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한국지리/중부지방-남부지방/울산광역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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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의 상징물[편집]

蔚山-象徵物

울산 광역시를 상징하는 꽃은 배꽃, 나무는 은행나무, 새는 백로이다.

울산의 자연[편집]

-自然

경상북도의 동북부 울산만에 발달한 공업도시이다. 태백산맥의 남단부로서 서쪽은 신불산·문주산(文珠山)·고헌산(1,033m) 등의 높은 산이 솟아 있고, 동쪽은 동대산맥(東大山脈)이 남북으로 달리면서 방어진 반도를 이루고 그 선단에 방어진항이 있다. 이 서부산지와 동대산맥 사이에 지구상(地溝狀)의 울산평야가 있으며, 동류하는 태화강과 남류하는 동천(東川)은 이 평야를 흘러 하구에 삼각주를 퇴적하여 비옥한 농경지가 형성되었다. 울산만은 만구의 폭이 약 2km, 북쪽으로 8km 가량 만입하여 있는데, 동안에 방어진항, 서쪽에 장생포가 있다. 울산만은 익몰만으로서 수심이 깊어(10

15m) 거선이 출입할 수 있는 양항이다.

기후[편집]

난류의 영향으로 기온의 교차가 크지 않다. 연평균 기온 13.9

, 1월 평균 기온은 1.6

, 8월 평균 기온은 25.3

, 연평균 강수량은 1,285mm의 다우지역이다. 경제 활동에 적합하다.

울산의 연혁[편집]

-沿革

신라의 굴아화촌(屈阿火村)으로 파사왕 때에 비로소 현을 두고 경덕왕 때에 하곡(河曲)이라 개명하였다. 조선 태조 6년(1397) 진(鎭)을 두었다가 세종 19년(1537) 한때 도호부(都護府)로 승격하였다. 1599년에 도호부가 되었다가 고종 32년(1895) 군으로 되었다. 1931년 면으로부터 읍으로 승격, 1962년 특정 공업지로 결정, 울산시로 승격하게 되었다. 1963년 개항장으로 지정되었다. 1995년 1월 울산시와 울산군이 합쳐 도농복합형의 통합시가 되었으며, 이후 1997년 7월 1일 광역시로 승격되었다. 2003년 말 현재 울산광역시는 4개 구와 46개 동, 1군 4읍 8면을 관할하고 있다.

울산의 산업[편집]

-産業

1962년 이래 자연적·지리적 호조건을 구비하고 있어 정유·제철·조선·비료공장 및 화력 발전 등의 기간 산업과, 이와 관련되는 경공업 지구를 건설하기에 이르러 한 어촌에 불과했던 울산이 일약 공업도시로 변모하게 되었다. 공업특정지구로 결정되어 정유·비료·자동차·조선 등의 공업이 입지하여, 기간산업기지로 변모함에 따라 1차 산업인구가 크게 감소한 반면 2·3차 산업인구가 급속히 증가하였으며, 특히 공업인구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농업은 쌀·맥류·배·감·야채류·소를 집산하고 있다. 앞바다는 어장이며 방어진(方魚津)·장생포(長生浦)의 두 어항을 가지고 있어 방어·고래 외에 대구·갈치·오징어·전광어·멸치·도미 등의 어획물이 많다.

공업[편집]

전체 면적 1,055.54㎢ 가운데 공업지역은 전체의 5.56%인 58.63㎢ 이다. 국가산업단지(울산미포·온산) 등에서 현재 가동중인 공장은 1,002개소며 종업원은 모두 13만 8,189명이다. 지하자원으로는 유연탄(갈탄)·금·철 등의 매장이 있으나 철이 생산될 따름이고 유연탄은 가정 연료에 불과하다. 공업은 온산 공업 단지의 제련·정유 등 중화학 공업과, 언양·농소에 섬유·전자 공업이 알려져 있다.

