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한국미술/미술의 종류/회 화/회화의 테마

위키문헌 ― 우리 모두의 도서관.

회화의 테마[편집]

회화의 테마[편집]

회화는 어떠한 목표를 가지고 무엇인가를 그리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 그 '어떠한 목표' 즉 표현의 과제나 주제를 테마라 하고 '무엇인가'를 모티프(Motif=素材)라고 한다. 따라서 평화란 테마에 대해서 어떤 사람은 어린이와 비둘기를 모티프로 하여 그리거나, 어떤 사람은 화원과 나비를 모티프로 하여 그리거나 한다. 이상과 같이 엄밀하게 말하자면 테마와 모티프와는 별개의 것인데, 일반적으로는 테마와 모티프를 합쳐서 제명(題名)을 붙이거나 분류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따라서 여기에서는 편의상 회화를 인물화, 나체화, 생활화, 풍자화, 환상화, 신화(神話)나 이야기의 그림, 전쟁이나 사건을 그린 그림, 종교화, 풍경화, 꽃을 주제로 한 그림, 동물화, 정물화, 비구상회화로 나누어서 그것들이 어떻게 발전되어 왔는가를 살펴보기로 한다.

인물화[편집]

人物畵

인간에게 가장 친근감이 있는 대상은 역시 인간이다. 따라서 유아의 그림이 그렇듯이 원시시대의 인물화는 단순한 인간의 기호(記號)였을 것이다.

아마도 특정한 인간을 목표로 그렸다면 그것은 이집트 왕(王)의 미라의 관(棺) 등에 그려진 왕의 얼굴 정도였을까. 기원전 2세기경 이집트의 미라가 왕성하게 그려졌던 시기의 <아르테미도로스의 초상> 같은 경우 매우 훌륭한 표현으로 되어 있다.

사실적인 표현이 진보한 르네상스에서 17세기·18세기에 걸쳐서는 종교화 외에 초상화의 걸작도 지극히 많다. 다빈치의 <모나리자>를 비롯하여 프란체스카의 <우리비노공(公) 부처상(夫妻像)> 등 초상화의 걸작이 있다.

푸앙아이크의 <추기관 아르베르 플로라>, 홀바인의 <젠 시모아>, 벨라스케스의 <교황 이노센트

10세>, <마리아 테레사의 초상>, <자화상>, 렘브란트의 <자화상>을 비롯하여 <야경>, <직물조합의 간부들> 등의 군상(群像)에서 <유다의 새색씨>, <어머니의 초상>, <철모의 남자> 등의 매우 많은 초상화, 할스의 <유쾌하게 술마시는 사람>, 반다이크의 <영국왕 찰스 1세의 초상>이나 왕자, 공주의 초상, 생활적인 군상이나 모성상을 취급한 것은 르낭의 <농부들의 식사>, 베르메르의 <레이스를 짜는 여인>, 후세로 내려와서 샤르댕의 <식모아가씨>, 고야의 <카를로스 4세의 가족>, <옷을 입은 마하>, <데 퐁테호스 후작부인> 등이 있다.

19세기 고전파에서는 앵그르의 <르블랑 부인>, 다비드의 <서재에 있는 나폴레옹>, 코로의 <푸른 옷을 입은 부인> 등 훌륭한 초상이 있고, 근세에 들어와서는 마네의 <에밀 졸라의 초상>, <보크>, 인상파에는 드가의 <마로 양(孃)>, <무희>, <뒤란티의 초상>, 로트렉의 <춤추는 자느 아브리르>, 르누아르의 수많은 처녀의 초상, 세잔의 <쇼케의 초상>이나 <밀집모자를 쓴 남자> 등이 있다.

고호의 <탕기 아저씨>, <가셰박사의 초상>, 모딜리아니의 <마리> 등의 여인이나 남자의 초상, 마티스의 <흰깃털 모자>, 피카소의 <아르르캉> 등 개성적인 표현으로 그려져 있다.

중국의 인물화로 뛰어난 것을 들면 고개지(顧愷之)의 <여사잠도권(女史箴圖卷)>, 전염입본(傳閻立本)의 <역대 13제왕도권(歷代十三帝王圖卷)>, 뚠황벽화(敦惶壁畵)에서 볼 수 있는 인물, 직공도권(職貢圖卷), 석격(石格)의 <이조조심도(二祖調心圖)> 등이 있다.

한국에서는 삼국시대(三國時代)의 고분벽화(古墳壁畵) 중의 인물화를 비롯하여, 백제 아좌태자(阿佐太子)가 그렸다는 일본의 국보로 알려진 일본 <쇼토쿠태자(聖德太子)의 초상화>, 고려시대의 <안향진영> 등이 유명하고 조선시대로 들어와 <이현보(李賢輔) 초상>, 단원(檀園)의 <취적도(吹笛圖)>, 신윤복(申潤福)의 <여인도(女人圖)>, 장승업(張承業)의 <송하승면도(松下'僧眠圖)> 등 풍속적인 인물화가 있다.

나체화[편집]

裸體畵

남녀의 나체 그 자체를 테마로 그리기 시작한 것은 인물화보다 훨씬 뒤의 일이다. 그리스의 항아리 등에는 선묘(線描)로 된 나체를 볼 수 있고 폼페이 벽화에도 보인다. 르네상스에서 바로크에 걸쳐서도 자주 나체를 모티프로 한 작품이 나오는데, 그것들은 신화나 종교를 테마로 한 것이다. 우선 수많은 남자들을 주로 그린 나체는 미켈란젤로의 대벽화에서 볼 수 있다. 더욱이 <최후의 심판> 같은 것은 훌륭하다. 그리고 그것은 그레코의 <라오콘>으로 이어진다. 티치아노나 루벤스에서 볼 수 있는 여인의 나상(裸像)은, 종교나 신화의 이름을 빌린 풍만한 여인의 나체상이 수없이 등장하지만 고야의 <벌거벗은 마하>는 나체 자체를 테마로 한 것이며, 앵그르는 여체(女體)를 고전적으로 그렸고, 근세로 들어와 르누아르는 풍만한 나상을 그렸다.

