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한국음악/서양음악의 기초와 역사/서양음악의 역사/현대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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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음악[편집]

現代音樂

'현대음악'의 범위에 대하여 현재로는 별다른 정설(定說)이 없다. '현대음악'이라는 말이 '바로크 음악' 등과 같이 음악사적 양식개념(樣式槪念)을 토대로 하고 있지 않다는 점과 지금의 현재가 바로 현대라는 것, 그리고 시대개념을 받아들이는 사람의 음악관―드뷔시보다 이전의 음악까지도 현대음악으로 보든가 또는 쇤베르크까지도 이미 과거의 것으로 느끼든가―에 따라 큰 차가 생기기 때문에 명확한 정설을 짓기는 어려운 것이다. modern music, contemporary music, music of today 등의 외국어는 '근대음악', '현대음악', '20세기 음악' 등으로 번역되긴 하나 그러한 것들이 가리키는 내용은 애매하다. '20세기 음악'이 연대적으로 명확한 듯하나 20세기에의 모든 작품을 ― 극히 낭만주의적인 것이나 전위적인 것도 ― 여기에 포함시킨다면 그것은 무의미하다고 하겠다. 대개는 다음과 같이 셋으로 구분할 수 있다.

즉 가장 넓은 뜻으로는 20세기 초 이후 가장 좁은 뜻으로는 제2차대전 이후, 그 중간은 제1차대전 이후의 작품을 '현대음악'으로 논하고 있는 듯하다. 그리고 당연하긴 하나 연주가를 통해서밖에는 작품을 접촉할 기회가 없는 일반 청중들에게는 상당히 오래된 작품도 새롭게 보이며 기이하게 느껴지므로 넓은 해석을 하기 쉬우나, 전위작가나 그 지지자들은 극히 새로운 것만을 가리켜 협의(狹意)로 생각한다.

협의의 '현대음악'을 지지하는 견해의 또하나의 중요한 이유로는 제2차대전 이전의 음악은 양식적으로는 전세기(前世紀)음악과 매우 다른 면을 가지면서도 본질적으로는 극히 낭만주의적인 것을 느끼게 하는 데 대하여 제2차대전 후에 출현한 새로운 양식은 그것과의 단절(斷絶)에서 출발하고 있음을 들 수 있다.

여기서는 가장 넓은 범위, 즉 금세기 초부터의 여러 가지 새로운 양식을 살피고자 하며, 19세기 후반의 바그너 등을 중심으로 하는 후기낭만파가 독일·오스트리아를 중심으로 찬란하게 꽃피우고 다른 나라의 음악들은 마치 그 그늘에 가려져 있는 듯함에 대하여, 금세기의 특징으로서 음악 창조의 무대가 세계적으로 넓어졌고 또 민족의 피를 이어받은 작곡가끼리 같은 작곡양식을 취하거나 또는 같은 나라 안에서도 각종 양식이 존재하는 일이 적지 않은 현상이 되었음을 들 수 있다.

19세기 말에서 제1차대전까지[편집]

十九世紀末-第一次大戰

1890년부터 1917년까지인 이 시기의 음악은 독일·오스트리아 권외(圈外)인 각국에서도 개성적으로 전개되었다고는 하나 바그너의 반음계적 화성을 기초로 점차로 조성(調性)이 애매해지기 시작한 낭만파의 양식에서 약간이나마 자유로웠던 것은 없고 바그너의 양식을 더욱 발전시켜 마침내는 쇤베르크 등에 의한 무조음악(無調音樂)으로 발전하든가 또는 사티나 드뷔시와 같이 중세의 교회선법이나 민족적 5음음계, 전음음계 등을 써서 의식적으로 바그너로부터의 탈출을 시도하든가 했다. 전체로서는 낭만주의 영향이 강하게 남아 있던 시기이지만 그 가운데에도 몇 개의 새로운 양식이 탄생하였다.

인상주의[편집]

印象主義 Impressionism

처음은 회화세계에서 사용된 이 말은 드뷔시의 독창과 오케스트라의 작품 <봄>(1887)에 대하여 비판적으로 쓰이고부터 음악세계에서도 쓰이기 시작하였다. 환상적(幻想的)이며 빛이라든가 바람과 같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것이 자아내는 자연의 아름다움의 순간적 인상을 음빛깔(音色)에 정착시키려 함을 말하며, 따라서 그 때까지의 음악처럼 다이내믹한 발전을 가능케 하는 형식 대신 순간순간에 그 자체로 존재하는 매혹적인 울림으로써 성립되는 극히 탐미적인 음악이다.

드뷔시는 상징파의 시인 말라르메의 <목신(牧神)의 오후(午後)>를 토대로 한 전주곡(1892-1894)으로 바그너적 음악과 결별하고 인상주의 수법을 확립시켰다.

원시주의[편집]

原始主義 Primitivism

19세기 말의 극도의 문화적 난숙이 이루어진 가운데 굴절이 심하고 복잡한 정신생활에 대한 권태에서 원시의 생명에 동경하여 사람들은 단순한 리듬과 루오나 고갱의 그림에서 볼 수 있는 원색적(原色的) 음향에 신선감을 느꼈던 것이며, 또한 원시주의는 19세기의 민족주의 음악이 지녔던 에그조티즘(異國情調)의 발전이기도 했다.

원시주의의 정점에 선 스트라빈스키의 몇몇 발레곡은 후기 낭만파풍의 대편성 관현악을 쓰면서 드뷔시의 인상주의적 화성법을 계기로 전통적 기능화성을 떠나 민요나 민족무용이 지니는 원시적 에너지를 발산시키고 있다.

이국주의(異國主義)마저 지닌 광의로의 원시주의는 제2차대전까지의 졸리베나 메시앙에서도 볼 수 있으며 여러 가지 이국의 음악미(音樂美)가 들어왔다는 점에서 지금까지의 서양음악과는 이질적인 비합리성이나 크리스트교 이외의 종교를 토대로 한 음악현상이 신비주의를 낳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신비주의[편집]

神秘主義 Mysticism

직관으로 자연이나 신의 본질을 인식하고 이로써 지고(至高)의 경지(境地)와 법열감(法悅感)에 이른다는 종교적 체험을 바탕으로 한다.

