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종교·철학/한국의 종교/한국의 도교/한국의 도교〔서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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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國-道敎〔序說〕 도교는 종교교단 체제나 교단을 갖춘 이른바 교단도교와 그렇지 못하고 민간 사이에서 풍속적으로 신앙되는, 말하자면 민중도교와 결사적인 민중도교로 개별할 수 있다. 교단도교는 경전으로서 도장(道藏), 사원으로서 도관(道觀), 승려로서 도사(道士:혹은 女冠)가 있고, 도사가 자기들의 주장이나 주의에 의해서 각기 종파를 세우고 또 그 종파에서 분파로 분립하는 체제와 조직을 구비한 것인데, 그러한 교단으로서의 도교가 우리나라에 창교되었는지 매우 의심스러우며, <삼국유사>에 오두미교(五斗米敎:敎가 아니라 道일 것이다)가 영류왕(榮留王) 7년(624)에 중국 당나라로부터 고구려에 도입되었다는 기록이 있으나 과연 그 오두미교가 교단으로서 행세하였는지 매우 의심스럽다. 설사 오두미교가 교단적이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장릉(張陵)이 창교한 오두미도가 될 수 없다. 왜냐하면 그는 한(漢)의 환제(桓帝:재위 147∼167) 때에 탄생하였고, 그가 창교한 오두미도가 그의 사후에 위(魏)의 조조(曹操)에 의해서 토벌되고 그 후 장성(張盛)에 의해서 천사도(天師道)로 개칭되어 계승됨으로써 교지(敎旨)를 바꾸었기 때문이다. 당(唐)대의 도교는 최초의 오두미도가 주장한 부록적인 질병구축과는 달리 도·불의 일치 또는 도·불·유의 3교 동근설만이 아니라 좌망론(坐妄論)이나 현강론(玄綱論)을 펼칠 정도로 도교의 철리를 정리한 것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당조(唐朝)에 있어서 신임을 얻은 것은 갈홍(葛洪:東晋人)이 세운 모산파(茅山派)의 도교였다. 이런 점을 감안할 때 우리나라에 최초로 도입되었다는 오두미교는 장릉의 그것이 아니었음을 짐작하게 한다. 그리고 고구려의 연개소문이 국왕에게 드린 청으로 당의 도사 숙달(叔達) 등 8명이 내조하여 사찰에 머물면서 도덕경을 강의하였다고 하나, 그 사찰인 도관에 소속되고 결사체를 이룬 도교도가 있었는지 여부는 알 수 없다. 또 도덕경이라고는 하나 그 경만이 도장으로 쓰였다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고려의 도교는 송나라 휘종(徽宗) 대관(大觀) 4년(1110:고려 睿宗 5년에 해당됨)에 도사 2명이 내조하여 복원궁(福源宮)을 세우고 제자를 선택하여 서도(書道)를 가르친 것이 그 시초이다. 이 궁은 국가가 마련한 도관으로서 재초(齋醮)의 장소이고 거기에 우류(羽流:道敎徒) 10여 명이 있었는데, 재초는 송조의 그것을 모방한 것이었다. 그 이전에도 현종(顯宗)·문종(文宗)·선종(宣宗)·숙종(肅宗) 때에 구정(毬庭)에서나 회경전(會慶殿)에서 초제를 올렸는데 초제의 대상은 태일(太一)이었다. 그런데 재초의 장소가 곧 도관이었던 것 같다. 복원궁 외에도 대청관(大淸觀)·정사색(淨事色)·구요당(九曜堂) 등은 도관으로서 초제의 장소이고 거기에 우류가 머물렀다. 또 초제를 정종(靖宗)이 남교에서, 예종이 남단에서 의종이 내전에서 올렸는데 이 장소는 도관이 아니었던 것 같고 노인성(老人星)이 그 제의 대상이었다. 이 별은 수성(壽星)으로서 천하가 태평한 때에 나타나고 사람들의 소원달성을 위한 기도의 대상이었으며 7복신(福神) 중 하나였다. 그리고 북두(北斗)도 초제의 대상으로서 죽음을 관장하는 신이고, 남두(南斗)는 생명을 다스리는 사명신(司命神)이었다. 따라서 사람은 어머니의 태내에 머물게 되자 모두 북두부터 남두에로 향하므로 북두에 소원을 아뢴다. 