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무를 위하여
1
[편집]학교에서는 공부도 잘 하고, 품행이 얌전하여 5년급의 부급장인 칠성이는 집안이 가난하여, 아버지가 반찬 가게를 하고 있으므로 학교에서 돌아만 가면 밤이 들기까지 가게의 심부름을 하느라고, 매일 고달프게 지내는 터였습니다.
한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이 가끔 가끔 길거리에서 칠성이가 비웃두름이나, 미나릿단이나, 숯섬 같은 것을 지고 지게꾼처럼 사 가는 손님의 뒤를 따라가는 것을 보지마는 원래 공부도 잘 하고, 마음이 착하므로 아무도 그를 업신여기거나 놀리거나 하는 아이는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칠성이가 웬일인지 학교에 아니 오는 지가 사흘째 되었습니다. 오늘도 선생님이 출석부를 부르시다가,
“김칠성이가 어찌해서 아니 오는지, 아는 사람이 없나? 아는 사람 손 들어봐라.”
하셨지만, 아무도 손 드는 이가 없었습니다. 반찬 가겟집의 가난한 아들이라고 동정을 하던 만큼, 학생들도 모두 다 마음 속으로 궁금해 하였습니다.
하학한 후 집에 돌아가는 길에 안명환(安明煥)은 일부러 골목을 돌아 칠성이 집 가게에 들렸습니다.
명환이는 칠성이 집 너머 골목에 사는 큰 대문집 변호사의 아들이었는데, 칠성이와는 반도 한반이지만, 집이 가깝고 공부도 서로 잘하는 사이였으므로, 남보다 더 정답게 지내던 터였습니다. 그래서 궁금하기도 남보다 더 궁금하여, 집에 돌아가는 길에 혼자서 들른 것입니다.
가니까 칠성이가 그 조그맣고 납작한 가게 앞에서 허리를 꾸부리고, 장작을 패고 있었습니다. 병이 나서 학교에 못 오는가 보다 여기고 왔는데, 칠성이가 누워 앓는 중이 아니고, 저렇게 가게 앞에 나와 있는 것을 보니 앓지 않는 것이 다행하기는 하였습니다. 그러나, 앓지 않으면서 학교에 아니 오는 것은 무슨 까닭이 있구나 생각할 때에 마음이 무엇에 놀래는 것 같았습니다.
“칠성아, 칠성아!”
하고 부르니까, 장작을 패다 말고, 칠성이는 돌아다보더니,
“응 명환이구나!”
하면서 몹시도 반가워 달려들었습니다. 그리고,
“학교에서 벌써 하학했구나.”
하고, 묻는 말에는 그 동안도 학교 일을 퍽 궁금해 하고, 부러워하는 정이 가득하였습니다.
“그래…….”
하고, 명환이는 가는 소리로 대답하고, 천천히 이렇게 물었습니다.
“그런데, 너 왜 요새 학교에 안 오니? 오늘도 선생님이 말씀하시던데……. 선생님이나 우리들은 병이 난 줄 알고 있었단다.”
칠성이는 그만 얼굴이 벌개지면서 고개를 푹 수그리고, 아무 대답도 없었습니다. 명환이는 갑자기 더 미안하고 궁금해서,
“너의 집에 무슨 걱정이 생긴 일이 있니?”
하고, 동정하는 소리로 물었습니다. 그래도 아무 대답이 없이, 고개만 수그리고 있는 칠성이 눈에는 눈물이 흥건히 고였습니다.
“왜 그러니? 칠성아!”
하고, 명환이는 한 걸음 가깝게 다가서서 손을 쥐었습니다.
“저기 저 위에 새로 생긴 반찬 가게를 보아라! 우리 가게보다 크지 않으냐?”
칠성이는 눈물을 씻으면서, 골목 윗편을 가리켰습니다. 보니까, 딴은 전에 못 보던 커다란 반찬 가게가 새로 생겼고, 그 앞에 장작나무나 숯섬도 산같이 쌓였습니다.
“저 새로 난 가게하고, 너희 집하고 무슨 관계가 있니?”
하고, 명환이는 궁금해 물었습니다.
“우리 집은 구차하여서, 반찬 가게를 내놓고도 조금만 덜 팔리면 당장 밥을 지어 먹기가 어려워서 걱정인데다가 저렇게 큰 가게가 또 생겨서 동리 사람들이 모두 저 큰 가게에만 가서 사므로 우리 집은 그만 장사를 떠엎어 버릴 지경이란다. 그래서 아버지는 그만 장사를 걷어치우고, 시골로 내려가려고 그러신단다. 그래 나도 학교에도 못 다니게 되었단다.”
