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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인사담집 4/임장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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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이 발매될 날짜 병자년 12월 보름께부터 따져서 어김없는 꼭 3백년 전에 생긴 이야기다. 구고(舊稿)이지만 날짜가 하도 신기하게 맞기에 여기 재록을 하는 바이다. 본시의 제목은 '병자호란삽화(丙子胡亂揷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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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도 덕유산(德裕山)은 남방에 이름 있는 장산(壯山)이다. 송림이 울창하고 골짜기가 깊으며 만학천봉(萬壑千峰)이 엉기어서, 백주에도 해를 우러러 보기가 힘들고 맹수와 독충이 행객을 위협하는 험산이다.

때는 선조대왕 말엽, 임진왜란을 겪은 뒤에 아직도 인심이 안돈되지 않아서, 흉흉한 기분이 남조선 전체를 덮고 있는 때였다.

가을해도 어느덧 봉우리 뒤로 숨어버리고 검푸른 밤의 기분이 이 산골짜기 일대를 덮으려 하는 때였다.

저녁해도 없어지고 바야흐로 밤에 잠기려 하는 이 무인산곡(無人山谷)을 한 젊은 선비가 헤매고 있었다.

길을 잃은 것이 분명하였다. 벌써 단풍든 잡초가 무성하여 눈앞이 보이지 않는 덤불 사이를 땀을 뻘뻘 흘리며 이 선비는 방황하고 있었다.

버석버석, 선비가 발을 옮길 때마다 잡초만 좌우로 쓰러지지 아무리 헤매도 길이 나서지를 않는다. 웬만한 산골 같으면, 하다 못해 적채하는 여인이나 초부들의 외발자욱 길이라도 있으련만, 하도 심산궁곡이라 그런 길조차 없고 잡초만 빽빽하여 눈앞을 가리울 따름이다.

"야단났군 "

연해 연방 탄식을 하며 헤매지만 하늘만 점점 더 어두워갈 뿐이지, 어디로 가야 할지 방향이 잡히지를 않았다.

이렇게 한참 풀덤불에서 헤매던 선비는 엎친 데 덮친다고 기막힌 일을 당하였다. 이미 날포 어두웠는지라 시랑의 무리라도 나오면 어쩌나 하고 속으로 무한히 근심이 되었는데 요행히 아직껏 시랑의 무리는 만나지 않았지만 어떤 풀줄기를 헤치다가 오른손 무명지를 독사에게 물렸다.

풀을 헤치다가 손가락이 뜨끔하는 바람에 깜짝 놀라서 손을 훔치니 서너 뼘쯤 되는 독사가 손에 딸려 올라온다. 그것을 뿌리쳐서 뱀은 떼어버렸지만 듣는 바에 의지하건대 독사에게 물리면 그 손을 잘라내지 않으면 독이 순식간에 전신에 퍼지어서 생명까지 빼앗긴다는 것.

이 무인산중에서 독사에게 물리었으니 이제는 살아 날 도리가 없을 것이다.

"에—. 하늘도 무심도 하군."

탄식을 지나서 이제는 원망하는 소리였다. 아니, 원망도 지나쳐서, 이제는 절망의 부르짖음이었다.

그때, 원망의 눈이 하늘로 치어들 때에, 선비는 문득, 멀리 명멸하는 불그림자를 발견하였다.

벌써 사위는 캄캄하였는지라, 그 원근은 분명히 알기 힘들되, 건너편 봉우리의 중턱쯤 되는 곳에서 가물가물하는 불그림자를 하나 발견하였다.

뱀의 무서운 독은 벌써 선비의 전신에 뻗쳐 나가는 것이 분명하였다. 손가락만 저리고 아프고 하던 것이 어느덧 팔목까지 저리고, 이제는 팔굽까지 저린 것으로 보아서, 좀 더 뒤에는 팔쭉지까지 저릴 것이며, 그 독은 한 각이 지나지 못하여 온 몸에 다 퍼질 것이다.

