꺼래이
끌려 갔습니다 . 순이(順伊)들은 끌려갔습니다. 마치 병든 버러지 떼와도 같이……. 굵은 주먹만큼한 돌맹이를 꼭꼭 짜박은 울퉁불퉁하고도 딱딱한 돌길 위로……. 오랜 감금(監禁)의 생활에 울고 있느라고 세월이 얼마나 갔는지는 몰랐으나 여러 가지를 미루어 생각하건대 아마도 동짓달 그믐께나 되는가 합니다.
고국을 떠날 때는 첫가을이여서 세누겹저고리에 엷은 속옷을 입고 왔었으므로 아직까지 그때 그 모양대로이니 나날이 깊어가는 시베리아의 냉혹한 바람에 몸뚱아리는 얼어터진지가 오래였습니다.
순이의 늙으신 할아버지, 순이의 어머니, 그리고 순이와 그 외 조선 청년 두 사람, 중국 쿨리(勞動者) 한 사람, 도합 여섯 사람이 끌려가는 일행이었습니다.
‘빤즉삿게’를 쓰고 길다란‘만도’를 이은 군인 두 사람이 총끝에다 날카로운 창을 끼어들고 앞뒤로 서서 뚜벅뚜벅 순이들을 몰아갔습니다.
몸뚱아리들은 군데군데 얼어 터져 물이 흐르는데 이따금 뿌리는 눈보라조차 사정없이 휘갈겨 몰려가는 신세를 더욱 애끓게 하였습니다. 칼날같이 산뜻하고 고추같이 매운 묵직한 무게를 가진 바람질이 엷은 옷을 뚫고 마음대로 온몸을 어여내었습니다. 모 ― 든 감각을 잃어버린‘로보트’같이 어디를 향하여 가는 길인지 죽음의 길인지, 삶의 길인지 아무것도 모르고 얼어붙은 혼(魂)만이 가물가물 눈을 뜨고 없어지며 자빠지며 총대에 찔려가며 절름절름 걸어갔습니다.
“슈다!”
하면 이편 길로
“뚜다!”
하면 저편 길로 군인의 총끝을 따라 희미한 삶을 안고 자꾸 걸었습니다.
길가에 오고가는 사람들은 발길을 멈추고 바라보며 어린아이는 어머니 팔에 매달리며 손가락질 했습니다.
그러나 순이들은 부끄러운 줄 몰랐습니다.
‘나도 고국 있을 그 어느 때 순사에게 묶여가는 죄인을 바라보고 무섭고 가엾어서 저렇게 서 있었더니…….’
하는 생각이 어렴풋이 나기는 했습니다마는 얼굴을 가리며 모양없이 웅크린 팔짐을 펴고 걷기에는 너무나 꽁꽁 언 몸뚱이였으며 너무나 억울한 그때였습니다. 그저 순이들은 바람맞이에서 까물거리는 등불을 두 손으로 보호하듯 냉각해진 몸뚱아리 속에서 까물거리는 한 개의‘삶’이란 그것만을 단단히 안고 무인광야를 가듯 웅크려질 대로 웅크리고 눈물 콧물 흘려가며 쩔름 쩔름 걸어갔습니다.
걷고 걷고 또 걸어 얼마나 걸었는지 순이의 일행은 거리를 떠나 파도치듯 바닷가에 닿았습니다.
어떻게 된 셈판인지 순이의 일행은 커다란 기선 위에 기어 올라 갔습니다.
어느 사이에 기선은 육지를 떠나 만경창파 위에 술렁거리기 시작했습니다.
“아이구 아빠! 우리 아빠!”
“순이 아버지, 아이고 아이고, 순이 아버지.”
“순이 애비 어디 있니? 순이 애비…….”
순이는 할아버지와 어머니와 서로 목을 얼싸안고 일제히 소리쳐 울었습니다.
가슴이 찢어지고 두 귀가 꽉 멀어지며 자꾸자꾸 소리쳐 불렀습니다.
“여봅쇼, 울지들 마오. 얼어 죽는 판에 눈물은 왜 흘려요.”
젊은 사나이 두 사람은 순이들의 울음을 막으려고 애썼으나 울음소리조차 내지 못하는 순이의 할아버지는 그대로 털썩 갑판 위에 주저 앉아 작대기든 손으로 쾅쾅 갑판을 두들기며 곤두박질하였습니다.
“여보시오, 우리 아버지가 저기서 죽었어요.”
순이도 발을 구르며 소리쳤습니다.
“죽은 아들의 뼈를 찾으러 온 우리를 무슨 죄로 이 모양이란 말이오.”
할아버지는 자기의 하나 아들이 죽어 백골이 되어 누워 있다는 ×××란 곳을 바라보며 곤두박질을 그칠 줄 몰라 했습니다.
그러나 기선은 사정없이 육지와 멀어지며 차차 만경창파 위에서 울렁거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한 떼의 물결이‘철썩’하며 갑판 위에 내려덮이며 기선은 나무 잎사귀처럼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그 순간 일행은 생명의 최후를 느끼며 일제히 바람 의지가 될 만한 곳으로 달려가 한 뭉치가 되었습니다.
그때 중국 쿨리는 메고 왔던 짐을 끌르고 이불 한 개를 꺼내어 둘러쓰려 하였습니다.
이것을 본 젊은 사나이 한 사람이 날랜 곰같이 달려들어 그 이불을 뺏어 순이의 할아버지를 둘러 주려고 했습니다.
