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인사담집 1/석우로의 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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出典 = 三國史記卷第二, 新羅本紀, 三國史記列傳昔于老日本書紀仲哀條一云

倭의 도를 넘는 방자한 행동에는 사실 불쾌한 감정을 누룰 수가 없었다. 이 나라(계림)의 서불감(舒弗邯)인 석우로(昔于 老)뿐 아니라, 위로는 이사금(尼師今─임금) 조분(助賁)을 비 롯하여 아래로는 이름 없는 한낱 백성에 이르기까지, 한결 같이 분노를 금치 못하였다.

또 청혼(請婚)이었다. 계림 왕실의 따님을 또 제 나라(왜) 왕비로 줍시사는 것이었다. 계림 왕실의 따님이 벌써 몇 대 (代)째 몇 분째 <왜>의 왕비로 갔는지 세기 힘들도록 많다.

왜의 왕이며 왕실은 대개가 계림의 생질(甥姪)이거나 외손 (外孫)이다. 그러면서도 연해 계림을 강압하여 계림의 딸이 거나 누이를 뺏어다가 며느리라 아내를 삼는다.

맨발[裸足] 새기 종족, 예의 범절을 모르는 종족이라 차마 내 나라 딸이나 누이를 주기 싫지만, 싫다고 거절도 못할 노릇이, 저 왜는 예의범절을 모르는 오랑캐 나라, 그들의 요 구를 거절하였다가는 무슨 행패를 할는지 알 수 없고, 이 계림 나라로 말하자면 진한(辰韓) 땅의 여섯 부락에서 출발 하여 그새 이백여 년간에 꽤 발전되고 커지기는 했다. 하지 만, 아직 나라의 주위 백 리 안팎에 지나지 못한다는 작은 나라라, 왜와는 무력적으로 상대가 되지 못하였다.

우로(于老)가 대장군이 되면서 그 이래 한두 번 왜의 來侵 을 물리친 일이 있었지만, 왜의 방자무례한 행위는, 그 때문 에 조금도 줄지 않고 여전히 왕자(王子)의 볼모를 보내라, 혹은 왕녀를 며느리로 다오, 등의 요구를 하는 것이었다.

한 줄기의 바다를 격하여 왜와 접해 있는 계림이라, 왜의 시달림은 늘 받고 있었다.

이 계림에게 있어서 부러운 것은, 북쪽 나라 고구려였다.

같은 성인 단군(聖人檀君)을 국조(國祖)로 한 고구려였지만, 고구려의 틀은 튼튼히 잡히고, 국민은 강건하여 이웃나라의 수모를 받지 않을 뿐더러, 오히려 강국 한(漢)에 자진하여 도전을 하여 한의 영토 낙랑(樂浪) 등의 고을을 빼앗아서 자 기(고구려)의 영토로 삼았으며, 지금 그 한(漢) 땅에 서 있 는 위(魏)며 촉(蜀)이며 오(吳)의 삼국은 고구려의 비위를 맞 추노라고 볼 일을 못보는 형편이니, 같은 성인 단군의 후예 로 그런 나라도 있건만, 이 계림은 보잘 것 없는 섬나라[島 國] 왜 때문에 이처럼 안을하니 이런 일이 어디 있을까.

지금도 왜사(倭使)가 서울에 와 있다.

군을 이끌고 내집한 것이 아니요, 사신(使臣)이 온 것으로 보아서 또 무슨 요구일 시 분명하였다. 따님을 달라려는지 혹은 무슨 다른 요구인지는 알 수 없지만, 상대가 <왜>라 또 무슨 귀찮은 요구일 것이다. 임금께서는 그 왜사 접견을 몸소 하시기 싫어 그 소임을 우로 서불감에게 맡겼다. 우로 는 몇 번 싸움 마당에서 왜를 물리친 일이 있느니만치 왜도 흩으로 보지는 않으리라는 이사금의 고려였다.

