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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인사담집 3/양녕과 정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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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조 5백년을 통하여 가장 찬란한 문화의 꽃을 피웠던 세종대왕의 성대에 생긴 한 개 아름다운 에피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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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덫 나으리 행차시다. "

"쉬—. 붙들렸다가는 춤추이느니라."

거리의 통행인들이 모두 제각기 지껄이며 골목으로 숨어버린다. 그리고 숨어서도 그래도 호기의 눈으로 거리를 엿보고 있다. 이윽고 저편에서는 한 개의 행차가 위세 좋게 나타났다.

궁액(宮掖), 구종 별배들의 호위 아래, 벽제( 除) 소리 요란스럽게 거리를 지나가는 행차.

초헌( 軒)에 올라앉아서 사선(紗扇)으로 얼굴의 반면을 가리우고, 피곤한 듯한 눈을 앞으로 뜻없이 붓고 있는 젊은 공자. 무엇을 생각하는지, 아무 생각도 안 하고 있는지.

곧추 앞으로 향한 눈은 움직임도 없이. 골목골목에 확 차서 숨어 있는 서인(庶人)의 무리는, 들키지 않게 서로 손가락질을 하며 공론을 한다.

"저게 미친 사람일까?"

"암. 그럼."

"보기에는 안 그렇구먼."

"보기와는 딴판이라네."

"흐—응."

자기에게로 향하는 뭇손가락. 자기 위에 부어지는 많은 눈알. 이것을 전혀 모르는 듯이 무심히 초헌 위에서 좌우로 몸을 건들거리며, 대궐로 행차하는 길을 챈다.

어디가 미친 사람일까?

화기 있는 얼굴. 곧추 앞으로 부어진 눈. 도통한 듯한 넓은 이마, 단아한 그의 태도. 어디로 보아도 나무랄 데 없는 당당한 공자이어늘, 그 어느 곳을 미친 사람으로 볼 것인가?

골목에 숨어서, 미친 사람이라 수군거리며 손가락질 하고 있는 서민들도 미친 사람다운 데를 찾아내지 못 하였다. 지금껏 이 서민들이 길에서 많이 본 수많은 왕족 중에 가장 외모로 영특한 분을 골라 내라면, 당연히 이 양녕을 들밖에는 도리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서민들이 가장 영특한 분이라고 생각하던 이 왕자가, 홀연히 대궐과 조정에서 "미친 사람"이라는 명목을 뒤집어쓰고 멀리함을 받았다. 많은 지혜자들이 모인 조정에서 이 왕자를 미친 사람으로 단정한 이상은 물론 미친 사람임에는 틀림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 행차가 지나갈 때마다 우러러보는 외모로는, 이전이나 지금이나 조금도 다른 바가 없이 여전한 영특한 왕자였다.

먼젓번 상감의 맏아드님으로 태어나서 일찍이 왕세자로 책봉이 되었던 이 공자. 그 뒤에는 미친 사람이라는 명색아래 폐사(廢嗣)를 당한 이 공자.

미친 사람이라고 폐사를 당한 후에, 이 공자의 셋째 아우님 되는 충녕대군(忠寧大君)이 대신으로 세자에 책봉이 되었다.

그 뒤에 선왕은 퇴위를 하고 충녕대군이 왕위에 오르게 되었다. 즉 세종대왕.

이리하여 이전에는 '미친 왕자', 지금은 '미친 왕형'인 이 공자.

그러나 이전이나 지금이나 조금도 다름이 없는 잔 대한 장자다운 얼굴에는 보이는 듯 마는 듯한 미소를 띠고, 장안대로를 이리저리로 자유로 휘돌아다니는 것이었다.

"참 아깝구려."

"암, 아깝지."

서민들의 이런 탄식을 그는 듣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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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들의 탄식성을 뒤에 남기고, 대궐에 들어간 양녕은 그의 아우님인 왕(세종대왕)께, 편전에서 뵈었다.

"전하. 신께 삼사 삭(朔)의 수유(受由)를 허하시면 능히 신의 평생지원(平生之願)을 이룰까 하옵는데 성의(聖意)가 어떠하오신지?"

그 날도 형님을 맞이하여 잔치를 베풀고 형제의 의를 들을 때 기회를 보아 양녕은 아우님께 이런 청을 하였다.

"형님의 평생지원이란 어떤 것이오니까. 동생이 왕위에 있어서 능히 이를 수 있기만 한 것이라면 형님의 평생지원이야 못 이루어 드리리까?"

왕도 미소하면서 이렇게 응하였다.

"다름이 아니오라, 서경(西京)은 명승지지로 고래로 이름이 높사오며, 단군·기자의 끼치신 터로 이 나라의 후인으로서 한번 반드시 찾아야 할 곳 — 시절은 바야흐로 춘삼월 꽃때오니, 한번 이름에 듣던 을밀대, 부벽루며, 성천, 무산십리 등 선경을 완상하오며 젊은 호기를 한번 뽑아보오면 겨를 한철의 음산하던 기분을 모두 한꺼번에 씻을 수가 있을까 하옵니다. "

왕은 안정(眼睛)을 굴려서 형님의 얼굴을 굽어보았다. 잠시 굽어보다가 역시 미소하면서 대답하였다.

"형님께서는 서경 미색과 감홍로(甘紅露)의 이름을 들으셨나 보구려."

양녕은 머리를 조금 들었다.

"아니옵니다. "

그러나 얼굴이 붉어졌다.

"만약 전하께서 그렇게 의심하시면 신은 서경 수유의 욕망을 잊어버리오리다. "

이리하여 서경 문제는 그만치 사라져버렸다. 그러나 젊은 공자 양녕의 마음에서는 그 욕망이 아주 사라진 것이 아니었다.

이 호화롭고 활달한 공자.

일찍이 세자로 책봉이 되었었지만, 아버님(태종)왕의 뜻이 자기에게 있지 않고 자기 셋째 동생 충녕에게 있음을 짐작할 때에 스스로 온갖 행패를 다하여 세자라 하는 귀한 자리를 헌신같이 내어 던졌다.

그가 아버님 왕께 폐사의 구실을 주기 위하여서는 진실로 기괴한 행동까지 취하였다.

새덫을 세자궁 뜰에 장치하여 놓고 거기 새가 와서 걸리기만 하면 하던 공부를 집어던지고 뜰로 버선발로 달려 내려가서 그 새를 집어 가지고 놀고 — 이러기 때문에 '새덫 세자' 라는 칭호까지 얻었다 —하였다.

미친 사람같이 대귈뜰에 매 부르는 소리를 하면서 돌아다녔다.

부왕이 상무평강시(常無平康時)에 세자의 몸으로 당연히 함께 부왕을 모실 것이어늘 몸이 아프다고 이를 모면하고 밤에 대궐을 나가서 사흘 동안을 사냥을 즐기다가 돌아온 일도 있었다.

어떤 4월 파일날은 밤에 몰래 궁장을 넘어 나가서 뭇 소인배와 함께 거문고를 뜯으며 관등(觀燈)한 일도 있었다.

젊은 계집을 궁장을 넘겨서 세자궁으로 불러들여서 희롱한 일도 있었다 이런 일을 그는 왜 하였던고? 이런 일을 하면 당연히 폐사가 될 것이어늘 그는 폐사될 것을 알고, 아니 도리어 폐사되기 위하여 이런 일을 하였다.

거기 왕자로서의 슬픔이 있었다.

아버님 왕의 뜻이 자기에게 있지 않고, 자기 동생 충녕대군에게 있는 점을 분명히 안 뒤부터 수일간을 그는 생각코 또 생각하였다.