생활화[편집]

生活畵

생활의 양상을 그림으로 표현한 것은 비교적 오랜 일이다. 이집트 벽화 등에도 고기를 잡거나 소를 모는 따위의 장면을 볼 수 있다. 르네상스 시기의 브뤼겔은 정열을 가지고 농민의 생활을 그린 <눈 속의 사냥꾼> <농민의 춤> 등 많은 명작을 남겼다. 17세기의 네덜란드에서는 신변의 풍경이나 생활에 눈길이 돌려져 풍속화의 한 영역(領域)이 개척되었다. 19세기가 되자 바르비종파(派)의 사람들이 전원(田園)을 동경하여 이주(移住)하고 거기에서 밀레는 농민들의 소박한 생활을 경건한 사랑의 기원(祈願)을 담아 <만종(晩種)>이나 <이삭줍기> 등을 그렸다. 그에 반해서 도미에는 생활의 내면에까지 파고들어서 유니크한 필촉(筆觸)으로서 생활의 진실을 표현하였다. <삼등열차> <세탁부>나 <관극> 등이 있다. 인상파의 마네, 드가, 로트렉 등이 그려낸 생활화는 모파상이나 졸라 등 파리인의 세계를 그린 것이라 하겠다.

한국에서는 삼국시대의 고분벽화 등에서 당시의 생활의 일면을 엿볼 수 있을 뿐이고, 본격적인 풍속화가 그려진 것은 조선시대에 이르러서이다. 김홍도(金弘道)의 <무악(舞樂)>, 신윤복(申潤福)의 <탄금도(彈琴圖)>, 김득신(金得臣)의 <파적도(破寂圖)> 조관아재(趙觀我齋)의 <장기> 등이 있다. 더욱이 김홍도의 작품은 풍경과 융합된 한국사람의 생활감정이 생생하게 잘 살려져 있다.

풍자화[편집]

諷刺畵

일상에 대한 날카로운 관찰력에서 풍자가 나온다. 그렇다고는 하더라도 그것이 예술적으로 높여지기 위해서는 대상에 대한 애정과, 예술적인 양심과 기술이 요구되었다. 유럽에서는 브뤼겔, 보슈·고야·도미에 등의 작품에 풍자적인 경향이 짙다. 한국회화에서는 우선 김홍도와 신윤복 및 김득신을 들지 않을 수 없다. 이들은 하나같이 풍속화 속에서 서민감정을 재기 넘친 풍자로 표현하고 있다.

환상화[편집]

幻相畵

유럽에서 지극히 환상적인 세계를 표현한 것은 르네상스의 화가 보슈이다. 그의 <쾌락(快樂)의 나라>를 보고 있으면 북국(北國)의 기괴하고도 동시에 동화적인 환상이 느껴진다. 신비사상가 블레이크의 작품에서는 시혼(詩魂)을, 르동의 작품에서는 상징성(象徵性)을, 샤갈·클레·미로 등에게서는 동화적인 세계를 느낄 수 있고, 초현실파 에른스트의 <나의 뒤에 잠이> 등에서는 잠재의식의 신비성이 느껴진다.

한국에서는 삼국시대의 고구려·백제의 고분벽화 등에서 이러한 것을 엿볼 수 있다.

신화·이야기의 그림[편집]

神話-

그리스신화 등은 항아리 등 도자기의 그림으로서 자주 나타나는데, 르네상스 이후도 종교화와 함께 유럽 미술의 주요한 테마였다. 이것은 그리스 신화가 유럽인의 핏속에 계속하여 흐르고 있음을 드러낸 것이라 하겠다. 신화가 유럽 회화에 당당하게 등장한 것은 보티첼리의 <봄> 이나 <비너스의 탄생>이라 보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들은 지극히 섬세하고 장식적으로 그려져 있다. 코레조·티치아노의 신화그림은 그러한 테마를 빌려 여인의 나체상을 그렸다고 할 수 있겠다. 똑같은 사실을 루벤스가 그린 바쿠스의 제전과 같은 경우에도 말할 수 있다. 난숙한 나체의 남녀들이 미친 듯이 춤추는 세계는 발군(拔群)의 기술을 가진 루벤스에게는 더할 나위없는 좋은 소재였을 것이다. 푸생은 고전적이고 목가적으로 <오르페와 유리디스> 등을 그리고 있다. 낭만파인 화가 들라크루아는 <단테와 비르지르>등 문학적인 취제(取題)가 많으며, 신비화가 모로도 살로메를 그린 대표작이 있다. 페르시아, 인도의 삽화(揷畵)는 전부 이야기를 그린 정밀화(精密畵)이다. 이것들은 이야기의 줄거리를 따라 펴가면서 보는 그림과 글의 총합적인 작품으로서 귀중한 예술이다.

전쟁·사변의 그림[편집]

戰爭·事變-

전쟁 양상이나 공물(貢物)을 진상하는 장면 따위는 앗시리아의 부조나 이집트의 벽화나 그리스 도자기의 그림 등에 등장하는데 대화면(大畵面)의 그림으로서는 르네상스 시대 우첼로의 <산로마노의 전쟁>을 들 수 있겠다. 17세기에 루벤스는 <아마존의 싸움>을 소용돌이 같은 구도(構圖)로 유동적으로 그리고 있는데, 전쟁의 극적인 정신의 고조성(苦潮性)을 격렬한 빛깔이나 명암의 대비로 그린 것은 아무래도 19세기의 들라크루아를 들지 않으면 안 된다. <키오스 섬의 학살>이나 <자유의 여신> 등은 그의 대표적인 걸작이다. 들라크루아는 <메뒤스호(號)의 뗏목>을 그린 제리코와 함께 유럽 미술의 로망티슴을 대표한다. 고야는 또한 <몽크로와의 학살>이나 판화집(版畵集) <전쟁의 참화> 등 전쟁의 비참상을 예리하게 파헤쳤다.