사티가 한때 신비주의적 작풍을 보였으나 유대교도였던 스크랴빈은 이 종교적 체험과 예술감각과의 일치에서 독특한 작풍을 낳았다.

신비화음(전음계와 4도 구성화음으로 이루어지는 6음으로 되어 있다)이라는 독자적인 음체계를 발명하여 멜로디나 화성도 모두 이 6음으로 된 음렬에서 나오게 한다는 훗날 쇤베르크에 의한 음렬기법을 생각게 하는 수법을 엄격히 쓰고 있다. 그리고 음만이 아니라 색채를 내는 건반을 가진 도구를 쓰기도 하고 스크린에 색채의 변화를 영상시키기도 하고 마지막에는 향기나 맛까지 포함시킨 모든 감각을 동원하는 '신비극(神秘劇)'마저 계획되고 있다.

표현주의[편집]

表現主義 Expressionism

19세기의 후반에 프랑스에서는 인상주의로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기 시작하였으나 독일에서는 후기낭만주의의 침체 속에서 탈출구를 찾지 못해 중압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러한 때에 회화분야에서는 '분리파(分離派)'라는 사람들의 활동(1892·뮌헨)이 발단이 되어 금세기 초에 '다리(橋, 디 브뤼케)'나 '청기사(靑騎士·부라우에 라이터)' 등의 새로운 운동이 일어났으며 이에 자극을 받아 쇤베르크를 중심으로 하는 새로운 경향의 음악이 대두하기 시작했다.

인상주의에의 반발이기도 한 표현주의는 삶에 대한 불안, 공포, 죽음, 황홀, 괴기적인 환상, 예언 등을 주제로 하고 대상을 거절하여 어디까지나 독자적인 감정세계를 주관적으로 표현한다. 하나의 상태, 하나의 심리가 비정상적으로 확대되어 데포르메되어 묘사된다. 그러한 것을 표현하기 위한 새로운 음악소재와 음공간이 탐구되었다.

가락, 리듬, 음넓이, 셈여림… 등 어느 면에서나 중용과 연속감은 제거되고 예상 외의 극단으로 변화하는 단편(斷片)이 잇달아 나타난다. 음조직의 면에서는 반음계적 조바꿈(轉調)의 빈번한 사용에서 마침내는 무조(無調)로 나아가고, 또한 음렬기법, 12음기법을 발명하였고 또 악구(樂句)의 단편화는 경구적(警句的)인 매우 짧은 음악을 낳고 분단된 멜로디선(旋律線)은 베베른의 점묘적 텍스처(點描的書法)를 낳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소음주의[편집]

騷音主義 Bruitismus

이탈리아의 마리네티가 '속도의 미'와 '전통의 파괴'를 내세워 제창한 '미래파 선언(1909)'을 음악의 세계에 도입한 루이지 루솔로는 "오늘의 음악은 더욱 불협화한, 귀에 비정상적으로 울리는 음의 결합을 추구하며 이윽고는 전차나 자동차, 군중이 내는 소음을 이상적으로 구성시키는 편이 <에로이카>나 <전원(田園)>을 듣는 것보다 더 흥미롭다는 생각을 갖게 될 것이다"라는 견해에서 소음악기(Inton-arumori)를 발명하여 잡음만으로 구성된 음악을 발표하였다.

이는 현대음악의 한 방향을 극히 레디컬하게 표현한 것이며 후의 바레즈 등에 의한 타악기주의와 뮤지크 콩크레트, 케이지의 우연성(偶然性) 음악의 선구라 하겠다.

1·2차 대전기의 음악[편집]

一·二次大戰期-音樂

1918년부터 1945년까지의 기간을 말하며, 특히 제1차대전 후의 음악계는 스트라빈스키의 <병사 이야기>를 위시한 여러 작품의 발표와 '6인조'의 활발한 움직임, 도나우에싱겐, 잘츠부르크 등에서의 현대음악제의 개시, 국제 현대음악협회(ISCM)에 의한 현대음악의 발표활동, 그것들을 통한 우수한 신인작곡가의 등장, 아메리카 재즈음악의 유럽에의 수입 등과 그 현대음악에 대한 영향 등으로 활기에 넘쳐 있었다.

그러나 제1차대전의 종료에서 온 안도(安堵)와 낙천적 기분은 전전(戰前)의 급진적인 여러 양식을 받아들이지 않고, 또 혼란된 예술을 고전적인 것으로 복귀시키려 하는 반동에서 소편성의 명쾌한 울림과 간결한 형식을 지니는 이해하기 쉬운 음악을 추구하였다. 그리고 1930년대에 이르자 나치스 독일의 파시즘과 소비에트의 스탈리니즘이 예술가의 자유로운 창작을 불허하게 되어 전위예술은 매장되고 작풍은 더욱 고전적인 것으로 되었으며 또 전시대적(前時代的)이며 과장스러운 낭만주의 음악이 애호되었다.

신고전주의[편집]

新古典主義 Neoclassicism

빈 고전파 이후에 나타난 음악으로서 명확한 조성감(調性感)과 함께 뚜렷한 형식감을 갖춘 일반적으로 호모포닉한 양식을 부르는 명칭이다.

스트라빈스키의 발레곡 <프르치 넬라>(1919)가 신고전주의 융성의 계기가 되었다. 반(反)바그너이즘, 반낭만주의를 표방하는 프랑스의 '6인조'는 비대병(肥大病)에 걸린 음악형식을 본래의 모습으로 되찾아 프랑스 고전정신의 회복을 목표로 하여 전음계적 화성법을 써서 소나타나 모음곡 형식으로 작품을 썼다.

