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5
1936
1937
1938
1939
1940
1941
1942
1943
1945
1946
1947
1948
1949
1950
1951
1952 |
<미국>
20세기사와 폭스 병합하여 20세기 폭스사로 됨. 테크니컬러에 의한 「허영의
도시」공개
페데 「미모사관(館)」「여자들만의
도시」발표
<프랑스>
루이 데뤼크 상 설치. 뒤비비에 「우리들의 친구」, 카르네 「제니의 집」
<영국>
로사, 『기록영화론』저술
<러시아>
최초의 천연색영화 공개
<미국>
588편 제작. 와일러 「데드 엔드」, 캐플러 「잃어버린 지평선」
<프랑스>
르누아르 「커다란 환영」, 뒤비비에 「망향(望鄕)」「무도회의 수첩」
<프랑스>
인민전선파의 자주작품 르노와르의 「라마르세 예즈」완성. 카르네의
「안개의 방파제」「창살없는 감옥」, 르누아르 「수인(獸人)」
<미국>
최초의 천연색 대작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공개. 포드
「역마차」
<미국>
톰 믹스 사망. 포드 「분노의 포도」, 채플린 「위대한 독재자」, 히치콕 「레베카」
<소련>
이바노프의 입체영화 완성. 소련영화 20주년 기념제 개최. 40편 제작.
푸도프킨 「스보로프 장군」
<미국>
웰즈 「시민 케인」, 포드 「타바코
로드」
<프랑스>
뒬라크 사망. 카르네 「악마는 밤에 온다」
<미국>
카티이즈 「카사블랑카」
<영국>
「사막의 승리」등 전쟁기록영화 제작 성행
<미국>
에릭 존스턴, 미국영화협회(MPA) 회장에 취임. 크로스비 등 독립
프로덕션 설립 성행
와일드
「잃어버린 주말」
<이탈리아>
로셀리니의 「무방비 도시」등 네오 리얼리즘파 대두
<미국>
425편 제작. 와일러 「우리들 생애 최고의 해」
<영국>
코르다, 런던 필름을 재건. 파스칼 「시저와 클레오파트라」, 프레스 버거 「천국에의 계단」
<프랑스>
국가영화센터 설치. 칸 영화제 개정
콕토 「미녀와
야수」, 드라노아 「전원교향악」
<이탈리아>
베니스 영화제 재개. 로셀리니 「전화(戰火)의 피안」, 데 시카, 「구두닦기」
<프랑스>
174편 제작. 클레르 「침묵은 금」, 오탕 라라 「육체의 악마」
<미국>
카잔의 「신사협정」등 인종문제를 다룬 폭로영화 성행. 채플린 「살인광
시대」
<프랑스>
콕토 「쌍두 독수리」
<러시아>
최초의 입체영화 「로빈슨 크루소」공개
<프랑스>
영화금융금고 설치. 콕토 사망, 뤼미에르 사망. 크루죠 「정부 마농」
<이탈리아>
데 시카 「자전차 도적」, 로셀리니 「독일
영년(零年)」
<러시아>
에이젠슈테인 사망
<미국>
뒤퐁사, 뒤퐁컬러 발표. 카잔 「핑키」, 로브슨 「챔피온」, 와일러 「여상속인」
<프랑스>
오르페 「무서운 아이들」
<이탈리아>
데 산티스 「올리브 아래에 평화는 없다」
<러시아>
모스필름, 50년도까지 전작품의 천연색 영화화를 결정
<미국>
멘키비츠 「이브의 모든 것」, 와일더 「선셋대로(大路)」
<프랑스>
부레송 「시골 사제(司祭)의 일기」, 카르네 「애인 줄리엣」
<미국>
프라하티 사망. 카잔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스티븐슨, 「젊은이의 양지」
<프랑스>
주베 사망. 게바 컬러에 의한 프랑스 최초의 본격적 천연색영화 「푸른
수염」공개
<독일>
서독에서 게바 컬러에 의한 최초의 천연색 영화 「황야는 푸르다」공개
<미국>
내추럴 비전 등 입체영화 공개 |
1945
1946
1947
1949
1950
1951
1954
1955
1957
1957
1958
1959
1960
1961
|
주의영화
227종의 제거를 지령
'대한영화인협회',
물고(物故) 영화인 추도식 거행. 전국 극장 경영주들, 극장연합회 발족.
