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한국미술/미술의 종류/서 예/서예의 기초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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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법[편집]

書法

문자를 쓰는 데에 필요한 점화(点畵), 문자를 쓰는 방법, 붓을 쥐는 방법, 운필법(運筆法)이 좋은 방법을 말한다 문자는 오랜 서예의 역사를 배경으로 아름답게 형성되었다. 그 동안 걸출한 천재에 의하여 무상(無上)의 방법이 나타났고 또한 많은 사람들의 눈을 통하여 모범이라고 할 만한 글씨가 전해졌다. 물론 방법은 일정불변한 것은 아니고 학문의 발달, 서가(書家)의 성격에 따라 저마다 독특한 서법이 나타나고 있다.

법첩[편집]

法帖 습자(習字)의 자습서로서 또한 감상용으로서 고인의 우품(優品)을 돌이나 나무에 파서 새기고, 이것을 인쇄하여 책으로 만든 것을 말한다. 상각(上刻)한 것이 일인인종(一人一種)이라면 단첩(單帖), 많은 사람의 글씨를 모은 것이라면 집첩(集帖)이라 한다. 단첩으로서는 왕희지(王羲之)의 <난정서(蘭亭序)>나 당 사대가(四大家)의 해서작(楷書作) 등이 저명하다. 집첩으로서는 송의 <순화각법첩(淳化閣法帖)>, 명의 <정운관첩(停雲館帖)>, <희홍당첩(戱鴻堂帖)>, 청의 <삼희당첩(三希堂帖)>, <여청재첩(餘淸齋帖)> 등이 알려져 있다. 더욱이 남당(南唐)의 후주(後主)가 고금의 서적(書跡)을 돌에 새겨서 제작한 <승원첩(昇元帖)>이 집첩(集帖)의 시조로 알려지고 있다.

임서[편집]

臨書 자습서를 곁에 놓고 보면서 쓰는 것, 그리고 그렇게 쓴 글씨를 말한다. 학서(學書)에 가장 많이 쓰이는 방법으로서, 효과가 크기 때문에 초심자, 대가의 구별없이 행해진다. 임서에는 형림(形臨)과 의림(意臨)이 있다. 형림은 자형(字形)을 충실하게 보고서 쓰는 것이며, 의림은 그 글씨의 뜻(마음)을 파악해서 표현함에 중점을 둔 방법이다. 그러나 글씨의 정신은 자형을 통하여 해석·표현되어야 하므로 앞뒤가 서로 연결되는 것이라 한다. 이 밖에 배림(背臨)이라는 방법이 있다. 그것은 자습서를 잘 관찰하고서 충분히 그 뜻을 배우고 난 다음, 붓을 내릴 때에는 자습서를 보지 않고서 쓰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비교적 솜씨가 숙달되고 난 다음이 아니고서는 어려운 방법이다. 더욱이 자습서로는 양서의 선택이 중요하다. 서성으로 알려졌던 왕희지의 글씨는 한국, 중국, 일본의 구별없이 어느 시대에나 본보기가 되어 있다. 이처럼 고인의 우품(사진:법첩에 의한)을 자습서로 할 경우와 스승의 육필(肉筆)을 자습서로 할 경우가 있다.

자운[편집]

自運

임서에 대한 말로서 타인의 글씨를 참고로 하지 않고 자기의 힘으로 공부하고 연구하여 제작하는 것과 그 작품을 말한다. 깊이 글씨를 배운 사람이 아니고서는 개성이 풍부한 작품을 쓰는 것은 곤란하다. 자운의 경우 문자 하나하나를 아름답게 정감을 담아 쓴다는 것이 중요하지만 전체의 힘의 균형을 조정하는 것도 필요하다. 전체를 잘 마무리하는 것을 장법(章法)이라 한다.

낙관[편집]

落款

낙성관지(落成款識)를 약한 것이다. 서화의 일단에 서명·압인하고 완성이 뜻을 표시하는 것을 말한다. 상세하게는 시구(詩句), 연월(年月), 간지(干支), 쓴 장소, 서사(書寫)의 이유, 증여할 상대방의 성호(性號)를 써넣어 서명·압인할 경우도 있다. 현재는 다만 호만을 쓰는 일이 많고, 도장 하나를 눌러서 대신할 경우도 있다. 중국회화에서는 원 이전은 거의 낙관을 하지 않았으며, 이따금 낙관할 때에는 화면을 손상시키지 않도록 돌 틈새 등에 숨겨 썼다. 이것을 은낙관(隱落款)이라고 한다.

