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겨우 뜰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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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1918년에 평양에서 생긴 조그만 비극의 하 나이다.

1[편집]

위아래, 동서남북, 모두 불이다.

강좌우편 언덕에 달아 놓은 불, 배에서 빛나는 수 천의 불, 지절거리며 오르내리는 수 없는 배, 배 틈으로 조금씩 보이는 물에서 반짝이는 푸른 불, 언덕과 배에서 지절거리는 사람의 떼, 그 지절거림을 누르고 때로는 크게 울리는 기생의 노래, 그것을 모두 싼 어두운 대기에 반사하는 빛, 강렬한 사람의 냄새…… 유명한 평양 4월 8일의 불놀이의 경치를 순서 없이 벌여 놓으면 대개 이것이다.

도깨비는 어둠에 모여들고 사람은 불에 모여든다.

그들은 거기서 삶을 찾고 즐거움을 찾고 위안을 찾으려 한다.

사정 없이 조그만 틈까지라도 비추는 해에게 괴로움을 받던 〈 사람〉들은, 비추면서도 덮어 주고 빛나면서도 여유가 있고 나타내면서도 감싸 주는 불 아래로 모여들지 않을 수가 없었다. 정답게 빛나는 불 밑에서 그들은 웃으며 즐기며 춤추며 날뛰면서, 하루 종일 받은 괴로움을 잊으며, 또는 오늘날에 이를 어지러움을 생각지 않으려 한다. 그리고 이불을 그리는 사람의 마음을 가장 똑똑히 나타낸 자가 4월 8일의 불놀이이다.

불을 그리는 〈 사람〉은 온갖 궁리를 다하여 불 아래 모여 즐길 기회를 지어 내었다. 이리하여 야회, 댄스, 일루미네이션, 요리집, 야시, 모든 것은 생겨났다.

그러나 만족함을 모르는 〈사람〉은 이것뿐으로 넉넉 타 아니하였다. 여기 일 년에 한 번 혹은 두 번씩, 만인이 함께 모여서 함께 즐기며 함께 덤빌 기회를 또 한 만들어 내었다. 그리고 우리의 그것은 4월 8일의 불놀이이다.

몇 해 동안을 벼르기만 하고 하지는 못하였던 불놀이가 금년에는 실현된다 할 때에, 평양 사람의 마음은 뛰었다. 여드렛날 해 있을 때부터 오륙백 짝의 배는 불과 음식을 준비하고 각 장수들은 전을 걷고 불놀이 구경준비에 분주하였다. 이리하여 해가 용악으로 넘고 여드렛날 반달이 차차 빛을 내며 자주빛 하늘이 차차 푸르게 검게 밤으로 들어설 때까지는 해로부터 괴로움을 받던 사람들의 불을 그려 모여드는 무리, 외로움에 슬퍼하던 사람들의 흥성거림을 찾아 모여드는 무리, 한 해 동안을 수판에 머리를 썩이던 사람들의 하룻밤의 안락을 얻으려 모여드는 무리, 또는 유명한〈불놀이〉를 그려 평양을 찾아 모여드는 딴 곳 사람의 무리, 그 가운데 돈벌이에 눈을 희번덕거리며 다니는 계집의 무리들로서 십 리 길이 되는 해관 선창에서 부벽루까지에 총총 달아 놓은 등 아래는 수만 명으로 셀 사람의 병풍이 세워지고, 재간껏 장식한 오륙백 짝의 배에는 먼저 주선함으로 탈 수 있게 된 행복된 사람으로 가득찼다. 평양성내에는 늙은이와 탈난 사람이 집을 지킬 뿐 모두 대동강 가로 모여들었다.

반월도와 해관 선창에서 쏘는 연화가 금방 하늘에 퍼지면서 부벽루에서 해관 선창까지에 총총 달아 놓은 등과 자라 옷에서 모래섬을 따라 아랫 장림까지에 세워 놓은 홰에는 불이 켜졌다. 이것을 기다리던 모든 배들은 일제히 형형색색의 불을 켜 달고 잔잔한 대동강을 노 젓는 소리 한가하게 청류벽을 향하여 올라간다.

수없는 불이 물 위에 움직이고 번하게 빛나는 대기 썩 위에 수없는 연화가 형형색색으로 퍼져나갈 때 뭇 배와 청류벽 기슭과 반월도에서 띄워 내려보내는 큰 수박만큼한 불방석들은 물줄기를 따라서 아래로 아래로 흘러간다.

강 건너 모래섬에 한 간마다 세워 놓은 횃불은 간간부는 바람으로 인해 춤을 추어서 물 속에 비친 자기 그림자를 놀리고 있다. 그치지 않고 쏘는 연화는 공중에서 이상하게 퍼지면서 수만의 불티를 날린다.

그리고 물위에는 형형색색의 배가 불과 사람으로 장식하고, 기름보다도 잔잔하고 구름보다도 검고 수정보다도 맑은 물 위를 헤어다닌다.

배와 물에서 띄워 내려보내는 수없는 불방석들은 목숨의 불빛같이 가늘게 불붙으면서 아래로 아래로 흘러간다. 불, 불, 불 천지이다.

강좌우편에 단 불, 물에 뜬 불, 매화포의 불, 그것들이 비친 물 속의 불, 도로 하늘로 반사한 대기의 빛, 거기에 또 여기저기서 나는 기생의 노래, 한국아악.

이리하여 대동강, 모란봉, 부벽루, 청류벽, 능라도, 반월도, 모래섬 그 일대는 불로 변하고 사람으로 장식되고 음악으로 싸였다.

「배가 한짝 얻고 싶다.」

뭍에 서 있는 사람들의 말하지 않는 말은 이것이겠지. 한 짝 배를 얻어타고 마음껏 불속에 잠겨서 불을 즐기는 것은 얼마나 유쾌한 일이랴. 여기는 온갖 것을 초월한 〈삶〉의 문제가 있다. 그리고 또 그만큼 배 한 짝을 얻어 탄 사람은 행복된 사람이었다.

—금패도 이 행복된 사람 가운데의 하나였었다.

2[편집]

금패가 탄 배에는 금패밖에 기생 둘과 손님 셋이 탔었다. 이리하여 그들의 배는 배 틈들을 꿰면서 고즈너기 고즈너기 부벽루를 향하여 올라갔다.

금패는 배 난간에 걸터앉아서 앞뒤 좌우를 흐르는 배의 불들도 바라보며 이곳 저곳서 날아오는 삼현육각에도 귀를 기울이다가, 거기도 겨운 뒤에는 W라는 손님의 곁에 가 앉아서 이야기를 끄집어 내었다. 시간을 보낼 핑계가 없어서 괴로와하는 그들 새에는 여러 가지의 쓸데없는 소리가 바뀌었다. 누가 애를 뱄는데 그애의 아버지가 Y라거니, X라거니, 누가 휴업을 하었거니, 누가 살림을 들어갔거니, 이런 쓸데없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동안에, 배는 능라도 아래 이르렀다. 불놀이를 구경하러(오히려 〈보이려〉라는 편이 옳을지도 모르나) 떠난 배들은 여기서 쉬면서 술을 먹는 사람은 술을 먹고 술을 안 먹는 사람은 웃고 덤비며, 어떤 사람은 모란봉 꼭대기에 올라가서 불야성을 이룬 대동강 일대를 구경도 하다가 11시 흑은 12시쯤 각각 자기 떠난 곳으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그들의 배도 거기에 머물렀다.

「한잔 하세.」

「하세.」

아직 반취를 지나지 못한 손님들은 술을 요구하였다. 그러나 이 말이 맺기 전에 금패의 동그랗고 예쁜 손에는 벌써 맥주병이 들리었다. 불로 말미암아 금빛이 도는 맥주는 잔에 부어졌다. 그리하여 이 배에도 점점 흥이 돌게 되었다.

일배 일배부일배 이윽고 취흥이 배 안에 돌고 컵의 왕복이 더해지게 되었다. 금패는 까닭은 모르지만 엉덩이를 들치어 주는 것 같은 기쁨을 참지 못하여 가만히 장고를 끌어당겼다.

「한—한 마디 듣자꾼, 얘!」

혀 꼬부라진 소리가 신음하였다.

금패는 월선에게 눈짓을 하였다. 가장 흥성스러운 〈방아타령〉 한 마디는, 월선의 입에서 부드럽고 아름답게 나왔다.

에헤 에헤야.
에라 찧어라 방아로다.
반 넘어 늙었으니 다시 젊지는 에라 못할러라.

유창한 월선의 소리는 숙련한 금패의 장고와 함께, 높고 낮게 그 시끄러운 불놀이 소리 가운데도 빼어나게 울려 나간다. 금패가 노래를 받았다.

엣다—좋구나.
25현 탄야월에
불승청원 저 기러기.
긴 갈순한 대를 입에다 물고,
부러진거 처 귀 옆에 끼고,
점점이 날아드니,
평사낙안이
—에라이 아니냐.

좋다. 잘 한다, 때때로 술 취한 콧소리가 신음하듯이 울린다.

금패는 유쾌한 마음이 되어, 노래를 주고받고 하였다. 시끄러이 웅성거리는 불놀이 소리 가운데 빼어나게 예쁘게 올리는 이 소리는 뭇 배들의 주의를 끌지 않고는 두지 않았다. 구경배까지 몇이 둘러섰다. 마지막 서로 얼굴을 바라보며 금패가, 영산홍로 봄바람에 넘노니 황봉백접이라고 냅다 뽑을 때는 저 먼데 배에서까지 잘 한다 소리가 울렸다.