대궐 안의 생명이라 하는 것은 그야말로 든든한 듯 하면서도 위태롭기 짝이 없는 것이다.

부왕의 뜻이 자기에게 있지 않고 동생에게 있는데도 불구하고 자기가 그냥 세자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가는 언제 어떻게 될는지 알 수가 없을 것이다. 부왕의 뜻에 충녕대군을 세자로 봉하고 싶은데도 불구하고 충녕대군이 아닌 다른 세자가 현존하면 이것은 부왕의 어의에 거슬린 것이다. 부왕의 괄괄한 성미로 보자면 당신의 뜻을 관통하기 위해서는 어떤 일이라도 할 분이다.

이런 입장에 있는 세자로서는 부왕께 자기를 폐사할 만한 구실을 드리어야 할 것이다. 그러지 않았다가는 더 큰화를 불 것이다.

활달한 눈으로 이 점을 통찰한 양녕은 온갖 광태(狂態)를 다 부리어서 자기가 폐사를 자진하여 당해 보려고 노력하였다.

광태를 부리면서도 스스로 눈물을 흘렸다 만약 부왕이 조용히 자기를 불러서,

"나는 네가 마음에 없고 네 동생 충녕이 마음에 있으니 네가 자진해서 물러가거라"고 일른단들 어련히 자기가 물러설 것이 아닐까. 그런데 왜 부왕은 당신의 내심을 똑똑히 맏아들인 자기에게 일러주지 않고 단지 미워만 하시는가.

"아버님, 아버님."

자기가 행하는 매사에 불쾌한 눈을 붓는 부왕께 대하여 양녕은 내심 늘 이렇게 부르짖었다. 그리고 일방으로는 더욱 더 광태를 부렸다.

이 광태가 드디어 물의를 일으켜서 선왕 18년 유월에 정부 육조 삼공신 문무백관이 늘어서서 세자 폐하기를 왕께 청하였다.

물론 왕도 벌써부터 기다리던 일이다. 즉시로 일은 결착이 되어 양녕은 폐사가 되고 충녕이 새로 형의 지위이던 세자로 책봉이 되었다 이리하여 수년. 당년의 부왕도 이제 퇴위하여 상왕이 되고 당년의 세자 충녕이 등극한 오늘, 양녕은 여전히 미친 사람이라는 이름 아래 그의 활달한 모양을 장안에 출몰하는 것이었다 양녕의 아우님인 현왕도 이 모든 내막을 안다. 알기 때문이 이 '미쳤다'는 일컬음을 듣는 형을 볼 때마다 마음이 아프다.

미치지 않은 줄은 뻔히 안다. 그러나 선왕이 미쳤다고 인정한 것을 가벼이 번복치 않자니 또한 이 똑똑하고 활달한 형님을 '광인'으로 취급하기가 매우 마음에 걸리었다 그러므로 아직껏의 전례를 무시하고 특별한 대우로서 이 형님께 대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표면으로는 '광인' 의 대접을 하지 않지 못하는 것이 가슴아팠다.

그러면 선왕은 어떤 까닭으로 이 맏아들을 미워하고 셋째 아드님을 사랑하였나? 여기 대해서는 현왕이 등극한 얼마 안 된 어느 날 현왕이 형 양녕과 함께 선왕 상왕을 편전에 모셨을 때, (그때는 병조판서 조말생이며 참판 이영덕 등등 몇몇 재상도 있었다) 상왕이 여러 신하의 앞에서 양녕을 면책할 말로써 그 속을 짐작할 수 있다.

"내가 너 때문에 얼마를 노심했는지 모른다. 네가 광패해서 고칠 줄을 모르고 근방에 정배까지 보내고 그냥 뉘우칠 줄 모르니, 그렇게도 부끄러움을 모르느냐. 내 일찍이 세 아들을 연하여 잃고, 정축년 주상전 하(현왕)를 탄생할 때는 바야흐로 정도전(鄭道傳) 배(輩)의 난도 있고 하여 마음이 불편하여, 그 때문에 대비(상왕비)와 가장 친밀하던 때라, 주상전하가 내게는 가장 사랑스러운 아들이다. 그렇지만 세자를 책봉함에 있어서 사랑하는 자를 버리고 너를 취하였던 것은 단지 맏이기 때문에 취하였던 바인데 네가 그렇듯 광패하니, 이젠 정부에서 너를 잡아와도 나는 불관할 것이고 육조에서 잡아와도 불관할 것으로 국법의 명하는 대로 너를 처벌토록 할 따름이다. "

이리하여 한 개 광공자로 된 양령.

아우님인 왕은 형님의 입장을 동정하여 어떤 일을 할지라도 관대히 보지만, 아우님에게 달린 신하들은 이 양녕을 대하기를 송충이와 같이 싫어하고 꺼리었다.

왜? 그들도 양녕의 사람됨을 아는지라, 이대로 버려두는 것은 호랑이를 자유로 버려둔 것 같아서 마음이 놓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연방 왕께 양녕의 죄과를 논박하여서 제거해 버리려 꾀하였지만 형님께 대하여 매우 미안한 생각을 품고 있는 왕은, 모든 의론을 물리치고 형님과의 친목을 늘 도모하던 것이었다.

그러나 양녕의 편으로 보자면 이 서울은 시어머니가 많아서 귀찮았다. 무슨 일을 하든 재상들은 그 트집만 잡으려고 애를 쓴다. 이 시어머니들이 없는 곳에 가서 한번 호기롭게 놀아보고 싶었다.

풍문에 듣는 서경.

미색으로 이름높고 미경으로 이름높고 감홍로로 이름 높은 이 서경. 서울의 시어머니들을 벗어나서 춘삼월 꽃시절을 서경 패수(浿水)에 배를 띄워놓고 미색과 미주로 즐기며 가는 봄을 조상하면 얼마나 마음이 호기로울까. 그 사이 삼십 년간을 묵었던 가슴의 티가 모두 한꺼번에 날아날 듯 싶었다.

그래서 오늘 입귈한 길에 왕께 그 청을 드렸던 것이다.

그러나 왕이 먼전 미색과 미주로서 형을 놀릴 때에 양녕은 마음을 꿰뚫어 보인 듯 싶어서 얼굴을 붉히고 다시 말을 못 꺼내었다.

그 날 사택으로 돌아온 양녕은 술을 불렀다.

"으—음, 술이란 뱃속에 들어가면 반드시 취하는 것.

서경서 먹는다고 더 별달리 취하랴. 병풍의 산수를 대동강 청류벽으로 보고, 미색은 — 에라, 서경 미색이 없구나."

혼자서 들이키는 술. 수없이 들이키고, 들이키고는 탄식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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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실의 맏아들로 태어나서 세자로 책봉까지 되었던 몸. 그러나 그 귀한 자리를 헌신같이 차던지고 다시 여생을 호협한 일개 공자로 보내려는 몸.

아우님인 왕이 자기에게 갖는 마음보도 짐작이 가는지라, 이제는 무서울 것도 없다. 만약 아우님이 자기를 조금이라도 꺼린다 하면 장래가 걱정도 되려니와, 아우님이 자기에게 향한 우애로 이제는 넉넉히 알겠는지라 재상들이 천만어로 참소를 할지라도 튼튼하기 반석 같다. 단지 좀더 자유로이 놀 수만 있으면…….

왕위도 내버린 이상 다시 마음에 안 둘 바다.

부귀영화는 이미 누리는 바, 이 이상 필요하지 않다.

