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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보라

위키문헌 ― 우리 모두의 도서관.

조선은 빽빽한 곳이었습니다.

어떤 사립학교에서 교사 노릇을 하던 홍 선생은 그 학교가 총무부 지정 학교가 되는 바람에 쫓겨 나왔습니다. 제아무리 실력이 있다 할지라도 교원 면허증이라 하는 종잇조각이 없으면 교사질도 하지 말라 합니다. 그러나 이 제 다시 산술이며 지리 역사를 복습해가지고 교원검정시험을 치를 용기는 없었습니다.

일본 어떤 사립중학과 대학을 우유배달과 신문배달을 하면서 공부를 하느라고 얼마나 애를 썼던가. 겨울, 주먹을 쥐면 손이 모두 터져서 손등에서 피가 줄줄 흐르는 그런 손으로 필기를 하여 공부한 자기가 아니었던가. 주린 배를 움켜쥐고 학교 시간 전에 신문배달을 끝내려고 눈앞이 보이지 않는 것을 씩씩거리며 뛰어다니던 그 쓰라림은 얼마나 하였던가. 그리고 시간을 경제하느라고 우유 구루마를 끌고 책을 보며 다니다가 돌이라도 차고 넘어졌다가 다시 일어날 때에 벙글 웃던 그 웃음은 얼마나 상쾌하였던가. 이것도 장래의 나의 일화의 한 페이지가 되려니.

아아, 생각지 않으리라. 그 모든 고생이며 애도 오늘날의 영광을 기대하는 바람이 있었기에 무서운 참을성으로 참고 지내지 안 했나.

그러나, 그 애, 그 노력도 모두 물거품으로 돌아가버렸습니다. 7년 동안의 끔찍이 쓴 노력도 조선 돌아와서 소학 교사 하나를 해먹을 수가 없었습니 다. 7년 동안을 머릿속에 잡아넣은 지식은 헛되이 썩어날 뿐 활용해볼 길이 없었습니다.

자, 인제는 무엇을 하나. 철학과라는 시원찮은 전문을 졸업한 홍 선생에게는 이제 자기가 마땅히 붙들 직업을 발견할 수가 없었습니다.

회사원? 수판을 놓을 줄을 모르는 홍 선생이었습니다. 은행원? 대학 교정 과의 졸업증서가 그에게는 없었습니다. 행정관리? 여기도 또한 졸업증서가 필요하였습니다. 그러면 신문기자? 그렇습니다. 이것이 홍 선생에게는 가장 경편하고 손쉬운 직업에 다름없었습니다. 그러나 한 사람의 결원에 대하여, 이삼십 인의 지원자가 있는 신문기자도 손쉽게 그의 몫으로 돌아오지 않았 습니다.

그는 교원 생활을 하는 동안에 준비했던 책이며 그 밖에 있던 것을 하나씩 둘씩 팔아 없애면서 자기의 장래의 취할 길을 연구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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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인 플라톤은 사람을 제일의(第一義)의 국민과 제이의(第二義)의 국민으 로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제일의의 국민으로 사유자와 방어자를 세우고, 제 이의의 국민으로는 지금에 서로 대치해 있는 자본가와 노동자를 세웠습니 다. 그리고 제이의의 국민은 물론 모두 천업자라 하여 문제 밖으로 삼고 제 일의의 국민, 즉 사유자와 방어자를 위하여 국가는 마땅히 ○○주의를 시행할 것이라 하였습니다. 수신 제가 이후에 능치천하라 하였지만, 플라톤은 제일의의 국민으로서 뒷근심을 온전히 없이하고 온 힘을 국가를 위해 쓰게 하려 하였습니다. 국가는 제일의의 국민을 양육할 의무가 있다 하였습니다.

이 사상은 얼마나 홍 선생에게 공명되는 사상이었겠습니까.

모든 대사상이며 학설 도덕도배부른 뒤에야 나올 것이 아니냐. 시재 먹을 것이 없는 이에게서 무슨 대사상이 나오며 무슨 대발명이며 대발견이 있겠느냐…… 홍 선생은 때때로 분개도 해보았습니다.

‘10년 공부가 나무아미타불이라더니, 사실 7년 고생이 밥 한 바가지 안 되는구나.’ 홍 선생은 때때로 한숨도 쉬어보았습니다.

그러나 그의 분개며 한숨에 대답해주는 이는 없었습니다. 더구나 해결이나 서광을 보여주는 이도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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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하여 처음에는 좀 고상한 직업(?)을 구해보려던 홍 선생은 아무런 직업이라도 닥치기만 하면 하려 하였습니다.

마음이 내려 앉지 않은 생활이었습니다. 무엇을 하나? 무엇을 하나? 근육 노동은 할 수가 없으나 그 밖에는 아무런 직업이라도 해보려 하였습니다.

활동사진 변사……. 교사 노릇 몇 해에 입으로 밥을 벌어먹던 그는 변사 노릇은 넉넉히 할 자신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급기야 되려고 알아보매, 거 기도 또한 면허증이 있어야 한다 합니다. 약제사? 거기도 면허증이 필요하였습니다. 경부보? 순사를 지냈다는 경력이 있거나 법학교의 졸업증서가 있 어야만 된다 합니다. 자동차 운전수? 거기도 면허장이 필요합니다. 대서소 도 면장, 도수장도 면장, 심지어 이발쟁이까지도 인가증이 필요하였습니다.

