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인사담집 1/승암의 괴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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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월산(白月山)은 신라 구부군(仇夫郡)의 북쪽에 있는 커다란 산이다. 아름다운 봉우리와 기이한 바위와 험한 골짜기가 많은 뫼다. 구부군은 지금의 의안(義安)이다. 이 백월산에 대하여는 재미있는 전설이 있다.

옛날 당나라 천자가 대궐 뜰 앞에 한 개의 못을 팠다. 그리고 그 못가를 산책하는 것을 한 소일로 하고 있었다. 어떤 보름달 밝은 밤, 이 못가를 거닐고 있던 천자는 괴상한 광경을 발견하였다. 못에는 웬 커다란 뫼가 하나 비치어 있었다. 그리고 그 뫼, 험한 바위 사이로는 한 마리의 사자가 이리저리 머리를 두르며 돌아다니고 있었다.

이 기이한 일에 의아하게 생각하고 천자는 다시 머리를 들어서 사면을 살펴 보았다. 혹은 이 근처의 산이 못에 비치었는가 하여─. 그러나 천자도 이미 잘 알다시피 이 근처에는 사자가 출몰하는 험산이 없는 것이었다.

이 기이한 그림자는 그날 밤뿐으로 사라져 없어지고 그 다음부터는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이리하여 한 달이 지나고 다시 보름달이 이르렀다.

그림자는 보름달 다시 못에 비치었다. 그 다음 보름날도 다시 비치었다. 기괴한 바위와 거기 현몰(顯沒)하는 사자의 그림자는 그 뒤 보름날 달 밝은 밤마다 늘 대궐 뜰 앞 못물에 비치었다.

천자는 이것을 너무도 이상하게 생각하여 화공(畵工)을 불러서 그 산의 모양을 그리게 하였다. 산의 모양을 그린 뒤에는 그 그림을 사람에게 내어주어서 천하를 편답하여서 그림의 산과 같이 생긴 산을 찾아 보라고 명하였다.

명을 받은 신하는 그림의 산과 같이 생긴 산을 얻고자 길을 떠났다. 이리하여 천하를 편답하던 신하는 해동(海東) 땅에 이르러서 한 뫼를 발견하였다. 보매, 그림과 신통히도 같이 생긴 산이었다. 뿐더러 그 산에는 사자도 있었다. 그 산의 서남쪽에는 세 봉우리를 가진 화산(火山)이라는 산이 있었다.

비록 그림과 신통히 같이 생긴 산을 발견은 하였지만, 그것은 당나라 서울과는 너무도 멀리 떨어져 있는 해동(海東) 땅이었다. 이 산이 당나라 대궐 못에 비친다는 것은 상상키도 어려운 일이었다. 그래서 이 산이 과연 연못에 비치는 산인지 그 여부를 밝히고자 자기의 신었던 신을 벗어서 사자암(獅子岩) 위에 걸어놓은 뒤에 귀국하여 천자께 복명을 하였다.

그 복명을 한 다음번 보름날이었다. 천자와 뭇 신하는 사자암에 신 걸린 것이 이 못에 비칠까 어떨까 하고 모두 모여서 어서 달 뜨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동녘 하늘에 불그스름히 달이 떠올랐다. 뫼의 그림자는 은연히 못에 비치었다. 사자암 위에는 분명히 신이 한 짝 걸려 있었다. 대궐 못에 비치는 산은 신라 구부군 북쪽에 있는 백월산에 틀림이 없었다.

몇 해 뒤에는 그림자는 다시 못에서 볼 수가 없었다.

백월산 동남쪽 삼천보(三千步)의 곳에 선천(仙川)이라 하는 한촌(寒村)이 있었다. 선천촌(仙川村)에는 두 젊은이가 있었다. 하나는 노혜부득(努?夫得)이라는 젊은이요, 또 하나는 달달박박(??朴朴)이라는 젊은이였다.

두 젊은이는 만나기만 하면 늘 이 더럽고 악착한 세상을 한탄하고 하였다. 이 더럽고 악착한 세상을 피하고자 의논 하고 하였다. 당시 불교의 세력은 놀랍게 당나라를 거쳐 신 라로 들어오는 때였다. 두 젊은이의 마음에는 어느덧 이 불 교의 사상이 깊이 박혀졌다. 그리고 서로 의논한 끝에 언제 든 기회만 생기면 출가(出家)를 하여 산으로 들어가기로 서 로 굳게 맹세를 하였다.