경향파 영화인들, '조선영화동맹'을 발족. '조선영화동맹'에서 한국최초의
영화강좌 개최. 최인규, 최초의 광복영화 「자유만세」를 제작·상영
<일본>
'전일본영화종업원동맹'결성. 쇼치쿠 전 중역이 경영의 민주화를 위해
사임. '자유영화인집단'결성. '일영연(日映演)'결성, 총파업. '자유영화인집단',
전범 35명을 발표. 기노시타(木下惠介) 「오오소네가(大會根家)의 아침」, 구로자와 「내 청춘에 후회는 없다」, 이마이(今井正) 「민중의 적」
<일본>
'영화제작자협회', '일본영화연합회'로 개칭.
'전영연(全映演)'결성.
영화관계 추방 해당자 발표됨.
홍성기,
한국 최초의 16밀리 천연색영화 「여성일기」를 제작·상영. 생필름의 품귀현상으로 영화제작비가
급격히 상승
<일본>
'일본영화감독협회'결성. '도에이(東映配)'창립. 이마이 「푸른 산맥」, 구로자와 「들개」
임시수도
부산에서 '한국영화평론가협회 '발족
<일본>
토호, 1,300명의 공직추방을 발표. 도에이(東映) 창립. 이마이 「다시
만날 때까지」 구로자와 「라쇼몬(羅生門)」
<일본>
신(新)도에이의 경영위기 심각. 「라쇼몬」, 베니스영화제에서 그랑프리
획득
국산영화
입장세의 전면적 면세조치. '한국영화인협회' 결성. 작품의 대부분이
반공물·군사물·계몽물·기록물이었음
영화행정업무가
국방부로부터 문교부로 이관, 싱가포르에서 개초된 아시아영화제에 최초로
옵저버로 참가. 국내 최초의 영화인 예술제. 이규환의 「춘향전」, 공전의 장기흥행기록을 수립함으로써 국산영화의
기업화 가능성을 제시. 이금룡 사망. 한국 최초의 민간영화상인 '금룡상'이
제정됨. 영화연극인들, 영화·무대금고 설치와 영화기재 수입의 면세와
입장세 면세를 촉구하는 궐기대회. 김기영 데뷔. 15편 제작. 이규환
「춘향전」
'한국영화인연합회'주최로
국내 최초의 영화스틸전 개최, 문교부 '공연물 허가규정 및 공연물 검열세칙'제정·공포.
'한국영화제작자협회' '아시아작가연맹'에 가맹. 30편 제작. 유현목
「교차로」, 한형모 「자유부인」, 이병일 「시집가는 날」, 이강천 「백치 아다다」
'한국영화제작가협회'발족.
'영화인연합회'주최로 나운규 20주년 추념식 거행. 김소동 「아리랑」, 유현목 「잃어버린 청춘」, 김기영
「황혼열차」
한국 최초의
시네마스코프 「생명」제작. 문교부, 우수국산영화상을 제정. '한국영화평론가협회',
평론가협회상을 제정. '한국배우협회', 제1회 스타의 밤 개최
문교부,
'국산영화 장려 및 영화오락 순화를 위한 보상특혜 실시'에 관한 고시를
제정·공포. 임화수, '한국반공예술인단'을 조직. 111편 제작. 조긍하
「곰」, 신상옥 「동심초」, 김기영 「십대의 반항」, 유현목 「구름은 흘러가도」
한국 최초로
민간 자율기관인 '영화윤리전국위원회'의 발족으로 영화검열업무가 동위원회로
이관
신상옥
「로맨스 빠빠」, 이성구 「젊은
표정」, 강대진 「박서방」, 김기영 「하녀」, 조긍하 「과부」
영화행정업무가
문교부에서 공보부로 이관. 이병일, '아시아제작가연맹' 부총재로 추대됨.
영화에 대한 특별행위세 부과를 반대하여 영화인들 가두데모 감행, 극장도
이에 동조하여 48시간 휴관. 5·16 군사혁명으로 서울시내 각 극장 5일간
영업정지. 「국립영화제작소설치법」이 제정·공포. 「오발탄」, 문교부 당국의 재검열 지시로 상영 중지.
문교부 고시 제148호에 의해 72개 영화사가 16개사로 통합·정비. 공연법이
제정·공포됨. 사단법인 '한국영화인협회'발족. 신상옥의 「성춘향」, 74일간의 최장기 흥행기록을 수립하는 동시에
38만명의 최고 관객동원기록을 수립. 이만희 데뷔. 79편 제작. 신상옥
「성춘향」, 강대진 「마부」, 유현목 「오발탄」, 신상옥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상록수」「연산군」, 김기영 「현해탄은 알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