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인사담집 1/청해의 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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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은 지금 가장 격렬한 상태였다.

이쪽과 적(敵)이 마주 대치하여, 궁시(弓矢)로 싸우던 상태를 지나서, 지금은 두 편이 한데 뭉키고 엉키어 어지러이 돌아간다. 누구가 이쪽이고 누구가 적인지도 구별할 수 없이, 그저 마주치는 사람을 치고 찌르고― 내 몸에 칼이나 화살이나를 얼마나 받았는지, 그런 것을 검분할 수도 없이, 다만 흥분과 난투 중에서 덤빌 뿐이었다.

전쟁이라기보다 오히려 난투에 가까운 이 소란에 엉키어 돌아가면서도, 무주도독(武州都督) 김양(金陽)은 한 군데 목적한 장소를 향하여 나아가려고 애썼다. 저편 한 사오십 간쯤 맞은편에서, 칼을 높이 들고 어지러이 싸우고 있는 중노인(자포(紫袍)를 입은 것으로 보아, 신분 높은 사람임이 분명하였다)이 있는 곳으로 나아가 보려고, 무척이 애를 썼다.

그러나, 겹겹이 막힌 적아(敵我)의 난투에, 팔 하나를 자유로이 움직일 수가 없을 뿐더러 김양 자신도 또한 칼과 방패로서, 이 전쟁의 당사자의 한 사람인 책무를 다하여야 할 몸이니, 아무리 어려서부터 오늘까지 무인(武人)으로 닦고 다듬고 단련한 철석 같은 몸이라 할지라도, 오늘 아침부터 지금까지 난투를 겪어온 몸이매, 그렇게 뜻대로 마음대로 목적한 곳에 나아갈 수가 없었다. 자기 몸에 가해지려는 창검을 피하고 막아야 하며, 그러는 한편으로는 앞길에 겹겹이 막힌 군사들을, 적(敵)은 거꾸러뜨려야 하고 이쪽은 밀어치우거나 피하거나 해야겠고― 사람으로 꾹 멘 이 전쟁마당에서, 한두 사람을 건너 지나가기도 어려운 일이어늘, 사오십 간 저쪽에서, 간신히 옷빛깔로 존재를 알아볼 수 있는 인물에게 어떻게 접근을 하랴.

그러나 어떻게 해서든 접근해야 할 책무감을 절실히 느끼는 김양은, 아직 몸에 남아 있는 힘과 용기의 있는 대로를 다 써서, 솟아 뛰고, 뚫어 보고, 헤쳐 보고, 갖은 애를 다 썼다. 다 써보았으나, 그의 몸은 그 자리에서 밀리고 뭉길 뿐이지, 조금도 전진은 못하였다. 마음 조급하기 한량없었다. 이 소란중에서는 고함을 질러야 쓸데없고, 팔을 휘둘러야 저쪽의 주의를 끌 가망이 없었다.

무한 애를 쓰면서도 김양은, 내심 맥이 풀리고 기운이 죽었다. 맞은편 자리의 인물〔紫袍[자포]〕과 모이기는 모이어야 할 것이지만 모인댔자 인제는 쓸데가 없었다. 말은 ‘난투’라 하고 보기에도 ‘난투’같기는 하나, 인제는 ‘난투’의 고비는 지났다. 이편 쪽의 완전한 패배(敗北)이었다. 지금 범벅되어 난투하는 군졸들은, 그 대개가 ‘적’이지, 이편은 얼마가 안 되었다. 적이 적끼리, 어지러이 뭉기는 것이었다. 혹은 적인지 자기편인지 모르고― 혹은, 그것은 짐작하지만 제 몸을 이 어지러운 굴함에서 좀 안전한 데로 뽑아내고자― 소란에 소란을 가하는 것이었다.

지금 김양이 헤매는 근처가 가장 혼잡 분란한 곳이었다. 여기서 열아믄 사람쯤 만 헤치고 나아가도, 거기는 여기 같이는 혼잡되지 않다. 거기서면 앞을 뚫기로 여기보다는 나아 보였다.

하다못해 거기까지라도 나아가고자 김양은, 이 혼잡틈에서 있는 힘을 다 썼다.

