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인 스케치

위키문헌 ― 우리 모두의 도서관.

수정 비둘기[편집]

수정 비듥이

그것은 사람의 마음을 끝없이 무겁게 하는 어떤 가을 날이었었다.

×

가슴을 파먹어 들어가는 어떤 무서운 병에 시달리운 외로운 젊은이는 어떤 날 저녁, 어떤 해안의 조그만 도회의 거리를 일없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때는 바야흐로 저녁 해가 바다에 잠기려 하는 황혼이었었다.

죽음을 의미하는 불치의 병에 걸린 이 젊은이는 무거운 다리를 골목골목으로 끌고 있었다. 이렇게 일없이 돌아다니던 젊은이는 어떤 집 문 앞에서 그 집 대문턱에 걸터앉아 있는 소녀를 하나 보았다. 열두세 살 난 소녀였었다. 소녀는 젊은이를 쳐다보았다. 젊은이는 소녀를 내려다보았다.

소녀의 눈은 수정과 같이 맑았다. 진주와 같이 보드라웠다. 젊은이는 소녀에게 가까이 갔다.

『너 몇 살이냐?』

『열두 살』

『이름은?』

『영애』

병 때문에 감격키 쉬운 젊은이는 황혼에 빛나는 그 소녀의 맑고 아름다운 눈에 감격되었다. 젊은이는 지갑을 꺼내어 소녀에게 얼마간 주려다가 그 맑은 소녀의 마음에 돈 때문에 사념이 생김을 저어하여 다시 지갑을 넣고 시곗줄에서 수정으로 새긴 비둘기를 떼어서 소녀에게 주었다. 그리고 다시 무거운 다리를 끌고 그 자리를 떠났다.

길모퉁이를 돌아설 때에 젊은이는 뜻하지 않고 또 돌아보았다. 소녀의 맑은 눈은 감사하다는 듯이 그의 뒤를 따르고 있었다.

×

​이태가 지났다. 젊은이의 병은 차차 무거워 갔다. 아무 진척도 없는 이 젊은이는 한 사람의 의사와 한 사람의 간호부와 한 사람의 노파를 데리고 이 해안에서 저 해안으로 고치지 못할 병을 행여나 고치어볼까 하고 돌아다니고 있었다.

×​

또 이태가 지났다. 다른 사람 같으면 벌써 저세상으로 갔을 병이지만 그의 성심의 덕으로 아직까지 끌기는 끌었다. 다시 회복될 가망은 없었다.

​×

남쪽 해안 임시로 지은 그의 요양소에서 그는 고요히 죽을 날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부터 그는 때때로 사년 전 가을 어떤 작은 도회지에서 본 황혼의 소녀의 눈을 환각으로 보았다.

​는 소녀의 얼굴도 잊었다. 타입도 잊었다. 그러나 자기를 쳐다보는 그때의 그 소녀의 그 눈알만은 아련히 이 젊은이의 눈에 남아서 젊은이의 마음에 아름다운 추억을 주었다. 몹쓸 꿈에서 깨어나면서 식은 땀에 젖은 괴로운 몸을 침대 위에 돌아 누이면서도 그는 뜻하지 않게 "영애!" 하고는 빙그레 웃곤 하였다.

(매일신보 1930.04.22.)

어떤 날 황혼, 이 젊은이는 간호부를 불렀다. 그리고 제 침대를 바다로 향한 문 앞으로 하고 머리를 바다 쪽으로 두게 옮기어 놓아주기를 청하였다.

간호부는 젊은이의 얼굴을 보았다. 그리고 말없이 침대를 그의 지시하는 대로 밀어다 놓았다. 젊은이는 누운 채로 도로 나가려는 간호부를 불렀다. 그리고 바다를 가리키었다.

『저어기 배가 하나 있지요?』

『어디요?』

『저—기— 돛단배.』

『네.』

『그걸 봐요.』

간호부는 그 배를 보았다. 그러나 무슨 이유인지를 몰라서 눈을 도로 젊은이에게로 돌리었다.

『한참— 오분 동안만 봐요.』

간호부는 다시 배를 보았다. 배를 바라보는 눈을 젊은이는 누워서 쳐다보았다. 젊고 예쁜 얼굴이었다. 그리고 젊고 예쁜 눈이 있었다. 그러나 그 젊은이는 그 간호부의 눈에서 사년 전 어느 저녁에 본 그 소녀의 눈에서와 같은 아름다움은 발견치를 못하였다. 젊은이는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간호부에게 도로 나가기를 명하였다.

×

젊은이의 최후가 이르렀다.

황혼의 해안 천하의 해안이 붉게 물들여져 있었다. 그리고 그 반사광은 젊은이의 누워 있는 방안까지 새빨갛게 물들여놓았다.

해안의 물결소리 어부들의 뱃소리 이러한 가운데서 젊은이는 고요히 눈을 감았다. 사 년 전 어떤 황혼에 본 소녀의 그 눈을 마음으로 보면서 이 젊은이는 고요히 세상을 떠났다.

×​

그의 유서가 피로되었다. 그 유서에는 사년 전에 ○○도 XX 고을에 살던 그때 열두 살 났던 영애라는 처녀를 찾아서 그 처녀가 그때 어떤 과객(過客)이 준 수정으로 만든 비둘기를 가지고 있거든 자기의 유산(遺産) 전부를 주어서 비둘기를 사서 자기와 같이 묻어 달란 말이 있었다. 그리고 젊은이는 그때의 그 소녀가 아직껏 그 비둘기를 가지고 있을 것을 의심치 않고 믿었던 것이었다.

×

그리하여 그의 주검은 수정 비둘기와 함께 무덤으로 갔다.

(매일신보 1930.04.26.)

소녀의 노래[편집]

이러한 생각을 하고, 눈을 감고 누워 있던 여(余)는, 한 번 기지개를 하고, 일어났다. 해는 바야흐로 무르익은 봄날, 곳은 모란봉 턱에 있는 어떤 조용한 곳.

여(余)의 마음은 이제 생각하던 그 이야기 때문에, 몹시 최초하였다. 젊은이와 수정 비둘기와 어떤 소녀. 불치의 병에 걸려서 조용히 죽음을 기다리면서 사년 전에 어떤 도회 길모퉁이에서 본 성도 모르는 소녀의 아름다운 눈을 생각하며 스스로 위로를 받고 있는 젊은이의 이 외로운 마음상은 여(余)의 마음을 움직였다.

소설로도 넉넉히 될 것이다. 그러나 여(余)는 그것을 장황히 늘어놓아 세상의 말하는 바 소설로 서술하기를 피하였다. 위에 끄적인 그런 필법으로도 독자의 마음을 넉넉히 움직일 수 있음을 스스로 믿으므로…… 어떤 감상자는 그 이야기를 한낱 소재에 지나지 못한다 할는지는 알 수 없다. 『간단한 서술』과 『소재(素材)』는 단순한 감상자에게는 흔히 혼동되기가 쉬운 것이므로……. 그러나 『소재(素材)』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만한 힘을 가지지를 못한다. 『눈오는 밤이었다』와 『그 밤은 눈이 왔다』는 서로 다르다. 문장 예술(文章 藝術)의 감상도 쉽지 않은 일이다.

여(余)는 담배를 붙여 물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일어서서 이편으로 돌아왔다. 사쿠라의 만개(滿開) 때로서 산보객들이 많을 터인데, 그리 보이지 않았다. 꽃향내만 그윽히 코로 들어온다.

종달새가 운다. 종달새? 확실히 종달새의 울음소리였었다. 그러나 여(余)는 그 종달새의 울음소리와 어울리어서 때때로 들려오는 다른 소리를 들었다.

여(余)는 고즈넉이 산보를 계속하였다.

종달새의 소리와 섞여서 나는 소리는 차차 똑똑하여졌다. 그것은 어떤 소녀의 창가ㅅ 소리였었다.

