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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 가는 길

위키문헌 ― 우리 모두의 도서관.

가장 취미 있고 가장 유익한 이야기로 나는 이 일편을 소개한다. 이것은 현금 일본 사상계에 유명한 사가 계리언[1] 씨의 작품인데 이제 나는 그 전반(일본 역사에 관한 것)을 약제하고 요지만을 우리말로 고쳐 쓴다.


사람의 선조는 원숭이었다고 하는 인류 학자의 말도 어느 점까지 믿었었거니와, 요사이 5, 6년 전에 남양 군도로 가던 배가 해중에서 파선되었을 때, 그중에 한 사람이 어느 이름도 없는 무인도에 표착은 되었으나, 이미 기절한 경우에 이른 것을 다행히 수 많은 원숭이 떼의 간절한 간호를 받아 소생되었는데, 그 원숭이의 얼굴과 신체가 사람과 틀리지 아니하고, 다만 얼굴과 수족에 털이 많이 난 것만 다를 뿐이며, 저희끼리는 알아듣는 언어가 있는 모양이고, 그 생활 상태가 미개 시대의 인류의 그것과 틀리지 아니하여 이내 그 곳에서 원숭이 떼와 함께 3년을 살다가 배편을 얻어 돌아온 사람의 실담을 신문·잡지에서도 보고, 귀로도 듣고 하고는 확실히 우리의 최고 선조는 원숭이로다 하는 것을 믿고 알게 되었다. 그가 3년간이나 함께 생활을 하여온 그곳 원숭이 그네들은 아직 덜 진화한 인류로서 오직 개화가 우리보다 몇 세기 뒤졌을 뿐이니, 이제 개화하는 도정에 있는 그가 저대로 진화하여 가면 얼마안하여 지금의 우리와 다르지 아니한 사람이 될 것이요, 따라서 그 한 떼의 특수한 민족을 이루고 그네들의 특수한 언어와 특수한 풍속이 있을 것이다. 과연 우리는 원숭이가 진화한 것이며 원숭이는 우리의 최고 선조일 것이다.

딴은 옛날 인물의 전기나 화상을 보면 대개는 모발이 심히 많았다. 또는 고대 역사의 유명한 영웅으로 얼굴이 원숭이 같은 이가 흔히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더 옛적 아주 미개하였을 시대에는 빨가벗은, 아니 빨가벗은 게 아니라 의복이 없이 몸뚱이 그대로 맨몸뚱이로 산으로 들로 다니며 초과도 따 먹고 냇물도 마시고 하였다 한다. 수목의 가지에서도 자고 토굴 속에서도 잤다 한다. 과연 그 때는 원숭이가 그다지 진화하지 못한즉 사람답지 아니한 생활을 하였었다.

그러나, 그보다도 더 몽매하고, 더 열등하고, 더 사람같지 못한 사람, 환언하면 더 원숭이 같은 사람이 사람같지 않은 생활을 하고 있었던 것을 생각하지 않아서는 안 된다.

생각이 이에 이른즉 그 벌거벗고 다니던 짐승 같은 그 우리의 선조가 그립다. 몽매하였어도, 미개하였어도. 금수 같았어도 역시 그네가 그립다. 그리고, 그보다 더 이전의 고조 고종(高祖高宗)인 사람 같지 않은 사람, 원숭이 같은 사람도 그립다.

나는 어렸을 때에 가끔 원숭이 이야기를 들었다. 산기슭에 있는 대밭에 원숭이가 대를 먹으러 오는 것을 촌민들이 가끔 본다고……. 사람이 조금만 산속으로 깊이 들어가면 무성한 수목의 가지에서 가지로 연하여 도망해 가는 원숭이를 본다고 한다. 나는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이상하게 마음이 찔렸다. 그래서 요술쟁이 같은 사람이 줄에 매어 데리고 다니는 원숭이밖에 보지 못한 나는 깊은 수목 속에서 제풀대로 자연의 생활을 하고 있는 원숭이를 보면 오죽 재미있을까 하고, 늘 보고 싶어하였다. 그러나, 한 번도 그것을 보지는 못 하였으나, 어렸을 때에 들은 이야기의 인상은 실로 선명하여서, 요사이도 언뜻하면 그 이야기의 인상이 실험해 본 인상과 같이, 조그만 어린 원숭이가 대순[竹筍]을 꺾기도 하고, 나뭇가지에서 가지로 옮겨 뛰어 도망해 가기도 하는 광경이 어렴풋이 눈에 뵈는 것 같다. 지금 이 글을 초하고 앉았는 이 몸이 그 근원을 캐어 보면, 그 산중의 자연의 생활을 하고 있는 원숭이었던 것을 생각하면 고금의 변천이 너무나 심하고 진화의 위력이 너무나 놀라움에 감탄을 마지 못하겠다. 원숭이의 인류화, 인류의 생활 조직, 국가의 성립, 국력의 증대, 부자의 속출, 자본가의 융성 등, 예측치 못할 변천에 통감하는 나는, 어느 상식 많은 고로(古老)를 찾아가서 이야기하던 끝에 인류 최고의 역사에 관한 일을 서너 가지 물으니까 고로는 무릎을 치면서,

“하나 보여 줄 것이 있다.”