우로는 이 나라 석씨 왕실(昔氏)의 지친으로 몸이 금지옥엽 이요, 강적 왜를 몇 번 물리친 일이 있느니만치 이쯤 높은 명장이요, 몸이 서불감(재상)에 있느니만치 지금의 이 나라 를 대표하는 인물이었다.

우로는 아직 삼십 줄의 혈기의 젊은이였다. 그의 출생과 생장과 환경이 환경이니만치,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않는 거만한 천품인데다가, 지금 만나려는 상대가 맨발 벗은 오 랑캐며, 더우기 자기가 전쟁마당에서 몇 번 격퇴한 일이 있 는 나라의 종족이라, 예전부터 깔보고 들었다. 우로는 왜사 를 만나려 자기 집을 나섬에 임하여 사랑하는 아들 글해(訖 解)를 불렀다. 글해도 하인에게 업히어 가지고 함께 가려는 것이었다. 어린 글해는 어머니의 품에 안겨서 아버지에게로 왔다.

『어─디, 글해야. 너 오늘 왜놈이라는 짐승 구경할래? 키 가 작달막하고 탁 네모지고, 얼굴과 몸이 털투성이인 괴상 야릇한 짐승이니라. 그 짐승은 아버지를 보면 벌벌 떠느니 라. 자, 놈에게 업혀서 그 짐승 구경 가자. ─ 여보, 이애 놈 에게 업히어 주오.』

우로의 젊은 아내(조분 임금님의 따님이요 점해 이사금[지 금 임금]의 조카 따님이다)는 남편의 늠름한 태도를 우러러 보면서도 그 말에 불안을 느끼는 모양으로,

『여보세요. 왜인은 성많은 인종이라는 데 괜히 놈들의 원 혐 지지 않도록 만사를 어름어름해 두세요.』 하여 남편의 과도한 억센 성미를 근심하였다.

『어름어름? 내 오늘 왜인의 임금을 욕해 주어서 지금 온 놈(왜사)의 분통을 터쳐 주고야 말걸. 그렇지? 글해야. 너 이 다음에 임금의 위에 오르게 되는 날이 있거든, 그 날 왜 종들을 예전 벼룩같은 튀쳐 버려라. 우리 장래 임금 글해 야!』

그리고 하인을 불러, 어서 행차 준비하기를 재촉하였다.

왜사는 갈나고(葛那古)라는 사람이었다.

우로는 갈나고와 사관에서 만났다. <왜>라는 짐승을 구경 하고자 아버지를 따라온 우로의 아들 글해는, 아버지와 마 주 앉아 있는 <짐승>을 이상한 시키 말찐말찐 건너다보고 있다.

우로와 갈나고기 위해성 새에는 한훤의 인사가 사괴어졌 다. 마주 앉은 두 사람은 서로 우월감을 갖고 있었다. 우로 는 자기는 개명한 종족이요, 겸해 그 새 몇 차례 왜를 격퇴 한 과거가 있노라는 우월감이요, 갈나고는 자기는 계림보다 강한 나라인 왜의 사신이요, 계림에게 어떤 정도의 호령을 할 수 있노라는 우월감을 가지고 서로 상대자들을 얕보려는 마음으로 마주 앉아 있는 것이었다.

이번 갈나고가 제나라 왕에게 분부받고 온 사명이라는 것 이 또한 계림 왕실의 한 따님을 제 나라 왕의 며느리로 달 라는 것이었다. 이 소청을 갈나고에게서 들을 때에 한 순간 우로는 마음이 흠칫하였다. 동시에 에 눈도 흠칫하였다.