단지 온전히 낡은 껍질을 벗어서 일개 서민으로서 자유로 이 놀았으면……. 산 곱고 물 맑은 곳에 정자나 세우고, 미색으로서 미주나 따르게 하고, 사냥, 유랑, 풍월로 여생을 보내면.

이 이상 아무 바램이 없는 이 공자는 서경 유람이 마음대로 되지 않으므로 울홧김에 술을 먹고 또 먹었다.

이튿날 아침 깰 때는 아직도 작취미성으로 세상이 몽롱하였다.

"나으리. 정감(대궐 하인)이 아까부터 기침하시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

"어. 정감이? 양녕 서경 유람을 특허하노라 하시는 특지라도 갖고 왔느냐. 어 취해."

활활 소세를 한 양녕. 청지기가 바치는 글을 보매 분명한 어필이었다, 다른 말이 없었다. 대단히 심심하니 장시 입래하여 달라는 왕의 어의였다.

조반을 얼른 먹고 양녕은 곧 입궐하여 방금 아침수라를 끝내신 아우님께 강녕전에 사후(伺候)하였다.

왕의 중형(仲兄)이요 양녕의 동생인 효녕도 입궐하였다.

역시 왕의 부름으로.

그 날 왕과 두 형은 경회루에서 성대한 잔치를 베풀었다. 꽃 우거지고 버들에 새싹 보이는 봄날의 하루를 삼형제는 성대한 잔치로 보냈다.

술과 고기를 싫어하는 효녕.

이런 두 형을 데리고 왕은 잔치를 베풀었다.

그 잔치가 거의 끝날 때에 왕은 양녕에게 작은 말로 물었다.

"경회루 춘색도 서경의 춘색에 못지 않겠지요?"

왕의 오늘 잔치의 목적은 순전히 양녕을 위한 상춘연(賞春宴)이었다. 서경 상춘을 막았는지라 그 대신으로 경회루 상춘연을 꾸민 것이었다. 그러나 양녕은 서경 상춘이 그냥 마음에 걸려있던 때라 불만한 듯이 미소하였다.

"경회루도 좋습지만 단기위고(檀箕衛高:단군, 기자, 위만, 고구려)의 풍경이 없습니다. "

"형님께서는 아무리 해도 서경 춘색을 잊으시지는 못하는 양입니다그려."

"잊지는 못하겠습지만 단념은 했습니다. "

적적한 미소로 대답하는 양녕.

"춘색보다도 미색과 미주가 더 유혹되시는 것 아니 오니까?"

"아니옵니다. 절대로 아니옵니다. "

"그러면 형님께서는 절대로 주와 색을 피하시면서라도 서경 유람을 하시겠습니까?"

"서경 유람은 전하께서 불윤하시는 바이니 신 어찌 하오리까?"

"주와 색만 피하시겠다면 허락해 드리리다. "

"유람만 윤허해 주시오면, 신 죽기를 한하고 주색을 피하오리다. "

"맹세하십니까?"

"맹세하리다."

"그러면 삼사삭의 수유를 드릴 터이니, 다녀오셔서 평생 지원을 푸십시오. 형님을 생각하는지라 유람을 금하였지, 주색을 피하신다는 이상에야 어찌 형님 평생 지원을 못 이루어 드리리까?"

"황공하옵니다. 성은을 무엇으로 보답하올지."

이리하여 양녕 서경유람의 윤허가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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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 퇴귈하여서 즉시 행차를 차리기 시작한 양녕은, 이튿날 아침은 벌써 행차를 다 차리고, 잠깐 입궐하여 왕께 하직을 하였다. 그리고 서경유람의 길을 떠났다.

형의 길을 근심하여 왕이 몰래 궁액들을 놓아서 알아본 바에 의지하건대 양녕은 어디를 가든지 한 잔술을 받지 않고 연회에 한 계집도 부르지 못하게 하여 어명을 엄하게 지킨다 하는 것이었다. 왕은 미소하였다. 미소하면서도 속으로 쓸쓸히 여겼다.

그 호협하고 술을 즐기는 형 양녕이 술과 계집이 없는 연회에 무료히 앉아있을 생각을 하매, 미안하기도 하였다.

상춘(賞春)! 이름이 상춘이지 술 없이 보는 봄이 무엇이 아름다우랴. 술이 있을진대 미색이 없이 어찌 또한 술이 달랴. 지금 술 없고 미색 없는 이번의 양령의 길은 이름은 좋게 상춘이라 하지만 단지 피곤한 길걸이에 지나지 못할 것이다.

각 읍에서 연달아 들어오는 보고에 의지하건대, 양녕이 읍에 들어서면 먼저 하인을 시켜서 수령들에게 술과 미색을 금할 것을 미리 통지하고, 객사에 들어서는 일찍이 불끄고 자고 이튿날 일어나서 또다시 길을 계속하고 — 이런 무의미한 길걸이뿐이었다 이 호협남아에게 수개월의 수유를 주어서 여행을 하게 하고, 그 여행에서 술과 계집을 떼인다는 것은 단지 여행에 괴롭게 하는 데 지나지 못함이 아닐까?

양녕이 너무도 엄하게 당신의 영을 지키는지라, 왕은 도리어 미안하였다.

여기서 왕은 평안감사에게 밀지(密旨)를 내렸다. 한 개 미색으로서 양녕을 모시게 하되, 양텅이 이를 거절할 터이니 꾀를 써서 가까이 하도록 하라는 뜻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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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취하게 하는 봄길을, 그래도 적적한 심경으로 서경으로 내려가는 양녕. 들어가는 고을마다 술과 계집을 먼저 거절하였다.

술 없이 가는 길은 적적하였다. 서울은 낙화가 시작될 때나, 북으로 내려가는 길은 아직 봄이 무르익었다.

무르익은 봄을 술 한 잔도 없이 보자니 싱거웠다.

그러나 이 싱거운 길임에도 불구하고, 곳곳마다 양녕이 통절히 느낀 바는 이 왕의 어우(御宇)는 진실로 성대하다는 점이었다.

논밭에서 즐거이 농부가를 부르는 농부들. 길을 오가는 상고(商賈)들. 혹은 고을의 거리 관청 어디를 가든지 왕의 덕화가 멀리 펴서 온 백성이 그 아래 멱감고 있다 하는 점이었다.

기름진 논밭, 울창한 삼림, 가득찬 창고, 파발마를 기다리는 기운찬 말. 어디를 가든 어디를 보든 왕화(王化)가 골골이 미쳤다 하는 점이었다.

명군의 아래서 생장하는 이 기름진 강토, 아아, 그 명군은 나의 동생이로다. 내가 끝끝내 버티었더면 그 명군도 종래 명군이 되지 못하고 한 개 왕제(王弟)로서 일생을 마치었을 것이다. 내가 물러서기 때문에 왕위에 오른 이 동생 — 이 명군은 내가 이 강토에 준 바 선물이로다.

이러한 자랑이 무럭무럭 일어났다. 자기가 왕위에 올랐더라면, 과연 동생과 같은 명군이 되었을까? 자기의 인물은 자기로 짐작이 가는 것, 용주(庸主)는 안 되었을 것이다. 패군(悖君)은 안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명군이 되었으리라고는 스스로 단정하기 힘들었다.

가는 곳마다 배를 두드리는 농부와, 화기로 찬 백성들을 볼 때에, 양녕은 스스로 만족히 여기지 않을 수가 없었다.

술이 없는 몸이요, 미색이 없는 잠자리로되, 이번의 길은 결코 염증 나는 길은 아니었다.