선비는 숨을 허덕이었다. 물에 빠진 자는 지푸라기라도 붙드는 법이다. 독사에 물린 이상은 손을 잘라내지 않으면 죽을 것이 뻔하였지만, 행여 살 길이 있을까 하여 무턱대고 그 불그림자가 보이는 곳으로 향하여 씨근거리며 기어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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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하여 그 불그림자가 보이는 곳까지 기어오르기는 하였다. 그러나 그 곳(그것은 작다란 암자였다)까지 이르러서는 더 움직일 기운도 없이, 부르짖어 볼 기운조차 없이 그 자리에 푹 쓰러지고 말았다.

그 선비가 다시 정신을 차릴 때는 어느덧 그는 그 암자 안에 들어와 누워 있었다. 그리고 그의 머리맡에는 사십이 되었을까 말았을까 한 중년의 처사 한 사람이 근심스러운 듯이 자기를 굽어보고 있는 것이었다.

이것을 의식하면서 젊은 선비가 몸을 움직이려 하매, 그의 오른편 팔은 부드러운 헝겊으로 잔뜩 결박이 되어 있는 것이었다.

"움직이지 마시오. 움직이면 안 됩니다. "

굽어보고 있던 주인이 고요한 음성으로 명령한다.

그러나 젊은 선비는 유유하니 있을 수가 없었다.

그 새 뱀의 독이 얼마나 퍼졌는지 알 수는 없으나, 어서 그 독 퍼진 곳을 잘라내지 않으면 자기의 생명까지도 위태롭다.

"주인장. 오른손을, 오른손을, 독사에게 물렸소이다.

부탁이올시다. 이 오른손을 도끼로 찍어 줍시오."

"객께서 독사에게 욕을 보신 줄은 압니다. 그러나 염려 맙시오."

염려를 말라 하나 알 수 없었다. 젊은 선비는 또 몸을 움직여보려 하였다. 그러나 그의 몸은 조금도 움직일 수가 없이 결박이 되어 있다.

"염려 맙시오. 독사의 독이 퍼지지 못하도록 처치를 아까 했습니다. "

"에?"

"이 덕유산 뱀의 독은 유명한 것, 그 뱀의 독을 연구하려고 여기 암자를 틀고 숨은 지 15년. 뱀의 독에 대해서는 웬만치 자신이 있는 사람이외다. 독이 더 퍼지지 못하도록 처치를 했으니깐 안심합시오. 저것, 저것이 노형의 팔에서 뜯어낸 것."

주인이 가리키는 곳을 객은 머리를 돌려서 보았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똑똑히 알 수 없으나 꽤 큼직한 걸레가 피에 통 젖어 있었다.

동시에 객은 비로소 느꼈다. 자기의 팔쭉지가 무섭게 저리고 아픈 것을.

"그럼 이제는 독이 더 퍼지지는 못합니까?"

"네. 안심합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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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곤한 객은 주인의 안심하라는 소리를 들으면서, 또다시 혼곤히 잠에 빠졌다. 그러나 잠에 빠지기는 하였지만 팔쭉지가 너무도 아프기 때문에, 잠깐 잠들었다가 곧 다시 깨었다.

팔쭉지가 놀랍게 아프다. 그러나 몸은 조금도 움직일 수가 없다. 주인도 어느덧 자리를 펴고 곤히 잠든 모양이었다. 몸을 움직일 수가 없는지라 볼 수도 없지만, 자기 곁에서 숨쉬는 소리가 약간 들린다.

이것을 들으면서 또는 팔이 아픔을 감각하면서, 객은 차차 공포에 빠지기 시작하였다.

팔쭉지가 이렇듯 아픈 것은 자기의 팔을 잘라낸 때문이 아닐까. 아까 본 바 피투성이의 걸레에 싸인 것은 자기의 팔이 아닐까? 팔쭉지만 놀랍게 아프지 팔과 손이 아픈 것을 느낄 수 없는 것은, 이미 잘라낸 탓이 아닐까?