모두가 면허증, 허가증, 인가증…… 인력거꾼, 도살자, 고기 장사, 빙수 장사…… 홍 선생에게 해먹을 노릇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왜 사람이 살아가는 데 대하여 생활 허가증이라든가 생활 면허증은 주지 않느냐 그리고 그 증서가 . 없는 사람은 사형에 처하지 않느냐. 왜 밥 먹는 데 밥 먹는 면허증이라는 것은 주지 않느냐. 왜 걸어 다니는 면허증은 주지 않느냐. 홍 선생은 몇 번을 역정을 내며 분개하였습니다. 어떤 때는 읽던 책을 홱 집어던진 때도 있었습니다.

‘책은 보아서 무얼해! 만권 서적이라도 제 능히 한 장의 면허증을 못 당할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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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에 어두운 학자인 홍 선생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나니, 홍 선생도 마침내 그 구멍을 발견하였습니다.

몹시 주저 중 반년이 지났습니다. 어디, 돈 많은 처녀(과부라도 좋다)나 없나? 돈이라도 길에 떨어지지 않았나? 자기가 가르치던 학교에서 특별히 당국에 교섭하여 자기만은 면허증이 없이도 교사 노릇을 하도록 운동해주지 않나? 자기 물건 가운데 우연히 값나가는 보배라도 있지 않나? 면허증! 면허증…… 아무런 면허증이라도 면허증 하나만 갖고 싶다! 이렇듯 용신이 지 난 뒤에 홍 선생은 마침내 자기가 솟아날 구멍을 발견하였습니다.

어떤 날, 또한 팔아먹을 물건을 얻느라고 이리 뒤적이고 저리 뒤적일 적에 그는 낡은 전기 안마기를 골방 구석에서 얻어냈습니다. 그것은 이전에 홍 선생이 류마티스로 고생할 때에 어떤 학부형인 의사가 선물로 보낸 것이었습니다.

‘아직 쓸까?’ 그는 그것을 먼지를 턴 뒤에 스위치를 넣어보았습니다. 찌르륵 하는 소리와 함께 두 쪽을 잡은 홍 선생의 손은 떨렸습니다.

‘2원은 주렷다.’ 그는 기계를 잘 닦아서 책상 위에 올려놓은 뒤에 신이 없이 다시 누웠습니다.

‘내게는 지식밖에는 아무것도 없다. 그러나 지식은 돈이 안 되는 세상이 다.’ 홍 선생은 막혔습니다. 무엇이 돈이 되나? 돈이 돈을 낳는다 합니다. 그러나 조선에서는 아직 돈이 돈을 낳는 것을 홍 선생은 본 일이 없습니다. 돈 1,000원만 벌면 신문이 떠들어주는 조선이었습니다. 그러면 정서(情緖)? 정 서를 팔아도 돈이 안 되는 조선이었습니다. 병합 당시와 그 뒤 한동안은 정 서를 팔아서 돈이 된 시대도 있었지만, 지금은 그것도 역시 돈이 안 되는 모양이었습니다. 재주? 기능? 저작? 용기? 돈 되는 것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러면?

‘면허증이다.’ 매월 단 사오십 원의 돈이라도 되는 것은(어떤 면허증이든) 면허증밖에는 없었습니다. 그리고 또한 같은 결론 아래서 조선 사람의 최고 희망은 매월 사오십 원의 월급이요, 조선 사람의 최대 목적은 면허증을 얻는 데 있다 할 수가 있습니다.

홍 선생은 화를 내어 발버둥을 쳤습니다. 그러나 발길에 차이는 것은 아무것도 없으므로 다시 벌떡 일어나 앉았습니다. 그리고 다시금 전기 안마기계를 보았습니다.

‘헐값을 받아도 2원이야 주겠지.’ 헛소리와 같이 이렇게 중얼거리면서 한참 그것을 바라보고 있던 홍 선생은 문득 두 주먹을 불끈 쥐며 일어섰습니다. 그의 눈은 충혈이 되고 그의 쥔 두 주먹은 떨렸습니다.

‘하나 있다, 돈 되는 것이. 지식은 돈이 못 되나 지혜는 돈이 된다.’ 보천교, 청림교 등등 지혜를 팔아서 대성한 몇 개의 단체가 그의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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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뒤에 홍 선생 책상 위에는 별별 기괴한 물건이 장식되어 있었습니다.

청진기였습니다. 체온기였습니다. 반사경이 있습니다. 취소가리, 안티피린, 금계랍, 위산, 옥도정기 등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복판 가운데에는 전기 안마기가 제왕과 같이 군림하여 있었습니다. 그리고 책상 한편 모퉁이에는 함경북도 각 고을고을의 육군 지도가 가려 있었습니다.

지식은 있으나 지혜는 그리 많지 못한 홍 선생은 적으나마 그 지혜를 팔아서 호구를 해보려 하였습니다.

이리하여 또 며칠이 지난 뒤에 홍 선생은 온갖 여장을 가다듬어 가지고 순 회 치료 여행을 함경도로 떠났습니다.

그의 여장 가운데에는 진찰 가방과 전기 안마기와 몇 가지의 옷밖에 주머니 속에 깊이 간직한 한 가지의 가장 귀한 물건이 있었으니 그것은 조그마한 노트 한 권이었습니다. 몇 가지의 간단한 처방을 적은 책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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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골에서 산골로 홍 선생의 여행은 계속되었습니다.

홍 선생은 이 세상에 이렇듯 이름 모를 많은 병이 있을 줄은 뜻도 안 했습니다. 홍 선생에게는 다만 머리가 아프면 두통이었습니다. 배가 아프면 복통이었습니다. 몸이 파리했으면 폐병이었습니다. 오금이 쏘면 류마티스였습니다. 몸에 열이 있으면 고뿔이나 학질이었습니다. 눈이 벌거면 안질이었습 니다 그 밖에 예외적으로 . 시병, 문둥, 황달 등등 몇 가지가 있고, 그 밖에는 대개 학설상으로만 존재하였지 실제로 있는 병이라고는 뜻도 안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현상은 무었이옵니까.