우로는 몹시 악의(惡意) 품은 눈초리로 갈나고를 건너다보 며 입을 열었다─

『갈나고라고? 대체 당신네 나라엔 왕자가 몇이나 되기에 그렇게 자꾸 며느리를 맞소?』

『한 이십분 되십니다.』

『한 배에 몇씩이나 낳기에 왕자가 이십여 명이나 되며 또 왜국에는 계집의 종자가 없어서, 입금의 며느리는 꼭 계림 에서 맞아 가오?』

『계림 색시가 예쁘기도 하거니와 일을 잘하고 음식 솜씨 도 좋기 때문이오?』

『그럼, 계림의 공주를 맞아다가 왜왕의 부엌떼기로 쓸 심 산이오?』

『대체 여인의 소임은 부엌떼기요. 공주건 왕비건 할 것 없이…』

『그런 배짱이면 계림의 공주는커녕 계림 암캐도 외국 왕 자비로는 못 주겠소.』

종내 우로에게서는 독설이 나왔다. 그리고 그 독설은 그냥 계속되었다.

『내 머지 않아 왜국에 가서 왜왕을 잡아다가 계림의 소금 구이 일군[鹽奴]으로 쓰고 왜왕처[王妻]는 우리집 부엌떼기 로 쓸 테니, 당신네 왕과 왕처에게 미리 잘 일 좀 배워 두 라고 일러 두오.』

조롱하는 웃음을 얼굴에 피고 우로가 이렇게 말할 때에 왜 사 갈나고는 입술이 파래지며 몸을 와들와들 떨며 금방이라 도 일어서서 무슨 거조가 있을 듯하였다.

그러나 불행히 왜사를 호위하는 시종은 몇 명 못되고 우로 가 데리고 온 늠름한 계림 하인들이 우로를 모시로 있는지 라, 갈나고는 아무 거조도 하지 못하고 몸난 떨고 있을 따 름이었다.

우로는 자기의 아들 글해를 굽어보며 소근거렸다.

『글해, 잘 봐라. 왜짐승이 성내면 저 모양이란다. 재미있 지? 자 우린 인젠 집으로 가자.』

그리고 몸을 천천히 일으켰다.

그 날의 경과를 우로가 아내 명원부인(命元夫人)에게 이야 기하매 부인은 좋아하기보다 기뻐하기보다 통쾌해 하기보다 도리어 근심하였다. 남의 나라─ 더우기 무도하고 포학한 왜나라의 왕을 그렇듯 욕했으니 후환이 없을까고 근심하였 다. 그러나 우로는 그 방면은 아주 태평하였다.

그새 왜의 내침을 몇 번 두들겨 주었으니 왜가 아무리 노 염 낸다 할지라도 혼자서 삭일 것이라 보고 개의하지 않았 다.

그런데 가을 종내 일집은 벌어졌다.

왜왕은, 우로에게 욕먹은 보고를 듣고는 그저 둘 수 없다 하여, 왜의 장군 우도주군(于道朱君)에 몇 십 척 전선(戰船) 을 맡겨 계림으로 문죄(問罪)의 군사를 떠나 보낸 것이었다.

그새 우로 서불감이 몇번 기병(奇兵)으로 왜를 격퇴한 일은 있지만, 원체 실력이 약한 계림의 군사는 왜병을 대적하지 못하여 모두 패하여 달아나고 서울 금성(金城)은 곧 왜병에 게 포위되었다.

서울이 포위되어 물끓듯 할 때에 이번 일의 책임자인 우로 는, 대궐로 달려가서 점해(沾解) 이사금 앞에 끓어 엎드렸 다.