팔이 잘리운 데 대한 공포와, 없어진 팔에 대한 애착이 차차 커가며 무거워갔다.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팔 —지금껏 20여 년을 자기의 어깨에서 늘어져서 자기를 기르고 먹이고 살리던 오른손. 이것이 없어졌는가 하면 거기 대한 애착보다도 공포심이 더하였다.

병신!

이제는 일생을 자기는 병신으로 지내야 할 것인가.

"오른손이 없다."

얼마나 무서운 말이냐. 아까 뱀에게 물린 그 순간에 는 단지 생명에 대한 애착 때문에 그 독 들은 손을 어서 잘라버리고자 애썼지만, 이제는 생각하면 오른손 없이 일생을 지나기보다는 도리어 일찍이 죽어버리는 것이 행복이 아닐까?

자기는 지금 과거를 보러 서울로 가는 길이다.

그러나 손 없이 어떻게 과거를 보랴? 아직껏 배운 학문도 모두 과거에 급제를 하여 장래 영달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던가? 그러나 자기는 이제 과거를 볼 수가 없다.

암담하고 처참할 자기의 장래를 상상할 때에, 객은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과거를 보아서 영달을 꿈꾸기는커녕 일생을 이제 시골의 가난한 병신으로 지 내지 않을 수가 없으니, 이것은 도리어 죽음만도 못하 였다.

팔쭉지의 아픔, 마음의 고통, 이 안 팔으로 받는 고통 때문에 선비는 소리까지 내어서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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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어? 손님, 왜 그러시우?"

주인 처사가 이 울음소리에 깨었다. 거기 대하여 객은 자기의 심경을 죄 주인에게 하소연하였다.

그러매 주인 처사는 단지 미소하며,

"하늘이 두 손을 주신 것은, 하나가 불의의 변을 볼지라도 남은 것으로 대신하라고 한 것이니깐 아무 염려 마세요"

하고는 또다시 잠이 들어버린다.

이리하여 나흘 동안을 옴짝달싹도 못하고 보낸 뒤에야 비로소 그 결박을 끌렀다. 웬일이냐. 그 사이 잘리운 줄만 알고 있던 그의 팔이 그대로 달려있을 뿐 아니라, 그 팔은 약간 움직일 수까지 있었다.

"아 이게!"

너무도 기쁘고 놀라워서 이렇게 부르짖을 때에, 주인은 미소하면서 대답하였다.

"네, 그 팔은 온전합니다. 그 날 노형이 본 피뭉치는 노형의 팔에서 뽑아낸 독혈이외다. 팔쭉지의 가죽을 째고 독혈에 침범된 혈관을 모두 끊어내서, 독을 모두 뽑아낸 것이외다. 독에 침범되어서 썩었던 살이 아직도 온전히 살아나지 못해서 아직은 그 손을 쓰시기가 좀 거북하리다만 한 달 이내로 여전히 될 것이외다."

"아, 여전히 쓰게 됩니까?"

"아무 염려 마십쇼."

주인의 말을 듣건대 이 덕유산의 독사는 보통 예사의 독사와 달라서 그 독이 사람의 몸에 들어가면 몸이 반드시 썩는데, 그것이 어떻게 하여서 썩기만 면하면 그 독은 도리어 사람의 몸에 이롭게 되어 한 번 신체가 모두 개조되어 효용과 완력이 놀랍게 된다는 것이었다.

그 사이 15년간을 이 산에서 숨어서 오로지 그 뱀의 독과 그 독의 면역성을 연구한 결과, 이제 겨우 그 결과가 완성이 되었는데, 다행히 선비는 그 연구가 완성된 뒤에 이곳을 찾아온 덕에 생명이 보전되었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노형은 이미 황천길을 들어섰던 사람이외다. 지금 그 생명이 붙어있는 것은 이 내 덕, 자랑인 듯하지만 내가 노형께 드린 바 선물이외다. 그 은혜에 대한 사례를 어떻게 하시렵니까?"