종교화[편집]

宗敎畵

그리스도교 관계의 회화는 우선 비잔틴의 이콘(icon)과 모자이크에서 비롯된다. 이콘은 그리스도나 성모들을 판자 위에 예배의 대상으로서 그린 것을 말한다. 조토에 의하여 열려지는 르세상스는 많은 종교화의 걸작을 남겼는데, 프라 안젤리코나 라파엘로는 그리스도교의 친밀성 있는 온화함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과 그밖의 것은 깊은 애정을, 그리고 미켈란젤로가 그린 시스티나 예배당의 대벽화는 격렬한 사랑을 표현하고 있다. 북유럽 르네상스에서는 반 에이크나 뒤러 등이 투철(透徹)한 정밀묘사(情密猫寫)로 종교화를 그리고 있다. 또한 베니스파(派) 화가 틴토레토의 스쿠오라디 로코의 그리스도 일대기를 그린 대연작(大連作)은 미켈란젤로의 대벽화에 필적할 만한 것이라고 하겠다. 엘 그레코는 청백(靑白)한 신비적인 애수(哀愁)를 유동적인 구도 속에서 표현하였다. 그리고 17세기 렘브란트의 <엠마우스의 그리스도>는 그 대표적인 걸작의 하나이다.

한국의 종교화는 거의가 불교화인데 삼국시대 것은 전해지지 않아 알 길이 없고, 고려시대 것으로 수덕사(修德寺)의 비천(飛天) 등 벽화가 있었는데 그나마 해방 후 퇴실(退室)되어 그 모사(模寫)로 원형을 더듬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부석사(浮石寺) 조사당(祖師堂) 벽화는 현존하는 유일한 고려시대의 벽화로서 유명하다. 그밖에 혜허(慧虛)의 <오류관음도(梧柳觀音圖)>, 노영(魯英)의 <석가소병(釋迦小屛)>, 국립박물관 소장(所藏)인 <나한도(羅漢圖)> 등이 있다. 조선시대 것으로는 확실치는 않으나 김홍도가 그린 것으로 알려진 용주사(龍珠寺)의 불정(佛幀) 등이 있다.

풍경화[편집]

風景畵

풍경이 진정한 의미에서 회화의 테마로 된 것은 역시 17세기의 네덜란드를 기다리지 않으면 안 된다. 네덜란드의 풍경화는 영국의 컨스터블에, 프랑스의 코로나 루소에게도 계승된다. 코로는 황혼에서 한들거리는 나뭇잎의 속삭임을 시정을 담고서 그렸다. 19세기에 이르자 쿠르베가 노도(怒濤)나 바위의 풍경을 견고하게 화면에 조립(組立)하였다. 인상파의 모네 피사로, 시슬레 등은 빛(光)의 변화에 따라서 생기는 자연의 진실을 서정적으로 파악하였다. 고흐는 미칠 듯한 정열로 삼 나무나 별을 파악하고, 세잔은 풍경을 구축적으로 화면에 정착(定着)시켰다. 또한 파리의 거리를 한없는 애정을 가지고 계속 그려나간 것은 위트릴로이다.

한국의 풍경화는 주로 산수화로 대표되는데 그것도 조선시대 이후의 것이 전해질 뿐이다. 초기의 것으로 안견(安堅)의 <몽유도원도(夢遊桃源圖)>, 이상좌(李上佐)의 <송하보월도(松下步月圖)> 등이 있고 중기,

후기로 접어들면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그 중에서도 김홍도·김추사(金秋史) 등이 가장 널리 알려졌다.

[편집]

유럽에서는 꽃은 화병에 꽂은 꽃으로서 정물화적으로 취급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한 꽃 그림은 풍경화나 정물화와 함께 17세기경 네덜란드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는데 꽃잎 한 장까지 실로 극명하게 그린 철저한 사실적인 표현이었다.

또한 코로나 마네 등의 글라스컵 따위에 꽂은 꽃의 소품(小品) 등은 잊을 수 없는 것이다. 금세기가 되자 르누아르는 장미꽃 등을 특유하고 화려한 색채로 그렸고, 르동은 시들어가는 꽃 속에서 영원한 생명을 상징하듯 파스텔이나 유화(油畵)로 그렸다. 또 고흐의 <해바라기>, 모네의 <수련(睡蓮)> 등이 유명하다. 중국에서는 휘종 황제가 사실성과 장식성이 융합된 기품 높은 화조화(花鳥畵)를 그렸다.

한국에서는 꽃을 테마로 한 그림에 조선시대 이후 이른바 화조화 사군자(四君子)가 있고, 이 밖에도 이와 필법이 비슷한 채과화(菜果畵)·영모화(翎毛畵) 등이 희귀하나마 전해지고 있다.

동물화[편집]

動物畵

동물의 그림은 2만여년 전의 알타미라 동굴벽화에서도 볼 수 있고, 또한 이집트 벽화에서도 새와 들고양이나 소떼를 볼 수가 있다. 브뤼게르에는 <산을 내려오는 소>의 그림이 있는데, 17세기 네덜란드에서는 포타 등 동물 그 자체를 주제로서 그리는 동물화가 생겼다. 19세기가 되자 낭만파 화가 들라크루아나 제리코가 달리는 말이나 사자 사냥 등을 그렸다. 그 격동적인 장면은 낭만파 사람들로서는 가장 만족스럽게 여기는 테마였다. 근세로 접어들어서는 드가의 경마장을 그린 그림 중에 경쾌한 말이 등장한다.

동양에서는 고전 속에 소를 그린 우수한 작품이 있고, 목계(牧鷄)의 관음도 삼폭대(觀音圖三幅對) 중의 원숭이, 등백(等伯)의 <원후도>, 조선(祖仙)의 <원후도> 등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전영덕(傳永德)의 <당사자도(唐獅子圖)>나 종달(宗達)의 <당사자도>, 송진용(宋陳容)의 <구룡도(九龍圖)>, 산악(山樂)의 <용호도(龍虎圖)> 등 가공의 동물도 등장한다. 전탐유(傳探幽)의 대작(大作) <호도(虎圖)>는 상상에 의하여 그려졌다고 한다. 그리고 <조수희화(鳥獸戱畵)>에서는 여러 가지 동물이 활약한다.

이집트의 벽화에도 오리의 그림 등이 있는데 새는 유럽 미술의 주역(主役)으로서는 그다지 등장하지 않는다. 렘브란트의 <죽은 공작> 따위처럼 정물적인 취급이 많다. 동양에서는 휘종황제(徽宗皇帝)의 유명한 <도구도(桃鳩圖)>를 비롯하여 목계의 <학도(鶴圖)>(관음 삼폭대 속에) 여화(呂化)의 <오계화조도(五季花鳥圖)>가 있고, 영덕의 <호안도(芦雁圖)>, 전탐유의 <소나무의 응도(鷹圖)>, 이직암(二直庵)의 <갈대의 백로>, 무장(武藏)의 <사다새>, 약중(若仲)의 <닭>, 무촌(無村)의 새까지 온갖 조류(鳥類)가 거의 식물과 어울려 등장한다.