뿐만 아니라 그가 간단하다고 생각하였던 병까지도 급기야 닥쳐놓으니까 판단을 내릴 수가 없었습니다. 머리가 아프고 배가 아프고 오금이 쏘는 병을 그는 무엇으로 진단하여야 할지 망설였습니다. 식욕은 있고도 먹으면 모두 설사하고 몸이 파리해가는 병을 무엇으로 진단하여야 할지도 몰랐습니 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이것은 무슨 병이라’고 서슴지 않고 판단을 내릴 자신이 있는 병은 한번도 만나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는 환자를 만나면 먼저 청진기를 가슴에 댑니다. 만뢰(萬雷)라 할까 폭포수라 할까, 우렁찬 소리가 귀에 울립니다(처음에는 홍 선생은 몇 번을 몸을 흠칫흠칫 놀랐습니다.) 한참 이리 듣고 저리 들은 뒤에 그는 눈살을 몇 번 찌푸리고 머리를 몇 번 저은 뒤에 열을 봅니다. 이 열만은 홍 선생이 가장 자신 있는 태도로 보는 바이니, 상열(常熱)이 37도 약(弱)이라 하는 것은 홍 선생이 벌써부터 아는 바외다.

이리하여 진찰이 끝나고는 치료를 시작합니다.

환부(환부가 똑똑하지 않을 때에는 온몸)에 전기기계를 문지르는 것으로 그의 치료의 제일 도정은 시작됩니다. 이리하여 환자의 몸이 마비된 듯하면 홍 선생은 약을 짓습니다. 식전 약으로는 안티피린, 식후 약으로는 위산, 이 두 가지를 주고 돈을 받은 뒤에는 뒤도 안 돌아보고 그다음 산골로 달아납니다.

어떠한 병에 든 홍 선생은 이 두 가지 약밖에 다른 약의 필요를 느껴본 적이 없었습니다. 주머니 속에 깊이 간직한 노트도 또한 쓸데없는 물건이었습니다. 병명을 한 번도 판단 내려본 적이 없는 홍 선생에게서는 처방이라는 것이 쓸데없었습니다.

이리하여 7년 동안을 배운 지식과 그 노트는 한편 구석에 짓이겨 놓고 한 때의 지혜(오히려 돈지(頓智))뿐으로 밥을 벌어나가는 자기를 홍 선생은 발견하였습니다.

그리고 환자나 혹은 친척이 무슨 병이냐고 묻는 때라도 있으면 경우에 따 라서 새 병명을 발명키를 주저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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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의생(醫生)의 사망진단서 가운데 십장병(十丈病)이라 하는 것이 있었습니다. 경찰서에서 연구하다 못하여 그의 생을 불러서 어떤 병이냐고 물었습니다. 즉 그의 생의 대답이 열 길 되는 벼랑에서 떨어져 죽었으니까 ‘십장병’이라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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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를 당시에는 그렇게도 웃은 홍 선생이 아니었습니까. 웃다 웃다 못하여 마지막에는 울음소리로 그 이야기를 노려보고 또 노려보고 한 그가 아니었습니까.

그러나 이제 만약 누가 홍 선생이 내린 그 모든 괴상한 병명에 대하여 질문하는 이가 있다 하면 홍 선생은 가장 엄숙한 태도로 무언의 책망을 할 것이겠습니다. 그리고 전문가의 단안을 의심하는 시로도(초심자)의 주제넘은 태도를 멸시하기를 마지않을 것이겠습니다.

그러나 조선은 역시 빽빽한 곳이니 거기도 또한 관헌의 압박과 간섭이 있었습니다.

‘이상한 기계로써 온갖 병을 고치는 고명한 의술’홍 선생의 이름이 방방 곡곡 퍼지며 높아갈 때에 관헌의 압박과 간섭이 시작되었습니다.

“무슨 자격으로 병자를 취급하느냐?”

그들의 물음은 이것이었습니다.

“이 기계(전기 안마기)사용에는 자격이 필요 없다.”

홍 선생은 가만히 대답하였습니다.

“무슨 자격으로 투약을 하느냐?”

그들은 질문을 바꾸었습니다.

“치료사의 자격으로.”

“의사나 의생의 면허증이 있느냐?”

“없다, 필요도 없다.”

“30원의 벌금이다.”

간단한 결론이었습니다. 그러나 피하지 못할 명령이었습니다.

이런 일을 두 번 겪고 세 번째는(돈이 없으므로) 몸의 구속으로 돈을 대신 하고 나온 홍 선생은 며칠 동안은 기가 막혀서 정신을 차리지를 못하였습니다.

인제는 굶어 죽었구나. 며칠 동안을 거진 음식을 전폐하다시피 하고 누워서 어렴풋이 이런 생각을 하고는 한숨을 쉬고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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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하느님이 사람을 굶어 죽게는 내지 않은 것이니 사경에 직면한 그는 거기서 또다시 활로를 발견하였습니다.

국경을 넘어서자, 평북 용천 태생인 그는 지나인(支那人) 말에도 얼마간의 자신이 있었습니다.