이 신앙에서 사명신이 세상에 나타나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런 관제의 교단도교의 형세는 조선에서도 다름이 없었다. 도관은 소격서(昭格署)가 되고 여기에 전대(前代)의 여러 재초소가 합쳐 하나가 되었다. 관리인 도사가 배속되고 그에 의해서 초제가 집행되었으나 초제는 전대와 다름없이 병환이나 재난을 없애거나 미리 막고 국가안태를 기원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그런데 도교는 때때로 주자학(朱子學)과 대립하여 세력이 꺾였다. 이상의 교단도교는 역대의 중국도교와 같이 어떤 개인에 의해서 창교된 것이 아니라 국가의 제례를 위한 일반 조정기구(朝廷機構)의 하나에 불과했고 한 왕조에서도 국왕의 신봉 여부에 따라 흥쇠를 반복했었다. 교단도교가 전래되기에 앞서 중국인 굴원(屈原)이 "진인(眞人)의 체덕(體德)을 귀히 여기고 왕세(往世)의 등선(登仙)을 부러워한다"고 말한 후세의 단정파(丹鼎派) 도교의 방술과 신선 또는 성상(星相)·복서(卜筮)·점험(占驗)·숙명(宿命)·수선(修仙) 등의 신앙이 일찍이 우리 고대사회에 전파되어 민중 사이에 유행되었으니 대조(大鳥)를 타고 하늘로 날아가는 인물이 그려져 있는 고구려의 강서 고분벽화(江西古墳壁畵)라든지 백제의 와전 속의 산경전(山景塼)이라든지 혹은 신라의 선도성모(仙桃聖母)나 서왕모(西王母) 등의 신앙이 교단도교 이전의 것들이다. 선도성모는 날아다니는 여자 선인이고, 서왕모는 득도하거나 선인이 된 여자들을 통솔하는 최고의 선인이며, 남자의 최고 선인 동왕부(東王父)와 함께 음양(陰陽)의 부모이고 천지의 본원이다. 17세의 몸으로서 홀로 석굴(石窟) 속에 들어가 나흘 동안 몸을 깨끗이 하고 하늘에 맹세하면서 수선(修仙)하고 있던 김유신(金庾信)에게 갈색 옷을 입은 노인 난승(難勝)이 나타나서 방술(方術)의 비법을 가르쳤고, 연박산(咽薄山) 깊은 산골짜기에 들어가서 향불을 피우고 기도하던 김유신의 보검(寶劒)에 영광(靈光)이 실리고 사흘되는 날 밤 허성(虛星)과 각성(角星)의 빛이 그 칼 위에 드리우니 보검이 저절로 움직이는 듯하였다는 것은 수선의 방술과 선인의 출현에 따르는 천인감응(天人感應)사상을 보여 주며 단정파의 신앙을 방불케 한다. 노인 출현의 신앙은 신인(神人)신앙을 일으키기도 한다. 보장왕이 도교에만 혹했을 때에 신인이 고구려의 마령(馬嶺)에 나타나서 그 나라 사람에게 너의 나라가 얼마 못 가서 망하리라고 말했다는 신인 출현이 바로 그 예이다. 세시적(歲時的)인 도교로서는 정월에 수성(壽星)·선녀(仙女)·직일신장(直日神將)의 그림(歲畵)이나 도끼와 절월(節鉞)을 들고 있는 김(金)·갑(甲)의 두 장군이나, 갈(葛)과 주(周) 두 장군의 문배는 모두 민간에 유행하였던 도교적 신앙이고 모두 벽사의 신앙적 행위이며, 부록파 계열의 신앙에 따른 것이다. 단정파의 장생불사(長生不死)에 관한 도교적 복이(服餌)는 6월에 황제(黃帝)에게 제사를 드리고 옥추단(玉樞丹)을 만들어 임금에게 바치면 왕은 그것을 신하에게 각각 3개씩 하사한 일이나 납일에 각종 청심환·소합환을 만들어 경향 각지의 집집에 주어 쇠약자를 소생시킨 것이나 중국에 간 사신들이 신단(神丹)을 얻어서 복용하였다는 것 등이다. 신단에는 9가지가 있어 9단이라고도 불리었다. 약 이외에도 장생하는 길은 단오날에 처녀 총각들이 창포를 뜯어다가 물에 끓여 머리를 감고 그 뿌리의 흰 부분 너댓 치를 깨끗이 닦아 끝에 붉은 칠을 해서 머리에 꽂거나 허리에 차는 법도 있고, 복날에 개를 잡아 삶아서 국을 끓여 먹고 양기를 돕는 것도 장생하는 몇 가지 법이다. 위의 두 가지 형 중 앞의 것은 국가가 설정한 제사예절로서 모두 정치적 의의를 가진 것을 제도화한 것이고 뒤의 것은 그런 것과 관계없이 자유로운 숭상인데 양자가 다 도교적 이치를 결여하였다. 이치적 도교사상은 소위 선파(仙派)니 7현(七賢)이니 청담가(淸談家)니 또는 단학파라고 일컬어지는 사람들에 의해서 전개되었다. 