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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종교·철학/세계의 종교/세계의 종교〔서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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世界-宗敎〔序說〕 인류의 종교적 발전은 평행하게 시대를 따라 흘러왔다. 아직도 고등문화 속에 남아 있는 자연민족의 신앙은 그 후에 일어난 보다 높은 종교의 막연한 근저가 되었다. 마적 외포(魔的畏怖), 무격적(巫覡的)인 신빙(神憑), 마적 열광과 황홀한 춤과 원시적 신비, 그리고 주술적이고 신성한 행사 등의 감정을 비롯하여 거기에서 일어나는 정령신앙(精靈信仰)이나 죽은 사람에 대한 의례(儀禮), 영혼숭배와 토테미즘(totemism), 요술사와 주술사, 복술·점술, 청정(淸淨)과 부정(不淨), 유치한 행위나 신성한 행위, 원시적 금욕, 공희(供犧)의 신비, 주물숭배(呪物崇拜) 등의 표상(表象), 그리고 자연주술과 모든 자연의 주적 영화(呪的靈化) 등의 표상은 종교 이전의 것들이다. 그리고 이런 것들로부터 서서히 나타난 것에는 숭고한 신성(神性), 신들의 숭배, 제사제도, 의례와 신전과 제사, 신성한 집단과 풍습 등의 표상이 있고, 또 이런 표상에 속한 것으로서 신화, 우주에 관한 계도적(系圖的)인 의례(儀禮)의 우화(寓話), 신화적인 원시적 사변(思辨) 등이 보여주는 넓은 상상의 활동세계가 전개된다. 이런 모든 요소는 서로 매우 다르나 전혀 개별적으로 연락 없이 집합한 것이 아니라 언제나 서로 관련하고 집결하여 하나의 그물〔網〕을 이룩하고 있기도 하여, 어떤 기후나 토지에도 놀랄 만큼 서로 비슷한 모습을 보인다. 이런 유사성이 참으로 그 근본에는 통일적이고 합일적(合一的)인 인간심리 일반의 기능이 있음을 쉽게 이해하게 한다. 이 자연적 신앙의 뒤를 이어 선종교(先宗敎)라고 부를 수 있는 보다 높은 것으로의 전이과정(轉移過程)이 있다. 이 전이는 서양 및 그것을 규정하는 그리스 문화에 나타났다. 기원전 800년부터 500년에 이르는 중요한 기간에 신학이 신화학(神話學)으로부터, 그리고 로고스(logos)가 신화(mythos)로부터 해방되었다. 그리고 신들에 관한 지식을 뜻했던 신학은 점차로 신에 관한 지식이 되는 동시에 형이상학(形而上學)의 최고점이 되기도 했다. 신앙은 신을 마적 외포의 영역으로부터 해방시켜 물리학(物理學)과 신비사상의 요소를 결합시킨 우주론(宇宙論)이 되었다. 예컨대 피타고라스, 헤라클레이토스, 크세노파네스, 아낙사고라스 등의 물리학은 모두 우주론적인 신학이었다. 이 신학은 점점 신화적인 요소를 극복 내지 배제하고 나아가서는 신들의 세계를 신적인 것의 이념(Theion)에 종합하려고 했다. 이것이 바로 절대자와 신성(神性)의 이념이 되었다. 따라서 신들은 그리스 비극작가(悲劇作家)들에게는 세계와 습관을 지배하는 통일적인 힘이었으며, 본래 다신교적(多神敎的)인 생각에서만 의의를 갖고 있던 신이란 표현은 절대적 신성이란 이념을 가리키게 되었다. 이것과 동시대적인 평행은 극동의 문화인 속에 있다. 피타고라스가 교단(敎團)을 창시한 것이 기원전 약 530년이었는데, 중국의 공자는 약 470년에 죽었고 공자와 동시대의 선배에 노자(老子)가 있었다. 중국의 고대사 시대는 이들보다 이전에 3세기가 지나고 있었다. 동양의 발전이 서양의 그것과 다른 독자성과 개별성을 보여주나 그 차이는 동일한 종속(種屬) 내의 차이에 지나지 않는다. 중국에서도 얕은 신화적 단계의 극복이나 종교의 확연한 도덕화나 절대자에로의 정진(精進)이 있었다. 공자가 합리주의로 흐른 데 비해서 노자는 '도덕'으로 기울어졌다. 서양 그리스의 아리스토텔레스의 합리주의적 유신론이 공자의 이론에 필적하고 헤라클레이토스의 로고스가 노자의 도(道) 사상과 맞먹는다. 노자나 공자는 다 헤라클레이토스나 플라톤에서 인정되는 내적 신비의 빛을 말했다. 이스라엘도 이 세기에 여호와의 자연신화를 깨고 유일신을 찾았다. 