(正史)로 불리는 이 『사기』는 객관적이고 종합적인 역사 서술로 후세 역사서의 전범이 되었다.

사대교린[편집]

事大交隣

조선시대의 주요 외교노선. 고려 이후의 역대 왕조가 명(明)·청(淸) 황제의 책봉을 받고 그 연호를 사용하며, 국가의 주요 대사(大事)까지도 보고하여 그의 의견을 듣는 것을 말하는데 중국을 종주국으로 섬겼다. 그 외에 여진족이나 일본인의 일부 제후들에게 명예 관직을 주고, 형식적인 종속 관계를 주던 회유하던 정책을 말한다.

사물놀이[편집]

四物-

북·장구·징·꽹과리 등 네 가지 전통 타악기로 연주되는 음악, 또는 그 음악에 의한 놀이다. 주로 연주되는 곡으로는 호남우도농악을 비롯하여 짝두름·비나리·설장고놀이·판굿·길군악칠채 등이 있다. 이 음악과 놀이는 1978년 김덕수 등이 '사물놀이'라는 이름으로 결성한 농악 연주단체에 의하여 처음으로 소개되었는데, 그 후 점차 보급되어 지금은 국내는 물론 국제적으로도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사물놀이는 농악 특유의 생동감 넘치는 다양한 리듬과 호소력이 강한 타악기들이 조화를 이뤄 긴장과 이완을 반복하는 악곡 구성으로 관객들에게 신명을 불러 일으킨다.

4C문화[편집]

-文化

신세대 네티즌(Netizen)의 문화를 대변하는 컴퓨터(Computer), 비판(Criticism), 변화(Change), 사이버 미팅(Cyber-Metting)을 지칭하는 말. 신세대 네트즌들은 컴퓨터를 생활 필수품으로 느낄 만큼 컴퓨터 문화에 익숙해 있고 컴퓨터 통신과 인터넷을 통해 형성된 풍부한 정보와 지식으로 자신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비판 문화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주의[편집]

寫實主義

사물을 그대로 표현하려는 예술상의 한 주의. 프랑스에서 19세기 후반부터 일어났는데, 낭만주의에 대한 반동에서 비롯되었다. 낭만주의가 정서적이고, 공상적이며, 주관적이라면 사실주의는 객관적이며, 현실적이고, 이지적이다. 스탕달, 플로베르, 발자크가 대표적인 작가이다. 이 사실주의에 과학적인 방법을 도입한 것이 바로 자연주의이다.

사육신[편집]

死六臣 조선 단종 때의 여섯 충신. 세조(世祖)가 어린 조카 단종(端宗)을 왕위에서 내쫓자 이에 분개하여 단종을 다시 왕위에 앉히려고 하였다. 그러나 사전에 기밀이 누설되어 참혹한 고문 끝에 끝내 결의를 굽히지 않고 참형당한 성삼문(成三問)·박팽년(朴彭年)·하위지(河緯地)·유성원(柳誠源)·이개(李塏) 등을 말한다.

삼국사기[편집]

三國史記

김부식이 편찬한 우리나라 최고의 역사서. 1145년, 고려 인종(仁宗) 23년에 왕명을 받은 김부식이 신라·백제·고구려의 개국부터 멸망까지의 역사를 기전체(紀傳體)로 기록한 정사(正史). 중국 사마천이 엮은 『사기』를 본뜬 체제로 고구려·백제·신라의 본기 외에 연표(年表)·지(志)·열전(列傳)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책은 지나치게 사대주의적 입장에서 서술되었고, 신라를 가장 부각시키고 있다는 점 등이 비판의 대상이 되어 왔다.

삼국유사[편집]

三國遺事

고려 말기인 25대 충렬왕(忠烈王) 때에 보각국사 일연(一然)이 고구려·백제·신라의 유사(遺事)를 모아 지은 역사서. 『삼국사기』 가 정사라고 한다면 『삼국유사』 는 야사(野史)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에는 『삼국사기』 에서 제외된 옛 기록들을 원형대로 수록했다는 점에서 높게 평가받고 있다. 단군 신화를 비롯한 고조선 부분의 서술과 향가 14수가 수록된 귀중한 문헌이다. 5권 3책으로 되어 있다.

삼별초[편집]

三別抄

고려 중기 최우(崔瑀)의 무신정권기(武臣政權期)의 특수부대. 치안유지 차원에서 최우가 설치한 야별군(野別軍)에서 비롯되었다. 별초(別抄)란 '용사들로 조직된 선발군'이라는 뜻이다. 야별초의 조직 규모가 커지자 좌별초와 우별초로 나누고, 몽고군 포로였다가 탈출에 성공한 병사들로 구성된 신의군(神義軍)을 아울러 삼별초라고 하였다. 무신정권의 전위군으로서 사병(私兵)의 성격이 강했다. 그러나 몽고에 대한 항쟁에서 유격전으로 적에게 피해를 주었으며, 고려가 몽고에 굴복하자 개경으로의 환도를 거부하였다. 배중손을 비롯한 지유·노영희 등은 1270년 6월, 강화도에서 승화후(承化侯) 온(溫)을 내세워 조정과 몽고를 상대로 투쟁하였다. 이후 관군과 몽고군에게 밀려 진도에 이어 제주도로 근거지를 옮겼으나 1273년(원종 14년)에 패하였다.

3·1운동[편집]

三一運動

일제의 무단통치에 반발하여 1919년에 일어난 전민족적 항일운동. 식민지 한국인들은 일제의 지배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3월 1일, 고종의 장례일에 전민족적 봉기를 일으켰다. 손병희 등 민족대표 33인은 시위 확산을 우려하여 선언서 발표 장소를 태화관으로 옮기는 등 다소 소극적인 자세를 보였으나 탑골공원에 운집했던 군중 4천, 5천 명의 학생들을 중심으로 만세운동이 확산되어 수백 명이 목숨을 잃고 만여 명이 투옥되는 등의 사태로 발전하였다. 3·1운동 이후 민족주의를 자처했던 인사들은 대부분이 친일분자로 변질되었거나 개량주의 운동을 벌였다. 비록 3·1운동은 실패하였으나 민족운동의 발판을 마련했으며, 보다 적극적인 정치·사회·독립운동으로 성장하는 계기가 되었다.

삼포왜란[편집]

三浦倭亂

동래의 부산포, 웅천의 제포, 울산의 염포 등 삼포에서 살던 왜인들이 일으킨 폭동. 1426년, 삼포를 개항한 조선 조정은 왜인들의 왕래를 허락했으나 왜인들에 의한 피해가 적지 않았다. 그러자 세종은 왜인들의 출입을 제한하는 계해조약을 체결하였다. 그러나 산품에 거주하던 왜인들은 조선 조정의 명을 어기고 조선 관리들과 자주 충돌을 일으켰다. 그러다가 중정 때에 와서 이들에 대한 통제가 더욱 강화되었다. 그러자 불만을 품은 왜인들이 1510년에 쓰시마 왜인 5천여 명을 끌어들여 난을 일으켰다. 그러자 조정에서는 난을 평정하고 삼포에 살던 왜인들을 모두 쫓아내면서 외교관계를 단절했다. 그러자 경제적인 어려움에 빠진 쓰시마 도주의 간청으로 1512년에 임신약조를 맺고 제포를 개방하고 교역과 선박 왕래를 제한하였다.

삼현육각[편집]

三絃六角

국악에서 악기 편성법의 하나. 일명 육잡이라고 한다. 주로 무용 반주를 위한 편성으로써 향피리2, 해금1, 장고1, 북1의 6악기로 구성된다. 흔히 '풍악을 잡힌다'라는 말을 하면 곧 이것을 말하는 것으로 가장 일반적인 편성법이다. 무용 반주 외에도 관아와 사가(私家)의 연향, 지체 높은 사람의 행차시, 굿과 민속극의 반주 등에 두루 이용되었다.