정물화[편집]

靜物畵

정물화도 17세기의 네덜란드 미술에서 독립하는데, 그들은 자연 상태에 놓여진 것을 극명(克明)하게 묘사하고 있다. 그 경향이 18세기 샤르댕의 <병이 있는 정물> 등에 계승되는데, 세잔에 이르러 배치(配置)와 화면구성은 비교적 의식적인 구축성이 보이고 브라크나 피카소의 입체파로 발전한다. 목계의 <시도(枾圖)>는 먹빛의 조절로 실재의 빛깔이나 질감의 본질에 단적으로 육박하려고 한다.

비구상회화[편집]

非具象繪畵

회화에서는 자연이나 인공물(人工物)을 눈에 비치는 대로 그린 사실적인 작품도 있고 단순화하거나 강조하거나 또는 일부를 생략화한 것도 있으며, 그리고 추상화(抽象化)이기는 하나 실물을 암시하고 있는 듯한 반(半)추상적인 작품도 있는데 그것들에 대해서 단순한 원, 삼각형, 사각형, 선 등의 소위 기하학이나 부정형을 모티프로 한 작품도 있다. 그것들은 <콤퍼지션> <작품> 등의 제명(題名)이 붙여진 경우가 많다. 그러한 작품을 테마 위에서 관찰하면 모티프의 조립(組立) 이 목표라고 할 수 있다.

표현의 방법[편집]

사생과 구상[편집]

寫生-構想

회화표현의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예를 들면 풍경화를 그릴 경우를 고찰해 보자.

그 풍경의 현장에 가서 사생(寫生)하는 사람(①)도 있고, 기억을 바탕으로 하여 그 풍경을 그리는 사람(②)도 있고, 타인에게서 들은 것을 바탕으로 하여 상상해서 그리는 사람(③)도 있고, 아니면 그 풍경의 스케치나 기억에 상상을 가미하여 그리는 사람(④)도 있다. ①, ②의 경우는 둘 다 관찰하는 것이 조형표현의 기초로서 소중한 것을 나타내고 있고, ③의 경우는 회화표현은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창조를 위해서는 이미지를 갖는다는 것이 중요한 일이란 것을 나타내고 있는데, ④의 경우는 관찰도 상상도 일체(一體)가 되어서 구상되는 것으로서 창조표현의 가장 기본적인 방법이라고 할 수 있겠다. 따라서 ①,②,③ 어느 경우에도 자기 스스로 ④의 방법을 많건 적건 간에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 된다.

즉 사생의 경우에도 자기의 이미지에 꼭 들어맞는 장소(構圖)를 찾지 않으면 안 되고, 무엇을 중심으로 하여 그리느냐가 결정되면 구도관계에서 어떠한 것은 생략되고 또한 어떠한 부분은 강조될 필요성도 있다. 기억이 주가 된다고는 하더라도 기억 그 자체가 다만 정확하다는 것만으로서는 창조적인 표현이 되지 못한다. 따라서 '관찰이 저장되어' 자기의 이미지로 되었을 때 비로소 창조적인 표현이 성립된다고도 할 수 있다. 또 상상에 의하여 생겨나는 영상(映像)은 부분적으로 재어본 것이 바탕이 되어 있거나, 또는 어떠한 연상(聯想)에 의해서도 생겨나는 것으로서, 이를 관찰이나 기억과 전혀 단절시킨다는 것은 곤란하다. 따라서 묘화(描畵)의 방법을 임시로 넷으로 나눈 것도 편의상(便宜上)의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하여 회화표현을 함에 있어서 이 네 방법 중 어떠한 방법을 채택할 것인가는 시대에 따라서 달라진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초상적(肖像的)인 인물화에서는 일반적으로 사생에 의한 표현이 많다고 생각된다. 다빈치가 모나리자를 그렸을 때에 모델의 미소를 단절시키지 않기 위하여 옆방에 음악을 연주하도록 하였다는 일화가 남아 있다. 그러나 피카소가 그린 입체파 인물화에서는 모델을 관찰하거나, 경우에 따라서는 스케치를 하였을지도 모르지만 그 이상으로 모델에 대한 이미지를 구상적(具象的)으로 그린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풍경이나 꽃이나 정물 따위도 주로 사생에 의한 표현이 많다고는 할 수 있으나 반드시 그렇다고만은 할 수 없다. 예를 들어 마네의 외광파(外光派) 이전에는 풍경도 아틀리에서 그려졌을 것이고, 또 수묵화의 산수(山水) 등은 거의 작가의 이미지에 나타난 풍경이다. 그리고 병풍화의 화조화(花鳥畵) 따위도 연구적으로는 사생할 수 있을지라도 그런 자료에 의하여 새로이 구상된 세계이다. 그것은 어디 어디에 있는 홍매(紅梅)가 아니라 작자 자신의 매화이다. 생활화나 전쟁 등의 사건을 그린 것도 부분적으로는 관찰이나 기억이 바탕이 되었다고는 하나 역시 그것은 구상된 세계이고, 환상의 세계 같은 것도 상상이 주체이기는 하되 작품으로서 완성될 경우에는 구상에 의하지 않으면 안 된다.

습작과 제작[편집]

習作-制作

그림을 공부하는 학생들이 연구소나 학교에서 석고상의 목탄 데생을 하거나, 또는 모델을 사용하여 유화를 그리거나 하는 것은 석고상이나 모델을 모티프로 한 작품을 완성하기 위한 것은 아니고, 그러한 작업을 통하여 사물을 보는 방법이나 표현방법의 기초적인 연습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연습이나 습작에 대해서 하나의 마무리된 작품을 완성하는 것을 제작이라고 한다.