중국 쿨리는 멍하니 잠깐 섰더니 갑자기 얼굴에 꿈틀꿈틀 경련을 일으키며 누런 이빨을 내어놓고 벙어리 울음같이 시작도 끝도 분별 없는 소리로
“으어…….”
하고 울었습니다 그 눈에서 . 떨어지는 굵다란 눈물 방울인지 내려 덮치는 물결 방울인지 바람결에 물방울 한 개가 순이의 뺨을 때려 붙였습니다.
순이는 한 손으로 물방울을 씻으며 한 손으로 이불자락을 당겨 쿨니도 덮으라고 했습니다.
“아이고 우리를 데리고 온 군인들은 어디로 갔을까…….”
누구인지 이렇게 말하였으므로 일행은 고개를 들어 살펴보니 과연 군인 두 사람의 흔적이 없었습니다.
“모두들 추우니까 선실 안으로 들어간 게로군. 빌어먹을 자식들.”
하고 젊은 사나이는 혀를 찼습니다. 그 말을 듣자 순이는 벌떡 일어나
“우리도 이러다가는 정말 죽을 테니 선실 안으로 들어갑시다.”
하고 외쳤습니다.
“안됩니다. 들어오라고도 않는데 공연히 들어갔다, 봉변 당하면 어찌하게.”
하고 젊은 사나이는 손을 흔들며 반대했습니다.
“봉변은 무슨 오라질 봉변이에요. 이러다가 죽느니보다 낫겠지요. 점잖과 체면을 차릴 때입니까?”
순이는 발악을 하며 외쳤습니다.
“쿨니에게 이불 빼앗을 때는 예사이고 선실 안에 들어가는 것은 부끄럽단 말이오? 나는 죽음을 바라 그대로 있기는 싫어요. 봉변을 주면 힘자라는 데까지 싸워 보지요.”
순이는 그대로 있자는 젊은이들이 얄밉고 성이 났습니다. 자기들의 무력함을 한탄만 하고 앉았는 무리들이 안타까웠던 것입니다.
순이는 기어이 혼자 선실을 향하여 달려갔습니다. 기선은 연해 출렁거리며 이따금 흰 물결이 철썩 내려 덮치곤 하였습니다. 일행의 옷은 물결에 젖고 젖은 옷깃은 얼음이 되어 꼿꼿하게 나뭇가지처럼 되었습니다.
선실로 내려가는 층층대를 순이는 굴러 떨어지는 공과 같이 내려 갔습니다.
선실 안에는 훈훈한 공기가 꽉 차 있어 순이는 얼른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습니다. 잠깐 두리번두리번 살펴보다가 한 옆에 걸터앉아 있는 군인 두 사람을 찾아내었습니다. 순이는 번개같이 달려가 군인의 어깨를 잡아 젖히며
“우리는 죽으란 말이오?”
하고 분노에 떨리는 소리로 물었습니다.
군인은 놀란 듯이 잠깐 바라본 후 웃는 얼굴을 지으며 제 나라 말로
“모두 이리 내려오너라.”
라고 말했습니다.
순이는 선실 안의 사람들이 웃는 소리를 귀 밖으로 들으며 다시 갑판 위로 올라갔습니다.
풍랑은 사나울 대로 사나와 잠시라도 훈훈한 공기를 쏘인 순이의 창자를 휘둘러 몸에 중심을 잡고 한 발자국도 내어 디디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순이는 일행이 있는 곳을 바라보았습니다.
이제는 아주 얼음덩이가 된 이불자락에다 머리를 감추고 모두 죽었는지 살았는지 움직이지도 않고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순이는
“모두 이리 오시오.”
하고 소리쳤습니다마는 풍랑 소리에 그의 음성은 안타깝게도 짓밟히고 말았습니다.
순이는 더 소리칠 용기가 없어 일행을 향하여 한 자국 내어놓자, 사나운 바람결이 몹쓸 장난같이 보드라운 순이의 몸뚱이를 갑판 위에 때려누이고 말았습니다. 다시 일어나려고 발악을 하는 그의 귀에 중국 쿨리의 울음소리가 야공성같이 울려왔습니다.
이윽한 후 군인 한 사람이 갑판 위로 올라와 본 후 순이를 일으키고 여러 사람도 데리고 선실로 내려왔습니다.
선실 안에 앉았던 사람들은 일행의 모양을 바라보며 모두 찌글찌글 웃었습니다.
병든 문둥 환자의 모양이 그만큼 흉할는지, 얼고 얼어 푸르고 붉은 데다 검게 탄 얼굴로 콧물을 흘리며 엉금엉금 층층대를 내려서는 여섯 사람의 모양을 보고 우습지 않을 리 누가 있겠습니까.
일행의 몸이 녹기 시작하자 시간은 얼마나 지났는지 기선은 어느 조그만 항구에 닿았습니다.
쌓아둔 짐뭉치에 기대 누운 순이의 할아버지는 뼈끝까지 추위가 사무쳤음인지 한결같이 떨며 끙끙 앓기만 하고 순이의 어머니는 수건을 폭 내려쓰고 팔짱을 낀 채 역시 웅크리고 앉아 있었습니다.
“여기서 내리는 모양이구료,”
젊은 사나이가 순이의 곁에 오며 말했습니다. 순이는 곳에서 또 다시 내릴 생각을 하니 다시 그 차가운 바람결이 연상되어 금방 기절할 것 같이 소름이 끼쳤습니다. 그러는 중에 군인이 일어서 순이의 할아버지를 총대로 툭툭 치며 무엇이라고 말했습니다.