이 위에 술과 미색까지 있었으면 얼마나 기꺼우랴.

그러나 현명한 아우님께 굳게 맹서한 바라 양녕은 이 유혹을 물리치고 봄날 한가로운 길을 서경으로 서경으로 내려갔다.

본시부터 광병이 있는 사람이라는 소문이 있던 위에 객사에 들기 전부터 술과 계집을 미리 거절하는지라, 이 광인이나 또한 고귀한 빈객의 노염을 사지 않으려고, 각읍 수령들은 전전긍긍하였다. 그러나 겪고 난 뒤에는 모두 한결같이 의외의 얼굴을 하였다 어디가 광인이냐. 슬기롭고 현명하고 고귀한 이 공자께는 광인다운 곳은 한 곳도 없었다. 오히려 범인보다 훨씬 뛰어난 고결한 인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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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적의 도시. 역사의 도시. 명승의 도시. 또는 색향(色鄕), 감홍로의 도시, 어옹(漁翁)의 도시. 버들의 도시.

그림과 같은 이 도시에 양녕의 행차가 이른 때는 이 서경에도 한창 봄이 무르익은 때였다.

나룻가까지 나와서 맞는 감사의 영접을 받으면서도 양녕이 먼저 부탁한 것은 술과 미색을 피하라는 것이었다. 미리부터 밀지가 내려있던 바라, 감사는 허리를 굽혀 유유낙낙(唯唯諾諾)하였다.

저녁, 감사가 베푼 잔치에 술 없는 싱거운 음식을 끝내고, 감사도 배사하고 본영으로 돌아간 뒤에, 양녕은 데리고 온 하인배와 이곳 통인 몇과 객사에 남았다.

눈을 들어보니 분분히 떨어지는 꽃송이. 객사 앞뜰에 만개하였던 살구꽃이 황혼의 바람에 나부끼어 너울너을 춤을 추는 것이었다.

양녕은 일어섰다. 대청으로 나가서 기둥에 기대어 섰다.

바라보매 황혼의 빛을 받은 집집이 지붕에서는, 저녁 연기가 하늘로 무럭무럭 올라간다.

봄날 황혼에 누운 이 반만년의 도시.

이윽이 바라보고 있는 동안, 양녕의 마음에는 여수(旅愁)가 차차 무겁게 서리었다.

성조(聖祖) 단군이 갈은 터는 어디냐. 기자(箕子)의 닦은 정전은 어디냐. 고구려 효용(驍勇)한 무사들의 말달리던 터는 어디냐. 4천년 지난 일을 설명하는 자는, 오직 말없는 황혼과 말없는 저녁연기뿐이냐!

지금 이씨 사직 반백년 — 태평의 저녁연기 아래 잠긴 이 백성은, 옛날 이 민족 중에 가장 용맹스럽고 말달리고 활 쏘던 그 민족의 후예인가.

"아아, 옛날 무부(武夫)의 후손도 태평성대에 고요히 꿈꾸는구나."

지붕 위로 퍼진 수양버들에 서리는 저녁 연기.

젊은 공자는 객사 대청 기둥에 기댄 채 망연히 서서 4천년 오랜 정취에 잠겨 있었다.

황혼의 날은 어느덧 캄캄하여졌다. 부연 보름달이 동녘 지붕 위에 솟아올랐다.

문득 들리는 한 개의 음률. 그 음률을 따르는 아름다운 목소리, 고요히 회고의 정에 잠겼던 양녕은 귀를 기울였다.

거문고 소리였다. '상부련(喪夫戀)' 의 애곡(哀曲)이었다.

어디서 들려오는지 바람결에 때때로 끊겼다 이었다 하며 날아오는 그 애조.

여수에 잠겼던 양녕의 마음은 저절로 소리로 쏠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부연 보름달. 보름달 아래로 고요히 누워있는 4천 년 고도. 멀리서 들려오는 애연하고도 아름다운 소리.

젊은 양녕의 가슴은 마치 무거운 바위 아래 깔린 듯이 괴로웠다.

달 아래 은연히 보이는 많은 지붕. 그 많은 지붕 아래는 미색도 꽤 많으련만. 색향 서경 — 색향으로 이름 높은 이 서경이라 지붕 아래마다 몇 개씩의 미색이 있을는지도 모르련만.

어명이 엄하거니 서울을 떠난 이래 아직껏 여인이라고 생긴 것은 주름잡힌 할미 하나도 노변에 얼씬을 못하게 하였다.

계집을 본 지 여러 날 된 양녕.

더구나 여수에 잠겨 있을 때에 멀리서 들려오는 아름다운 계집의 소리는 양녕의 마음을 미칠 듯이 흔들어 놓았다.

"어명이 무엇이고—."

술 한 잔, 미색의 따르는 술 한 잔만이라도! 차차 허덕이어 가는 속을 걷잡을 수가 없었다.

"야—. 이리오너라."

"네—이—. "

등대한 통인.

"서경이 본시 색향이라지."

"네이."

"그— "

그러나 뒷말이 나오지 않았다. 어명도 있다. 자기의 맹서도 있다. 이제 새삼스러이 그것을 어찌 꺾으랴,

"저기 저 들리는 것이 기생의 노래냐?"

"그런가 보옵니다. "

들으매 아까 것만 아니라, 가까운 어느 곳에서도 또한 노랫소리가 들린다.

그 뒤를 연하여 여기저기 사면에서 기생인 듯한 노랫소리가 울리어온다.

괴로운 밤이었다.

술이 없을지라도 미색 하나만 미색이 없을지라도 술 한 잔만.

술이나 미색 중에 단 한 가지뿐이라도.

그러나 구할 수가 없었다. 어느 눈치 있는 통인이 몰래 갖다 바치지나 않는가.

자리를 대청에 하고, 묵묵히 떠오르는 보름달을 오뇌의 눈으로 우러러 볼 뿐이었다.

허연 그림자가 뜰 한편 모퉁이에 얼핏 보였다. 곧 눈을 그리로 향하니, 이게 웬일이냐? 어떤 사람이 담에서 후더덕 튀어져 나와서 객사 앞뜰로 뛰어들었다.

월광에 보매 여인. 여인도 젊은 여인. 소복한 여인.

월광이라 분명치는 않으나 아름다운 여인인 듯.

양녕이 그리고 주의를 가할 때는, 뜰 아래 경위(警衛)하고 있던 나졸들도 본 모양이었다.

후더덕 후더덕 나졸들이 그리로 달려가는 듯하더니, 어느덧 여인을 결박지어 뜰 아래 꿇어 엎드려 놓았다.

"네 고얀 계집 같으니, 여기가 어디라고 무심하게 뛰쳐든 단 말이냐."

"죽을죄로 잘못 되었습니다. "

"죽을죄로—."

나졸이 그냥 호령하는 것을 양녕이 알았다.

"너는 어떠한 계집이관대, 여기를 어떠한 곳으로 알고 뛰어들었느냐."

"네이, 소녀는 이 이웃에 사는 계집으로, 작년에 지아비를 여의고 홀로 지나는 몸이온데, 저녁 상식(上食)에 찬물을 준비하옵다가 도둑고양이에게 고기 한 점을 도둑맞고 그 고양이를 쫓아서 여기까지 — 존엄한 안전일 줄도 모르옵고 뛰쳐들었사옵니다. 쇤녀의 지은 죄는 만사무석(萬死無惜)이옵지만 관후하신 처분으로 잔명(殘命)을 빌려주시기를 바라옵니다. "

아름다운 음성, 다소곳이 숙여서 똑똑히 보이지는 않지만, 이마와 콧마루에 나타난 자색으로 미루어 쉽지 않은 미색이었다.