이리하여 방아타령은 끝났다.

금패는 자랑스러운 듯한 얼굴로 장고를 밀어 놓고 사이다를 한 잔 부어 가지고 월선이를 끌고 뱃전에 가 앉았다. 그리고 불에 잠겨서 삶을 즐기는 몇 만 명의 사람을 보며 놉시다 놉시다 젊어서 놉시다, 나이가 많아서 백수가 되면 못 노느리라고 조그만 소리로 읊었다. 그때에 월선이가 금패를 꾹 찔렀다.

「얘, 데것 봐라. 여학도들이 다 있구나.」

「여학도가? 어디?」

금패는 수심가를 멈추고 월선이 가리키는 편을 보았다. 그때에는(곧 금패의 배의 뒤에 달린) 그 배에서도 금패의 배를 손가라질하면서 여기서까지 넉넉히 들리게 소곤거린다.

「기생 봐라.」

「어디? 정!」

금패는 자랑스러운 듯한 적개심으로 머리를 잔뜩 들고 경멸하는 눈을 여학생의 배에 향하였다.

「고곤, 왜 곱디, 얘.」

하는 여학생의 손가락은 금패에게 향하였다. 금패는 성내 주고 싶은 듯한, 자랑하고 싶은 듯한 마음으로 코웃음을 웃은 뒤에 머리를 월선에게 향하였다. 그러나 12시를 치는 시계를 8시까지 들은 사람은 나머지 의 넷을 안들으려야 안 들을 수 없다. 금패의 귀도 그 여학생들에게 기울어졌다.

「망측해라. 그렇게 손가락질하믄 보갔구나.」

「본덜.」

「멜 하타니 속으로 욕하디.」

「속으루나 욕한덜.」

「그래두 봐라. 숙고사 치마에, 비취 비나에, 꽤 말쑥하게 차렸데이.」

「그까짓 거!」

「그까짓 거라니. 너 그래 그리캐 채랬니?」

「안 채래서! 좀.」

「바루! 있기나 한 것 같구나.」

「없어두 그까짓 건 부럽질 않어!」

「잘 안 부럽갔다. 여자티구 고운 옷 안 부러워하는 사람은, 암만 그래두 없어!」

「옷이나 잘 닙으면 뭘 해. 너 이제 10년만 디 내봐라. 데것들의 꼴이 뭐이 되나. 미처 시집두 못 가구, 구주주하게……」

그 뒤에는 그들의 이야기는 다른 문제로 넘어갔다.

그리고 이제 5분이 지나지 못하여 그들은 이제 그 이야기를 잊어버릴 테지. 그런 이야기를 하였는지 안 하였는지도 잊어버릴 테지, 설혹 기억을 한다 하여도 가장 변변치 않은 이야기를 한 마디 하였다 하는 이상은 기억치 않을 테지. 그러나 그 이야기가 금패에게는 날카로운 송곳보다도 뾰족한 끝이 있었다.

3[편집]

금패는 성이 났다. 그러나 그의 성난 까닭이 무엇인가?

여학생들이 거짓말을 하였나? 아니, 그들의 말은 처음부터 끝까지 참말이었다. 그리고 또 참말이므로 금패도 성이 났다. 만약 여학생들이 거짓말을 하었더 면 금패는 한낱 코웃음으로 그들을 경멸하여 주었을 뿐일 터이다. 그러면 그의 노염의 대상은 누구였던가? 그의 노염과 그 여학생들 새에는 얼마의 새틈이 있었다. 맥주에 맛이 든 손님들도 아니었었다. 금패의 머리에 떠오른 것은 금패 자기의 경우이었다. 처지이었다.

(나는 이 기회를 타서 금패의 경력을 좀 써보려 한다.)

그는 쾌활한 성질이었다. 여덟 살까지 속곳만으로 길에 나와서 사내애들과 싸우던 것도 아직 그의 기억에 남아 있는 바이다. 아흡 살에 그는 기생의 빛나는 살림을 그리어 기생 서재에 붙여 달라 하여 성공하였다. 그리하여 열 네 살 시사할 때까지에 그는 기생의 일반 재주에 그다지 남한테 지지 않게까지 되었다.

금패는 사내라는 것에게 흥미를 가지게 되었다. 길에서 곁눈으로 자기를 보는 사내라도 만나면 집에 돌아와서는 거울과 마주앉아 몇 시간씩 자기 얼굴을 들여다보며 즐겨하고 하였다. 여학생이라는 것이 차차 변하여졌다.

전에는 서른 살 이상의 늙은 여학생들이 많더니 차차 어린 여학생이 보이게 되었다. 그와 함께 여학생의 풍조가 차차 사치하게 되었다. 금패는 이것을 「여학생 이 기생을 본받는다」 부르고 이긴 자의 쾌락을 맛보는 마음으로 이를 보았다.

노세 젊어서 노세
늙어지면은 못 노느니.

이 노랫가락 한 구절은 그의 가장 즐기는 노래이었다.

때때로 여학생들이 기생을 경멸하는 것을 볼 때에는 그는 분하기는커녕 도리어 통쾌하였다. 그들〈여학생들〉은 자기네 기생과 같이 마음껏 〈거드럭거리〉지 못하므로 시기함이라 금패는 이렇게 생각하였다.

그리고 노래하라, 놀라, 웃으라, 즐기라, 거드럭거리 라 하여 끝까지 젊음을 즐기려 하였다.

이리하여 이러한 몇 해는 지났다.

그러나 그에게도 비극의 한 막이 생기게 되었다. 이 비극을 일으키게 한 사람(우리는 그의 이름을 A라 하자), A라 하는 사람은 어디서 금패를 보았던지 그 뒤부터는 만날 금패를 달래기 시작하였다. 금패는 그를 싫어하였다. A는 얼굴이 그리 못생기지 않았지만 빛이 없었고 귀가 빈상으로 생기고 게다가 돈이 없는 사람이었었다. 뿐만 아니라, 가장 마음에 안 드는 점은 A 라는 사람은 〈멋〉을 모르는 사람이었다.

어떤 날 밤, 어떤 청요리집에서 표지가 왔으므로 가 보매 A가 혼자서 술(먹을 줄을 모르는 사람이었는데) 을 퍼먹고 졸면서 앉아 있다가 금패를 보고 인사를 한다. 금패는 시치미를 떼었다.

A는 한참 묵묵히 앉아 있다가, 마치 소학생이 선생님 앞에 나가듯 겨우 금패의 가까이 와서 금패의 손에 봉투지를 하나 쥐어 주었다(뒤에 보니 그것은 돈 50원이 든 것이었었다). 금패는 아무 대답도 아니하였다. 그러나 A의 저품을 띤 어린애와 같은 눈과 동작은, 얼마간 그에게 사랑스러이 보였다. 그날 밤, A는 금패의 집에서 잤다.

한번 따뜻함을 본 A는 그 뒤에 여러 번 금패를 달랬다. 그러나 푼푼이 몇 달을 모은 50원을 한꺼번에 써 버린 그에게는 다시는 돈이 안 생겼다. 금패는 그를 물리쳤다.

눈보라 몹시 치는 어떤 밤이었다. 금패는 요리집에서 늦도록 놀다가 밤중에 집에 돌아오니까 A가 눈을 하얗게 뒤집어쓰고 금패의 방문 밖에서(와들와들 떨면서) 금패가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술이 잔뜩 취하여서……금패는 벌컥 성을 내어 무얼 하러 왔느냐고 물었다. A는 대답 없이 그 자리에 쓰러져서 엉엉 울기 시작하였다. 이 꼴을 어이가 없어 한참 들여다보던 금패는 자기 아버지와 막간(행랑) 사람을 찾아서 A 를 내쫓아 달라 하였다. A는 아무 저항 없이 끌려나갔다.

그날 밤 금패는 꿈자리가 자못 좋지 못하였다. 몇 번을 못된 꿈에 놀라서 깨었다.

이튿날 금패의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A가 얼어 죽어 있는 것을 그는 알았다. 뿐만 아니라, 그(A)의 주머니에서는(미리 죽을 계획을 하였던지) 〈자기는 어떤 여자를 사모하였다. 그러나 여자는 자기를 경멸한다. 자기의 사무친 마음은 풀 바 없다. 자기는 애타는 마음을 쓸어 지우기 위하여 이 목숨을 끊어 버린다.

그러나—자기는 역시 그 여자를 미워하거나 원망하지는 않는다〉라는 글까지 나왔다. 그리고 그 〈어떤 여자〉란 물론 금패 자기였었다.

이 일이 있은 뒤에 금패의 마음은 크게 변하였다.

그리고 또 이 일로 말미암아, 금패는 두 가지 일을 깨달았다.

첫째는 사람의 앞에는 〈죽음〉이라는 커다란 그림자가 있다는 것이었다. 금패 자기의 앞에도 그것은 확실히 있었다. 그것은 언제 뛰쳐나올지 모를 것이었었다. 10분 전에도 안 보이던 그 그림자가 10분 뒤에 벌써 뛰쳐나온 것을 그는 보았다. 또 둘째는 이 세상에는 〈돈과 멋〉밖에 〈참과 참 그리움〉이 있다는 것을 그는 깨달았다. 온 재산(50원이라는 돈은 큰 돈이 아닌 동시에 또는 한 사람의 온 재산 이상이었다)을 던져서라도 얻고자 한 〈참〉과 온 목숨을 던져서라도 아픈 마음을 잊어버리고자 한참사랑을 보았다. 이것은 금패의 마음에 크게 영향되었다.