숱한 애와 힘과 시간을 삭이어서, 김양은 가장 빽빽한 구덩이에서 벗어났다. 벗어나서는 조금 자유로이 된 팔다리를 움직여서, 앞으로 자포의 중 노인을 향하여 맹진하였다.

“상대등(上大等―벼슬이름).”

김양은 마치 붙안으려는 듯이 양팔을 벌리며, 자포의 중노인을 불렀다.

난군중에 어지러이 싸우던 (상대등이라 불리운) 중노인은 낯을 돌려, 자기를 부른 사람을 보았다.

“오오, 김 도독! 피차 무사한 모양을 보는구려. 우징(祐徵)은 어디 있는지, 예징(禮徵)은 어디 있는지….”

상대등은 이 어지러운 가운데서도, 얼굴에 미소를 띠고 침착한 소리로 응하였다.

“젊은이들이오매 어디 무사히 피했을 줄 생각하옵니다. 상대등, 지금 천금으로 바꿀 수 없는 존귀하오신 옥체, 무사히오신 옥안 우러르오니, 기쁜 말씀 올릴 바이 없사옵니다. 인제 불행 옥체에 조그만 하자(瑕疵)라도 생기 오면, 지하의 선왕과 국인들을 무슨 낯으로 대하오리까. 누추합지만 잠깐 소인의 품안에 옥체 감추시고, 이 호혈을 피하오셔 뒷날의 좋은 기회를 기다리는 것이 온당치 않을까 하옵니다.”

“그도 그럴 듯하지만―.”

한번 사면을 둘러보았다.

“잠깐 엎드려 이야기합시다. 우리가 누구인지 알기만 했다가는 무사치 못 할테니, 시재의 방편으로―. 나 혼자 때보다도 도독까지 와서 두 사람이 모이니, 더 남의 눈에 띄기 쉬워.(두 사람은 거기 웅그리고 앉았다) 자, 도독! 도독의 손을 이 내게 좀 주시오. 그렇지, 그렇게. 도독의 손을 잡고, 이 위난의 마당에서 내 도독께 부탁할 일이 있소이다. 무론 들어 주실 줄은 알고….”

김양은 깊이 머리를 숙였다. 아무런 부탁 내지 명령일지라도 듣겠읍니다는 뜻이었다.

“다른 게 아니라, 내 이미 늙었고― 늙으면 참 할 수가 없어. 당연히 될 일도, 이게 능히 될까…고 의심이 간단 말이지. 이미 늙어 여생도 얼마 못 되겠거니와, 이렇듯 심신의 기력이 줄어 없어진 내가 무슨 변변한 일을 하겠소. 모든 일을 사퇴하고 물러앉겠으니, 뒤에 남는 우징(祐徵)이를 도독이 돌보아주시오. 아직 철모르는 소년이지만 본질이 그다지는 못나지 않은 것 같아. 좋은 보호자가 잘 가꾸기만 하면, 쓸모도 있음직해. 이 소란의 마당에서 무슨 상세하고 분명한 부탁을 하리까. 이만치만 하면 도독이 알아 처리할 테니까― 그러니 부탁은 그만치 하고, 자, 나는 여기서 동쪽으로 빠져나갈테니, 도독은 서쪽으로 빠지시오. 요행 둘이 다 무사히 상봉할 날이 있으면 그런 기쁜 일 다시 없거니와, 못 만난대도 부탁은 부탁으로, 자 서쪽으로. 표적나는 웃옷 벗어버리고―.”

“아이, 상대등― 한마디만, 꼭―.”

그러나 상대등은 못 들은 듯이, 몸을 빼쳐서 난군틈으로 끼어들었다.

김양은 뒤따라 일어서서 미친 듯이 팔을 저으며 상대등을 부르며, 그 뒤를 따르려고 난군틈으로 끼어들었다.

그러나 두 걸음 세 걸음 나아가다가, 유시(流矢) 한 대를 등에 받고 그 자리에 넘어졌다. 그러나 그의 신분을 아는 자 없어서, 이를 자랑하여 공을 세우려는 적도 없었고, 이를 보호하여 고토에 안장시키려는 이편 쪽도 없었다.

때는 신라 흥덕왕(興德王) 십일년 섣달, 흥덕왕 방금 승하하여 나라는 국상 중이었다.