"그래 어디로 해서 들어왔다?"

"네이. 이 객사와 격장(隔墻)하여 있사온데, 그 담이 이번 해토시(解土時)에 무너져서 사람 하나 드나들 만한 틈이 있사옵니다. "

당돌하게 아뢰는 그 언변에, 객고에 오뇌하던 양녕의 마음이 움직이었다.

용서하여 주고 싶었다. 그 핑계가 어디 있을까?

"응, 객사의 무너진 담장을 수리하지 않아서 저런 잡인을 출입하게 했으니 허물은 본관과 반반이라, 계집에게는 다시 그런 짓을 하지 말라고 엄명해서 돌려 보내거라."

이리하여 무사히 끝은 났다.

🙝 🙟

그러나 무사히 결말짓지 못한 것은 양녕의 심사였다.

아리따운 계집. 더구나 주인이 없노라는 계집, 그 위에 자기에게 은혜를 입은 계집. 그 계집은 이 객사와 담 하나 격하여 있다 객사에서 그 계집의 집에는 넉넉히 다닐 길이었다.

그 밤 자리에 들은 양녕은 오뇌스런 가슴을 부등켜 안고 전전(輾轉)히 구르며 잠을 못 이루었다.

아미를 찡그리던 계집, 눈물을 흘리던 계집. 그의 아름답던 음성. 그 모든 점이 눈에 귀에 어릿거려서 잠을 들 수가 없었다.

낙화를 재촉하는 바람이 때때로 솔솔 분다. 그때마다 꽃 떨어지는 소리는 서벅서벅, 사면에서는 가무와 노래의 소리가 봄밤에 더욱 오뇌스럽게 한다.

이 가운데서 잠들지 못해서 이리저리 뒤채는 젊은 공자.

하인배들도 모두 잠이 들어서 천하가 죽은 듯이 고요해진 때에 양녕은 오뇌스러운 가슴을 참지 못하여 혼자 뜰 아래 내려섰다.

보름달은 반공에 걸리고 낙화는 분분한 가운데, 멀리서는 그래도 들려오는 가무성(歌舞聲).

때때로 눈을 던져보면 계집과의 사이의 무너진 담은 마치 사람을 부르는 듯하였다.

양녕은 드디어 그 담을 넘어섰다. 간을 콩알같이 죄이며, 한 걸음 두 걸음 방으로 돌아가니 방에는 등잔이 아직껏 있고, 봄바람을 맞노라고 조금 열어놓은 문틈으로 아리따운 계집이 앉아서 침선(針線)을 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들여다보매 천하의 절색이었다. 다소곳이 앉아서 일심불란히 바느질만 하고 있는 그 미녀!

양녕의 젊은 가슴은, 더 억누를 수가 없었다. 양녕은 가만히 올라서서 방문을 열고 방안에 들어섰다.

깜짝 놀라는 계집.

"누구요!"

작으나마 날카로운 소리로 부르짖었다.

"낼세 ."

어색하였다

"내란? 아닌 밤중에!"

"객사에 유숙하는 양녕대군일세."

"대군이란, 아닌 밤중에 나으리 행차가."

"어, 조용하게."

일찍이 과부방에 뛰쳐들어온 경험이 없는 양녕은 어색한 미소를 띠고 어쩔 줄을 몰랐다.

계집은 몸을 와들와들 떨었다. 떨면서 차차 발치로 물러앉았다.

양녕은 어색한 미소를 띠고 문안에 묵묵히 서 있을 뿐이었다.

이윽고 계집이 조금 진정하고 물었다.

"밤중에 나으리 행차가, 더구나 이런 누추한 집에 웬일이오니까?"

"달이 하도 밝기에 서슴서슴……."

양녕은 말을 더듬었다.

🙝 🙟

그러나 호협한 양녕은, 봄날 날씨를 중매 삼아 드디어 그집에서 밤을 지냈다 통인의 눈도 시끄럽고 하여, 밝기 전 객사로 돌아올 때는 양녕도 돌아오기가 싫었거니와 계집도 차마 떠나기가 싫어서, 오늘밤 다시 찾기를 굳게 약속하였다.

계집은 양녕에게 자기 이름이 '정향(丁香)'이라는 것까지 일러주었다.

🙝 🙟

이튿날. 기성(箕城) 유람의 제1일이었다.

감사의 만류가 없을지라도 핑계만 있으면 오래 기성에 머물고 싶도록 된 양녕이었다. 그 위에 감사의 만류까지 있는지라, 예정했던 날짜가 썩 지나기까지 양령은 기성에 두류(逗留)하며 봄을 즐겼다. 대동문 누각에서 건너보는 장림(長林)의 봄, 연광정에서 굽어보는 대동강의 봄, 부벽루에서 내려다보는 능라도의 봄, 대동강에서 우러러보는 모란봉이며 청류벽 일대의 봄, 서녘으로 뻗어나가서는 칠성문 밖의 봄이며, 유서 깊은 정자 누각 고적들을 일일이 완상하기에는 십여 일 너머를 걸렸다.

술도 없고 미색도 없는 놀이라, 감사조차 마지막에는 지루하여서, 모면하기를 희망하였으되 양녕은 좀체 놓아주지 않았다.

낮의 완상(玩賞)은 어떻게 보면 싱겁기도 하였다.

그러나 양녕에게는 따로이 밤의 열락이라는 것이 있었다. 낮에 기껏 고도의 정취에 잠기었다가, 그 감흥이 사라지지 않은 채로 밤에는 또한 밤만치 다른 열락이 기다리고 있는 것이었다.

나날이 깊어가는 정.

왕께 드린 맹서도 잊었다. 때때로 생각이 안 나는 바가 아니었지만, 정향에게 대한 정열 때문에 그런 일은 대수롭게 보이지 않았다.

밤이 깊어서 남들이 잠든 뒤에, 무너진 담 틈으로 들어서 미희를 찾는 이 모험심과 정향에게 대한 정열 때문에 이 공자는 온갖 다른 것을 돌아볼 줄을 잊었다.

밤이 깊도록 촛불을 돋구고 기다리다가 양녕이 들어올 때에는 인사도 못 드리고 얼굴을 붉히며 숙이는 그 요염한 태도에 이 정열의 공자는 온 혼을 처박았다.

정이 너무도 깊었는지라, 장래 당연히 있을 이별을 생각할 때는 가슴이 아팠다.

어떤 날 정향이 양녕에게 그 의견을 물은 적이 있었다.

"나으리 환경(還京)하시는 날은, 소녀도 서울 구경을 하겠습니다. "

이 가슴 아픈 말에 양녕은 즉시 응하지 못하였다.

한참을 묵묵히 생각을 한 뒤에야

"정향아, 네 듣거라. 내 이미 너하고 우연히 맺었지만, 사실을 말하자면 이번 유람에 일체로 주색을 삼가기로 상감께 맹서를 한 몸이다. 그 맹서의 체면상 서울로 데리고 갔다가는 너와 나는 상명(上命)을 거역한 죄로 중한 벌을 받으리라. 깊이 든 정에 이별이야 무엇이 무서우랴마는, 같이 지내지 못할 것을 서울까지 나 같이 가면 무엇하겠느냐."

가슴 쓰린 말이었다. 그러나 어차피 언제든 말하지 않으면 안 될 말이었다.

이 말을 듣고 정향은 한참을 잠자코 있다가 돌아앉아 울었다.