창가ㅅ 소리는 멎었다. 종달새의 소리만 때때로 들렸다.

장방호(長房壺)의 앞에까지 와서 여(余)는 한 소녀를 발견하였다. 창가를 부르던 그 소녀—ㄹ 것이었다. 여(余)는 소녀를 내려다 보았다. 소녀는 여(余)를 치어다보았다.

『너 몇 살이냐?』

『열두 살』

무얼? 여(余)는 두어 걸음 가까이 갔다.

『이름은?』

무엇이라 대답하였다. 영애는 아니었었다. 여(余)는 주머니를 뒤적거렸다. 그러나 수정비둘기를 가지고 있지 못한 여(余)는 돈 얼마를 꺼내어 소녀에게 주었다.

이편 길모퉁이에서 여(余)는 소녀를 돌아볼까 하였다. 그러나 여(余)는 돌아보지 않고 그냥 길모퉁이를 돌아서고 말았다. 만약 돌아보아서 그 소녀가 이제 그 돈으로 눈깔사탕이라도 사먹는 광경을 발견하면, 그때에 나에게 당연히 일어날 환멸의 비애를 맛보지 않으려고.

(매일신보 1930.04.27.)

수녀의 노래[편집]

[1]

여의 산보의 발은 부벽루에 와서 잠깐 멎었다.

『앙꼬모찌……』

『명소(名所) 사진, 명기(名妓) 사진 안 사실라우?』

『기념사진 안 찍으실라우?』

꽃 아래 서서 자기의 밥과 자기의 살림을 위한 부르짖음이 이곳저곳에서 들렸다.

꿈과 아름다움을 찾으러 발을 끌고 다니던 여(余)는 여기서 듣는 이 온갖 현실적(現實的) 고규성(苦叫聲)에 참지 못하여 좀 쉬려던 발을 끌고 다시 을밀대(乙密臺)로 향하였다.

을밀대(乙密臺)까지 왔으나 거기도 또한 부벽루와 같은 광경이 벌어져 있었다. 여의 발길은 을밀대(乙密臺)도 떠났다. 그리고 칠성문(七星門)으로 향한 꽃의 행렬의 길로 들어섰다.

좀 가다가 꽃가지 아래로 잔솔밭을 보니 거기는 수녀 세 사람이 앉아서 점심을 먹고 있었다. 여(余)는 길을 벗어나서 그리로 발길을 돌렸다. 점심을 맛있게 먹고 있던 그들은 염치를 불구하고 자기에게 가까이 오는 이 사내에게 놀랐는지 제각기 점심 과자를 다시 종이에 싸고 말았다. 그리고 여(余)를 쳐다보았다. 늙은 수녀 하나와 젊은 수녀 두 사람 있었다. 여(余)는 그들의 눈에 당연히 일어날 노여움의 불길을 상상하였다. 그러나 뜻밖에 그들의 눈에는 아무 악의(惡意)도 없었다. 자! 을밀대로 가지, 하더니 셋이서 한꺼번에 일어서서 저편 꽃 아래로 갈 따름이었다.

봄바람은 그들을 성모 마리아의 품에서 꽃의 동산으로 끌어낸 것이었다.

여(余)는 꽃 가운데로 사라져가는 그들의 뒷그림자를 바라보면서 월전(月前)에 신문에서 본 어떤 이야기를 생각해보았다.

[편집]

무대는 황해도 고을이었었다.

어려서부터 하느님의 길에 발을 들여놓은 수녀 S는 서른이 지난 지금까지 아직 이성이라 하는 것을 알지 못하는 순결한 처녀였다.

그는 성모 마리아를 믿었다. 그리고 그의 끝없는 사랑과 헤아림과 순결성을 믿고 존경하였다. 만약 성모 마리아로서 기뻐하신다 할 것 같으면 그는 서슴지 않고 그의 기─다란 머리라도 베어서 제단 앞에 드렸을 것이었다.

×

성교회(聖敎會)에서는 교인(敎人)들의 일용품을 제공키 위하여, 그리고 한편으로는 교회 비용의 얼마라도 얻기 위하여 구매조합 비슷한 것을 경영하였다. 그리고 S가 그 담임이 되었다.

어떤 날 밤이었었다. S가 바야흐로 자려고 성모의 존상 앞에 기도를 드릴 때였다. 갑자기 무엇을 사자고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S는 기도를 다 끝낸 뒤에 고즈넉이 일어나서 나가서 문을 열었다. 문을 여는 동시에 웬 사내가 하나 후덕덕 문 안에 들어섰다.

S는 소리를 못 질렀다. 그리고 힘으로 그 사내를 도로 내밀려 하였다. 그러나 사내와 여편네, 힘에는 차이가 있었다. 그는 몸을 와들와들 떨 뿐이었다.

×

왜 소리를 못 질렀던가? S는 그 뒤에 때때로 스스로 물어보았다. 창피? 세상의 체면? 혹은 영합(迎合)? 그는 세 가지를 다 부인하고 싶은 한편에 그 세 가지를 다 승인하여야 될 것 같은 기괴한 마음도 섞여 있었다.

그는 매일 밤 깊어서 성모의 존상 앞에서 자기의 더러운 몸을 생각하고는 울었다. 철들은 이래로 다만 한 분 제 사랑과 온 정성과 사모함을 바치는 성모 마리아─ 그이는 혹은 제 더럽힌 몸을 밉게 여겨서 돌보지 않으실는지는 모르지만, S는 성모를 저버리고는 살아갈 수가 없었다. 제 몸이 더러웠으면 더러웠을수록 더욱 성모를 힘입고, 그의 너그러우신 사랑 아래 죄함을 받으려 하였다.

(매일신보 1930.04.29.)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이 순결한 처녀를 시험하심에 그만 일로 그치시지 않고 한층 더 어려운 시험을 주셨다. 그의 뱃속에는 마침내 그때의 그 죄악의 씨가 밴 것이었다.

그러나 이 순결한 수녀는 그 시험에도 제 죄악에 대한 벌로서 달게 받았다. 낙태? 자살? 그러한 무서운 죄악은 그는 생각해본 일조차 없었다.

마음의 고통, 남에게 알릴 수 없는 아픔─ 이러한 가운데 새날은 오고 또 갔다.

×

만삭이 가까웠다. S는 신부에게 몸이 편하지 않다고 며칠의 휴가를 얻어 가지고 그곳에서 얼마 안 되는 자기와 피를 나눈 형의 집으로 갔다. 이 마음의 품과 몸의 처치 방책을 의논하려 함이었다. 그러나 급기야 만나매, 입을 열 수가 없었다.

몸이 편찮아서... 이런 말을 하고는 역시 고민(苦悶)의 며칠을 보냈다.

해산의 날이 이르렀다.

그것은 밤이었었다. 몸이 저리고 배가 참을 수 없이 아픔을 감각할 때에 그는 이것이 해산임을 알았다. 그리고 입을 악물고 아픔을 참았다.

이윽고 한 개의 새로운 생명이 그의 몸에서 떨어졌다. 그러나 그 떨어지는 순간의 아픔은 그로 하여금 아직껏 참고 있던 온갖 인내를 잊어버리고, 아픔의 신음 소리를 내게 하였다.

『왜 그러니?』

큰방에서 형의 소리가 들렸다. S는 허망지망 방금 이 세상에 떨어진 새로운 생명을 제 벗어놓았던 치마로 싸서 이불 속에 감추었다.

형이 건너왔다.

『몸이 아프니?』

『아니, 괜찮아.』

『얼굴이 종잇빛 같구나. 의사 하나 부르련?』

S는 손을 저었다. 이 순간 머리에는 성모도 없었다. 방금 세상에 떨어진 새로운 생명도 없었다. 아픔도 잊었다. 세상에 다시없는 창피스러운 일을 해놓은 뒤에, 그것을 남에게 알리지 않으려 함에 그는 온 힘을 썼다.