일찌기 흥덕왕은 왕위에 오르기 전에 장화(章和)부인이라는 사랑하는 배필이 있었다. 흥덕왕이 왕위에 오르자, 부인은 ‘왕후’의 영화를 누려볼 겨를도 없이 불행히 승하하였다.

장화부인을 끔찍이 사랑하던 왕은 부인 떠난 뒤 다시 새 왕후를 맞지 않고, 먼저 간 장화부인을 사모하는 쓸쓸하고 애타는 왕생애를 십일 년간 보내다가, 당신도 부인의 뒤를 따른 것이었다.

그런지라 적(嫡)출 왕자가 없었다. 따라서 왕이 승하하면 국가적으로 뒤를 이을 주인이 없었다. 왕족 중에서 가장 가깝고 영특한 분을 모시어다가 위를 맡길밖에 없었다. 왕후라도 있으면, 이 중임의 일부를 의논이라고 할 것이나, 이 왕께는 왕후도 없었다. 가까운 종친으로는 당제(堂弟) 상대등(上大等) 김균정(金均貞)과 균정의 아들 시중(侍中) 우징(祐徵) 및 또다른 당제(堂弟)의 아들 김제륭(金悌隆)(제륭의 아버지는 세상떠났다)이 있었다.

김균정과 우징의 부자, 김제륭―이렇게가 가까운 종친이었다. 따라서 흥덕왕이 승하하면, 김균정과 김제륭 가운데 후계 임금이 날 것이었다. 균정이나 제륭이나 둘 가운데 한 사람이 양보하지 않으면 당연히 왕위계승의 쟁탈전이 벌어질 것이었다.

태종무열왕의 2세 손이요, 이 나라 가장 명문의 하나인 김양(金陽)은, 흥덕왕 승하 때에 무주도독(武州都督)으로 임지(任地)에 있었다.

국왕 승하의 슬픈 보도를 받고 그는 서울로 달려 올라왔다. 현왕 승하하면 당연히 왕위계승의 문제로 분쟁이 일어날 것을 짐작하고, 거기 한팔 쓰려고 달려온 것이었다.

양은 균정과 가까이 살았다. 어렸을 때부터 균정을 모시며 자랐으니만치 균정의 위인을 잘 안다. 대행왕께 적왕자(嫡王子)가 있었으면 다른 말 쓸데 없지만, 그렇지 못하면 균정이야말로 후계왕(後繼王)으로 가장 적임자라고 양은 굳게 믿는다. 그 인품, 인격― 천 년에 가까운 이 사직을 물려받을 중 한 자리라, 소홀히 결정하였다가는 큰일이다.

양이 잘 아는 바, 균정은 어느모로 뜯어보아도 추호 부족한 데가 없는 인물이다. 더우기 만약 균정이 그 자리에 아니 오르면 당연한 순서로 거기 오를 사람인 김제륭은 사람이 약하고 게다가 좀 경망하였다. 임금이 되기에는 부족하였다.

만약 균정이라는 사람이 없고, 제륭 단 혼자면 세부득이하지만, 균정이라는 훌륭한 적임자가 있고야, 왜 부족한 이를 위에 모시랴.

그렇게 되면 그것은 국가의 괴변이다. 이런 괴변이 생기지 않도록 사전(事前)에 방지하기 위하여, 양은, 황황히 국상중의 서울로 달려온 것이었다.

달려와서는 그래도 좀 주저하는 균정을 등 밀다시피 해서 적판궁(積板宮)으로 들여 모시었다. 일가 병사(兵士)들로 숙위케 하였다.

일이 이렇게 되매, 경쟁자인 파에서도 가만 있지 않았다. 군사를 풀어 적 판궁을 둘러쌌다.

양은 여기 오산(誤算)을 한 것이다. 균정을 대궐로 모시어 즉위케 하고, 국왕의 명으로 호령하면, 그 뒤는 일이 순순히 될 줄로 믿었다. 국왕의 명령에 거역하면 이는 즉 반역이니까…. 그렇기 때문에 충분한 병력(兵力)의 준비도 없이 즉위의 절차부터 하였던 것이었다.