듣고 있던 명환이는 자기 일같이 가슴이 무거워졌습니다. 볼수록 볼수록 그 큰 가게가 미워서 못 견디겠습니다.
“그렇더라도 이왕부터 너희 가게에서 사던 사람은 지금도 너희 가게에서 사겠지, 설마 모두 가겠니?”
“아니란다. 새 가게가 물건도 많고 구비하다고 모두 그리로만 간단다. 그러니까, 우리는 그만 걷어치우게 되었단다. 그래서 이 집만 팔리면 모두 시골로 간단다.”
칠성이의 눈에는 또 눈물이 고였습니다.
2
[편집]명환이는 칠성이가 학교에 못 다니게 된 까닭을 듣고, 걸음이 잘 걸리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하면 칠성이가 다시 학교에 다닐 수 있게 할까……, 하느라고 걸음이 잘 걸리지 않았습니다.
집에 와서도 책보를 끄르지도 않고, 모자도 벗지 않고, 마루 끝에 턱을 고이고 걸터앉아서 ‘어떻게 하면 그 놈의 심사 사나운 큰 가게를 못 팔게 하고, 그 대신 칠성이 집 가게가 잘 팔리게 할까?’하고, 그것만 궁리하고 앉았습니다.
“이 애야, 왜 모자도 안 벗고 그러고 앉았느냐? 어서 올라 오너라.”
하고, 어머니는 방에서 내다보시면서 말씀을 하셨습니다.
“어머니, 우리 집에서는 날마다 어디 가서 반찬을 사옵니까?”
“그건 왜 묻니? 행랑어멈이 사 오는 것이니까, 내가 알 수 있니.”
“그럼, 행랑어멈을 불러서 물어 보세요.”
“별안간에 그건 왜 물어?”
“글쎄, 좀 물어 보세요, 어서요.”
어머니는 행랑어멈을 불러 물어 보셨습니다. 그러니까,
“새로 난 가게가 크고 물건도 많으니까 거기 가서 사와요.”
하였습니다.
자기 집에서까지 그 미운 새 가게에 가서 사다 먹는 것을 알고 명환이는 덜컥하였습니다. 미안한 생각이 불타듯 하였습니다.
“어머니, 이런 일이 있습니다.”
하고, 명환이는 칠성이 집과 칠성이의 불쌍한 사정 이야기를 일일이 이야기하였습니다.
“그러니 내일부터는 꼭 칠성이 집 가게에 가서 사 오라고 그러세요, 네? 칠성이란 아이가 불쌍하지 않습니까?”
하고, 어머니께 애걸하였습니다.
“그렇구말구. 내일부터는 꼭 그 가게에 가서 사 와야 하구말구…… 그렇게 효성스럽고 공부 잘 하는 애를 도와 주어야지……. 이 동네 사람 사람들이 모두 그 집에만 가서 샀으면 좋겠다.”
“그러게 말이야요. 어머니도 동네 집 아는 사람마다 만나는 대로 모두 거기 가서 사라고 이야기를 하세요. 저도 지금부터 아는 집은 모두 찾아가서 이야기할 테야요. 이 아랫집에도 가고 저 위 이발소 집에도 가구요.”
하고는 후다닥 뛰어나갔습니다.
동무를 위하여…… 불쌍한 동무가 학교에 다니게 되게 하기 위하여 어린 명환이의 피는 끓었습니다. 남들이 웃을 것을 모르고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어린 명환이는 길거리를 급히 뛰며 아는 집을 찾아다녔습니다.
“여보세요, 요 너머 골목에 있는 조그마한 반찬 가게 집 아들 칠성이는 저하고 한 반 학생인데 공부도 잘 해서 부급장이고 부모에게도 효성스런 아이입니다. 그런데, 요새는 반찬이 안 팔려서 학교에를 못 다니게 되었으니 제발 그 집에 가서 반찬을 사다가 잡수세요. 물건도 친절하고 정직하게 팝니다. 꼭 그 집에 가서 사세요.”