면허장을 보자는 관헌도 없고 의사도 부족한 만주 땅은 사실 이 선량한 사 기한 홍 선생에게는 낙원이나 다름없었습니다. 그리하여 전치(全治)된 자기 의 몇몇 환자에게 여비를 동냥해가지고 홍 선생은 커다란 바람을 품고 국경 을 넘어섰습니다. 뿐만 아니라 국경을 넘어설 때는 홍 선생의 콧등에도 금 테 안경이 걸렸고 가슴에는 도금시곗줄이 번쩍였습니다. 의사로서의 위신과 위풍을 만주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해서외다.

‘전세계 전기치료계의 태두.’ ‘미국 화성돈(華盛頓) 전기대학교 교수.’ ‘덕국(德國) 백림(伯林)의학대 박사.’ 이러한 명색 아래 홍 선생의 이름은 국경을 넘어 만주의 촌촌에도 퍼지기 시작하였습니다. 금테 안경과 금 시곗줄은 홍 선생의 그 길다란 명색에 적당한 위엄과 위풍과 신뢰를 사람들의 마음에 일어나게 하였습니다. 홍 선생 의 좀 꽁한 태도로 이름 있는 의사다웠습니다. 코 아래 수염도 났습니다.

약은 역시 안티피린과 위산뿐이었습니다. 어떠한 병에든 식전 약으론 안티피린, 식후 약으론 위산이었습니다. 그러나 홍 선생은 운이 터졌던지 그들의 병은 이 단순한 두 가지의 약과 전기치료뿐으로 낫고는 하였습니다. 이리하여 홍 선생이 조선 땅을 뒷발로 차던진 지 1년쯤 뒤에는 홍 선생이 돌아다닌 만주의 촌락에는 화타나 편작의 재래로서홍 선생의 이름은 널리 퍼졌습니다. 그의 이상한 기계를 지나인들은 마술상자와 같이 신앙의 마음으로 바라보았습니다. 기계에서 웅 - 하는 소리가 날 때에는 모두들 경건한 태도를 취하였습니다.

이리하여 그의 이름이 해와 같이 빛나게 되었을 때에 그는 어떤 지나 호농(豪農)의 집에 불려 가게 되었습니다.

환자는 그 집 젊은 며느리로서 병은 난산(難産)이었습니다. 소위 애가 올라붙었다고 그 집에서는 야단법석을 하였습니다.

홍 선생은 팔을 걷은 뒤에 가장 엄숙한 태도로 환자의 배를 만져보았습니다. 올라붙었는지 내려붙었는지 모르되, 뱃속에 어떤 물건이 움직이고 있는 것은 알 수가 있었습니다. 환자는 땀을 뻘뻘 흘리며 연하여 다리를 꼬며 허리를 구부리며 부르짖었습니다.

자, 이 일을 어쩌나, 어떻게 치료해야 되나. 홍 선생도 구슬땀을 흘렸습니 다. 보통 배아픈 데에는 위산을 먹였지만 이 환자에게는 위산은 쓸데없을 것이었습니다. 아편을 주자 하니 거기 또한 태모와 태아, 생리학적 관계를 모르는 홍 선생은 뒷일이 염려되어 그것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홍 선생은 연하여 땀을 씻고는 배를 만져보고 배를 만져보고는 땀을 씻고 하였습니다.

전기 기계를 열었습니다. 둘러앉았던 환자의 남편이며 시어머니는 이 기계를 보고야 적이 안심된 듯이 서로 얼굴을 바라보며 수근거렸습니다.

치료는 시작되었습니다. 사실 이때에 기회만 있었더라면 홍 선생은 뒷문으로 빠져서 달아나기를 주저하지 않았겠습니다. 소심한 홍 선생은 땀을 뻘뻘 흘리며 손을 떨면서 환자의 배를 기계로 문질렀습니다. 그리하여 한창 거기 정신이 팔려서 문지를 때에(홍 선생에게는 뜻밖으로서) 환자는 어느덧 숨소리 고요히 잠이 들었습니다. 어느덧 잠이 들었는지 잠든 것을 발견한 홍 선생은 환자를 눈이 끔벅끔벅 들여다보다가 문득 치료자로서의 긍지를 느끼면서 기계를 수습하고 머리를 들었습니다. 아까의 저품과 근심은 눈과 같이 사라졌습니다. 기계 뚜껑을 덮은 뒤에 손수건으로 두어 번 툭툭 먼지를 터는 홍 선생의 태도에는 개선한 장군과 같은 위엄과 자랑이 있었습니다.

그런 뒤에 여전히 식전 약으론 안티피린, 식후 약으론 위산을 몇 봉지 찾아준 뒤에 코 위에 걸린 안경을 어루만지면서 일어났습니다. 그리하여 많은 치하와 사례를 받은 뒤에 객주로 돌아오려고 그가문에까지 이르렀을 때에 그 집 작은주인이 따라 나오면서 그를 찾았습니다. 홍 선생은 가슴이 선뜩 내려앉았습니다. 그래서 못 들은 체하고 그냥 가려 할 때에 문까지 따라 나온 작은주인은 마침내 홍 선생을 붙들었습니다.

“선생님, 이 사람을 데리고 가주십쇼.”

“?”

“선생님과 같은 조선 사람이외다. 데리고 가서 마음대로 처분해주십쇼.”

“?”

거기에는 알지 못할 한 50세 가량 된 조선 사람 하나가 공포로써 밉게까지 된 얼굴로 웅크리고 서 있었습니다. 새까맣게 터진, 주름살은 없지만 늙음을 나타내는 그의 얼굴은 사람의 살아가는 괴로움과 쓰라림을 넉넉히 말하 고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더욱 놀랄 일은 그의 장작개비와 같이 뻣뻣 마른 두 손에는 순간 전까지 결박을 당하여 있던 노끈의 시뻘건 자리가 깊이 박혀 있었습니다.