"네. 하라시는 대로 아무런 일이든 하오리다. "

"그럼 내가 명령하리다. 갈충보국(竭忠報國)하시오. 천식(淺識)도 아니신 모양, 그 지식과 이제 장차 생길 완력을 모두 국사에 쓰시오. 이것이 내 당부외다. "

"그런 일이야 주인장의 당부가 없더라도 생각이 없소리까만, 이번 상경해서 과거에 급제가 될지 어쩔지가 의문이올시다. "

"과거를 해야 반드시 갈충보국이 되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가진 기능을 헛되이만 쓰지 않으면 이것이 갈충보국이외다. "

주인은 객에게 자기의 손을 내어보였다. 오른손은 식지가 없고 왼손은 엄지손가락과 새끼손가락이 없는, 보기에 징그러운 손이었다.

그 손도 본시는 완전한 손이었지만 뱀과 싸우는 15년간, 뱀의 독을 받았기 때문에 잘라버렸다는 것이었다.

수일간을 객은 그 암자에 더 묵어 있었다. 묵어 있는 동안 암자의 마루밑에 있는 가지각색의 뱀의 독즙 들이며, 또는 상자에 넣어둔 수천 마리의 뱀을 보고, 객은 이 주인의 지독한 학구적 태도에 경탄하였다.

객은 누차 주인에게 그 성함을 물었으나 주인은 거기는 빙긋이 웃을 뿐이지 대답하지 않았다. 채 이름을 감추느냐고 물으면, 특별히 감추는 것이 아니라 알리 어도 쓸데가 없으니 알리지 않는다는 것뿐이었다.

"노형의 생명은 노형의 것이 아니라 이 내 것이니까, 아예 소홀히 여기지 말고 보중하시오. 이 다음 내가 어떻게 필요하게 되어서 도로 달랄 때는 서슴지 않고 도로 내주시오"

수일 후, 객은 과거를 보러 길을 떠날 때에 주인은 따라 나오면서 이런 당부를 하였다. 거기 대하여 객은 맹서 맹서하면서, 결코 소홀히 하지 않고 크게 되도록 힘쓰겠노라 하였다.

이 객의 이름은 임문(任文)이요, 전라도 선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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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문은 서울까지 무사히 왔다.

그동안은 처음에는 쓰기가 거북하던 오른손도, 이제는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가 있게까지 되었다.

뿐만 아니라 그때의 암자의 처사가 말하던 바와 같이, 임문은 나날이 자기의 체격이 장대하여 가며 완력이 부쩍부쩍 늘어가는 것을 자각하였다. 본시 약골은 아니었지만 장대하던 편은 못되던 그의 골격이 나날이 자라나서 이제는 어느 모로 보아도 쉽지 않은 장한으로 되었다.

뿐만 아니라 주먹까지 쥐어보면 스스로 그 주먹에 잠긴 힘을 깨달을 수 있으며, 완력을 써보고 싶은 충동이 나날이 더하여갔다 이듬해 봄의 과거를 기다리노라고 한겨울을 서울서 보내는 동안, 그는 본시의 임문과는 온전히 다른 체격의 완력의 주인이 되었다. 혼자서 몰래 북악산에 올라가서 놀라운 커다란 바위를 굴려보고는, 스스로 자기의 완력에 놀라고 하였다.

이리하여 그 겨울을 보내고 이듬해 봄에 기다리던 과거를 보았다.

그러나 결과는 실패로 돌아갔다 낙제를 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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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 낙제를 한 뒤에도 임생(任生)은 귀향하지 않았다.

시골 선비로서 화려한 장안물을 마시고 보니, 도로 시골로 돌아가기 싫었다. 그래서 이 다음 식년(式年)을 기다린다는 핑계로 그냥 서울에 있었다. 그리고 이런 유생들의 상투(常套)를 본받아서 대갓집 문객 노릇을 하였다.

때는 바야흐로 선조 말엽, 임진란 때문에 한때 좀 잠잠했던 당쟁이 차차 다시 일어나서 꽤 맹렬하게 된 때였다. 이 틈에 끼여서 임생은 어디서 커다란 호박이라도 떨어지기를 기다리고 그냥 서울에 묵어 있었다 임생이 꾸준히 찾아다니는 것은 남인(南人)과 재상들 이었다. 그다지 어리석지 않은 임생은 눈이 밝았다.