상쇠[편집]

꽹과리 주자로, 농악대의 우두머리. 두레패·걸립패·남사당패 등의 모든 연희는 상쇠의 쇳가락에 따라 움직인다. 남사당패의 경우 상쇠를 상공운님이라 부른다.

상업혁명[편집]

商業革命

15세기말, 신대륙과 신항로의 발견으로 이루어진 유럽 경제의 변모. 지중해에서 대서양으로 상업통로가 옮겨지자 북이탈리아의 도시와 상인은 급속도로 쇠퇴해지고 대신 포르투갈과 에스파냐로 번영의 중심지가 이동되었다. 더욱이 에스파냐가 식민지로 신대륙을 경영한 결과 유럽의 물가를 3분의 1 이하로 하락시키는 가격혁명을 일으키게 할 만큼 풍부한 양의 은이 유입되었다. 이와 때를 같이 하여 새로운 세계 시장과 상업이 개시되었는데, 유럽 자본주의 형성의 전제가 되었다.

상징주의[편집]

象徵主義

19세기 후반에 고답파(高踏派)의 시에 대립하여 프랑스의 시단에서 일어나 세계적으로 커다란 영향을 미친 문학의 경향. 사실·감정·사상 등을 직접적으로 표현하지 않고 예민한 감각을 통하여 신비의 세계를 탐색하여 상징적, 주관적으로 표현하려는 주의이다. 보들레르·말라르메·랭보·베를렌·예이츠·게오르그·릴케·호프만슈탈·마테르링크·입센 등을 대표로 한다.

상해임시정부[편집]

上海臨時政府

1919년, 3·1운동이 일어난 후, 중국 상해에서 조직된 한국의 임시정부. 일제에 조직적으로 저항할 세력과 조직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낀 애국지사들은 흩어져 있던 여러 독립운동 단체들을 모아 통합하여 임시정부를 외형상으로는 우리 민족을 대표하는 기관의 성격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 1923년에 있던 국민대표회의 이후에 항일투쟁 노선에 대한 견해 차이로 뿔뿔이 흩어져 한낱 독립운동 단체로 전락하였다. 이후 이승만 대통령을 탄핵하고 집단지도체제를 수립하는 등 많은 노력을 기울였으나 흩어진 민족주의자들의 결속에는 실패하였다. 1930년대에는 임시정부가 난징·창사·광둥·충칭 등지로 옮겨 다니면서 독립운동을 전개했으나 이렇다할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다. 1940년대에는 건국강령을 발표하고 광복군을 양성하는 등 광복에 대한 주동적인 대응을 하였다. 그러나 갑자기 맞은 조국 광복으로 독립된 한반도에 개인자격으로 귀국하고 말았다. 따라서 임시정부의 내각은 물론 정책도 계승되지 못하고 해체되었다.

샤머니즘[편집]

shamanism

무당을 중심으로 한 신앙 체계. 춤·노래·주문 등을 반복하고 엑스터시 같은 이상심리 상태로 몰입하여 초자연적 신령계에서 나오는 정보를 전달하거나 길흉을 점치고, 악령을 제거하며 병을 고친다. 우리나라에서는 샤머니즘이 백성들의 정신 생활에 적지 않은 영향을 가져다 주었다.

서사극[편집]

敍事劇

독일 극작가 브레히트가 주창한 연극 이론. 관객에게 카타르시스를 경험하게 하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연극론에 대한 대립 개념으로 생겨났다. 브레히트는 사회적 인식을 일깨우는 연극의 교육적, 사회비판적 기능을 우선했다. 따라서 극작품과 연출에서 관객의 감정이입을 막기 위해 여러 시도가 행해지는데, 배우들이 자신의 배역에서 이탈하기도 하며, 스크린 등을 이용해 상황을 객관적으로 설명하기도 한다. 이상의 모든 것은 관객의 무대와 동일시하지 않도록 하여 스스로 비판적 사고를 갖도록 하기 위해 고안된 것이다.

서편제[편집]

西便制

판소리 유파의 하나. 전라도 서쪽 지역인 해남·강진·나주·보성·광주 지역에서 주로 전승되어 오는 소리이기 때문에 붙여졌다. 소리의 특징은 부드러우면서도 애절하고 구성진 점이다. 비교적 계면조를 많이 쓰고, 가벼운 발성, 소리의 꼬리를 길게 늘이고 정교한 새김새로 짜여져 있다. 따라서 활달하고 우렁찬 동편제와는 대조를 이룬다.

석가모니[편집]

釋迦牟尼

불교의 개조. 불타(佛陀)·세존(世尊)·여래(如來)라고도 한다. 출신 부족인 샤카(Sakya)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원래 이름은 싯다르타이며, 성은 고타마이다. 샤카족의 왕자였는데 결혼하여 아들이 하나 있었으나 인생고(人生苦)를 당하여 29세 되던 해에 출가하였다. 그 뒤 6년에 걸쳐 수행생활을 하였으며, 35세 때에 부다가야의 보리수 아래에서 깨달음을 얻었다. 그후 여러 곳을 다니며 제자 혹은 지역 사람들에게 깨달음을 설법하였고, 80세에 고향 근처 숲에서 열반하였다.

[편집]

禪 '깊이 생각한다'는 뜻을 가진 범어(梵語)의 디아나(dhyana)에서 유래된 말이다. 이 사상은 인도의 바라문교나 불교·자이나교에서 종전(宗典)으로 삼았는데, 좌선하여 자기의 본성을 꿰뚫어볼 때 마음밖에 부처가 없고, 자기 마음이 곧 부처임을 안다는 것이다. 석가모니도 해탈의 경지에 도달하는 수도의 방법으로 선(禪)을 이용하였다.

선댄스영화제[편집]

sundance映畵祭

세계에서 가장 권위있는 독립영화제. 1984년 배우 로버트 레드포드가 상업주의에 반발, 독립영화 제작에 활기를 불어넣기 위해 설립해 매년 개최해 오고 있다. '바톤핑크'의 코엔 형제, '섹스 거짓말 그리고 비디오 테이프'의 스티븐 소더버그, '펄프픽션'의 쿠엔틴 타란티노 등이 이 영화제를 통해 데뷔했다.

성리학[편집]

性理學

중국 송(宋)대에 일어난 유학의 한 갈래. 주자(朱子)가 집대성하였기 때문에 주자학이라고도 하는데, 공자의 학설에 불교와 도교의 사상을 섞어 인성의 원리·인심·천리(天理)와의 관계를 논한 학문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고려시대에 안향(安向)이 『주자전서』를 들여와 연구한 데서 비롯되었으며, 조선시대에 이르러 이언적·이황·이이·기대승·김장생 등 뛰어난 학자들이 배출되면서, 인간의 이성을 강조하여 정신적인 면과 도덕적인 면을 중시하는 주리설과 인간의 감성을 중시하고 현실 문제에 관심을 가지는 주기설 등이 나오게 되었다. 주리설은 영남지방에서 발전하여 영남학파라고 하는데, 이언적·이황·유성룡·김성일로 이어졌으며, 주기설은 기호지방에서 발전하여 기호학파라고 하는데 서경덕·기대승·성혼·이이에 이르러 완성되었고, 김장생 등에게 이어졌다. 성리학이 조선시대의 전반에 끼친 영향은 매우 큰데, 왕권을 강화하는 데 큰 역할을 했으나 지나치게 명분과 형식을 중요시한 나머지 인간성의 자유로운 발달을 막는 폐해와 상공업이나 예술을 천대함으로써 조선시대의 산업 발달을 막는 결과를 낳았다. 여기에 반발하고 반성하면서 일어난 것이 조선 후기에 꽃 피운 실학사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선이 망할 때까지 조선시대의 지배적인 이념으로서의 자리를 차지한 것이 바로 성리학임은 분명하다.