이때부터 그에게는 납에게 모를 한숨이 생기고, 남에게 모를 눈물이 생겼다. 밤중에 요리집에서 쓸쓸한 자기 집에 돌아와서 거울과 마주앉아 하소연할 때, 달이 뜬 밤 뛰노는 젊은 피를 거문고로 하늘에 아뢰일 때, 또는 잠든 평양 시가를 둘러볼 때, 혹은 가을 아침 보얀 안개 틈으로 노젓는 소리를 들으면서 물에 떠놀 때, 남에게는 모르지만 웃고 즐기는 그의 마음 깊은 속에는 떨리는 듯한 뛰노는 듯한 또는 찢어지는 듯한 약하고도 강한 느낌이 잠겨 있었다. 정랑들과 즐거이 놀고 있을 때도 마음 속에는(언제 터질지 모르는) 어떤 한숨이 숨어 있었다.

이 동안 그의 머리에는 언제 배었는지 모르지만 한 가지의 문제가 성장하였다.

「굵고 짧게 사는 것이 정말이냐, 가늘고 길게 사는 것이 정말이냐?」

A를 생각할 때에 그는 굵고 짧게 사는 것의 무서움을 깨닫는다. 그러나(또한 A를 미루어) 언제 죽을지 모르는 이 세상에서 구태여 그다지 구차스럽게 굴 것 도 없다.

그리고 그는 한탄하였다—인생 50년은 결코 짧지 않다. 그 이상 살자면 지루하리라. 그러나 그 〈50년〉은 젊고 기쁘게 지내고 싶은 것이라고. 그러나 이것은 도저히 못될 일이라 할 때에 그는 외로움을 깨달았다.

이리하여 그의 쾌활한 반면에는 음울이 생기고, 웃음의 반면에는 눈물이 생기게 되었다.

4[편집]

눈물 머금은 수정 같은 금패의 맑은 눈은, 다시 천천히 여학생들의 배에 향하였다. 그러나 두 배 사이에는 어느덧 밝게 장식한 용각선이 끼여서 아까 기생들을 혹독히 평하던 그 여학생은 겨우 등이 조금 보일 뿐이었었다.

그러나 그 조금 보이는(무엇을 설명하느라고 들썩거리는) 등은 역시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이제 10년만 지내봐. 그 꼴이 무엇이 되나……」

금패는 아직 여학생들의 시집간 뒤의 살림을 엿본 적이 없었다. 그러므로 그는 온전히 그를 몰랐다. 그러나 금패의 짐작으로써 바르다 하면, 그것은 봄에 뫼에 핀 진달래와 같은 것이었다. 연한 자주빛으로 빛나 는 것—그것이 여학생들의 이 뒷살림에 다름 없었다.

피아노, 책을 보고 있는 마누라, 양복한 어린애, 여행, 그것이 그들의 살림에 다름없었다. 그리고 그것은 큰 즐거움에 다름없었다.

그러나……

「이제 10년을 지내 보아!」

자기네의 이 뒷살림은 과연 여학생들의 말과 같이 구주주할까? 금패는 그것을 똑똑히 생각지 않으려 하였다. 그러나 그동안에 순서 없이 몇 가지의 생각은 저절로 그의 머리에 지나갔다. 첩, 병, 매음, 매, 본마누라, 싸움, 이것이었다. 자기네의 앞에 막혀 있는 그림자는 이것이었다.

금패는 고진감래란 말을 들었다. 흥진비래(興盡悲來)란 말을 들었다.

고진감래가 나은지 흥진비래가 나은지 그것은 똑똑히 가를 수가 없어지고 그의 얼굴에 어두운 티가 떠오를 때는, 그 〈흥진비래〉가 나타날 것은 자기가 살아 있다는 것처럼 똑똑한 일이었다. 그것은 무서운 일이며 또한 (따라서) 싫은 일이었었다.

그때는 어찌할꼬. 그때는 어찌 될꼬. 이것이 그의 머리에 처음으로 떠오른, 또 처음으로 생각하여야 할 문제에 다름없었다.

금패는 무거운 머리를 아래로 숙였다. 곧 배 곁으로 가늘게 불붙은 불방석 하나가 그의 장래를 풀려는 수수께끼와 같이 아래로 흘러갔다. 이것을 잠깐 따라가던 그의 눈은 다시 천천히 들렸다. 뜨거운 눈물이 몇 방울 그의 치마 앞자리에 떨어졌다. 그것은 자포자기의 눈물이었다. 그리고 또 절망의 눈물에 다름없었다.

금패가 아직껏 경멸하던 것은 여학생들의 〈현재〉이었다. 그러나 한번 〈장래〉를 볼 때에는 두 자 새에는 헤아리지 못할 커다란 구렁텅이가 있었다.

즉 여학생들메게 대한 더할 나위 없는 적개심이 그의 마음에 일어났다. 서늘한 빛이 나던 그의 눈은 독을 품고 여학생들의 배편을 보았다. 그러나 그 배는 벌써 어디론가 없어지고, 요릿배 몇이 그 근처에 움직일 뿐이었다.

금패는 외로움을 깨닫고 W의 곁으로 갔다. 누구에게든 한마디의 따뜻한 위로가 듣고 싶었다. 그러나 손님들은 벌써 술에 취하여 정신을 못 차리고 있다.

금패는 다시 뱃전으로 가서 앉았다.

우리가 피차에 남북에 살아도
불변심 석자는 꼭 잊지 마세.

가까운 어느 배에서 갑자기 찢어지는 듯한 소리가 나며, 장고가 장단을 맞춘다. 그 뒤에는 큰 웃음 소리 ……

5[편집]

12시쯤 그들의 배는 돌아섰다.

요리집 앞에 배가 닿은 다음에, 금패는 불구경에서 돌아가는 사람들 틈을 꿰고 잠깐 요리집에 들러서 시간표를 찾은 뒤에, 인력거는 그만두고 걸어서 이문골로 들어섰다. 거기는 사람도 적었다.

금패는 무거운 머리를 아래로 숙이고 천천히 걸었다. 아까 여학생들에게 비웃긴 때와는 온전히 다른 외로움이 그를 괴롭게 하였다.

—사람이 살아간다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 먹고 입고 일하고 또 먹고 자고, 이튿날도 또 같은 일을 거푸 하고. 오십 년이라기도 하고 백 년이라기도 하는 일생을 이렇게 지내니, 살아간다는 것은, 다만 이것을 뜻함인가. 즐거운 꿈을 꿈이라 업신여기니, 살아가는 동안에 때때로 이르는 즐거움과 즐거운 꿈 새에 과연 구별이 있는가. 없는 자는 있기를 바라고 있는 자는 더 있기를 바라니, 사람이 살아간다는 것은 다만 욕심 채움을 뜻함인가. 젊어서 죽은 사람을 애닳다하니 늙은 뒤에는 뜻하지 않은 즐거움이 이르는가?

—또한 기생이라는 자기네의 지위를 아직껏 자기도 보통과 다른 것으로 알아 두었고 남들도 그렇게 알았으나 어디가 다르랴. 자기네들에게도 느낌이 있었다.

슬픔이 있었다. 기쁨과 웃음이 있었다. 애처로움이 있었다. 다른 데가 어디냐? 자기네들도 같은 궤도를 밟아서 나아가다가 마침내 죽는 데까지 이를 테지. 그 뒤에 또 같은 궤도를 밟아서 죽은 뒤에 5년만 지나면 이 세상에서 온전히 잊어버리고 말 테지. 오래 살자는 것은 무엇이며 죽기 싫다는 것은 무엇인고. 이것도 다 만 끝없는 사람의 욕심에 지나지 못하는가?

마음을 누르는 듯한, 들추는 듯한 괴로운 생각은 꼬리를 이어서 그의 머리에 떠올랐다.

하마터면 그저 지날 뻔한 자기의 집 앞에서 정신을 차리고 발을 대문으로 향하려다가 금패는 멈칫 섰다.

그의 귀에는 한 개의 음률이 들렸다.

그것은 아름다운 음조이었다. 커다란 물결이 바다에 넘치는 듯, 때때로는 조그만 벌레가 신음하는 듯 고요한 밤하늘에 울려 나가는 그것은 탁문군의 《상 부 련》 한 곡조의 거문고 소리 이었다.

이것은 금패의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금패의 아우가 뜯는 것이었다.

금패는 발을 멈추고 귀를 기울였다. 끓는 열정으로 뜯는 한 구절의 《상부련》은 어르는 듯 아뢰는 듯 은은히 울리어 온다 잠깐 서서 이를 듣던 금패는, 가만히 대문 안으로 들어 서서 안으로 잠그고 누구냐고 묻는 아우의 물음에 대답하고, 자기 방에 들어가서 옷을 갈아입은 뒤에 거울과 마주않았다.

마음을 들추는 괴로운 생각은 또다시금패를 눌렀다. 눈이 멀거니 앉아 있는 그의 머리에는 또다시 머리 없고 꼬리 없는 생각이 지나가고 지나가고 하였다.

그러나 얼마 동안을 이렇게 앉아 있던 금패는 손을 들어 머리를 쓰다듬었다. 이제껏 엄숙한 빛이 있던 그의 얼굴에는 독을 머금은 비웃음이 떠올랐다.

「같지두 않은 생각을 하구 있댔다.」

그는 이렇게 거울에 비쳐진 자기의 얼굴에다 말하였다.