“안돼요, 여기서 내릴 수 없오. 이 추운데 노인을 어떻게…….”
순이는 군인의 총대를 밀치며 말했습니다. 군인은 신들신들 웃으며 어서 일어나라는 듯이 발을 굴렀습니다.
“아무래도 죽을 판이면 우리는 또 추운데로 나갈 수 없오.”
할아버지를 가리워 앉으며 손을 내저었습니다. 군인은 한 번 어깨를 움쭉해 보이며 무엇이라 한참 지껄대니까 선실 안에 가득한 그 나라 사람들은 순이를 바라보며 혹은 웃고 혹은 가엾다는 듯이 머리를 흔들고, 서로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중얼 했습니다. 순이는 그들의 중얼거리는 말소리에서
“꺼래이…… 꺼래이…….”
하는 가장 귀 익은 단어가 화살같이 두 귀에 꽂히는 것을 느꼈습니다. ‘꺼래이’라는 것은 고려(高麗)라는 말이니 즉 조선 사람을 가리키는 것이었습니다.
‘꺼래이’라는 그 귀익고 그리운 소리가 그때의 순이들에게는 끝없는 분노를 자아내는 말 같았습니다.
“우리가 지금 웃음거리가 되어 있는 것이로구나. 추움에 못 이겨, 또 아무 죄도 없이 죽음의 길인지 삶의 길인지도 모르고 무슨 까닭에 꾸벅꾸벅 그들의 명령대로만 따르겠느냐.”
라고 순이는 부르짖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과 군인들은 순이를 무지몰식한 야만인, 그리고 무력하고도 불쌍한 인간들의 표본으로만 보았음인지 웃고 떠들고 ‘꺼래이…….’만을 연발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때까지 웃으며 무엇이라 중얼거리기만 하던 군인 한 사람이 갑자기 정색을 지으며 총대로 순이의 옆구리를 꾹 찌르고 한 손으로 기다랗게 땋아 내린 머리채를 거머잡고
“쓰까래……”
라고 소리쳤습니다. 이것을 본 순이 어머니는 벌떡 군인의 턱 볕에 솟아 일어서며 지금까지 눌러 두었던 분통이 툭 퉁기듯이 군인의 멱살을 잡으려 했습니다.
“여보십시오. 공연히 그러지 마시오. 당신이 여기서 발악을 하면 공연히 우리까지 봉변을 하게 됩니다.”
하고 젊은 사나이는 순이의 어머니를 말렸습니다. 군인들이 그 당장에 자기들의 취한 태도를 얼른 생각해 내지 못하여 눈만 커다랗게 뜨고 있는 것을 보자 순이는 히스테리 같은 웃음으로 꽉 입안을 깨물며 눈물이 글썽글썽하였습니다.
“할아버지 일어나세요, 아버지의 뼈를 찾지는 못했으나 아버지의 영혼은 고국으로 가셨을 것입니다. 공연히 남의 땅 사람과 발악을 하면 무엇합니까…….”
순이도 울고 할아버지, 어머니 모두 주루룩 눈물을 흘리며 그 조그마한 항구에 내렸습니다.
일행 여섯 사람은 또 다시 군인을 따라 이윽히 걸어가다가 붉은기를 꽂은 ×××에 이르렀습니다. 그곳에 이르니 군인 복색한 중국인 같은 사람이 우리를 맞았습니다. 같이 온 군인은 그곳 군인에게 일행을 맡기고 따뜻해 보이는 벽돌집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순이들은 이제까지 언어를 통하지 못하여 안타깝던 설운 생각에 일시에 폭발되어 그 중국 사람 같은 군인의 곁에 따라갔습니다.
“여보십시오!”
순이는 그 군인이 행여나 조선 사람이었으면…… 하는 기대에 숨이 막힐 듯이 군인의 입술을 바라다보았습니다.
“왜 이러심둥?”
의외에도 그 군인은 조선 사람, 즉 꺼래이의 한 사람이었습니다. 일행중 중국 쿨니를 빼고는 모두 너무나 반갑고 기뻐서
“아이그 당신 조선 사람이셔요?”
“내! 나 고려 사람입꼬마.”
그 군인은 이렇게 대답하며 순이를 바라보았습니다. 순이는 무슨 말을 먼저 해야 좋을지 몰랐으므로 잠깐 묵묵히 조선말 소리의 반가움을 어찌할 줄 몰라 했습니다.
“저 젊은이 당신 남편이오?”
하고 군인은 아무 감동도 없는 무뚝뚝한 표정으로 순이에게 젊은 사나이 둘을 가리켰습니다. 그제야 순이는 오랫동안 잊어버렸던 처녀다운 감정을 느끼며 얼어붙은 얼굴에 잠깐 부끄러운 표정을 지었습니다.
“아니올시다. 이 애는 우리 딸이야요. 이 늙은이는 우리 시아버님이랍니다. 저 젊은이들과 중국 사람은 ×××에서 동행이 된 사람인데 알지도 못하는 사람입니다.”
순이의 어머니는 지금까지 같이 온 젊은이들보다 자기들 세 사람을 어떻게 구원해 달라는 듯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기가 어데야요?”
순이만 자꾸 바라보는 군인에게 순이는 머뭇거리며 물었습니다.
“영긔 말임둥? 영긔는 ××××××라 합늬!”
“여보시오!”
곁에서 젊은 사나이가 가로질러 말을 건네었습니다.
“우리 두 사람은 해삼 위에 있는…….”
하고 말을 꺼내었으나 그 군인은 들은 체 아니하고
“어서 들어갑소. 영긔 서서 말하는 것이 안임늬.”