어떤 날 부득은 박박을 찾았다.

『여보, 승도촌(僧道村)에는 수도(修道)하기가 썩 좋은 고 찰(古刹)이 있다는 말을 들었는데 형은 들은 적이 없소?』

박박은 대답하였다.─

『나도 들은 일이 있소. 그래서 형을 찾아서 그 의논을 할 까 하고 있던 중이오.』

『우리 그리고 이사갑시다.』

『갑시다.』

이리하여 합의가 되어 두 젊은이는 승도촌으로 이사를 갔 다.

승도춘에는 두 동리가 있었다. 대불전(大佛田)이라는 동리 와 소불전(小佛田)이라는 동리였다. 두 젊은이는 각각 다른 동리에 자리잡고 부득은 회진암(懷眞庵)에 박박은 유리광사 (瑠璃光寺)에 각기 처자까지 데리고 한 집을 장만하고 거기 거주하였다. 두 젊은이는 불촌(佛村)으로 이사를 하였다. 그 리고 여전히 가까이 지내면서 이 세상의 무상(無常)함을 탄 식하고 있었다. 비록 이사는 하였다 하지만─ 그리고 이사한 땅이 불촌이라 하기는 하지만 거기도 역시 사람의 세상이었다. 세상의 무상함을 끝없이 느끼고 있는 이 두 젊은이에게는 역시 사람의 세상은 불만(不滿)하였다.

그리고 만나기만 하면 여전히 더 깊은 산으로 출가(出家)를 할 계획을 하고 있었다. 어떤 날 역시 두 젊은이는 모여서 늘 의논하던 일을 또 의논하다가 문득 부득이 이런 말을 하 였다.

『여보 형, 우리가 만날 이렇게 의논만 한대야 쓸데가 없 겠소. 한 번 결심을 합시다.』

『결심이란?』

『의논은 이젠 그만두고 집을 떠날 결심을 하잔 말이오.』

『그럽시다.』

『어떻소, 내일 떠나면? 만날 이 일 저 일에 밀리기만 하 면 떠날 날이 없겠소.』

『좋은 말이외다.』

『그럼 내일 집을 몰래 떠나고 맙시다.』

『그럽시다.』

이리하여 두 젊은이는 처자와 집과 장터를 내어버리고 출 가입산(出家入山)하여 고행의 길을 밟으려 드디어 마지막 결 심을 하였다.

내일이면 이 속세를 떠나서 입산(入山)하기로 작정한 날 밤, 부득은 마지막 잠을 자기로 집에서 들었다.

꿈─ 한 줄기의 백호광(白毫光)이 서쪽에서부터 비쳐서 커다랗게 부득의 머리 위에 어리었다. 그리고 그 휜 빛[白光] 가운데 금빛[金光]이 있어서 금빛은 부득을 에워쌌다. 그런 가운데 흰 빛 저편 서측에는 웬 한 기골(奇骨)이 단정히 앉아서 부 득을 향하여 손을 치고 있었다─ 이 기이한 꿈에서 깨어난 부득은 하도 꿈이 이상하여 밝기 를 기다리지 못하고 곧 일어나서 박박을 찾아가려 나섰다.

박박을 찾아가던 부득은 길 가운데서 박박을 만났다.

『형, 어디로 가시오?』

『나는 형을 찾아가는 길인데 형은 밝기도 전에 어디로 가 시오?』

『나도 형을 찾으러 가는 길이오.』

『왜?』

『하 이상한 꿈을 꾸었기로─』

『나도 이상한 꿈을 꾸었기에 형을 만나러 가던 길이외 다.』

이리하여 도중에서 만난 두 젊은이는 서로 그 꿈 이야기를 하였다. 서로 하고 보니 이상하다. 두 사람은 같은 꿈을 꾼 것이었다.