고, 벌떡 일어나 문갑을 열고, 책 한 권을 내다 주면서, 이 책은 어느 영락한 구가의 서책 중에서 얻은 것인데, 아마 대단히 오랜 옛날부터 전해 오던 이야기를 그 후 어느 때 누가 기록하여 전해 오던 것 같고, 무슨 의미가 있는 것 같기는 하나 우리는 벌써 늙어서 뇌가 나빠서 그 의미를 모를 점이 많기로 그대에게 주면, 그 깊은 의미를 알아, 무슨 유익한 일이 있을 줄 안다고 하는 지라 받아 가지고 집에 돌아와서 즉시 읽어 보았다. 과연 고대의 원숭이 같은 사람의 생활을 묘사한 것이어서, 나의 인류사 연구의 흥미, 선조 동경의 감정은 저으기 만족을 얻었으나, 고로(古老)가 말하던 깊은 의미가 있는 듯하다는 그 깊은 의미는 나도 전연 알지 못할 점이 많다. 그러나, 널리 세상의 식자 제군에 소개하면 반드시 그 의미를 아는 이가 있어, 세상을 위하여 유익한 일이 줄로 믿고, 그 글을 현대 통상어로 고쳐서 다음에 소개한다.


나이 늙은 텁석부리는 잠시 이야기를 그치고, 기름투성이인 손가락을 입으로 핥고는, 그 손을 자기 배에다 쓱쓱 문질러 씻었다. 그의 앞에는 그의 손자 녹추(鹿追), 적두(赤頭), 전노(錢奴)라고 하는 삼인의 젊은 사내가 땅바닥에 털썩털썩 주저앉아서 조부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 그들의 용모 풍채는 대개 똑같고 의복이라고는 곰의 껍질, 사슴의 껍질, 여우의 껍질 등으로 몸뚱이의 일부를 가리고 있다. 그들은 모두 몸이 말라서, 다리는 가늘고 휘어 굽었고, 허리는 조금 앞으로 굽고 다만 손만 엄청나게 발달되어 클 대로 크다. 가슴과 어깨와 수족의 외측에는 털이 짐승같이 많이 나고, 머리에는 자랄 대로 자란 머리가 길게 이마와 눈을 덮는다. 눈동자는 새까맣게 반짝이고, 눈과 눈 사이는 좁고 뺨과 뺨 사이는 넓고, 넓적한 턱은 앞으로 쑥 내밀어 있다.

하늘은 맑게 개이고, 별들이 반짝이는 밤이라서 그들의 앉은 곳에서 멀리 저쪽 끝에 수많은 구릉(丘陵)의 거무스름한 삼림과 삼림이 겹쳐 보이고, 다시 더 먼 천공에는 화상의 연기가 새빨갛게 오르고, 그리고 그들의 뒤에는 바위의 큰 구멍이 있다.

앞에는 화롯불이 활활 타고 있으며, 그 옆에는 큰 산돼지의 시체가 벌써 반쯤 뜯어 먹힌 채로 놓여 있다. 그리고, 그 뒤에는 말승냥이같이 사납게 생긴 큰 개 두 마리가 무얼 지키듯이 서 있고 텁석부리와 손자 세 사람의 앉은 옆에는 화살과 곤봉이 놓여 있다.

“그렇게 되니까 그후부터는 차츰차츰 굴 속에서 나와서 나무 위에다 집을 짓고 살기 시작하였단다.”

하고, 텁석부리는 이야기를 계속하였다. 손자들은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듣고 그 사는 꼴이 퍽 우습다고 웃었다. 텁석부리도 웃었다. 물론 텁석부리의 말이 지금 여기 기록하는 말은 아니고, 짐승의 우는 소리 같은 발음이었으나, 그러나 의미가 손자들에게 통했다.

“그래서 그 때 우리는 처음 해촌에서 살게 되었다. 그러나 우리들은 그때까지도 어리석어서 사람의 힘의 비밀을 알지 못했었단다. 집과 집이 전혀 무관계로 서로 떨어져 있어서, 살기도 따로 하고 일도 따로따로들 하고 있었다. 우리들의 해촌에는 집이 30채나 있었건마는 그것이 서로서로 원조할 줄 몰랐다.

원조는 고사하고 서로 원수같이 미워하여 피차 왕래도 아니하였다. 우리는 다 각기 제집을 나무 위에다 지어 놓고, 그 집 아래에도 큰 돌멩이를 가득 쌓아 놓고 나무 밑에 누가 오는 놈만 있으면 그 놈의 머리 위에 돌을 내려뜨리는 게 으레여서 우리는 서로서로 영영 남의 집 나무 밑에는 일체 가지 않았었다. 내 형님이 한 번 장보(張保) 늙은이 집 밑에 갔다가 돌에 맞아 죽어 버렸단다.

그 장보 늙은이는 무섭게 힘이 센 놈인데, 누군든지 오면 목을 뺀다고 떠들고 있었다. 그래서 한 사람도 그 놈의 근처에 가지 않았다. 우리 아버지도 그 놈을 대단히 무서워하였는데 하루는 아버지가 어디 가고 없던날 장보 늙은이가 우리 어머니를 쫓아 왔단다. 어머니는 마침 그 전날 산에 딸기를 따러 갔다가 곰에게 발을 물려서 발병이 나셨기 때문에 기어코 장보에게 잡혔다. 그래서 장보라는 놈이 어머니를 잡아가지고, 저의 나무로 데리고 가버렸는데 그 후에 아버지는 도로 찾을 수가 없었단다. 장보는 아버지만 보면 으르렁 으르렁 하였다.