전각[편집]

篆刻 서화 등의 낙관에 쓰이는 도장에 전서(篆書)를 새기는 것을 말한다. 현대에는 방촌(方寸)의 세계의 생명의 약동을 표현하는 예술로서 글씨의 한 분야를 차지하고 있다. 어떠한 서체이건 좋으나 작서를 새길 경우가 많으므로 전각이라 한다. 돌·나무·대나무 등의 인재(印材)에 문자를 반대로 쓰고서 인도(印刀=鐵筆)를 가지고서 새긴다. 문자가 붉게 바탕이 희게 압인되는 것을 주문(朱文)이라 하고, 그 반대를 백문(白文)이라 한다. 주문으로 새기는 것을 양각(陽刻), 백문으로 새기는 것을 음각(陰刻)이라고도 한다. 또한 각자(刻字)를 전각가(篆刻家), 새긴 것을 인장(印章)이라 하고, 역대의 고인(古印), 각 가각인(家刻印)의 인영(印影)을 모은 것을 인보(印譜)·인집(印集)·인존(印存)이라 부르고 있다.

묵적[편집]

墨蹟

중국에서는 단순히 필적(筆蹟)을 말하는데 한국이나 일본에서는 임제(臨濟)를 주로 한 선종승려의 필적을 특히 묵적이라 부르고 있다. 그 내용은 중국 및 한국의 선승이 쓴 인가장(印可狀)·게송·법어(法語)·자호(字號)·진도어(進道語)·시(詩), 액자(額子)·서장(書狀) 등 전부를 말한다. 이 묵적은 정통적인 서법에 의한 것은 아니나 엄격한 수도에 단련된 고승의 인간성이 보는 사람에게 강한 인상을 준다. 이러한 특수한 자유로운 서풍(書風)과 선(禪)의 정신이 존중되어 감상용으로서 중요한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원오극근·허당지우(虛堂智愚)·요암청욕(了庵淸慾) 등의 묵적이 존중되고 있다.

첩학·비학[편집]

帖學·碑學 청조(淸朝)로 들어서면 진첩(晋帖)이나 당비(唐碑)의 연구가 성하게 되고, 건륭(乾隆) 가경기(嘉慶期)가 되자 교묘한 구조와 풍부한 정신을 가진 고전주의가 성립되었다. 이른바 첩합(帖學)의 개화로 유용(劉鏞)·양동서(梁同書)·왕문치(王文治)·성친왕(成親王) 등은 법첩을 본으로 삼은 첩학파(帖學派)의 사람들이다. 한편 금석학(金石學)의 연구가 진전되자 종래의 첩학과 같이 몇 번이나 번각(飜刻)을 거듭한 법첩보다도 진적(眞跡)에 가까운 비(碑)의 탁본(拓本)을 배워야 된다는 비학이 생겼다. 등석여(鄧石如)·이병수(伊秉綏)·진홍수(陳鴻壽)·오양지(吳讓之)·조지겸(趙之謙) 등이 비학파에 속하는 사람으로 그들은 진한(秦漢)의 고비(古碑)를 연구하여 전서·예서(隸書)에 새로운 업적을 세웠다. 아울러 학서(學書)의 방법을 주장한 것이다. 첩학파는 행서(行書)·초서(草書), 비학파는 전서·예서·해서를 주제로 한 표현이 많다.

감정[편집]

鑑定

미술품 등의 진위(眞僞)·양부(良否)를 감별판정(鑑別判定)하는 것을 말한다.

탁본[편집]

拓本 금속·기와·돌·나무 등에 새겨진 그림이나 문자를 베껴내는 것으로서 그 방법에는 습탁(濕拓)과 건탁(乾拓)의 두 가지가 있다. 습탁은 사물에 직접 종이를 대고서 물을 칠한 다음 밀착시켜 솜뭉치 먹칠을 해서 두들기는 방법이다. 건탁은 석화묵(石花墨)으로 종이 위에서 문질러 베끼는 방법으로서 물로 적시지 않는 것, 급히 할 필요가 있을 때에 편리하다. 중국에서는 당시대부터 탁본의 기술이 행해져 송시대 이후의 법첩제작에 공헌하였다.

쌍구진묵[편집]

雙鉤塡墨

뛰어난 필적 위에 얇은 종이를 얹어 놓고 문자의 윤곽을 사서(寫書)해서 그 속에 먹칠을 한다. 이것은 중국 당시대에 발달한 일종의 복제법(複製法)으로서 이 방법에 의하여 만들어진 것을 쌍구진묵본(雙鉤塡墨本)이라고 한다.

우필[편집]

祐筆

주인을 대신하여 서장(書狀)이나 각종 문서를 대필하는 직명으로서 그 필적을 우필서(祐筆書)라 부른다. 그 글씨는 개성(個性)이란 것을 압살한 독특한 형(型)을 가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