민족적 신고전주의[편집]

民族的新古典主義

바르토크가 확립한 몇 개의 독자적인 음악어법(音樂語法)은 마자르의 민족음악 연구에 기초를 두고 있다. 초기의 작품으로는 전래(傳來)된 그대로의 소재로서 쓰였으나 1936년의 <현악기와 타악기의 첼레스터 음악>과 다음해의 <2대의 피아노와 타악기의 소나타> 같은 추상형식을 사용한 대작의 작곡에 즈음하여 그는 '배음렬음계(倍音列音階)', '황금분할(黃金分割)', '기능근친(機能近親)' 등 그의 독자적인 음악어법을 조작하여 이를 배타적으로 사용했다.

음계는 거의 반음계적이며 마쟈르 민요의 음계에 가깝기 때문에 민족음악 그 자체가 작품에 모습을 나타내지는 않으나 여기에는 민족적 색채를 느끼게 한다.

신신비주의[편집]

新神秘主義

스크랴빈이나 사티의 신비주의를 계승한 메시앙은 드뷔시의 기법을 기초로 하면서 카톨릭 신비주의의 입장에서 독특한 창조행위를 했다. 그는 신고전적인 '6인조'에 크게 반발하여 '젊은 프랑스'를 결성하였다(1936).

그의 박절(拍節)을 초월한 리듬이 만들어낸 '무박자 음악'은 '무조(無調)'에 대응하는 개념으로 생각할 수 있다.

12음주의[편집]

十二音主義 Dodecaphonism

쇤베르크는 1908년의 <제2현악4중주곡>의 끝악장에서 무조의 서법을 사용한 뒤부터 몇몇 음 그룹의 음정관계를 카덴차 구조에 대신하는 1종의 악곡통일을 위한 형식으로서 쓰는 '음렬기법(音列技法)'을 써왔으며 마침내는 옥타브 안의 12반음을 전혀 중복없이 써서 음렬을 만들고 이를 바탕으로 하여 전곡의 모든 선적(線的), 화성적(和聲的) 요소를 구성하는 작곡법에 도달하여 이를 '12음기법'이라 불렀다.

그러나 쇤베르크가 12음기법으로 음렬을 구성할 때에 자연배음(自然倍音)에서 유도된 조성이 지니는 자연의 근거를 무시하지 않고 배음이 주는 협화도(協和度)나 도미넌트 관계를 고려한 점이라든가 바로크나 고전형식을 쓰고 있음은 신고전주의적 정신과 관계가 없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12음기법은 양차 대전 동안은 제자인 베베른과 베르크가 계승하였으며 제2차대전 후에 보편화하여 이 기법을 사용한 작곡가는 급격하게 늘어났다.

신즉물주의[편집]

新卽物主義 Neue Sachlichkeit

1920년대에 독일에서 주관적인 표현주의에 대한 격심한 반발에서 발생하였다. 객관적인 합목적성(合目的性)·실용성을 존중하는 경향을 말한다.

음악의 분야에서 실천적으로 이 경향을 보급시킨 사람은 힌데미트와 와일이었다. 음악은 사회생활의 필수품으로서 생산되어야 한다는 견해에서 힌데미트의 '실용음악'이라 불리는 용도에 따라 분류된 음악이나 와일의 <하류(下流) 오페라>를 위시한 무대작품 등 명랑하고 활발한 작품이 만들어졌다. 그들은 반음계와 안어울림음도 사용하고 있으나 전체로서는 조화감이 있는, 형태로서 본다면 네오 바로크풍의 음악이었다. 나치스가 대두한 후로는 두 사람이 모두 망명처인 미국에서 이 활동을 계속하였다.

사회주의 리얼리즘[편집]

Social Realism

1930년의 당대회(黨大會)에서 스탈린이 사회주의 국가의 문화에 대하여, '형식으로는 민족적, 내용으로는 사회주의적'이라는 구호를 내세웠으며, 4년 후의 문학자 회의에서는 고리키의 '사회주의 리얼리즘'을 바탕으로 한 규약이 채택되어, 첫째로 음악은 계급적 또는 국가목적에 따른 구체적 제재를 지닌 것(오페라, 칸타타)이 바람직하며, 대중이 알기 쉽게 작곡양식은 고전적 질서와 낭만성을 띤 19세기적 스타일을 기본으로 해야 한다는 철저한 방침에 따라 서구의 모더니즘은 전적으로 부정되었다.

그로 인하여 이 시기 이후의 러시아 작곡가는 신고전적 경향을 가장 농후하게 지니는 결과가 되었던 것이다.

타악기주의[편집]

打樂器主義 Percussionism

오페라나 그 밖의 작품에서 비악음(非樂音)의 사용은 바그너 등에 의하여 증대하고 있으며 루솔로는 그것을 가장 급진적, 실험적으로 제출하였으나 타악기주의는 바르토크가 원시주의(또는 민족적 신고전주의)의 입장에서, 그리고 힌데미트가 그 기계주의에서 피아노를 숙달, 타악기로 연주하는 작품을 쓴 데 자극되어 여러 가지 타악기나 방울, 자동차의 경적, 채찍, 사이렌, 철령(鐵令, 쇠망치돌) 등에 의한 합주가 융성하였다.

카를 올프는 중세 고전을 제재로 한 합창작품으로 전음계에 의한 대위법이 없는 느릿한 오스티나토 리듬이 전편을 일관하는 작품을 썼다. 그의 작품은 전위적 음악이 모두 추방된 나치스 독일의 시대에 나타나 공적으로나 또는 일반 청중에게도 환영받았다.

미분음주의[편집]

微分音主義 Microtonism

반음보다도 좁은 음정으로는 4분음이 그리스 시대부터 알려져 있으나 금세기에 와서 브조니는 3분음이 이상(理想)이라 생각하였으며 또한 체코의 하바는 합창곡이나 오페라까지 4분음, 또는 6분음으로 작곡하고 있다. 하바의 시도는 제2차대전 후 전자음악으로 이행하고 또한 불확정한 음정을 지니는 음군(音群)이라는 형태로 우연성의 음 속에서 발전시키고 있다.