농업[편집]

2001년 12월 현재 경지면적 1만 4,502ha 중 논 1만 140ha, 밭 4,362ha다. 농가수는 1만 1,260가구 3만 8,554명으로 총인구의 3.8%를 차지하고 있으며 영농조직은 농기계공동이용조직 130개, 농업회사법인 5개, 영농조합법인 39개 등 174개소가 있다.

수산업[편집]

2001년 현재 울산시에 접해 있는 해안선은 총 108㎞에 이른다. 어업인구는 3,336가구 1만 168명, 어선은 총 1,629척이다. 수산물 생산은 연간 총 34만 4,130t에 달한다. 어항은 1종 2개소, 2종 6개소, 소규모 17개소로 총 25개소다.

특산물[편집]

멸치젓·먹·붓·언양 자수정·옹기·은장도·서생배·송엽주·처용탈 등이 유명하다.

울산공업단지[편집]

蔚山工業團地

울산지구가 공업특정 지역으로 지정된 것은 일대가 태화강과 동천 유역의 광대한 평야로 되어 있는 외에 양항만을 끼고 있어 교통이 편리하고, 태화강과 회야강(回夜江)의 풍부한 공업용수, 부산과의 근거리성, 광산자원이 풍부한 태백산 지역과의 연계 용이, 또 방위상 유리한 점 등 여러 가지 입지적 호조건과 강력한 국가정책의 결과이다. 이 단지에는 미포공업단지와 울산석유화학공업단지가 있다. 미포공업단지는 중화학공업육성을 위한 특정공업지역으로서 대규모 중화학 공장들이 입지하고 있으며, 울산석유화학공업단지에는 석유화학계열 공장들이 있다.

울산화력발전소[편집]

蔚山火力發電所

울산광역시에 있는 복합 화력발전소로 총 발전 용량 32만kW이다. 가스터빈 발전기 4대와 증기터빈 발전기 1대(10만kW)가 설치되어 있다. 1977년 3월에 공사에 들어가 같은 해 12월에 가스터빈 발전기를 완공했다. 그리고 1979년에는 원래 있던 울산화력발전소 자리에 증기터빈 발전기를 설치함으로써 복합화력발전소가 되었다. 복합화력발전소는 발전을 할 때 나온 배기가스를 증기터빈 발전에 다시 이용해 열효율을 향상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울산의 교통[편집]

-交通

철도 동해남부선이 통하고 경부고속도로가 서쪽을 지난다. 중앙부로 부산과 경주, 부산과 울산을 연결하는 2개 국도가 남북으로 통과하고 밀양·언양·울산을 연결하는 국도가 동서로 통한다. 서부로 부산·양산·경주를 연결하는 국도가 남북으로 통하고 동부 동해안을 따라 감포·구룡포·포항을 연결하는 국도가 남북으로 통과한다. 국내 항공노선도 열려 있다. 국도와 기타 도로망이 발달하여 수·륙·공 교통이 모두 편리하다.차량 등록대수는 총 31만 5,927대이며 이 가운데 승용차 23만 4,774대, 승합차 2만 5,648대, 화물차 5만 3,923대, 특수차 1,582대다. 영업용 차량은 시내버스 614대, 택시 4,932대, 화물 6,659대가 있다.

울산의 교육·관광[편집]

-敎育·觀光

경치 좋은 춘도·죽도와 일광 해수욕장·낚시터와 등대 및 기암절벽으로 유명한 울기공원, 그리고 석남사 언양반구대 암각화, 박제상 유적지, 치술령 삼남 작천정 명승지가 있으며 시내에는 시청을 비롯하여 울산 특별건설국·세관·은행, 울산공과대학 등 대학 3개 교와 초등학교 92, 중학교 43개교 등이 있다.