『저 방에 건너가셔요. 월수(月水)가.......』

형은 아우의 머리를 만졌다. 그리고 아직 순결한 처녀인 제 동생이 월수를 남에게 보이기를 부끄러워함이 당연한 일이라 하고, 근심을 남겨두고, 제 그 지아비의 방으로 건너왔다.

S가 마음을 진정하고 감추었던 치마를 풀어볼 때에는, 방금 세상에 떨어졌던 조그마한 육체는 벌써 차디찬 고깃덩이로 변하여 있었다.

×

그 뒤의 S의 마음의 고통은 여기 장황히 적을 필요도 없다.

한 가지의 죄악을 감추기 위하여 그는 『사람을 죽인다』는 가장 무서운 죄악을 거듭한 것이었다.

나날이 초췌해가는 동생의 모양은 피를 나눈 형에게도 근심의 재료였다. 형은 제 그 지아비와 의논을 하고, 마침내 동생을 어떤 온정(溫井)으로 보내기로 하였다.

(매일신보 1930.5.2.)

S는 온정에 가기 위하여 기차에 몸을 실었다.

그의 그 죄악의 증거물은 아직 치마에 싸인 채로 그의 행장 속에 숨어 있었다.

기차가 어떤 평원을 건널 때였다. 이 세상 사람에 경력 없는 순진한 수녀는 행장 속에서 그 죄악의 증거품을 꺼내여 남이 못 보는 틈을 타서 기차의 밖으로 내던졌다. 그리고 제 모든 죄악을 성모께 용서해주시기를 기도하였다. 하느님은 아시겠지만 세상은 감쪽같이 속였거니 하였다. 더욱 큰 마음의 아픔─ 이러한 아래에서도 그는 세상을 속인 데 대하여 얼마만치 안심의 숨을 내쉬었다.

×

그러나 세상사는 이 순진한 수녀의 마음대로 진행되지 않았다. 벌판에 내려진 보퉁이는 곧 지나가는 이의 눈에 뜨여 주재소에 보고되고, 주재소에서는 전화라는 기관을 이용하여 그다음 정거장에 벌써 『수배(手配)』라는 것을 해놓았다.

다음 정거장에 기차가 닿는 순간 세 사람의 순사가 기차에 뛰어올랐다. 그리고 그들은 여인의 얼굴만 샅샅이 뒤지기 시작하였다.

가슴에 죄를 품고 있는 S는 눈을 지르감고 머리를 숙였다. 뚜거덕 덜거덕ᅳ 그들의 발소리는 각각(刻刻)으로 가까워온다. 죽음, 그것은 죽음보다도 더 괴로운 찰나였었다. 눈을 지르감고 머리를 푹 수그리고 있지만 그의 마음의 눈은 그 순사들의 모양을 똑똑히 볼 수가 있었다.

그들의 발소리는 S의 앞까지 와서 잠깐 멎었다. 그러나 S가 마침내 참지 못하고 머리를 들려 할 때에 그들은 S를 지나가 버렸다. 입고 있는 수녀의 옷은 그들로 하여금 의심할 여지가 없게 한 것이었다.

마리아시여─ S의 눈에서는 눈물이 쏟아졌다. 그리고 제 지은 죄에 대하여 더욱 뉘우쳤다.

그는 저고리 소매로써 눈물을 씻은 뒤에 머리를 조금 들었다. 그러나 그때 그의 조금 뒤에서는 뜻밖의 광경이 전개되었다.

순사들은 어떤 얼굴빛 좋지 못한 여인 하나를 붙들어가지고 힐난하기 시작하였다.

S는 무의식적으로 다시 머리를 묻었다. 이 순간 그의 눈과 귀는 온 감각을 잃어버렸다. 고─ 고─ 그것은 마치 장마 때의 바람 소리 같은 기괴한 소리가 귀에 울릴 뿐이었다.

한 시간? 두 시간? 얼마를 지났는지 S는 몰랐지만 S는 마침내 머리를 들었다. 그러나 들고 보니 기차는 아직 그 정거장에서 있었다. 그에게는 한 시간 두 시간같이 보였지만 일분이 되지를 못하는 짧은 시간이었다.

순사들은 안 내리려는 여인을 끌었다─

『좌우간 내려!』

『난 몰라요.』

『내려!』

『몰라요. ××이 낳은 지 넉 달도 못 되어서 또 아이를 낳을까?』

『내리라면 내리지.』

순사는 마침내 완력을 썼다.

그때였다. S는 일어났다. 그는 더 참을 수가 없었다. 더 볼 수가 없었다. 하느님 앞에서는 못 감추나마 세상에나 감추어 보려던 그의 죄악이 마침내 탄로되고 그 때문에 그의 양심은 그의 온갖 체면과 부끄러움에 감연히 일어섰다. 그는 고즈넉이 순사들의 편으로 걸어갔다.

『아이를 버린 것은 저올시다.』

그는 똑똑한 어조로 순사에게 이렇게 자백하였다.

그리고 짐을 싸 가지고 순사와 같이 그 정거장에 내렸다.

×

법률은 그를 죄하리라. 세상은 그를 웃으리라. 종교는 그를 책하리라. 그러나 이 뒤 하느님의 법정에 설 때에는 아무 더러움 없는 순결한 수녀로서 하느님의 오른편의 자리를 차지할 것을 우리는 의심하지 않고 믿는다.

(매일신보, 1930.5.3.)

죽음[편집]

여(余)는 어떤 벗의 딸의 주검을 따라서 진남포 공동묘지에 가본 일이 있다. 그것은 겨우 해토가 시작된 이른 봄이었다.

아직껏 다른 곳의 공동묘지를 본 일이 없는 여인지라 비교는 할 수 없으나 진남포의 공동묘지는 「참담」 그 물건이었다. 그것은 사람의 주검을 묻으려고 작정해놓은 지역(地域)이라기보다 죽음을 모욕하기 위하여 만들어놓은 제도라고 말하고 싶을 만큼 참담하였다. 겨우 해토 때로서 겨울 동안에 갖다가 묻은 무덤들은 아직 그 위에 덮은 거죽의 빛도 변하지 않고 그 거죽이 바람에 날아남을 막으려고 두어 줌씩 올려놓은 흙에는 아직 손자국이 남아 있었다. 그리고 겨울 동안에 그 작은 진남포에서 웬 사람이 그리 많이 죽었는지 눈앞에 저편 아래까지 보이는 무덤은 모두 아직 송장 내가 나는 듯한 새 무덤뿐이었다. 진남포의 공동묘지는 산비탈이었다. 그리고 땅은 발간 흙이었다. 글자 그대로 새빨간 무덤이 산마루에서 저편 아래까지 규칙 없이─ 더구나 땅 한 평에 주검 하나씩을 묻었는지라 그 주먹만큼씩한 무덤과 무덤의 사이에는 사람 하나가 통행할 자리조차 없이─ 수천(千) 개가 놓여 있으며, 아직 나무 빛이 변하지 않은 묘패에는 그 죽은 사람의 이름과 죽은 날짜(그것도 모두가 소화(昭和) 오년(五年))[2]가 씌어 있었다. 미상불이 이 관(棺)과 저 관(棺)은 서로 머리와 발이 맞닿았을 것으로서, 말하자면 부세(浮世)에서는 서로 알지 못하던 사람이 여기에서는 공동묘지라는 제도 때문에 뜻에 없는 친밀을 서로 주고받는 셈이었다. 그날은 바람이 몹시 부는 날로서 모두 무덤 위에 덮은 (아직 빛은 변하지 않은) 거죽들은 벗어질 듯이 펄럭였다. 산비탈의 괴상스러운 바람 소리와 새빨간 흙더미 위에서 펄럭이는 거죽은 어떤 의미로 보아서는 처참하달 수 있었다.