전기악기[편집]

電氣樂器

20세기에 와서 타악기주의 등의 영향으로 지금까지 합주에는 별로 쓰이지 않던 악기, 기타·쳄발로·첼레스타 비브라폰·글로켄스필 등의 왕성한 사용을 볼 수 있다.

한편 쇤베르크의 '음색선율(音色旋律)'의 사고방식은 전기적 조작(電氣的操作)을 이용하면 쉽게 실시할 수 있는 것이었다. 전기악기로는 양차 대전쟁 동안에 나타난 몇 가지 가운데에서 온드 마르토노가 많이 쓰였다. 그리고 전기악기는 그 뒤 전자악기로 발전하였다.

제2차대전 후의 음악[편집]

第二次大戰後-音樂

제2차대전 전의 극히 반동적인 시대에의 격렬한 반발에서 1945년 이후인 전후(戰後)는 완전히 새로운 영역을 추구하는 움직임이 몇몇 있었다. 그러나 그러한 움직임의 성과로서 우수한 작품이 나온 것은 종전 후 10년 이상이나 지나서였다.

이와 같이 늦어진 원인의 하나는 이 대전이 가져온 경제적, 문화적 파괴의 규모가 크며, 젊은 세대 사람들의 희생이 많았다는 점과 많은 작곡가들이 미국에 살았으며 새로운 음악창조의 무대일 수 있는 유럽에는 가지 않았다는 점을 들겠으며, 또 하나는 종전 후에 탐구된 새로운 음의 소재나 방법이 그 때까지의 음악관과 단절되었던 것이기 때문에 모색과 시기가 오래 필요했던 것이다.

종전 후 국제간의 협력이 개시되고 1946년 이후 해마다 개최되고 있는 독일 다름슈타트에서의 국제 현대음악 하기강좌에서 그때까지 쇤베르크의 그룹에서만 개척되고 있던 '12음기법'이 젊은 세대나 후진국의 작곡가들에게 침투하여 연주회 등으로 일반 청중 앞에 모습을 나타내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전후의 세대는 아카데믹한 면을 지니는 쇤베르크의 기법을 과거의 것이라 하여 베베른의 기법에서 발전한 '뮤지크 세리엘' 이하의 새로운 양식으로 작곡하고 있다.

뮤지크 세리엘[편집]

Musique Serielle

쇤베르크는 음높이(音高)에만 순열을 규정하였으나 베베른은 리듬까지 순열화하였다. 메시앙은 그 방법을 더욱 발전시켜 음높이, 리듬, 셈여림(强弱), 음빛깔(音色, 터치의 종류나 악기의 음빛깔) 등의 모든 것을 순열적(세리엘)으로 써서 개개 음의 속성(屬性)을 그 모든 면에서 고정화시켜 음을 일종의 오브제로 하였다.

이러한 점에서는 '뮤지크 콩크레트'와의 관련이 존재한다. 이 수법은 슈톡하우전이나 브레즈 등 젊은 세대에 크나큰 영향을 주었으며 슈톡하우전은 음의 속성에 방향성까지도 주고 있다(예를 들면 어떤 음높이의 음은 항상 오른쪽에서 들린다는 식의).

전자음악[편집]

電子音樂 Electronic music

진공관이나 트랜지스터를 사용한 전자적 회로를 써서 음원(音源)을 얻고, 또한 그것을 변형하거나 중복시키고, 재생도 하는 종류의 음악을 말한다. 실제의 작품으로는 슈톡하우전의 <습작 Ⅰ, Ⅱ> 이후 뛰어난 성과를 올리고 있다.

컴퓨터 뮤직[편집]

Computer music

최근에 발달한 전자계산기에 여러 가지 정보를 주어 만든 음악으로, 최초에는 이것으로 고전적인 작품의 작곡을 하였을 뿐이었다.

그리스의 크세나키스는 '확률음악(確率音樂)'이라고도 부르는 음의 무리(音群)를 확률적으로 다룬 작곡법을 시도하였으며 이 방법의 경우 스스로 계산하는 것보다 컴퓨터에 프로그램을 넣어 작곡하는 편이 보다 정밀한 숫자를 얻을 수 있기 때문에 계산기를 사용하게 되었다. 한편, 뮌헨에서는 컴퓨터를 직접 전자음 발생장치에 접속시켜 테이프에 음악을 만드는 방법도 실험되고 있다.

뮤지크 콩크레트[편집]

Musique concrete 具體音樂

1948년부터 파리 방송국 기사 피에르 셰페르가 시작한 것으로, 철도의 음이나 동물의 소리 등 자연계의 음이나 악기의 음 등을 녹음하여 이를 기계적, 전기적으로 조작하여 변질시키거나 겹치기도 하여 음악작품을 만들었다.

이것은 음에 의한 쉬르리얼리즘적 표현이라 할 수 있다. 1952년에 브레즈나 메시앙이 뮤지크 세리엘의 양식과 전자음악의 양식에 가까운 구성적인 방법으로 뮤지크 콩크레트의 작품을 발표하고, 그 뒤 바레이즈, 하우벤 스톡크=라마티, 크세나키스, 페라리 등도 이 방법으로 작곡한 바 있다.

전자음과 소년의 노랫소리를 소재로 슈톡하우전의 전자음악

<소년의 노래>(1956)가 성공한 이후 이러한 종류의 작품이 많이 나타났다. 뮤지크 콩크레트풍으로 녹음한 음을 오브제적으로 쓰는 방법은 뮤지크 세리엘의 경우가 흡사하다고 하겠다.

우연성의 음악[편집]

偶然性-音樂 Music of chance operation, happening

불확정성(不確定性)의 음악이라고도 하며, 미국의 존 케이지는 너무나 추상화되고 정밀하게 구성된 예술음악 ― 고전에서 전자음악에 이르는 모든 것 ― 에 대한 철저한 반발로서, 무대 위에서 소리를 지르거나 음식을 먹거나 피아노를 부수고 스피커로써 소음을 내기도 하는 일종의 '쇼' 같은 행동을 한다.