『이게 정녕코 세존의 지도인가뵈다.』

『정녕코 그렇소. 그렇지 않고야 어떻게 두 사람이 같은 꿈을 꾸겠소?』

이리하여 여기서 만난 두 사람은 더욱 희망을 크게 하였 다. 그리고 거기서 다시 의논을 거듭한 결과 즉석에서 입산 (入山)의 길을 떠나기로 합의가 되었다. 섣불리 집에 돌아갔 다가 집사람들이 잠깨기라도 하면 귄찮으니 집에는 다시 들 르지 않고 여기서 곧 떠나기로 한 것이었다.

두 사람은 길을 떠났다. 그리고 백월산 무등곡(無等谷)으로 들어갔다. 박박은 북령(北嶺) 사자암에 널쪽으로 암자를 하 나 틀고 거기 들기로 하였다. 부득은 동령(東嶺)의 준험한 바위 아래 시내를 끼고 한 암자를 틀고 거기 들어가기로 하 였다.

박박의 암자는 널쭉으로 틀었는지라 판방(板房)이라 불렀 다. 부득의 암자는 바위 틈에 있는지라 암방(岩房)이라 불렀 다.

박박은 미타불(彌陀佛)을 섬겼다.

부득은 미륵불(彌勒佛)을 섬겼다.

이리하여 반박사(師)와 부득사(師)의 두 출가는 서로 암자 를 달리하고 서로 섬기는 길을 달리하였지만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구도의 길에 힘썼다. 온갖 고행을 쓰다 하지 않고 하여 나아갔다.

집을 잊고 처자를 잊고 속녀(俗女)와 온갖 욕심을 잊은 이 두 출가는 오로지 도를 닦는 데 성력하고 있었다.

이러는 가운데 날이 지나고 달이 지나고 해가 지나서 몇 해라는 적지 않은 날짜가 흘렀다. 두 출가는 속세라는 것을 거의 잊게까지 되었다.

성덕왕(聖德王) 즉위 팔년, 경룡(景龍)삼년 기유(己酉) 사월 팔일 저녁이었다.

판방(板房)에서 역시 염불을 외면서 저녁 준비를 하고 있던 박박은 문득 밖에서 찾는 사람의 소리를 들었다.

박박사는 차리고 있던 저녁을 내어버리고 판방(板房) 문을 열고 보았다.

『?』

밖에는 한 이십 살 남짓한 젊은 여인이 문을 두드리고 있 었다.

『대사님, 길에 저문 행객이올시다. 하룻밤만 묵여 주시기 를 바랍니다.』

사(師)는 여인의 얼굴을 보았다. 여인의 얼굴을 보려던 사 의 눈은 여인의 얼굴 위에 멈추지 못하고 좀더 구을러 갔 다.

좀더 구을던 눈은 도로 여인의 얼굴로 돌아왔다.

사의 눈은 여인의 얼굴 근처에서 좌우로 헤매었다. 안 보 려고 눈을 다른 데로 구을리려 하던 눈은 딴 데로는 가려 하지 않았다. 보려고 눈을 여인의 얼굴에 멈추려면 그 눈은 부신 듯이 저절로 딴 데로 굴렀다.

아름다운 얼굴이었다. 이십 살 전후, 기껏 핀 얼굴이었다.

길에 피곤한 듯한 여인의 눈자위는 더욱 고혹적이었다. 이 마에 몇 방울 맺힌 땀은 여인의 얼굴을 더욱 매력 있게 장 식하였다. 이미 속세(俗世)의 온갖 인연을 끊고 속세의 온갖 욕심을 잊었다고 스스로 굳게 믿고 있던 박박사였다. 그러 나 오랫동안 굶주렸던 그의 성욕(性慾)은 이 외딴 곳에서 아 름다운 여인을 볼 때에 맹렬히 부활하였다.

한참을 여인의 얼굴 근처에서 헤매고 있던 눈을 사는 힘있 게 닫았다. 그때에 여인은 무슨 종이를 한 장 꺼내어 사에 게 바쳤다. 감았던 눈을 다시 뜨고 보니 거기는 한귀의 시 가 적히어 있었다.

行■日落千山暮
路隔城遙絶四隣
今日欲投庵下宿
慈悲和尙英生瞋

잠시 이 시를 들여다보고 있다가 박박사는 종이를 도로 여 인에게 내어주며 눈을 감으며 문을 닫았다.