"그럼, 나으리, 소녀는 일생을 파묻힌 몸. 실절이나 안 했더라면 지하에서 선부(先夫)라도 다시 대할 수도 있겠습지만, 이제는 실절한 몸이라 그도 대할 수 없고, 나으리께까지 버림을 받사오면, 살아서는 의지할 곳이 없고 죽어서는 돌아갈 곳이 없는 가련한 신세로소이다. 나으리 왜 소녀를 훼절 시키셨습니까? 본시대로 돌려주세요."

그러나 대답할 말이 없었다.

"시초는 일시 객기지만, 지금은 너도 아다시피 내 마음도 네게 깊이 정들어 어찌하여야 좋을지 스스로도 모르겠구나. 데리고 가자니 데리고 갈 수도 없는 처지요, 두고 가자니, 갈지라도 마음은 이곳에 남겠구나. 기박한 팔자— 너도 하늘을 탓하겠지만 나도 네게 못지않게 하늘을 탓한다. "

과연 딱한 일이었다.

일시 객기로 길에 떨구고 가는 정이 아니라 진심으로 든 정, 떼려야 가벼이 뗄 수도 없거니와, 그렇다고 달리 채비할 재간도 없는 일이었다. 양녕은 한숨쉬고 정향은 울 뿐이었다.

그러나 평양에 묵을 날짜도 다 가고, 이제는 더 묵을 핑계도 없이 되었을 때에 마지막 밤을 정향의 집에서 지낼 때는, 정향은 비교적 천연히 양녕을 대하였다.

"나으리, 이번 가시면 영 이별이올시다그려."

"왜, 성천서 돌아오는 길에 다시 이곳에 들를 테니까."

"그렇지만 그때 만약 관가에서 무너진 담을 도로 쌓으면 어쩌리까?"

"객사는 비교적 허수로운 곳이라, 웬걸 그때까지 쌓겠느냐?"

"안 쌓겠다고야 어찌 믿사오리까?"

바라보는 두 쌍의 눈.

"나으리. 요행히 담을 안 쌓으면 한 번 더 뵈올 날이 있겠습지만, 그렇지 않으면 이번이 영 이별이올시다. 무슨 표적 하나라도."

"글쎄. 객지라 무슨 값진 물건도 없고 어쩔까?"

"그게 무슨 말씀이오니까? 소녀 아무리 가난할지라도 값진 물건을 간청하는 바가 아니올시다. 대감의 뜻을 두신 글 한 구, 시 한 절이라도 써 주시면, 이것이 소녀의 원하는 바이오이다. "

"그럼 지필을."

정향은 벼루함을 꺼내어놓았다. 그리고 반다지를 뒤적이어 자기의 치마 한 폭을 꺼내놓았다.

"종이는 찢어지기 쉬운 것, 여기다 써 주시오면 죽도록 두고 사모하겠습니다. "

정향이 먹을 가는 동안 양령은 시를 생각하였다. 이윽고 정향이 먹을 다 갈아서 벼루를 내어놓으매 양녕은 먹을 두둑이 찍어서 치마폭에 한 수의 시를 적었다.

一別音容兩莫逅(일별음용양막후)
한 번 헤어지면 그 모습 다시는 못 보리니
楚臺何處覓佳期(초대하처멱가기)
양대(陽臺)가 어디 있어 만날 약속 찾을 건가.
粧成斗屋人誰見(장성두옥인수견)
작은 집에서 화장한들 그 누가 보아줄까,
眉 深愁鏡獨知(미감심수경독지)
눈썹 사이 깊은 시름 거울만이 알겠지.
夜月不須窺 枕(야월불수규수침)
밤 달도 잠자리를 엿볼 필요 없는데
曉風何事捲羅(효풍하사권라유)
새벽 바람은 무슨 일로 비단 장막 걷느냐.
庭前幸有丁香樹(정전행유정향수)
뜰앞에는 다행히도 정향나무 서 있으니
把春情强折披(합파춘정강절피)
그리는 정 가지고 어찌 가지 꺾어 보내지 않으리.

쓰기를 끝내고 붓을 던지려던 양녕은 다시 붓을 잡고, 이번에는 5언절구를 또 한 수 썼다.

別路春雲散(별로춘운산)
나 떠난 길에는 봄 구름 다 흩어지고
離亭片月鉤(이정편월구)
너만 남은 정자엔 조각달만 걸리겠지.
可憐轉輾夜(가련전전야)
가련토다, 잠못 이뤄 뒤척일 그 밤에
誰復慰香愁(수부위향수)
누가 다시 네 시름 달래어 주리.

이별의 밤이라, 그 밤을 서로 이야기로 새우고, 다시 성천서 돌아올 때에 만나기를 굳게 약속하고 밝기 전에 헤어졌다 이튿날 행차를 돌아서 성천으로 가는 김에 정향의 집 앞을 지난 때에 뜻 않고 보매 대문은 굳이 닫혔지만 대문 틈으로 나부끼는 하얀 얼굴은 정향에 틀림이 없었다.

🙝 🙟

마음을 평양에 남겨둔 채 양녕은 성천 溫井으로 갔다.

평양서 십여 일을 잘 묵은 체면상, 성천서도 일량일(一兩日)로 떠날 수는 없었다. 그래서 그 곳 수령이 안내하는 대로 사오일을 묵으면서 온정도 하며 구경도 하였다.

그러나 싱겁기 짝이 없는 성천의 수일간이었다. 역시 술없고 미색 없는 놀이에, 밤의 위로까지 없으니 지루하기가 짝이 없었다.

호화로운 공자로, 더구나 아버님 왕의 미움을 사기 위하여 적지 않은 오입도 한 양녕이었지만 이번 정향에게만 치 마음이 쏠려본 적이 없었다.

평양을 떠나는 그 시각부터 가속도로 더하여 가는 정향의 생각 때문에, 양녕의 마음은 미칠 듯하였다.

서도(西都) 여인의 다스러운 품과 부드러운 살맛은 시시로 기억에 회상되어 정욕적으로까지 그의 머리를 혼란하게 하였다.

강선루(江船樓)의 놀이. 그러나 싱거운 놀이였다.

온정, 그것도 싱거웠다.

체면상 '좋소이다', '아름답소이다' 하기는 하지만, 성천의 며칠간은 진실로 역하였다.

무너진 담 틈으로 다니던 기억, 등잔 아래 다소곳이 앉았던 정향의 기억.

그의 진심을 다한 공대의 기억, 무시로 일어나는 이런 기억들 때문에, 때때로는 뜻 않고 기다랗게 한숨을 쉬고, 그 때문에 또한 싱겁게 변명을 하고 하였다.

이리하여 사오 일을 겨우 보낸 뒤에 다시 행차를 재촉하여 평양으로 돌아왔다. 갈 때는 육로로 갔으나 돌아올 때는 수로로 오기로 하였다.

대동강 특유의 수상선에 몸을 싣고, 기름과 같이 잔잔한 물결을 넘어서, 다시 평양으로 평양으로—.

노 젓는 소리도 한가한 수상선. 그러나 양녕에게는 이 한가한 취미를 즐길 여유가 없었다. 어서 바삐 기성으로 닫고싶기만 하였다.

배의 좌우로 흐르는 물. 그 물은 배보다도 썩 빨리 흐르는 듯이 보였다. 그것이 빠르게 보이기 때문에 배가 더욱 더디었다.

이 물이 흐르는 줄기 아래서 정향은 지금 이 물을 마시는지도 모르겠다. 이 물에 그의 부드러운 몸을 씻는지도 모르겠다. 마음은 더욱 초조하나 배는 일정한 속력으로 내려가고 있었다.