또한 피아노곡 <4분 33초>(1954)에서는 피아니스트가 피아노 앞에 4분 33초 동안만 앉아 있다가 퇴장한다. 그 동안에 우연히 들려온 외계의 소리와 자기의 고동이 음악이라는 것이다.

케이지의 이러한 견해는 유럽 작곡계에 심각한 영향을 주고 있다. 슈톡하우전은 연주자들에게 어느 부분만을 자유로운 템포로 연주시킨다든가 몇 개의 단편만을 작곡해 두고 연주자가 그 가운데에서 아무렇게나(無作爲) 단편(斷片)을 추려 연결시키고 연주한다는 방법으로 케이지의 견해를 자기 작품에 채택하여 이후 이 방법은 일반화되고 있다. 또한 폴란드의 펜데레키는 <히로시마 희생의 애가>에서 오케스트라의 바이올린 파트의 음높이와 시가(時價)를 명확하게 지정하지 않고 대략의 높이나 움직임을 정해두는 방법에 의했으며 그 결과로서 몇 개의 현악기가 미분음적(微分音的)으로 서로 마찰하여 소리가 나도록 하는 효과를 꾀했다. 이와 같은 작보법을 더욱 발전시킨 것으로 '그래픽'이 있다. 가령 5선에 기보한다 해도 매우 다의적(多義的)인 해석을 허용한다면 처음부터 5선이나 음표(音符)를 나타내지 않고 그림이나 도안과 같은 것을 연주자가 갖고 있으면 된다는 사고방식이므로 이는 그 도표가 지니는 조형미적인 아름다움과 연주자에 의한 즉흥연주의 창조성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신데사이저 음악[편집]

Synthesism 合成主義音樂

단일작품 속에서 서로 다른 수법과 여러 가지 경향을 함께 구사하는 것을 합성주의(Synthesism)라 한다. 합성주의의 실례는 프로코피예프(S. S. Prokdofiev, 1891-1953)의 <바이올린 협주곡 제2번>에서 볼 수 있는데, 이 곡에는 전통적인 조성에 의한 화음기법, 변형된 화성구조, 박자의 변화, 신낭만주의 및 신고전주의형식 등이 포함되어 있다. 블로흐(Ernest, Bloch, 1880-1959)의 <현악4중주 제2번>속에는 12음기법의 이디엄(idiom), 복조, 변박자, 광시곡풍의 요소(제1악장), 다이내믹의 강조(제2악장), 부분적 인상주의적 표현(제3악장), 신고전주의(제4악장) 등이 혼합되어 20세기의 위대한 현악 4중주곡의 하나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합성주의는 미적 결합을 위반하지 않은 20세기의 절충주의라고도 일컬어진다.

그래픽 노테이션[편집]

Graphic Notation

그래픽 노테이션이란 음악적 구조와 표지방법을 그래프식으로 나타내는 기보법을 말한다. 즉 밀집해 있는 점들과 빈 공간은 행동과 침묵을 나타내는 소리이고, 안이 차 있는 점과 빈 점은 강약을 나타내며, 높은 점과 낮은 점들은 피치를 나타내고 전체구조의 길이는 진행시간을 나타낸다. 이와 같은 도식방법은 점들로써만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그 형태는 거의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어서 다른 형태는 다른 연주자에게 상이한 개념을 주어도 좋다. 이와 같은 그래픽은 표준화를 필요로 하지 않지만 이는 작곡가의 창조적인 면의 집합체이므로 각 작품에서는 단일하게 나타내어져야 한다. 그리하여 연주자는 각자 상이하게 이해하게 되고 다르게 연주할 수도 있다. 그러나 가장 기본적인 구별은 그래픽 악보의 위, 아래 축은 높고 낮은 피치를 나타내고 좌우축은 음의 동형진행을 나타내며, 까만 점과 하얀 점은 강약을 나타낸다.

점묘주의 음악[편집]

點描主義音樂 Pointillism

1880년대에 조르주 쇠라(Georges Seurat)에 의해 고안된 그림으로 표시된 기보법으로서, 색깔은 점들과 짧은 선들의 모자이크로 표현되어지고, 그 점들은 색깔과 빛의 진동부분으로 바뀌어지도록 나타내었다. 점묘주의란 용어는 베베른(Anton Webern, 1883-1945)의 음악에서 처음으로 사용되었고 이는 각각의 점들이 그 음색·강약 및 명료도(articulation)를 지니고 있어 상대적 고립이나, 일시적인 조화로써 청취되어진다.

미학적인 면에서 이러한 음들은 거대한 음악적 구조에서 들려지거나, 밀착시켜 나가는 형태에서 잘 조화될 수 있다.

확률음악[편집]

確率音樂

연주나 작곡에서 우연성을 내포시키고자 한다면 수학적인 확률계산을 통하여 그 가능성을 작곡자가 예상할 수 있고, 만일 원치 않는 결과가 나올 때 또다른 결과까지도 예상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바로 확률음악이다. 크세나키스의 '스토케스틱(Stochastic)' 음악에서 유래하는데, 이는 확률적으로 각각의 음들을 예측하는 것이 아니라 전체로써 조정되어지도록 한 것이다. 이와 같은 'Stochastic'이란 어원은 그리스의 'arget'에서부터 유래된 것이며 18세기 스위스 수학자 베르누이(Bernoulli)에 의하여 정의되어진 것이다. 크세나키스는 한 음의 역사는 시간에 따라 주어진 진동수의 그래프에 의하여 나타나며, 그 시간축에 따라 음의 피치와 강도를 확률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도록 고안한 것이다.

프랑스의 20세기 음악[편집]

France-二十世紀音樂

드뷔시(1862-1918)에 관해서는 인상주의 항목에서 말하였거니와 바그너이즘을 작품에서 명확하게 표현한 사람은 에릭 사티(1866-1925)였다.