『이 암자는 도를 닦는 곳─ 젊은 여인을 들일 수는 없소 이다.』

그러나 여인은 다시 문을 두드렸다

『대사님, 저를 들여 주세요. 날은 이미 어두웠는데 어디로 가랍니까? 더구나 사자까지 출몰하는 험한 산골─』

『안됩니다. 안돼요. 여기는 여인이 들어올 곳이 아니외 다.』

『대사님, 들여 주세요.』

그냥 문을 두드리는 여인을 버려두고 박박화상(朴朴和尙)은 안으로 창황히 들어왔다.

『나무아비타불, 나무아미타불!』

아직도 자기 마음에 강렬히 박혀있는 성욕의 불길에 놀란 박박사는 연하여 나무아미타불을 외면서 귀를 막고 여인의 부르짖음을 듣지 않으려 하였다.

한참ㄹ응 문을 두드리던 여인은 하릴이 없든지 저편으로 가버리는 모양이었다. 여인을 돌려 보낸 뒤에 박박사는 기 다란 숨을 내어쉬었다. 그러나 그의 마음의 한편 구석에서 는 「아깝다」는 생각도 꽤 많이 움직이고 있었다.

박박화상이 여인을 돌려보내고 알끈하게 생각하면서도 안 심(安心)의 숨을 기다랗게 내어쉴 동한, 판방(板房)에서 쫓 겨난 여인은 어두운 길을 더듬어서 부득사의 암방(岩房)을 찾아갔다.

부득화상 역시 저녘을 방금 끝낸 뒤에 설겆이를 하고 있다 가 문 두드리는 소리에 나와 보았다. 그런데 거기는 뜻밖의 웬 아리따운 여인이 하나 서서 문을 두드리는 것이었다.

『이 그런 산골에 날도 저물었는데 어디를 가시는 길이오 니까?』

화상은 의아히 여기어 여인에게 이렇게 물어보았다. 거기 대하여 여인은 공손히 머리를 숙이며 대답하였다.─

『지나가던 행객이올시다. 날도 저물었으니 하룻밤만 묵어 주시기를 바랍니다.』

『길이 없는 이 산골을 어디로 향해서 가시던 길이오니 까?』

이 질문에 여인은 화상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잠시 뒤에야 대답을 하였다. 부끄러운 듯이 머리를 숙이며─.

『네─ 사실을 말씀 드리자면 어디로 가던 길이 아니올시 다. 이 산골에 어디라 길이 있겠읍니까. 대사님의 덕행이 너 무도 높이 들리기에 한 번 찾아뵈옵고 지도해 주심을 받고 자 왔읍니다. 용납해 주세요.』

그리고 여인은 이런 시를 화상에게 바쳤다.

日暮千山路
行行絶四隣
竹松陰轉邃
溪洞響猶新
乞宿非迷路
尊四欲指津
願惟從我請
且莫間何人

화상은 이것릉 보고 여인의 얼굴을 다시 보았다.

아름다운 눈과 아름다운 얼굴과 아름다운 몸과 터질 듯이 발육된 몸집의 소유자이다. 그리고 자세히 보면 볼수록 이 미 세상의 욕망을 끊은 지 오랜 부득화상의 마음도 능히 움 직이게 할 만한 젊음의 매력으로 차 있는 여인이었다.

이러한 아름다움을 볼 때에 부득사의 마음도 적이 동하였 다. 호기심과 거기 아우르는 기괴한 감정이 부득사의 마음 한편 구석에서 무럭무럭 일어나기 시작하였다.

이 세욕(世慾)이 아직 남아있는 것은 부득에게는 불쾌한 일 이었다. 이미 자기는 세욕을 잊은 사람이로라고 굳게 믿고 있던 그였다. 그렇거늘 아직도 적지 않게 세상의 잡욕이 남 아있었다. 부득사도 여인을 그냥 돌려보내려 하였다. 여인을 암자에 들였다가는 아직껏 닦았던 도에 흠집이 생기기가 쉽 겠으므로 이것을 피하기 위하여였다. 여인을 그냥 돌려보내 자. 부득화상은 이렇게 마음먹고 다시금 눈을 부요히 굴려 서 여인의 얼굴을 보았다.

그러나 다시 연인의 얼굴을 볼 동안 화상의 마음에는 다른 생각이 들었다.