그러나 아버지는 태연하였다. 또 한 놈 강팔(强八)이란 기운 센 놈이 있었는데, 그 놈이 하루는 갈매기 알을 주우러 해변으로 갔다가 높다란 언덕에서 거꾸로 박혀, 죽지 않고 살기는 하였으나 매일 기침만 하고 점점 말라서 약하여졌다. 그래서 우리 아버지가 그 강팔이의 마누라를 빼앗았다. 그 강팔이가 기침을 하면서 우리 나무 밑에 오면 돌멩이를 내려뜨렸단다. 그 때는 모두 모든 일이 이래서 서로 힘을 합할 줄을 알지 못하였단다.”

텁석부리는 이야기를 하다가 손으로 산돼지의 살 한줌을 뜯어서 맛나게 씹어 먹고는 또 그 손을 배에다 씻으면서 이야기로 계속하였다.

“이때껏 한 이야기는 벌써 오래 된 이야기이고 그 후에도 우리는 퍽 어리석은 짓을 하였단다.”

“아무리 미개하기로 그런 어리석은 짓들이 어디 있소.”

하고 녹추가 말했다.

“그러게 말이지.”

하고, 전노가 응하였다. 적두는 고개만 끄덕였다.

“참말 어리석었지. 그러나 우리는 그 후 지혜가 조금 난 후에 더 어리석은 짓을 하였단다. 내 이제 그 이야기를 들려 주마.

아까 말한 것같이 우리는 해촌에 살거니와, 저 ——산촌에 사는 놈들은 우리와 달라서 사냥질에도, 고기잡기에도, 딴 패와 싸울 적에도, 으레 모두가 힘을 합해 가지고 있었다. 어느 때인지, 한 번 그 놈들이 산을 넘어서 우리 촌을 치러 왔다. 우리는 다 각기 자기 집으로 도망을 하였다. 산촌의 놈들은 단 열 명뿐이었건마는 그 열 놈이 힘을 합쳐서, 한 무더기가 되어서 가지고 싸우는데, 우리는 각각 자기 집에서 홀로 싸웠다. 우리는(손과 입으로 억지로 꼽아 60을 세이면서) 60명이나 되니까, 그 힘이 산촌의 6배 이상이나 될 것이지마는 그 60인의 힘을 합할 줄을 몰랐다. 그래서 우리는 그 산 촌놈 열 놈이 맨 처음에 장보의 집을 치는 것을 보고 있었다. 장보는 원래 힘이 세어서 잘 싸우지마는 혼자서 열 놈을 당할 수가 없었다. 우리는 가만히 그것을 보고만 있었다. 그러는 동안에 산촌놈 두엇이 그 나무에 기어올라가기를 시작했다. 장보는 그 올라오는 놈의 머리 위에 돌을 떨어 치려고 집 속에서 나왔다.

땅에서 따로 활을 가지고 장보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던 놈이 활을 쏘아서 장보는 그만 죽었단다. 그 다음에 산촌패는 쪽눈의 집을 들이쳤다. 그 놈들은 쪽눈의 집에다 불을 질러서 태워 죽였단다. 마치 우리가 어저께 곰을 태우듯이‥‥‥. 그 다음에 그 놈들이 육손의 집을 에워싸고 치는 동안에 우리는 모두 도망을 가 버렸다. 산촌놈들은 우리 촌의 여편네 5 ~ 6명을 붙잡고, 노인과 어린애 몇 사람을 죽이고 붙잡은 여편네를 산촌으로 대리고 가버렸단다.

잠시 후에 도망갔던 우리들이 살금살금 모여 돌아왔는데 전에는 서로 말도 아니하던 터이나, 너무나 의외로 참변을 당하고 무섭고, 서럽고, 분하여서 서로 그 이야기를 하였다. 그것이 우리들의 최초의 집합이었단다. 이 최초의 집합에서 꽤 많은 지혜를 얻었다. 산촌놈들은 단 열 명이라도 열 명의 힘을 가지고 있다. 각 개인이 열 명의 힘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30채의 집과 60명의 남자가 있건마는 다 따로따로 싸우기 때문에 한 사람이 한 사람의 힘밖에 없다. 그것을 우리가 처음 깨달았다.

그 때의 집합에는 물론 곤란이 막심하였다. 아직 언어가 불충분하여서 뜻을 발표하기에 곤란하였다. 그 뒤에 오초(五初)라는 놈이 말을 많이 만들었으나, 그래도 그 때는 서로 뜻을 통하기에 몹시 곤란하였다. 그러나 결국 의논이 합해서, 이 뒤부터 산촌놈들이 여편네를 도적질하러 오거든 여럿이 힘을 합하여 한 무더기가 되어서 싸우기로 하였다. 그 때부터 비로소 한 조합된 정말 촌이 되었단다.