그는 신비주의적 비밀결사에 접근하여, 거기서 작곡한 <별의 왕자>를 위한 3개의 프렐류드(1892)에서는 4도화음의 퇴적(堆積) 연결을 빈번히 사용해 10년이나 빨리 쇤베르크의 무조(無調)를 암시하였고, 또 <자동필기(自動筆記)>라는 제명을 가진 3개의 피아노곡은 쉬르리얼리즘의 선구를 이루었고, 디아길레프 발레단을 위하여 작곡한 발레 음악에서 타이프라이터나 권총, 발전기 등을 포함한 여러 가지의 타악기를 사용한 오케스트레이션으로 루솔로의 소음주의(騷音主義)를 예시(豫示)하는 등 새로운 시대의 예언자적 존재였다.

모리스 라벨(1875-1937)은 사티, 드뷔시 그리고 '러시아 5인조'의 영향을 강하게 받으면서도 파리 음악원에서 사사(師事)한 포레나 제달쥬에게서 받은 전통적 교육에 평생을 두고 지배되어 고전주의적 작품을 지니고 있다

에드거 발레이즈(1885-1965)는 처음에 인상주의풍의 작품을 썼으나 제1차대전 후 갑자기 매우 전위적인 작품을 발표하기 시작하였다. 8중주곡 <옥탄돌> ― 12음기법(1924), <이오니자시온> ―타악기만(1931), 전자음의 테이프와 관, 타악기의 합주곡 <사막>(1953), 브뤼셀 만국박람회장에서 4백여 개의 스피커에서 흘러나온 서정적인 전자음악 <포엠 일렉트로닉>(1958) 등 하나하나의 작품마다 다른 매체를 써서 새로운 음향매체를 제시하였다.

'6인조'라 불리는 작곡가 뒤레, 오네게르(스위스 사람), 미요, 타유페르, 프랑크, 오릭 가운데에서 유태인인 다리우스 미요(1892-1974)는 그들의 신고전주의적 강령에도 불구하고 복조(複調)와 다조(多調)로써 안어울림음이 많은 폴리포닉한 작품을 써서 쇤베르크나 베르크를 칭찬하였으며, 한편 태생지인 지중해적 서정이 넘쳐흐르는 경쾌한 작품을 발표하고 있다. 그리고 발레곡 <세계의 창조>에서는 재즈도 채택하는 등 그 작풍은 매우 폭넓고 다양하다.

가장 젊었던 프랑시스 프랑크(1899-1963)는 강령에 가장 충실하여 초기에는 고지식하여 약간 따분한 작품을 썼으나 음악원의 정규교육을 받지 않은 데서 오는 신선함이라고 할 수 있는 자연스럽게 흐르는 선율성이 매력이 되어 만년에 쓴 3개의 오페라는 걸작이다.

실내악 운동단체 '라 스피라르'(1935년 결성)와 작곡단체 '준 프랑스'(1956)의 중심적 활동가였던 올리비에 메시앙(1908- ? )은 드뷔시 이후의 프랑스 최대의 작곡가이다(신신비주의 항목 참조).

발레이즈의 제자 앙드레 졸리베(1905-1974)는 원시적, 주술적(呪術的)인 것에 매력을 느껴 아프리카와 베트남, 폴리네시아 등 적도 주변의 민족음악의 원색적인 색채로 씌어진 피아노 콘체르토 <적도>(1950) 등을 작곡했다. 그리고 그는 전기악기 온도 마르트노를 위한 협주곡을 쓰는 등 이 악기를 효과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메시앙의 문하로 신고전주의를 철저하게 비판하고 있는 완전한 전후파 피에르 브레즈(1925- )는 스스로 발명한 기법이라는 것은 없었으나 베베른이나 메시앙 등의 어법(語法)을 더욱 면밀하게 다듬어서 놀라운 정묘함을 지닌 작품을 이룩하고 있다.

이탈리아의 20세기 음악[편집]

Italia-二十世紀音樂

20세기의 음악에서 이탈리아인이 최초로 큰 역량을 보인 것은 루이지 다라비콜라(1904- )이다. 그는 처음에 신고전적 작풍이었으나 오페라 <야간비행>(1937-1939)으로 12음 음렬의 자유로운 구사를 보였다. 그 밖의 합창과 방대한 타악기를 포함한 오케스트라인 <수인(囚人)의 노래>(1938-1941)에서는 그레고리안 찬트의 12음 음렬을 병용하여 극적 박력과 서정성을 표현하고 있다.

슈톡하우전 브레즈와 더불어 전위세계에 뛰어든 루이지 노우노(1924- )는 독일에 살면서 첫 작품부터 쇤베르크적 12음기법에 의한 점묘적(點描的)인 세리엘 양식을 취하였다. 코뮤니스트인 그는 극히 전위적인 수법으로 사회적, 정치적 주제를 가진 텍스트를 사용한 작품을 발표하였다.

그 뒤를 잇는 루치아노 베리오(1935- )는 브레즈를 더욱 연마한 듯한 감각으로 기악곡과 콘크레이트적인 전자음악을 작곡하였다. 그 뒤를 잇는 세대도 우연성이나 모든 음악구성 요소를 총동원한 양식을 취하고 있으며 카스틸리오니의 작품이나 케이지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브소티의 그래픽 음악이 주목할 만하다.

독일·오스트리아의 20세기 음악[편집]

獨逸·Austria-二十世紀音樂

제2차대전의 큰 타격을 받은 독일·오스트리아의 음악은 쇤베르크 그룹의 12음기법의 개척을 겨우 남긴 이외에는 오늘날까지 19세기의 융성을 부활시키지 못하고 있다. 서독(西獨)의 다름슈타트나 도나우에싱겐에서의 행사, 쾰른에서의 전자음악 스튜디오 등은 제2차대전 후의 유럽 음악부흥의 중요 거점으로 되었으나 거기서 생산되는 음악은 독일의 것이라기보다 세계적·국제적인 것이라 하겠다.