에튀드[편집]

etude(佛)

에튀드란 말이 흔히 쓰이는데 이것은 영어의 study와 같은 뜻으로 습작이나 연습 따위의 의미를 표시하는 말이다. 일상적인 연구나 또는 제작을 위한 습작 등은 모두 에튀드이다. 충실한 작품을 제작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에튀드를 함이 필요하다. 마티스의 그림 등은 전람회에 출품된 것만을 보면 마치 간단하게 그려져 있는데, 같은 종류의 것을 조금씩 빛깔을 변경시키거나 형을 변경시키거나 하여 몇 장이건 그리고, 그 중에서 가장 잘 그려진 것을 출품한 것으로서 간단하게 그려진 것이 강한 효과를 가지고 있는 법이어서, 캔버스 위에서 여러 가지 색종이를 놓고 보면서 그 효과를 연구한 것이라고 한다. 따라서 에튀드는 연필이나 목탄의 소묘(素描)뿐만 아니라 채화(彩畵)나 붙이기 그림 같은 경우도 있다.

이러한 연구나 실험 결과, 제작의 초안(草案)이 정리되는 것인데, 초안이나 밑그림이나 대충 그린 그림 따위를 에스키스라고 부르고 있다. 즉 에스키스는 제작의 가장 근본적인 것을 결정짓는 것이기 때문에 충분히 퇴고(推敲)할 필요가 있다. 더욱이 대작(大作) 같은 것에서는 우선 작게 밑그림을 그려 보고서 여러 가지로 연구한 다음, 결정된 것을 확대해서 그리거나 또는 경우에 따라서는 실물대(實物大)의 밑그림을 만들고 난 다음, 제작에 착수하는 일이 있다.

제작이란 작업은 테마가 결정되어서 그 준비를 할 때부터 이미 전개되고 있다고 할 수 있겠는데, 밑그림에 의하여 그리기 시작할 때부터 제작으로 옮길 경우가 있다. 완성된 화면을 타블로라고 한다.

타블로[편집]

tableau(佛)

말의 기원은 널판지(板 table)에 걸린 액면용(額面用)의 그림이란 의미인데 광의로는 완결(完結)된 구도를 지녀서 제작이 끝난 작품을 가리켜서 사용하고 있다.

완성된 유화의 광택을 내기 위해서 수개월 지나서 그림물감이 잘 마른 다음에 칠하는 기름도 타블로라고 한다.

구 도[편집]

구도의 의미[편집]

構圖-意味

집을 세우기 위해서는 일정한 넓이를 가진 지면 위에 현관이나 거실을 어디에 배치하고, 그것들을 어떻게 연결지어 가느냐가 검토되고서 배치도가 만들어지고 기초가 닦인다. 회화도 크기가 한정된 화포(畵布)나 종이 같은 평면 위에 각종 형이나 빛깔을 가진 것을 어디에 어떻게 배치해서, 그것들 상호간에 어떻게 연관성을 갖게 하느냐가 검토돼야 한다. 그 연구가 구도이고, 구도는 회화의 골격이자 회화라는 조형표현의 구성이다.

건축에서 아무리 벽이 아름답게 칠해져 있어도 토대가 확고하지 못하고 배치가 나쁘면 작은 지진이나 바람에도 넘어지기 쉽고, 지극히 사용하기 힘든 것처럼 회화에서도 구도가 나쁘면 부분적으로 제아무리 그림물감이 곱게 칠해졌어도 하나의 통일된 생명감이 있는 미적인 조형작품으로는 되지 못한다. 제아무리 부분이 아름답다고 하더라도 그 배치가 나쁘면 그 아름다움은 살릴 수가 없다. 그래서 건축에서의 배치는 그 건축이 무엇을 재료로 하고 무엇에 쓰이는 건축이냐 즉 그 재료나 목적에 따라서 달라지듯이 회화에서의 구도는 무엇을 모티프로 하고 어떠한 느낌으로 마무리되었느냐 즉 그리는 것과 작자의 목표에 따라서 결정된다.

어떤 경우에는 모티프가 화가의 목표를 결정할 수도 있겠고, 또는 화가의 의지에 의하여 모티프를 선정할 수도 있겠으나, 어느쪽이건 작자의 의도와 모티프가 일체가 되어서 가장 적절한 구도가 결정된다. 따라서 구도는 형에도 빛깔이나 명암에도 관계된다. 총합적인 동양화론(東洋畵論)에서 말하는 '경영배치'이다.

대개의 회화의 구도를 기본선에 의한 화면분할의 입장에서 보면 다음과 같다.

수직선에 의한 분할[편집]

垂直線-分割

수직선이 갖는 성질로서 엄숙함 등의 느낌을 받는다. 따라서 입상(立像)을 그리거나 높은 수목(樹木) 따위를 그리는 데 많이 쓰인다. 그림 <데 폰테호스 후작부인>은 거의 원형에 가까운 것인데, 느낌은 인물을 약간 왼쪽으로 향하게 하여 팔의 모양 따위에 변화를 갖게 하고 있다. 오른팔과 오른발을 강조하고 있으므로 밸런스를 잡기 위하여 왼편 아래쪽으로 작은 강아지를 놓고 있다. 또한 가장 크게 구도에 변화를 주고 있는 것은 배경의 변화(형뿐만이 아니라 명암도 포함)를 주고 있는 사실이라고 하겠다. 그래서 그 배경의 어둠은 인물을 돋보이게 하고 있다.

그림 <화장>은 두 개의 수직선에 의하여 화면이 구성되어 있는데, 나체와 착의(着衣), 두 사람의 방향이나 모형에 변화를 주고 있는데 주의가 쏠린다. 착의의 인물의 구부린 왼팔과 나체 인물의 위로 올린 양팔이나 구부린 목의 비낀 방향은 서로 연관되어 수직선의 단조함을 깨뜨리고 그림에 움직임의 느낌을 주고 있다. 그리고 착의 인물의 왼쪽 손목은 거울과 함께 두 사람을 결합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수평선에 의한 분할[편집]

水平線-分割

수평선의 성질로서 평화로운 느낌, 조용한 느낌, 넓은 느낌을 준다. 따라서 넓은 풍경이나 바다 따위를 그릴 때에 많이 쓰인다. 그림 <풍경>은 충분히 지평선을 낮춰서 침착성을 보이고 하늘을 넓게 잡고서, 움직이고 있는 구름이 멈추고 있는 양상에 주안점이 놓여 있다. 어두운 지면의 오른쪽 위에 수면을 빛나게 하고 있는데, 이 강한 밝음은 왼쪽 위의 하늘 부분의 밝음과 대응하고 있다. 또한 긴 지평선을 멀리 보이는 건물로 누르고 있다.