우리는 의논하고 산고개에 파수를 두 사람을 두었다. 한 사람은 낮이고, 한 사람은 밤으로 벌려서 혹시 산촌놈들이 오지 않나하고 수직하는 것이어서, 그것이 우리 촌의 눈이었다. 그리고, 또 열 명의 남자가 곤봉과 활을 준비하고, 어느 때에든지 곧 싸울 수가 있도록 밤낮없이 뻗치고 있었다. 이전에는 우리가 생선이나, 조개나, 갈매기 알을 주으러 갈 때에는 다 각각 무기를 가지고, 방금 어디서 적이 오지 않나 하고 서로서로 벌벌 떨면서 주의를 하였지마는 이제는 그런 염려없이 비번들이 마음대로 일을 하게 되었고, 또 여자들이 산에 감자나 딸기 따러 갈 때에는 열 명의 싸움 준비인 중 다섯 명씩 따라 가기로 되었다. 그리고, 밤낮없이 산고개에서는 촌의 눈이 파수를 보고 있었다.

그러나 귀찮은 일이 생겼다. 밤낮 그게 여편네 때문이기에 여편네 없는 사내들이 다른 사람의 여편네를 건드리기 때문에 남자끼리는 밤낮 싸움이 나서 머리도 터지고 창에 찔리고 하는 일이 자주 있었다. 산고개에서 파수 보던 놈이 저 없는 동안에 여편네를 빼앗기면 그것을 도로 빼앗으려 촌으로 내려온다. 그러면, 또 한 놈이 마저 제 여편네가 염려되어서 촌으로 내려온다. 싸움 준비의 열 사람은 또 저희끼리 다섯 명씩 패가 되어 서로 싸우고 하여 촌의 파수도 싸움 준비도 다 없어지고, 60인의 힘은 사라져 아무것도 없어지고 말았다. 그래서 여럿이 다시 모여서 이번에는 그런 일이 없도록 미리 법도를 만들었었단다. 나는 그 때 어렸었지만, 그 때의 일은 자세히 안다. 촌을 강하게 하려면 촌내의 싸움은 하지 말아야 한다 하여, 사람을 죽이는 놈이 있으면 여럿이 그 놈을 죽이고, 남의 여편네를 도적하는 놈이 있으면, 그 놈도 여럿이 죽여 버리기로 법도를 정하였단다.

흑두(黑頭)라는 놈은 몹시 힘이 강한 놈인데, 그놈이 제 힘만 믿고 촌의 법도를 무시하였다. 어느 날 그 놈이 삼합(三蛤)의 아내를 도적하였다. 삼합은 들이덤볐으나, 얻어맞아서 머리가 터졌다. 그래서 촌의 법대로 여럿이 덤벼서, 그 놈을 죽여 버렸다. 그래 그 놈의 송장을 나무에다 매달아서 법을 무시하는 놈은 이렇다고 광고를 하였다. 촌중에 법도는 아무 힘보다도 강하고, 무서운 것인 줄을 촌인들이 모두 알았다.

그런데 또 한 가지 괴로운 일이 생겼다. 잘 들어라. 녹추도, 적두도, 전노도 다들 잘 들어라. 촌을 잘 만들기는 결코 용이한 일은 아니라, 이러니저러니 하고 일이 퍽 많다. 그래서 그 일을 일일이 의논하기 위하여 자주자주 모이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다. 아침에도 모이고 낮에도 모이고, 어느 때는 밤중에도 모이게 된단다. 가령 말하자면 파수는 누구를 정한다거나, 싸움 준비하는 사람을 수비라 하는데, 그 열 사람의 수비에게는 먹을 것을 얼마나 나눠 줘야 할는지 그야말로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그 모든 일을 주선하고 일하는 촌장을 만들기로 하였다. 그래서 최초의 촌장으로는 임금(壬金)이란 사람이 뽑혔다. 그 임금이란 사람을 기운도 세고 또 몹시 영리한 자여서, 그만한 일은 할 사람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믿고, 그 사람을 뽑아서 촌장을 만들었단다.

그리고 나서, 우리의 해촌과 산과의 사이에 돌멩이로 큰 담을 높이 쌓기로 하였다. 그 역사(役事)는 거의 열 명의 수비가 하고, 여자도, 아이도 기타 모든 사람이 조력을 하였다. 돌담이 다 쌓인 후에 우리는 모두 나무 위의 집을 헐고, 내려와서 돌담 안에다가 집을 짓고 화초로 지붕을 이고 하였다. 그 집은 크기도 하고, 좋기도 하고 하여 나무 위의 집보다 몹시 살기 편하였다. 이제는 여럿이 매사에 힘을 합하고 싸움도 아니하고 파수도 있고 수비도 있으므로 먹을 것도 염려없이 자연히 많이 취할 수 있어서 아무도 배고픈 사람도 없이 태평으로 지내게 되었다.

그런데, 삼발(三發)이라는 사람은 어렸을 때 다리를 다쳐서 지팡이를 짚고 다니는데, 그 자가 하루는 산에 가서 수수 익은 것을 갖다가 자기 집 주위에다가 쭉 뿌렸다. 그리고, 그 자가 또 산에 가서 감자, 꽃 등을 모두 갖다가 심었다.

