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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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편집]

바람은 없는데 나뭇잎이 부수수 떨어집니다. 추운 줄도 모르고 해가 저무는 줄도 모르고, 효남(孝男)이는 아까부터 풀밭에 앉은 채로 한숨만 후이후이 쉬고 있습니다.

제 집을 찾아가는지 작은 새 두세 마리가 짹짹거리면서 서쪽 하늘로 날아갔습니다. 그것을 넋을 잃은 사람같이 풀없이 쳐다보더니 그의 눈에는 눈물이 고여서 뺨에 흘러내렸습니다.

아아 불쌍한 어린 신세……. 그는 아홉 살 때에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가난한 어머니의 품을 판 돈으로 시골서 보통 학교를 졸업하고, 남의 집 종이 되어 심부름을 하여서 야학(夜學)에라도 다녀보겠다고 서울로 와서 며칠씩 굶어가면서 벌이터를 찾아다니다 간신히 ○문 밖에 있는 이 ××목장에 와서, 낮에는 온종일 소떼를 지켜주며 심부름하고 새벽에는 자전거를 타고 이 동리 저 동리로 돌아다니면서 우유 먹는 집에 우유병을 돌려주고 한 달에 겨우 십삼 원씩 받고 있게 되었습니다.

밤에 야학에 다녀와서 몇 시간 자지도 못하고, 새벽에 일찍 자고 일어나서 무거운 우유 짐을 지고 한 바퀴 돌아와서, 온종일 소떼를 몰고 다니면서 풀을 뜯어 먹이고 저녁때에나 돌아와 야학에를 다녀오느라니, 열다섯 살밖에 안 된 어린 몸이 너무 고달파서, 떨어질 듯이 아픈 어깨를 제 손으로 탁 탁 치게 될 때에는, 남 못 보게 돌아서서 울기도 퍽 많이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러나 구차한 시골집에는 늙어 가시는 어머니께서 남의 집으로 다니며 방아도 찧어 주고 빨래도 하여 주시느라고 고생하시고, 어린 누이동생 효순이가 동리집 바느질을 맡아다가 밤잠을 못자면서 오빠 하나가 공부 잘 하고 돌아오기만 축수하고 있거니ㅡ생각하고는, 주먹으로 눈물을 씻고 이를 악물고 뛰어 나가고 뛰어나가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시골집 있는 서쪽을 향하여 ‘오오,어머니! 효남이는 몸 성히 있습니다. 뼈가 녹더라도 공부는 마치고 가겠습니다’ 하고, 혼자서 부르짖었습니다.

그런데 그저께 아침에 누이동생에게서 온 편지‥‥‥. 그것은 어머님 병환이 나셔서 닷새째가 되도록 못 일어나시고 앓으신다는 말과 편지하면 걱정이 될 터이니, 편지를 하지 말라 하시는 것을 몰래 써 보낸단 말이었습니다.

그 편지를 읽고 효남이의 가슴이 얼마나 얼마나 답답하였겠습니까? ‘돈이 없으니, 약 한 첩도 못 쓰시겠구나’ 생각하니, 그 오막살이집 속에 누워 앓으시는 어머님과 그 옆에 울고 앉았을 어린 누이의 불쌍한 꼴이 눈에 자꾸 보이는 것 같아서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습니다.

생각다 못하여 효남이는 그 날 저녁때 목장 주인을 보고 그 사정을 이야기하고,

“쫓아 내려가서 병간호는 못해 드릴망정 죽이라도 끓여 드리고 약이라도 한 첩이라도 사 드리라고, 돈을 내려 보냈으면 좋겠으니 돈 5원만 미리 주십시오.”

하고, 애걸하였더니,

“이 집에 온 지도 몇 달 안돼서, 돈을 그믐날 전에 미리 찾아다 쓰기 버릇하면 못 쓴다.”