성서[편집]

聖書

크리스트교의 경전. 신약성서와 구약성서로 나누어져 있는데, '약(約)'이란 신의 구원에 대한 '계약'이다. 구약성서는 원래 유대교의 경전으로 초대 교회의 경전으로 사용되었다. 헤브라이어로 쓰여졌고 그리스어로 번역되었다. 『창세기』 이하 39권으로 되어 있는데, 율법서와 예언서·시편으로 구분된다. 기원전 10세기경 문서에서 약 1000년에 걸친 이스라엘 민족의 종교 문학의 집대성이다. 신약성서는 그리스도의 복음, 사도들의 행적, 편지, 묵시 문학 등 27권으로 되어 있으며, 사용 문자는 그리스어이다. 거의 50∼140년의 짧은 기간에 쓰여졌다. 14세기에 위클리프가 영어로 번역하였으며, 16세기 루터가 독일어로 번역한 이래 세계 각국어로 번역되었다.

세도정치[편집]

勢道政治

조선시대 왕실의 외척(外戚) 등 친척이나 신임이 두터운 신하가 정권을 장악하고 국정을 좌지우지하던 일. 그 시초는 정조 때의 홍국영으로부터이다. 그러나 이때는 정조가 폐단을 빨리 알아차리고 홍국영을 권력의 자리에서 내쫓음으로써 단기간에 끝났다. 그 이후 순조가 12세에 왕위에 오르자 정조의 장인인 안동 김씨 김조순이 정권을 잡아 중앙의 요직을 그 일족들이 차지하게 되었다. 그 뒤 풍양 조씨의 세도정치가 있었다. 이러한 세도정치는 국정의 문란을 가져와 전국에서 민란이 일어났다. 흥선 대원군이 권력을 잡아 세도정치를 뿌리뽑는가 했으나 고종비 민씨가 등장하면서 민씨에 의한 세도정치가 일제에 의해 국권이 침탈될 때까지 계속되었다.

세포이의 항쟁[편집]

Sepoy 抗爭

인도인이 영국의 식민지 통치에 반발하여 일으킨 항쟁. 세포이란 영국 동인도회사의 인도인 용병(傭兵)을 말한다. 세포이 항쟁은 벵갈의 세포이가 선봉이 되었다. 영국은 19세기 중엽에 인도 정복을 거의 마무리짓고 동인도회사를 통해 인도를 상품 시장 및 원료 공급지로 이용하였다. 따라서 인도의 수공업은 쇠퇴하고 경제도 날로 악화되었다. 이에 따라 인도인의 불만이 가중되어 1857년에 세포이의 항쟁으로 폭발되었다. 이 항쟁은 인도 전역으로 확대되어 무굴 황제를 받들고 2년 동안 투쟁하였다. 그러나 근대화된 영국군에 의해 1859년 진압되었고 무굴 제국도 완전히 멸망하였다. 이후 인도 통치는 동인도회사에서 영국정부로 넘어갔다.

셀주크 투르크[편집]

Seljuk Turke

중앙 아시아의 터키계 셀주크족이 세운 이슬람교중 니파의 왕조. 셀주크족은 원래 중앙 아시아의 유목민이었다. 1037년, 셀주크의 손자 쿠그릴 베그가 동부 이란 지방에 셀주크 투르크 왕조를 세웠으며, 1044년경에는 이란 전지역을 차지하였고, 1055년에는 바그다드를 점령하여 아바스 왕조의 칼리프로부터 술탄이란 칭호를 얻었다. 11세기 말경에 전성기를 구가했으며 이슬람 문화를 크게 발전시켰다. 전성기의 영토는 동쪽으로 중앙 아시아, 서쪽으로는 지중해, 남쪽으로는 아라비아 반도에까지 이르렀다. 십자군 전쟁 이후 쇠퇴기에 접어들어 12세기에 분열되었다가 1307년에 오스만 투르크에게 멸망되었다.

송조[편집]

宋朝

당(唐) 멸망 이후, 원(元)이 건국하기까지의 중국 통일 왕조. 조광윤(趙匡胤)이 후주(後周)의 선양(禪讓)을 받아 송조(宋朝)를 세우고 군주독재의 중앙집권체제를 확립했으나, 문치주의(文治主義)를 택했다. 이 문치주의는 국방력 약화를 가져와 200여 년간 수없는 외적의 침입을 받는 수모의 역사가 계속되었다. 따라서 국가 재정도 어려워지는 결과도 가져왔다. 이의 타개책으로 왕안석의 신법을 채택하여 부국강병을 꾀했으나 보수파인 사마광 등의 반대에 부닥쳐 시행도 못하고 오히려 당쟁만 일으키고 말았다. 1127년에 금(金)의 침입으로 휘종·흠종이 포로가 되었다. 휘종의 동생 고종이 도읍을 강남의 임안(항저우)로 옮겼는데 이때부터 남송(南宋)이라고 하고, 그 이전을 북송(北宋)이라고 한다. 남송도 정치가 안정되지 못하다가 1279년 몽고 침입으로 멸망하고 말았다.

쉬르레알리슴[편집]

Surrealisme

초현실주의. 다다이슴에 이어 1차 세계대전 후에 태동한 전위 예술운동. 전통 예술 형식과 사회 관념을 부정하는 다다이슴의 반역정신을 이어받는 한편,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에서 영향을 받았다. 꿈과 잠재의식 속에서 기존의 관념에 오염되지 않고 순수한 이미지를 드러내고 형상화하고자 했다.

스크린쿼터제[편집]

Screen Quarter System

한국영화 의무 상영일수. 영화진흥법에 의하면 스크린쿼터는 연간 146일인테, 문화관광부장관의 재량에 따라 40일을 줄일 수 있으므로 실제 최저 상영일수는 100일이 된다. 미국으로부터 축소·폐지 압력을 받고 있을 뿐만 아니라 돈벌이가 비교적 보장되는 외국영화를 상영하려는 극장측과 스크린쿼터 준수를 촉구하는 한국영화 제작사간의 신경전은 끊이지 않고 있다.

시네라마[편집]

cinerama

시네마(cinema)와 파노라마(panorama)의 합성어. 3개의 렌즈와 필름을 사용하여 동시 촬영하여 3대의 영사기로 상영한다. 이때 스크린은 보통 영화·스크린에 비해 6배나 큰 만곡(彎曲) 스크린이다. 음향은 마그네틱 테이프 6개의 트랙에서 여섯 종류의 음향을 내는 입체 음향이다.

씻김굿[편집]

전라남도 지방에서 사자의례(死者儀禮)로 행해지는 일종의 민간 신앙의식. 경기도 지방의 '자리걷기', '기노귀국', '천금새남', 서울 지방의 '길가름' 등과 비슷한 성격의 의식이다. 돗자리로 죽은 사람의 옷을 말아 몸체를 세우고, 그 위에 사자(死者)의 넋을 담은 식기(食器)를 얹어죽은 사람의 머리를 상징한다. 다시 그 위에 솥뚜경을 얹어 모자로 삼고 무녀가 무가(巫歌)를 부르며 빗자루로 신체를 씻긴다.

아방가르드[편집]

avant garde

전위(前衛)가 원래 뜻이며, 1차 세계대전 때부터 유럽에서 일어난 예술운동. 어떤 유파(流波)나 기성의 관련에서 벗어나 새로운 것을 이룩하려 했던 입체파 표현주의, 다다이슴, 초현실주의 등의 예술 행위를 통틀어서 이르는 말. 일반적 특성은 모호성·불확실의 역설과 주체의 붕괴, 비인간화를 들 수 있다. 이런 특징은 근대 산업화 과정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아르 누보[편집]

art nouveau

새로운 미술. 유럽 전역에 19세기말부터 20세기초까지 유행한 장식적 양식. 서울의 합리적인 문화에 대한 반동으로 곡선 위주의 그윽한 표현을 추진했다. 공예를 필수로 해서 그래픽 디자인, 건축, 회화 등 광범위하게 미쳤다. 독일에서는 '젊은 양식'이라는 의미의 유겐트슈틸(Jugendstil)이라고 부른다.