지금의 금패에게 말하면 〈인생〉이란 풀기 쉬운 수수께끼이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렇게 해석하기가 싫어서 뭉갤 뿐, 〈인생〉이란 것같이 풀기 쉬운 수수께끼는 다시 없었다.

한 마디로 말하자면 같잖고 변변치 않고 괴롭고 쓸쓸한 것, 이것이 〈인생〉이었다. 그리고 이 괴롭고 변변치 않고 같잖고 쓸쓸한 〈인생〉을 살아갈 유일의 방책은 순간순간의 쾌락을 취할 것, 이것밖에는 도리가 없다. 오는 날의 일을 생각하면 무엇하랴. 오늘 밤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르는 이 인생에서……

장생술 거짓 말아
불사약 그 뉘 본고.
진황총 한무릉(秦皇塚 漢武陵)도
모연추초뿐이로다.
인생이
일장춘몽이니
아니 놀고 어이리.

그는 속으로 읊으면서 벌떡 일어서서 아우의 방으로 건너갔다.

아직 쓴 것을 모르는 아우는 거문고를 밀어 놓고 어느덧 잠이 들어 있다. 순결한 두 젖을 내어놓고 숨소리 고즈너기 잠이 들어있다.

금패는 그의 머리맡에 가 앉아서, 널따란 아우의 댕기를 어루만지면서 그의 달같이 밝고 모란같이 예쁜 얼굴을 사랑스러이 들여다보았다.

—너는 아직 아무것도 모른다. 사람이란 무엇인지 사내란 어떤 것인지, 우리 〈기생〉이란 어떤 것인지 ……무엇을 보든 기쁘고 즐겁고, 무엇을 대하든 춤추고 날뛰고 싶을 때……지금이 제일이느니라. 그러나 네게도 바람과 물결이 이를 테지. 그날이 멀지 않았구나. 더러움을 모르는 네 눈에서 핏물이 나며, 지금 고즈너기 들썩거리는 네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은 날, 그날이 멀지 않았구나. 더러움을 모르고 저품을 모르는 너는 그날에 얼마나 놀라랴. 그날이 얼마나 무서우랴. 그러나 피할 수 없는 것이 우리의 운명이다. 어찌하랴.

금패는 아우의 손을 꼭 잡았다. 고요히 잠들었던 아 우의 눈은 조금 벌어졌다. 금패는 참지 못하여 눈같이 횐 아우의 가슴에 머리를 묻었다. 뜨거운 눈물이 그의 눈에서 흘렀다.

6[편집]

날이 차차 더워지면서, 대동강 위의 뱃놀이는 더욱더 많아지고 취케 하는 듯한 따뜻함에 한잔 술로써 미인과 마주앉아 가는 봄을 조상하려는 사람이 더 늘었다.

금패도 분주하게 되었다. 뱃놀이, 연회, 술좌석, 모든 것은 그를 기다렸다.

하염없이 불리어 가는 금패는, 그래도 돌아올 때는 얼마의 유쾌함은 얻고 하였다. 평양 명기, 자랑스러운 이 한 마디는 기쁨을 낳고 기쁨은 유쾌를 낳아서 쓰러지고 싶은 그의 마음을 얼마는 위로를 하였다.

그러나,

「10년을 지내 보아.」

파일 밤에 들은 이 한 마디로 말미암아 생긴 마음의 허물은 없어지지를 않았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이 인생에서……」

과연 이 한 마디는 그 허물을 없앨 수가 있을까.

돌이켜,

「백 살까지 살지도 모르는 이 인생에서……」

라면 어찌 되노?

이리하여 알 듯한, 모를 듯한, 보이는 듯한, 안 보이는 듯한 저품은, 그의 마음 깊은 데서 떠나지를 않았다. 그는 모든 것을 보려 하였다.

그는 그의 교제하는 사회 범위 안에서 모든 것을 보고 들으려 하였다. 그러나 술을 먹고는 거꾸러져서 정신을 못 차리는 소위 손님과 자기가 이즈음 서방을 안 한다고 밤낮 힐책하는 어버이와, 이성의 냄새를 그리는 무르익은 아우와, 이것밖에는 본 것이 없었다.

음란한 노래와 음란한 말과 변변치 않은 헛소리밖에 는 들은 것이 없었다.

그는 그의 머리, 그의 지식이 허락하는 한 모든 것을 알려 하고 생각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이전에 안 바 그 이상 새 지식은 나오지 않았고, 더 깊이 생각하려면 머리가 엇바뀔 뿐 모든 것은 수수께끼가 되어 버리고 하였다. 이리하여 그의 계획이 낳은 바는 다만 신경 과민과 수면 부족뿐이고 모든 예기는 틀려 버렸다.

그 가운데서 그가 다만 하나 안 바는, 그는 결코 남에게 온전한 사람의 대접은 못 받고 있다는 심히 불유쾌한 점이었었다. 손님은 그들〈기생〉을 〈업신여길 수 있으므로 사랑스러운 동물〉로 알았다. 부모는 〈돈벌이하는 잡은 것〉으로 대하였다. 예수교인은 마귀로 알았다. 도학자는 요물로 알았다. 어린애들은 〈영문 앞의 도상〉이라고 비웃어 줄 곱게 차린 동물로 알았다. 늙은이나 젊은이나 한결같이 그들을 다만 춘정을 파는 아름다운 동물로 알 뿐, 한 개 인격을 가 진 〈사람〉으로는 보지 않았다. 그를 사랑하는 자나 그를 미워하는 자나 또는(돈이나 경우로 말미암아) 감히 접근치도 못하는 자까지도 그를 어떤 음란스런 생각 아래서 볼 뿐 한 개 사람으로는 안 보았다.

금패는 이전에 자기네를 대단히 업신여기는 어떤 사회 사람들도 자기네와 친근코 싶어하는 눈치를 보고, 역시 사내란 약한 것이고 위선의 덩어리라고 기뻐 한 적이 있었으나, 이것 역시 자기네를 사람으로 보지 않고 춘정을 파는 아름다운 동물이라 생각함에 있다 함에 끝없는 모욕의 느낌을 깨닫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리하여 새로 발견하는 사실은 어떤 것이든 금패의 마음을 더 상케 하는 칼이 아닌 자 없었다. 이 한 문제도 금패의 머리에 왜 크게 울리었다.

이리하여 웃기 잘 하고 쾌활하고 이야기 잘 하고 노래 잘 하고 애교 있던 금패는 불과 며칠 새에 웃었다. 울었다. 성내었다. 생각하였다 하는 신경질의 금패로 변하였다.

그러는 동안에 또 한 사건이 금패에게 이르렀다.

7[편집]

어떤 따뜻한 날이었었다.

금패는 가벼운 마음으로 12시쯤 조반을 먹고 세수를 한 뒤에 자기 방에 돌아왔다. 일기의 탓인지 금패는 별로 마음이 내려앉지 않게 유쾌하였다. (이 날은 서남풍이 사람의 젊은 마음을 충동하듯 솔솔 불었다.

하늘에서 구름이 분홍빛으로 엉기면서 날아다녔다. 나 비가 뜰에 떠다녔다.) 그는 벗의 집에라도 놀러 갈까 하였으나 그것은 썩 마음이 둘지 않아서 어찌할까 하고 손을 비비며 앉아 있을 때에 대문에서 나는 자기를 찾는 손님의 소리를 들었다. 금패는 내다보았다.

(이전에 너덧 번 함께 놀아본) Y라 하는 손님이 알지 못할 손을 하나 데리고 왔다.

「오래간만이외다그래. 어서 들어오세요.」

금패는 되었다 하는 마음상으로 그들을 환영하였다.

「어디 가는 길인가?」

이렇게 Y가 물었다.

「괜찮아요. 들어오세요.」

「그럼 들어가세.」

하면서 Y는 새 손님을 재촉하여 방 안에 들어왔다.

「그새 어디 가 샜댔시요?」

「음.」

「어디요?」

「여기 저기 좀……」

Y는 희미한 대답을 하였다. 그리고 몇 가지의 이야기가 왔다갔다한 뒤에 Y는 새 손님을 향하여 일어로 물었다.

「어때?」

「꽤 예쁜데……」

하고 새 손님은 씩 웃었다.

금패는 새 손님을 기생집에 처음으로 와본 사람이라고 감정하였다. 그러나 새 손님은(대담히도) 수리와 같은 눈으로 정면으로 금패의 낯을 본다. 금패는 그것을 피할 겸 담배를 붙여서 권하였다.

새 손님은 담배를 받고 또 한 번 씩 웃은 뒤에(역시 일어로) Y에게 말하였다.

「이상해!」

「무어이?」

「난 젊은 여성 앞에선 얼굴이 달아서 동작을 마음대루 못하는데, 이 기생이라는 여성께 배알할 때는(내 첫경험이지만)뭐 마치 암탉이나 암캐와 마주선 것 이 상 마음의 변화가 안 생기는구먼……」

「그만두어! 여긴 철학 연구소가 아니야.」

Y도 웃으면서 좀 핀잔을 주는 듯이 말하였다. 그러나 새 손님은 예사로이(눈으로만 별하게 웃으면서) 말을 계속하였다. 물론 그 가운데는 기생집에 처음 온 사람의 항용 하는 태도로 좀 저퍼하는 듯한 쾌활함이 있기는 있었지만.