리하르트 슈트라우스(1864-1949)의 한 시기의 작품은 표현주의적 색채가 짙으며 그 때문에 무조적(無調的) 안어울림음이 눈에 띄나 만년에는 신고전적인 온건함으로 후퇴하고 있다. 막스 레거(1873-1916)는 지금까지 관심을 끌지 못했으나 반음계를 구사한 대위법적 작품(12음 음렬의 선구)이나 바로크 양식을 사용한 점 등으로 20세기 음악에 끼친 영향은 매우 크다. 아놀드 쇤베르크(1874-1951)가 알베르 지로의 시로 된 <피에로 류넬(1912)>에서 쓴 '슈프레히슈틴메'라 하여 정확한 음높이로 부르지 않는 낭독풍의 가창방법은 리트 속에 멜로드라마적인 성격을 도입시켜 표현주의적 수법으로서 매우 그 효과가 높다. 그의 수많은 제자 가운데에는 베베른과 베르크가 중요하지만 안톤 베베른(1883-1945)은 뒤에 12음기법을 지향하여 대위법적 수법에 의한 점과 점이 공간에서 교차하는 '점묘사적 작풍'으로 여러 가지 걸작을 냈으며 뮤지크 세리엘의 선구가 되기도 하였다. 아르반 베르크(1885-1935)는 일생을 통하여 비인적(的) 정서성을 잃지 않은 사람으로, 12음기법을 사용한 작품이나 순수기악곡에서도 항상 표현주의적이며 극적인 전개를 볼 수 있다.

카를 올프(1895- )에 관해선 타악기주의 항목을, 그리고 파울 힌데미트(1895-1963)에 관해서는 신즉물주의 항목을 참조하기 바라며 힌데미트는 정교하게 다듬어진 작품으로 큰 기대를 받아왔음에도 나치스의 권력에 쉽사리 전향하여 아무런 문제의식도 없는 다만 상쾌할 뿐인 재치있는 작풍으로 변하고 말았다. 쾰른 방송극의 전자음악 스튜디오 주재자인 아이메르트, 무주제적 작곡원리를 제시한 하이스, 극음악으로 알려진 코른골드, 베베른의 제자이나 프롤레타리아 작곡가로서 그 방면의 가곡 등을 쓴 아이슬러 등의 활동은 무시할 수 없으며 클트 와일(1900-1950)은 프레히트와의 공동작업으로 된 무대작품으로 훌륭한 업적을 남겼다. 유태인 에른스트 크루시에네크(1900- )는 후기낭만주의, 인상주의, 신즉물주의 등 여러 양식을 사용한 후에 네오 바로크풍의 작풍을 보였으며 또한 재즈를 구사한 오페라 <지오니는 연주한다>(1927)를 발표하여 성공하였으며 또한 12음기법을 열심히 찬양하여 최근에는 뮤지크 세리엘의 수법을 쓰고 있다.

한스헨체(1926- )는 후기낭만주의에서 12음기법, 그리고 전위적 수법을 사용한 오페라 작곡가로서 현재 활약중인 최대 작곡가의 한 사람이라 하겠다. 미요와 메시앙에게 사사한 카를하인츠 슈톡하우전(1928- )은 전자음악과 기악음악 양쪽을 탐구하면서 공간음악, 기악과 전자음악의 결합, 우연성의 채택, 그래픽의 문제 등을 자신의 특유하고 극히 면밀한 논리와 직관으로 차례로 보편화시켜 실천하고 있다.

영국의 20세기 음악[편집]

英國-二十世紀音樂

영국의 20세기 최대의 작곡가인 브리튼(1913-1976)의 음악에는 대위법이나 반음계는 별로 사용되지 않으며 화성과 오케스트레이션에서 오는 음악이 교묘하게 사용되어 부르기 쉬운 선율과 적당하게 신선한 리듬을 볼 수 있다.

오페라 <피터 그라임스>(1945)는 퍼셀 이후의 본격적인 영국 오페라로 절찬을 받았다. 이와 같이 된 오페라는 평범한 인간과 그 사회생활에서 제재를 구하여 항상 대중과의 유대 속에서 쓰고 있다.

서얼(1915- )은 베베른에게 사사하여 12음기법을 쓴 표현주의적 작품을 썼고 또 프리커(1920- )도 해외에서 활약하고 있다.

1923년에 결성된 국제현대음악협회(ISCM)의 본부가 런던에 설치되었으나 이 나라의 보수적인 성격으로 말미암아 겨우 1952, 3년경부터 12음기법을 쓰게 되었으며 게일이나 슈톡하우전과 함께 전자음악에 관여하고 있는 카아듀 등의 작곡가들이 국제적인 주목을 끌고 있다.

폴란드의 20세기 음악[편집]

Poland-二十世紀音樂

2차대전 중은 나치스 독일의 점령하에 있었고, 전후에도 공산주의국이 되어 사회주의 리얼리즘이 지배하는 등 다른 나라의 정치적, 문화적 지배로 왜곡(歪曲)되어버려 그 재능을 발휘하지 못했던 이 나라의 격렬한 예술성은 1956년의 '해빙(解氷)' 이후 급격히 영화, 음악, 회화에 있어서 세계 최전위로 왕성한 창조정신을 보이고 있다.

20세기에 들어와서 12음기법의 사도(使徒)로서의 구실을 다한 르네 라이보비츠(1913)와, 같은 세대의 비토로드 루트바프스키(1913- )는 중요하다.

루트바프스키의 우연성의 요소를 사용한 몇 개의 작품은 국제적으로 연주되고 있다.

유태인인 라바티(1919- )는 이스라엘에 살면서 중근동의 음악어법과 12음기법을 결합한 <축복> 등을 발표하였으며 그 뒤로는 파리나 빈에 살면서 우연성을 중히 다룬 작품을 발표하고 있다.