아스카 문화[편집]

飛鳥文化

일본 스이코 천황의 치세를 중심으로 하는 문화. 6세기 후반부터 7세기초 전반까지에 해당한다. 그때까지의 고분문화를 바탕으로 중국의 남북조문화와 백제·고구려 문화를 수용하여 이룩한 일본 최초의 불교문화이다. 아스카는 일본 왕궁의 대부분이 있었던 나라(奈良) 지방의 옛 이름이다.

아잔타 석굴[편집]

Ajanta石窟

인도 데칸 고원의 북부 아잔타 구릉 계곡의 벼랑에 있는 석굴. 기원전후에서 7세기에 걸쳐 이루어진 29개의 석굴이다. 굽타 왕조 후기의 것이 중심을 이루고 많은 벽화와 불상을 남긴 인도 예술의 보고이다. 불상 조각 형식은 간다라 양식을 인도식으로 절충했다. 벽화는 음영법(陰影法)을 사용한 것이 특징이다.

아쿠타가와상[편집]

茶川賞

일본 소설가. 아쿠타가와 류노스케(茶川龍之介)의 문학과 이름을 기리기 위해 제정한 일본의 문학상. 신인 작가를 대상으로 연 2회에 걸쳐 시상을 한다. 1935년부터 실시하였다. 일본에서 신인 작가의 등용문으로서 최고의 권위 있는 상으로 평가받고 있다.

아편전쟁[편집]

阿片戰爭

아편 문제로 청(淸)과 영국 사이에서 1840년부터 1842년까지 벌인 전쟁. 당시 밀수입에 의해 흡연의 폐해와 은(銀)의 유출이 심각한 문제가 되었다.

임칙서(林則徐)가 광저우(廣州)에서 아편을 몰수하여 폐기했다. 이 때문에 영국은 무역을 보호한다는 구실로 해군을 파견하였고, 이것을 계기로 전쟁이 일어났다.

1842년 전쟁에 진 청나라는 영국에 굴복하고 영국의 요구에 의해 난징(南京)조약을 맺었다. 이로써 중국은 서양에 처음으로 문호를 열었으며, 유럽 여러 나라의 식민지로 바뀌기 시작했다.

앙가주망[편집]

engagement

참여(參與)라는 의미의 프랑스 실존주의학파의 용어. 원래의 말뜻은 담보, 도박. 일반적으로 예술지상주의 문학에 대하여 사회·정치적 입장을 분명히 내세운 문학. 사르트르에 의하면 작가는 상황을 폭로함으로써 세계의 변혁을 시도하고, 독자는 폭로된 대상 앞에서 책임을 져야 하며, 따라서 작가나 독자가 필연적으로 사회적 입장을 취하게 된다.

어시책[편집]

御試策

한-중 학계 간에 금속활자 종주국 논쟁의 열쇠를 쥐고 있는 것으로 평가돼온 『어시책(御試策)』 원본이 일본 미쓰비시 재벌 도서관인 정가당(靜嘉堂)문고에 소장돼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어시책은 원나라 때 과거시험 모범답안 등을 모은 참고서인 유편역거 삼장문선(약칭 삼장문선·10부 72권)의 제 10부에 수록된 일부이며, 1341년 6월 중국 강서성에서 유인초(劉仁初) 등에 의해 편찬된 목판본인 것으로 처음 밝혀졌다. 이에 따라 한국의 『직지심경』(원명 불조직지심체요절·1377)보다 앞선 금속활자본이며, 따라서 중국이 세계 금속활자의 종주국이라는 중국 학계의 끈질긴 주장은 근거를 잃게 됐다

언더그라운드[편집]

underground

음악이 창작되고 연주되는 공간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말. 대중음악의 연주 장소로 거리·클럽·방송국 스튜디오·소극장·음악당·체육관·경기장 등을 든다면 이들 중 거리나 클럽을 언더그라운드라고 부른다. 국내 대중음악에서 '언더'의 개념은 시대에 따라 다르다.

70년대에는 김민기를 비롯한 철학적이고 도전적인 가사를 선보인 일부 포크 가수들이 운동권으로 연결되어 저항의 분위기를 풍겼다.

80년대에는 트로트와 발라드가 유행하였으나, 중반에 들어서면서 시나위·들국화 등 장발의 록 그룹들이 등장하였다. 이들은 방송 대신 콘서트와 음반만으로도 음악활동이 가능하다는 것과 언더에서 오버(제도권)로의 진입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90년대 중반부터는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언더가 등장했는데, 주로 신촌 대학가를 중심으로 펑크를 연주하는 10대 및 대학생 밴드가 그들이다. 이들은 펑크·록의 저항정신을 이어받으면서도 일부 밴드는 후기산업사회의 개인적·소비적 정서를 대변하는 데 그치고 있다.

언플러그드 음악[편집]

unplugged music

전자 기타와 전자 오르간 등 전기의 힘을 빌리는 신시사이저 대신 통기타와 피아노를 사용하여 연주하는 음악. 최근 들어 미국 등지에서 복고풍의 부활과 함께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원래 '언플러그드'는 전기를 사용하지 않은 기타 음악을 연주한 미국의 음악 방송프로 이름이다.

에게 문명[편집]

Aegean civilization

기원전 3000년부터 700∼800년간에 걸쳐 에게해 지역에서 일어난 청동기 문명의 총칭. 인류 사상 최초의 해양 문명이며, 유럽에서 일어난 최초의 문명이다. 오리엔트 문명에서 영향을 받았으며, 그리스 문명의 바탕이 되었다. 이 문명은 에게해의 여러 섬과 그리스·소아시아 연안에서 발달한 것으로 크레타 문명과 미케네 문명으로 나눈다. 기원전 1200년경 도리스 인과 해상 여러 민족의 잦은 침입으로 쇠퇴 종말을 고하였다.

엑스 세대[편집]

X世代

90년대의 신세대를 규정하는 말로 무관심, 무정형, 기존질서의 거부 등을 특성으로 한다. 90년 캐나다의 더글러스 쿠플랜드가 쓴 소설 『X 세대』 에서 처음으로 등장하여, 이후 빠른 속도로 사회에 확산되면서 X세대를 겨냥한 문화상품과 소비재 등이 다량으로 나타났으며, 90년대의 새로운 사회현상으로 인식되었다.

NIE[편집]

Newspaper In Education

신문을 활용한 교육. 즉, 신문을 학습에 활용하여 교육적인 효과를 높이기 위한 활동을 말한다. 1955년 미국 레지스터 신문이 미국 교육협의회와 협력하여 처음으로 시작하였다. 청소년의 사회성·인간성 함양에 의견개진 및 판단능력 제고에 크게 기여하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여민락[편집]

與民樂 관현합주곡. 승평만세지곡(昇平萬歲之曲)이라고도 한다. 연주 시간은 1시간 20여 분이 소요되며 모두 7장으로 구성되어 있는 대곡이다.

여민락의 원곡은 「용비어천가」의 한문시에 중국 음악 양식의 선율을 붙인 것이며, 여기에서 수곡이 파생되는데, '여민락'은 이 가운데 한 곡이다.

곡의 내용과 윤곽은 궁중과 민간에서 널리 연주되는 동안 많이 변모되었다. 향피리·대금·해금·거문고·가야금·당적·아쟁·장고 등의 악기로 편성되며, 곡상은 밝고 부드러우며, 빠르면서도 평온하다.

역사소설[편집]

歷史小說

일명 시대소설이라고 하는데, 역사적 사건이나 인물을 소재로 한 소설. 사실의 존중이냐, 저자의 이상을 전개한 것이냐에 따라 여러 경향으로 구분된다. 한국에서 역사소설이 유행한 것은 1930년대부터이다.