벗의 딸의 무덤 자리는 산마루에 가까운 곳이었다.

그날은 또 한 패의 장례가 있었다. 그리고 그 주검의 무덤 자리는 벗의 딸의 무덤 자리와 린[隣]닿아서 있는 곳 윗자리였었다. 두 개의 주검이 나란히 하여 놓여 있고 일꾼들은 구멍 두 개를 파고 있었다. 아랫구멍의 윗끝과 윗구멍의 아래 끝의 거리는 두 자에 지나지를 못하였다.

그것을 구경하고 있던 여(余)는 문득 생각난 일이 있어서 아래로 발을 옮겼다. 그것은 작년 봄에 심장마비로 열일곱 살이라는 아까운 나이로 저세상에 간 B의 무덤을 찾아보려 함이었다. 여(余)는 그의 죽음을 신문에서 보았다. 그리고 언제 진남포를 갈 기회가 있으면 한번 그의 무덤을 찾아보리라고 늘 생각하고 있던 것이었다.

여(余)는 처음에는 주검을 존경하는 뜻으로 무덤을 발로 밟지 않고 내려가 보려 하였다. 그러나 무덤과 무덤 사이에 발 하나를 들여놓을 자리가 없는 진남포의 공동묘지에서는 도저히 그러한 재간은 할 수가 없었다. 여(余)는 어떤 무덤 위에 올라섰다.

겨우 해토 때로서 얼었던 흙이 녹아서 여(余)가 올라서는 순간 여(余)의 무게 때문에 발짚은 곳은 서너 치 쑥 들어갔다. 여(余)는 발을 궁글으면서 그다음 무덤의 꼭대기로 건너뛰었다. 무덤은 역시 쑥 들어갔다. 이 무덤 꼭대기에서 저 무덤 꼭대기로 또한 그다음 무덤 꼭대기로─ 여(余)는 마치 캉가루와 같이 겅중겅중 뛰면서 아래로 아래로 내려갔다. 한 무덤에서 한 무덤으로 건너뛸 때마다 (마음ㅅ상이 그런지) 여(余)는 발로써 이상한 저항력(抵抗力)을 감각하였다. 그것은 결코 흙의 저항력은 아니었었다. 목판(木板), 공허(空虛)─ 그것은 마치 기선(汽船)의 갑판에 내려 뛰는 것과 같이 일종의 형용하지 못할 공허(空虛)를 발로써 감각하였다.

지금에 생각하면 그것은 지극히 부도덕(不道德)한 일이었다. 소재(所在)가 분명하지 못한 무덤 하나를 찾느라고 여(余)가 발로써 밟은 수효는 오백(五百)으로써 헤지 못할 것이었다. 그리고 여(余)가 밟은 곳은 모두 무덤의 마루인지라 말하자면 죽은 이의 배, 혹은 가슴의 직상(直上)일 것이었다.

(매일신보, 1930.6.9.)

一의 一[편집]

이리하여 한 시간이나 한 덩이의 흙더미를 찾느라고 헤매다가 못 찾고 산마루에 돌아왔을 때에는 벗의 딸의 주검은 벌써 몇 줌의 흙 아래 감추어졌고 미지(未知)의 사람을 넓은 구멍에 넣으려고 방금 들어 넣는 때였다. 본시 이런 것에 대하여 공포(恐怖)증이 있는 여(余)는 돌아서 버리려 하였으나 이상한 호기심은 여(余)로 하여금 여의 마음과는 반대로 오히려 두어 걸음 가까이 나아가서 구경하게 하였다.

널은 굵은 바에 걸쳐서 네 사람의 손으로 구멍 아래까지 옮겨다 놓았다. 그때에 여(余)의 눈에 몹쓸 호기심과 함께 불유쾌하게 비친 것은 널에서 흐르는 『사수(死水)』였었다. 널의 머리쪽이 높아질 때는 밑으로─ 밑이 높아질 때는 머리 쪽으로─ 『사수(死水)』가 뚝뚝뚝뚝 땅에 떨어졌다. 널 속에는 얼마나 사수(死水)가 고여 있는지 관(棺)이 지나간 자리는 마치 물지게 지나간 자리와 같이 역연(歷然)히 알아볼 수가 있었다. 차차 호기심이 더해진 여(余)는 두어 걸음 더 나섰다. 여(余)와 무덤 구멍과의 거리는 세 걸음이 되지 않도록 가까웠다.

관(棺)은 묘혈(墓穴) 속에 들어가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겨냥을 잘못 하였던지 들어가던 관(棺)은 중도에 걸렸다.

『삽!』

『호미!』

관(棺)은 다시 빼내어 묘혈에 가로 걸쳐놓았다. 그리고 구멍을 더 깎았다.

좀 깎아낸 뒤에 관을 다시 넣었다. 그러나 아직 깎아낸 것이 부족하였던지 또 중도에서 걸렸다.

『더 파야 돼.』

『그럼 도로 들어낼까?』

『아니, 넉넉할 텐데 어디 눌러봐요. 누르면 들어갈걸.』

서로 이런 소리를 주고받던 그 일꾼의 한 사람은 발로써 관 머리를 내리찧었다. 덜컥하니 머리가 땅에 닿는 소리가 났다. 아래쪽도 쿵 하니 구멍 속에 들어가 놓였다.

거기까지 보고 있던 여(余)는 벗들의 재촉에 못 이겨서 그 자리를 떠났다. 대단한 불유쾌와 기괴한 호기심을 남겨둔 채로……

×

그날 밤 여(余)는 여관에서 매우 곤하여 저녁상을 물린 뒤에 곧 자리를 펴고 불을 끄고 누웠다. 피곤 때문에 생겨나는 상쾌한 졸음은 여(余)의 온몸을 지배하였다. 차차 잠에 빠져들어 가려 할 때에 여(余)의 머리에는 광막한 벌판이 떠올랐다. 끝없는 벌판과 끝없는 하늘, 어두컴컴한 빛, 상쾌한 음악, 그때였었다. 그 광막한 벌판에 문득 난데없는 무덤이 하나 불끈 솟아올랐다. 그것을 군호로써 그 넓은 벌판은 수천만(千萬) 개의 주먹만큼씩한 새빨간 무덤으로 변해버렸다. 그 위에는 거대(巨大)한 관(棺)이 하나 흐늘흐늘 흔들리고 있었다. 묘혈(墓穴)은 관보다 작았다. 커다란 발이 하나 나타나서 관의 머리를 찼다. 사수(死水)의 흐른 자리가 있었다……

여(余)는 스스로 책망을 하고, 혀를 차면서 돌아누웠다. 즉 발에서는 아까 무덤 꼭대기에서 꼭대기로 뛰어다닐 때에 받은 그 기괴한 공허(空虛)를 다시 감각하였다.

아직껏 온몸을 지배하던 졸음은─ 어디론가 사라져 없어졌다. 그리고 여(余)의 머리를 지배하는 것은 기괴한 광막한 벌판과 문득 생기고 문득 없어지는 수없는 무덤과 흐늘거리는 넋이었었다.

여(余)는 이편으로 돌아누웠다. 저편으로 돌아누웠다, 이리로 저리로 돌아누우면서 여(余)는 온갖 망상을 잊어버리려고 애를 썼다. 여(余)는 여(余)의 생애 가운데에서 가장 유쾌했던 일을 생각해보려 하였다.

(매일신보, 1930.6.10.)

어느 것이 가장 유쾌하였나? 낚시질? 소년 시기의 산보? 결혼? 동경(東京) 시대? 방탕? 지금 유쾌하게 생각나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그리고 그 추억의 끝은 모두 한결같이 기괴한 망상으로 몰려들었다. 낚시질하는 푸르른 강은 광막한 벌판으로 변하였다. 소년 시기의 산보는 여(余)의 머리를 모란봉 뒤에 있는 묘지(墓地)로 끌고 갔다. 온갖 생각은 모두가 의논한 것같이 한결같이 여(余)를 또다시 기괴한 망상으로 끌어들였다.