그러나 제륭의 파에서는 균정을 왕으로 여기지 않고, 따라서 균정의 호령을 왕명으로 알지 않고, 양이 궁문에 나서서, 신왕이 여기 계신데 너희들은 어찌 반역을 하느냐고 호령해 보았지만, 거기 대한 대답으로는 화살을 보낼 뿐, 더욱 포위를 굳게 하고, 싸움을 돋우었다.

하릴없었다. 수 적은 군사로써, 몇천의 적(敵)과 싸우지 않을 수가 없었다.

저쪽은 하도 수효가 많은지라, 서로 자기네끼리도 밟고 밟히어 죽는 무리가 적지 않았지만, 적은 인원으로 많은 사람과 싸우느니만치, 이편은 마침내 전멸당하였다.

이쪽의 수령격인 김양이 유시(流矢)에 맞아 거꾸러지는 그때쯤, 동편으로 뚫고 나가던 균정은, 그의 채 벗지 못한 자포(紫袍)의 탓으로, 제륭(悌隆) 파의 손에 비참한 최후를 보았다.

제륭은 그의 일파의 옹위로써 왕위에 올랐다. 즉 희강왕(僖康王)이었다.

신왕의 경쟁자이던 균정은 세상 떠났으며, 균정의 아들 김우징(金祐徵)은 어디로 갔는지, 종적이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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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 이르자면 남조선 전라남도. 전라남도에도 남쪽 바다에 완도(莞島)라는 섬이 있다.

지금으로부터 일천 년 전, 완도는 신라의 영토였다. 본시 백제의 영토이던 것이 백제 망하며 신라에 속하였다. 땅이름은 청해(淸海)라 일컬었다.

신라에서는 청해에 진을 두고, 궁복(弓福)이라는 무인(武人)을 대사로 보냈다.

본시 궁복은 용력이 있는 사람으로, 일찌기 당나라에 가서 오래 있었다.

있으면서 본 것이, 당나라 사람들이 늘 신라로 건너와서 신라인을 잡아다가 종으로 부려먹고 종으로 매매하는 일이었다. 제나라 사람들이 이런 비참한 일을 당하는 것을 분하게 생각하여, 본국으로 돌아와서 왕(흥덕왕 때)께 아뢰어 신라와 당의 요로(要路)인 청해에 진을 두게 하였다.

나라에서는 궁복으로 이 청해진의 대사(大使)를 삼았다. 궁복이 청해를 지킨 이래로는, 신라인 약탈 매매의 폐단이 없어졌다.

내지(內地)에서는 흥덕왕이 승하하고 그 뒤 얼마 옥신각신하다가 희강왕이 보 위에 오른 지도, 제이년째 되는 해 오월. 희강왕의 아래서 왕의 조카뻘 되는 김명(金明)이 상대등(上大等)이 되어 나라의 권세를 한 손에 잡고 흔들고 있었다.

내지에는 그런 분란이 있었지만 내지와 멀리 떨어져 있는 이 고도(孤島)는, 내지의 바람 내지의 물결 다 관계없이 오직 평화와 안온의 꿈에 잠겨 있었다.

이 외딴 곳에서 독재왕의 노릇을 하고 있는 궁복은, 오월의 상쾌한 해풍(海風)을 받으며 손〔客[객]〕과 마주 한담을 하고 있었다.

젊은 손이었다. 지금 겨우 소년의 역을 지난 듯 만 듯한 소년이로되, 어디인지, 어떻게인지, 사람을 위압하는 위력이 있어, 천병만마지간을 다 다녔고, 무한 거만하여, 웬만한 사람을 사람으로 여기지도 않는 대사 궁복도, 이 소년에게는 자연 굴복하는 태도를 취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월전(月前)에 표연히 이 섬에 들어와서 궁복에게 기탁(寄託)하고 있는 정체모를 소년이었다.

몇 번 소년의 근본을 물어보았지만, 소년은 미소하며 대답을 피하였다. 그러면 궁복은 재쳐 물을 기운조차 꺾이리만치 그 소년에게는 알지 못할 위압력이 있었다.

오월 하풍에 주안을 벌려 놓고, 소년과 마주 앉아 술을 나누며 담소하던 나머지에, 소년에게서 이런 말이 나왔다―.

“대사의 막하에 용졸(勇卒)을 모으면 몇 명이나 되리까?”

“오천은 되오리다.”