『이사금. 이번 일은 신에게로 나온 일이오며 신이 맡아 처리하오리다. 이사금께서는 포위의 약한 목을 끊고 잠깐 유촌(柚村)에 피해 계시오면 뒤는 신이 맡아 처리하오리 다.』

『서불감이 맡아 처라한다니 대체 어떻게 할 심산이오?』

『왜장 우도주군와 만나 보겠읍니다.』

『큰일날 소리. 살기가 등등한 저 왜인들을 만나 보단 섶 을 지고 불로 들어가는 개나 일반이지, 쓸데 없는 일이겠 소.』

『그러지 않자니 무슨 도리가 있겠읍니까? 신이 몸소 저놈 을 만나서 웃음으로 넘겨 보아 되지 않사오면 신이 사죄라 도 하옵고 사죄로도 듣지 않사오면─ 요컨대, 신의 목숨만 저놈들에게 내맡기오면 나라에는 결코 폐가 안 미치도록 신 이 다짐지고 결말 지으오리다. 이사금께서는 그 동안 잠깐 유촌으로 피해 계시기를 바라옵니다.』

이리하여 점해 이사금은 왕후와 일족을 거느리고 몰래 금 성을 빠져 유촌으로 몽진을 하고, 뒷 책임은 죄 우로 혼자 서 지기로 하였다.

우로는 이사금께 하직하고 잠깐 집에 들러 옷응 바꾸어 입 고 왜장 우도주군을 만나러 다시 나섰다. 그의 젊은 명원부 인은, 하인을 불러서 아들 글해를 업히어 아버지 우로를 따 르도록 하였다. 그리고 부인 자신도 대가의 아내답지 않게, 한길까지 그냥 따라 오면서 남편을 보냈다. 우로가 한참을 더 가다가 문득 돌아보니 아내는 그냥 그 자리에 서서 꽤 멀어진 남편을 바라보고 있었다. 부인의 눈이 번득이는 것 으로 보아서, 눈물이 가득 괴어 있는 것을 알 수가 있었다.

우로는 천성이 대범한데다가 더우기 환경이 환경이라, 천 하 만사를 근심할 줄을 모르는 사람이었다. 자기는 <불행>

과는 완전히 인연 끊은 사람으로 여기고 있는 성질이었다.

이번 큰 책임을 지고 위지(危地)에 가면서도 자기의 신상은 추호도 근심하지 않았다.

우로가 수십 명의 종자와 아들을 데리고 왜진까지 이르매, 왜진에서는 이것이 우로 일행인 줄 알고 꽤 두선두선하였 다. 일변 옆에 벌려 서는 군졸(왜의), 일변 상관에게 알리려 들어가는 군졸, 이런 가운데를 잠시 기다리노라니, 안에 들 어갔던 군졸은 다시 나와서 우로 단신으로(종자 일행은 저 편에 떼어 두고) 진옥에 들어와서 왜장 우도주군과 보자는 것이었다.

우로는 손짓하여 종자들을 저편으로 물리고, 서슴지 않고 왜진의 전초를 썩 지나서 터벅터벅 안으로 들어갔다. 왜장 의 진옥 앞에까지 이르러, 그 곳에 갑옷 입고 투구 쓴 왜장 을 우도주군이라 인정하고, 얼굴에 화려한 웃음을 장식하면 서,

『이 사람아, 섬 백성[島民]은 다르이.

한 마디 농담에 병졸 만 명이 바다를 건너와 이 야단이란 말인가?』

왜장에게서는 무슨 대답이 있을 줄로 알았다. 성난 대답이 건 간에….

그런데 왜장 우도주군은 우로에게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 리고 일어서면서 무슨 기괴한 소리와 함께 이상한 손짓을 한 번 하였다.

이 군호로 왜의 장졸은 왁 하니 개미떼처럼 우로에게 몰려 들었다. 우로는 곧 결박지어졌다.

거기 있던 짚더미에 불을 지르고, 우로의 몸을 그 불더미 로 향하여 던졌다. 한마디의 문답, 변명 내지 사죄를 할 틈 도 없이, 우로는 한 줌 재로 화하여 버렸다. 타지 않은 뼈는 왜졸들이 땅을 파고 묻어 버렸다.

우로의 아내 명원부인은 여인의 날카로운 판단으로 이 날 의 결말을 미리 짐작할 수 있었다. 아니, 벌써 몇 달 전 남 편이 왜의 사신에게 왜왕을 욕해 돌려보냈다 할때에, 벌써 오늘 같은 일이 십중팔구는 생길 것을 짐작하였다.