남인파의 거두 이원익(李元翼) 등의 아래 모인 세력이, 서·북인파의 세력보다 나은 점을 알고 장래 남인파가 득세할 날을 예기하고 남인파 재상들을 찾는 것이었다.

그러나 세상사는 이 임생의 뜻과 같이 진행되지 않았다.

선조대왕이 승하하시고 광해군이 즉위하자 당파의 싸움은 더욱 격렬하게 되었다가 종래 북인파의 승리로 돌아가고 남·서인들은 모두 먼 곳에 정배를 가거나 화를 보게 되었다.

자기가 희망을 붙이고 있던 재상들이 모두 한꺼번에 몰락을 당할 때에, 임생은 기가 막혔다. 처음부터 남인을 버리고 북인에 붙지 않았던 것을 후회하였다.

그러나 이제는 갑자기 돌아설 수도 없을 뿐더러, 자기도 남인파 재상의 집 문객으로 있던 관계상 자기의 몸에까지 어떤 화가 미칠지 알 수 없어 임생은 재빨리 경성에서 몸을 감추었다.

경성서 몸을 숨긴 임생은 어디로 잦아버렸는지 다시는 그의 모양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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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생이 경성에서 종적이 사라진 지 수삭 후, 조선 국경을 넘어서서 울창한 장백산 서록(西麓)을 한 장한 이 더벅더벅 넘고 있었다.

조선을 피해 나온 임문이었다.

때때로 높은 곳에 올라가서는 지세를 살폈다. 살피고는 다시 길을 가고 하였다.

임생이 조선을 피해서 여기까지 온 것은 엉뚱한 경륜을 가슴에 품고서였다.

당시에 이 땅(요동, 여진)에는 누르하치(奴兒哈赤)라는 한 호걸이 생겨서, 새로이 금국(金國)이라는 나라를 이룩하고 스스로 황제라 부르기 시작한 때였다. 누르하치는 본시장백산 서록에서 무리를 거느리고 도적을 일삼던 두목으로서, 그 세력이 차차 커지매 그 야심도 커져서 드디어 여진, 요동 일원을 모두 정복하고 스스로 황제의 면류관을 제 머리에 올려씌운 호걸이었다.

이것을 보고 임생도 비위가 동하였다. 작다란 조선 안에서 이렇다 변변치도 않은 일을 가지고서 싸우고 죽이고 피하고 정배가고, 이런 시끄럽고 귀찮은 일이 차차 우스워 보였다.

누르하치가 이렇게 된 것을 보면, 이 세상에는 아직도 주인 없는 땅이 꽤 넓게 있는 모양이다.

누르하치가 누구며 자기는 누구랴. 누르하치도 효용과 협력이 유일의 무기이지 근본도 배경도 없고, 명나라 천자의 책봉도 받지 않은 바이다. 효용과 협력은 누구에게든 지지 않을 만한 자신을 가지고 있는 임생이라, 이 누르하치의 성공에 비위가 동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 위에 자기는 과거 10여 년간의 쓴 경험을 가지고 있다. 조그만 반도의 말직 하나를 얻어보고자 10여 년 간을 학문을 배웠으며, 학문을 배웠다고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라 배운 위에는 또한 과거라 하는 문을 지나야 하며, 그 문이라는 것이 또한 제 실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이리저리 뇌물을 먹이고 아첨을 해야 되는 것이며, 요행히 그 문을 지난다 하여도 크게 되기는 지난(至難)의 일이요, 천행으로 크게 된다 하더라도 언제 거꾸러질지 예측키 어려운 일이요, 말하자면 그다지 신통치도 못한 것이어늘, 자기는 나이 30이 되는 오늘날까지 오로지 그 한 길을 위하여 힘쓰고 별별 아니꼬운 일을 겪었고, 그리고도 또한 달하지 못하고, 이 사랑에서 저 사랑으로 문객질만 다니다가, 그것도 자리가 안전치 못하여 지금 몸을 피해서 온 것이 아니냐?