고 도리어 꾸지람을 하고 돈을 주지 않았습니다. 그날 밤 효남이는 잠도 자지 못하고 울기만 하였습니다. 울다가 울다가 그만 새벽이 되었건만, 먹히지 않아 아침도 못 먹고 그냥 우유 배달을 하고, 그냥 소떼를 몰고 다니다가 저녁때 돌아왔습니다. 와서는 다시 부끄럼을 무릅쓰고, 주인에게 그 전 날 하던 말을 또 하고 애걸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날도 주인은 돈을 취해 주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오늘 아침에 누가 집어갔는지 목장 주인의 금시계가 없어져서 온 목장 안이 벌컥 뒤집혔습니다. 목장 안에 있는 사람은 모조리 주인 앞에 불려가서, 몸뒤짐을 받았습니다. 효남이가 이틀 동안 주인에게 돈을 취해 달라 하다가 못 얻어 쓴 사정을 아는 주인의 마누라와 사무원은 효남이를 의심하였습니다. 효남이는 공연히 가슴이 두근두근 하였습니다. 그럴수록 그들은 효남이의 거동이 수상하다고 더욱 더욱 의심하였습니다. 효남이는 마음이 조금 놓였습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에게서도 이내 금시계는 나오지 않아, 주인은 다시 효남이를 불러서,

“잘 생각하여서 바로 대답하여라, 경찰처로 끌려가기 전에…….”

하고, 눈을 흘겼습니다.

몸을 뒤졌어도 나온 것이 없건마는 이렇게까지 의심을 받으니, 효남이는 무어라고 더 변명할 말이 없었습니다.

‘돈 한 가지 없는 탓으로 이렇게 더러운 의심을 받는구나’

하여, 그냥 몸이 떨리고 눈에는 눈물만 고였습니다. 그래서 아무 말도 못 하고 물러나와 버렸습니다.

“죄가 있으니까 말을 못하고 겁이 나니까 울기만 하는구나.”

하고, 그들은 저희끼리 쑥덕거렸습니다. 해가 산 너머로 넘어가고 목장에서는 저녁밥 먹으라는 종소리가 머얼리 들리어 왔습니다.

‘모두 모여 앉아서 나를 욕하면서, 밥들을 먹겠지’

일어날 생각도 아니하고 그냥 앉아 있는 효남이의 얼굴에는 눈물만 자꾸

흘러내렸습니다.


2[편집]

애매한 죄명을 뒤집어쓰고 효남이가 풀밭에 나가 울고 있는 동안에, 목장 안에서는 목장 주인이 효남이와 다른 일꾼들이 자는 빈 방을 넌즈시 들어가서 보퉁이마다 책상 서랍마다 뒤져 보았습니다. 그런데 금시계는 아무 데서도 나오지 않고, 천만 뜻밖에 효남이가 쓰는 책상 서랍 속에서, 주인마누라의 금반지가 나왔습니다. 잃어버린 줄도 모르고 있던 마누라가 깜짝 놀라 찾아보니까, 정말 자기 경대 서랍 속에 넣어 둔 금반지가 없습니다. 그리고 주인이 효남이 서랍에서 가져온 금반지를 받아보니, 과연 분명히 자기 것이었습니다.

“어쩌면 그 녀석이 그렇게 흉악할까. 겉으로 보아 얌전하고 공부도 잘하길래 귀엽게 여겼더니, 그래 돈5원 안 취해 주었다고, 앙심 먹고 모두 훔쳐가지고 도망가려고 그랬구려. 금시계도 그 녀석밖에 가져갈 놈이 어데 있소. 어서 그 녀석을 불러들여요. 금시계 내 놓으라고 두들기게.”


3[편집]

해가 아주 지고 가을날이 저물어 쓸쓸스럽게도 어둑어둑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날아다니는 새들도 이제는 제 집을 다 찾아 들어가고 없는데, 벌판을 혼자 앉았는 효남이는 목장에서 그 동안 그 소동이 난 줄도 모르고 혼자서 울고만 있었습니다.

‘아아, 어머니 병환이 그 동안에도 더해지셨을지도 모르겠는데, 약한 첩살 돈이나마 보내려다 도둑 누명만 쓰고 있는 줄을 모르고 어린 누이가 오죽이나 기다리고 있을까…….’

효남이는 그만 참지 못하고 땅바닥에 엎드려 소리쳐 울었습니다.

목장 편에서 수득(壽得)이가 뛰어나왔습니다. 수득이는 주인 방에 있으면서 잔신부름을 하는 급사였습니다. 오더니 울고 있는 효남이를 흔들어 일으키고,

“이애 효남아! 큰일났다. 지금 네 책상 서랍을 주인이 뒤져 보았단다.”

합니다.