엘리야(Elijah)로부터 제이 이사야(Isaiah)와 에스겔(Ezekiel)에 이르는 동안 종족적 종교로부터 개인적인 주관적 종교에로의 전이(轉移)가 있었다. 또한 페르시아 조로아스터(zoroaster)의 종교개혁 준비와 그 성과는 기원전 약 800년부터 큐로스왕 시대에 이르는 기간에 악마신앙과 다신교의 안개를 걷고 예언자적 신신앙(神信仰)과 도덕적 상반의 별견(瞥見)과 역사의 조만간의 종말에 관한 순수한 종교가 출현했다. 이 시대에 평행해서 고대인도는 혼돈된 공희(供犧)에서 바루나(Varuna) 신앙을 성립시켰다. 더욱이 우파니샤드 경전의 내용은 그리스 신학의 그것과 다름이 없었다. 또 불타(佛陀) 시대에 일어난, 일체의 잡다(雜多)는 감각의 가상(假象)이며 무지(無知)에 지나지 않지만, 진지(眞智)는 운동·변화·성질(性質) 없이 시공(時空) 이외에 '제2자가 없는 유일자(唯一者)' 위에 나타난다는 사변(思辨)은 크세노파네스나 파르메니데스나 제논의 그것과 일치한다. 이것들은 모두 종교적 직관에 의한 신비적 몰아(神秘的沒我)의 특유한 체험을 말하는 것이다. 인도의 바라문(婆羅門) 세계에서 그 사변(思辨)과 함께 실천적 종교생활이 발전하였다. 높은 관념의 발전보다 높은 종교에 한걸음 다가섰다. 구제(救濟)·해방(解放)·해탈(解脫)의 깊은 종교적 삼매(三昧)와 금욕적 실천과 생활태도에서의 세간(世間)과 자연적 존재양식을 멸시하는 경향이 생겼다. 그리고 서양에서 그리스 고대철학의 학파란 것도 실은 종교적 교단이나 집회와 다름이 없었던 것이다. 피타고라스학파나 스토아학파가 그런 특징을 가졌었다. 올피그교의 전파 속에서도 종교생활이나 명상생활 또는 종교적 공덕(功德)을 위한 종교의 함양(涵養), 구제와 시간적인 것으로부터의 해방·해탈과 도덕적 수행(修行)의 종교적 관념이 당시 성행했다. 디오니소스 속에 이미 속죄나 영혼 윤회(輪廻)의 고뇌나 지옥과 극락 등의 인도식 관념이 환기되었다. 또 극동의 중국에서도 종교생활은 동시대에 발전하였으니 노자가 도에 살기 위해 세속과 명리(名利)를 버리고 성인(聖人)의 이상을 품고 은둔생활을 하였으며, 노자의 뒤를 이어 도교에의 귀의자(歸依者)들은 은둔생활 속에서 명상에 잠기고, 나중에는 그리스 학파를 방불케 하는 도관(道觀:승원제도)이 발전했다. 바라문이 사변(思辨)하는 절대자의 이념과 범(梵)을 탐구하는 금욕자의 종교생활이 인도에서 발전되고 성숙하였으나 범은 본래 의례의 노래나 기도, 혹은 성어(聖語)의 힘의 말 또는 말의 힘이었다. 그 힘은 제사자(祭祀者)가 사용한 것이고, 그는 그 힘을 신들의 것으로 돌리기도 하고 혹은 자연 속의 세력과 그 작용으로부터 오는 힘을 발견하고 한걸음 나아가서는 그 힘을 신비적인 세계력(世界力)이나 자연력으로 승화시켰다. 이것과 유사한 것이 또 동서(東西) 세계에서 발견된다. 즉 노자의 도(道)도 신비적·주술적 사상의 세계로부터 나온 것이다. 인간이 얻고자 하는 천지일체의 주술적인 신성한 힘이 도(道)에 관한 사변의 시발점이고 도는 이념과 신성 사이에서 일체의 존재와 생성(生成)의 원리가 되어 구제로서 소망되고, 도달될 종교적 관계의 대상이 되어 깊이 느껴지고 체험되었던 것이다. 이 노자의 도와 평행되는 개념이 그리스의 로고스이다. 로고스는 이성(理性)으로 해석되는데, 그것은 합리주의적인 해석으로 도와 같이 원래 번역이 불가능하며 다만 추측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 말(로고스)은 신비적 감정에 싸여 있다. 인도는 범(梵)의 길과 나란히 아트만(我)의 사변(思辨)이 있었다. 아트만은 서양에서는 프뉴마(pneuma)였다. 여기에는 개별적인 프뉴마와 보편적인 프뉴마가 있는데 후자가 신적(神的)인 영이었다. 프뉴마와 로고스의 서양에서의 사변은 동양에서의 아(我)와 범(梵)의 그것과 같고 내적으로 합일한다. 로고스·프뉴마는 인도에서와 같이 영원히 순환하고, 세계를 창조하고, 지배하고, 파괴하는 세계원리가 되며, 그 셋은 각자 활동의 세 율동(律動)으로 간주되었다. 종교는 서양에서 그리스도교의 형태에서, 그리고 그 뒤를 이어 이슬람교에서 강력한 세계력이 되고 또 발전력이 되었을 때에 비로소 일어났다. 그런데 이 점에서 동양은 그 특유한 역사관계에서 시간상 선진자(先進者)의 위치에 선다. 