그림 <노도>의 수평선은 거의 이등분에 가깝다. 그러나 약간 오른쪽으로 처진 파도의 선과 옆으로 나란히 선 구름의 선이 겹쳐지고 있어서, 화면의 회전을 방지하고 있다. 그리고 삼중의 수평선이 오히려 파도의 상부(上部)를 희게 빛나게 하여서 파도에 휘몰아쳐 오는 노도의 움직임을 강조하고 있다고 하겠다. 바로 앞 왼쪽 밑에 어둡게 작은 배를 놓은 것은 화면 전체를 가라앉히고 배에서 파도로, 파도에서 수평선으로의 광활함을 표현하고 있다.

수직선과 수평선의 교차에 의한 분할[편집]

(1) 垂直線-水平線-交叉-分割

수직선과 수평선을 교차시키면 수직선·수평선의 양쪽 성질이 상호간에 서로 도와서 지극히 완곡한 조립(組立)이 얻어진다. 지면에 서 있는 수목, 건물과 후방의 광폭 따위에 쓰이는데, 수직선을 인물 등에 바꿔 놓아 보면 여러 가지 점에서 응용력이 생긴다. 그림 <폴로메 섬의 양치기들>은 바로 앞쪽의 초원의 가로의 선을 변화를 갖게 하면서 강하게 드러내고, 대안(對岸)의 수평선을 약하게 하여 풍경의 광폭을 주고 있다. 대지(大地)에서 치솟은 몇 그루의 수목은 커다랗게 하늘에 가지를 넓히고 중앙의 두 그루의 나무에서 비스듬히 밑으로 처진 가지는 뚜렷이 그림에 초점(焦點)을 주고 있다.(2) 이것은 수직선과 수평선을 교차시키는 가장 기본적인 것이라 할 수 있다. 너무나도 기본적이기 때문에 도리어 수직선과 안정성이 없어지기 쉽다. 그래서 이 단순성을 도와 움직임을 갖게 하면서, 이 조립의 침착성을 살릴 수 있도록 연구한다.

그림 <정물>은 과일이 있는 발 달린 접시를 중앙(느낌은 왼쪽)에 놓고, 뒤에 병이나 단지나 컵 등을 놓아서 수직운동을 강조하고 있다. 그것에 대해서 테이블의 바로 앞쪽의 구석이나, 숨겨져 있기는 하나 왼쪽의 포도의 상부나, 바른쪽의 컵 내부의, 명암의 구별인 가로 선으로 암시되는 테이블 너머 저쪽의 이중의 가로 선으로 그림을 조립하고 있다. 그러나 세로의 방향을 강조하고 있으므로 옹색함을 느끼게는 하지 않는다. 또한 접시의 가장자리 등 밑으로 만곡(彎曲)하는 곡선은 그림에 침착성을 주고, 중앙의 약간 왼쪽 위의 과일의 밝기는 오른쪽 밑의 테이블 구석 표면의 밝기에 대응하며, 그 오른쪽 옆의 어둠은 왼쪽 위의 배경의 어둠에 호응하고 있다.

대각선에 의한 분할[편집]

對角線-分割

사선(斜線)은 그 성질로서 움직임의 느낌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사선에 의한 분할구도(分割構圖)는 움직임의 느낌을 나타내는 데 쓰이는데 그것만으로서는 구도로서의 안정감을 잃기 쉬우므로 움직임의 효과를 살리면서, 그 방향에 대항하는 어떠한 처리가 필요하게 된다. 사선을 동일한 힘으로 받치면 삼각형에 의한 분할이 되고, 또한 동일한 힘으로 교차시키면 교차되는 대각선에 의한 분할이 이루어지는데, 이것은 하나의 방향의 힘을 강하게 느끼게 하는 구도이다. 그림 <십자가 강하>는 오른쪽 위의 구석에서 왼쪽 밑의 구석으로 대각선상에 십자가에서 내려지는 그리스도의 움직임을 지극히 교묘하게 표현하고 있다. 비스듬히 밑으로 움직이는 힘의 출발점은 십자가 위에 있는 인물로서, 흰 천의 흐름이 대각선을 따라서 움직이고, 그리스도의 몸은 화면 중앙의 약간 위에 있는 흰 천의 아래쪽에 놓여 있다. 그 그리스도의 몸의 위치나 형태에서 오는 중량감과 그것을 도중에서 받치는 붉은 옷의 인물이 한층 더 하강(下降)하는 힘을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그 흐름은 두 사람의 성녀에 의해서 받쳐져서 천의 끝은 왼쪽으로 구부려졌다.

삼각형에 의한 분할[편집]

三角形-分割

삼각형은 정점(頂點)을 위로 하고 놓이면 매우 안정감이 있고, 마무리하기가 쉽다. 인물·정물 따위에 널리 사용되는 구도. 그림 <연가>는 낮은 삼각형으로 젊은 사람을 온화하게 마무리고, 배경을 어둡게 하여서 인물을 밝게 돋보이게 하고 있다. 여인은 악보를 가지고서 남자를 쳐다보고, 남자는 악보를 응시하고 있다. 밝은 옷 때문에 남자가 갖고 있는 악기의 손잡이는 뚜렷이 떠오르고, 여인의 가슴 언저리의 저고리의 어둠은 악보를 돋보이게 한다. 이 명암의 콘트라스트와 두 사람의 시선의 방향이 이 그림의 클라이맥스가 되어서 삼각형의 상반(上半)에 놓여 있다.

유연한 수엽(樹葉)의 움직임은 부드럽게 두 사람의 사랑을 마치 축복이나 하고 있는 듯하다. 밝은 옷의 인물은 약간 위쪽에 있으므로 오른쪽 밑으로 어두운 풀을 놓고서 침착성을 주고 있는데, 그 어둠은 여인의 뒷 배경의 어둠에 대응하고 있다.