「자네네 같은 유객에게는 장소의 구별이나 할 말 안 할 말의 구별이 있는지는 모르지만 내게 말하라면 일반이지. 그들이 사람이 아니라고 감정했을 것 같으면 아무데서구 직토하구 또……」

「사람이 아니면 그래 무에란 말이야?」

Y는 새 손님의 말을 가로채서 물었다.

「듣구 싶은가?」

새 손님은 머리를 끄덕이며 웃었다. Y는 가만 있었다. 대답이 없으니까 새 손님은 자기 혼자서 대답을 하였다.

「나두 실상은 사람이 아니라군 안 해. 가만! 그래 사람이 아니야! 확실히 사람이 아니야. 박쥘세, 박쥐!」

「박쥐? 밤에 밥벌이한다구?」

「음, 오히려 박쥐는 새이구두 조류에 못 드는 것처럼, 기생은 사람이구두 인류에 못 든다는 편이 옳을 테지……」

금패는 얼굴에 피가 한꺼번에 솟아올라오는 것을 깨달았다. 너무 심한 말이었었다. 그들은 물론 금패가 일어를 모르는 줄 알고 한 것이겠지만, 설혹 모른다 하여도 당자를 곁에 두고 이렇게까지 하는 것은 너무 혹독한 일이었었다. 금패는 새 손님을 처음 보는 순간 벌써 되쟎은 녀석인 줄 알았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새 손님은 금패를 주의치 않는 듯 싶었다.

박쥐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이렇게 변하였다.

—자기는 아직 기생이라는 것을 교제는커녕 알지도 못하였다. 그제 여기(평양)를 내려올 때에 기차에 자기 맞은편에 기생이 앉아 있었는데 이것이 자기로서는 기생과 가장 가까이 앉아 본 첫경험이다. 그러나 자기의 짐작 내지 직감은 대개는 틀려 본 적이 없다 (는 것을 자기는 안다). 이 직감으로 기생을 볼 때에 …… 이렇게 마치 연설하듯 설명하여 오던 새손님은 한 번 담배를 빤 뒤에 말을 연하여한다.

「그렇지 그것, 껌 발춘기, 그것이야. 소위 손님네라는 자기네들두 그것으로 알지 않나? 기생의 부모두 그것 판매인으로 자인하구. 어때, 내 말이 거짓말인가?」

Y는 대답이 없었다. 새 손님은 또다시 이야기를 이었다.

「징역군…… 그래, 이 세상에 사람이구 사람의 대접을 하여 주지두 않구 받지두 못하는 종류의 사람은 기생밖에 징역군이란 것이 또 있기는 하군…… 음, 그런데 여기 특별히 주의하여야 할 현상은 무엇이냐 하면, 두 자다(사람은커녕) 짐승보다두 썩 못한 대우와 속박을 받구 있다는 점이네. 그것은 나보다두 자네가 더 잘 알겠네. 이고도 이 못 되는 자, 다시 말하자면 섬석이, 그것은 자기 이하의 종류의 대우보다두 더 못한 대우를 받는단 말이야. 그런데 여기 더 안된 것은 기생이라는—사람이라 해 주지—기생이라는 〈사람〉은 자기네의 생활에 만족은커녕 오히려 만심을 품구 있지 않나? 자기는〈기생각하〉라구……나는 이렇게 생각했네. 사람이란 온 경우와 환경을 따라서 이렇게까지 극단의 바보두 되구 아렇게까지 근성의 꼬리까지 썩는 것이냐구…… 우리들은 우리들 자기의 생활에두 만족을 못 하는데……」

금패는 까딱 안 하고 이런 말을 다 들었다. 뿐만 아니라 손님들이 돌아갈 때에도 조금도 이전과 틀림없이 인사를 하였다. 그러나 그의 마음은 찢어지는 것같이 아팠다.

8[편집]

이러한 한 달새에—금패의 성격은 노파와 같이 늙고 도학자와 같이 까다로와졌다.

마음을 대단히 충동시키는 듯한 어떤 저녁이었었다.

그것은 첫여름에 흔히 있는(더운 듯한, 서늘한 듯한) 날로서 달 없는 초승 하늘에는 견우 직녀가 반뜩이며 길모퉁이마다 단소 부는 무리가 모여 있는 이런 저녁이었었다. 그리고 또 젊은 평양 사람들로서 대동강가에 거치지 않을 수 없게 하는, 무엇을 속살거리는 듯한 저녁이었었다.

금패는 저녁을 먹은 뒤에 불표(임시 휴업)를 달고 대동강 가에 나섰다.

하늘은 벌써 새까맣게 되었다. 개밥바락별도 벌써 안 보이게 되었다. 얼은 구름같이 보이는 은하만이 하늘에 밝다 일컬을 유일의 것이었었다.

대동문이나 연광정에서 하루 종일 패수가 흐르는 것을 들여다보고 앉아서도 조금의 갑갑함도 깨닫지 않던 선조의 피를 받은 평양사람들은 벌써 꽤 많이 대동강가에 모여들었다.

금패는 천천히 발을 읊겨서 옥류병(玉流屛) 위로 가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새까만 물 가운데 은하수의 그림자로 금패는 어두운 가운데 오르내리는 수없는 마상이를 보았다.

그 가운데는 창가를 하는 사람도 있었다. 민요를 부르는 사람도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대동강의 깊음과 마상이의 작음이며 또는 물에 빠져 죽는 사람의 존재를 온전히 부인하는 듯이 희희낙낙히 오르내린다.

이것을 한참 내려다보던 금패는 자기도 물위에 떠 놀고 싶은 생각이 나서 어떤 마상이 주인 집에 가서 한짝 얻어타고 나섰다. 왼편 팔을 가볍게 움직일 때에 마상이는 미끄러지듯이 대동강 위에 떠나간다. 어디로 갈까 하고 잠깐 주저한 뒤에 금패는 반월도를 향하여 가만가만히 저어 올라갔다.

어둠 가운데 갑자기 소리가 날 때에 거기를 보면 마상이가 있다. 조용한 가운데 갑자기 소리가 날 때에 거기를 보면 또한 마상이가 있다. 평양 사람은 죄 마 상이에 있지 않나 생각되도록 대동강 위는 흥성스러웠다.

조용함을 찾으러 나온 금패는 마상이들을 피하면서 가만가만 반월도를 향하여 올리저었다. 이리하여 반월도 아랫머리까지 저어 올라간 그는 웃머리까지 가고 싶었으나 팔이 곤하여졌으므로 그만 닻을 주기로 하였다. 사실 거기도(때때로 뜻하지 않은 어두운데서 마상이가 뛰쳐나오기는 하지만) 조용한 편이었었다. 금패는 닻을 첨벙 물에 들여뜨리고 마상이에 드러누웠다.

인공적이라 하여도 좋도록 예쁜 높은 하늘이었었다.

거기는 황금빛 별들이 반뜩이고 있었다. 때때로 기러기가 날아다니는 것이 보였다.

금패는 이것을 바라보면서 (그것은 극히 막연하지만) 〈무궁〉이라 하는 것을 보았다. 별 위에 또 별, 그 위에 또 별, 그 위에(어디까지 연속하였는지 모르는 한없는) 또 무엇, 그리고 그것은 〈무궁〉의 심볼에 다름없었다.

그 큰 하늘에 비기건대 사람은 참으로 더럽고 불쌍한 것이었었다. 사람이 살려고 애를 쓰는 것은 마치 넓은 바다에 빠진 벌레로서 만약(가장 조그만 것으로 라도) 즐길 기회만 있다 하면 그것을 기껏 과장하여 즐기는 것이 그에게는 그중 정당하고 그중 영리한 처세법이라 아니할 수가 없다.

즐겨 두어라, 놀아 두어라, 걱정하면 무엇하고, 애태우면 무엇하랴. 그것도 마침내는 사라지고 넓은 하늘과 거기서 반뜩이는 별만 영구히 남아서 사람의 쓰러짐을 비웃고 있을테다…… 금패는 꿈꾸듯 이런 생각을 하며 누워 있었다.

9[편집]

마상이에 부딪쳐서 좌우편으로 갈라지면서 똘똘 흐르는 물소리는 그를 졸음 오게 하였다.

몇 번 정신을 차려 보았으나 규칙 바르게 나는 물 소리는 피곤한 그를 또다시 취하게하고 하였다. 달콤한 꿈에서 깨이기는 싫었으나 온전히 잠이 들면 안 되겠다 생각하고, 그는 일어나서 세수를 한 번 하고 다시 누울 작정으로 마상이 전으로 갔다.


금패는 자기가 어찌 되었는지 몰랐다. 다만 머리에서 흐르는 물을 입으로 푸푸 뿌리면서 마상이 전을 붙잡고 물에서 마상이로 올라오려고 애를 쓰는 자기를 그는 발견하였다. 그는 어느덧 마상이에서 떨어진 것이었다.

온갖 힘과 애를 다 써서 겨우 마상이에 올라온 그는 몸을 사시나무와 같이 떨었다. 추위와 무서움이 한꺼번에 그를 습격하였다.

그러나 그 무서움은 무엇에 대한 것인지 그는 몰랐다. 저편 앞에 왈왈 하는 여울에 물 흐르는 소리까지 그의 두려움을 더하게 하였다.

그는 무서움을 참지 못하여 옷을 짤 겨를도 없이 빨리 떨리는 손으로 노를 저어서 시가 쪽으로 향하였다. 여울에 들어서면서 마상이는 무서운 물 힘에 물려 서 쏜살같이 이쪽(시가 쪽) 언덕에 가까이 왔다. 금패 는 조금 안심되어 눈을 들었다. 사람의 말소리까지 들렸다.