해촌에는 돌담이 있고, 파수도 있고, 수비도 있어서 안전하고, 먹을 것이 많다 하여 근처의 해변에서도 모여 오고, 먼 산중에서도 다수한 사람이 모여 와서 해촌은 사람으로 가득하여, 수없는 집이 헤아릴 수 없이 늘었다. 그런데 그렇게 되기 이전에는 지금까지 촌인의 공유이던 토지가 여러 사람의 것으로 쪼개지게 되었다. 그것은 삼발이가 수수를 심을 때부터 시작된 것이었으나, 그 때는 사람들이 대개는 토지의 일쯤은 대수롭지 않게 여겨서 생각도 잘 아니 하였었다. 삼발이가 자기 집 주위에 울타리를 세워 경계를 만드는 것을 보고 필요없는 짓을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먹을 것을 많겠다, 그 위에 토지가 더 많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니. 그러나 그 후 우리 아버지와 내가 삼발이의 집에 가서 울타리 엮기 조력하여 주고, 그 대신 수수를 받아온 일이 있었다.

그래서, 촌의 공동의 토지는 몇 사람 안 되는 사람이 모두 나눠 가지고 말았다. 삼발이가 그 중에도 제일 많이 차지하였고 그 외에도 남의 땅을 수수, 짐승의 껍질 등을 대신 주고, 바꾸어 들여서 점점 삼발이의 토지는 많아졌다. 그러는 통에 우리에게는 토지라는 것이 없게 되었다. 마침 그 때 촌장인 임금이 죽었다.

임금이 죽으니까, 다른 영악한 사람을 촌장으로 내야겠는데, 죽은 임금의 자식이 저의 애비가 촌장이었으니까, 여하튼 제가 촌장이 된다고, 제 마음대로 촌장이 되고 이름까지 애비 이름 그대로 임금이라고 고쳤다. 이 놈은 제가 제일 영악한 인물이고, 전 촌장보다도 제가 잘났다고 떠들었다. 딴은 이 놈이 처음에는 촌 일을 잘 하는 체하여 우리도 그리 괴롭지 않게 지냈다. 그런데 거기 괴이한 말을 하는 자가 생겼다. 그 놈은 판수(判壽)라는 놈인데 이 놈이 촌사람을 보고 자기는 죽은 사람의 영혼과 이야기를 하는 터이며, 따라서 자기의 말은 모두 신령님의 말씀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그 놈은 새로 촌장이 된 임금과 친한 사이여서 늘 촌장을 위하여 촌장에게 이롭고도 좋은 소리만 하였다.

촌장은 기뻐서 우리를 시켜서 판수의 집을 크고, 좋게 지어 주었다. 판수는 그 집을 차지하고 앉아서 거디가 귀신을 모시었다.

새 촌장은 점점 우리의 모임보다도 세력이 크게 되었다. 그래서 점점 횡포스러워지므로 우리들이 고충을 말하고 다른 사람을 택해서 촌장을 만들려고 했다. 그러니까 판수란 놈이 신령의 말씀이라고 칭탁하고, 그것은 안 되는 일이라고 말했다. 어느 틈에 토지 많은 삼발이와 기타 다른 지주들도 모두 새촌장 임금의 패가 되고 말았다. 더구나 촌 중에서 제일 힘이 센 해구(海龜)란 놈이 지주들에게서 몰래 토지를 분할해 받고, 그 밖에도 수수와 짐승의 껍질을 받았으므로, 그와 한패가 되어 판수의 하는 말은 모두 신령의 말씀이니까, 우리가 믿지 않아서는 안 된다고 떠들었다. 그 후, 그 해구란 놈은 촌장인 임금의 심복 부하가 되어 버렸다. 그리고, 또 꼽추라는 꾀 많은 놈이 시내 어귀에다가 커다란 생선 잡는 올가미를 만들었다. 그것 만드는 것을 보고 우리는 웃었더니, 만든 후에 보니까, 촌 중 여러 사람이 열흘 동안 하여도 잡지 못할 많은 생선이 하루에 잡혔다. 그것을 보고, 우리는 기뻐하였다.

그리고, 이제 다른 시내 어귀에 그물을 치기 좋은 곳이 있기에 나하고 우리 아버지하고, 또 그 외에 열 명이 힘을 합하여 큰 그물을 만들려고 하니까, 임금의 수비들이 집에 와서 창 끝으로 우리를 해치고 이곳에 꼽추가 그물을 칠 터이니까, 다른 사람은 치지 못한다고 임금의 명령과 해구의 전달로, 우리를 몹시 꾸짖었다.

자아, 여기저기서 불평의 소리가 일어났다. 우리 아버지가 주장하여 촌인을 집합시켰다. 그러나 우리 아버지가 일어나서 말을 시작하려고 할 때에 해구라는 놈이 창으로 아버지의 목을 찔러 넘어뜨려서 아버지는 기어코 죽었단다. 임금과 삼발이와 꼽추는 그것을 칭찬하였다. 판수란 놈은 그것이 신령님의 지시하신 일이라 하였다. 그 후부터는 촌인들이 겁들을 내서, 아무 말도 못 하게 되었다. 촌인의 집합이란 없어졌다. 이번엔 원억(猿億)이란 놈이 돼지를 치기 시작하였다. 그 돼지가 자꾸 새끼를 쳐서 얼마 아니하여 수많은 돼지를 치게 되었다.

그래서 토지도 없고, 수수도 없고 생선도 없고 한 놈들이 원억이에게 가서 고용이 되어 돼지를 지켜 주고 그 삯으로 돼지고기를 조금씩 받고, 그 고기로 또 수수와 생선하고 바꾸기도 하였다.

그 때 '돈' 이라는 것이 생겨 나왔다. 그것은 해구의 터득으로 생각하여 임금과 판수와 의논하였다. 이 세 사람은 촌 중에서 촌인이 얻는 것은 모조리 무엇이든지, 그것은 거의 3분의 1씩을 받고 있었다.

