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의 파란 우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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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디찬 월륜月輪은 넓은 하늘을 자수刺繡하고 음향 없이 고요한, 그러나 푸른 웃음을 암흑의 바다에 던지고 있다. 해변에는 감미한 바다의 향기가 고요한 공기를 유린蹂躪하고 있을 뿐이다.

“당신은 처음부터도 나를 사랑하지는 않았소 그려……지금도 또 누구를 생각하고 있지요? 아마.”

얼굴 흰 청년은 떨리는 목소리로 고요히 말한다.

그러나 그의 애인은 역시 잠자코 있다. 마치 생명 있는 조상彫像같이. 그리고 달에서 시선을 옮기려고도 하지 않는다. 다만 죽은 듯이 고요하다. 그래, 과거의 환상幻想에 잠겨 있는 것이다.

――자, 얼른 나를 사랑한다고 말하여 주우, 얼른――

그러던 그날 밤에 이 해변에서 이별한 얼굴 푸른 애인의 목소리가 귀에 들려오는 듯하다.

승낙을 해주는 그는 다만 고개를 숙였을 따름이었다.

그의 가슴에는 이제 회한悔恨의 정이 가득하다.

――그이에게 너무도 냉정하게 굴었다, 나는――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해변을 살짝 쓸었다. 예민한 나뭇잎은 가엾게 떤다. 또다시 처참한 침묵.

“정말 당신은 나를 사랑하지 않소 그려. 당신의 애정은 마치 새파란 저 달과 같이……”

청년은 슬픔에 떨고 있다. 사실 그의 애인의 애정은 벌써 다 휘발하여 있었다. 독사같이 차디찬 감촉感觸이 그의 맥으로 흘러오는 듯하다.

여자는 해변 모래 위에 교란되는 그의 발자취소리를 들었다.

찢어진 심장에서 흐르는 핏방울 소리 같다. 넓은 모래밭은 각각刻刻으로 적막한 발자취소리를 빼앗아간다. 마침내 그가 깊은 암흑 속에 전연히 흡수되어 버릴 때까지.

그러나 여자는 아직도 그것을 묵살하고 있다.

다음해 그날 밤.

해변에 여자는 전년과 같이 또 서 있다. 그러나 얼굴은 무섭게도 파리하고 손에는 다 시들어진 꽃 한 송이를 잡고 있다.

얼굴 흰 애인은 안보이고 그 대신 빛 검은 청년이 서 있다.

“나는 마음속으로부터 당신을 사랑합니다. 자, 사랑하다고 꼭 한마디만 하여 주어요?”

청년은 애원하는 듯이――그러나 협박하는 듯이 열정에 찬 목소리로 말한다.

여자는 다만 시들은 꽃송이에 입술을 대고 그 말에는 대답하려고도 안한다. 그 한 송이가 얼굴 흰 애인이 남겨 놓은 유일의 선물이다.

그의 가슴은 지금 그 애인을 사모하는 정으로 가득하다. 그리고 또 그 만큼 회한과 적막의 파도가 울렁거린다.

“내가 잘못했다.”

무서운 자책自責에 번뇌煩惱하고 있다.

“그이의 열정은 이 새빨간 꽃과 같았지!”

그는 시들은 꽃송이에서 벌써 저 세상 사람이 된 애인의 입술을 보았다. 그러나 이제는 커다란 한숨밖에는 안 나온다.

“자, 얼른 사랑한다고 한마디만 말하여 주어요.”

청년은 역시 애달프게 애원한다.

그러나 여자는 아주 고요하다. 아니, 애수에 담뿍한 그 눈 밑은 월광에 반짝 빛났다. 진주 같은 눈물이 어느새 양편 볼에 희게 두 줄을 그렸다.

“그래, 역시 그이가……”

목소리가 떨려서 말도 채 채우지 못한다.

언제든지 변치 않는 달은 한결같이 새파란 웃음을 띠우고 있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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