이윽고 솟아오르는 모란봉. 모란봉 아래에 늘어선 청류벽.

길맞이의 감사의 놀잇배가 올라올 때에, 양령은 혀까지 채었다. 길맞이 배가 온 이상에는 강위에서 진일을 놀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어서 객사에 들고 싶은 양녕에게는 이것 조차 역하였다.

낮에 객사에 들은들 무얼하랴만 어서 객사에라도 들고 싶었다.

🙝 🙟

밤도 어지간하여서야 양녕은 감사의 배웅을 받으며 객사에 들었다.

들으면 살펴보고, 양녕은 얼굴을 창백하게 하였다.

무너졌던 담이 어느덧 수리가 된 것이었다. 따라서 정향의 집으로 갈 길은 벌써 서너 길 되는 담으로, 가로막힌 것이었다.

그 날 밤 하인배들이 다 잠들기를 기다려서 양녕은 혼자서 뜰에 내렸다.

담 아래 배회하였다. 어디 다른 구멍이라도 없나 살폈다. 그러나 곁집과는 벌써 든든히 새를 막아 놓아서 어쩔 도리가 없었다.

어찌하나?

애타는 가슴. 불붙는 정열, 분노.

"격장(隔墻)이 천리라더니, 격장이 만리로구나."

만리 밖에라도 가려면 갈 도리라도 있겠지만 이 담은 어쩔 도리가 없었다.

배회하면서 은근히 곁집에 들리도록 시조도 읖어보았다.

돌도 던져보았다. 귀도 기울여보았다. 그러나 그 집에는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 아무 반응도 없었다.

"정향아, 정향아."

열병환자와 같이 들떠서, 밤새도록 속으로 부르짖으며 달 아래 배회하다가 동녘이 밝아올 때야 자리에 들었다.

담 하나 격하여 지금 깊이 잠들어 있을 정향. 만약 정향으로서 자기가 객사에 온 줄만 알 것 같으면 어떻게 화답을 하였으련만. 곁에 두고도 알릴 도리도 없는지라, 마음만 더욱 헤적이었다.

밝은 날 낮에 연광정에서의 연회도 적적한 마음으로 끝낸 양령은, 이 밤은 기어이 담을 넘어서라도 가 보려 결심하였다.

그 밤 하인들이 다 잠든 틈을 기다려서 광에서 사다리를 하나 얻어다 놓고, 담을 넘어서 마치 야도(夜盜)와 같이 정향의 집에 넘어간 양녕은 거기서 무엇을 보았는가.

앙녕은 거기 한 개 폐옥을 본 뿐이었다.

양녕이 정향을 본 지 겨우7, 8일. 다시 담을 넘어 그 집에 들어간 때는 그 날의 그 방은 벌써 먼지가 한 껍질 앉고, 사람의 기척도 없는 빈 집이었다.

"?"

여우에게 홀린 것 같아서 영문을 알 수가 없었다.

도로담을 넘어서 객사로 돌아올 때는 그의 입에서는 땅이 꺼지도록 한숨이 나왔다.

정향과의 사이는 극비의 일이라, 물어볼 곳도 없었다. 벙어리 냉가슴 앓듯 혼자 앓지 않을 수 없는 입장이었다.

성천으로 떠나는 날 만났던 것이, 드디어 영 이별이 되었구나. 나는 다시 왔건만 너는 어디 갔느냐?

꺼지는 듯한 구슬픈 마음으로 하루를 더 기성서 보낸 뒤에, 이튿날은 환경의 행차를 차렸다.

감사와 서울의 전송도 쓸쓸히 받고, 양녕은 이 정회 깊은 고도를 뒤로 하고 도로 상경의 길을 떠났다.

🙝 🙟

중화, 황주 —여전히 기뻐 맞고 슬피 보내는 수령들의 인사를 받으며, 양녕은 쓸쓸한 마음으로 길을 계속하였다.

한때 지나가는 희롱으로 보기에는 너무 가슴에 깊이 백였다. 그러나 그 정향은 지금 어디 있나.

정향은 자기가 다시 기성을 다녀서 이렇듯 무거운 마음으로 서울길을 떠난 줄 알기나 하나.

너무도 엷은 인연이나 너무도 깊은 인연에 양녕은 연하여 속으로 통곡하였다.

처음에는 단지 한번 서경유람의 길이던 것이 지금은 도리어 커다란 수심을 품고 돌아오게 되었다. 사람의 인연이란 예측할 수 없는 것이었다. 서울을 떠날 때에, 장차 이런 인연이 생길 줄 꿈에 뜻하였으랴. 정향과 첫 꿈을 맺을 때, 이렇듯 깊이 될 줄이야 꿈에나 뜻하였으라. 정향과 이별할 때, 그것이 영이별이 될 줄 꿈엔들 뜻하였으랴.

이전 한때는 세자라는 영귀한 자리조차 헌신같이 벗어버린 이 공자가, 지금은 한 계집의 한때의 정을 끊지 못하여 우울하고도 음산한 심사로 서울로 돌아왔다.

양녕 환경의 보도를 들은 왕은, 이 형을 맞고자 중로까지 거둥을 하였다. 그러고도 연하여 사람을 보내서 '지금은 어디까지 오셨습니다' 보고를 듣고 있었다.

여러 달을 서로 떠나있던 형을 맞음에 기쁨에 왕도 넘치는 미소를 금치 못하고 어서 행차가 무악원 너머로 나타나기를 기다리었다.

이윽고 이른 행차.

양녕이 왕의 거둥을 알고 교(轎)에서 내려서 달려올 때는, 왕도 수레에서 내려서 마주나갔다. 오래간만에 서로 손을 마주잡은 형제.

"전하. 승후(承候)치 못한 그간 무양(無恙)하옵신지요?"

"오랜 객고에 무양하시오니까?"

"신은 성념(聖念)을 입사와 무사히 유람을 마치고 평생의 원을 이루었습니다. "

"서도 명물 감홍로도 맛보시었습니까?"

"전하의 분부로 술을 가까이 하지 않았습니다. "

"그러면 색향의 본미(本味)도 모르셨구만요."

양녕은 대답을 주저하였다.

"방백(方伯)에게 엄명했더니 하나도 추천치 않아서, 지금 생각하면 도리어 괘씸히 생각되옵니다. "

드디어 거짓말을 하였다.

"자. 형님 애용하시던 남여(藍輿)도 등대되었습니다.

원로 피곤하실 텐데 남여에 오르셔서 같이 가면서 서경 풍경이라도 말씀해 주십시오."

왕과 나란히 하여 남여를 타고 대궐로 들어갔다.

🙝 🙟

왕은 이 형을 맞기 위하여 경회루에 큰 잔치를 준비하였다 오랜 여행에서 돌아오는 길이라, 피곤할까 하여 유신들은 모두 부르지 않고 흠없는 신하 몇만 배석케 하고 경회루의 잔치는 열렸다.

왕이 몸소 권하는 술. 그 새 수삭을 입에 대어보지 못한 이 선액을, 양녕은 탐음하였다.

이윽고 유량히 울리는 아악에 얼리어서 들리는 기녀들의 노래.

처음은 무심히 듣다가 양녕은 문득 귀를 기울이었다.

장성두옥 인수견고 미렴심수 경독지라.

야월불수 규수침 이나 용풍하사 권나유라.

귀가 번쩍 띄었다.

뜻하지도 않는 이 시. 그것은 성천으로 떠나는 날 저녁, 정향의 치마폭에 정표로 써주었던 그 시가 아니냐.