“자칫하더면 만주서 고흔이 될 뻔했소이다.”

홍 선생과 같이 홍 선생의 객주에 와서 한참 몸을 사시나무 떨듯 떨던 노인은 좀 진정이 된 뒤에 이렇게 한숨을 쉬었습니다. 그리하여 노인에게 이야기를 이리 듣고 저리 물은 결과로서 홍 선생이 안 바는 대략 이러하였습니다.

그 노인도 역시 홍 선생과 같은 의술가였습니다.

본시는 선비로서 공맹지도밖에는 아무것도 모르던 노인은 역시 생활난이라 하는 데 밀려서 만주로 쫓겨 나왔습니다. 조선 땅을 떠날 때에는 마누라와 아들과 며느리와 몇 백 원의 돈이 있었지만, 무서운 꼬임병이 만주를 한번 휩쓸어온 뒤에는 그에게 남은 것은 머릿속의 공맹지학밖에는 없었습니다.

홍 선생의 신학문이 밥이 못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노인의 구학도 밥이 못 되었습니다. 노인은 역시 목숨을 보지해 나아가기 위하여 의술가로 개업하였습니다. 그리하여 한방의학의 ‘이열치열’이라는 원리에 좀 수정을 더해 ‘이열치병(以熱治病)’이라는 새 원리를 세워가지고 그는 온갖 병을 열로써 고쳐보려 하였습니다. 노인의 어렸을 때 경험으로 배가 아프면 불물을 배에 대고, 고뿔이 들리면 방을 덥게 하며, 식체는 손발을 더운물로 씻었으 며, 이질에는 쑥찜을 하였으며, 온갖 병에 한정과 온정이 유리한 것을 보았으니 이러한 결론에 이르는 것이 오히려 당연하였습니다.

노인은 쇠몽치를 하나 준비하였습니다. 굵기가 두 치 되고 길이가 한 간쯤 되는 쇠몽치의 좌우편 끝에는 나무 손잡이가 달렸으니, 이것이 이 노인의 유일무이한 치료기구였습니다. 어떤 병에든지 그는 그 쇠몽치를 불에 달구어가지고 환부에 굴렸습니다. 굴리고 굴리고 하여 환자가 정신이 얼떨떨한 듯하게 된 뒤에야 그는 치료가 끝난 것을 선언합니다.

‘가열치료 대박학사(大博學士).’ 이러한 명색으로 만주 몇 십 리를 쇠몽치 하나를 밑천 삼아가지고 편답하던 노인은 아까 그 집(홍 선생이 갔던 집)에 불려 가게 되었습니다.

“밥을 벌어먹자니 말이지 내가 병을 아오? 그래두 되놈의 병은 고치기가 쉬워요. 그놈들은 앓다 앓다 못해서 정할 수 없이 되어 의술한테 옵니다그려. 그러니깐 의술한테 오는 놈은 죽게 된 놈 아니면 다 - 낫게 된 놈이야요. 그러니깐 게다가 쇠몽치라도 데워서 굴려주면 죽을 놈은 죽고 그렇지 않으면 나았지, 병이 오래간다든가 하는 일은 쉽지 않구려. 그래 그놈의 집에 가니깐 년은 죽노라고 야단이고 놈들두 모두 눈이 퀭하니 있는데 내니 어떡헙니까. 또 쇠몽치를 달궜지요. 그리구 한참 힘 있게 배에 굴려주었더니 년이 그만 까무러치겠지요. 그래서 따귀를 한 대 때렸구려, 년의…….

정신 차리라구 그랬더니 놈들이 뭐라구 뭐라구 하더니 나를 질근질근 동여 서 움에 가둡디다그려. 년이 죽기만 하면 나두 죽인다구요. 난 다시 살기를 바라지 않았어요. 이제 살면 무얼 합니까. 생목숨 끊을 수가 없어서 이러구 다니지 이제 더 살면 낙 보기를 바라겠소? 그러니 죽어지는 날까지 먹기는 해야겠구. 망할 놈의 세상에 태어나서…….”

노인은 한숨과 함께 말을 끊었습니다. 아아, 그러나 이렇듯 홍 선생에게 공명되는 이 노인의 이야기도 홍 선생은 침착히 들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의 얼굴에는 낭패의 빛이 떠 있었습니다.

“그럼 노인장은 인제 어떡허시려우?”

“역시 그밖에는 할 게 있소? 사실 말이지 생목숨을 끊을 수는 없습디다그려. 몇 번을 에라 죽어버리자구 해본 적은 있지만 그러나…….”

“얼마 안 되지만 노비에 보태어 쓰시오. 그리구 노인장 여관에 가서 한참 주무시오.”

돌연 명령이었습니다. 홍 선생에게는 자기의 낭패한 빛을 감추든가 노인의 이야기를 더 듣는다든가 할 마음의 여유가 없었습니다.

‘놈들이 뭐라구 뭐라구 하더니 날 질근질근 동여서…….’ 노인의 이야기 가운데 이 말 한마디뿐이 그의 귀에 박히고 그의 머리에 새겨져서 다른 생각은 도저히 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리하여 총총히 노인을 몰아낸 홍 선생은 노인의 외로운 뒷모양이 길모퉁이에서 사라지는 것을 본 뒤에 황급히 방 안에 뛰어들어와서 짐을 묶기 시작하였습니다.