이때에야 그는 겨우 정신을 가다듬고 사람의 눈에 띄지 않는 곳으로 마상이를 저어가 옷을 하나씩 벗어서 짜 입은 뒤에 다시 시가쪽 언덕, 마상이 주인 집 선창에 갖다 대었다. 그리고 마상이 주인 집에는 들르지 않고 좁은 길로 빠져서 자기 집에 돌아와서(아직 대문이 열린 것을 다행히) 몰래 자기 방에 들어 왔다.

방은 아까 불을 끄고 나간 대로 그대로 있었다. 그는 불은 켜지 않고 손으로 더듬어서 옷을 갈아입은 뒤에 물에 젖은 옷은 뭉쳐서 한편 모퉁이에 박고 쓰러지듯이 그 자리에 엎드렸다. 그의 마음은 맥나고 괴상하게 떨렸다. 온갖 저품은 그의 마음을 눌렀다. 그러나 그저 품은 모두 수수께끼와 같이 이상하게 범벅된 모를 것들이었었다.

이러한 불안 속에서도 그는 다만 한 가지만을 똑똑히 의식하였다. 그것은 아까 그때 자기 앞에 갑자기 나타난 〈죽음〉이라는 검은 그림자에 대한 것이었었다. 그리고 그 가운데는 아까 그때 자기는 왜 온전히 죽어 버리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섞여 있었다.

10[편집]

아낙네들이 기다리는 오월 단오가 이르렀다.


우리는 무엇이니 무엇이니 하는 전설적 문제를 끄집어 낼 필요가 없다. 그러나 차차 속되어 가고 차차 없어져 가는 이전의 아름다운 풍속을 돌아다볼 때에, 한 애처로운 느낌을 깨닫지 않을 수가 없다.

단오 명절은 아낙네의 날이다. 남인 금제의 불문율을 걸어 놓은 아낙네의 날이다. 일년 동안을 〈마누라〉라는 신성한 직업에 골몰하였던 그들의 하루 동안을 편안히 쉬는 날이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그 당시의 젊은 평양여인의 기껏 잘 차린 뒷모양은 사람으로 하여금 신성한 느낌을 일으키게 한 것이었었다. 기다란 은행색 치마에, 남빛 배자로 장식한 송화빛 저고리와, 그 위에 나비와 같이 예쁘게 올라앉은 수건 새로, 때때로 펄럭이는 새빨간 댕기의 뒷모양은, 사람으로 하여금 정욕이니 육욕이니 하는 생각을 온전히 초월한 신성한 느낌을 일으키게 한다. 그것은 극도로 조화된 인공미였었다. 〈사람〉이라는 것보다 오히려 인형에 가까운 아름다움이었었다. 그리고 따라서 〈자연〉이라는 것보다 한 예술품이랄 수가 있었다.

아침 동안에 마음껏 차림을 차린 그들은 11시쯤부터 차차 떼를 지어서 동산으로 모여든다. 동산에는 그들을 기다리는 그네줄이며 각 장수들이 벌써 준비되어 있다. 이리하여 오후 2시쯤까지에는 동산은 젊은 아낙네들로 메워진다.

이때에 만약 우리가 모란봉 꼭대기나 을밀대에 가서 동산을 내려다보면, 거기는 각색 농후한 색채가 흩어지고 섞여서 범벅으로 뭉기고 있는 것을 볼 수가 있다. 그리고 또 가지 좋은 소나무마다 늘어져 있는 그네줄에는 은행색과 남빛이 범벅으로 팔락이며, 그네 줄 아래는 차례를 기다리는 개미와 같이 조그만 여러 가지의 빛이 아물거리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동산에 모여드는 아낙네들은, 일 년에 한번 이르는 이 명절은 모든 일을 생각지 않고 모든 일을 잊어버리려 한다. 그들은 늘 지켜오던 모든 예의와 염치를 내던지고 마음껏 자유롭게, 마음껏 유쾌하게 이 날을 보내려한다.

그들은 다른 때는 천스럽고 곁에도 가지 않던 분을, 이 날은 마음껏 희게 바르며, 행랑갈보들과 같이 그네 줄 아래에서 뛸 순서를 다투며, 심지어는 단오의 평양을 구경온 외촌 사람들의 두룩거리는 얼굴에 터지는 듯한 웃음까지 부어 준다. 웃음 소리, 지껄이는 소리, 다툼 소리, 그네를 밟는 소리, 서로 찾는 소리—이리하여 환락의 날은 차차 저물어서 해가 칠성문 위에서 차차 벌겋게 될 때는 그들은 내일 다시 이를 자유로울 날을 생각하면서 떼를 지어서 각각 자기 집으로 돌아간다.

하룻밤의 단꿈의 피곤함을 모두 지워 버린 그들은 이튿날 아침 다시 모양을 차리고 뒷동산으로 모여든다. 거기는 어제와 같은 즐겁고 흐트러지고 자유로운 날이 다시 그들을 기다린다. 그들은 오월 초엿새의 유쾌한 명절을 또 어제와 같이 지낸다.

초이렛날(마지막 날)은 그들은 기자묘에 모여서 일 년에 한 번 이르는 자유로운 명절의 마지막 날에 상당하도록 가장 성대히, 가장 유쾌히, 가장 즐겁게 논다. 이러다가 해가 용악으로 넘어가렬 때쯤은, 지금 집에서 자기를 기다리고 있는 남편이며 또는 며칠 전에 말라만 두고 시작은 안 하였던 자기의 모시 치마를 머릿속에 그리면서, 각각 자기의 가정으로 돌아간다.

이리하여 아낙네의 명절은 막을 닫힌다.

11[편집]

첫 명절날(닷샛날) 금패는 모든 뱃놀이와 술좌석을 물리치고 친한 손님 몇(W, H, K) 과 더불어 어죽놀음을 떠나기로 하였다.

어죽 놀이에는 맞추인 일기였었다. 오월치고는 뜨거운 날이었었지만 물에 들어서서 일을 하여야만 할 그들에게는 맞추인 일기였다. 뿐만 아니라, 회강하여 주암까지 가서 죽을 쑤려고 나선 그들에게는 없지 못할 밀물은(벌써 아침 10시쯤부터 밀기 시작하였지만), 그들이 떠나는 낮 12시쯤은 대동강을 바다와 같이 넓게 하고도 무엇이 부족하여 그냥 오른다. 게다가 대동강 특유의 달콤한 서남풍은 밀물에 몰려 올라가는 그들의 배의 힘을 더욱 보태어서 배는 쏜살같이 반월도를 뒤로 감돌아서 능라도 뒤로 위로 위로 올라갔다.

단오 명절은 동산에만 이르지 않고 쥐무덤, 자라 옷까지도 이르렀다. 자라 옷의 무성한 수양버드나무에도 그네줄이 늘어져 있고, 당시에 유행한 송화빛과 은행색이 그 그네줄 위에서 춤을 춘다. 약간 부는 바람에 불려 올라가듯 너울너울 앞으로 높이 솟았다가는 다시 은행색 치마를 휘날리면서 뒤로 솟아오르고—그럴 때마다 〈쉬〉 하는 힘을 주는 계집애의 아름다운 소리는 날아온다.

금패네 배는 그것을 멀리 바라보면서 능라도로 붙어서 그냥 위로 올라갔다. 이리하여 그들의 배가 주암, 어떤 어죽 쑤기 좋은 자리 앞에 이른 때는 오후 2시 반쯤, 기껏 올랐던 밀물이 그 반동으로 속력을 다하여 찌기 시작한 때였었다.

「거, 어죽 쑤기 좋은 자리루다.」

과연 거기는 어죽 쑤기에는 능라도나 반월도 근방에는 쉽지 않을 만큼 온갖 것을 가진 자리였었다. 물 바닥은 대동강 특유의 가는 모래요, 물은 맑고 언덕은 잔디밭이요, 그 위에는 커다란 수양버들이 좋은 그림자를 띄우고 있다. 앞으로는 기역자로 꺾어지면서 능라도 때문에 두 가닥으로 갈라진 대동강을 끼고, 평양성내가 멀리 바라보인다. 그들은 거기서 내렸다. 그 뒤로 사공이 닭이며 쌀, 나무, 짠지, 또는 솥들을 나르고 자리를 정하여 거기 솥을 걸 자리를 자갯돌로 쌓아 놓았다.

「자, 누가 닭을 잡겠나?」

H라는 손님이 둘러보면서 말하였다.

「내 닭백정 노릇 하마.」

K가 대답하고 버선을 벗어 던진 뒤에 다리를 걷고 칼과 닭을 가지고 물가로 갔다.

W는 솥에 물을 넣고 불을 지피고, H는 쌀을 씻고 이렇게 직분은 작정되었다.

금패는 별로 말할 수 없이 마음이 즐거워서 연엽이와 같이 풀밭도 거닐며 또는 송화빛과 은행색이 개미 같이 얽혀 있는 모란봉 근처도 바라보며 때때로는 일을 하는 손님들에게 농담도 던져 보며, 그럴 때마다 이유 없이 큰 소리로 웃고 하였다.

「데 뒤에 가 보자.」

「가 보자꾼.」

연엽의 동의에 금패는 가볍게 대답을 한 뒤에, 손님들을 내버리고 풀향기를 마시면서 차차 동리로 가까이 갔다. 이리하여 동리 앞에 거의 이르매 거기도 단오 명절이라고 아이들은 모두 새옷을 입고, 멀리 바라 보이는 데는 그네줄도 늘어져 있다.