그의 뒤로 세로키, 고토니스키, 바일트, 그래픽이나 우연성을 대담하게 쓴 셰파, 고레츠키 등 전위적 작곡가들이 뒤를 잇고 끝으로 쿠시시토프 펜데레키(1933- )도 합창과 오케스트라의 <시간과 침묵>(1960) 이후 독특한 작풍을 확립하여 52개의 현악기의 미분음(微分音)을 포함한 불확정한 음정, 소음적 효과, 그리고 현악기의 종래와는 다른 발음법 등 대담한 방법을 취하면서 정묘하고 밀도가 높은 음악을 제공하고 있다.

헝가리의 20세기 음악[편집]

Hungary-二十世紀音樂

19세기까지 정치적으로나 예술적으로나 오스트리아의 지배하에 있던 헝가리는 바르토크와 코다이에 의하여 음악적 독립을 획득하게 되었다.

벨라 바르토크(1881-1945)는 처음에 리스트 바그너, R. 슈트라우스풍의 민족주의 낭만파적인 작풍을 취하나 코다이와 함께 마쟈르 민요(헝가리의 민족음악)을 채집하여 이를 작곡의 소재로 하면서 한편으로는 인상주의나 표현주의를 받아들여 독자적인 음악어법을 확립했다.

졸탄 코다이(1882-1967)도 바르토크와 같은 정교한 작품을 썼으나 중기 이후 다소 통속성에 안주한 작풍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바르토크의 어법이 너무 개성적이며, 드뷔시나 메시앙처럼 후계자를 양성하지 않았기 때문에 오늘의 헝가리 음악은 코다이의 민족적 신고전주의 작풍에 지배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의 뒤를 잇는 세대에서는 우수한 재능이 보이지 않지만 조르지 리게티(1924- )가 전위적(前衛的)인 작곡계에서 주목되고 있다.

미국의 20세기 음악[편집]

美國-二十世紀音樂

제1차대전 후 뉴욕은 세계의 콘서트 도시가 되었고, 또한 작곡가조합 등이 결성되어 그 결과로 현대음악의 육성을 목표로 하는 다른 많은 단체와 그룹의 설립이 왕성해졌다. 한편 이 기간에 유럽의 일류작곡가 다수가 미국에 이주해 왔다는 점도 큰 자극이 되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미국의 현대음악은 통속음악파에서 대담한 전우적 실험주의까지 세계의 모든 유파를 망라하고 있다.

아이브스(1874-1954)는 유럽에 앞서 다조(多調)를 시도하여 폴리리즘이나 12반음 구성을 비롯해서 4분음도 시도하는 등 새대를 초월한 독창적인 작풍을 보였다.

유태계의 고플랜드(1900- ? )는 재즈 협주곡 등에서 재즈 수법을 채택한 대담한 작풍을 보였으나 점차 신고전적이며 절충적인 안정된 작풍으로 변모했다. 역시 같은 시대의 카우엘(1897-1965)은 그 초기의 피아노곡에서 팔로 건반을 눌러 음괴(音塊)를 내거나 전기악기(電氣樂器)를 연구하기도 하여 새로운 음소재를 탐구하고, 안세일(1900- ? )은 타악기주의 작품 <발레 메카닉>을 써 청중에게 비상한 충격을 주었다.

거슈윈(1898-1937)은 피아노와 재즈 오케스트라를 위한 <랩소디 인 블루>를 출발점으로 해서 재즈 요소와 예술음악을 융합시켜 미국국민으로서는 전형적인 표현이 되는 교향적 작품을 만드는 데 성공하였다. 오페라 <포기와 베스>(1935)는 제재의 선택과 음악이란 점에서 최초의 독자적인 미국의 본격적 오페라이다. 루카스 포스(1923- )는 케이지식(式)의 우연성과 재즈의 즉흥연주를 결부시킨 수편의 작품으로, 유럽에서도 주목을 끌고 있다.

멕시코 및 브라질의 20세기 작곡가[편집]

Mexico-Brazil-二十世紀作曲家

멕시코의 차베스(1899-1978)는 11개의 타악기만으로 된 <토카타>나 민족적 색채를 곁들인 발레곡 등을 발표하였고 또한 브라질의 바라=르보스(1887-1959)는 브라질 오지에서 채집한 민요를 토대로 특수한 악기 편성으로 된 독특한 음빛깔을 추구했다.

러시아의 20세기 음악[편집]

Russia-二十世紀音樂

드뷔시, 쇤베르크와 함께 인상파 이후 가장 중요한 작곡가인 이골 스트라빈스키(1882-1971)는 원시주의·신고전주의를 거쳐 음렬기법으로 나아갔고 다시 점묘적 텍스처(點描的書法)까지 취하게 되어 제2차대전 후의 전위양식에 가까웠다.

신비주의자인 알렉산더 스크랴빈(1872-1915)의 후계로 간주되는 로스라베츠는 러시아에서 최초로 무조적 작품을 썼고 1925년경까지는 12음기법이나 그 외 당시의 전위적 수법으로 작곡하고 있었으나 그후 국내사정이 허락하지 않아 곧 음악계에서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혁명 후 최대의 작곡가 세르게이 프로코피예프(1891-1953)는 처음에 민족주의적 원시주의에 인상주의와 표현주의 수법을 사용한 생생한 작품을 썼고 대담한 안어울림음의 사용을 거쳐 미국에서의 3년 동안 신고전적 작품을 발표, 1933년에 소비에트로 돌아온 뒤부터 사회주의 리얼리즘 아래 비판을 받았다고는 하지만, 쇼스타코비치만큼은 자기를 포기하지 않았다.그와 쇼스타코비치 사이에는 하차투리안, 카바레프스키 등이 실력을 갖고 있으나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1906-1975)는 사회주의 리얼리즘에 의한 예술비판의 표적이 되어 당의 정책변경에 좌우되었으며, 그 때마다 작풍을 바꾼 전형적인 작곡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