그러나 바라문교는 본래 불교에 대한 반동에서 일대 세력이 되고 서양 기원 초기에 성대한 발전과 대표적인 형태를 갖추었으며, 불교도 이 시대에 대승(大乘)에로의 위대한 내적 전환을 성취했다. 이 종교단계에서도 동서의 평행이 인정된다. 그리스도교는 교회적이 되어 신학·의례·설교·찬송가·시가(詩歌) 등을 진심으로 정신화하면서도 한편 의례와 교단적 경건을 위태롭게 하는 신비주의를 안고 있었다. 이 교회화한 신비가의 실례는 인도세계에서는 상갈라이다. 이는 서양의 신학자들과 같이 우주론적(宇宙論的)·물리신학적(物理神學的)으로 신을 증명하고 이 세계에서의 의례와 제사제도(祭司制度), 도덕적 명령과 의식의 법규, 천국과 지옥, 업과(業果)를 가진 영혼 윤회의 법칙과 천국지옥 및 일체의 사상(事象)에 대한 신의 통제와 지배를 인정하였다. 그리고 서양식 구세주의 신비에 관한 신앙이나 구세주의 인간에 대한 사랑의 종교심은 크리슈나의 신성(神性), 화신(化神)과 비슈누에서의 박가범(薄伽梵) 정신(淨身)과 그의 연애적 색채에서 발견되는 것이다. 또 그리스도교의 그리스도 숭배가 보여주는 감정적인 경건주의의 감동적 형식은 크리슈나 숭배에도 똑같이 존재한다. 그리스도교의 루터(Luther)와 동시대인 벵골의 종교개혁자 차이타니야(Caitanya)와 그 후계자들은 경건주의자였다. 그리고 그리스도교에서와 같이 신성이 인간화하는 교설(敎說)이 인도의 크리슈나 구주(救主) 숭배에 통하고 인성(人性)과 가신(假身)의 내재나 신성과 인성의 인격적 합일도 그 숭배에 있는 것이다. 또 신학적 기구의 모든 형식이 서로 상통하고 있다. 경전, 천계(天啓)와 이성의 관계, 해석법, 주석학, 호교론적(護敎論的) 방법, 학파의 전통과 논쟁, 학문의 전체계(全體系)에 있어서의 신탁적사변(信託的思辨)의 지위, 근래에 와서의 근대 물리학과 문헌적 비판에 대한 저촉과 양자(兩者)에 대한 호교론·타협론, 조정신학자와 실증적 근대주의자 등 동서가 평행한다. 이런 경향은 이슬람·유태교와 도교·유교에도 있고 불교에도 있는 것이다. 이상과 같이 종교간에 서로 통일적 측면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개별적으로 다른 제종교(諸宗敎)가 역사적으로 구성되어 온다. 제종교의 인구는 대체로 26억 5천만명으로 추정되고 포괄종교(包括宗敎)는 10개로 추산되어 있다. 그런데 이 통계에는 나머지 인구에 대한 종교 조사가 실시되어 있지 않고, 10개의 포괄종교로부터 분리된 종파종교(宗派宗敎)를 열거하지 않았다. 이 분립도 또한 역사적으로 동서에 함께 있어 왔다. 그러나 그리스도교 내에서는 수세기 동안 에큐메니즘(Ecumenism:一致運動)이 전개되어 오는데 그 말은 본래 '인간이 사는 땅 전체'를 가리키는 그리스어 '오이쿠메네(oikoumene)'에서 유래된 것인바 그리스도교는 우나상크타(Una Sancta:하나이고 성스럽다는 뜻)로 받아들이고 제교(諸敎)의 연합운동이 전개되어 왔다. 이와 평행하여 불교도 범세계적 운동을 일으키고 있으며 이슬람 세계에서도 아랍족의 연합과 범세계적 이슬람운동을 전개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아직도 종교간의 갈등과 투쟁은 식민지적 정치의 잔재 때문에 종식되지 않고 있다. 인도에서의 이슬람교와 힌두교의 대립에 의한 민족분열에 따른 두 국가수립이나, 같은 셈족에 속하는 이스라엘족의 유태교와 아랍족의 이슬람교 간 투쟁은 끝나지 않고 있다. 그러나 모든 종교는 세계의 평화를 원하고 종교 바깥에 있는 세계에 성스러운 세계를 알려 주고 있는 것이다. 종교는 또 다시 시민사회의 발생과 우주과학의 발달로 인해서 세계의 거리가 압축됨에 따라 특정한 교리(敎理)와 조직체를 갖춘 종교체의 탈피에로 전이한다. 말하자면 종교체가 무너지고 종교의 본연성(本然性)이 찾아진다. 종단 자체 속에서의 특수성보다 종교로서의 범세계성을 주창하기에 이르렀고 초월성(超越性)보다 내재성이 보다 강조되고 있으며, 종교는 지역과 민족· 국가보다는 시민적이 되려고 애쓰고 있다. 〈張 乘 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