울산항[편집]

蔚山港

항내 수면적 1,100만㎡으로 1종항이며 공업항이다. 1963년 9월 25일 개항장으로 지정되었으며 75년 온산항 및 미포항을 항계(港界)에 포함함으로써 항세가 크게 확장되었다.국내 최대의 울산공업단지가 조성됨에 따라 원자재 및 제품 수송을 위한 항만시설의 확충이 시급히 요청되어 대대적인 공업항의 건설이 시작되어 울산항과 온산항은 중화학공업의 지원항만으로 급성장하였다. 미포항은 제2차 경제개발 3개년계획 기간중 조선수출을 위한 100만t급의 대단위 조선소 시설을 건설하고자 정부의 지원사업으로 방파제 930m와 부대시설 1식(式)을 축조한 것이다. 따라서 미포 공업항에는 일반 선박의 출입이 거의 없고 조선소의 소요 원자재 등 해상화물 수송선이 입출항하는 실정이다.

검단리유적[편집]

檢丹里遺蹟

사적 제332호. 웅촌면 검단리에 있는 청동기시대 전기의 환호(環濠) 유적. 1990년 2

4월에 실시된 부산대학교 박물관조사팀의 발굴조사 결과 환호 1기(基), 환호 안쪽에서 집터 93기, 수혈(竪穴) 3기, 가마터 2기, 고인돌 3기 등의 중요유적과 석촉, 돌칼 등 49점의 석기와 민무늬토기〔無文土器〕등 422점의 유물이 출토되어 이곳이 BC 4세기 무렵 청동기시대 전기의 중요한 유적으로 밝혀졌다.

울산학성[편집]

蔚山鶴城

사적 제9호. 중구 학성동에 있는 조선시대의 왜성(倭城)이다. 증성(甑城)·시루성이라고도 한다. 울산시의 남동쪽을 흐르는 태화강 어귀의 삼각주에 있는 해발고도 50m의 학성산 정상부 대지상에 본성을 쌓고, 서쪽 산중턱에 한층 낮게 외성을 두었다. 본성의 주위에는 참호와 토루를 둘렀으며 동쪽 1km 지점의 반구동(半鷗洞) 강변에 소규모의 토성을 배치하였다. 본성의 성곽은 동서 90m, 남북 35m이며 화강암과 잡석을 3

8m 높이로 경사지게 쌓은 2개의 성문을 북향으로 설치하였다.석축 방식이지만 4면 귀를 모가 나게 돌출시켰는데, 이는 다른 왜성에서도 흔히 볼 수 있다. 이 성은 정유재란 당시 남해안까지 패퇴한 왜군이 방위선을 구축하기 위하여 축성한 것으로, 울산읍성과 병영성을 헐어 충당한 것이었다. 이 성을 근거로 1597년(선조 30) 12월 왜장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등은 조·명 연합군을 상대로 격전을 벌이기도 하였다.

반구대암각화[편집]

盤龜臺岩刻?

국보 제285호. 울주구 언양면 대곡리에 있는 선사시대의 암각화이다. 태화강 상류 반구대 일대의 인공호 서쪽 기슭에 북쪽으로 향한 암벽에 새겨졌다. 댐의 축조로 인해 평상시에는 수면 밑에 있다가 물이 마르면 그 모습을 보인다.그 크기는 가로 약 8m, 세로 약 2m이고, 조각은 암벽 밑에까지 부분적으로 퍼지고 있어 밑에서부터 암각화 상단선까지의 높이는 3.7m 정도이다. 반반하고 매끈거리는 병풍 같은 바위면에 고래·개·늑대·호랑이·사슴·멧돼지·곰·토끼·여우·거북·물고기·사람 등의 형상과 고래잡이 모습, 배와 어부의 모습, 사냥하는 광경 등을 쪼아서 표현하였다.

망해사지 석조부도[편집]

望海寺址石造浮屠

보물 제173호. 청량면 율리 망해사지 소재. 신라시대에 세워진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옛날에는 동쪽과 서쪽에 똑같은 모양의 2개 부도였으나, 동쪽 부도는 일찍이 쓰러져 있던 것을 다시 세웠다. 높이는 약 4m이다.상륜(탑의 맨꼭대기 장식)은 두 탑 모두 없어졌으나 일부가 별도로 보관되어 있다. 우아함과 단아함을 잃지 않은 통일신라 후기의 작품으로 팔각원당의 신라시대 조각수법이 엿보인다.