「돼지께 은방울 단 것 같구나.」

연엽이가 촌 아이들이 자기네 뒤를 따라오는 것을 보고 이렇게 금패에게 말하였다.

「가만 얘, 돼지구 뭐이구 더게서 찾나부다.」

금패는 손님들이 있는 편으로 돌아서 보았다. 과연 K는 어느덧 닭을 다 죽였는지 두 마리의 닭을 높이 두르면서 금패의 편을 향하여 고함친다.

「너희들 한 마리씩 퇘라.」

「발쎄 물 끓었나요?」

「끓기는 샘시레 털꺼정 물쿠었다.」

「퇩세다가래. 것두 걱정이외까?」

금패와 연엽이는 K에게로 달음박질하여 가서 뜨거운 물이 뚝뚝 흐르는 닭을 한 마리씩 받아 가지고 물가로 갔다. 끓는 물에 잘 무른 털은 손을 댈 새가 없이 툭툭 빠졌다.

「잘은 뽑아딘다.」

「네핸 잘 뽑히니? 내 핸 당초에 안 뽑아디누나.」

이렇게 연엽이가 머리는 닭에게 향 한 대로 대답하였다.

「바꾸어 달라나?」

「바꾸어 주렴.」

「찍! 먹갔니?」

금패는 연엽에게 농담을 한 번 던진 뒤에 닭의 털을 새빨갛게까지 벗겼다.

「다 튀했쉐다.」

금패는 언덕을 향하여 고함쳤다.

「튀했으면 배 가르구각을 뜨렴,」

K가 금패를 향하여 고함쳤다.

금패는 칼을 집어다가 닭의 각을 뜨고 배를 가르고 내장을 꺼내고 하여 모든 요리를 끝낸 뒤에 바가지에 담아 가지고 솥 걸어 놓은 데로 갔다.

「수구했네.」

H가 닭을 받아서 솥 속에 넣었다.

「나리들재간이 이만하갔소?」

금패는 자랑스러운 듯이 돌아서면서 담배를 붙여 물었다. 연엽의 닭도 되었다. 물도 넣었다. 이제는 불을 때는 W밖에는 할 일이 없었다.

뽕도 딸 겸, 임도 볼 겸……금패는 가는 소리로 부르면서 혼자 강가로 나왔다. 물결이라고 부르기에는 너무 사랑스러운 조그만 물결이 찰싹찰싹 강가 모래 위를 스치고 달아나고 한다. 물 속에는 작은 고기 새끼들이 닭의 털을 희롱하며 팔락거린다.

그는 꿈꾸는 듯한 눈으로 이것을 들여다보면서 머리로는 〈살림살이〉라는 것을 그려 보았다. 남편과 아내가 힘을 같이하여 온갖 일을 하며 틈 있을 때마 다 같이 즐거이 웃고 날뛰며……아아, 과연 그것은 아름다운 살림살이의 한 단편의 축도에 다름없었다. 만약 〈살림살이〉로서 과연 어죽 놀이와 같다 할 양이면 그것은 이야기에 들은 〈극락 세계〉 그것에 다름 없었다. 남편의 근심은 아내가 같이 슬퍼하고 아내의 걱정에 남편이 근심하고…… 과연 그들 앞에 걱정이 있다 하면 그것이 무엇이며 근심이 있다 하면 그것이 무엇이랴. 그것은 봄을 만난 눈이며 물을 만난 소금이 아닐까.

금패는 이런 생각을 하며 앉아 있었다.

12[편집]

「금패도 고기 뜯게.」

금패는 펄떡 놀라서 일어섰다. 저편에서는 잘 무른 닭의 고기를 솥에서 꺼내어 놓고 시작한 모양이다. 금 패는 가만가만 그리로 갔다.

「무얼 하댔니? 외딴 데서 함자서?」

연엽이가 이렇게 금패에게 말을 걸었다.

「고구천변 일륜홍 부상에 둥실 높이 떠……」

금패는 대답 대신으로 노래를 하면서 고기를 뜯기 시작하였다. 이리하여 다섯 사람은 고기 바가지에 들어앉아서 뼈를 추리고 고기는 모두 모아서 쌀과 함께 솥 속에 넣은 뒤에 마침내 기다리던 술추렴을 시작하였다.

「아씨들은 뼈다귀나 할게.」

「누굴 갠 줄 압니까?」

하면서 금패는 뼈를 하나 집어서 거기 아직 붙어 있는 고기를 뜯어 먹기 시작하였다.

해는 벌써 모란봉 마루를 넘기 시작하였다.

강물은 그 해에 반사하여 새빨간 빛을 그들에게 보 낸다. 땅에까지 닿을 듯한 수양버들이 그들을 덮기는 덮었으나 서쪽으로 넘어간 해는 그 버드나무 아래로 또는 쫄쫄 흐르는 물결로 반사하여 그들의 앉아 있는 곳도 새빨갛게 되었다.

「아이구, 눈 시다……나도 한 잔 주소고래. 당신네만 잡숫갔소?」

금패는 바싹 들어앉으면서 말하였다.

「얘, 너두 술 먹을 줄 아니?」

「애개개, 망측해라, 그만두라우, 얘.」

K와 연엽이가 눈이 둥그래서 금패를 보았다.

「어디 한번 멕여 보자.」

그러나 금패의 얼굴이 농담이 아닌 것을 보고 W가 농삼아 금패에게 한 잔 주었다. 금패는 그것을 받아서 꿀꺼덕 삼켰다.

「에, 옳다.」

어느 손님이 말하였다. 그러나 금패의 눈에서는 눈물이 나오려 하였다.

「아이구 쓰다.」

그는 침을 덜걱덜걱 삼키면서 겨우 말하였다.

「네 봐라. 먹을 줄도 모르는걸…… 이담엔 아예 먹디 말아.」

「마사무네완 다르다.」

「다르디 않구.」

첫잔에 금패는 벌써 눈 주위와 귀에 더위를 깨달았다. 그러나 그 다음 잔도 그는 빠지지 않고 마셨다.

어떤 까닭인지는 모르지만 그의 마음은 술을 요구하였다.

차차 뒷목에서 뚝뚝 소리가 나기 시작하였지만 점점 흥이 돋아가는 손님들을 볼 때에 그의 마음에서는 술을 요구하였다.

「아이구 급하다.」

석 잔, 넉 잔 하여, 다섯 잔, 여섯 잔까지 마시고 얼굴이 시커멓게까지 되었을 때에, 그는 어지러움을 참지 못하여 그만 그 자리에 쓰러졌다. 손님의 너 먹어라, 나 먹어라하는 소리는, 마치 강 건너편에서 오는 것같이 흐리게 그의 귀에 들리게 되었다. 손님들이 제 가까이 있는지 없는지도 그는 몰랐다. 온몸의 무게가 허파에 모인 것같이, 허파의 괴롭기가 짝이 없었다.

그는 누구든지 붙잡으려고 두 손을 들어서 휘저으면서 그만 신음하였다.

「사람 살리소고래.」

「왜 그러니?」

누가 이렇게 물었다.

「죽갔시요.」

「글쎄, 술은 먹을 줄도 모르는 꼴에 왜 먹는담. 좌우간 배로 가자. 데려다 주께. 거기 누워 있거라.」

「배엔 싫어요.」

「싫긴 뭐이! 그러다가 게우며는 어덕할라구. 자, 닐어나라.」

「가만, 옴짝을 못 하갔시요. 움직이면 게우갔시요.」

금패는 구역을 참으며 겨우 중얼거렸다.

「이걸 또 업어다 줘야나? 하하하하 글쎄 술은……」

하면서 그 손님은 금패를 들어 업었다. 금패는 손님에게 매달려 배까지 가서 내려서 치마를 뒤집어쓰고 드러누웠다. 손님은 친절히 방석을 말아서 베개 삼으라고 금패의 머리에 괴어 주고 도로 술추렴하는 데로 돌아갔다. 금패의 뒷목에서는 핏줄이 뛰노느라고 머리까지 들썩거렸다. 그의 눈에서는 눈물이 하염없이 흘렀다.

그의 눈물, 그것은 다만 술 때문뿐이 아니었었다.

잠깐 그림자를 감추었던 온갖 슬픔은 미친 바람과 같이 그의 마음에 떠올랐다. 뿐만 아니라, 그의 슬픔은 다른 때와 달라서 어망처망하게 크게 된 대규모의 슬픔이었다. 그리고 한 가지씩 순서 있게 나오는 슬픔이 아니고 여러 십 가지의 슬픔이 한데 얽힌 범벅의 슬픔이었다.

게다가 그 가운데는 〈살림살이 〉라 하는 어떤 〈걱정〉에 가까운 무엇까지 숨어 있었다.

13[편집]

이튿날 어떤 뱃놀이에 불리어 갔던 금패는 돌아오는 길에 끔찍하고 무서운 일을 보았다. 그들의 배가 모란봉까지 갔다가 청류벽 기슭으로 붙어서 내려오는 때였었다. 배가 〈정위 정관조(正尉 鄭觀朝)〉라고 크게 새긴 아래를 지나갈 때에 갑자기 무엇이 철썩하는 소리를 들었다. 배에 탔던 모든 사람은 일제히 머리를 소리나는 편으로 향하였다. 거기는 바위 위에 깜깜하니 높이 보이는 청류벽 위에서 떨어진 듯한 열 서넛 난 계집애 하나가 약간 다리를 움직이며 꼬꾸라져 있었다. 배에 탔던 사람들은 모두 일어섰다. 그러나 언덕에 왁 하니 모여드는 사람의 떼 때문에 계집애는 가리워서 보이지 않게 되었다. 다만 지금 방금 죽느니, 골이 쪼개져 헤어졌느니, 입으로 피를 쏟느니 하는 이야기만 들렸다. 순사도 달려왔다.