하며 일행을 몰아 마주 보이는 허물어져가는 흰 벽돌집을 가리켰습니다.
“여보십시오. 우리를 또 감금하단 말이요? 우리 두 사람 콤뮤니스트입니다. 우리는 감금 받을 이유가 없습니다.”
라고 두 젊은이는 버티었으나 군인은 들은 체도 하지 않고 앞서 걸었습니다.
“여보시오. 나으리 우리 세 사람은 참 억울합니다. 나의 남편이 3년 전에 이 땅에 앉아 농사터를 얻어 살았는데 지난봄에 병으로 죽었구료. 우리 세 사람은 고국서 이 소식을 듣고 셋이 목숨이 끊어질지라도 남편의 해골을 찾아가려고 왔는데 ×××에서 그만 붙잡혀 한 마디 사정 이야기도 하지 못한 채 몇 달을 갇혀 있다가 또 이렇게 여기까지 끌려왔습니다. 어떻게든지 놓아 주시면 남편의 해골이나 찾아서 곧 고국으로 돌아가겠습니다.”
라고 순이 어머니는 군인에게 애걸을 하듯 빌었습니다.
“여보시오 나으리. 이 늙은 몸이 죽기 전에 아들의 백골이나마 찾아다 우리 땅에 묻게 해 주시오. 단지 하나뿐인 아들이요. 또 뒤 이을 자식이라고는 이 딸년 하나뿐이니 이 일을 어찌하오.”
순이의 할아버지도 숨이 막히며 애걸하였습니다.
“당신 아들이 여기 왔심둥?”
군인은 울며 떠는 노인을 차마 밀치지 못하여 발길을 멈추고 물었습니다.
“네…… 후…… 우리도 본래는 남부럽지 않게 살았습니다. 네…… 그런데 잘못되어 있던 토지는 다 남의 손에 가버리고 먹고 살 길은 없고 하여 3년 전에 내 아들이 이 나라에서 돈 없는 사람에게도 토지를 꼭 나누어 준다는 말을 듣고 저 혼자 먼저 왔습지요. 우리 세 식구는 오늘이나 내일이나 하고 우리를 불러들이기만 바랐더니 지난봄에 갑자기 죽었다는 소식이 오니 …….”
노인은 더 말을 계속할 수 없어 그대로 목이 메이고 말았습니다.
군인은 체면으로 고개만 끄덕이더니
“영기서 말하면 안되옵니…… 어서 들어갑소. 들어가서 말 듣겠으니 …….”
하고 다시 뚜벅뚜벅 걸어 흰 벽돌집 안에 들어갔습니다.
조금 들어가니 나무로 만든 두터운 문이 있는데 그 문은 참새들의 똥이 말라 붙어 있어 먼지와 말똥 집수세 등이 지저분하게 깔려 있어 아무리 보아도 마굿간이었습니다.
집 외양은 흰벽돌이나 그 집의 말 못할 속치장에 다시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덜커덕 그 나무문이 ‘ ’ 열리자 그 안을 한번 들여다 본 일행은 하마터면 뒤로 넘어질 뻔 했습니다. 그 문 안은 넓이 7,8평은 되어 보이는데, 놀라지 마십시오. 그 안에는 하얀 옷 입은 우리 꺼래이들이‘방이 터져라’고 차 있었습니다.
“아이그머니! 조선 사람들…….”
순이의 세 식구는 자빠지듯 방 안으로 뛰어 들어갔습니다.
“동무들, 방은 이것 하나 뿐입꼬마. 비좁드라도 들어가 참소.”
맨 나중까지 들어가지 않고 버티고 서 있는 젊은 사나이 한 사람의 등을 밀어 넣고 덜커덕 문을 잠그고 군인은 뚜벅뚜벅 가 버렸습니다.
순이들은 잠깐 정신을 차려 방안을 살펴보니 전날에는 부엌으로 쓰던 곳인지 한쪽 벽에 잇대어 솥 걸던 부뚜막 자리가 있고, 그 겸에 블리키 물통이 놓여 있으며 좁다란 송판을 엉금엉금 걸쳐 공중(公衆) 침대를 만들어 두었습니다. 그 공중 침대 위에는 빽빽하게 백의 동포가 빨래상자의 상자 속 같이 옹기종기 올라 앉아 있었습니다.
좌우간 앉아나 보려 했으나 대소변이 질벅하여 발 붙일 곳도 없었습니다.
문이라고는 들어온 나무 문과, 그 문과 마주보는 편에 커다란 쇠창살을 박은 겹유리문이 하나 있을 뿐이었습니다. 그 쇠창살도 부러지고 구부러지고 하여 더욱 그 방의 살풍경을 나타냈습니다.
“어찌겠오 앙? 여기 좀 앉소. 우리도 다 이럴 줄 모르고 왔었꽁이.”
함경도 사투리로 두 눈에 눈물을 흠뻑 모으며 목 메인 소리로 겨우 자리를 비집어 내며 한 노파가 말했습니다. 가뜩이나 기름을 짜는 판에 새로운 일행이 덧붙이기를 해 놓았으니 먼저 온 그들에게는 그리 반가울 것이 없으련마는 그래도 그들은 방이야 터져 나가든 말든 정답게 맞아주며 갖은 이야기를 다 묻고 또 자기네들 신세타령도 하였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빈줄러 내었는지 순이의 세 식구와 젊은 사나이 둘은 올라앉게 되었는데, 이불을 멘 중국 쿨니는 끝까지 자리를 얻지 못하고, 아니 자리를 빈줄러 낼 때마다 뒤에 선 젊은 사나이들에게 양보하고 맨 나중까지 우두커니 서서 자기 자리도 내어주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순이들은 그래도 동포들의 몸과 몸에서 새어 나오는 훈기에 자이 녹기 시작하자 노근노근하니 정신이 황홀해지며 따뜻한 그리운 고향에나 돌아온 것 같이 힘이 났습니다.