시시하고 너절한 일을 위해서, 과거 30년간을 보냈는가 하면 기가 막혔다. 자기가 일찍부터 마음을 크게 먹고 이리로 나와서 활동을 하였더라면 오늘날 누르하치가 차지한 자리를 자기가 먼저 차지하지 못하였으리라고 어찌 단정하랴.

이리하여 무슨 엉뚱한 수라도 떨어지지 않을까 하고 이리로 밀려나와서 지세를 살피면서 이리저리 배회하는 것이었다.

그 뒤 반년, 1년, 임생은 이 땅의 지세며 풍속이며 언어를 살피면서 요동의 황야를 방황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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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 금국 태조 누르하치가 도읍을 요양(遼陽)에 정하고 그 축하가 굉장히 있는 해 여름이었다.

이전에 조선 서울서도 뜻을 못 이루고, 이 사랑에서 저 사랑으로 문객질만 하고 있던 임생은 여기서도 또 한 뜻의 만분지일도 못 이루고 금태조의 정도 축하식 날 구경하러 요양 근처에 배회하고 있었다.

그 날 임생은 자기에게 행운이 떨어지리라고는 뜻도 안 했다. 단순한 구경차였다. 그러나 과거 30년간을 임생의 곁에는 비쳐본 적도 없는 행운의 빛이, 이 날 뜻밖에도 임생의 위에 내렸다.

황태자가 인솔한 무장 몇 명이 산으로 들어가서, 멧돼지 한 마리를 몰이하여 가지고 나왔다. 그 돼지를 보고, 혈기에 날뛰는 황태자는 활을 비끼고 말을 비호 같이 돼지에게로 달렸다.

돼지가 나온 것은 임생의 뒤였다. 황태자가 오는 것은 임생의 앞이었다. 임생은 돼지와 황태자의 중간에 있었다. 살이 맞을 만한 거리에서 황태자는 말 탄 채로 돼지에게 활을 쏘았다. 그러나 돼지는 뒤에서 모는 장수들에게 놀란 터이라, 앞의 황태자는 보지 못하고 그냥 황태자 편으로 전속력으로 도망하였다. 첫 번 살에 실패한 황태자는 그냥 말을 마주 달리면서 둘째 살을 쏠 준비를 하였다.

돼지는 임생이 있는 뒤쪽 한 20간쯤 되는 거리까지 왔다. 그때 황태자는 두 번째 활을 놓았다.

살은 돼지의 앞다리에 맞았다.

앞다리에 살을 맞은 돼지는 한 번 기이한 소리를 내며 황태자의 말에게로 달려갔다. 그때 황태자가 탄 말은 돼지에게 놀라서 껑충 높이 한 번 뛰었다. 동시에 황태자는 말에서 땅에 떨어졌다.

땅에 떨어졌던 황태자가 황급히 일어날 때는, 돼지는 벌써 황태자를 받아 넘기려고 올라 뛰는 때였다.

모든 사람의 눈에는 황태자는 죽은 줄로 알았다. 황태자도 그렇게 알았을 것이며 돼지도 그렇게 믿었을 것이다. 돼지가 황태자의 몸으로 달려드는 순간 — 실로 순간이었다—임생의 몸뚱이가 총알같이 뒤에서 뛰쳐나오면서 자기의 몸으로 돼지의 몸을 받아넘겼다.

이 인탄(人彈)에 돼지가 비칠할 때에 임생의 주먹이 돼지의 머리에 내렸다.

황태자며 무장들이 정신을 수습하고 돼지를 검분(檢分)하여 보고 입을 딱 벌린 것은, 그 커다란 돼지의 머리가 단 한번의 주먹에 바스러진 것이었다. 돼지의 두개골 전체가 바숴지고, 직접 주먹을 맞은 앞이마에는 주먹만한 구멍이 뚫린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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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인연되어 임생은 황태자의 막하에 들게 되고, 차차 신임을 사서 후년 이 황태자가 등극을 하여 태종 황제가 된 때는, 황제가 가장 신뢰하는 무장의 한 사람으로 되었다. 그의 이름도 본 이름 위에 초두(艸頭) 하나씩을 붙여서 임문(荏芠)이라 하였다.