“오천… 오천…. 그 오천은 대사의 한 호령에 수화를 가리지 않으리까.”

“그러오리다.”

이것으로 이 대화는 끝이 났다. 궁복은 좀더 캐어 보고 싶었지만, 캐어 본댔자 소년은 슬쩍 피할 것으로 보아, 그만두고 말았다.

그 며칠 뒤, 소년은 궁복에게, 오천 군졸을 좀 빌려달라, 청하였다. 자기가 창안한 결진(結陣)법이 있는데 아직 써보지 못하였으니, 그 군졸로써 시험해 보겠다는 것이었다.

궁복은, 진졸(陳卒)을 소년에게 빌려주었다. 삼사 일 지나서 궁복은, 몸서리치도록 놀랐다. 소년이 군졸들을 데리고 습진(習陣)한 지 단 삼사 일, 소년의 손 아래서 놀아나는 군졸의 실력도 놀랄 만치 진척되었거니와, 그 군졸들이 소년의 한 마디 호령에 복종하기를, 그들의 여러 해 동안의 상관인 자기에게보다 더 순순한 것이었다.

무시무시하였다. 그러나 말없는 위력에 눌려서 거역하거나 괄시할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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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이 흐르기를 한 달… 두 달… 석 달… 넉 달….

그 해도 어느덧 넘어가고, 이듬해(희강왕 제삼년째).

서울서는 왕위쟁탈의 또 한개 괴변이 일어났다.

희강왕의 조카뻘 되는 상대등 김명. 상대등으로 국권을 오로지 하던 김명은, 상대등으로 흔드는 국권만에는 미흡함을 느끼었던지, 딴 장난을 시작하였다. 부하들을 움직이어 먼저 왕의 측근 신하들을, 차례로 없이하였다. 그 없이하는 궁극의 목적을 뻔히 아는 임금은, 당시의 힘으로는 이를 제지하거나 막거나 할 실력이 없어서, 스스로 대궐에서 목을 메어, 당신의 생명을 끊었다.

자기의 손으로 왕을 시(弑)하지 않고도 목적을 달한 김명은 스스로 서서 임금이 되었다. 민애왕(閔哀王)이었다.

청해진에서 이 소식을 들은 정체모를 소년은 한순간 얼굴빛을 변하였다.

그날 저녁 의문의 소년은 대사 궁복과 조용히 (사람들을 물리치고) 마주 앉았다.

비로소 자기의 신분을 말하였다.

균정의 아들 우징이었다. 흥덕왕 승하한 뒤에, 아버지 균정이, 일가 형 뻘의 제륭(희강왕)과 왕위를 다투다가, 아버지 균정이 참패 참사하고, 제륭이 왕위에 오르게 되자, 우징은 신변의 위험을 느끼어 이리저리 피하고 숨어 다니다가, 청해에 겨우 은둔소를 찾아내고 궁복에게 몸을 의탁하고 있던 것이다.

불끈불끈 복수의 생각이 솟고 하였다. 아버지의 원수, 또한 겸해서 암약한 군주에게 첫째로는 사삿 원수를 갚을 겸 또한 국가적으로도 그 가음이 아닌 현 왕께, 좋지 못한 생각이 일고 하였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러니 저러니 하여도 현재의 국왕이요, 선왕을 모해한 찬역지주가 아니매, 자기 일신상으로 보자면 원수이지만, 국가적으로 찬탈왕은 아니다. 자기의 아버지 균정을 떼밀고 등극한 사사로운 원혐은 있지만―이런 관계상 자기 한집안에서는 그를 떳떳한 임금으로 여기지 않았다. 하지만, 국가적으로는 흥덕왕의 뒤를 이은 정당한 임금이다.

그러매 이 임금께 위해를 가하면 이가 즉 반역이다.

그러므로, 반역심과 함께 반역 불가능의 해석을 아울러 가슴에 품은 우징은, 그것으로 늘 내심 번민하였다.

‘성즉군왕 패즉역적(成則君王 敗則逆賊)’이란 말이 그대로 실현되어 현재 제륭이 군왕이 되어 있는 이상은, 그에게 반역하여 역적이라는 칭호(그 때도 역시 성즉군왕이요 패즉역적일 것이다를 뒤집어쓰기가 싫었다.