“저 눔은…… 앉을 자리가 없나? 왜 저렇게 말뚝 모양으로 서 있기만 해…….”
하며 고개를 드는 노파의 말소리에 순이는 놀란 듯이 돌아보았습니다. 그때까지 쿨니는 이불을 멘 채 서 있었습니다. 순이는 갑판 위에서 이불을 나눠 덮던 그때의 쿨니의 울며 순종하던 얼굴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능히 자기가 앉을 수 있었던 자리를 조선 청년에게 양보해 준 그의 마음속이 가여웠습니다.
쿨니가 자리를 물려 준 그 마음은 도덕적 예의에 따른 것이 아님은 뻔히 아는 일이었습니다. 그 자리에 자기와 같은 중국 사람이 하나라도 끼어 있었으면 그는 그렇게 서 있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때의 쿨니의 심정은 꺼래이로 태어난 이들에게는, 아니 더구나 보드라운 감정을 가진 처녀인 순이는 남 몇 배 잘 살펴볼 수 있었습니다.
순이는 가슴이 찌르르해지며 벌떡 일어나 그 나무문을 두들기기 시작했습니다.
이윽히 두들겨도 아무 반응이 없으므로 그는 얼어터진 손으로는 더 두들길 수가 없어 한편 신짝을 집어 힘껏 문을 두들겼습니다.
“왜 두들기오. 안 옵누마.”
하며 방 안의 사람들은 자꾸 말렸습니다.
그러나 순이는 자꾸만 두들겼더니 갑자기 문이 덜커덕 열렸습니다. 순이는 더 두들기려고 올려 메었던 신짝을 그대로 발에 꿰어 신으며 바라보니 아까 그 조선 사람 군인이 서 있었습니다.
“어째 불렀음둥?”
하며 퉁명스럽게, 그러나 두들긴 사람이 순이였음에 얼마만큼은 부드러워지며 물었습니다.
“이것 보시오, 이렇게 좁은 자리에 어떻게 이 많은 사람이 앉을 수 있어요? 아무리 앉아 봐두 앉을 수가 없습니다. 다른 방으로 나누어 주든지 어떻게 해 주세요.”
하고 얼굴이 붉어지며 서 있는 쿨니를 가리켰습니다. 군인은 고국 말씨를 잘 못 알아듣겠다는 듯이 자세히 귀를 기울이고 있더니
“동무, 말소리 잘 모르겠었꼬마, 무시기 말임둥, 앉을 재리가 배잡단 말입꼬이?”
하고 말했습니다. 순이는 기가 막혔습니다.
“참 어이없는 조선 동포시구려!”
김 빠진 비어같이 순이는 입안이 믹믹하여졌습니다. 그때 노파의 손자인 듯한 소년 하나가 하하 웃으며 뛰어나와
“예! 예! 그렇섯꼬이.”
하며 순이를 대신하여 군인에게 대답하였습니다. 군인은 고개를 끄덕끄덕 하며 두 손을 펴고 어깨를 움쭉해 보이며
“할 쉬 없었꼬마, 방이 잉것뿐입꼬마.”
하고는 문을 닫아 버리려 했습니다. 순이는 와락 군인의 팔을 잡으며
“한 시간 두 시간이 아니고 오늘밤을 이대로 둔다면 어떻게 하란 말이에요. 상관에게 말해서 좀 구처해 주시오.”
하고 말했습니다. 군인은 휙 돌아서며
“동무들 내가 뭐를 알 쉬 있음둥? 저 ― 위에서 하는 명령대로 영기는 그대로만 합꼬마. 나는 모르겠꽁이.”
하고는 덜컥 그 문을 잠그려 했으나 순이는 한결같이 잠그려는 그 문을 떠밀며
“여보세요, 이대로는 안됩니다. 무슨 죄야요, 글쎄 무슨 죄들인가요. 왜 우리를, 죄 없는 우리를 이런 고생을 시킵니까. 다 같은 조선 사람인 당신이 모르겠다면 우리는 어떻게 하란 말이에요.”
군인은 난감하다는 듯이 다시 고개를 문 안으로 들이밀며
“글쎄, 동무들이 무슨 죄 있어 이라는 줄 압꽁이? 다 같은 조선 사람이라도 저 우에 있는 사람들은 맘이 곱지 못하옵니…… 나도 동무들같이 욕본 때 있었꼬마. ××에 친한 동무 없음둥? 있거든 쇠줄글(電報)해서 ×××에게 청을 하면 되오리…….”
하고 이제는 아주 잠가 버리려 했습니다.
“아, 보십시오. 그러면 미안합니다마는 전보 한 장 쳐 주시겠습니까?”
“무시기?”
군인은 젊은 사나이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고 재쳐 물었습니다.
“전보 말이오. 전보 한 장 쳐 달라 말이오.”
하고 젊은 사나이가 대답하려는 것을 노파의 손자인 소년이 또 하하 웃으며
“안입꼬마. 쇠줄글 말입니…….”
하고 설명을 하였습니다.
“아아! 쇠줄글 말임둥, 내 놓아 드리겠꽁이.”