“아무리 뒤져도 나올 것이 있어야지.“

하니까,

“이애야, 거기서 주인마누라의 금반지가 나왔단다. 그래서 지금 금시계도 네가 꼭 가져갔다고 지금 얼른 불러오라고 그러니 얼른 들어오너라.”

하고, 수득이는 저 혼자 뛰어갔습니다.

‘아아, 이것이 웬 말인가……. 금시계 까닭에 의심을 받는 것도 분한데, 어찌하여 주인마누라의 금반지가 내 서랍 속에서 나왔단 말인가…….’

효남이는 기가 막히어서 머리가 꽝하고 눈이 어두워지는 것 같았습니다.

‘인제는 더군다나 변명할 재주가 없구나’

생각하니 누가 날카로운 칼로 가슴을 찌르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도 주인이 부른다니 안 갈 재주가 없겠어서, 일어서려 하니 일어설 기운도 없고 하도 놀라운 일이어서 눈물도 나지 않았습니다.

‘아아, 그래도 가서 변명이라도 해 보아야지’

하고 효남이가 기운을 다듬어서 두 손을 풀밭을 짚고 벌떡 일어서려니까, 효남이의 얼굴에서 두세 자밖에 안 되는 풀밭에 착착 접은 종이쪽이 떨어져 있는 것이 눈에 띄었습니다.

‘이 풀밭에 저것이 무엇일까?’

하고, 집어 펴 보니까, 이게 웬이겠습니까. 금시계 한 개를 전당 잡힌 전당표였습니다.

효남이는 지옥 속에서 신선이나 만난 것처럼 눈이 부시게 반가워서 누가 잡힌 것인가? 그 이름을 보니까. 전수득, 바로 지금 부르러 왔던 그 급사 아이 이름입니다.

‘오 옳지, 고놈이 제가 주인 방에 있으니까, 금시계를 훔쳐다가 잡히고 나중에 그 허물을 내게 둘러대노라고 오늘 또 금반지를 집어다가 내 책상에 넣어 논 것이 분명하구나. 그리고 지금 나를 부르러 왔다가 급히 뛰어가느라고 흘리고 갔구나‥‥‥. 오냐, 이것만 있으면 나는 도둑누명을 벗는다!’

부르짖으면서, 효남이는 그 전당표를 접어서 손아귀 속에 쥐고서, 날아갈 듯 빠르게 뛰어갔습니다.

목장에는 벌써 전기등이 켜졌습니다. 목장 문으로 뛰어가려 할 때에 그때 목장 문간에는 수득이가 그의 어머니하고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 어머니는 그리 늙지도 않았는데 고생이 많아 그런지 몹시 마르고 얼굴도 앙상하였습니다.

“이애야, 글쎄 오늘은 일찍 온다더니 벌써 집 임자가 와서 어서 방을 내어 놓으라고 내어 미니 어쩐단 말이냐. 아버지가 저렇게 석 달째 앓으시지 않으면, 이런 꼴이야 당하겠나마는, 당장 병들어 누워 계신 아버지를 한길에다 뉘이니, 어쩌니. 돈이 오늘은 된다 하더니 아직 못 되었니?”

수득이 어머니의 근심스런 소리가 그 옆을 지나가는 효남이 귀에도 자세히 들리었습니다.

그러나 수득이는 고개를 숙이고 가만히 있더니, 주머니 속에서 무언지 꺼내는 모양이었습니다.

효남이는 주인의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주인은 골이 나서 성난 사자 같이 눈을 흘기고 앉았고 다른 일꾼들까지 우루루 모여 와서 효남이가 들어오는 것을 보고 입을 비쭉거립니다.

“요 녀석아, 금반지는 어느 틈에 집어다 두었어! 그래도 금시계를 모른다고 뻗댈 테냐? 아무리 도적눔의 씨알머리기로.”

아귀같은 소리 지르는 주인마누라의 소리에 효남이의 온몸에서 피가 벌컥 끓어 올랐습니다. ‘아니요, 왜 자세히 알지도 못하고 그런 욕을 하오’ 하는 소리가 목까지 저절로 끓어올라 오곤 전당표 든 주먹이 불끈 저절로 튀어 나가려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때 생각되는 것은 지금 문밖에서 수득이 어머니가 걱정하는 소리였습니다.