「거즉, 거즉.」

「누군디 아는 사람 없소?」

「에, 불쌍해!」

이와 같은 소리가 웅성스러이 들려 왔다.

「에구, 끔찍해. 내려가세.」

손님이 배를 재촉하였다. 금패는 몸을 떨고 돌아서 면서 월선에게 말을 붙였다.

「아이구 끔찍두 해라.」

「오늘 밤 눈에 버레서 어디캐자나.」

「아까와라. 데엔 아무것두 모르구 죽었갔디?」

「알긴? 도무지 열 서넛에 난 거이……기애 부모가 알은 죽갔대갔구나.」

금패는 한숨을 쉬고 있었다.

월선의〈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은 〈성〉을 뜻함이었다. 그러나 금패의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은 결코 그런 뜻에서 나온 것이 아니었었다. 금패의 뜻의 한 가지는 그애는 아직 살아 나가는 데 대한 아무 저 품이며 두려움을 모르고 죽었겠다,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보다도 더 마음 속에 깊이 들어박힌 것은 그 애는 한순간 전에도 제가 죽을 것을 몰랐겠다. 하는 것이었다.

그날 밤 집에 돌아와서도 그는 한잠도 이루지 못하 였다. 아까 그 계집애의 죽음에서 시작된 그의 머리는 몇 해 전 자기에게서 쫓겨나가서 길가에서 얼어 죽은 A며 자기와 친하던 기생 몇의 죽음, 더욱 (무엇에 만 족치 못하였는지 그 당시에 한창 말썽이 많았던) 〈네 꼬이라스(쥐약)〉를 먹고 죽은 화선의 죽음이며, 또는 저를 친누이와 같이 사랑하여 주던 O라 하는 손님의 죽음이며, 술좌석에서 갑자기 뇌일혈로 거꾸러져 죽은 N이라는 손님의 죽음을 순서 없이 생각하였다. 그리고 그는 한숨을 쉬었다.—〈죽음〉 그것은 무섭지 않 다.

그러나 이를 생각하며 계획하고 실행하는 것이 무서운 일이라고…… 이리하여 그의 머리에는 〈죽음〉이라는 문제가 성장하기 비롯하였다.

14[편집]

마지막 명절날 아우의 조름에 못 견디어서 금패는 기자묘에 오르기로 하였다. 아우에게 몇 번 채근을 받아서 겨우 차리고 나선 때는 오후 2시쯤이었다. 큰거리는 차리고 나선 아낙네로 찼다.

아침에는 그리 마음에 없었던 금패도 이 큰길에 빽빽이 다니는 아낙네들을 보며 약간 분홍빛을 떤 흰 구름이 빠질 듯이 떠 있는 하늘과 거기 날아다니는 잠자리와 제비를 보며 아까 거울에 비쳤던 제 예쁜 그림자를 생각할 때에 차차 마음이 흥성스러워지기 시작하였다. 그들은 그때 갓 닦아놓은 신작로로 겹겹이 쌓인 먼지와 아낙네들 틈을 꿰며 칠성문 밖으로 빠져 기자묘에 이르렀다.

그 넓은 기자묘의 무성한 소나무들도, 먼지와 흐늘거리는 사람의 범벅에게 눌려서 없는 듯하였다.

「형 애야, 데 사람 봐라.」

「구데기 겉구나.」

금패는 가볍게 대답하면서 길에서 벗어나서 초둑에 내려섰다.

「금주야, 어디루 가자니?」

「형 애, 너 가구픈 데가자꾼.」

「나가구픈데? 그럼 여게 있자꾼.」

하며 금패는 털썩 주저앉았다.

「가만, 더게 영월이 성 있나 부다. 거게 가자우.」

금주는 이렇게 형을 재촉하였다. 금패는 아우의 손가락질하는 편으로 머리를 천천히 돌렸다. 거기는 영월이와 누구와 기생이 대여섯 명 그네줄 아래 둘러서 있고, 한 쌍은 올라서 쌍그네를 뛴다. 금패는 말없이 일어서서 그리로 갔다.

「금패 오누나. 너 같은 학자님도 이런 델 댕기니?

글쎄 오늘은 해가 서에서 뜨더라.」

재잘거리기 좋아하는 영월이는 금패를 보는 순간, 벌써 마주 나오면서 이야기를 시작하였다.

「금주가 너무 오재기에……」

「좌우간 온 김에 그네나 한 번 뛰어라. 얘 홍련이, 산월이, 다 내려라. 학자님 한 번 뛰래자.」

「곤해서 종 쉐서 뛰갔다.」

하며 금패는 어떤 소나무에 털썩 걸터앉았다.

이즈음 충분히 자지 못하고 맛있게 먹지 못하고 고민으로 날을 보내어 무한 몸이 약하여진데다가, 어젯 밤에 한잠을 못 이루고 오늘 또 그 사람과 먼지 틈을 쐬이고 온 금패는 사실 그네 뛸 용기가 없었다. 그는 눈을 가늘게 뜨고 힘없이 그네줄을 바라보았다.

줄에는 쌍그네 뛰던 홍련이와 산월이는 벌써 내리고 새 계집애가 올라가서 한창 뛰고 있었다. 뒤로 거의 땅과 평행으로 올랐다가는 〈쉬〉하는 소리와 함께 너울너울나비와 같이 펄럭이며 앞으로 솟아오르고, 그럴 때마다 소나무는 그루까지 부러질 듯이 흔들린다. 가지는 우적우적하였다. 그리고 만약 그 가지가 한 번 부러 만지는 지경이면 그네줄 위에서 즐겨하던 그 계집애는 당장에 송장으로 변할 것이었다.

이것을 보는 때에 금패는 어제 청류벽 위에서 떨어져 죽은 그 계집애를 생각하였다. 하루살이와 같다.

이슬과 같다. 실낱 같다. 또는 봄꿈과 같다. 옛부터 인생이란 것을 평한 여러 가지의 경우가 있었지만 그 백만의 경우가 과연 어제 그 한순간의 사실을 나타낼 수가 있을까? 한순간 전에 청류벽 위에서 꽃을 따느라고 돌아다니며 즐기던 계집애(그에게도 내일 입을 옷이며 먹을 음식이 있었을 테다. 내일 학교에 가면 어제 공연히 결석하였다고 선생에게 꾸지람을 들을 걱정도 가졌을 테다. 또는 남이 헤아리지 못할 아름다운 꿈과 같은 바람도 있었을 테다)가 한순간 뒤에는 벌써 청류벽 아래 송장이 되어 누워 있었다. 흑은 아직까지 그 계집애의 어머니는 자기 딸의 돌아옴의 늦음을 성내어 들어오면 꾸짖으려고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를 테지. 또는 누이가 돌아오기 전에 어서 다 먹으려고 과자에 덤비어드는 어린 오라비가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그 계집애는 어디서 무엇을 생각하고 있노.

「형 애, 너 한 번 뛰라!」

금주가 한 손은 그네줄을 쥔 채로 헐럭이며 형에게 고함쳤다.

금패는 펄떡 정신을 차리고 무의식중에 그네줄로 가서 올라탔다. 팔과 다리가 떨렸다. 금주는 그네줄을 뒤로 바싹 끌고 갔다가 앞으로 내어 쏘았다. 금패는 발을 굴렀다. 그네는 차차 높이 올랐다. 뒤에서 구르고 앞에서 구르고 이리하여 흐느적거리는 송화빛과 은행색의 물결은 금패의 발 아래서 움직이게 되었다.

모든 사람들을 눈 아래 굽어보면서 금패는 더욱 궁굴렀다.

「쉬이!」

그네는 구름까지 올라가듯 솟았다. 사늘한 바람이 이마와 콧등과 귀를 스치고 뒤로 달아났다. 먼지와 소나무를 넘어서 을밀대의 지붕도 보이게 되었다.

「잘은 올라간다.」

아래서 누가 높은 소리로 고함쳤다.

이때에 우정인지 혹은 저절로인지(금패는 자기도 똑똑히 몰랐으나) 오른편 손아귀의 힘이 조금 풀리는 것을 그는 깨달았다. 그 다음 순간 그는 그네줄에서 땅 바닥에 철썩하니 떨어졌다.

15[편집]

이리하여 대기 가운데 떠돌던 조그만 티끌 하나는 겨우 눈을 뜰 때 자기의 사위(四圍)의 크고 넓음에 놀라서, 소리도 못 내고 도로 그 자리에 쓰러졌다.

《눈을 겨우 뜰 때》의 서편은 끝났다. 계속하여 쓰고 싶기는 하지만 한 단편을 해를 걸쳐서 써 나간다는 것도 재미없을 뿐더러, 겨울이 되면 늘 약하여지는 작자의 몸이 또한 온전치 못한 듯하므로 본편은 이 다음 좋은 기회를 기다리기로 하고, 이로써 한 단락을 맺으려 한다. 이뿐으로도 한 독립한 작품이 되겠음에 ……

이 저작물은 저자가 사망한 지 50년이 넘었으므로, 저자가 사망한 후 50년(또는 그 이하)이 지나면 저작권이 소멸하는 국가에서 퍼블릭 도메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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