동시에 여(余)의 베개가 차차 불편해지기 비롯하였다. 베개는 왜 얼굴 전면을 괴도록 만들지 않았나. 베개에는 귀가 놓일 자리를 왜 좀 들어가게 하지 않았나. 베개는 모름지기 사람의 머리에 꼭 들어맞게 머리는 좀 낮고 목은 좀 높게 만들어야 할 터인데 사람에게는 그만 눈치도 없다.

또 왜 두 팔은 양옆에 달려서 모로 누워 자기에 이렇게 불편하게 되었나. 팔이 앞뒤에 달렸으면 모로 누워 자기에 오직 편치 않겠나.

아홉 시가 지났다. 열 시도 지났다.

여(余)는 역시 잠을 못 들고 세상의 온갖 것을 저주하면서 이리 돌아누웠다 저리 누웠다 하고 있었다.

열두 시도 지났다. 사면은 고요해졌다. 여(余)의 방은 이 여관의 사랑채로서, 넓은 사랑채에 묵고 있는 손은 여(余) 한 사람밖에는 없었다. 이 사실은 여(余)의 마음을 산란하게 하였다. 더구나 (잃어버리지 않기 위하여, 그리고 한편으로는 도적이 온다 할지라도 이 방은 빈방으로 알리기 위하여) 방 안에 들여놓은 여(余)의 구두는 여(余)를 괴롭게 하였다. 그 구두는 여(余)의 머리에서 두 자가 되지 못하는 거리에 놓여 있었다. 그리고 구두는 아까 묘지에서 수백(百)의 송장의 가슴 위를 밟고 뛰어다니던 그것이었었다. 뿐이랴, 혹은 그때에 흐른 그 사수(死水)를 밟았는지도 모를 것이었다. 이것이 생각나면서 여(余)는 얼른 그 구두를 등지고 돌아누웠다. 그때부터 여(余)는 다시는 그 구두 쪽으로 돌아눕지를 못하였다. 그리고 옴짝을 못할 공포(恐怖) 가운데에서 조금씩 조금씩 바지를 향하여 움츠려 들어갔다. 할 수 있는 대로 그 구두와의 거리를 멀리하려 함이었다. 이리하여 새로 한 시가 칠 때에는 여(余)는 다리를 기자로 꺾고야만 누워 있을 만큼 움츠려 들어갔다.

두 시도 지났다. 그러나 여(余)는 그냥 잠이 못 들고 인젠 더 움츠려 들어갈 곳은 없으므로 옴짝도 못 하고 누워 있었다. 숨도 크게 못 쉬었다.

마침내 여(余)는 커다란 용기를 냈다. 도저히 더 참을 수가 없었던 것이었다. 여(余)는 벌떡 일어나면서 전등 줄을 잡아 가지고 불을 켰다. 그리고 목침으로 구두를 윗목으로 밀어놓은 뒤에 가방 속에서 최면제(催眠劑) 아달리─ㄴ을 꺼내 극량(極量) 이상을 먹은 뒤에 얼른 불을 끄고 다시 누웠다.

─이리하여 여(余)는 겨우 잠이 들었다.

×

여(余)는 그 뒤 때때로 생각하였다. 그때에 무엇이 여(余)의 신경을 그렇듯 자격하였던가……고.

죽음? 그것은 그렇듯 무서운 것인가. 그것은 한낱 『정지(靜止)』로써 간단히 설명하여 버리면 안 될 것인가?

×

『죽음』은 우리의 생활에 얼마나한 가치를 가지고 있는 것인가.

여(余)는 여(余)의 들은 바의 몇 가지를 가지고 기록하여 죽음이 사람의 생활에 무엇과 비교할만한 가치를 가지고 있는지 생각해보고자 한다.

(매일신보, 1930.6.11.)

一의 四[편집]

D가 이 일본 사람이 경영하는 여관에 사환 애로 처음 들어왔을 때에는, 그가 열두 살 나는 아직 철없는 시절이었었다.

평양에서 오십(五十) 리쯤 되는 어떤 촌의 농가의 아홉째 아들로 태어난 그는, 생활을 위하여 어려서부터 제 입은 제가 쳐야만 되는 운명에 붙들렸다. 동리 집 아이 보기에서 면소의 사환 애로─ 여덟 살 적에 벌써 집을 떠나서 제 입 치기 시작한 그는, 열두 살이라 하는 나이는 아직 다른 아이들 같으면 동서를 분간 못할 나이였건만 D에게는 그런 방면의 지혜는 벌써 넉넉히 있었다.

그는 온갖 것을 탄하지 않고 일하였다.

×

D가 열아홉 살이 되었다. 그는 사환에서 『갸꾸히기』로 승격하였다.

많은 공상과 꿈으로 보낼 이 좋은 시절도 D에게는 그다지 별한 느낌을 주지 못하였다.

『조선명물(朝鮮名物) 노에(ノーエ), 조선인삼(朝鮮人蔘) 노에(ノーエ)』

늘 이러한 콧소리를 하면서 정거장에 드나드는 것으로 그는 일과를 삼았으며, 그는 그것으로 또한 만족하였다. 『공상』이라 하는 것은 이 젊은이에게는 아무런 뜻도 가지지 못한 것이었다.

×

그가 스물한 살이 되었다. 그해 봄, 그 여관에는 아이 보기를 겸한 『어머니』로서 탄실이라는 열여덟 살 된 조선 계집애가 들어와 있게 되었다.

이 사실은 아직 『공상』이라는 것을 모르고 스물한 살까지 자란 이 젊은이에게도 심상찮은 마음의 떨림을 일으키게 하였다. 그는 때때로 일하는 탄실이의 무르익은 뒷모양을 바라보고는 몸을 떨고 하였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그 이상 어떻게 할 줄을 몰랐다.

한 달이 지나고 두 달이 지났다.

×

일본 사람 여관에서 일하는 두 조선 사람, 『갸꾸히기』와 『어머니』, 두 청춘─ 여기는 자연의 결합이 있지 않을 수 없었다. 만약 생기지 않았다 하면 천도가 무심하다.

한 달, 두 달이 지나는 동안에 둘은 어느덧 사랑하는 새가 되었다. 그들의 천국은 『공상』이라는 도정을 뽑아 먹고 그들 앞에 나타났다. 그리고 공상이라는 도정을 뽑아 먹느니만치 더욱 맹렬하였다.

주인과 손님들이 잠든 뒤에 두 청춘은 뒤뜰에서 사랑을 속삭였다. 사람들이 보는 데서는 지나가는 길에 슬쩍 몸을 건드려보는 것으로 자기네의 사랑을 나타냈다.

사랑이라 하는 것은 괴상한 물건이었었다. 아직껏 달밤의 아름다움을 느껴보지 못한 그들은 서로 사랑을 속삭이기 비롯한 뒤부터는 달밤의 비상히 아름다움에 오히려 몸을 소스라쳤다. 잠든 거리의 아름다움도 뜻하지 않았던 바였었다. 만월(滿月), 그믐달, 달 없는 하늘, 혹은 폭풍우며 무서운 우뢰ㅅ소리까지라도 사랑하는 두 청춘을 즐겁게 하였으며, 그들의 미감(美感)의 대상이었으며, 그들의 꿈과 공상의 대상이었다.

아직껏 평범하고 쓸쓸하고 외롭다고 보던 이 『세상』이란 것의 뜻밖의 아름답고 즐거움에 그들은 경이의 눈을 던졌다.

(매일신보, 1930.6.12.)

二의 一[편집]

그러나 하느님은 너무나 공평하셨다. 즐거운 일은 반드시 비극으로 막을 닫히게 지휘하는 하느님이셨다. 탄실이의 배가 차차 부르기 비롯하였다.