이번 왜장 우도주군이 대병을 이끌고 문죄차로 왔다 할 때 에, 에쿠 나는 과부가 됐구나 속으로 울었다.

남편이 이사금께 책임지겠다고 여쭈려 예궐할 때에, 부인 은 속으로 한없이 한없이 통곡하였다. 남편은 대범한 사람 이라, 설마 내야 죽으랴 하는 생각으로 있는 모양이지만, 왜 의 성미로 이번의 책임자는 죽이지 않고는 두지 않을 것을 부인은 짐작한다. 미리 손써서 남편을 어디 피신케 한다 할 지라도 왜인의 표독한 성미로서, 계림 나라를 둘러 엎고 방 방곡곡을 쑤시어서라도 책임자를 찾아내어 죽이고야 끝이 날 것이었다.

그런지라, 어차피 왜인의 독수에 걸려서 죽을 남편인 바에 야 무고한 다른 백성과 나라에는 해독이 미치지 않게─ 남 편 혼자서 책임지고 왜진에 가는 것은 부인에게도 옳은 일 로 보였다.

왜진으로 떠날 때, 나는 죽지 않을 사람이라는 듯이 태평 한 얼굴로 떠나는 남편을, 부인은 이것이 이생에서는 영결 이거니 하며 보내자니 가슴 찢어지는 듯, 차마 발길이 집으 로 돌아서지지 않았다.

아버지의 최후나마 보라고 어린 자식을 튼튼한 하인에게 업히어 보냈던 것이다.

그 하인이 숨어 턱에 닿게 달려 돌아와서 하는 보고로써, 부인은 남편의 최후를 알았다. 그 하인에게 업히어 그래도 무사히 돌아온 사랑하는 아들을 받아 안고, 어린애를 굽어 보았다.

『야 글해야. 아버지, 왜진에 들어가시는 거 잘 보아 두었 느냐?』

『네, 인사까지 여쭈웠는걸.』

『인사까지? 뭐라구?』

『아버지 안녕! 하고.』

『오오, 아버지 안녕─ 안녕─ 』

안녕히 황천길 가시옵소서. 계림 하나는 당신 덕에 왜의 발에 밟히지 않고 무사했읍니다. 이것이 아내로서 당신께 부치는 말씀이며 동시에 계림 온 백성이 당신께 드리는 감 사의 말씀입니다.

부인은 하인을 불렀다.

『너 왜진 근처에 기어 가서 그것들이 유골(遺骨)을 버리거 든 모셔 오고, 어디다 묻거든 그 자리를 잘 보아 두고 오너 라.』

왜병은 우로를 죽인 뒤에는 당면의 원수를 갚았다고 진을 풀고 모두 제 나라로 돌아갔다.

계림은 다시 평화한 천지가 되었다.

왜병이 돌아가자, 피난했던 이사금이며 모든 귀인이 금성 서울로 돌아왔다. 돌아와서는 모두 한결같이 명원부인께 조 상을 왔다. 남편 우로거나 아내 명월부인이거나 모두 왕실 의 지친이라, 더우기 우로의 피해가 나라에 관계되는 일이 라 모두 정중하게 조상하는 그 조상을 젊은 과부 명월부인 은 한 마디의 대답도 한 방울의 눈물도 한 토막의 한숨도 없이, 다만 무언으로 받았다. 우로의 유골 처치 장소를 탐색 하러 갔던 하인에게서,

『어  묻고 갔는데 어디다 만들었는지는 알 수 없읍니 다.』

고 보고랋 때에, 부인에게서는 참으로 형용키 힘든 비통한 표정이 잠깐 나타났다가 스러질 뿐이었다.

그로부터 계림은 양병(養兵)에 매우 힘쓰고 요해지마다 책 을 든든히 쳐서, 국방에 극력하였다.