임생의 지위가 이렇게 변하는 동안, 그의 본국에도 적지 않은 변화가 생겼다.

일찍이 서인이며 남인과 북인의 싸움끝에서 남·서인의 거두들은 모두 정배를 갔지만 아류의 인물들은 그냥 서울에 숨어서 다시 세상에 호령할 날을 도모하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 왕은 북인을 깊이 신임하고 그 마음은 장차 돌이킬 수 없음을 본 이 사람들은, 자기네가 장래 성공키 위해서는 이 임금을 폐해야 할 것을 알고 밀모에 밀모를 다하여 종내 임금을 폐하였다. 그리고 임금의 조카님 되는 능양군을 새 임금으로 모셨다 후일의 인조대왕이다.

조선의 세정은 이만큼 변하였으나, 신흥 금국과 조선의 그때의 델리케이트한 관계는 변함이 없었으니, 즉 다른 것이 아니라 조선은 명나라와 부자지국(父子之國)이라 하는 점이었다.

대체 금나라가 새로 나라를 이룩하매 그 야심은 단지 여진, 요양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중원을 들어 삼켜서 그야말로 대국 천자까지 되려 하는 심사였다 그런데 그 땅은 명나라와 조선의 중간에 끼어서 명나라를 치자면 뒤에서 조선이 자기네 뒤를 엄습할 염려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명나라를 치려면 먼저 조선을 정복하여 후환을 없이 할 필요가 있다.

이것은 큰 원인이 되어 그밖에 몇 가지의 원인이 더 합쳐서, 태종황제는 조선을 정벌하려고 군사를 일으켰다. 그리고 태종에게 신임을 받는 임생 — 변하여 임 장군은 태종의 참모로서 이 정벌에 동행하였다 때는 인조대왕 병자(丙子). 금국은 그 국호를 '대청(大淸)'이라 고치고 아직껏은 '한(汗)' 이라고 만주 이름으로 부르던 왕제를, 공공히 중원 이름으로 '황제'라 부르고 '숭덕(崇德)'이라 연호까지 세운 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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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해 12월 초승, 청태종이 인솔한 십만 대군은 조선을 정벌하고자 벌써 압록강을 넘어섰다.

여기 따라 오는 임 장군. 몸은 비록 조선 출생이나 모국에 대하여 아무런 충심도 없었다. 단지 자기와 같은 피를 물려받은 동족들이 난마(亂麻)와 같이 어지러이 도망가는 것을 볼 때에, 자기 자신에 대한 우월감만 느낄 뿐이었다. 이러한 나약하고 초라한 백성 가운데 자기와 같은 걸출이 생긴 것을 스스로 기꺼이 여길 따름이었다.

조선군은 이 청태종의 군사에 대하여 조금도 대항을 못하였다. 군사 이르는 곳마다 성주는 도망가고 성은 항복하고, 이리하여 청병은 파죽의 세로서 서울로 서울로 달렸다.

청군의 선봉은 벌써 경기도에 들어서 장단군수 황직을 사로잡아 머리를 깎고 청복을 입혀서 향도자로 삼고, 경성으로 진군을 할 동안 태종황제와 그 막료들은 황해도의 곡산 산골서 선봉군의 뒤를 따르고 있었다.

험하기로 유명한 곡산 산곡에 태종황제와 그 막료며 친위군이 진치고 하룻밤을 지나는 그 밤이었다.

그 밤, 청병의 대본진인 이 진중에 기괴한 참사가 생겼다.

진중에 수천 마리의 뱀이 기어든 것이었다. 무서운 독사로서 이 무서운 독사에게 물린 사람은 날이 밝기 전에 모두 죽어버렸다. 여기 진쳤던 군사 3천인 중에 독사에게 물려서 죽은 사람이 하룻밤 새에 천 명이 넘었다.