‘그렇다! 병든 아버지와 어머니가 방을 쫓겨나서 한데서 떨게 되었다. 그런데 내가 지금 이것을 내어 놓으면, 수득이가 쫓겨난다. 그가 쫓겨나면, 그의 병든 부모도 굶게 된다. 오냐! 아무 말을 말자. 수득이 집 형편은 나보다 더 급하다. 나보다도 더 불쌍하다.’

효남이는 입술을 꼭 깨물었습니다. 그리고 손에 쥔 것을 바지 주머니에 넣어버렸습니다.

“죽을 죄로 잘못하였습니다.”

그가 고개를 푹 숙이고 이 말을 할 때에 굵다란 눈물방울이 헤어진 헝겊 신발 앞에 뚝!뚝! 떨어졌습니다.


4[편집]

가을 햇볕이 쓸쓸히 비치는 벌판과 목장의 아침……. 남들은 부지런히 오늘 일을 시작하는데, 다만 혼자서 목장을 쫓겨나는 가엾은 효남이는 걸음보다도 눈물이 앞섰습니다. 아무 까닭없이 나아가도 쫓겨 가는 사람은 슬프거든, 억울한 도둑 누명을 쓰고 쫓겨난 몸이라 더욱 슬펐습니다.

생각하면 자기가 지은 죄가 아니요, 같이 있는 급사 아이가 집이 구차하여서 주인의 금시계와 주인마누라 금반지를 훔쳐내고 그 허물을 나에게 씌우려 한 짓이요. 그 애가 훔쳐다가 전당 잡힌 그 표까지 내 손에 들어와 있으니, 그것을 내보이면 나의 변명은 되지마는 병든 아버지와 근심 많은 어머니를 모시고, 수득이 집안 식구가 한길 거리로 쫓겨나게 될 생각을 하고, 그냥 꿀꺽 참고 있었던 까닭으로 도적 누명을 쓰고 쫓겨나게 되었으니 수중에 돈 한 푼 없고 세상이 넓다한들 갈 곳이 어드메겠습니까.

시골집에서는 병들어 누우셔서 신음하시는 어머님을 모시고, 어린동생이 약 한 첩은 고사하고 죽 한 그릇도 끓여드리지 못하고 울고 있을 터인데, 이 못생긴 오라비는 있던 곳조차 쫓겨났으니, 시골 갈 노비도 없고 그냥 있자니 있을 곳조차 없고……. 아아, 어찌하면 좋을까 싶어서 걸음은 아니 걸리고 눈물만 비 오듯 자꾸 흘렀습니다.

정말 죄를 지은 수득이 역시, 구차하기 때문에 제가 나쁜 짓을 하고, 효남이를 쫓겨 가게 하는구나 하고, 속으로 뉘우쳐서 뒤에 서서 자꾸 울었습니다.


5[편집]

물 위에 뜬 잎새 같으면 물 흐르는 대로 따라가기나 하지만, 이 넓은 세상에 아는 집이라고는 목장밖에 없는 효남이 어린 몸이 목장을 나섰으니, 단 한 걸음인들 어느 곳 향할 곳이 있겠습니까, 앞길이 아득하여 망싯망싯 하면서 그래도 쫓겨난 목장 문에는 수득이가 울고 있는지라, 그것을 보고 효남이는 마음이 갑자기 더 슬퍼져서, 그만 눈물이 비 오 듯 하였습니다. 수득이는 참다못하여 그냥 와락 쫓아와서 효남이의 봇짐 든 손을 잡았습니다.

“효남아! 이제는 어디로 갈 테냐?”

“글쎄다. 어디로 가야 할는지 모르겠다. 아무 데라도 가야지 어떡하니…….”

두 소년의 눈에서 모두 눈물이 흘렀습니다.

“나는 네가 아무 죄도 없는 줄 알고 있다. 그런데……. 내가…….”

수득이는 눈물도 안 씻고 사실 이야기를 해 버리려고, 시초를 꺼내었습니다. 그러니까 효남이는 황급히 수득이의 말을 막았습니다.

“아니다, 아니다, 나는 아무래도 갈 사람이니까 아무 말도 하지 말아라. 그냥 헤어지자. 아무 말 말고 그냥 헤어지는 것이 편하다.”

수득이는 점점 더 눈물을 흘리면서

“아니다. 그런 게 아니라 내가…….”