죽지 않았나, 혹은 환자는 죽지 않았다 할지라도 뱃속의 어린애가 전기 때문에 죽지나 않았나, 환자의 아까의 안정은 뱃속의 어린애의 정지(죽음)로 말미암아 생겨난 일시적 현상이 아니었던가, 이런 생각을 어렴풋이 하며 밖을 내다보았습니다. 짐을 묶었다 다시 짐을 풀어서 옷을 꺼내고 다시 묶었다 옷을 벗었다 입었다 하던 그는 그래도 한 30분 뒤에 그 짐을 다 정리해 가지고 셈을 치른 뒤에 그 여관을 떠났습니다. 아니 오히려 달아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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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피하고 동리를 피하여 길을 가던 홍 선생은 그날 밤 멀리 동리의 불을 바라보면서 벌판에서 자기도 하였습니다.

여름 달밤이었습니다. 요를 펴고 별을 바라보면서 누워 있는 홍 선생에게는 만감이 왔다 갔다 하였습니다. 벌레들이 웁니다. 때때로는 알지 못할 새의 우는 소리도 들립니다. 이런 것을 바라보면서, 이런 것을 들으면서 두틀두틀하여 편안하지 않은 요를 연하여 고쳐 펴면서 홍 선생은 자기의 지난 일과 이제 올 일을 여러 가지로 생각해보았습니다.

‘생목숨 끊을 수가 없어서 이러구 다니지 이제 더 살아서 낙 보겠소?’ 인생의 목적이 무엇이냐 하는 문제는 홍 선생은 생각해보려고도 아니하였습니다. 그러나 생각하기 전에 해답이 먼저 머리에 걸려 늘어지고 걸려 늘어지고 하였습니다. 인생의 목적은 먹고사는 데 있다고…… 그렇습니다. 이렇게 대답될 때에 한하여 홍 선생의 삶에도 한 점의 가치가 붙습니다. 먹고 사는 것이 인생의 유일의 목적이라 하는 것뿐이 현재, 과거, 미래, 할 것 없이 홍 선생의 삶의 유의의(有意義)함을 설명하는 다만 하나의 길이었습니다.

그러나 돌이켜서 먹고사는 ‘ 것’은 인생의 목적에 도달하려는 한 수단이 요 방법에 지나지 못한다 할 때에는 홍 선생의 삶은 ‘제로’가 되어버리겠습니다. 존재하는 것은 모두 다 합리적이라 한 헤겔의 주장을 그대로 신봉 한 바는 아니지만, 본시 낙천적으로 생긴 홍 선생은 방랑의 몇 해 동안에 한 번도 자기의 장래에 대하여 깊이 생각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이전 학생 시대에 그려둔 ‘장래’가 아직껏 머리에 찬란히 박혀서 굳은 신념으로서 남아 있었습니다. 이러한 어렴풋한 개념으로 그는 아직껏 그 방랑을 쓰다 하지 않고 받아왔습니다. 어째서? 하는 의문은 그에게 일어나본 적은 없었 습니다. 그러나 만약 여기 누가 있어서, ‘어째서 너의 장래에는 광휘가 있겠느냐?’ 고 묻는 이가 있다 하면 그는 서슴지 않고 대답하였겠습니다.

‘나는 홍○○이다.’고……. 간단하고 명료한 대답이외다. 그는 이만치 자기의 장래를 낙관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생목숨 끊을 수 없구…….’ 라 하던 그 노인의 말은 홍 선생이 아직 생각지도 않았던 새로운 질문을 그의 머리에 던졌습니다. ‘언제?’며 ‘어떤 방법으로?’며 ‘어떠한’이었습니다. 언제 어떠한 방법으로 혹은 어떤 길을 좇아서 어떠한 광휘가 그에게 이르겠느냐.

‘하느님뿐이 아신다’고 튀겨버리기에는 너무 엄숙하고 비극적인 물음이었습니다. 어떠한 결과에 이르기에는 그 결과가 생겨날 만한 동기 혹은 원인과 거기까지 이르는 행위가 필요하다는 것은 예전의 철인들이 지적한 진리였습니다. 그러면 홍 선생에게 이를 광휘는 어떤 원인으로 어떤 길을 밟아서 이르겠느냐.

방랑의 길을 떠나기 전에 때때로 생각하고 적어두었던 인생에 대한 그의 독창적 의견조차 벌써 잊어버린 그였습니다. 차차 머리가 말라가는 그였습니다. 더구나 지금에는 오늘날의 밥 문제밖에는 생각할 겨를도 없는 그였습니다. 언제 어떠한 길을 좇아 어떤 광휘가 그에게 이르나.

역시 벌레 소리가 들립니다. 알지 못할 새의 소리가 역시 때때로 들립니다. 하늘에는 별이 반짝입니다. 아까는 이마를 넘어서 보이던 달이 시방은 벌써 가슴 위로 넘어와서 여전히 서늘한 빛을 부었습니다. 그러나 홍 선생은 잠잘 생각도 안 하고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벌떡 일어나면서 성을 내어 본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 역정이나 탄식이 사람의 번민에 광명을 주지 못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일반이니 홍 선생의 번민은 사라질 바 없었습니다.

벌레 소리, 알지 못할 새소리, 서늘한 달빛 가운데에서 홍 선생은 밤새도록 일어났다 누웠다 하면서 번민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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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배고픈 데 들어서는 양반 상놈이 없나니 며칠 지난 뒤에는 홍 선생은 여전히 호호탕탕히 덕국 백림 의학 박사의 명색으로 치료 여행을 계속하는 자기를 발견하였습니다.