그 탓인지, 왜에게서는 한 동안 침략도 없었고 보통 사절 도 없이, 계림과 왜는 서로 아무 관련 없이 지냈다.

이사금 점해는, 재위 십 오년, 그 십 오년, 섣달 스무 여드 렛날 갑자기 승하하였다. 이 점해 이사금까지 네 대(代)를 계속해서 석씨(昔氏)가 위(位)에 올랐는데, 점해의 뒤에는 김씨(金氏)로 미추(味鄒) 이사금이 계림의 주인이 되었다.

김씨로 첫 이사금이었다.

이 미추 이사금 때에 한동안 국교 관계가 끊겼던 왜에게서 사신이 계림에 왔다. 이번 사신은 왜의 대신(大臣)이었다.

우로의 젊은 과부 명원부인은 왜사가 계림에 온 이삼일 뒤, 갑자기 오래간만에 외출을 하였다. 홀몸이 된 이래 첫번 의 외출이었다.

수레를 달려서 대궐로 들어갔다. 미추 이사금의 황후 관명 (光明) 부인의 친 동기였다. 형(명원부인)은 그새 두문불출 하기 때문에 동생(광명부인)은 신분이 왕후이기 때문에 여러 해 서로 만나지 못했던 형제는 오래간만에 대궐에서 서로 마주 대하였다. 과부된 조상이며 왕후된 축하의 인사가 한 참 사괴어 진 뒤에 명원부인은 한 무릎 나앉으며 동생 왕후 의 손을 힘있게 잡았다.

『여보소 동생, 내 당부가 하나 있는데 꼭 좀 들어주소.』

『형님 무슨 당부요?』

『꼭 들어 주겠다는 대답부터 해 주오.』

『외로우신 형님의 그런 간곡한 부탁, 내가 들을 수 있는 게면 왜 피하리까?』

『동생 믿소. 이사금께 여쭈어, 내 집에서 지금 와 있는 왜 사를 한 번 청해 잔치하도록 하게 좀 해 주오.』

젊은 과부가 아지 못하는 외국 사신을 사사로이 잔치하다 니, 좀 흉한 일이지만 이 형은 본시 마음이 깊고 좀체의 사 람이 아닌 줄을 잘 아는 왕후는 형의 소청을 쾌락하였다.

이사금께 여쭈어서 좋이 조처를 하기를 약속하였다.

명원부인은 동생 왕후께 부탁한 뒤에 동생께 하직하고 잠 깐 동생의 지아버님 이사금께 문후하고, 다시 수레를 집으 로 돌렸다.

그로부터 나흘 뒤 명원부인의 집에서는 소 잡고 돝잡고 큰 잔치를 열었다. 잔치의 주빈은 이번 사신으로 온 왜의 대신 이었다.

버금가는 사람들은 딴 방에서 따로 잔치하게 하고 주빈인 왜 대신은 주인방에 들이었다. 만반 진찬의 상이 왜사(倭史) 의 앞에 벌여진 뒤에, 명원부인은 몸소 주전자를 들고 시녀 도 안 데리고 왜사의 앞에 가서 자리잡아 앉았다.

『이 집 주인 명원부인이올시다. 고(故) 서불감 석우로의 아내요, 전(前) 이사금 점해의 조카요, 현 이사금 미추의 후 (后)의 형입니다.』

금주전자를 고요히 놓으며 이렇게 말할 때에 왜사는 황감 하여 머리를 천백 번 방바닥에 조아렸다.

서불감의 부인으로서의 화려한 정장(正裝)과 삼십 한창의 무르익은 명원부인의 자색은 단청(丹靑) 찬란한 계림 귀인의 거실(居室)을 배경으로 이 소박하고 미개한 왜나라 사신의 심신을 여지없이 황홀케 하였다. 명월부인의 엄연한 태도와 계림 귀인으로서의 몸가짐을 우도주군을 압도하여 그 앞에 머리조차 들지 못하였다.