하고, 다시 말을 잇는 것을, 효남이는 또 그 말을 막았습니다.

“아니다. 말을 하면 안 된다. 아무래도 나는 이곳을 떠나야 할 사람을……. 네가 그런 말을 하면 내 마음이 편하지 못하지 않느냐…….너는 너의 아버지를 앓고 계시지 않으냐. 네가 벌이를 하지 못하면 당장 큰일 나지 않느냐. 내가 가야 한다. 내가 가고 네가 있어야 한다. 우리들도 가난하지 않을 날이 있겠지. 가난한 탓밖에 무슨 탓이 있겠니…….”

효남이의 말끝은 울음이 섞이어서 떨렸습니다. 수득이는 그만 효남이의 가슴에 얼굴을 파묻고 소리쳐 울었습니다. 아아! 가엾은 어린이들의 울음! 나뭇잎도 슬퍼서 우는지 한 이파리! 두 이파리! 훌쩍이면서 땅위에 굴러 다닙니다.


6[편집]

아침도 굶고 점심도 굶었건마는, 효남이는 배고픈 것보다도 갈 곳이 없는 것이 걱정이어서, 온종일 해가 지도록 궁리 궁리를 하여도 별 꾀가 없는 효남이는 저녁까지 굶고, 그대로 해가 지기를 기다려서 날마다 다니던 야학교엘 갔습니다.

차마 부끄러워서 교실에는 못 들어가고 사무실로 몰래 들어가듯 기운 없이 들어가니까 선생님이,

“너 왜 얼굴이 그 지경이냐, 어데를 앓았니? 보퉁이는 그게 무슨 보퉁이고…….”

하시는 말씀에 깜짝 놀랐습니다. 단 사흘 동안 남이 놀래게까지 얼굴이 못 되었나 보다 싶어서 눈에 눈물이 핑 고였습니다. 그래 얼른 고래를 숙이고,

“시골로 가야겠어요.”

하였습니다.

“시골은 왜?”

하고, 묻는 소리에 무슨 대답을 해야 하겠습니까. 효남이 입에서는 아무 말도 안 나오고 굵다란 눈물만 뚝!뚝! 떨어졌습니다. 선생님은 눈치를 채인 듯 가만히 계시다가 한참 만에,

“노비는 준비하였니?”

“없어요.”

‘없어요’ 소리를 할 때 가슴이 부르르 떨렸습니다.

“노비가 없으면 어떻게 하니? 칠백 리나 된다면서.”

“걸어서라도 가야겠어요.”

그만 눈물이 소낙비 오듯 쏟아지기 시작하여서 효남이는 그냥 돌아서 쑥 나와 버렸습니다. 그랬더니 선생님도 쫓아 나오셨습니다.


7[편집]

여러분, 기뻐해 주십시오. 효남이는 가엾은 우리 효남이는 미칠 듯이 가 보고 싶어하던 시골집으로 병든 어머니와 나이 어린 누이동생이 울면서 기다리고 있는 시골집으로 급행열차를 타고 가게 되었습니다. 울면서 나오는 것을 보고, 뒤쫓아 나오신 선생님의 주선으로 기차삯을 얻어 가지고 우리 효남이는 지금 급행열차를 타고 시골집으로 닫고 있는 것입니다. 아아, 이 급행차가 닿을 때까지, 효남이가 자기 집에 갈 때까지 어머님의 병환이 더치지 않고 더하지 않고 계시도록 다 같이 빌어 드립시다.


8[편집]

자기의 죄를 대신 뒤집어쓰고 쫓겨나간 효남이와 울면서 작별을 하고 수득이는 그 날 저녁밥도 먹지 않고 밤이 새도록 울기만 하였습니다. ‘한 걸음도 발을 내어 디딜 곳이 없는 효남이가 지금쯤은 뉘 집 처마 밑에서 떨고 섰지 않을까…….’ 생각하면 할수록 뼈가 아프고 가슴을 바늘로 찌르는 것 같았습니다.