하고 자기 일같이 애걸애걸하였으므로 누구든지,
“오냐! 염려 마라. 네가 그렇게 말하니 그 집에서 사 오기로 하마. 그런 훌륭한 아이를 따로 도와주지는 못하드라도 물건이야 팔아 주고말고……. 꼭 거기서 사마.”
하고 대답해 주었습니다.
명환이는 가는 곳마다 그렇게 기쁜 말을 들었으므로 다리 아픈 줄도 모르고 숨찬 것도 모르고 십여 집이나 돌아다녔습니다. 그렇게 아는 집마다 다 돌아다녀 놓고 오기는 왔으나 그래도 그것만 가지고는 팔려도 얼마 팔리지 않는 것이 염려스러웠습니다. 그래서 저녁밥도 안 먹고 사랑으로 나갔습니다.
3
[편집]사랑에는 아버지의 변호사 사무를 조력(돕는 것)하고 있는 사무원이 있었습니다.
“아저씨, 아저씨는 담배를 날마다 어느 가게에서 사다 잡수세요?”
“허허! 별안간에 담배 검사가 또 웬일이냐. 그건 알아 무얼하니?”
“글쎄, 알아야 할 일이 있어서 그래요.”
“아무 데서나 닥치는 대로 사 먹지. 행길로 지나가다가 아무 데서나 사지…….”
“그럼 오늘부터는 꼭 요 너머 납작하고 조그만 반찬 가게에서 사 잡수세요.”
하고 명환이는 열심을 다하여 칠성이의 불쌍한 사정을 죄다 이야기하였습니다.
“그러구말구. 그럼 꼭 그 가게에서만 사구말구. 염려 마라, 거기서만 살께.”
“예! 그러구요, 아저씨는 어른마다 만나는 대로 모두 거기서만 사라구 그러세요. 그 위에 새로 난 큰 가게는 아주 나쁜 가게여요. 다른 동네에 가서 내지 못 하고 꼭 그 좁은 동네에 와서 칠성이 집 가게를 엎어 먹으려고 거기다가 일부러 크게 낸 것이 분명하잖아요.”
“그런데, 너희 동무 집에 조그만 등사판 인쇄기가 있다고 했지?”
“예, 있어요. 한 장만 써 가지고 박으면 똑같은 것을 몇백 장이든 박히는 거여요.”
“그래 그래. 그것을 빌려 가지고 네가 네 손으로 칠성이 집과 칠성이의 사정을 써 가지고 여러 장을 박아서 이 동네 집집마다 신문 돌리듯이 한 장씩 돌리면 그것을 보고 누구든지 칠성이 집에만 가서 살 것이 아니냐? 그런 일을 하는 것을 선전이라고 그런단다.”
명환이는 그 말을 듣고,
“옳지, 옳지!”
하고, 미친 아이같이 손뼉을 치고 뛰면서 기뻐하였습니다. 지체 없이 그 길로 뛰어가서 등사판 기계를 빌려 왔습니다. 그리고, 어머니에게서 10전, 사무원 아저씨에게서 20전, 모두 30전을 얻어 가지고 습자지를 사 왔습니다. 그리고는 사무원 아저씨 책상에 엎드려서 광고문을 열심으로 지어 썼습니다. 사무원 아저씨는 싱글싱글 웃으시면서,
“이 애야, 저 편 새로 난 큰 가게는 밉기는 제일 미운 놈이지마는 그 가게의 욕을 쓰든지 그 가게에 가서 사지 말라고 그런 말을 쓰면 남의 장사에 방해했다고 ‘영업 방해죄’가 되는 법이니까 저 편 큰 가게의 말은 한 마디도 쓰지 말고 이 편 칠성이 집 일만 쓰고 거기서 사라는 말만 써라. 그래야 문제가 안 되는 법이다.”
하고, 친절히 일러주었습니다.
그래 명환이는 광고문을 이렇게 간단하게 지어서 썼습니다.
○○동 정자 우물가에 있는 조그만 반찬 가겟집 아들 김칠성이는 나이 열세 살 된 보통 학교 5학년 학생인데 부모에게 효성이 지극하고 학교에서도 공부를 잘 하여 부급장까지 되었습니다. 그런데, 요사이는 그 가게 반찬이 팔리지 아니하여 살 수 없게 되어 학교에도 못 다니게 되었습니다. 참말로 아깝고 불쌍한 일이오니 누구시든지 동정하는 마음이 계신 어른은 아무쪼록 그 집 물건을 팔아 주시기 바랍니다. 가게는 조그마할망정 좋은 물건을 정직하게 파는 집이오니 저희 불쌍한 동무 김칠성 군을 위하 여 꼭 그 집에서 물건을 사시기 바랍니다.