정전행유 정향수하니 합파춘정 강절피라, 일구일자 틀림이 없다. 잔을 들었던 앙녕은 술을 마실 줄도 잊고 눈이 둥그렇게 되어 이 노래를 들었다.

뿐만이 아니었다. 다시 5언절구까지 나왔다.

별로에 춘운산이오 이정에 편월구라.

가련 전 전야에 수부 위향수랴.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자기가 정향에게 써준 글은, 자기와 정향 이외에는 알 사람이 없는지라, 이 노래를 우연한 암합(暗合)으로밖에는 볼 수가 없었다.

우연한 암합이라면 너무도 신통한 암합이었다. 일구 일자가 틀림없는 암합이 어디 있으랴.

다시금 마음에 일어나는 정향의 생각 때문에 양녕의 얼굴은 또 어두워졌다.

기녀의 춤이 시작되었다.

얼핏얼핏 눈앞에서 채색의 치맛자락이 나부낀다. 그러나 일단 정향의 생각을 다시 일으킨 양녕은 그 춤은 주의하지 않고 잠자코 있었다.

"형님, 왜 안 들으십니까?"

"황송하옵니다. "

왕의 채근을 받고 다시 잔을 들었다.

또 눈앞에 가까이서 나부끼는 치맛자락.

양녕은 비로소 보았다. 보다가 눈을 크게 하였다.

양령의 커다랗게 된 눈은 그 치마로 하여 허리로 하여 저고리로 하여 무희의 얼굴로까지 올라갔다.

"아!"

치마에서 의외에도 이전 평양서 성천으로 떠나는 밤, 몸소 정향의 치마에 써주었던 그 글씨를 보고, 차차 눈을 치올린 양녕은 거기서 잊을 수 없는 정향을 발견한 것이었다.

정향은 양녕을 보고 미소하였다 미소하면서 저편으로 미끄러져갔다.

그러나 양녕은 미소할 처지가 못되었다.

양녕의 얼굴은 문득 검붉게 되었다. 그는 사색이 되어 넙죽 왕의 앞에 꿇어 엎드리었다.

"신이 전하를 기망(欺罔)하왔습니다. "

"네?"

"전하를 기망하왔습니다. 서경서 신이 한 미색을 보았습니다. "

왕은 미소하였다.

"형님, 용서하십시오. 형님이 내게 사죄할 일이 아니라, 내가 형님께 사죄할 일이외다. 형님을 보낸 뒤에 가만히 생각하니, 아무리 서경 산수가 아름답다 하지만, 형님의 객정을 도울 자가 없으면 아름다운 경치가 무얼하리까. 그래서 평안감사에게 밀지를 내려서 아직껏 형님을 속였습니다. 군자의 도리로서 이런 사술을 씀이 도리어 부끄럽습니다. 형님의 여정의 만분지 일이라도 도왔으면 다행이올시다. "

🙝 🙟

왕은 양녕을 보낸 뒤에 평안감사에게 밀지를 내려서 한 미색으로 하여금 여정을 돕게 하라 하매, 평안 감사는 관내 기생들을 모두 불러서 의논을 하였다.

거기 자청하고 나선 것이 정향이었다.

정향은 이미 기록한 바와 같은 수단으로 양녕을 사로잡은 것이었다.

양녕은 자기 혼자서는 이것은 비밀이거니 하고 이 밀회를 즐겼지만, 정향의 입으로 감사에게, 감사의 붓으로 왕께, 양녕의 로맨스는 일일이 보고가 된 것이었다.

양녕이 정향에게 정표로 시를 써주고 성천으로 떠나는 날, 감사가 왕께 올리는 문안상서와 함께 정향의 치마도 같은 편으로 서울 경복궁으로 들어갔다.

양녕이 성천서 정향을 생각하여 앙앙불락(怏怏不樂)하는 동안, 정향은 감사의 상계서를 품고 서울을 떠나서 그냥 대귈 안에 몸을 잠가버렸다.

왕은 친히 정향을 시험하여 보아, 형님께 드려도 좋다고 감정을 한 뒤에, 정향을 그냥 대궐에 머물게 하고 양녕의 환경을 기다렸다.

그러는 한편으로는 양녕의 이별시 몇 구를 악부(樂府)에 내려서 곡조를 짓게 하고 지은 뒤에는 곧 기녀들에게 그 노래를 연습시켰다.

이리하여 양녕은 성천 여행을 끝내고 불타는 정열로 다시 평양을 들렀다가 거기서 쓴 가슴을 안고 환경의 길을 더듬을 동안 대궐에서는 양녕을 맞을 연극이 죄 준비되었던 것이었다.

"형님. 용서하십시오. 형님이 나를 속인 것이 아니라, 내가 먼저 형님을 속였습니다. "

왕이 이렇게 말할 때에 양령은 어쩔 줄을 모르고 눈물만 흘렸다.

"전하. 전하께서 신을 속이신 것은 신을 기쁘게 하기 위해서지만 신이 전하를 기망하온 것은 신이 전하의 영을 거역하옵고 스스로 연락을 취한 까닭이로소이다. 우러러 뵈올 면목이 없습니다. "

"허물은 반반이라 말씀치 마십시오. 연소하신 형님께 미색을 삼가시라고 한 것부터가 내 실수외다. 이것은 천리를 어기는 것, 혈기의 청춘이 어찌 군명이란들 천리를 역행하리까. 음주를 삼가신 것만 해도 형님이 얼마나 내 말씀을 좇으셨는지 알 수 있습니다. 오늘 이 자리는 이러기 위한 자리가 아니라, 첫째로는 형님의 길을 맞는 것이요, 둘째로는 그 새 몰래 보시던 정향과 공공히 지니게 되는 잔치외다. 파탈하시고 흥취있게 노십시다 "

너무도 간곡한 말씀이었다.

그날 진일(盡日)을 오래간만에 만나는 형제는 정향을 곁에 놓고 상봉을 즐겼다.

🙝 🙟

왕은 특별히 양녕에게 별저와 비복까지 하사하였다.

대궐의 잔치를 끝내고 양녕은 정향을 데리고 하사한 새 집으로 나왔다.

"나으리, 용서하십시오."

별저에 나와서 정향이 만면에 눈물과 미소를 띠고 이렇게 말할 때에, 양녕도 참을 수 없이 웃었다.

"용서 못하겠다. 일개 시골 아녀자로서 일국 왕형을 속인 죄를 어찌 용서하랴."

"나으리께서는 신자(臣子)의 도리로서 군왕을 기망하셨거늘 상감마마는 너그러이 용서하시지 않았습니까."

"후덕무비(厚德無比)한 상감마마는 용서하셨거니와 나는 용서치 못하겠다. "

"그러면 어떤 벌을 주시렵니까?"

"음. 벌로서 내 도포를 벗겨라."

정향은 양령의 도포를 받아 걸었다.

"어쩌면 요 가슴 속에 6척 남자를 속인 꾀가 들었더냐?"

"외람되오나 나으리께서 소녀의 마응에 들지만 않았더라면, 그런 꾀도 나지를 않았겠습니다. "

다시 만나지 못할 줄 알았던 정향을 눈앞에 놓고, 양녕은 터질듯이 기쁜 마음으로 정향을 바라보았다.

겹지 않고 바라보고 또 바라보았다.

첫여름 밤은 차차 깊었다.

멀리서 첫닭의 우는 소리.

🙝 🙟

이리하여 왕의 축복을 받은 양녕과 정향의 사랑은 길이 길이 꺼지지를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