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정치/국 제 정 치/현대의 국제정치/전후 국제정치의 특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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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후 국제정치의 특질[편집]

戰後國際政治-特質

제2차대전 후의 국제정치는 제2차대전의 성격과 과정 및 전쟁 종결의 형태에 의하여 크게 결정되었다. 그러므로 제2차대전의 성격과 그 과정(過程)을 살펴볼 의의가 있다 하겠다.

제2차대전의 성격과 의의[편집]

第二次大戰-性格-意義

제2차 세계대전은 전체적으로 볼 때 파시즘과 침략에 반대하는 민주주의 옹호의 전쟁이라고 설명된다. 2차대전은 영국·프랑스·미국과 독일·이탈리아·일본 등과의 제국주의 전쟁이었다. 즉 이 전쟁은 근대 후기의 후진국가형인 독일·이탈리아·일본이 그들의 국력이 충실해감에 따라 폭력적으로 국토를 넓히고, 국제질서를 그들 중심으로 새롭게 바꾸려는 침략적 팽창정책을 취함으로써 발단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성격은 근대 단일민족국가의 배타적인 자기확대의 전형적인 속성으로서, 이러한 점에서 보면 역시 제2차대전 발단까지의 국제정치의 주류는 선진 근대국가 대 후진 근대국가의 싸움이었다고 하겠다. 그러나 제2차대전은 1940년 이후 소련과 미국이 모두 참전하게 되고 또한 중국과 유럽 피점령국을 중심으로 한 기타 식민지 여러 민족의 민족해방전이 여기에 결합됨으로써 제국주의에 대한 반제국주의적 전쟁이라는 역사적 성격이 부여되었다. 제2차 대전이 제1차 대전과 다른 역사적 의의가 여기에 있다.

제2차대전의 결과[편집]

第二次大戰-結果

① 제2차대전 이후 자본주의 국가와는 이질적인 공산주의 국가가 소련을 중심으로 복수적(複數的)으로 형성되어 자유진영 국가와 대립·병존하게 되었다. ② 근대 단일 민족국가와는 유형(類型)이 다르며 동시에 영토가 넓고 인구와 자원이 많은 다민족국가, 즉 미국·소련·중국이 주요 대국으로서 국제정치에 등장하였다. ③ 이에 반하여 근대 국제정치의 주축을 이루었던 패전국인 독일·이탈리아 등은 말할 것도 없고, 승전국인 영국·프랑스도 결정적으로 약화되었다. ④ 식민지 종속국이 잇달아 독립하여 근대국가의 기반이었던 식민지 지배체제가 세계적으로 붕괴되어 갔다. ⑤ 전쟁에 희생되고 또 지하독립운동에 적극 참여했던 서구 자유진영 국가의 서민 대중들이 각기 사회적 운동을 통하여 정치에도 적극 참여함으로써 국제정치에 많은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전후 국제정치 발전의 특징[편집]