그것으로 그 놈들은 파수와 수비들을 기르고 있었다. 생선 같은 것이 많이 잡혀서 그 3분의 1을 받은 것도 어떻게 처리할 수가 없이 많아서 곤란하니까, 해구란 놈이 꾀를 내어 여편네들에게 일러서 조개껍질로 돈을 만들게 하였다. 조갑지들을 동그랗게 만들고, 가운데에 구멍을 뚫어서, 그것을 끈에 꿰었다. 그것이 돈이었다. 돈 한 꿰미에 생선이 30마리, 혹은 40마리씩 값을 쳤으나, 그것을 만드는 여자들은 하루에 한 꿰미를 만들고도 생선 두 마리씩을 받고 있었다. 그나마 그 생선은 임금과 판수와 해구가 촌인에게서 3분의 1씩 받은 것 중에서 주는 것이므로, 만드는 돈은 그대로 세 사람의 것이었다. 그 후부터 토지도 물건도 없는 사람이 토지 있고, 물건 많은 사람에게 가서 일을 해 주고 그 돈을 받아다가 그 돈으로 물건을 사게 되었다. 그리고 삼발이와 원억이와 꼽추 들은 그 생기는 물건을 3분의 1씩 바치던 것을 이제는 돈으로 바치게 되었다. 그리고, 임금은 파수와 수비들에게 먹을 것, 입을 것을 물건으로 대신 돈을 주게 되었다. 돈은 흔하고 많이 싸였으니까, 임금은 흠뻑 수비를 늘렸다. 촌인들은 그렇게 값싼 돈을 자기가 만들려고도 하였다. 그러니까 수비가 그 사람을 창으로 찔러 거꾸러뜨리고, 활로 쏘아 죽이고 하였다.

그리고 하는 말이 ‘이놈들은 촌의 법도를 파괴하는 자다. 촌이 파괴되면 산촌놈들이 곧 와서 해촌인을 모두 죽인다.’ 하였다. 그 후에 판수란 놈도 부하를 늘리고 또 꼽추도 삼발이도 모두 부하를 많이 두었다. 돈이 흔하고 많으니까, 그 부하들이 또 부하를 두었다. 그래서 돈 많은 사람들의 좌우에 빈들빈들 놀고 자빠져서 살이 찌는 놈이 많게 되었다.

그 여러 놈들이 만족히 먹어야겠으니까, 물가를 함부로 올렸다. 나머지 사람은 점점 더 일을 안 하면 안 되게 되었다. 조금 음흉한 놈은 어떻게든지 해서 다른 사람을 일을 시키고 편히 먹을 꾀를 내게 되었다. 가제미란 놈은 약은 꾀를 내어서 수수로 술을 만들었다. 그리고 임금, 판수 그 외에도 여러 괴수와 논의하고 술 만드는 것은 자기 혼자로 하고, 다른 사람은 못하게 하기로 약속하였다.

그러나, 가제미는 제 손으로 술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돈을 주고 사람을 사서 술을 담그고, 그 술을 비싸게 팔아서 몇 갑절 되는 이익을 남겼다. 그리고 가끔가끔 그 이익의 몇 분의 1씩 임금과 판수에게 바쳤다.

임금이 촌장의 세력만 알고 남의 계집을 넷이나 빼앗을 때 판수란 놈은 그것을 변호하였다. 임금은 다른 보통 사람과 다르다, 임금은 신령 다음이시다, 우리를 다스려 주는 그가 그만한 뜻을 만족시키는 것쯤은 의당한 일이라 하였다. 또 임금은 큰 배를 지어 가지고 선유를 자주 했다.

그 때문에 또 여러 촌인은 일을 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다. 그러노라니 촌중에 불평의 소리가 많으니까, 임금은 털보라고 가장 힘이 센 놈을 부하로 삼았다. 털보는 또 기운 강한 부하를 데리고 임금이 싫어하는 사람을 죽였다.

또 임금에게 나쁜 말을 하는 사람은 모조리 털보가 죽였다.

얘들아, 너희는 어떻게 생각하니? 참으로 괴상하지 않느냐? 점점 갈수록 일하는 사람은 일만 더 하고, 먹을 것은 적어졌단다.

먹을 것이 전보다 몇 갑절씩 더 잡히고 하였지마는 놀면서 배불리 먹는 놈이 많게 된 대신에 일하는 사람이 도리어 배를 주리게 되었단다. 임금이란 놈의 집에서 기르는 개는 푸둥푸둥 살만 찌고, 낮잠이나 자고 자빠졌는 놈은 배가 부르게 먹고, 한편에서는 어린애들도 먹지를 못하여 배를 주리고 울고 있단다.”

배를 주린다는 이야기에 생각났는지 녹추가 산돼지의 살 한 줌을 뜯어서 막대기 끝에 꿰어 가지로, 화롯불에 구워서 그것을 맛있게 씹어 먹는다.

“그래서 우리들이 참다참다 못하여 고생되는 점을 말한즉 판수란 놈이 또 신령님의 말이라고 칭탁하고 이렇게 말하였다.”