그러나 또한 사정으로 보든 적판궁(積板宮)에서의 전쟁으로 보든 그냥 방임할 수 없음을 어찌하랴.

이러한 문제에 끼어서 스스로도 자기의 거취를 작정치 못하고 모호한 세월을 보내고 있을 때에, 서울에서의 소식은, 그 문제의 임금의 피시(被弑)를 알린 것이었다.

인제야말로 자기의 손을 들 때가 이르렀다.

지금 왕위에 오른 김명은, 내왕(乃王)을 시한 천하에 무도한 인물이다. 떳떳이 보검을 들어 그의 머리를 벨 수 있다. 국가적 입장에서 보아서….

또한 우징의 사사로운 원혐으로 볼지라도, 선왕(희강왕)은 나약하고 과단성 없는 분으로 연전(年前)의 적판궁의 변란도, 그이의 일이 아니고, 전혀 그이의 뒤에 숨어서 줄을 농락한 김명의 일이었다. 김명의 놀리는 줄에 대행왕은 한 어릿광대로 출연한 데 지나지 못하였다. 그때 그 고약한 줄을 농락하여 대행왕을 보위에 올려 모시고 자기는 상대등이 되어 권세를 천단하기에, 그만치만 알았더니, 혹은 그때부터 벌써 오늘날의 계획을 꾸며 두었었는지도 알 수 없다.

오늘날 대행왕을 시하고 스스로 왕위에 오른 김명은, 국가적으로 시왕(弑王)의 대죄인일 뿐더러 우징 자기에게는 또한 아버지의 원수에 다름없다.

인제는 당당히 문죄의 보도(寶刀)를 높이 들어, 대역무도의 김명을 수죄(數罪)할 수 있다.

문죄 수죄 다 한 뒤에, 마지막에 자기가 새로이 신라 국왕의 위에 오른다면? 이는 망부의 숙지(宿志)일 뿐더러 국인의 마음 향하는 배 또한 이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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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의 근본과 아울러 자기의 마음까지 비로소 궁복에게 말한 우징은, 궁복에게 협력 보조를 빌었다.

무인으로서의 솔직한 성격의 주인인 궁복은 쾌히 응하였다. 더우기 우징이 균정의 아들인 것을 알고는, 궁복 자기도 균정이 임금되기를 희망하더니만치, 자기의 힘자라는껏 우징에게 견마의 노를 다하기를 맹서하였다.

그로부터 이 외딴 섬 청해에서는 일변 군사를 모집하고 일변 조련하느라고 몹시 소란스러웠다.

어떤날 우징은, 종일 군사조련을 하고, 피곤한 몸을 집(궁복의 별저)으로 옮길 때였다.

웬 한 사람이 저편에서 우징에게로 달려왔다. 달려와서는 우징의 앞에 공손히 절하였다.

“시중(侍中)께 문안드리옵니다.”

우징은 그 사람을 보았다. 보고 알아보았다.

“아이구, 이게―.”

“무량하오신 것을 뵈오니 어찌 기쁘온지―.”

“이게 누구요!”

다른 사람이 아니라 김양이었다. 아버지 균정과 적판궁 앞에서 맹전하다가 적시(敵矢)에 맞아 거꾸러졌던 김양.

이래 삼 년간을 생사를 알 수가 없던 양이 홀연히 나타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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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은 살에 맞아 거꾸러졌다가 저녁 때야 피어났다. 피어나 보매 싸움은 어느덧 끝나고, 무수한 시체만 사면에 널리어 참담한 전장을 조상하고 있다.

아직 몸을 쓰기도 거북하였지만 더구나 남의 눈에 뜨일까보아, 양은 벌벌 기어서 차차 전장에서 벗어났다.

그로부터 삼 년간 몸을 숨겨 각곳으로 유리하였다. 의탁하였던 균정은 전장에서 참화를 본 것을 알았지만, 균정의 유고 우징이 이세상 어느 곳에 살아 있을 것이라 보고, 언제든 그를 찾아서 그를 협력하여 고 상대등의 유지를 달성하고자, 이리저리로 해매었다.

그러던 중에, 그 우징이 남해의 고도 청해에 있다는 소식과, 거기서 지금 군사를 모집하고 조련한다는 소식을 얻어들었다.