신라에 최승우(崔承佑)·김가기(金可紀)·자혜(慈惠)·최치원(崔致遠) 등이 있었고 고려조에 강감찬·한유한(韓惟漢)·이약곽(李若郭)·최당 등이 있었는데 선파(仙派)라 불려진다. 조선조에는 20여 명의 단학파가 생겼는데 남추·정염·전우치(田禹治)·조여적(趙汝籍)이 대표적인 인물들이었다. 조여적은 단군신화에 도교 연원을 두고 중국의 선인들과 연결하는 한편 신라의 최치원을 한국도교와 동방단학(東方丹學)의 비조로 삼고 송(宋)의 장군방(張君房)이 <운급칠참>을 저술한 것같이 <청학집(靑鶴集)>을 저술했다. 또한 조선시대에는 기타 여러 도교서가 출간되었다.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에 이르는 동안에 선·불·유의 교지를 융합하고 무식계급을 교도로 삼은 결사적 민중도교가 속출하였다. 그 중에서도 태을교(太乙敎)는 수업(修業)을 쌓고 신앙이 돈후하면 상제가 하강하여 친히 개안법·축지법(縮地法)·변신법(變身法) 등의 비법을 주실 것이라고 주장했다. 전자는 앉아서 천만리 밖의 사물을 볼 수 있는 법이고, 중자는 땅을 주름잡아 순식간에 만리의 먼 곳에 갈 수 있는 법이며, 후자는 자기의 신체를 마음대로 변화시켜 싸움터에서 즉각적으로 나무나 돌 혹은 흙덩어리로 변하여 적탄(敵彈)을 면할 수 있는 법이다. 또 이 교는 신앙이 돈독하고 수양을 쌓으면 암중(暗中)에서도 광명하고 공중비행도 자유자재로 할 수 있다는 것을 주장했다. 그리고 교도들은 깊은 밤중에 등불을 끄고 벽을 향해서 정좌(正坐) 명목(瞑目)하여 주문을 반복 독송하거나 무념 무상의 경지에 들어간다. 이렇게 하여 점점 신앙이 두터워지면 도교는 기도문을 외우는 수련을 거쳐 마침내 앞에서 말한 3법을 얻게 되고 실제로 신화(神化)하기에 이른다. 이런 교지 외에 후천선경(後天仙境)·거병해원(去病解寃)의 교지가 있다. 태을교와 같은 조직체를 이룬 민중도교가 1900년에서 1935년 사이에 이곳저곳에서 생겼다가는 없어지곤 했었다. 그러나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중국의 종교정책에 의해서 비밀결사체가 된 민중도교 중 일관도(一貫道)가 중국으로부터 귀국한 한국인에 의해서 전래되었다. 그 일관도는 명(明)·청(淸)의 전환기에 사람들에게 선을 권하고 중생을 안위하며 세상을 구하는 염원으로 일어난 선천도(先天道)가 청(淸)나라 강희제(康熙帝)의 포교금지에 따라 그 이름을 버리고 개명한 비밀결사체이다. 개명할 때에 여러 분파로 분립하였는데 구궁도(九宮道)도 그 중 하나이며, 이 도는 보제불교(普濟佛敎)·보화불교(普化佛敎)·보도불교(普渡佛敎)·용화불교(龍華佛敎) 등으로 다시 분립되었다. 일관도와 함께 보제불교가 오늘날 우리나라에서 포교하고 있으며 보제불교는 재한(在韓)화교들의 교도를 포섭하고 있다. 또한 일관도는 도덕회(道德會)로 개명하였고 신도는 한국인들이다. 이 회는 국제도덕협회·대한도덕회로 분립되었다. 이 외에도 선녀교(仙女敎)·도학교(道學敎)·도교(道敎) 등의 소교파가 있다. 이들의 교지는 구구하나 도덕회 계열이 건실한 이치를 펼치고 있다. 도교는 이 길이 공맹(孔孟)의 가르침에 의한 참된 천도(天道)이고, 종교가 아니라고 말하나 실제로는 유가의 윤리, 도교의 우주관, 불교의 경전 등을 합치고 그 위에 민간의 각종 신앙을 가미하고 있다. 이 도교들은 유·불·도 3교 위에 그리스도교·이슬람교를 합해 5교 귀일을 표방하고 있으며, 숭배대상도 많지만 그 중요한 것은 무생노모(無生老母)·미륵·여동빈(呂洞賓)·관제(關帝)·관음·공자·달마·그리스도·마호메트 등인데, 관제를 특히 봉안하는 단체로 관성교(關聖敎)가 있다. 이 교는 임진왜란 때부터 도통을 이어 온다. 도교의 수양은 내외의 양공(兩功)으로 나누어지는데 내공은 자기수양이며 외공은 사람들을 구하고 세상을 제도(濟度)하는 것으로 선종(禪宗)의 자리(自利)·이타(利他)나 전진교의 진공(眞功:自利)과 진행(眞行:利他)과 비슷하다. <張 秉 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