태화사지 12지상부도[편집]

太和寺址十二支像浮屠

보물 제441 호. 울산광역시 중구 학성동 67번지. 우리나라 속종형 부도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표면에 십이지상을 조각한 것으로는 유일한 고승의 사리탑이다.장방형의 대석 위에 석종형의 탑신을 안치한 형태이며, 그 탑신의 앞면에 감실을 설치하고 그 하단에는 십이지상을 양각했는데, 짐승의 머리에 사람의 몸 형상이다. 십이지상은 능묘와 석탑에는 보이나 부도에서는 보기 드문 예이다. 남쪽은 오상(말)이고 북쪽은 자상(쥐)이다.태화사는 신라 선덕여왕(632~647, 재위) 때 창건한 것으로 전하나 이 부도는 그 뒤 통일신라 시대에 이르러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전체 높이는 110m, 하경 90cm이다.

천전리각석[편집]

川前里刻石

국보 제147호. 울주군 두동면 천전리, 태화강 지류인 대곡천 중상류 계곡물가 판판한 바위면(9.7m

2.7m)에 새겨진 선사시대 마애조각이다. 바위면에는 아래위 2단으로 나뉘어 서로 다른 내용의 조각이 새겨져 있다. 윗부분에는 신라시대 선각(선모양을 새김) 그림과 명문(글을 새김)이 있다.기하학 무늬는 마름모무늬, 겹동그라미무늬, 우렁무늬, 물결무늬, 가지무늬 등 다양하며, 각 무늬도 여러 가지 모양으로 바뀌어 있다. 동물상은 주로 왼쪽 부분에 집중되어 있는데 사슴·호랑이 같은 동물들이 암수 두 마리가 마주보면서 서있는 독특한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겹동그라미는 태양을 상징하며, 대체로 이러한 기학무늬들이 뜻하는 것은 이곳이 청동기시대 이후 농경사회의 풍요와 종족번성을 기원하는 신앙의식이 행해진 제천단이었을 것으로 추측된다.아랫부분의 선각 그림과 명문들은 이곳에 찾아온 법흥왕 26년 입종갈문왕이 순례한 기념으로 적은 글과 그림이다. 말을 타고 가는 모습, 큰 돛을 단 범을 새겼는데, 이러한 선각그림과 글씨는 신라의 살아있는 역사이자 신라화랑 수련장으로 추정된다.

석남사[편집]

石南寺

울주군 상북면 덕현리 1064 소재. 여승 수도의 도량. 가지산 보림사의 개종자 도의가 헌덕왕 16년(824)에 창건하였다. 그 후 조선 제18대 헌종 15년(서기 1674년) 탁영, 석천선사가 중건하고 조선 제23대 순조 3년(서기 1803년) 침허, 수일 등의 선사가 중수하였다. 그 후 오랜 세월이 흐르면서 황폐해진데다가 6·25 전란으로 폐허가 되었다. 그 후 비구니인 인홍스님께서 주지로 부임, 석남사를 재건했다.대웅전·극락전·정수원·강선당 등의 건축물이 있는데, 이 가운데 가장 오레된 것이 정조 15년(1791)에 세웠다는 극락전이고 다음이 순조 3년에 세운 대웅전이다.이 사찰에는 보물로 지정된 석조부도1기와 지방문화재로 지정된 3층석탑, 수조 등의 귀중한 문화재가 있다.