두 사람의 눈으로 보면 사랑의 씨, 다른 사람의 눈으로 보면 불의의 씨─ 탄실이의 뱃속에 생겨난 한 개의 생명은 차차 자랐다.

『不義はお家の御法度[불의(남녀의 밀회)는 집안 법도로 금한다]』

그 탄실이의 배가 남의 눈에 감추지 못하리만치 커졌을 때 주인에게서 이러한 선고가 내렸다.

이리하여 그들은 그 여관에서 쫓겨나왔다.

×

그들은 성안에 있는 어떤 조선 사람의 여관에 몸을 던졌다.

객보에 적은 『부처』라는 명색이며, 한방에서 거처하고 한 이부자리에서 마음 놓고 자는 것은 그들의 마음에 형용하기 어려운 공포(恐怖)에 가까운 희열을 주었다.

신혼한 부처─ 이러한 명색 아래 그들은 팔다리를 뻗치고 여관에 묵어 있었다.

그러나 그들의 마음은 때때로 예고(豫告) 없이 엄습하는 괴상한 기분 때문에 전전긍긍(戰戰兢兢)하였다.

그것은 무엇? 그들은 그것의 정체를 몰랐다. 때때로 『야단』이라고밖에는 형용할 수가 없는 괴상한 기분이 폭풍우와 같이 그들의 마음을 엄습하고 하였다. 서로 웃음을 주고받으며 서로 사랑을 속삭이며 마치 어린애의 각시놀이와 같이 재미있게 지내는 그들도 마음속은 늘 극도로 긴장되어 있었다.

뜻하지 않고 한숨을 쉰 뒤에 그 한숨 쉰 까닭을 말하지 못하여 다투고 반목(反目)하였던 일까지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기분으로 언제까지든지 지낼 수는 없었다. 정체가 분명하지 못하던 괴상한 기분은 차차 구체화(具體化)하여 그들의 마음에 똑똑하고는 거대한 그림자를 주었다.

×

『공상』을 모르고 따라서 『장래』라 하는 것을 모르고 지내던 그들의 앞에 갑자기 『장래』라 하는 괴물이 나타났다. 기─ㄴ 생애와 (당연히 있어야 할) 가정과 장차 생겨날 여러 개의 자식에게 대한 어버이의 책임이라 하는 것은 결코 그들을 언제까지든지 각시놀음과 같은 공포(恐怖) 속에 묻어두지 않을 것이었다. 그들의 앞에는 어둠이 있었다. 참담이 있었다. 주림과 괴로움이 있었다. 눈물과 부르짖음과 아픔이 있었다. 한 가지의 『권리』를 못 가진 그들의 앞에 천백(千百) 가지의 의무와 책임과 어려움이 있었다.

그것과 싸우기에는 그들은 너무 약하였다.

공열(恐悅)과 환락의 현재에 앉아서 암담한 장래를 엿볼 때에 그들은 거기 대하여 일(一)절 이야기하기를 꺼렸다. 할 수만 있으면 생각도 안 하려 하였다. 때때로 몸을 고민하듯이 떨 뿐이었다.

×

어떤 날 밤 자리 속에서 젊은 아내는 이런 말을 하였다─

『죽으면 속상한 걸 모르갔디?』

남편은 혀를 채이고 돌아누웠다.

열두 시가 지났다. 한시도 지났다.

남편은 아내가 아직 자지 않는 것을 보고 아내 편으로 돌아누웠다.

『오마니 보구프디 않우?』

아내는 대답 없이 한숨을 쉴 뿐이었다. 그리고 몸을 약간 떨었다.

(매일신보, 1930.6.13.)

二의 二[편집]

이튿날 밤 깊어서 여관에서는 두 개의 위독한 생명이 자혜 의원으로 실려 갔다.

넘치는 정열과 장래에 대한 공포에 위협받은 젊은 남편이 (아내에게 의논조차 없이) 사온 쥐 잡는 약을 아내는 말없이 승인한 것이 있었다. 그리하여 밤이 들기를 기다려서 그 약을 한 통씩 떡에 발라서 먹은 것이었다.

[편집]

D와 탄실이가 묵고 있던 곁방에는 여(余)의 우인(友人) 일본 사람 I씨(氏)가 묵고 있었다.

그날 저녁 I씨(氏)에게는 손님이 찾아왔다.

곁방에서는 젊은 남녀가 혹은 느끼며 혹은 속살거리는 소리가 끊였다 이었다 들려왔다.

『곁방에서 저런 소리가 나면 혼자서 주무시기 거북하지 않아요?』

손님은 이런 이야기를 하면서 웃었다.

밤 깊어서 손님이 돌아간 뒤에 I씨(氏)는 자리를 펴고 누웠다. 그리고 곁방에 대한 불쾌와 호기심을 마음에 품은 대로 꿈의 나라로 들어갔다.

새벽 두 시쯤 I씨(氏)는 곁방에서 나는 심상찮은 소리에 깼다. 그러나 깨어서 보니 역시 신음하는 소리지 별다른 소리는 아니었었다.

I씨(氏)는 그 신음하는 소리에 별한 연상을 하여보고 몹시 불유쾌해져서 돌아눕고 말았다. 그러나 이 때문에 그의 졸음은 산산이 헤어져 버렸다. 그리고 I씨(氏)의 신경은 차차 날카로워 갔다.

신음ㅅ소리의 뒤끝에 여인의 토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고는 등을 쓸어주는 소리가 들렸다.

뒤를 연하여 사내가 또 토하였다. 사내와 여편네 두 사람의 신음ㅅ소리는 차차 커갔다. 그러면서도 사내는 일어나서 걸레로 그 토한 것을 모두 훔쳐서 문을 열고 내다 버리려 뜰로 나갔다.

오(五)분이 지나서야 사내는 돌아왔다. 그리고 맥이 빠졌는지 덜컥하니 마루에 걸터앉아서 숨을 태우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고는 마루에서 또 토한 사내는 그것을 모두 훔친 뒤에 방안으로 기어 들어가서 털썩 몸을 내어 던졌다.

─무엇에 체한 모양이군. I씨(氏)는 이렇게 판단하고 단잠을 깬 것을 분히 여기면서 담배를 피웠다.

곁방에서는 남녀의 소곤거리는 소리가 연하여 들렸다. 조선말을 잘 모르는 I씨(氏)는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는 몰랐지만 그 진실한 어조로써 결코 그것은 경박한 이야기가 아닌 것은 짐작할 수가 있었다.

이윽고 사내가 또 토하였다. 이번에는 내장까지 쏟아내는 듯한 소리였었다. 쿵쿵 고민하며 올라 뛰는 소리도 들렸다. 여편네도 또 고민하기 시작하였다. 쿵쿵쾅쾅 두 남녀는 몸을 올라 뛰면서 고민하였다. 단말마의 부르짖음이 연하여 나왔다.

I씨(氏)는 마침내 혀를 차고 허리띠를 다시 매며 일어났다. 그리고 책망을 하든 의사를 불러주든 하려고 마루로 나가서 곁방문을 열었다.

(매일신보, 1930.6.14.)

아픔 때문에 다른 정신이 없는 두 남녀는 자기네 방에 사람이 들어온 것조차 모르고 고민하다가 몇 번을 어깨를 흔들린 뒤에야 겨우 알았다. 그리고 겅중거리를 하던 몸을 억지로 진정하였다. 그들의 얼굴은 무서운 아픔을 참느라고 밉게까지 되어 있었다. 몸은 와들와들 떨었다. 그리고 사내는 몸을 일으켜서 쓰러질 듯 쓰러질 듯하면서 걸레를 집어다가 방안을 또 훔치기 시작하였다.

이때에 I씨(氏)의 눈에 뜨인 것은 몇 개의 쥐 잡는 약의 빈 곽이었다.