戰後國際政治發展-特徵

① 전후 국제정치에 있어서 공산주의 국가간의 상호관계는 근대 주권국가간의 관계로서는 규율하기 어려운 새로운 사태를 드러냈다. 뿐만 아니라 다른 민족국가에 비해서 압도적으로 우월한 미·소 양국의 등장은 사실상 근대국가 시대의 국제질서를 무효화할 여력이 충분히 있었다. 이와 같은 모든 요인은 전후의 국제정치를 소련을 세력핵(勢力核)으로 하는 공산진영과 미국을 세력핵으로 하는 자유진영으로 양분하여 대립케 하였다. 이러한 현상은 양극분화(兩極分化:bipolarization) 현상이라 불려지기도 하고 전후 미·소의 냉전현상이라 불려지기도 한다. ② 그러나 이러한 양극화 현상 가운데에서 근대적 대립관계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가령 자유진영 내의 미국과 프랑스와의 관계 또는 영국과 프랑스와의 관계라든지, 공산진영 내의 소련과 중국과의 관계 또는 소련과 알바니아와의 관계 등은 그와 같은 내부적 대립의 표현이라 할 수 있다. 전후 국제정치는 진영대 진영의 대립과, 진영 안의 내부적 대립을 동시에 내포하고 있다. 이와 같이 2중적 또는 과도기적 대립이 전후 국제정치의 특색이라 할 수 있다. ③ 경제적으로 볼 때 자유주의 국가와 공산주의 국가는 그 체제를 달리함은 물론 그들은 별개의 시장을 형성하고 있다. 근대 국제정치는 동질의 경제체제를 가진 국가들에 의하여 형성되는 단일시장을 기반으로 성립하였지만, 이에 반하여 전후 국제정치는 이질적인 국가군(國家群)에 의하여 형성되는 2개의 국제시장을 경제적 기반으로 하고 있다. ④ 근대 국제정치는 수개(數個)의 강대국간의 대립·항쟁을 주된 조류로 하였으며 그들의 행동원리는 고전적 의미의 세력균형주의였다. 그러나 전후 국제정치는 주로 지역적인 집단안전보장(集團安全保障) 체제에 역점을 두고 국가의 안전을 도모하고 있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와 이에 대항하는 바르샤바조약기구는 이러한 것의 대표적인 예가 된다. ⑤ 현대 국제정치에 있어서 전쟁수단의 발달은 전쟁의 존재의의를 사실상 상실하게 함으로써 근대 정치에서 볼 수 없는 새로운 양상을 나타내었다. 즉 제한전쟁(制限戰爭)이라는 새로운 전쟁양식으로 말미암아 초강대국인 미국이 월남전쟁에서 결정적인 승리를 얻지 못하였다는 역사적 사실은 현대 국제정치의 방향을 결정하는 데 중요한 구실을 하였다. ⑥ 이러한 현대 국제정치적 성격과 더불어 전후에 독립한 신생 제국은 미·소의 이데올로기적 대립 속에서 제3세력으로 발전할 수 있는 소지가 마련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들은 약소국들이기 때문에 군사·경제면에서 한계가 없는 것도 아니었다.

전후 국제정치의 방향[편집]

戰後國際政治-方向

양극화되었던 전후의 국제정치는 다극화(多極化:multipolarization) 현상을 뚜렷이 나타냄으로써 전후기의 종말과 새로운 시대의 서막(序幕)을 열고 있다. 즉 공산진영에 있어서 소련과 중국을 중심으로 한 분극화 현상과, 자유진영에 있어서 유럽의 통합으로 인한 서구세력의 부활 및 미국의 약화 현상을 들 수 있다.

공산주의체제는 경제력이나 핵무기를 포함한 군사적 실력을 착실히 강화하였다. 그러나 공산주의체제 내부에서 소련이 미·소를 중심으로 한 대국 일치의 정치에 집착하고 또한 대(對)자본주의 불신을 축(軸)으로 하여 공산주의 세계 체제를 기계적으로 통일·강화하려고 하는 데에 반하여, 독자적인 힘으로 혁명에 성공하고 건설과정에 새로운 문제의식을 가진 중국 등이 강력히 반발했다. 중국의 이러한 반발은 이데올로기적·군사적 대결로까지 발전함으로써 공산진영뿐만 아니라 국제정치 전반을 다양화시키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한편 전후 국제정치에서 단일민족국가로서 적응능력을 상실한 서구 여러 나라는 과거 식민지 위주의 경제체제에서 탈피하고, 동시에 영토·자원·인구면에서 압도적으로 우월한 미·소의 다민족 국가에 대항하기 위해서 국민경제를 지역경제로 통합하고, 궁극적으로 정치에 있어서도 지역기구를 정치제도화할 경향을 나타내고 있다. 이처럼 역사적 정치집단인 민족국가를 하위단위(下位單位)로 하고, 그 위에 수개의 하위 정치집단을 통합하여 다민족적 지역정치권을 지향하는 것이 전후기(前後期) 국제정치의 중요한 특징이다. 이러한 경향은 아랍·아프리카에서도 나타나고 있는 현상이다. 따라서 이러한 제 요인은 전후기의 양극적인 국제정치를 다원화시킴으로써 전후기를 종료시키고, 새로운 현대 국제정치의 시대를 촉진시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