역사소설은 민족사상의 고취 때문에 사건과 인물이 고정되는 위험이 있다. 역사소설도 소설인 이상 현실과의 관계 안에서 내면적이고 구조적인 갈등을 파악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오라토리오[편집]

oratorio

기도장(祈禱場)에서 행하여지는 종교적 악극을 말하며, 성담곡 또는 성극이라고 한다. 세속적인 음악인 오페라와 함께 성악곡 중 최대의 형식을 가지며, 관현악이나 오르간을 반주로 하는 독창·합창·중창으로 이루어진다. 제재는 성서에서 취한 것이 대부분이며, 극적인 요소도 지니는 장엄한 곡이다. 하이든의 '천지창조', '4계절'과 헨델의 '메시아', '이집트의 이스라엘' 등이 유명하다.

옵 아트[편집]

광학미술(Optical Art)의 약칭으로 팝 아트의 뒤이어 나타난 기하학적인 구성을 주로 하는 추상미술의 한 경향이다. 산뜻한 색면의 대비와 조화, 선의 운동과 구성 등이 눈에 미치는 착시효과 따위의 모든 광학적인 효과를 화면에 채용하여 새로운 이미지를 구성하려는 것이다. 이는 정서적이고 사상적인 면보다는 철저하게 형식적인 면에 치중한다.

유미주의[편집]

唯美主義

미(美)를 예술의 근원으로 삼는 주의(主義). 미가 곧 예술이라 하여, 미를 근본으로 하지 않는 것은 예술이 아니라고 한다. 실제 생활까지도 예술화하려고 하는 경향마저 있다. 키츠는 "미는 진리이며, 진리는 곧 미(美)다" 라고 말했으며, 와일드는 "미(美)는 선(善)보다 더 훌륭한 것이가" 라고 말했다. 예술을 위한 예술파·상징파·데카당스·고답파(高踏派) 등이 모두 유미주의적 경향이 있다.

음악요법[편집]

音樂療法

음악 수단을 이용한 심리요법의 총칭. 음악감상, 가창, 기악연주, 무용, 음악 게임, 코러스 등을 이용한다. 공포·분노 등의 감정을 음악을 들음으로써 정신적인 안정을 주고, 욕구불만으로 인한 공격성을 타악기를 두드림으로써 해소시킨다. 또 현악기 등을 연주함으로써 정신·신체적 기능의 작용을 원활하게 한다.

또한 합주에 참여시켜 집단에 대한 소속감, 역할의식, 공동 성취감 등의 집단 요법적 만족감을 맛보게 하는 일이 가능하고, 소리의 세계에 대한 즐거움을 이용함으로써 환자 자신의 세계를 표현시킬 수 있게 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정신지체, 노인성 퇴행마비, 뇌성마비, 알코올 중독, 신경증 등의 심신장애치료에 두루 이용되고 있다.

의열단[편집]

義烈團 비밀 항일운동단체. 1919년, 만주 길림성에서 조직되었으며, 일정한 근거지를 의도적으로 확보하지 않고 각지에 흩어져서 일본 관리 학살, 관청 파괴를 통한 민족의식의 고양과 독립 쟁취를 목적으로 하였다. 김원봉·이성우·곽재기·강세기·이종암·한봉근·한봉인·김상윤·신철흠·배동선·서상락 등 13명이었다. 밀양경찰서 습격 사건. 조선총독부 습격 사건, 니쥬마시 사건, 동양척식회사 폭력 사건 등이 바로 의열단원이 거사한 사건이었다.

이슬람교[편집]

Islamism

아라비아의 예언자 마호메트에 의해 창시된 종교. 마호메트는 610년에 첫 계시를 받고 창조주인 유일신 알라(Allah)의 신앙을 설교하였다. 종래 신들의 우상을 부정했기 때문에 메디나로 도피를 했었는데, 이를 '헤지라(Hegira)'라고 하며, 이 해를 회교력(回敎曆)의 원년으로 삼는다. 630년에는 고향인 메카를 탈환하고 종교 국가를 건설하여 정치·종교적으로 아라비아를 통일하였다. 알라로부터 받았다고 하는 계시를 중심으로 하며, 계율·제의(祭儀)의 규정 등을 모은 것이 30편 114집으로 이루어진 것이 경전인 『코란』이다.

이집트 문명[편집]

Egypt civilization

나일강 하류지역에 발생한 인류최고 문명. 제정일치의 계급사회로 농경을 중심으로 수공업·무역 등을 영위하였다. 기원전 3000년경에 멤피스트를 중심으로 하는 통일국가를 형성하였다.

나일강의 규칙적인 범람으로 비옥한 농경지를 형성하여 일찍부터 고도로 발달한 농경문화를 이룩할 수 있었다. 오늘날의 알파벳의 원형으로 일컬어지는 상형문자인 이집트 문자를 사용하였으며 피라미드 같은 대규모 건축물을 남겼다.

EQ[편집]

Emotional Quotient

감성지수·지능지수(IQ)와 대조되는 개념으로 자신의 감정을 적절히 조절, 원만한 인간관계를 구축할 수 있는 '마음의 지능지수'를 뜻한다. 특히 감성지수는 지능만을 검사하는 지능지수와는 달리 조직에서 상사나 동료, 부하직원들 간에 얼마나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으며, 개인이 팀워크에 어느 정도 공헌하는가를 평가할 수 있어 기업인들의 많은 관심을 끌고 있다.

일러스트레이션[편집]

illustration

시각 전달에 있어서의 해설도·삽화·사진. 디자인에서는 '일러스트'라고 줄여 말한다. 광고에서의 일러스트레이션은 본래 상세한 내용을 전달하기보다 제3자의 주의를 끈다든가 시각을 유도하기 위해서 사용되므로 시각전달의 보조적 수단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퀴비슴에서 전개된 기법으로 기하추상도형, 다다이즘이나 쉬르레알리슴의 자유연상기법 등도 그 기법으로 쓰인다.

임진왜란[편집]

壬辰倭亂

조선 선조 25년(1592)에 침입한 일본과의 전쟁. 특히 2차 침입(1597)의 경우 정유재란(丁酉再亂)이라고 한다. 일본에 새로운 실력자가 된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국내 혼란과 신흥 상업세력의 발흥에 억제 수단으로 전쟁을 일으켰다.

사전에 전쟁을 감지 못한 조선 조정은 허둥지둥 의주로 피난했다. 그러나 명장 이순신, 권율 등의 활약과 의병들의 활동으로 명나라 원군에 의해 퇴각하였다. 임진왜란으로 동아시아의 정세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왔다. 전쟁터였던 조선은 물론 중국·일본에까지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조선은 국토의 황폐화와 문화재의 손실을 입었다. 그러나 새로운 무기가 발명되었으며 국방력의 중요성을 깨달은 조정은 군사제도를 개선하는 등 국방에도 주력하였다. 또 성리학에 대한 비판과 자아가 싹터 실학 발생의 동기를 주었다.

일본은 오랜 전쟁으로 봉건제도가 몰락하고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권력을 잡는 계기가 되었다.

또 우리나라에서 약탈해간 문화재가 새로운 기술로 이후의 문화 발달을 앞당겼다. 명(明)은 조선을 돕기 위해 재정·군사적으로 많은 손실을 입었다. 또한 나라가 어지러워 멸망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잉카 문명[편집]

Inca civilization

페루를 중심으로 한 안데스 산맥 계통의 고원지대에 일어났던 아메리카 원주민의 고대문명. 아시아 대륙에서 비롯된 신석기 시대의 농경문화가 베링 해협 혹은 태평양을 건너 아메리카에서 독자적으로 발전한 것으로 추측된다. 거석 문화시대를 거쳐 1400년경에는 북쪽의 에콰도르로부터 남쪽의 칠레에 이르는 대제국이 등장하였다.