세욕을 피하는 것뿐이 재간이 아니다. 할 수 없이 금욕(禁 慾)을 하는 것은 범인(凡人)이라도 능히 할 일이다. 욕심과 정면으로 충돌을 하여서 능히 여기 이겨야만 완전히 탈속을 하는 것이다. 피하지 말고 정면으로 부딪치자. 그리고 거기 이기자─ 이렇게 생각을 돌리고 화상은 허리를 굽혔다.

『여기는 원래 여인금제(女人禁制)의 곳이지만 그렇다고 밤 중에 인가 없는 곳에 돌려보낸다는 것도 곤란하실 테니까 그럼 하룻밤만 묵어 가십시오. 그 대신 내일 아침은 일찌기 떠나시오.』

이리하여 여인은 단간 암자에 부득화상과 하룻밤을 지내게 되었다.

화상은 자기가 쓰던 단벌 이부자리를 여인에게 내어 주었 다. 그리고 자기는 한편 모퉁이에 웅크리고 누웠다. 비록 한 편 모퉁이라 하나 좁다란 단간 암자─ 중앙과 구석과 그다 지 차이가 없는 곳이었다. 눕기는 누웠다 하나 이상한 마음 의 흥분을 화상은 참을 수가 없었다.

여인의 숨소리가 굉장히도 크게 화상의 귀에 들렸다. 움직 일 때마다 옷과 이불의 부석거리는 소리가 화상의 귀에 송 곳과 같이 콕콕 찔렸다. 때때로 들리는 여인의 잠소리에는 화상은 몸을 소스라치고 하였다.

여인이 몸을 한 번 뒤칠 때마다 이불 틈에서 젊은 여인의 체취(體臭)가 강렬하게 화상의 코로 몰려오고 하였다.

더구나 화상은 이전의 처자를 거느리고 살아본 경험이 있 는 사람이라, 여인에 대한 온갖 망상과 기괴한 마음의 동요 는 각일각 커갔다. 여인이 몸을 뒤채일 때에 그의 덮은 이 불귀가 화상의 몸을 건드릴 때마다 화상의 온 몸에 소름이 돋고 하였다

「구원해 줍시사!」

흥분과 강도의 성욕 때문에 거의 정신을 잃을 듯이 되어서 화상은 몇 번을 이렇게 부르짖었다. 잘못하다가는 자기가 판 함정에 자기가 빠질 듯싶었다. 화상은 여인을 그냥 돌려 보내지 않고 끌어들인 자기의 어리석은 행동을 뉘우쳤다.

밤은 차차 깊어갔다. 밤이 깊어갈 수록 화상의 마음은 더 욱 더 흥분되어 갔다. 이러한 가운데서 화상은 마음으로 열 심히 미륵불을 생각하면서 미륵께 자기의 이 사념을 삭아지 게 해 주도록 빌고 또 빌었다. 자칫하면 야욕의 구렁텅이에 빠질 듯 그래서 다. 이 구렁텅이에 빠지지 않으려 화상은 몸을 와들와들 떨면서 누워 있었다.

어서 날이 밝기만 기다렸다. 날이 밝기만 하면 이 무서운 구렁텅이에서 저절로 구원당할 듯이 생각되었다. 그래서 밤 만 밝기를 기다리고 또 기다렸으나 이 밤은 왜 그다지도 길 었던지 시간이 조금도 가지를 않았다.

이러한 때에 야반(夜半) 곤하게 잠들었던 여인이 문득 그 곤한 잠에서 깨어났다. 그리고 기다란 숨을 한 번 쉬면서 몸을 뒤채었다.

몸을 한 번 뒤친 여인은 이상한 신음 소리를 내었다.

『아이구, 아이 배야!』

이 한 마디를 군호 삼아 가지고 그 뒤부터는 여인은 배를 웅크리고 빙빙 돌면서 신음을 하였다. 여인이 몸을 뒤칠 때 마다 여인이 덮었던 이불은 부득화상의 몸까지 씌웠다. 벗 겼다 하였다. 젊은 여인의 강렬한 체취는 쿡쿡 화상의 코를 찔렀다. 화상은 더 참을 수가 없었다. 그냥 더 누워 있다가 는 사음계(邪淫戒)를 깨뜨릴 게 분명하였다. 화상은 벌떡 몸 을 일으켰다.