하며 사나이들에게 연필과 종이쪽을 내주더니
“동무 둘은 잠깐 나오오.”
하며 두 사나이를 문 밖으로 데리고 나가 버렸습니다. 순이는 어이없이 서 있다가 문턱에 송판 한 조각이 놓인 것을 집어 들고 문 앞을 떠났습니다.
그 송판을 솥 걸었던 자리에 걸쳐 놓고 그 위에 올라앉으며 그때까지 그대로 서 있는 쿨니를 향하여
“거기 앉아…….”
하며 자기가 앉았던 자리를 가리켰습니다.
“아! 이 놈을 그리로 보냄세, 당신이 이리로 오소.”
방 안 사람들은 모두 순이를 침대 위로 오라고 하였습니다. 쿨니는 그 눈치를 챘는지 순이의 자리에 앉으려던 궁둥이를 얼른 들며 손으로 순이를 내려오라고 하며 부뚜막 위로 올라 앉았습니다.
그의 눈에는 눈물이 핑 돌며
“스파시이보 제브슈까.”
하였습니다.‘아가씨 고맙습니다’라는 뜻인가 보다고 생각하며 침대 위로 올라 앉았습니다. 쿨니는 짐뭉치 속에서 어느 때부터 감추어 두었던지 새까맣게 된 빵뭉치를 끄집어 내어 한 귀퉁이 뚝 떼더니 순이 앞에 쑥 내밀었습니다. 쿨니의 얼굴은 눈물과 땟물이 질질 흐르고 손은 새까맣게 때가 눌러 붙어 기다란 손톱 밑에는 먼지가 꼭꼭 차 있었습니다.
“꾸─쉬, 꾸─쉬,”
한 손에 든 빵쪽을 뭉턱뭉턱 베어 먹으며 자꾸 순이에게 먹으라고 했습니다. 순이의 눈에 눈물이 고이며 그 빵쪽을 받아 들었습니다.
“고맙소…….”
하고 머리를 끄덕여 보이며 급히 한 입 물어 뜯으려 했으나 이미 하루 반 동안을 물 한 모금 먹지 않은 할아버지, 어머니가 곁에 있었습니다. 순이는 입으로 가져가던 손을 얼른 머무르며 할아버지에게
“시장하신 데 이것이라두…….”
하며 권했습니다.
“이리 다고 보자.”
어머니는 그제야 수건을 벗고 빵쪽을 받아 한복판을 뚝 잘라
“이것은 네가 먹어라, 안 먹으면 안 된다.”
하고는 또 한 쪽을 할아버지에게 드렸습니다.
할아버지는 남 보기에 목이 막힐까 염려가 될 만큼 인사 체면 없이 빵을 베어 먹었습니다.
“싫어, 난 먹지 않을 테야.”
“왜 이래. 너 먹어라.”
하고 우리 모녀는 한참 다투다가 결국 또 절반으로 떼어 한 토막씩 먹게 되었습니다마는 온 방 안 사람이 빵 먹는 사람들의 입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 것이었으므로 차마 먹을 수가 없었습니다.
부뚜막 위에서 내려다 보고 앉았던 쿨니는 자기가 먹던 빵을 또 절반 떼어
“순이 너 이것 더 먹어라.”
라고나 하듯이 순이에게 주었습니다.
순이는 얼른 손이 나가다가 문득 생각났습니다. 자기들은 중국 사람들이라고 자리조차 내어주지 않던 것이…….
그러나 이미 주린 순이는 두번째 빵쪽을 받아 쥐고 있었습니다.
방 안의 사람들은 모두 세 집 식구로 나뉘어 있는데 도합 열아홉이었습니다. 늙은이, 노파, 젊은 부부, 총각, 처녀들이었습니다. 그들이 우리 모녀를 붙들고 하는 이야기를 들으며 모두 함경도 사람이며, 고국에는 바늘 한 개 꽂을 만한 자기들 소유의 토지라고는 없는 신세라 공으로 넓은 땅을 떼어 농사하라고 준다는 그 나라로 찾아온 것이었는데, 국경을 넘어서자 ×××에게 붙들려 우리들처럼, 감금을 당했다가 이리로 끌려왔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땅에는 돈 없는 사람 살기 좋다고 해서 이렇게 남부여대로 와 놓고 보니 이 지경입꾸마. 굶으나 죽으나, 고국에 있었더면 이런 고생은 안 할 것을…….”
젊은 여인 하나가 이렇게 한탄했습니다.
“우리는 몇 번이나 재판을 했으니 또 한 번만 더하면 놓이게 되어 땅을 얻어 농사를 하게 되든지 다시 이대로 국경으로 쫓아내든지 한답대.”
속옷을 풀어 젖히고 이를 잡기 시작한 노파가 말했습니다.
“우리가 무슨 죄일꼬……농사 짓는 땅을 공떼어 준다길래 왔지…….”
늙은이 하나가 끙끙 앓으며 이를 갈 듯이 말하자
“참말 그저 땅을 떼어 준답두마, 우리는 바로 국경에서 붙들렸으니까 ××탐정꾼들인가 해서 이렇게 가두어 둔 거지!”
하고 늙은이의 아들인 성한 사나이가 말했습니다.
“아이구 말 맙소. 아무래도 우리 내지 땅이 좋습두마, 여기 오니 ‘얼마우자’ 미워서 살겠습디?”
하고 사나이를 반박하였습니다.