신의 화신이자 태양의 아들 잉카 밑에서 전제정치가 행해졌다. 문자 사용은 없었으나, 결승문자의 기록이 알려져 있으며, 철기는 사용되지 않았으나 청동기·금·은기가 사용되었다. 옥수수·담배·감자 등을 재배하였다. 수레는 사용하지 않았고 신전·운하 등의 토목공사는 인력으로 이룩하였다.

저작권[편집]

著作權

지적소유권을 구성하는 2대 부문의 하나. 문학, 연극, 음악, 예술 및 기타 지적·정신적인 작품을 포함하는 저작물을 사용 또는 수익처분하거나 타인에게 그러한 행위를 허락할 수 있는 독점배타적인 권리이다. 저작권은 복제에 의한 저작권자의 저작물판매·배포, 즉 출판 또는 발행을 못하도록 보호하는 권리이다.

전국시대[편집]

戰國時代

중국 춘추시대(春秋時代)에 군웅(群雄)이 할거했던 동란시대(動亂時代). 기원전 403년을 경계로 『춘추(春秋)』에서 비롯된 춘추시대와 『전국책(戰國策)』에서 비롯된 전국시대로 구분한다.

주(周) 왕실이 유명무실해지면서 진(秦)·초(楚)·제(齊)·연(燕)·한(韓)·조(趙)·위(魏)의 7웅(七雄)이 세력을 겨루기가 진(秦)에 의해 통일되었다. 그 결과 공동체는 붕괴하고 강대한 진(秦)에 의해 최초의 통일 제국이 탄생하였다.

전자음악[편집]

電子音樂

1950년대 초부터 독일 게른 방송국의 스튜디오를 중심으로 발전해온 음악으로 전기 발진(發振)에 의해 얻어지는 음을 혼합, 변형하여 작곡한 음악. 악기 음악보다는 훨씬 광범위하고 자유로운 음을 사용할 수 있다. 이 기계 설비는 그 후 세계 여러 나라에 전파되었고, 많은 음악가가 전자음악의 작곡에 종사하였다.

중국의 4대 발명[편집]

中國-四大發明

북송(北宋) 시대에 발명된 화약·활판인쇄술·나침반을 3대 발명이라고 하며 후한시대에 발명한 종이를 포함하여 4대 발명이라고 한다. 이 발명품들은 유럽에 앞서 발명 실용화되었으며, 이슬람 문화권을 통해 중세 유럽에 전파되어 유럽 문화에 크게 영향을 미쳤다.

직지심경[편집]

直指心經

고려 우왕 3년(1377)에 승려 백운화상이 역대 훌륭한 스님들의 어록을 요약 간행한 책. 중국 송나라 때 간행되었던 책을 다시 정리한 것이다. 현존하는 금속활자 중에서 가장 오래된 것으로 현재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보관되었다. 기록에 의한 세계 최고(最古)의 금속활자는 고려 인종 때 최윤이 쓴 고금(古今)의 예문(禮文)을 모아 편찬한 『상정고금예문(祥定古今禮文)』을 고려 고종 21년(1234)에 다시 금속활자로 찍은 것이다.

진주민란[편집]

晋州民亂

삼정(三政)의 문란과 지방관리의 횡포에 이기지 못한 진주 주민이 1862년에 일으킨 민란. 이 민란의 특징은 단순히 일반 농민들만이 참여한 것이 아니라 토호 등이 읍권(邑權) 장악을 위해 일으킨 것도 있다. 처음에는 악질 관료의 제거를 목적으로 하여 일어났으나 병든 봉건 양반사회 사회에 대한 반항이기도 했다.

천도교[편집]

天道敎

수운(水雲) 최제우(崔濟愚)가 창설한 동학(東學)을 제3대 교조 손병희(孫秉熙)가 개칭한 우리나라 대표적인 민족 종교. 평등한 인간구제, 풍요로운 사회구제를 위하여 정신 개벽·민족 개벽·사회 개벽운동을 추진함으로써 사회 변동을 위한 사회 참여에 적극적이다. 사람이 곧 하늘이라는 '인내천(人乃天)'이 천도교의 중심 사상이다.

청교도 혁명[편집]

淸敎徒革命

청교도를 중심으로 스튜어트 왕조를 무너뜨린 영국의 시민혁명. 찰스 1세가 저지른 실정(失政)을 계기로 1640년에 장기 의회가 열렸는데 이때 국왕의 전제(專制) 개혁을 추진하였다.

그 과정에서 국왕파와 의화파로 갈라져 1642년에 내전이 일어났다. 처음에는 의회파가 불리했으나 크롬웰의 활약으로 1645년에 승리를 거두고 왕당파를 물리쳤으며, 1649년 1월에 국왕을 처형하고 공화정을 선포하였다. 이후 공화정 정부는 아일랜드·스코틀랜드를 정복하였다. 1653년 이후 크롬웰을 호국경으로 하는 군사독재를 하여 국민의 비판과 불안을 초래했다. 크롬웰이 죽고, 1660년 왕정복고가 이루어고 혁명은 일단 종결되었다.

청록파[편집]

靑鹿派

공동 시집인 『청록집(靑鹿集)』을 낸 조지훈·박목월·박두진 3인을 가리킨다.

조지훈은 회고적인 내용에 전아한 가락을 담았으며, 박목월은 민요조의 리듬에 애틋하고 소박한 향토의 정조를 그렸다. 박두진은 풍부한 언어에 기독교적 바탕을 이루는 신앙 세계를 담고 있다. 이와 같이 시세계는 각기 다르지만 일제 말기에 『문장(文章)』을 통해 등단했으며, 소재를 자연에서 찾고 있으며 광복 후에는 시의 순수성을 옹호했다는 점이 공통점이다. 이 『청록집』에는 이들 시인의 작품 12∼15편씩 모두 39편의 시가 수록되어 있다.

청산리 전투[편집]

靑山里戰鬪

북로군정서 독립군이 만주 청산리에서 일본을 상대로 싸워 대승을 거둔 전투. 만주에 한국 독립군의 수가 점차 늘고 러시아의 자유시장에서 무기를 자유롭게 구입할 수 있게 되자 일본군은 위협을 느낀 나머지 21사단과 19사단을 투입, 독립군 진압 계획을 세웠다.

이에 북로군정서군은 김좌진·나중손·이범석을 지휘관으로 하여 청산리 일대에서 일본군과 싸워 대승을 거두었다. 단 이틀간의 싸움에서 일본군은 사상자가 3,000여 명이나 발생한 반면 독립군은 100여 명의 사상을 냈다.

청일전쟁[편집]

淸日戰爭

조선 지배권을 차지하기 위해 청(淸)과 일본이 벌인 전쟁(1894∼1896). 전라도 지방에서 일어난 동학 혁명에 청국이 출병하자 일본도 한국의 독립과 동양평화를 도모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군대를 보내 양국간에 전쟁이 벌어졌다. 그 결과 일본군이 연승을 거두었고, 시모노세키에서 강화조약을 맺고, 대만·요동반도 등 영토 일부를 일본에 떼어 주고 조선에서도 완전히 손을 떼게 되었다.

초현실주의[편집]

超現實主義

1차 세계대전 후 일어난 전위예술운동(前衛藝術運動). 입체파·미래파·다다이즘에 이어 일어났다. 1924년에 앙드레 브로통의 「초현실주의 선언문」에 의해 집단운동으로 시작된 것으로써 자유로운 예술 창조 행위에 가해졌던 모든 제약에 대한 반항이었다.

심층의식의 구속받지 않는 자유로운 작용을 보장하기 위해 자동기술에 의존하고 꿈의 자료와 잠자지도 깨어 있지도 않은 정신 상태, 자연적이거나 인공적으로 유발시킨 환각의 자료 등에 관심을 두고 중요시하였다.

초현실주의는 문학 이외에 회화, 조각 및 기타 예술에 있어서 혁명적 운동이었다. 대표적인 초현실주의자는 아라공·콕트·피카소·엘루아르 등이 있다.