『バカ[바보]!』

I씨(氏)는 허망지망 뛰어나왔다. 그리고 주인을 깨우며 일(一)변 자동차를 부르며 경찰서에 전화를 하며 응급치료를 명하며 하였다.

자동차가 왔다. 두 위독한 생명은 자동차로 자혜의원으로 보냈다.

그러나 자혜의원에 채 도착하기 전에 젊은 아내는 이 세상을 떠났다. 자혜의원에 내리면서 남편도 또한 제 사랑하는 아내 뒤를 따라갔다.


[편집]

생활이라 하는 커다란 괴물 앞에는 『죽음』이란 진실로 가벼운 것이었다. 『생활의 공포』와 『정열』에 직면하여 D와 탄실이가 죽음의 길을 취한 것은 우리가 매일 신문 지상에서 보는 바로 별로 신기할 것이 없다. 여기서 저기서 비슷비슷한 일이 매일 몇 개씩 일어나는 것을 신문지는 우리에게 보도한다.

D와 탄실이의 죽음에서 오히려 우리가 더 기이하게 느끼는 바는 죽기 순간 전까지 자기의 토한 것을 감추기 위하여 걸레를 들고 방 안을 훔치던 그의 태도였다. 그러면 『체면』 혹은 『체재』라 하는 것은 사람으로 하여금 순간 뒤에 이를 『죽음』까지 잊어버리게 하리만치 절실한 문제─f가. 『죽음』이라 하는 것은 『체재』나 『체면』 때문에 잊어버리울 만치 그림자가 약하고 가벼운 것인가?

『죽음보다도 강하다.』

이 말은 아직껏 가장 강한 힘을 형용하려고 사람이 만들어낸 형용사였었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 『죽음』보다도 강한 『체재』를 보았다. 그러면 인생에 관한 『죽음』의 가치란 그렇듯 가벼운 것인가?

여(余)는 어떤 날 이 이야기를 어떤 회석에서 꺼낸 일이 있었다. 그때에 그 회석에 있던 모 씨가 이런 실례를 들어 여(余)의 말에 찬성하였다.

(매일신보, 1930.6.15.)

×

지금은 몇 개의 학교와 기상대가 들어앉았고 저녁때의 평양 시민의 산보 터로 되어 있는 만수대(萬壽臺)는 삼십(三十) 년 전만 해도 소나무 몇 개만 서 있는 무시무시한 언덕이었었다. 그리고 그 가운데에는 죄수(罪囚)를 목맸다는 소나무가 있었다. 그 소나무는 여(余)의 어렸을 때에도 그냥 서 있었다. 인과(因果)라 할까, 숙명이라 할까. 다른 소나무들은 아직 그냥 청청할 때에 그 소나무만은 벌써 고목이 되어 있었다.

그 소나무가 아직 청청하고 때때로 사형수를 매달던 때의 이야기니까 벌써 삼십(三十) 년 이전의 일인 것이었다. 그때에 한창 장난꾸러기의 모 씨는 사형이라도 있는 날은 온갖 일을 제쳐놓고 그 구경을 다녔다.

어떤 날, 강도 셋이 사형을 받게 되었다. 세 명을 끌어다 내다 놓고 이날이 마지막 날이라고 친척들이 가져온 술이며 음식을 먹인 뒤에 사형은 집행하게 되었다.

그 소나무에 느리운 바(繩)를 향하여 지척지척 가던 죄수의 한 명은 우연히 거기 놓인 돌부리를 찼다. 동시에 신이 벗어졌다. 죄수는 털썩 주저앉았다. 그리고 몸을 틀어서 그 신을 도로 집어다가 신은 뒤에 다시 일어서서 세 걸음 앞에 있는 바 아래까지 가서 목을 디밀었다. 이리하여 명 아닌 목숨을 거기서 끊었다.

×

그러면 그 죄수는 신짝이 그렇게 아깝던가? 혹은 관습(慣習)의 힘이 죽음의 순간 전에도 그로 하여금 주저앉아서 신을 도로 신게 하였는가.

그 어느 방면으로 보든 죽음이라 하는 것이 사람의 생활에 가지고 있는 가치(價値)의 그다지 크지 못함이 증명되지 않나. 동리 집에 불이 붙어도 신짝을 미처 못 신고 뛰어나가는 『사람』이 자기의 신 벗어진 것을 의식하리만치 죽음이란 것은 사람의 생활에 관련이 적은 것인가.

×

여(余)는 또 한 가지의 죽음의 가치를 생각해보고자 한다.

[편집]

전라남도 어떤 고을에 이(李)라 하는 젊은이가 있었다. 가세도 보잘것없고 문벌도 보잘것없는─ 말하자면 생리학(生理學)이 말하는 바 『몸집』밖에는 아무것도 없는 젊은이였었다. 똑똑지는 않으나 그의 할아버지는 백정이란 말까지 있었다.

그는 홀어머니를 모시고 행화 장사로 그날그날 지내고 있었다.

×

어떤 날─ 그것은 늙은이의 마음까지도 다시 젊게 하는 어떤 봄날이었었다. 그리고 젊은이의 마음은 더욱 정열과 희망과 공상으로 떨리게 하는 어떤 봄날이었었다. 그러한 봄날 저녁이 젊은 행화 장수는 역시 봄의 향기에 유혹된 바 되어 그 동리 뒤에 있는 동산을 일없이 거닐고 있었다. 그리고 눈 아래 벌여 있는 동리를 내려다보면서 그 가운데 같이 『생(生)』을 즐긴 미지(未知)의 많은 처녀들을 머리에 그려보면서 혼자 기뻐하고 있었다.

그때에 문득 그의 시야(視野)의 한편 끝에 아지 못할 분홍빛의 점 하나가 걸핏 지나갔다. 그의 눈은 뜻하지 않게 그리로 향하였다. 그것은 그 동리뿐 아니라 그 근방 일(一)대의 재산가요 세력가인 丁XX씨의 집의 안채의 건넌방이었었다. 그리고 분홍빛의 점은 쏙 발가벗은 처녀였다. 그의 눈이 그리로 향했을 때에 그 처녀는 벌써 속옷은 입었다. 그리고 앉아서는 버선을 신는 즈음이었었다.

그러나 아아, 그 풍만한 육체! 흐느러진 몸집! 무르익은 젖가슴! 기다란 머리! 젊은 행화 장수는 눈알이 앞으로 쏟아져 나올 듯이 뜨고 정신없이 거기를 바라보고 있었다. 처녀는 옷을 다 입고 그 방에서 나와 다른 방으로 사라져 없어졌다.

그날 밤이 깊어서야 젊은 행화 장수는 제 집에 돌아왔다. 그는 그때껏 그 동산에서 처녀가 다시 뜰에 나타나는 것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었었다.

(매일신보, 1930.6.17.)

×

이튿날도 그는 하루 종일을 그는 그 동산에서 J씨집 뜰만 내려다보고 있던 것이었다.

그 뒤부터는 그는 날만 밝으면 동산에 올라갔다. 그리고 밤이 들어서야 집에 돌아왔다. 얼굴도 똑똑히 못 본 그 처녀는 젊은 행화 장수의 온 마음을 그러쥐었다.

심방에서 자라는 처녀, 뜰안 출입조차 꺼리는 아름다운 임을 다시 한 번 볼 기회를 얻어보려고 날마다 날마다 동산에 올라가서 그 집 뜰만 내려다보고 있는 이 젊은 행화 장수는 마침내 애타는 가슴을 억제치 못하여 병상에 넘어졌다.

그의 병에는 백약이 쓸데가 없었다. 가세가 넉넉지 못한 그로써 고명한 의원은 볼 수가 없었지만 그를 진맥한 의사마다 그의 병에 대하여 제각기 다른 병명(病名)을 대고 제각기 다른 약을 주었다.