‘얼마우자’. 이것은 조선을 떠나온 지 몇 대(代)나 되는 이 나라에 귀화(歸化)한 사람들을 이르는 말이니 그들은 조선 사람이면서도 조선 말을 변변히 할 줄 모르는 것이었습니다. 분명한‘마우자’(露人[노인]을 이르는 말)도 되지 못한‘얼’인‘마우자’란 뜻이었습니다.
“못난 사람들‘얼간’이라는 말과 같구료.”
하고 어머니가 오래간만에 웃었습니다.
“아까 그 군인도 역시‘얼마우자’로구먼.”
하고 순이가 중얼거렸습니다. 이 말을 들은 노파의 손자는 또 깔깔 웃었습니다.
“아이구 어찌겠니야, 여기서 땅을 아니 떼어 주면 우리는 어찌겠니…….”
노파는 웃을 때가 아니라는 듯이 걱정을 내놓았습니다.
“설마 죽겠소. 국경 밖에 쫓아내면 또 한 번 몰래 들어옵지요. 또 붙들어 쫓아내면 또 들어오고, 쫓아내면 또 들어오고 끝에 가면 뉘가 못 이기는 기강 해봅지요. 고향에 돌아간들 발 붙일 곳이라고는 땅 한 쪼각 없지, 어떻게 살겠읍니…….”
자기가 먼저 설두를 하여 데리고 온 듯한 사나이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이고 듣기 싫소, 이 놈의 땅에 와서 이 고생이 뭐꼬……글쎄.”
“아따 참, 몇 번 쫓겨가도 나종에는 이 땅에 와서 사오 일갈이(四五日耕)쯤 땅을 얻어 놓거든 봅소.”
“아이구……어찌겠느냐…….”
노파는 자꾸 저대로 신음만 하였습니다.
한시도 못 참을 것 같은 그 방 안의 생활도 벌써 일주일이 경과되었습니다.
아침에는 일찍 일어나 일제히 밖으로 나가 세수를 시키고, 저녁에 한번씩 불리워 나가 대소변을 보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일정한 변소도 없이 광막한 벌판에서 제 맘대로 대소변을 보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루는 억지 대소변 시간에 순이는 대소변이 마렵지 않아 혼자 방 안에 남아 있다가 쓸쓸하여 밖으로 나갔습니다.
그 날 밤은 보름이었던지 퍽이나 크고도 둥근 달이었습니다. 시베리아 다운 넓은 벌판 이곳저곳서 모두들 뒤를 보고 있고, 군인 한 사람이 총을 잡고 파수를 보고 있었습니다.
물끄러미 뒤보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서 있는 순이에게 파수병이 수작을 붙였습니다.
“저 달님이 퍽이나 아름답지?”
라고나 하는지 정답게 제 나라 말로 내 곁에 다가섰습니다.
순이는 웬일인지 그 나라 군인들이 겁나지 않았습니다. 총만 가지지 않았으면 맘대로 친하여질 수 있는 정답고 어리석고 우둔스런 사람들 같게 느껴졌습니다.
“…….”
순이도 언어가 통하지 않으므로 말을 할 수 없고 하여 달을 가리키고 뒤 보는 사람들을 가리킨 후 한번 웃어 보였습니다.
군인은 아주 정답게 나직이 웃고 입술을 닫은 채 팔을 들어 달을 가리키고 순이의 얼굴을 가리키고 난 후 싱긋 웃고 순이를 와락 껴안으려 했습니다.
순이는 깜짝 놀라 휙 돌라서 방 안을 향하여 달음질쳤습니다. 군인은 순이를 붙들려고 조금 따라오다가 마침 뒤를 다 본 사람이 서 있는 것을 보고 그대로 서 있었습니다.
그 이튿날이었습니다. 아침에 식료(食料)를 가지고 온 군인의 얼굴이 전날과 달랐으므로 순이는 자세히 바라보니 그는 훨씬 큰 키와 하얀 얼굴과 큼직한 귀염성 있는 눈을 가진 젊은 군인이었습니다.
‘어제 저녁 파수 보던 그 군인…….’
순이는 속으로 말해 보며 얼른 고개를 돌리려 했습니다. 군인은 싱긋 웃어 보이며 그대로 나갔습니다.
그 날 하루가 덧없이 지나간 후 또 대소변 보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공연히 순이는 가슴이 울렁거려 문을 꼭 닫고 방 안에 남아 있었습니다.
이윽고 뒤를 다 본 사람들이 돌아오자 문을 잠그러 온 군인은 역시 그 젊은 군인이었습니다. 순이는 가만히 구부러진 쇠창살을 휘어잡고 달 밝은 시베리아 벌판의 한 쪽을 내다보고 있었습니다.
“아이고 어찌겠느냐…….”
노파는 밤이나 낮이나 이렇게 애호하며 끙끙 신음을 시작하였습니다. 언제나 밤이 되면 일층 더 심하게 안타까워하는 그들이었습니다.
젊은 내외는 트집거리고 여기 저기 신음소리에 순이의 가슴은 더욱 설레어 적막한 광야의 밤을 홀로 지키듯 잠 못 들어 했습니다.
그 이튿날 아침 일찍 웬일인지 군인 두 사람이 들어와서 먼저 있었던 여러 사람을 짐 하나 남기지 않고 죄다 데리고 나갔습니다.
“아이고 우리는 또 국경으로 쫓겨나는구마, 그렇지 않으면 왜 이렇게 일찍 불러내겠느냐.”
노파는 벌써 동당발을 굴리며
“아이구 아이구 어찌겠느냐.”
라고만 소리쳤습니다.