‘아니다. 내가 그 애에게 말을 못 하였으면 주인에게라도 말을 해야 한다. 내가 쫓겨나더라도 그 애의 도적 누명을 벗겨 주어야 한다. 그 애는 나를 위하여 대신 쫓겨나기까지 하는데……. 아아! 내가 이렇게 잠자코 있단 말이냐…….’ 새벽녘에 이르러 이렇게 결심한 수득이는 아침 때가 되기를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내가 여기서 쫓겨나가면 당장 오늘 저녁에 아버지께 약 한첩 무엇으로 사다 드릴까……. 수득이는 가슴이 메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아아, 구차한 죄, 가난한 죄……. 그는 부르르 떨면서 엎더져 울었습니다.

아침때가 되었습니다. 수득이가 울면서 자상하게 자백하는 소리를 듣고 목장 주인 내외는 깜짝 놀랐습니다. 불쌍한 동무를 위하여 남의 죄를 뒤집어 쓰고, 잠자코 밀려나간 아이! 세상에 다시없는 착한 아이를 때리고 욕하고 하여 쫓아 보낸 자기들의 잘못을 뉘우칠 때, 어떻게 하면, 그 착한 아이를 다시 찾아 들여서 잘못한 일을 사과할까 하는 마음이 불같이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주인은 그 날 저녁때가 되기를 기다려서, 효남이가 다니던 야학교를 찾아가서, 효남이의 선생님의 찾아보고, 그 동안의 자세한 이야기를 모두 하고, 어떻게 그 애의 집을 찾아갈 수 있느냐고, 주소를 가르쳐 달라고 애걸하였습니다.


9[편집]

목장 주인의 이야기를 듣고, 선생을 일변으로 놀라면서, 일변으로 더 할 수 없이 기뻤습니다. 그렇듯이 남의 죄에 쫓겨나왔으면서 자기에게도 일체 그런 말을 하지 아니하고 그냥,

“어머님 병환이 위중하시다니까 내려가야겠어요!”

하고, 울기만 하던 효남이의 심정을 더할 수 없이 거룩하고 착하여서, 선생님은 한없이 기뻤습니다.

곧, 온 학생을 한방에 모아 놓고, 그 선생님은,

“여러분! 우리는 학교의 학생 중에, 이렇게 말할 수 없이 기특한 학생이 있는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그것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어제 저녁에 어머니 병환 때문에 시골로 내려가 김효남 군입니다. 그 애…….”

하고, 효남이의 그 불쌍한 사정과 어머님 병환 소식을 듣고, 돈 5원만 달라고 하더란 말과, 남의 도적 누명을 쓰고도 그 애가 불쌍하여서 그냥 잠자코 쫓겨난 이야기를 한숨에 내리하였습니다.

선생님의 그 이야기는 거기 있는 200여 명 학생을 모두 감동하게 하였습니다. 선생님이 말을 마치고 다시 사무실로 가서 목장 주인과 이야기 하시는 동안에, 학생들은 헤어지지 않고, 그 중의 한 학생이 나서서

“효남이는 불쌍한 동무를 위하여, 자기가 대신 쫓겨났습니다. 빈손으로 앓는 어머님께로 갔습니다. 우리는 동무를 위하여 단 1전씩이라도 모아서 보냅시다.”

하였습니다.

“옳소, 옳소”

하고, 기쁜 소리가 여기서도 일어나면서, 저마다 주머니에 있는 돈을 내었습니다. 5전 내는 사람, 10전 내는 사람, 11전 내는 사람 모두 합하여 12원 76전이었습니다. 종이에 싸고 그 위에, ‘어머니 약값에 쓰십시오’ 라고 써서 사무실로 가서 선생님께 드리니까, 선생님은 그것을 목장 주인에게 전하면서,

“당신이 시골 효남이 집에 가신다니까, 가시는 길에 이것도 전해 주십시오.”

하였습니다.

목장 주인은 더욱 감동하여

“네, 네, 가지고 가고 말고요. 가서 전해 드리고 효남이 어머니 병환이 위중하시면 제가 모시고 서울로 와서 병원에 입원하시게 해드리겠습니다. 그리고 효남이와 그 누이동생은 다 학교에 다니도록 해주려 합니다. 저는 아들도 딸도 없으니까요.”

하고 일어났습니다.

목장 주인은 그 날 낮차로 효남이 시골로 찾아갔습니다. 닷새 후에 효남이 집 식구를 데리고 올라와서 효남이의 어머니는 병원에 효남이와 효순이는 각각 학교에 입학시켰습니다. 그리고 효남이의 소원으로 수득이도 쫓겨나지 않고 전처럼 잘 다니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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