“신령님이 현명한 사람을 택하여, 그네에게 토지를 주시고, 그물을 주시고, 술을 주신 것이다. 그 현명한 사람들이 없었다면 지금껏 이 해촌 사람들은 짐승 같은 생활을 하고 있었으리라고…….”

“그리고, 또 촌장 임금을 위하여 노래를 부르는 놈이 생겼다. 그 놈은 조그만 오초란 놈인데 조그맣고 약한 꼴에 얕은 꾀는 많아서 촌장을 위하여 노래를 부르고 아무 일도 않고, 놀면서 먹게 되었다. 촌중에 불평이 심하여 거저 임금의 집에 돌멩이를 던지고 하는 놈이 생길 때에 오초란 놈이 《해촌인의 행복》이라는 노래를 지어 부른다. 그 노래를 보면 해촌 인민은 신령님께 선택을 받은 사람이고, 신령님이 만드신 중에 제일 훌륭한 사람이다. 산촌 인민은 새나 짐승같이 더러운 무리다. 그 천하고, 더러운 산촌인을 죽여 없애는 것이 신령님의 본의라, 그런 고로 산촌인과 싸워서 그 때문에 죽는 것은 해촌인의 행복이고, 자랑이라 한다. 이 노래를 들은즉 우리의 마음은 불길같이 타서 산촌인을 미워서 미워서 못견디게 되었다. 그래서 벌써 자기의 배고픈 것도 모르고 여러 가지 고정도 모두 잊어버리고, 그 털보의 호령대로 산을 넘어서 수많은 산촌인을 죽이고 기뻐하였다.

그러나, 해촌은 조금도 좋아지지는 않았다. 촌인들은 먹을 것을 구하기 위하여 삼발이에게 가서 수수밭일을 하거나 원억에게 가서 돼지를 치든지 해야 한다. 그나마 사람이 많아서 그 일도 못하게 되는 사람은 먹지도 못하고 따라서 그 처자도, 부모도 먹지를 못하고 울게 된다. 고정은 더 심하여졌다.

그러니까 오초란 놈이 또 노래를 불렀다. 삼발이나 원억이나, 꼽추는 모두 훌륭한 사람이다. 강한 사람이다. 우리는 이런 강하고 훌륭한 사람을 가진 것이 행복이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우리같이 변변치 않은 자는 벌써 산촌 사람에게 죽고 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강하고 훌륭한 사람에게 우리는 즐겨, 그 가질 것을 모두 갖게 하여야 하고, 취할 것을 모두 취하게 하여야 한다고, 판수와 털보 들은 이렇게 말하였다.”

“그렇다. 꼭 그렇다…… 꼭…….”

“오냐, 그럼 나도 강하고 훌륭한 사람이 되어 보마 하고 백아(白牙)란 사람이 자기가 수수를 갖다가 술을 만들기 시작했다. 처음 술 만들던 가제미가 여러 번 말렸으나 듣지 않았다. 나도 강한 사람이 된단다. 또 무어라 하면 두들길 터이라고…….”

“그래 할 수가 없어 가제미가 삼발과 원억이 보고 의논을 하고, 세 사람이 임금에게 호소하였다. 임금은 해구에게 명하였다. 해구는 털보에게 명하였다. 털보는 부하를 보내어 백아의 집을 에워싸고 불을 질러 태워 죽였다. 백아의 가족도 모두 타 죽었다. 그것을 보고 판수는 잘 했다고 말했다.

그 때 오초가 또 노래를 불렀다. ‘법도를 지키는 자는 선한 자이다. 해촌은 아름다운 나라다. 해촌을 사랑하는 자는 속히 가서 산촌인을 죽이라고…….’ 노래는 또 우리의 마음을 태웠다.

우리는 또 불평을 잊어버렸다. 그 후에도 우스운 일이 많았다. 꼽추는 생선이 너무 많이 잡혀서 이래서는 생선값이 떨어진다고 잡았던 생선을 도로 해중에 넣고 삼발이는 수수값이 싸진다고, 넓은 토지를 그냥 놀리고 있다. 이렇게 해서 자꾸 일하는 사람만 못 살게 군단다.”

“할아버지, 왜 여럿이 한데 힘을 합하여 그 삼발이와 원억이 같은 놈들을 죽여 없애지 못하셨어요?”

하고 적두가 물었다.

“그러게 말이다. 우리는 그 이유를 모르고 있었단다. 파수와 수비는 많고, 한마디라도 불평의 소리를 하면 즉시 잡아다 죽이는 것을 어찌 하니!