그리하여 그해 여름도 다 간 어떤 날, 어떤 자그마한 촌에 도착한 홍 선생은 그 촌 어귀에 ‘가열치료 대 박사 ○○○’이라 한 종이 간판을 보고 하하 하였습니다. 주인을 잡은 뒤에 자기도 미국 화성돈 전기대학교 교수 홍 ○○이라 한 종이 간판을 몇 군데 붙이라고 시킨 뒤에 번번 나가 넘어지고 말았습니다.

‘죽음보다 힘센 것은 주림이다.’ 이리 뒹굴고 저리 뒹굴며 이런 생각을 어렴풋이 하면서 거기 연하여 그 쇠 몽치 노인이며 자기의 일을 회상하다가 어느덧 잠이 들었던 홍 선생은 누가 깨우는 바람에 중얼거리며 정신을 차렸습니다. 그것은 환자에게서홍 선생을 좀 와달라는 심부름꾼이었습니다.

홍 선생인 치료기구를 수습해가지고 따라갔습니다.

환자는 뜻밖에 쇠몽치의 노인이었습니다.

“노인장 웬일이시오?”

“오래간만이외다. 여기서 또 선생님의 신세를 져야 될까 보외다.”

“그래, 어디가 편찮으셔요?”

“눈이 보이질 않는구려. 한 사나흘 전부터 눈에 안개가 낀 것같이 흐릿하더니 오늘부터는 보이질 않는구려. 한번 좀 봐주시오.”

홍 선생은 노인을 누인 뒤에 솜씨 익은 태도로 눈을 뒤집어보았습니다. 그러나 어디가 나쁜지 홍채도 있었습니다. 동자도 있었습니다. 출혈도 되지 않았습니다. 홍 선생은 노인의 눈앞에 손을 얼신얼신해보았습니다. 허공을 쳐다보며 깜박도 안 하는 것뿐이 병이지, 나쁜 곳은 발견할 수가 없었습니 다.

“대체 무슨 병이오?”

노인은 근심스럽게 물었습니다.

“네? 그 급성 안맹염이라는 병이외다.”

“안맹염이라, 어째서 이런 병이 생기오?”

“글쎄, 공기 나쁜 데라도 가보신 일이 없습니까?”

“왜 없어요. 되놈, 더구나 앓던 놈의 집에만 다니니깐 맨날 공기 나쁜 데 만 다니는 셈이지요.”

“그 때문이외다.”

“넉넉히 낫겠습니까?”

홍 선생은 노인의 얼굴을 보았습니다. 생목숨 끊을 수가 없어서 이러고 다니지 죽어지기만 하면 그것을 달게 받겠다던 그가 아니겠습니까. 한때는 인위적 죽음의 고개를 넘어서 본 일까지 있는 그가 아니었습니까? 그렇던 노인의 얼굴에 나타난 공포와 근심은 무엇을 뜻하겠습니까.

‘죽음보다도 힘센 것은 주림입니다.’ 홍 선생은 물러앉아서 눈이 멀거니 이런 생각만 하고 있었습니다. 5분이 지났습니다. 10분도 지났습니다. 노인은 기다리다 못하여 채근을 하였습니 다.

“자, 어떻게든지 고쳐주시오.”

고쳐? 이 문제야말로 홍 선생에게는 야단난 문제에 다름없었습니다. 홍 선생이 아직껏 거기까지 도달키를 꺼리는 문제이지만 또한 도달하지 않을 수 없는 문제였습니다.

어떻게 고치나, 안티피린과 위산이 쓸데없을 것은 거듭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러면 전기?

전기 또한 댈 곳이 없었습니다. 눈동자에도 전기를 댈 수 없는 것이며, 시 신경을 지배하는 머리에다 대어도 나을 것 같지 않았습니다.

“네, 고쳐 드리지요.”

대답만 기계적으로 할 뿐 홍 선생은 역시 눈이 멀둥멀둥 다른 생각만 하고 있었습니다. 이러다가 세 번을 재촉을 받은 뒤에야 홍 선생은 정신을 가다듬고 머리를 들었습니다.

“네 시재 약을 가져온 것이 없는데 주인에게 가서 지어 보내리다. 어떠리까, 곧 낫겠지요. 그리 걱정 마시고 누워 계시오.”

그리고 그는 안경을 한번 쓰다듬은 다음에 그 집을 나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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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관으로 돌아온 홍 선생은 역시 눈이 멀거니 앉아버리고 말았습니다.

자, 어떡허나. 누른 안티피린과 위산이나 주어버리고 눈을 씻으라고 분산물이나 좀 타주면 그뿐일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래도 낫지 않는다 하면 시기가 늦었다고 튀겨버리면 문제가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홍 선생에게는 자기를 신뢰하는 동업자, 더구나 만주에 외로이 (밥을 위하여) 떠돌아 다니는 동포까지 속이지는 차마 못하였습니다.

도리메(야맹증), 도라호무(트라코마), 풍안, 노안, 가막눈…… 눈의 고장에 대한 몇 가지의 이름이 그의 머리에 왔다 갔다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몇 가지가 모두 어떤 원인으로 어떤 증세로 나는 것은 홍 선생은 모르는 바 였습니다. 더구나 어떻게 고치는지는 모를 바였습니다.

안티피린? 위산? 그는 허공과 같은 머리에 또 물어보았습니다. 그리고 안경을 한번 쓰다듬은 뒤에 번듯이 자빠지고 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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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해 가을도 한 절반 간 어떤 날, 어떤 동리에 들어갔던 그는 거기 그 쇠몽치 의원이 와 있다는 말을 듣고 그다음 동리로 달아나고 말았습니다. 홍 선생의 들은 바에 의지하건대, 그 노인은 눈이 멀고 말았다 합니다. 그러나 지나인들은 오히려 맹의원(盲醫員)이라 하여 더 신비시해서 노인의 영업은 날로 번창한다 합니다.