역삼각형에 의한 분할[편집]

逆三角形-分割

삼각형의 정점을 위로 할 경우에는 지극히 안정된 마무리를 얻을 수 있는데, 정점을 밑으로 한 역삼각형의 구도는 그와는 반대로 위로 열리는 느낌이 강하다. 그림 <마리아>는 역삼각형 구도의 원칙 그대로를 따르고 있는데 사람들의 얼굴이나 손의 배치 등에 극히 적은 변화가 있을 뿐이어서, 중앙 위의 성화와 밑에 마크를 배치함으로써 지극히 시머트릭한 구도이다. 삼존불(三尊佛) 형식은 옛 종교화 미술에 많은데, 이 경우는 그 반대로서, 열려진 느낌이 성화에 대한 친밀감을 더욱 강하게 하고 있다고 하겠다. 그림 <길>은 역삼각형의 정점을 소실점(消失點)으로 하는 일점(一點) 투시(透視)에 의한 원근의 효과를 살린 것으로서, 가두풍경 구도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예이다. 이것은 수평선이 밑쪽에 놓여서 하늘의 역삼각형의 효과는 강하지만, 수평선을 위로 올리면 대각선의 교차에 의한 방사적(放射的)인 구도가 된다.

삼각형과 역삼각형의 조립에 의한 분할[편집]

三角形-逆三角形-組立-分割

정점을 위로 한 삼각형과 역삼각형의 성질을 살려서 마무리와 개방감을 겸비하고 있다. 그러나 이 경우 어느 쪽이든 한쪽 삼각형으로 주력(主力)이 놓여 있는 경우가 많다. 그림 <크리스팡과 스카팡>은 두 사람의 어릿광대를 삼각형의 덩어리에 넣어 의젓한 안정감을 주고, 배경에는 좌우의 산의 선이 역삼각형이 되도록 놓여 있다. 산의 선은 연장은 깃의 방향이나 밝은 옷의 명암을 구별한 선에도 느껴진다. 어두운 옷을 입은 인물의 축 늘어진 깃끝, 소매끝의 흰 부분에 이어진 왼쪽 손이 가리키는 방향에 밝은 옷을 입은 어릿광대의 정말로 풍자적이고도 예리한 얼굴을 놓고 있다. 그 얼굴의 표현은 도미에 자신의 인생관을 잘 드러낸 것처럼 보인다. 이 손과 얼굴을 이 그림의 클라이맥스로 하고, 어두운 인물의 얼굴은 그림자 속에 숨겨져 있다. 그리고 삼각형과 역삼각형을 겹친 구도도 명암의 콘트라스트의 교차도, 두 사람의 회화(會話)를 화면에 넘치게 하고 있다.

가로삼각형에 의한 분할[편집]

三角形-分割

삼각형을 옆으로 놓으면 움직임이 있는 구도를 얻을 수 있다. 피카소의 정물은 피카소의 파피에 콜레(붙이기 그림의 일종으로 종이나 천 따위를 붙인 부분과 그림물감을 칠한 부분을 조화시킨 것)에 의한 입체파풍의 작품이다. 밝은 배경에는 어두운 삼각형의 테이블의 한구석을 크게 집어넣어, 명쾌하고 움직임이 있는 구성으로 되어 있다. 어두운 테이블 중의 컵의 화형(靴型)이나 문자가 있는 신문지, 밝은 배경 중의 구부러진 다리, 벽에 붙여진 어두운 것 따위가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세잔의 정물화에서는 막(幕)과 천(천의 끝)이 만드는 커다란 삼각형과 테이블의 오른쪽 구석이 만들어내는 작은 삼각형이 수평으로 놓인 테이블과, 그 위에 놓인 물그릇이나 컵 따위도 수직선의 빈틈없는 조립에 움직임의 느낌을 주고 있다. 세잔의 화면의 구축성(構築性)은 입체파의 발생에 영향을 주었다.

삼각형의 연속에 의한 분할[편집]

三角形-連續-分割

삼각형을 옆으로 연결시키면 파형(波型)으로 되어서 옆으로 이어져 가는 느낌을 짙게 한다. 그림 <카페의 여인>은 그 물결의 기복(起伏)을 네 사람의 여인의 상반(上半)의 삼각형으로 반복하여, 가두의 카페라는 분위기를 잘 표현하고 있다. 그리고 그 물결의 기복을 세 개의 기둥으로 차단함으로써 반복에서 오는 지루함에서 구출하고, 더욱이 원근감을 나타내고 있다. 이러한 구도의 채택방식에 드가가 갖고 있는 기지(機知)와 뛰어난 조형감각이 엿보이는 것 같다. 네 사람의 인물은, 앞쪽의 세 사람은 어둡게 나타내고, 화면 중앙에 있는 한 사람의 인물을 돋보이게 하고 있다. 그리고 팔꿈치를 구부리고 입에 손가락을 댄 여인의 표정에 보는 사람의 눈을 집중시키고 있다.

가로삼각형의 연속에 의한 분할[편집]

三角形-連續-分割가로삼각형을 상하로 연속하면 사행(蛇行)하면서 올라가고 또는 내려가는 느낌이 생긴다. 따라서 세로의 화면구성에 쓰인다. 하단(下段)의 그레코의 작품은 그리스도 탄생을 축복하는 지상의 세계와 천사들의 천상의 세계를 상향사행(上向蛇行)의 구도로 정리하고, 그리스도 탄생이라는 드라마를 표현하고 있다. 우선 사행의 출발점은 성자의 구부린 무릎 언저리라 하겠다. 그 선은 왼쪽의 사도의 무릎을 따라서 우상(右上)으로 상승하고, 그리스도를 밑의 삼각형의 정점에 두어 클라이맥스로 하였고 마침내 우상 쪽으로 구부러져 흰 구름의 선에 이끌리면서 회전하여 왼편 위쪽으로 올라간다. 그리고 천사들의 몸이나 다리가 되어서, 영광을 지상으로 내리쬐고 있다. 이러한 구도는 작품을 청백(靑白)한 성스러운 불꽃처럼 타오르게 한 그레코의 특징이 가장 잘 표현되어 있는 구도라고 하겠다. 그림과 같은 구도는 족자 따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그림인데, 이것은 형(形)이나 먹(墨)의 농담(濃淡) 등이 갖는 무브망에 이끌리면서 점차로 변해지는 풍경을 음미해 가는 그 시점의 움직이는 자국이 사행선을 이루게 된다.