어쨌든가 돈이란 이상한 것이니라. 임금은 돈을 곳간 속에다가 잔뜩 쌓아 놓고 파수를 보게 하는데 그 돈이 많으면 많아질수록 우리는 그만큼 더 많이 일을 해야 하고도 먹을 것은 점점 없어질 뿐이고, 그러다가도 산촌과 싸운다는 소문이 나서 수수와 말린 생선을 산같이 모으고‥‥‥. 그러면 우리의 먹을 것이 더 없어지고, 그래도 태평 세계로 불평의 소리가 조금 일어날 듯하면 오초란 놈이 또 노래를 부르며, 산촌놈을 죽이라고 부르짖는다. 그러면 털보는 우리를 끌고 산넘어 가서 죽이고, 죽고 하고 먹을 양식이 없어지면 싸움을 그치고 와서 또 먹을 것을 산같이 모아들이고……. 참말 미친 놈의 짓이지. 그러나 우리는 영문도 모르고 그 짓을 하였지……. 그런데 여기 빨갱이란 사람이 생겼는데 그 사람이 꽤 그럴 듯한 이야기를 하였다. 즉, 예전에 우리가 힘을 합하여 몹시 강하였었다. 그리고 촌을 위하여 좋지 못한 짓을 하는 놈이 있으면 촌에서는 여럿의 힘으로 그놈을 죽이지 않았느냐, 그런데 지금은 촌의 힘이 점점 약해졌다. 그것은 촌에 좋지 못한 놈이 있는 까닭이다. 그러나, 그놈이 강하다 하여도 그 힘이 강한 게 아니라, 삼발이 같은 토지의 힘을 가진 놈이 있고 꼽추 같은 그물의 힘을 가진 놈이 있고, 원억이 같이 돼지의 힘을 가진 놈이 있으니까, 그놈들에게서 그 나쁜 힘만 뺏아 버리고, 여럿이 다같이 일을 하기로 하고, 일 아니하는 놈에게는 먹이지 않는 것이 제일 상책이 라고 빨갱이의 말은 이러하였다."

“그러니까 벌써 오초란 놈이 노래를 부른다. 빨갱이란 놈은 예전 미개한 세상으로 도로 뒷걸음질쳐 가서 살자는 놈이라고……”

이번엔 또 빨갱이가 대답하였다.

“우리들은 결단코 예전 시대로 뒷걸음질하자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나아 가자는 것이라. 힘을 합하는 자는 강해지나니, 해촌인이 산촌인 하고 미워하지만 해촌인과 산촌인 힘을 합치면 싸움도 없어지고 수비도 파수도 다 소용없이 될 것이다. 그리고, 놀고 먹는 사람 없이 다 같이 일을 하면, 하루에 두 시간 이상 일을 할 필요가 없을 것이라고…….”

“그러니까, 오초란 놈이 밀봉(蜜蜂)의 노래라는 것을 지어 불렀다. 그 노래는 묘한 노래여서, 그 노래를 들으면 마치 독한 술에 취한 듯하게 된다. 그 노래의 뜻은 이러하다. 어느 곳에 꿀벌의 떼가 있어서 매일 일을 잘 한다. 거기 도적벌은 아주 게으름뱅이어서 그렇게 바쁘게 일을 해 무얼 하느냐고 꿀벌을 보고 말하였다. 도적벌은 또 저 곰하고 친히 사귀라고 권하였다. 곰은 꿀을 도적질하는 게 아니라, 친절한 벗이라고 꿀벌에게 이야기하였다. 오초는 이 노래를 묘하게 불러서 그 꿀벌의 떼는 해촌의 촌인이고, 곰은 산촌이고, 도적벌은 빨갱이라고. 그것을 자연히 촌인이 깨닫게 하였다. 그래서 꿀벌이 도적벌의 말을 듣다가 점점 곰에게 꿀을 모두 도적맞는다고 계속해 부르니까 무식한 촌인들은 모두 노하여 빨갱이를 미워하게 되었다. 그러니까 오초란 놈이 또 계속해서 부르기를, 그러나 그 꿀벌 중에 약은 자가 도적벌의 죄상을 깨닫고 들이덤벼서 쏘아 죽였다고 하니까 촌인들은 일시에 돌멩이를 집어 던져서 순식간에 빨갱이는 산같이 쌓인 돌덩이 밑에 눌려 죽었단다. 하루 온종일 일을 하고도 별로 먹을 것을 얻지 못하는 구차한 사람끼리 그 돌을 던지고 있었단다.”

“에에 어리석은 놈들!”

하고 적두가 부르짖었다.

“엥, 무식한 놈들!”

녹추와 전노도 통분해 하였다. 텁석부리는 다시 이야기를 계속하였다.

“그렇지만 빨갱이가 죽은 후에 또 한 사람 더 영악한 빨갱이가 생겼다. 그가 말하기를 대체 이 촌에 중심되는 힘이 어디 있느냐. 우리들이 진정한 촌의 힘이 아니냐. 우리들이 한데 합치면 임금이나, 털보나 해구나, 원억이보다 더 몇 배나 강하지 아니하냐. 우리 해촌과 산촌이 또 힘을 합해 가지고 여러 못된 놈을 다 없애고, 그리고 여럿이 다 같이 저 넓은 산에 돼지도 치고, 수수도 심고, 감자도 심고, 하면 그보다 더 좋은 일이 어디 있겠느냐고…….”

“임금과 해구와 털보의 떼는 이 사람을 마저 죽이려 하였으나, 이번엔 그렇게 용이치 않았다. 빨갱이는 이리저리 피하여 다니며 거사할 일을 도모하였다. 그러나 촌민은 그저 눈이 뜨이지 않았다. 그저 이 때까지 깨닫지를 못하고 있단다.”

“에에 답답한 사람들!”

적두가 또 부르짖었다.

녹추도 갑갑한 듯이 휘 ― 한숨을 내쉬었다. 텁석부리는 또 산돼지의 살을 한 줌 뜯어 더 불에 그을려 가지고 씹는다.

깊은 밤의 화롯불은 여전히 활기 있게 타오르고 있다.

  1. 사카이 도시히코(堺利彦, 1870~1933). 일본의 대표적인 사회주의자로 이 해 조선에서 사회주의 강연을 하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