이 추운 겨울날 뱀이 웬일이냐.

뱀도 한두 마리라면 모르지만 수천 마리가 어디서 갑자기 뛰쳐나온 것이냐.

이 의문은 밝는 날 아침에 해결되었다. 밤새에 뱀의 해를 면한 병졸들이 남아 돌아가는 뱀을 모조리 박살 하노라고 돌아다니다가, 산골짜기에서 수상한 노인을 발견하였다.

노인이 가지고 있는 커다란 두 개의 상자에는 아직도 수천 마리의 뱀이 징그럽게 사리고 있는 것이었다.

어젯밤 진중에 들여보낸 것은 이 노인의 소위에 틀림이 없었다. 노인의 백발이 성성한 머리는 성난 병졸들의 칼 아래 떨어졌다. 뱀이든 상자는 불질러 버렸다.

이 기이한 사연을 임 장군이 들은 것은 점심 좀 뒤, 바야흐로 황제의 진으로 가려고 옷을 갈아입을 때였다.

임 장군은 처음에는 무심히 들었다. 그러나 마지막에 '뱀 수천 마리가 들어있는 상자'라는 말이 나을 때에 지금부터 30여 년 전 자기가 처음으로 과거 보러 서울로 가다가 덕유산 산중에서 본 뱀 상자를 생각나게 하였다.

병졸이 가져온 머리를 보기는 보았지만, 지금 이 백발이 성성한 머리를 30여 년 전 덕유산 암자의 처사라 알아볼 수가 없었다. 그래서 다시 병졸을 앞세우고 노인의, 머리 없는 시체가 놓여있는 데로 가보았다.

임 장군은 보았다. 노인의 시체의 왼손에는 엄지손가락과 셋째 손가락이 없었다. 오른손에는 식지가 없었다.

이 노인은 틀림이 없는 30년 전 덕유산의 그 처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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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생명은 말하자면 내가 드린 것이니까 언제 건 달랄 때에 도로 주십쇼."

30년 전 덕유산에서 이렇게 당부하던 그 처사가, 자기에게 목숨을 청구하여 보지 못하고 먼저 죽었다. 목숨까지는 혹 모른다. 그러나 적어도 이 오른팔은 그 노인의 것이다. 뱀에게 물린 이상 잘라버리지 않으면 안 되는 것, 그것이 그냥 자기 몸집에 달려있는 것은 전혀 노인의 덕이 아니냐. 오른손이 남아있어서 돼지의 머리를 바숴버렸기에 황제의 총애를 사고, 오늘날의 이 영화와 지위를 얻지 않았느냐.

그 사이 30년간을 한 번도 생각하여 본 일이 없는 자기의 오른 주먹의 은혜가, 통절히 느껴지면서, 동시에 그와 같은 팔의 — 생명의 주인인 옛날 처사에게 대한 미안한 생각이 걷잡을 수 없이 일어났다.

그 오른팔은 말하자면 자기 몸에 달려있기는 하지만, 자기의 소유는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팔의 덕에 오늘의 지위를 얻어서, 그러한 은혜 많은 팔을 감히 의주에서 이곳까지 오는 동안 함부로 놀려서 자기의 동족의 생명을 얼마나 빼앗았는가. 이곳서 이 노인의 주검을 보지만 않았더라면 자기는 또 여기서 경성에 이르기까지에 얼마나 많은 동족의 피를 흘렸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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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튿날 황제의 진에는 적지 않은 소란이 일어났다.

그 밤 따라 황제는 마음이 뒤숭숭하여 자기의 침상에서 자지 않았다. 심복 막료를 자기 침상에서 자게 하고 자기는 다른 곳에서 잔 것이었다. 그런데 황제의 침상에서 잔 그 막료는 가슴에 칼이 박혀져 참사하였다.

그 막료의 가슴에 박힌 칼이 또한 임 장군의 것이었다. 그 위에 임 장군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밤새에 종적이 없어졌다.

그 뒤 임 장군의 종적은 완전히 사라져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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