『변변치 못한 주효지만…』

하면서 명월부인은, 탈 없는 음식이라는 것을 몸소 보이기 위하여, 자기가 한 잔 먼저 마시고, 몇 가지의 안주를 집어 먹고, 그리고서 그 뒤에, 금잔에 가득 부어 왜사에게 권하였 다.

계림의 미녀─ 미녀도 보통 미녀가 아니요 친정과 시가가 아울러 왕실이 지친인 계림 최고 명가의 젊은 과부가 몸소 독미(毒味)를 하고 따라서 권하는 주효라, 더우기 생선 나부 랭이에나 익은 왜인에게 계림 궁정(宮廷) 요리로서의 안주 라, 우도주군(왜사)은 황감하고 고마와서 연해 머리를 조아 리며 받아 마셨다. 이리하여 왜사가 꽤 술에 취하여 스스로 봄시 삼가지만 몸을 바로 가누기도 힘들어서 단정히 꿇었던 무릎도 무너질 때쯤하여 명원부인은 약간 정색을 하며 조금 나앉으며 입을 열었다.

『왜사께─ 더우기 왜국 재상이신 왜사께 한두 가지 소청 이 있읍니다.』

『아, 무에오니까?』

짐승처럼 땅을 기라 하여도 들을 지경의 왜사였다.

『다른 게 아니라, 내 지아버니되는 고(故) 서불감 우로가 칠팔년 전에 귀국 사람에게 죽임을 받았읍니다. 그 유체(遺 體)─ 유골이 어디 있는지 계림의 아낙은 지아비의 유골을 안장(安葬)키 전에는 외인과 상대로 못하고 대문 밖에 나서 지도 못하고, 도대체 사람의 행세를 못하는 법입니다. 사신 께서 그 유골 있는 곳을 아시면 그것을 알려 주셔서 나로 하여금 망부의 유골을 안장해서 사람 앞에 머리 들고 나다 닐 신분이 되게 해 주시면, 그 은혜 뼈에 새겨 반드시 갚겠 소이다. 이게 한 가지 소청이옵고…』

명원부인은 저으기 음성을 낮추면서 말을 계속하였다.

『또 한 가지 소원은, 이 몸은 이 나라에서 부(富)와 귀 (貴)를 아우른 부족한 데 없는 신분이지만 인간의 가장 낙 (樂)인 짝을 잃은 외로운 신세올시다. 그러나 이 나라에서는 짝을 구하지 못할 신분이라, 멀리 모르는 땅 왜나라에서 이 몸의 짝을 하나 구해 주면 그 은혜 또한 백골난망이올시 다.』

몽롱하게 취한 왜사는 이 계림 고귀한 미녀의 짝을 구하는 하소연에 심신이 녹아들었다.

『아, 귀인께서 호구를 구하신다면, 이 천사(賤使)가─ 부 족합지만 아직 짝 없는 홀몸이올시다.』

술 기운에 용기를 얻어 말을 더듬으면서 응하였다.

『짝도 짝이려니와 계림의 아낙은 망부의 유골을 안장치 못하고는 얼굴을 들지도 못합니다.』

명원부인은 얼굴에 홱 떠오르려는 흥분을 감추며 고요히,

『제발 이 몸으로 하여금 얼굴을 들고 밝은 세상에 나설 수 있는 신분이 되게 하여 주십시오.』

『알으켜 올리다뿐이오리까.』

『그게 어디오니까?』

연전, 서불감 석우로가 왜인에게 참혹한 해를 보고 왜인은 제 나라로 물러간 뒤에, 그때 몽진했던 유촌에서 서울로 환 가한 점해 이사금은, 우로의 죽음을 조상하고 그의 젊은 부 인의 마음을 조상하고 그의 젊은 부인의 마음을 위로키 위 하여 길지(吉地)를 골라서 우로의 입던 옷으로 의복장(衣服 葬)을 하여 주었던 것이다.