『손님 왜 그러시오?』

할 수 있는대로 연인에게서 멀리로 가노라고 밑구멍으로 담을 뚫으며 부득화상은 이렇게 물었다.

여인이 신음 가운데서 겨우 대답했다.

『대사님, 갑자기 복통이 납니다. 미안하지만 좀 간호에 주 십시오. 배를 좀 쓸어 주십시오.』

큰일 난 주문(注文)이었다. 그러지 않아도 마음이 어지럽게 되어서 걱정인 부득화상은 또 여기서 젊은 여인의 복통을 간호하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다.

화상은 불을 켰다. 그리고 멍석을 준비하고 그 위에 여인 을 옮긴 뒤에 몸소 여인의 등과 배를 쓸어 주기 시작하였 다. 손바닥으로 감각하는 젊은 여인의 부드러운 살맛과 배 의 온기(溫氣), 젖가슴의 탄력 등은 화상으로 하여금 와들와 들 떨게 하였다.

입으로 염불을 외우며 눈을 힘있게 지리감고 화상은 정신 없이 여인의 온 몸을 주물렀다. 때때로 여인은 기다란 날카 로운 신음성을 내며 화상에게 매어달리면서 화상을 쓰러안 는 때도 있었다. 어떤 때는 화상의 손을 끌어 당겨다가 자 기의 배를 쓸면서 감히 만져서는 안될 곳까지 손을 끌어 가 는 때도 있었다. 그런 때마다 화상은 숨까지 딱딱 막혔다.

심장의 고동이 너무 뛰다 못하여 멎은 때도 있었다.

「사람 누구에게나 욕심이없겠느냐? 그 욕심을 넉넉히 참 으면 거기 도(道)의 궁극(窮極)이 있다.」

이렇게 단단히 마음먹고 부득화상은 참지 못할 욕망을 용 히 참았다. 그리고 몸을 사시나무같이 와들와들 떨면서 젊 은 여인의 배며 등이며 허리며 다리를 쓸고 주무르고 하였 다.

『좀 어때요?』

『대사님 전 곧 죽겠어요.』

여인은 와락 달려들면서 목을 쓰러안으며 자기의 부드럽고 뜨거운 볼을 화상의 뺨에 비비어대는 것이었다. 그렇지 않 으면 힘을 다하여 화상의 허리를 쓰러안고 이불 속으로 끌 어들이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도 모두 화상은 잘 참았다. 혀를 깨물고 스스 로 넓적다리를 피가 나도록 꼬집으며 이 야비한 욕심을 물 리쳤다. 이리하여 한각이나 거진 화상의 간호를 받은 뒤에 여인은 조금 진정이 되었다.

그러나 조금 진정이 된 듯한 여인에게서 또 다시 어려운 주문이 나왔다.─

『대사님 고맙습니다. 덕택에 아픈 것은 조금 나았읍니다.

그러나 언제 또 다시 아프게 될지 모르겠으니깐 다시 아파 지기 전에 목욕을 좀 해야 하겠읍니다. 어려우시겠지만 목 욕을 좀 시켜 주세요.』

더욱 큰일 난 주문이었다.

두 간(間)도 안되는 좁다란 방에서 여인이 벌거벗고 목욕을 하겠다기만 해도 큰 일이거늘 더구나 부득화상에게 목욕을 시켜 달라 하는 것이었다.

벌거벗은 몸집, 부드러운 살, 동이 같은 엉덩이, 앞가슴, 이 런 맨살을 화상에게 씻어 달라는 것이었다.

이 지난(至難)의 주문 앞에 화상은 잠시 눈을 감고 생각하 였다. 그러나 화상이 눈을 뜰 때는 그의 얼굴에는 굳은 결 심이 역연히 나타나 있었다.

시켜 주자! 아직껏 참았으랴. 아직껏 참은 그 기운으로 잠 시를 더 참자. 이것을 참아서 넉넉히 이기면 그때는 나도 보통 사람의 경지는 넘어설 것이다. 자, 용기를 내어서 목욕 을 시켜 주자!

이렇게 결심하고 화상은 나가서 솥에 물을 데워서 그 더운 물을 커다란 함지박에 담아 가지고 방 안으로 들어왔다.