울산의 인물[편집]

-人物

박상진[편집]

(1884~1921)

호는 고헌. 1910년 판사시험에 합격하여 평양지방법원으로 발령되었으나 나라가 위급함을 보고 이를 버리고 독립운동에 몸을 던졌다. 1915년부터 대한광복회에서 활동하였다.주요 활약으로는 1917년 1월 충남 아산의 도고면장 박용하 처단, 경주·영일·영덕의 세금 8,700원을 압수하여 무기구입, 또한 11월 10일 군자금 내기를 거부한 칠곡의 경상관찰사 장(張)모씨 사살 등이 있다.1917년 12월 이종국이 천안경찰서에 밀고하여 광복단 조직이 탄로나고 12월 20일에 체포되어 1921년 8월 11일 대구에서 사형당했다.해방 뒤 울산시에서는 박상진 의사의 뜻을 영원히 기리기 위해 학성공원에 추모비를 세웠으며, 정부에서는 1963년 대한민국 건국훈장단장을 수여하였다. 북구 송정동 355번지 의사의 생가는 시에서 문화재자료로 지정하여 보호관리하고 있다.

이의립[편집]

(1621~1694)

조선시대 유황제조법 발견. 유황과 무쇠가 모두 우리나라에서 생산되지 않자 이를 찾는 데 일생을 바친 인물이다.38세 되던 1657년 1월에 농소 달천의 달산에서 무쇠를 발견하였고, 2년 뒤 토철을 용해하는 제련법을 터득하였다. 이듬해는 궁각 280통, 함석 100근, 새철 1000근, 세면포 100필, 주철환 73만 개, 부정 440좌 등을 만들어 훈련도감에 바쳤다. 이에 현종은 그에게 동지중추부사의 벼슬을 하사했다.또한 그는 유황을 발견하고 유황 제조법을 알아 약용으로 쓰게 하였다. 이렇게 이의립이 나라에 바친 공이 컸으므로 숙종은 그의 3대에 가선대부의 벼슬을 증직하는 한편 달천광산을 하사하였다. 달천광산을 소유하게 된 이의립은 종손이 이를 대를 이어 관리개발하게 하였고 13세손 이은건이 1910년 한일 국치조약 때까지 광산을 경영하였다. '문집 12권'을 남겼다.

울산의 시황[편집]

-市況

총면적 1,056.35㎢, 인구 106만 378(2001.12)명이다. 신라 전성기에 수도 경주의 문호로 정치·경제·교통의 한 중심지였다.또 국방상 요지로서 진 또는 도호부가 되었으며, 임진왜란 때에는 격전지였다. 울산이 공업도시로 발전된 계기는 1962년 1월 제1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에 의하여 특정공업지역으로 지정된데 기인된다.여러 가지 공업입지 조건이 유리하여 짧은 기간에 화력 발전소·정유·비료·자동차·나일론·P.V.C.·알루미늄·제철 등 기간 및 관련 공업이 일어나 현재 약 1,451여 개 업체에 종업원 규모도 13만 5,363명(2001)에 이르는 대공업도시를 이루게 되었다.울산의 인구는 특정공업지역으로 지정되기 전에는 3만에 불과하였는데, 공업화됨에 따라 인구가 증가하여 1967년에는 12만 2,000, 1970년에 15만 9,000, 1975년에는 25만 2,639로 1970년에 비하여 58.3%의 인구 증가율을 보였다.이와 같은 현상은 울산의 공업시설이 확장됨에 따라 많은 기능공이 각지에서 몰려들어 산업도시로서의 발전이 활발하다는 것을 잘 나타내는 것이다. 특히 울산의 3대 발전인자로 광역시 승격, 울산 신항만 건설, 월드컵 유치를 선정한 울산시는 1997년 7월 1일 광역시로 출범하였으며, 신항만 건설도 국책사업으로 선정돼 1997년 10월 착공되었다. 2조 9천억원이 투입될 울산 신항만이 오는 2011년 완공되면 울산은 국제교역의 중심도시로 자리잡게 될 것이다. 또 신항만 건설과 관련한 항만배후 수송도로는 이미 공사에 들어갔으며 신항만 주변에 배후물류단지(65만 평)와 업무단지(20만 평), 신항만 진입 고속도로가 건설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