교차되는 대각선에 의한 분할[편집]

交叉-對角線-分割

교차되는 대각선의 구도는 매우 통일성이 강한 구도인데, 마찬가지로 통일성이 강한 수직선과 수평선의 교차에 의한 분할 (2)에 비하면 밖으로 넓어지는 느낌이 강하다고 하겠다.

그림 <농부의 식사>는 거의 원형에 가까운 배치이다. 대각선의 교차점 가까이에 놓인 것은 작은 빵이 있는 접시이다. 이것이 식사에 모인 사람들의 관심의 중심이고 이 그림을 대표하는 표지라고 말할 수 있겠다. 이것을 둘러싸고 농부들을 배치한 구도의 고지식함이 융통성 없는 농부들의 생활과는 무관하지 않다. 묘사에도 아무런 과장이 없고 철저히 사실적이다. 중앙의 노인 뒤에 젊은이가 악기를 연주하고 있으나, 아따금씩 울리고, 노인이 무엇인가 이야기하지만 모두가 잠자코 있어서 조용한 공기가 방을 감싸고 있는 듯하다.

이 그림에 의하여 연상되는 그러한 분위기가 좋다는 것이 아니라 이 그림의 구도나 형이나 빛깔이나, 그리고 묘사의 존재방식이 그러한 장소나 분위기의 기분을 전하는 데 살려져 있기 때문에 좋은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다. 밀레도 <만종> 등 그 밖의 농민의 생활을 그린 것이 있으나 여기에는 <만종> 등에서 볼 수 있는 분식(粉飾)조차 없다.

마름모꼴에 의한 분할[편집]

菱形-分割

이것은 둘레를 에워싸고 있음으로써 친화적(親和的)인 통일감이 강한 구도를 얻을 수 있다. 그리고 둘레를 에워쌈으로써, 그 속에 있는 것을 보이려고 하는 경우 등도 있다.

구도상 주의되고 있는 점[편집]

構圖上-注意-點

동서고금을 통해서 회화에서의 구도는 기본선에 의한 화면분할 위에서 분류하여 볼 수 있는데, 구도 작성상 다음과 같은 점이 고려되고 있다.

(1) 구도의 기본선을 모으면 A도와 같이 되고 A도의 기본선을 바탕으로 하여 생각하면, 거의 모든 그림을 분류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기본선 그대로의 것은 거의 없고 기본선을 좌우상하로 이동시키거나 또는 기본선을 기준으로 하여 변형시키고 있다.

(2) 구도의 주요(主要)한 힘은 분류된 형 중 어느 것인가에 속한다고 치고 부차적으로 다른 분류의 형(型)이 겹치고 있는 것이 많다. 따라서 한의 작품이라도 어떤 형(型)에 소속시키는 편이 좋은지 갈팡질팡할 경우가 많다. 그러나 주(主)와 부(副)의 관계가 유지됨으로써 통일감이 느껴진다.

(3) 제작에 있어서는 처음부터 어느 형(型)으로 할 것인지를 결정하고 나서 제작된 것이 아니라, 모티프와 화가의 목표에서 결정된 결과를 분류하여 보니까 이렇게 된다고 하는 데 지나지 않는다. 더욱이 현대의 회화에는 그러한 경향이 강하다. 그러나 삼존불(三尊佛) 형식이나 조선시대의 풍속화의 인물의 조합 등에는 그러한 조립의 형을 결정하고 착수한 것도 있겠으나 그것과 작품의 양·불량과는 별개의 것이라고 하지 않으면 안 된다.

(4) 회화도 여러 가지 형이나 빛깔을 구사(驅使)해서 총합적이고 유기적인 효과를 올리기 위해서는, 주역(主役)의 입장에 서는 부분도 있고, 또는 주역을 두드러지게 하는 보조 역할을 한 것도 있고, 특히 보는 이의 눈을 집중시키는 볼 만한 장면, 즉 클라이맥스가 되는 부분이 필요하다. 그 주안물(主眼物)의 위치는 일반적으로는 화면의 중앙(대각선의 교점)에 가까운 위치에 놓이고 있다. 극단적으로 중앙이라고 하는 경우는 적지만 중앙보다 약간 위나, 밑이나, 또는 왼쪽으로 쏠리거나 오른쪽으로 약간 쏠리는 경우가 많다. 그것은 작품에 움직임의 느낌을 갖게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 밸런스를 잡는 데 따른 고려가 이루어지고 있다.

(5) 풍경 등에서 원경(遠景)·중경(中景)·근경(近景) 따위로 불리고 있는데 그것은 원근의 느낌을 주는 사고방식과 함께 어디를 주안(主眼)으로 취급하여야 하는지의 문제에도 관계된다. 즉 가장 주안점이 되는 것은 일반적으로 중경으로서 근경이나 원경은 중경의 효과를 돕기 위한 보조라고 할 수 있겠다.

(6) 특별한 경우 이외에는 극단적인 시머트리가 되는 것을 피하고 있다. 예를 들면 수직선에서 의한 분할의 경우, 수직선을 중앙선보다 조금 왼쪽이나 오른쪽으로 쏠리게 하거나, 모티프의 형에 변화를 가져온다거나, 배경에 변화를 가져오게 한다거나 하는 따위이다. 수평선에 의한 분할의 경우도 지평선·수평선을 중앙보다 조금이라도 내리거나 올리거나 하고 있다. 그 밖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7) 두 개의 것이 대응하여 놓여질 경우 대소(大小)나 강약에 따라서 반드시 비율의 변화가 고려됨과 동시에 두 개의 덩어리를 무엇에 의하여 연결짓느냐가 고려되고 있다.

(8) 한줄의 선이 화면의 양단에 같은 힘으로 연결되는 것과 같은 것을 그 선이 화면을 양단해 버리므로 될 수 있는 대로 피하고 있거나 또는 강약의 변화를 주고 있다.

(9) 같은 형, 같은 빛깔, 같은 크기의 것을 상하 또는 좌우로 같게 놓는다는 것은, 특별한 경우 이외에는 될 수 있는 대로 피하고, 변화를 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