왕릉(王陵)에 못지 않은 커다란 우로의 무덤(의복을 묻은) 을 파헤치고 그 속에서 석곽(石槨)을 꺼내어 석곽이러 들었 던 낡은 옷은 꺼내고 그 대신 우로의 유골(예전 왜인이 불 태워 묻었던)을 비단에 정히 싸서 다시 넣었다.

그 석곽 앞에는 고(故) 우로의 과부 명월부인과 우로의 유 일한 유고(遺孤=글해)와 그 집 튼튼한 하인들과 그리고 결 박진 왜사 우도조군이 둘러 있었다. 부인은 하인들을 돌아 보았다.

『광(壙) 밑에 딴 구멍을 더 팠느냐? 사람 하나 들 만 한…』

『네이!』

이번은 왜사 우도주군을 향하였다.─

『왜사 우도주군이라고? 네 듣거라. 네가 나를 아내로 맞 으려는 그 마음보는 괘씸하고도 또 고마와. 그렇지만 계림 의 아낙은 육시를 당할지언정 왜인에게는 손가락 하나 잡히 지 않는 법이니라. 더우기 고서불감의 원수, 불공대천의 구 수에게랴!』

엄연한 이 선고는 산천초목까지 얼[凍]듯 하였다.

『저 광(壙) 밑에 딴 구멍은 네가 들어갈 구멍이야. 만사에 는 상하(上下)와 귀천(貴賤)의 차별이 있어야 하는 법이라, 너는 마땅히 죽은 송장일지라도 고 서불감의 아래 깔려야 하느니라. 애들아, 자!』

부인의 한 마디 호령에 하인들은 발버둥치는 왜사 우도주 군을 장지거리하여 들어다가 광구멍에 들어 쳤다.

『야, 글해야! 너와 나의 불구대천의 원수를 우리 모자서 힘을 아울러 묻자.』

광 속에서 울고 부르짖는 왜사의 위에 글해 모자의 손으로 흙을 용서 없이 덮이어졌다.

얼마만치 흙을 덮고 모자가 물러서매 그 뒤는 하인들이 달 려들어서 왜사는 완전히 흙 속에 감추이었다.

그리고 그 위로는 고 서불감 석우로의 유골이 든 석곽이 고요히 내리덮이었다.

고 서불감 우로의 부인이 고인의 유골을 찾아 안장하며 원 수 왜사를 생매(生埋)한다는 소문은 어느 틈에 퍼지어 백성 들이 모여들어 멀리서 구경을 하며 그 소문이 왕궁에까지 들어가서 이사금에게는 축하와 격려의 치사가 오고 명원부 인의 친동기되는 왕후는 몸소 이곳까지 기용하여 형님을 축 하하였다.

그러나 당자 명원부인은 고인의 유고(遺孤) 글해(뒤에 이사 금 위에 오른다)의 손목을 꼭 잡고 모든 축하며 격려도 모 르는 듯이─ 광에 안치된 고인의 석곽만 굽어보고 있었다.

석곽 위에 흙이 덮이기 시작할 때에야 비로소 명원부인의 눈에는 커다란 눈물이 떨어져서 고인의 참혹하고 의로운 혼 을 조상하였다.

(이 이야기의 후일담으로, <삼국사기(三國史記)>에는, 「왜 인이 분개하여 금성(金城)을 내침(來侵)했지만 이기지 못하 고 쫓겨갔다」고 기록되었고 <倭記錄>에는 「天皇이 怒하여 大軍을 보냈는데 계림 백성은 王妻(倭典에는 우로를 계림왕 이라 했다)를 붙잡아 죽여 사죄함으로 도로 회군했다」고 되었다. 좌우간 대군이 왔다가 무위히 돌아간 것만은 사실 이다.)

(一九四八年 八月 <新天地> 所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