추리소설[편집]

推理小說

어느 사건을 발단으로 추리를 기조로 하는 소설. 종전에는 탐정소설(探偵小說)로 불렸다.

추리소설의 기본형을 수수께끼의 제기이론(提起理論)에 의한 수수께끼 풀이와 의와의 해결이 본격 추리소설의 형태라고 할 수 있다. 완강하고 비정(非情)하며 행동적인 인물을 주인공으로 삼고 탐정의 주관적인 심리묘사를 배제하며, 현실을 비정한 눈으로 직시하는 하드 보일드 문체를 주로 사용하며, 범죄가 지닌 스릴, 서스펜스, 미스테리 등을 기본 틀로 한다.

카스트제[편집]

Caste制

인도 힌두교도 사회의 세습적 신분제도. 고대에 브라만(사제), 크샤트리아(왕후·전사), 바이샤(상인·농민), 수드라(노예)의 네 계급이 형성되었다. 이후 현대까지 수많은 카스트로 세분되었다.

인도 사회에 뿌리 깊게 박힌 이 제도는 폐지운동이 없지 않았으나 세습적이고 폐쇄적·배타적이어서 아직도 남아 있어 근대화의 장애가 되고 있다.

카피레프트[편집]

Copyleft

Freeware라고도 하며, 저작권 소유자가 모든 사용자에 대해 자신의 창작물을 사용, 변경, 재배포를 무상으로 허용하는 것을 말한다. 발명이나 저작이 개인영역에서 사장되는 것을 막고 사회적 공개를 장려하는 목적으로 리처드 스톨먼이 창안했다.

쿠르드족 분쟁[편집]

Kurd族 紛爭

쿠르드족의 분쟁은 1920년 세브르조약이 터키 공화국을 세운 케말 파샤의 저항으로 무효화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쿠르드족의 독립투쟁은 쿠르드노동자당(PKK)이 결성되면서 무장투쟁화했다. 쿠르드 반란군 지도자 오잘란은 1978년 마르크스-레닌주의를 기초로 PKK를 결성, 1984년 이라크, 이란 등 인근 국가에 퍼져 있는 쿠르드족을 통합하는 '범쿠르드 국가'를 목표로 무장투쟁 노선으로 돌아섰다. 그러나 터키 정부가 오잘란을 체포함으로써 이에 항의하는 유럽내 쿠르드족의 시위가 격화되고 지상 최대의 '나라없는 민족'인 쿠르드족 분쟁에 대한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키네틱 아트[편집]

kinetic art

움직이는 예술·작품 속에 동세(動勢)를 표현하거나 옵 아트와 같이 시각적 변화를 나타내려는 것과는 달리 작품 그 자체가 움직이거나 움직이는 부분을 넣은 예술작품. 따라서 작품은 거의 조각의 형태다. 이러한 경향은 미래파나 다다의 예술운동에서 파생된 것이며 최초의 작품은 M. 뒤샹이 1913년 자전거바퀴를 사용해 만든 '모빌'이다.

키노 드라마[편집]

Kino-Drama

영상을 연극의 일부분으로 수용, 다양하고 첨단적인 무대를 만들어가는 연극. 영화적 연극이란 의미로 사용되는데 연쇄극이라고도 한다.

펜클럽[편집]

PEN club

문학을 통하여 민족 상호간의 이해를 촉진하려는 국제적인 문인단체. 펜(PEN)은 시인·극작가(poet, palywriter)의 P, 수필가·편집자(essayist, editer)의 E, 소설가(novelist)의 N을 가리키며 나아가 전체로서 펜(pen)를 뜻한다.

영국 소설가 도손에 의해 제창되어 각국에 보급되었다. 우리나라 펜클럽은 1954년에 이듬해 세계 대회에서 정식으로 비준되었다. 문필가의 헌법과도 같은 국제 '펜헌장'에 의거하여 운영된다.

포스트 모더니즘[편집]

post-modernism

모더니즘 뒤에 생긴 문화·예술 운동의 하나. 기능주의와 결부되어 비교적 단순 요소로 이루어진 모더니즘에 비해, 포스트 모더니즘에서는 이질적인 요소를 겹쳐 맞추기도 하고, 옛 작품에서 인용하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포스트 모더니즘은 사상 영역의 후기 구조주의와 대응하고 있다.

포스트 모더니즘 역시 모더니즘처럼 건축·디자인의 영역에서 구체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러한 작품들이 절충주의 경향을 보이는 것은 하나의 강력한 원리에 지배되지 않고 다양한 요소를 종합적으로 포용하는 다원적 특징 때문이다.

포토제니[편집]

photogenie

영화 영상이 단순히 사진적인 의미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유기적인 내재성이 있다고 주장한 프랑스 영화 이론가 루이 델뤽이 1919년에 처음 쓴 말. 그는 4가지 포토제니의 기본 요소로서 장치·조명·억양·마스크를 들고 이 요소들을 감독이 자유로이 선택하고 창조함으로써 영화 예술이 성립한다고 주장했다. 통속적으로 뜨는 포토제닉이란 '영상화하기 알맞은', '사진찍기 좋은' 정도의 뜻으로 자주 쓰인다.

표현주의 영화[편집]

表現主義映畵

1910년 무렵 독일 뮌헨에서 비롯된 표현주의 운동은 1차 세계대전 후 독일의 문학·미술·연극을 지배하고 영화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주었다.

로베르크 비네 감독의 「칼리가리 박사」는 표현주의 영화 최고의 걸작으로 평가되는 작품으로 영상과 조명이 일상적인 형상을 파괴한 것이어서 커다란 충격을 던져 주기도 하였다. 표현주의 영화의 특징은 일관된 스토리 전개에 치중하기보다는 극단적인 카메라 앵글과 짧은 쇼트의 연속된 커팅 등으로 조형성 내지는 인위성을 앞에 부각시켜 심리적 리얼리티를 추구하는 것이 공통적인 특징이다.

필름 느와르[편집]

film noir

검은 영화라는 뜻의 범죄와 폭력 세계를 그린 영화. 프랑스에서 이런 류의 영화가 자주 만들어진 것은 1940년대에서 1960년대이다.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현금에 손대지 마라」, 「사형대의 엘리베이터」, 「지하실의 멜로디」 등이다.

이런 장르의 영화는 주로 갱·살인전문가·사립 탐정 등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범죄 세계를 비정하고 냉혹하게 그리는 것이 특징이다.

하드 보일드[편집]

hard-boiled

'단단하게 삶은 계란'을 뜻하는 말이지만 표현양식에서 인물이나 사건을 군더더기 없이 비정하고 냉정하게 묘사한 소설이나 영화를 아우르는 말. 간결하고 박진감 넘치는 헤밍웨이의 문체가 출발점이며, 추리 소설·문체에서 많이 쓰인다. 대개 사립탐정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숨막히는 추격전을 벌이게 하는 경우가 많다.

하왕조[편집]

夏王朝

중국 전설상의 가장 오래된 왕조. 순제(舜帝)를 섬기며, 황하(黃河)치수에 공을 세운 우(禹)가 순제로부터 물려받아 세웠다고 한다. 폭군 걸왕(桀王)이 은(殷) 탕왕(湯王)이 망할 때까지 약 400년 동안 왕조가 이어졌다.

중국에서는 최근 유적지가 발굴되어 사실 존재했던 왕조라고 주장하지만 충분한 증명은 되지 못하고 있다.

한·일 의정서[편집]

韓日議定書

1904년 광무 2년 2월 23일, 일본의 강요에 의해 그들과 맺은 불평등조약. 이 조약을 통해 그 전에 한국과 러시아간에 맺은 모든 조약이나 협정은 무효가 되었다. 같은 해 8월 23일에는 한국 정부의 재무·외교의 주요 부문에 일본이 적극 간섭할 것을 승인하였다.