때가 이르렀다고 양도 일어섰다. 이전의 막하들을 부르고, 군사를 모아서 오천 명이라는 군졸을 얻었다. 이 군졸을 얻어가지고는 곧 무주(武州)를 엄습하였다. 이전에 무주에 도독으로 있었던 관계도 있고 하여, 무주를 엄습한 것이었다. 무주를 엄습하여 손아래 넣고, 다시 남원(南原)을 돌아 신라 본토까지 세력범위 아래 넣은 뒤에, 청해로 우징을 찾아온 것이었다.

우징은 내지로 모셔다가 옛주인의 유지를 달성시키렴에, 부접할 지반이 없고, 군사둘 자리가 없으면 안 되겠으므로, 우선 무주 남원 등지를 손에 넣은 뒤에 비로소 청해로 우징을 맞으러 온 것이었다.

우징, 양, 병졸들, 이 일행은 청해에서 내지로 들어왔다. 우징은 사졸들과 기거를 같이하며 고락을 함께 겪어, 그들로 하여금 이이의 앞이면 죽음이라도 피하지 않을 만한 신망을 얻었다.

그 겨울에 저녁하늘에는 커다란 살별이 나타났다. 그 살별은 꼬리를 동녘으로 향하고 있었다.

이것을 본 무리들은,

‘이는 낡은 것을 제하고 새것을 펴며 원수를 갚고 치욕을 씻을 징조라’

고 서로 기뻐하며 축하하였다.

김양은 평동장군(平東將軍)이라 하였다. 동방을 평정한다는 뜻이었다.

우징의 이름으로 천하에 장군들을 불렀다.

김양순(金亮詢)이 무주군(武州軍)을 인솔하고 달려온 것을 필두로, 천하의 장군들이 우징의 막하에 모여들었다.

우징이, 염장, 정년(閻長,鄭年) 등 여섯 장군으로 하여금 군사를 인솔하고 북을 두드리며 무주성에 들 때 같은 때는 군용이 진실로 당당하고 성하였다.

신왕인 김명에게는 반역군이요 국가적으로는 토역(討逆)군인 이 군대는, 착일착 점령지대를 넓히며 동진하였다.

여러 곳에서 그곳 수장(守將)에게 반항을 받았지만, 반항하는 자는 모두 참패하였다.

신라대감(新羅大監) 김민주(金敏周) 같은 사람은 적지 않은 군사를 끌어가지고 반항을 하였지만 우징의 막하 장군 낙금, 이순행(駱金,李順行) 등이 마병(馬兵)으로써 돌격을 하여 이를 평정하였다. 토역군인지 반역군인지 장차 결과를 보아야 밝혀질 우징의 군대는, 평동장군 김양의 지휘 아래, 옛날의 국경도 무사히 넘어, 동진(東進)을 계속하여 새해 정월 열아흐렛날은 대구(大丘)에 이르렀다. 인제는 서울도 지호간이었다.

요 며칠 전에 선왕을 목매게 하고 스스로 서서 임금이 된 김명은, 관군(官 軍)을 호령하여 나아가 맞아 싸우게 하였다. 관군을 내어보내기는 하고도 왕은 스스로 절망의 탄성을 연하여 내었다. 위에 오른 지 불과 수삼삭, 아직 내 백성 내 군사라고 믿을 만한 사람은 얻지 못 하였는데, 돌연한 이 변란이요, 더우기 변란의 주인인 우징은 그의 아버지의 대부터 관민간에 많은 존경과 애모를 받던 사람이었다.

이러한 입장이매 분명한 패배요 멸망이다.

근신 시종들도 모두 도망가고, 겨우 붙들어 둔 두세 명을 데리고, 왕은 망루(望樓)에서 형편 형세를 살피고 있었다. 대구를 벌써 지난 적군(?) 이매, 관군과는 서울 근교에서 부딪칠 것이다. 부딪치면 그 결과는?

분명한 패배일 줄 알면서도, 그래도 천에 하나의 요행을 기다리는 왕은 시종들과 교외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날은 요행 무사하였다.

자리에 들었으나 잠을 못 이룬 김명 왕은, 전전불매할 동안 삼경 사경쯤 갑자기 소란한 소리가 일었다.