화상이 물을 가지고 들어오매 여인은 염치를 불고하고 옷 을 활활 벗어던지고 함지박으로 들어갔다.

화상은 보았다. 보아서는 안될 곳을 다 보았다. 벌떡벌떡 날뛰려는 마음을 억지로 누르고 화상은 죽은 듯이 있었다.

여인은 물에 들어가서 철썩철썩 두어 번 몸소 씻어 보더 니,

『자, 미안하지만 여길 좀 씻어 주세요.』

하고 화상을 청하였다.

화상은 기계와 같이 앞으로 나갔다. 그리고 역시 기계적으 로 여인이 씻어 달라는 곳을 씻어 주었다.

여인은 별별 곳을 다 씻어 달라고 지시하였다. 화상은 눈 을 지리감고 여인의 지시하는 곳을 한 마디의 응답도 없이 골고루 골고루 씻어 주었다.

부드러운 맛, 온기(溫氣) , 젊음의 탄력, 체취, 젖가슴의 뭉클한 감촉─ 이미 잊어버 렸던 이런 온갖 감각을 여기서 화상은 다시 맛보았다. 오랫 동안 잊었던 감각이니만치 화상의 마음을 뛰놀게 하는 힘은 더욱 컸다.

『하─, 하─』

괴로운 숨을 연하여 내쉬면서 그 촉감에서 받는 충동 때문 에 몸을 사시나무같이 떨면서 화상은 기계적으로 주물렀다.

『대사님 여기를! 이 아랫배. 자꾸 아파요, 아랫배에 더운 물을 좀 끼얹으며 쓸어 주세요.』

『네─』

깊은 밤, 외딴 산골 단간 암자에서 부득화상은 정체 모를 여인의 알몸을 씻어 주고 있었다.

목욕도 거진 끝났다.

목욕이 거진 끝난 그때였다.

죽어라 하고 눈을 지리감고 있는 부득화상의 코에는 문득 이상한 향내가 들어 왔다.

무럭무럭 어디서 나는지 알 수 없는 그 향내─ 그리고 인 간 세계에서는 아직 맡아보지 못한 그 향내는 그윽히 부득 화상의 코를 찔렀다.

이 이상한 향내에 화상은 아직껏 굳게 감고 있던 눈을 떴 다. 눈을 뜨고 보매 여인이 멱을 감고 있는 물이며 함지박 은 황금빛으로 변하고 그 근처 일대에는 부연 광채가 돋치 고 있었다. 뿐만 아니었다. 이 냄새를 맡고 이 광채를 보는 순간 아직껏 화상의 마음을 지배하고 있던 온갖 잡념은 씻 은 듯이 없어지고 그의 마음은 온화한 고덕(高德)으로 회복 되었다.

화상은 눈을 고요히 들어서 여인을 바라보았다. 함지박 안 에서 벌거벗고 몸을 씻노라고 돌아가던 여인─ 조금 전까지 도 그렇듯 화상을 괴롭게 하던 그 존재였거만 지금은 그의 마음을 손톱만치도 움직이지를 못하였다.

여인의 얼굴에서 차차 아래로, 뱅어와 같이 하얀 몸에 금 빛(金光)이 도는 것을 훑어 볼 동안도 화상의 눈은 고요히 구을렀다. 멱을 감고 있던 여인의 눈에는 흐르는 추파(秋波) 가 있었다. 여인은 입을 열었다.─

『여보세요, 대사님! 대사님도 벗고 이 함지박으로 들어와 주세요.』

지난중(至難中)의 지난의 주문이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이 주문까지 만나면 파계(破戒)를 하거 나 그렇지 않으면 도망할수 밖에 없던 화상이었다. 그러나 이때는 벌써 그의 마음이 저으기 내려 앉은 때였으므로 그 는 서슴지 않고 자기의 입었던 옷을 훨훨 벗어버리고 함지 박 안으로 들어갔다. 함지박 안 여인의 가리키므로 들어가 매 화상의 마음은 갑자기 상쾌하여지며 세상의 온갖 사물에 눈이 떠지는 듯하였다.