향악[편집]

鄕樂

아악·당악에 대비되는 음악이며,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외래 음악에 대해 기존 음악을 가리킨 말. 신라 눌지왕 때 향악이라는 말이 처음 쓰여졌는데, 『삼국사기』 기사에 따르면 박제상이 일본에 볼모로 가 있던 왕자 미사흔을 무사히 귀국시킨 것을 기뻐한 왕이 만들었다는 우식악(憂息樂)이 바로 향약이라고 한다.

향약[편집]

鄕約

좋은 일은 권장하고 나쁜 행동은 막아 서로 상부상조하자는 정신을 주요 골자로 하는 향촌(鄕村)의 자치 규약. 중종(中宗) 때 조광조(趙光祖)가 처음 주창하였으며 퇴계와 율곡이 지방에 맞는 향약으로 발전시켰다.

기본 강령을 보면 덕업상권(德業相勸)·과실상규(過失相規)·예속상교(禮俗相交)·환난상휼(患難相恤)이다.

헤브라이즘[편집]

Hebraism

헤브라이 문화 또는 헤브라이 정신 모두를 아우르는 말. 유대교와 그리스도교의 정통을 총괄하여 부른다.

헬레니즘과 함께 유럽의 정신적 전통을 형성한 2대 조류의 하나로, 헬레니즘이 이성적·과학적·미적인데, 헤브라이즘은 의지적·윤리적·종교적이다.

헤비메탈[편집]

heavy metal

1980년대에 들어와 초기의 하드록 대신 무대의 과격성을 풍속·패션·움직임 등 모든 면에서 추진한 록. 그 사운드의 무게와 징을 박은 가죽 의상 등도 이 이미지를 뒷받침하고 있다.

헤이그 밀사사건[편집]

Hague 密事事件

1907년 6월, 대한제국의 고종 황제가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 밀사를 파견한 일. 1905년의 을사조약으로 일본의 지배가 노골화해지자 고종 황제는 이준·이상설·이위종을 만국평화회의가 열리는 헤이그에 보내 일본의 부당한 행위를 고발하려고 했으나 일본의 방해로 뜻을 이루지 못하고 이준 열사는 그곳에서 비통해하다가 분사하였다.

헬레니즘[편집]

Hellenism

고대 그리스 시대를 이은 세계사상(世界史上)의 한 시대.

독일 역사학자

드로이젠이 그리스 문화를 좋아한 나머지 그 기후의 사상을 멸시하는 전통에 반발하여 명명하였다. 넓은 뜻으로는 헤브라이 정신에 대한 그리스 정신의 뜻으로도 쓰이며, 양자를 합하여 유럽 정신의 바탕을 이루는 것으로 여긴다.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기원전 4세기경 동방 원정 이후, 지중해 동서를 한데 융합한 독특한 문화를 전개하였다.

호적[편집]

戶籍

가족관계와 신분관계 등을 적어 놓은 공문서. 호주를 중심으로 같은 집안에 속하는 사람의 신분에 관한 사항을 기록한다. 호적에 관한 법으로는 1960년에 제정된 호적법이 있다. 호적은 호주와 그 밖의 가족으로 구성되며, 호적에는 본적, 전호주의 성명 및 호주와의 관계, 호적의 편제 및 호적 변동 사유의 내용과 연월일, 호주 및 가족의 성명·본관·성별·출생연월일 및 주민등록번호 등이 기록된다.

호킹[편집]

Stephen Wlliam Hawking(1942 - )

영국의 세계적 물리학자로 옥스퍼드 출생이다. 옥스퍼드대학과 케임브리지대학원에서 물리학과 우주론을 공부하고, 1966년 우주 생성 및 진화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63년 전신이 마비되는 불치병 근위축성측색경화증으로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았으나 학문에 전념, 74년 사상 최연소 왕립학회 회원이 되었고, 80년부터 뉴턴대학·케임브리지대학 등의 교수를 지냈다. 중복 장애에도 불구하고 블랙홀 증발·양자우주론·양자역학·양자중력론 등의 분야에서 괄목할 업적을 쌓았다. 1990년 9월 한국에 와서 '블랙홀과 아기우주'라는 주제로 강연하였다. 주요 저서로 『시간의 역사』 『스티븐 호킹의 검은 우주』 『시간은 늘 미래로 흐르는가』 등이 있다.

홍익인간[편집]

弘益人間

단군신화(檀君神話)에 나타나는 건국 이념. 우리나라의 건국신화에 의하면 천제 환인(桓人)이 그 서자(庶子)가 평소 세상에 내려가 천하를 다스리고 싶어함을 알았다.

그리하여 태백산(太白山)을 내려다보니 '홍익인간(弘益人間)'할 만하여 가서 다스리게 하였다.

'홍익인간이란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라'는 뜻으로 환웅이 단군을 낳고 나라를 열게 된 이념이다.

화교[편집]

華僑

해외에 거주하는 중국인을 총칭하는 말이다. 즉 본국을 떠나 해외 각지로 이주해 경제활동을 하면서 본국과 사회, 문화, 법률, 정치 따위의 여러 측면에서 유기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중국인 또는 그 자손을 말한다. 여기서 말하는 중국인이란 타이완과 중국의 국적을 망라해 주로 중국적 문화와 경제활동에 연관을 가지는 한민족계(漢民族系)를 가리킨다.

환경음악[편집]

環境音樂

평소에 보다 더 가볍게 들을 수 있는 음악을 아우르는 말. 지금까지의 음악은 청중을 한 장소에 모아놓고 특정한 메시지를 담아 주려고 하는 성격이 짙다. 그러나 환경음악은 어떤 형태로든 메시지를 담지 않고 음향 디자인으로 접근하려는 점이 다르다.

궁극적으로는 공기와도 같은 것으로써, 그러한 음악이 있음으로써 청중 개개인이 현실로부터 독립된 시간을 갖도록 하려는 데 목적이 있다.

황허 문명[편집]

黃河文明

중국 황허강 유역에서 일어난 고대 문명. 기원전 3000년경부터 중국인의 조상들은 움집을 짓고 농경 생활을 하였다. 이들은 거친 흙으로 토기를 만들어 사용하였는데, 황허 중상류의 앙소(仰韶) 지역에서는 채도(彩陶) 즉 색상을 넣은 토기를 만들어 사용했으나 하류의 용산(龍山) 지역에서는 회색 토기 즉 흑도(黑陶)를 만들어 사용했다. 기원전 2000년경에는 산동 북부 지방에 최초의 왕조인 은(殷)이 세워졌다. 당시 도읍지였던 은허에서는 중국 고대 문명을 밝혀준 많은 유물이 발견되었다.

훈민정음[편집]

訓民正音

조선 세종 때 창제한 우리나라의 문자 이름. 우리나라는 삼국시대부터 이두나 한자를 사용해왔으나 우리 말에 맞는 문자가 없었을 뿐만 아니라 한자는 너무 어려워 일반 백성들이 쉽게 익히기에는 불편함이 많았다.

따라서 세종 25년(1443)에 훈민정음을 제정하고 집현전 학자였던 성상문·정인지·최항·박팽년·이선로·이개 등을 시켜 훈민정음의 원리를 더 보완하도록 하여 세종 28년(1446)에 반포하였다.

훈민정음은 자음 17자, 모음 10자의 28자로 구성되어 있으며, 그동안 4자가 줄어들어 현재는 24자만을 사용하고 있다.

희극[편집]

喜劇

풍자와 음악과 명랑성 등의 요소를 포함한 문학·연극의 총칭이다. 비극과는 반대 개념이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이미 아리스토파네스의 뛰어난 희극이 등장하였다. 당시 로마의 헤렌티우스, 중세의 파르스(笑劇), 소티(바보극), 사육제극, 코메디아 델라르테를 거쳐 셰익스피어, 몰리에르 등에 의해 예술성이 높은 장르로 발달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