방 안에는 우리들 세 식구만 남아 있고 그 외는 다 불려 갔습니다. 갑자기 방 안이 텅 비어지니 쌀쌀한 바람결이 쇠창살을 흔들며 그 방을 얼음 무덤같이 적막하게 하였습니다.
세 식구는 창 앞에 가 모여 앉아 장차 자기들 우에 내려질 운명을 예상하고 묵묵히 앉아 있었습니다.
그때 한 떼의 사람들이 일렬로 늘어서서 앞뒤로 말을 탄 군인을 세우고 건너편 벌판을 걸어가는 것이 보였습니다.
“어찌겠느냐, 어디를 가누마…….”
노파의 귀 익은 애호성이 화살같이 날아와 우리의 세 식구가 내다보는 창을 두들겼습니다.
‘이리에게 잡혀가는 목장 잃은 양 떼와도 같이 헤매어 넘어온 국경의 험악한 길을 다시금 쫓겨 넘는 가엾은 흰 옷의 꺼래이 떼…….’
눈물이 자르룩 흘러 내리는 순이의 눈에 꼬챙이로 벽에 이렇게 새겨져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이 몸도 꺼래이니 면할 줄이 있으랴.’
바로 그 곁에 또 이렇게 씌어 있었습니다. 나도 무엇이라도 새겨 보고 싶었으나 자꾸만 눈물이 났습니다.
‘아버지, 아버지는 왜 이 땅에 오셨습니까. 따뜻한 우리집을 버리시고…… 할아버지와 어머니와 이 딸은 아버지의 해골조차 모셔가지 못하옵고 이 지경에 빠졌습니다. 아버지의 영혼만은 고향집에 가옵시다. 순이.’
라고 눈물을 닦으며 손톱으로 새겼습니다.
그 날 해도 애처로이 서산을 넘고 그 키 큰 젊은 군인이 문을 열어 주어도 세 식구는 뒤보러 나갈 생각도 하지 않고 울었습니다.
그렇게 몇 날을 지낸 이른 아침이었습니다. 순이 세 식구는 또 밖으로 불려 나갔습니다. 나가는 문턱에서 그 키 큰 군인이 아무 말 없이 검은 무명으로 지은 헌 덧저고리 세 개를 가지고 차례로 한 개씩 등을 덮어 주었습니다.
“추운데 이것을 입고라야 먼 길을 갈 것이오. 이것은 내가 입던 헌 것이니 사양 말아라.”
하고 쳐다보는 순이들에게 힘없는 정다운 눈으로 무엇이라 말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순이들은 치하했으나 군인은 그대로 입을 다물고 순이의 등만 툭 쳤습니다. 비록 낡은 덧저고리였으나 순이들에게는 고향을 떠난 후 처음 맛보는 인정이었습니다.
넓은 마당에 나서자 안장을 지은 두 마리의 말이 고삐를 올리고, 처음 보던 조선 군인이 손에 흰 종이쪽을 쥐고 서서
“동무들 할 수 없었꼬마, 국경으로 가라합니…….”
하고는 할아버지부터 차례로 악수를 해준 후
“잘 갑소…….”
라고 최후 하직을 했습니다. 우리들이 아버지의 백골을 찾아가게 해 달라고 아무리 애걸했으나 다시 무슨 효험이 있을 리 만무했습니다.
“자 ─ 가누마, 잘 갑소.”
그‘얼마우자’군인도 처량한 얼굴로 길을 재촉하자 두 사람의 군인이 총을 둘러메고 말 위에 올랐습니다. 그 중의 한 사람은 키 큰 젊은 군인이었습니다.
황량한 시베리아 벌판 그 냉혹한 찬바람에 시달리며 세 사람은 추방의 길에 올랐습니다. 벌판을 지나 산등도 넘고 얼음길도 건너며 눈구덩이도 휘어 가며 두 군인의 말굽소리를 가슴 위로 들으며 걸었습니다. 쫓겨 가는 가엾은 무리들의 걸어간 자취 위에 다시 발을 옮겨 디딜 때 자국마다 피눈물이 고여 있었습니다.
말등 위에 높이 앉은 군인 두 사람은 높이높이 목을 빼어 유유하게 노래를 불러 그 노래 소리는 찬 벌판을 지나 산 너머로 사라지며 쫓겨 다니는 무리들을 조상하는 것 같았습니다.
이따금 추움과 피로에 발길을 멈추는 세 사람을 군인은 내려다 보고 다섯 손가락을 펴 보았습니다. 아직 오십 로리(五十露里) 남았다는 뜻이었습니다.
한 떼의 싸리나무 울창한 산길을 지날 때 어느덧 산 그림자는 두터워지며 애끓는 시베리아의 석양이었습니다.
어머니와 순이에게 양팔을 부축받은 할아버지가 문득 발길을 멈추더니 아무 소리 없이 스르르 쓰러졌습니다.
“할아버지! 할아버지.”
“아버님, 아버님.”
부르는 소리는 산등을 울렸으나 할아버지는 대답이 없었습니다. 말에서 내린 군인들은 할아버지를 주무르고 일으키고 해보며 이윽히 애를 쓴 후 입맛을 다시고 일어서 모자를 벗고 잠깐 묵도를 하였습니다.
키 큰 군인은 다시 모자를 쓴 후
“순이!”
하고 부른 후 이미 시체가 된 할아버지 목을 안고 부르짖는 순이의 어깨를 가만히 쓰다듬었습니다.
“순이야, 울지 말고 일어서라.”
고 명령하듯 소리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