화상을 함지박 안으로 끌어들인 여인은 손으로 물을 퍼서 화상의 몸에 끼얹었다. 여인이 끼얹은 물이 닿는 곳마다 화 상의 몸은 금빛으로 변하였다. 그리고 화상이 거기 놀라는 동안 곁에서는 연대(蓮臺) 일대가 홀연히 솟아나왔다. 그리 고 지금껏 화상의 곁에서 화상에게 물을 끼얹고 있던 여인 이 문득 변하여 관음보살의 형상이 되었다. 보살은 부득화 상을 붙들어서 연대(蓮臺) 위에 올라가게 하였다. 그리고 그 낭랑한 음성으로 말하였다.─

『나는 관음보살의 화신(化身)─ 사(師)를 시험해 보기 위 해서 여인의 몸을 빌어 가지고 왔던 것이다.』

이 기이한 공경에 부득화상은 황급히 그 앞에 꿇어엎디었 다. 삼배 구배 화상은 보살께 절하였다.

잠시를 보살에게 절을 하다가 보매 보살의 형상은 어느덧 사라졌다. 그리고 거기는 자기 혼자서 활불(活佛)이 되어서 연대(蓮臺) 위에 앉아 있었다.

이튿날 아침이 되었다.

어젯밤에 찾아온 여인을 쫓아 돌려보낸 반박화상은 아침에 부득화상을 찾아보기로 하였다. 자기는 어젯밤 힘있게 여인 을 쫓아 보냈지만 자기에게 쫓겨난 여인은 물론 부득사의 암방을 찾았을 것이다. 자기는 능히 여인을 그냥 돌려 보냈 지만 부득사는 혹은 여인에게 유혹을 당하였을는지도 모르 겠다. 이렇게 생각하고 박박화상은 부득화상을 찾아오게 된 것이었다.

암방에 가까이 이른 박박화상은 먼저 암방 근처를 감싸고 있는 이상한 광채에 놀랐다. 암방과 그 일대는 무엇이라 형 언할 수 없는 이상한 광채에 싸여 있는 것이었다. 뿐만 아 니라, 암방에서는 하늘로 향하여 한 줄기의 황금빛이 길게 뻗치고 있다. 차차 더 가까이 가매, 인간에서는 도저히 맡을 수 없는 향기로운 냄새가 코를 찔렀다.

이상한 빛과 이상한 향내─ 먼저 이런 일들에 놀라면서 암 방까지 이르러서 암방을 열 때에 박박사의 눈에 문득 비친 것은 어떤 일인가?

암방 안에는 일좌의 연대(蓮臺)가 있었다. 그리고 미륵존 (彌勒尊)과 형상이 같이 된 부득사가 목에는 단금(檀金)을 채색(彩色)하고 빛나는 몸으로서 단연히 연대 위에 앉아 있 었다.

이 존엄하고도 기이한 광경에 박박사는 뜻하지 않고 그 자 리에 엎드려서 절하였다. 그리고 부득사에게 어찌된 셈인가 를 물었다.

부득사의 말을 다 들은 박박사는 길게 탄식하였다. 그리고 다시 절하였다.

『죄 많은 박박은 먼저 대성(大聖)께 뵈옵고도 알아보지 못 했는데, 존사(尊師)는 대덕지인(大德至仁)해서 이러한 영광 을 입었으니 원컨대 존사는 옛날의 의를 잊지 말아 주십시 오.』

이 박박사의 말에 부득불(夫得佛)은 눈을 감고 염불을 외우 며 아직 많아 있는 함지박의 물을 박박사의 몸에 발라주었 다.

그 물을 바른 박박사의 몸도 어느덧 황금빛으로 변하였다.

그리고 무량수불(無量壽佛)로 화하였다.

여기 두 활불(活佛)이 엄연히 출현을 한 것이었다.

이 소문은 어느덧 사면에 퍼졌다. 뭇 사람들은 활불께 절 하고자 이 산으로 모여들고 이 두 활불을 끝없이 칭송하였 다.

얼마 뒤에 두 활불은 구름에 싸여서 멀리 천외(天外)로 비 행하여 자취를 감추어 버렸다.

신라 경덕왕(景德王) 즉위 천보(天寶) 십사년에 왕께서는 특별히 사람을 보내서 대가람(大伽藍)을 세우고 백월산(白月 山) 남사(南寺)라 이름하였다. <三國遺事>에서

(一九三七年 七月 <月刊野談> 所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