─ 동급생 안명환
사무원 아저씨는 그것을 읽어 보시고,
“참말 잘 지었다. 그런데, 첫머리에 대가리를 쓰고 끝에 인사를 써야지…….”
하고, 맨 위에 ‘약한 사람을 도웁시다!’하고, 크게 쓰고 맨 끝 줄에 ‘뜻있고 정있는 어른께!’라고 써 주었습니다.
4
[편집]이튿날은 노는 날이었습니다.
어젯밤에 늦도록 박아 논 이백 장이나 되는 선전지를 가지고 명환이는 새벽부터 돌아다니면서 집집에 한 집도 빼놓지 않고 한 장씩 돌렸습니다.
새벽 일기는 몹시 추웠습니다. 그러나, 명환이는 추운 줄을 몰랐습니다. 2백 집이나 돌아다니기는 어른도 피곤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어린 명환이는 그것도 몰랐습니다.
동무를 위하여! 불쌍한 동무를 위하여! 어린 가슴의 피는 탈 대로 타오르는 것이었습니다.
이사 간 집같이 쓸쓸해진 칠성이 집 가게 앞에는 그 날 아침에 난리가 일어났습니다. 집집에서 바구니나 치롱을 들고 나오는 사람마다 칠성이 집, 칠성이 집 하고 이리로만 몰려왔습니다.
“아이구, 이 집이 칠성이라는 학생 아이 집이라지!”
“아마 저기 주판을 들고 섰는 저 애가 칠성이란 학생인가 보오. 생기기도 착하게 생겼는걸…….”
“그러게 말이어요. 우리는 언제든지 이 집에서만 살 터이어요.”
“우리도 그렇다오. 누가 그 말을 듣고도 여기서 안 사겠어요.”
참말로 장꾼 모이듯 이리로만 모여들어서 이루 돈 받고 물건을 팔 수가 없을 지경이었습니다. 그래 가게에 있던 물건은 눈 깜짝할 동안에 다 팔려 없어져서 사려다가 사지 못하고,
“내일 올 테니 물건을 많이 갖다 놓고 파십시오.”
하고, 일러 두고 가는 이가 더 많았습니다.
그 날 저녁에 칠성이 아버지는 칠성이를 데리고 명환이 집에 찾아와서 명환이 아버지를 보고 이런 말씀을 하였습니다.
“하나도 사러 오지 않던 이들이 어쩐 일로 오늘은 우리 가게로만 몰려오나 하였더니 나중에 알고 보니까, 댁의 어린 자제가 광고지를 박아 돌려 주셔서 그것들을 보고 불쌍하다고 그렇게 우리 가게로만 오시게 되었답니다그려……. 참말로 무엇이라고 인사를 여쭈어야 할지 참말 저희 집안은 인제 다시 살아나게 되었습니다.”
그 날 밤 신문에 ‘동무를 위하는 소년의 열정! 세상에도 듣기 어려운 우애 미담’이라고 크게 제목을 붙이고 칠성이의 사정 이야기와 명환이가 한 일이 자상히 자상히 씌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한 가지 새로이 놀란 일은 칠성이가 그 동안 병든 어머님의 약값을 벌기 위하여 밤나다 밤마다 열흘째 만두를 팔러 다녔다는 사실까지 씌어 있었습니다.
그것은 이 동네에 신문사에 다니는 기자가 있었는데 그 집에도 새벽에 명환이가 선전지를 넣었으므로 기자가 그것을 읽고 놀래어 자상한 일을 조사하여 간 까닭이었습니다.
이튿날 학교에서는 교장 선생님과 모든 선생님들이 신문에 난 것을 보고 깜짝깜짝 놀래셨습니다. 그리고 그 날 오후로 두 모범 학생의 포상식(표창식)을 크게 열고 우리 학교의 자랑이요, 귀중한 보배라고 칭찬하면서 언해(사전) 한 권씩과 벼루함 하나씩을 주었습니다.
그 후, 한 달이 못 되어 큰 가게는 영 팔리지 않으므로 다른 동네로 옮겨 가 버렸고 명환이와 칠성이는 어느 때든지 어깨를 나란히 하여 정다운 걸음으로 학교에 다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