옷도 입은 채였던 왕은 그냥 자리에서 뛰쳐나왔다. 무슨 소리인지 알아볼 겨를도 없이 전외로 뛰쳐나갔다.

어두운 가운데, 엎어지며 넘어지며 대궐 뒷문으로 빠져나왔다. 시종 한 명도 없이―아니, 오히려 시종에게라도 들킬세라 몸을 숨겨서, 이궁(離宮)으로 달려가서 숨어 들었다. 이궁에서도 전에 들지 못하고 헛간에서― 헛간에서도 숨도 크게 못 쉬고 숨어 박혔다.

그러나 하늘은 그의 죄를 용서하지 않았다.

왕을 찾아 본궁으로 달려 들어갔던 병사들은 본궁에서 목적한 사람을 찾아내지 못하고 이궁으로 쫓아와서 이궁에서도 헛간에 와들와들 떨며 숨어 있는 인물을 종내 찾아내었다.

팔자에 없는 왕노릇을 몇 달간 하여 본 대상으로 그는, 아직 좀더 살 만한 생명을 잃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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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징군의 통솔자로 장졸을 인솔하고 왕성안에 들어온 김양은 우선 시민들을 안돈시켰다.

“목적한 바는 김명 한 사람이라, 김명 이미 하늘의 벌을 받았으니 너희들은 마음놓고 경거망동하지 말라.”

그리고, 막하 장령을 돌아보았다―.

“생금하란 흉도는 생금했느냐.”

“네이. 여기 대령하왔읍니다.”

“불러내라.”

김양의 분부로 끌려나온 인물― 그는, 왕(김명)의 가장 심복막하로서, 일찌기 적판궁의 싸움에서는 가장 횡포하고 잔학한 일을 많이 하였고, 지금껏 김양의 적수로 적대해 오던 배훤백(裴萱伯)이었다. 적판궁 싸움에서는 김양을 향하여서 네 대의 살을 쏘아, 양의 다리에 지금까지 상처의 자리를 남긴―개인적으로도 양의 원수였다.

그런 인물인 만치 간도 큰 모양이었다. 열패자로서 승리자인 양의 앞에 끌려나오니만치, 당연히 죽을 것으로 각오를 한 모양으로 맞은편에 딱 버티고 섰다.

양은 훤백을 바라보았다. 빙긋 웃었다. 웃으면서 입을 열었다―.

“충견(忠犬)은 제 주인을 위해 짖는 법이라, 네가 네 주인을 위해 내 다리를 쏜 건 의사(義士)야. 너는 혹은 내가 너를 죽일 줄 알았는지 모르나, 내 어찌 의인을 죽였다는 악명을 후세에 남기랴. 네 집에 돌아가서 가솔을 거느리고 여생을 보내거라.”

그리고 군졸들을 돌아보았다.

“야. 이 사람을 고이 제 집으로 돌려보내거라.”

죽을 줄 알고 죽을 각오로 끌려나왔던 훤백에게는 이 처분은 꽤 의외인 모양이었다. 눈이 휑하니 물러나갈 생각도 않고 양의 얼굴만 쳐다보고 있었다.

어서 물러가란 재촉을 몇 번 받고 군졸에게 어서 나가자는 재촉까지 몇 번 받은 뒤에야 훤백은 그 자리에 넓적 엎드렸다.

“대인! 지난 허물을 관대히 용서해 주신다면, 장차 대인을 위해 이 목숨, 아끼지 않으오리다.”

“오오, 만약 그럴 생각이라면 이 나를 위해서보다, 장차 위에 오르실 나랏님을 위해서 나랏님께 내게 대신으로 바쳐 올려라.”

“그야… 다시 말씀 안 하실지라도….”

“자, 그럼 물러가거라. 예전 김명에게 바치던 충성을 백배하여 새 나랏님께 바치기를 잊지 말아라.”

“어찌 잊사오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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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양의 지휘로 대궐은 깨끗이 수리가 되었다.

천하이 바야흐로 무성하려는 첫여름 사월에, 이 대궐의 새 주인 시중 우징은 만도 시민의 만세성과 백관의 봉영으로 대궐로 들어와서, 구오(九五)의 위에 올랐다.

신무왕(神武王)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