그 뒤에 홍 선생은 여러 번 그 노인과 마주칠 뻔하였습니다. 그럴 때마다 홍 선생은 몰래 다른 동리로 달아나고 하였습니다.

그때부터 홍 선생의 입에 올라서 버릇이 된 한 가지의 말이 있었습니다.

‘인생 도처에 유청산이라더니 인생 도처에 유방해로구나.’ 개똥도 약에 쓰려면 없다는 반면에 원수를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 하니 사람의 세상은 왜 이다지도 맘대로 안 되는 것입니까. 하늘이 주유를 냈거든 왜 또 공명을 냈습니까. 홍 선생은 그 뒤에 가는 곳마다 맹의원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런 때마다 그는 ‘인생 도처에 유방해’라는 것을 통절히 느끼면서 그 동리를 달아나고 하였습니다.

그해도 다 가고 새해, 만주벌에 눈보라 몹시 치는 날이었습니다. 오후 3시쯤 어떤 동리에 들어갔던 그는 거기 병의원이 와 있단 말을 듣고 곧 돌아서서 다른 동리로 향하였습니다. 다른 동리는 그 동리에서 한 30리 떨어져 있었습니다.

된바람과 함께 눈은 풀풀 얼굴과 온몸에 끼얹었습니다. 열 걸음 앞이 똑똑히 보이지 않았습니다. 물결과 같이 밀려오던 눈보라가 한번 휙 지나간 뒤에는 눈앞의 경치가 모두 달라지고 하였습니다. 아까는 언덕이던 곳이 문득 없어지며 또는 이제 있던 평원이 커다란 언덕이 되며…… 넓적다리까지 쑥쑥 빠질 때도 있다가는 어떤 때는 바위 위를 걷는 것같이 굳을 때도 있고…… 휙휙 - 무서운 바람소리도 들렸습니다.

홍 선생은 다른 동리로 가기를 그만두려 하였습니다. 그래서 온 길로 다시 돌아섰습니다.

그러나 한참 뒤에 그는 자기가 길을 잃은 것을 알았습니다. 아무리 가야 그 동리조차 발견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이마에 손을 대고 바라보았습니다. 눈보라! 그밖에 또 눈보라…… 겹겹이 눈보라뿐이었습니다. 간혹 한순간씩 몇 십 정(町)밖이 보일 때도 있지만 일망무제한 눈의 광야뿐이었습니다. 동쪽도 눈보라, 서쪽도 눈보라, 그 밖에 보이는 것은 눈의 광야, 동리나 인가는 어디 붙었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죽었구나, 어디든지 가지는 대로 가보자 하고 홍 선생은 정처 없이 걸었습니다. 그의 얼굴도 눈과 얼음으로 한 겹덮였습니다. 수염에만(콧김 때문에) 눈이 없었지 그 밖에는 몸집까지 한 커다란 흰 덩어리로 변하였습니다.

촉각신경은 벌써 감각을 잃어버렸습니다.

눈보라의 광야에도 밤이 이르렀습니다. 그러나 홍 선생은 동리나 인가를 발견하지 못하였습니다. 동으로 서로 남으로 북으로 방향 없이 헤맬 뿐이었 습니다. 눈 때문에 그다지 어둡지는 않았습니다. 홍 선생은 이 유명(幽明) 가운데를 헐떡거리며 돌아다녔습니다.

마침내 그의 다리도 말을 듣지 않게 되었습니다. 벌써부터 아랫다리는 말을 안 들어서 넓적다리의 힘뿐으로 걸어다니던 그는 넓적다리도 인제는 말을 안 듣는 것을 깨닫고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인젠 죽었구나. 몸의 극도의 피곤과 함께 그의 머리도 극도로 피곤하였습니다. 그는 인젠 죽었다는 생각밖에는 다른 것은 할 여유가 없었습니다. 뿐 만 아니라 그 ‘죽었다’는 것도 아무 강조나 공포가 없이 어렴풋이 생각되는 그런 종류의 생각이었습니다.

시신경도 인젠 작용을 못하였습니다. 바람 소리가 무섭게 날 터인데 들리지 않는 것을 보면 청신경도 못 쓰게 되었습니다.

‘방기몽야(方其夢也) 부지기몽야(不知其夢也) 몽지중 우점기몽언(夢之中又占其夢焉) 각이후지기몽야(覺而後知其夢也).’ 문득 몹시 똑똑히 이 장자의 한 구절이 그의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습니다.

그는 온몸의 힘과 신경을 모아가지고 팔을 움직였습니다.

이리하여 비상한 노력의 10여 분이 지난 뒤에 그는 전기 안마기에 스위치를 넣어가지고 그것을 가슴에 갖다 댔습니다. 그러나 이만 노력이 무슨 쓸 데가 있겠습니까. 온몸이 차차 녹아오고 마비되어오는 것을 똑똑히 감각하던 그는(벌써 십오륙 년 전에 동경 어떤 전차에서 본 일이 있는)어떤 일본 계집애의 얼굴을 언뜻 보면서 영원한 침묵의 길을 떠났습니다. ‘인생 도처에 유청산을 인생’ ‘ 도처에 유방해’라도 고쳐가지고 늘 외던 그는 여기서 몸소 ‘인생 도처에 유청산’이라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마지막의 노력으로서 ‘생’을 얼마간이라도 붙들어 보려던 전기기계만은 애처로운 자기의 주인의 일생을 조상하는 듯이 그 뒤 이틀 동안을 눈 속에 깊이 묻혀서 웅웅 울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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