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봄이런가

위키문헌 ― 우리 모두의 도서관.
이동: 둘러보기, 검색


나에게는 아츰이고 저녁이고 구별이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수면을 잃어버린지 이미 오랬다. 밤마다 뒤숭숭한 몽마의 조롱을 받는 것으로 그날그날의 잠을 때인다.

그러나 이나마 내가 마대서는 아니되리라. 제때가 돌아오면 굴복한 죄인과도 같이 가만히 쓰러져서 처분만 기다린다.

이렇게 멀뚱히 누워 있노라니 이불 속으로 갸냘픈 콧노래가 나직하게 흘려든다. 노래란 가끔 과거의 미적 정서를 재현시키는, 극히 행복스런 추억이 될 수 있다. 귀가 번쩍 뜨여 나는 골몰히 경청한다. 그러나 어느덧 지난날의 건강이 불시로 그리워짐을 깨닫는다. 머리까지 뒤여쓴 이불을 주먹으로 차던지며

"지금 몇시냐?" 하고 몸을 이르킨다.

"열점 사십분이야요-"

그러면 나는 세 시간 동안이나 잠과 씨름을 하였는가. 이마의 진땀을 씻으며 속의 울분을 한숨으로 꺼본다. 그리고 벽을 향하여 눈을 감고는 덤덤히 앉어 있다.

"가슴이 아프셔요?"

"응-" 하고 그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나의 조카는 오랫만에 얼골의 화색이 보인다. 고대 들려온 콧노래도, 아마도 그의 기쁨인양 싶다. 웬일인가고 어리둥절하야 아하, 오늘이 슬이구나, 슬, 슬, 슬은 어릴 적의 모든 기쁨을 가져온다. 나는 가슴 속에서 제법 들먹거리는 무엇이 있는 듯 싶다. 오늘은 슬이라는 그것만으로 나의 생활에 변동이 있을 듯 싶다.

조카가 먹여주는대로 눈을 감고 앉어서 그럭저럭 아츰을 치른다. 슬, 슬은 새해의 첫날이다. 지금 나에게는 새것이라는 그것이 여간 큰 매력을 갖지 않었다. 새것, 새것이 좋다.

새정신이 반뜩 미다지를 활짝 열어제친다. 안집 어린애들의 울긋불긋한 호사가 좋다. 세배주에 공으로 창취한 그 잡담도 좋다. 사람뿐만 아니라, 날세조차 새로워진 것 같다. 어제 나렸든 백설은 흔적도 없다. 앞집 첨하 끝에는 물끼만이 지르르 흘러 있다. 때때로 뺨을 지내는 미풍이 곱기도 하다. 그런데 이 향기는, 분명히 이 향기는, 그러다, 나는 고만 가슴이 덜컥 나려앉고 만다.

나긋나긋한 이 향기는 분명히 봄의 회포려니 손을 꼽아 내가 기다리든 그 봄이려니 그리고 나는 아즉도 이 병석을 걷지 못하였다. 갑작스리 치미는, 울적한 심사를 어째볼 길이 없어, 장막을 가려치고 이불 속으로 꿈실꿈실 기어든다. 아무것도 보고 싶지가 않다. 나는 홀로 어둠속에 이러케 들어앉어 아무것도 안보리라. 이를 악물고 한평생의 햇빛과 굳게 작별한다.

그러나 동무가 찾아와 부를 때에는 안 일어날 수도 없는 것이다. 다시 꿈을꿈을 기어나오면 그새 하루는 다 가고, 전등까지 불이 켜졌다. 나는 고개를 털어트리고 묵묵히 앉어 있다. 참으로 나는 이 동무를 쳐다볼만한 면목이 없다. 그는 나를 일어나켜 주고서, 그의 가진바 모든 혈성을 다하였다. 그리고 있다금식 이렇게 디려다보는것이다. 아, 아, 이놈의 병이 왜이리 끄느냐. 좀체로 나가는가 싶지 않으매, 그의 속인들 오작이나 답답한 것인가-

그는 오늘도 찌뿌둥한 나의 얼골을 보고 실망한 모양이다. 딱한 낯으로 이윽히 나를 바라보다

"올에는 철수가 한달이나 일느군요-"

그리고 그 말이 봄 오길 그렇게 기다리드니 어떻게 되었느냐고, 오늘은 완전히 봄인데

"어떻게 좀 나가보실 생각이 없습니까"

여기에 나는 무에라고 대답하여야 옳겠는가. 쓴 입맛만 다시고 우두커니 앉었다 겨우 입을 연 것이

"나는 나갈려는대 내보내줘야지요-" 하고, 불현듯 내솟느니 눈물이다.


라이선스[편집]

이 저작물은 저자가 사망한 지 70년이 넘었으므로, 저자가 사망한 후 70년(또는 그 이하)이 지나면 저작권이 소멸하는 국가에서 퍼블릭 도메인입니다.


주의
1923년에서 1977년 사이에 출판되었다면 미국에서 퍼블릭 도메인이 아닐 수 있습니다. 미국에서 퍼블릭 도메인인 저작물에는 {{PD-1996}}를 사용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