젊은 행화 장수는 의사가 주는 약마다 다 말없이 받아먹었다. 그러나 제 병에 대하여 가장 진실한 판단을 가지고 있는 이 젊은이는 그러한 모든 약이 아무 쓸데가 없음을 가장 똑똑히 알고 있었다.

×

마침내 그의 병의 원인은 그의 어머니도 알게 되었다. 정신없이 한 헛소리에 첫 기수를 채이고 캐어 물어서 그 원인을 자백시킨 것이었었다.

자식을 사랑하는 부모의 마음은 세상의 그 무엇에 비기지 못할 만큼 큰 것이었었다. 어머니는 자기네 집안과 J씨 집안의 문벌을 비교할만한 이성도 잃었다. 자기 집안의 가세도 잊었다. J씨 집안의 세력도 잊었다. 자식을 사랑하는 오직 일(一)편단심은 어머니로 하여금 아직껏 오십(五十)여 년간을 경험해온 세상의 온갖 관습이며 염치를 잊게 한 것이었다.

어머니는 J씨 집 하인을 찾아갔다. 그리고 그 집 하인에게 온갖 것을 다 말하고 뒷일을 부탁하였다.

×

뜻밖에 회답이 며칠 뒤에 이르렀다. 그것은 그 동리에 사는 J씨 집 하인의 먼 일(一)가 되는 집에서 어느 날 젊은 행화 장수와 처녀를 만나게 하자는 것이었다.

그날 흥분으로 말미암아 들뜬 행화 장수는 새 옷을 갈아입고 그 집을 찾아갔다. 일어날 기운조차 없도록 쇠약한 그였었지만 세상에 다시없는 기꺼운 소식은 그로 하여금 없던 힘을 내이게 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가 커다란 희망을 품고 이르렀을 때에 뜻밖에 장정 서너 사람이 달려들어서 그를 결박을 하여 놓았다.

어머니는 집에서 사랑하는 아들의 행복을 위하여 잠이 못 들고 이리 뒤채고 저리 뒤챌 동안 아들은 영문 모르고 결박을 당하여 어두컴컴한 움에 꾸겨 박혀 있었다.

그날 밤부터 사흘 그는 물 한 모금 못 먹고 결박을 당한 채로 그곳에 박혀 있었다. 그를 결박한 사람들은 그 뒤에는 잊어버렸는지 그의 앞에 얼씬도 안 하였다. 그리고 사흘째 되는 저녁 경찰의 힘으로 그가 구원을 당했을 때는 그는 혼수상태에 빠져 있었다.

×

한 달이 지나서야 그의 몸은 회복되었다. 동시에 이상히도 몇 달을 두고 애타하며 안타까워하던 그의 마음도 회복되었다.

인위적(人爲的) 죽음이 커다랗게 그의 위에 그림자를 비최일 때에 그의 마음에 불 일던 온갖 정열과 사랑은 퇴각을 한 것이었다.

『죽음』은 『사랑』보다도 강하였다.

[편집]

사랑은 가장 크다고 옛날의 철인이 우리에게 가르쳤다.

그러나 여기서 죽음으로써 위협을 받고 퇴각한 사랑을 발견할 때에 우리의 생활 가운데 사랑보다도 더 큰 가치를 갖고 있는 『죽음』의 한쪽 면을 볼 수 있다.

우리가 역사를 펼 때에 거기는 죽음으로써 위협을 받고 자기의 온갖 영예와 지위를 내어 던지고 일(一)생을 굴욕적 생활에 담근 많은 제왕(帝王)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러면 『죽음』이라 하는 것은 사랑보다도 더 무거운 것인가. 제왕의 권세와 영예와 지위보다도 더 무거운 것인가.

한낱 『체재』보다도 가볍던 『죽음』─조그마한 한 『관습』보다도 가볍던 『음죽』─ 그 『죽음』은 또 여기서 『사랑』보다도 무겁고 『제왕의 권세와 영예』보다도 무거운 한편 면(面)을 우리에게 보여주었다.

그러면 어느 것이 죽음의 참말 『면』인가.

×

여(余)는 몇 가지의 『죽음』을 또 나열해보고자 한다.

(매일신보, 1930.6.18.)

여배우(女俳優) 메리좐은 어떤 날 성냥을 긋다가 불티가 날아드는 바람에 얼굴에 조그마한 상처를 받았다. 유명한 외과(外科) 의사 몇 사람이 그 상처를 치료하였다. 달포를 문밖에도 안 나가고 메리좐은 성심을 다하여 상처를 치료받았다. 상처는 조금 빛이 검을 뿐 다 나았다.

메리좐은 무대에 나섰다. 그 밤의 연극은 진행되었다. 『러ᅄᅳ씨─ㄴ』이었었다. 애인 되는 사람은 마리─(메리좐인 분장한)를 붙안고 뺨에 키쓰를 하였다.

그때에 문득 메리좐은 제 뺨에 있던 상처가 생각났다. 화장으로써 그 검은 자리를 감추기는 하였지만 이제 그 키쓰에 화장이 벗어나 안졌나 거기 마음이 켕기기 시작한 그는 연극은 되는 대로 해버리고 들어왔다.

그 뒤부터는 무대에 나설 때마다 그 상처가 마음에 켕겼다. 손님들이 자기를 바라보는 것은 그에게는 뺨의 상처를 보는 것 같아서 연극이 되지를 않았다. 거기에 대한 번민이 차차 과하여져 신경쇠약에 걸린 그는 마침내 자살을 하였다.

여기서 우리는 『미모』보다도 가벼운 『죽음』을 보았다.

(·)은 어떤 조그마한 산촌의 처녀였다. 그는 늘 자기 『미모(美貌)』를 자랑하였다. 그 자만심이 과하여진 그는 자기의 미모로써 도회 사람을 놀라게 할 양으로 도회에 나왔다. 그러나 도회 정거장에 내리는 순간부터 (·)의 코는 낮아졌다. 정거장에서 그는 자기보다 훨씬 아름다운 얼굴의 소유자를 수없이 본 때문이었다.

거기 대한 번민의 끝에 그는 마침내 자살을 하였다. 여기서 『자존심』보다도 가벼운 『죽음』도 보았다.

×

병고(病苦)의 자살, 빈고(貧苦)의 자살, 공포(恐怖)의 자살, 이런 것은 너무 평범한 일이매 예를 들 것은 없거니와 당연히 사형(死刑)을 받을만한 죄를 지은 범인이 고문(拷問)의 아픔에 참지 못하여 범행을 자백하는 것은 『일(一)시적 고통』보다도 가벼운 『죽음』의 한편을 보여준다.

×

제 죽음을 피하기 위하여 사랑하는 자식이나 사랑하는 아내를 죽이는 것은 『본능애(本能愛)』보다도 무거운 『죽음』의 일면(一面)도 보여준다.

[편집]

그러면 그 어느 것이 죽음의 진실한 『면(面)』인가? 혹은 사랑보다도 무겁고 혹은 체재보다도 가벼운 면(面)을 가지고 있는 『죽음』의 생활에 대한 진정한 가치는 어느 것인가.

『죽음』은 신성(神聖)하다 한다. 그러면 죽음이란 그런 잡된 『비교』를 허락하지 않고 그런 문제 위에 엄연히 초월해 있는 『범하지 못할 신성체』인가?

×

『죽음』이란 풀지 못할 커다란 수수께끼다.

(매일신보, 1930.6.19.)


대동강[편집]

대동강을 볼 것.

(매일신보, 1930.9.6.)

무지개[편집]

무지개를 볼 것.

(매일신보, 1930.9.7~9.16.)


라이선스[편집]

이 저작물은 저자가 사망한 지 70년이 넘었으므로, 저자가 사망한 후 70년(또는 그 이하)이 지나면 저작권이 소멸하는 국가에서 퍼블릭 도메인입니다.


주의
주의
1923년에서 1977년 사이에 출판되었다면 미국에서 퍼블릭 도메인이 아닐 수 있습니다. 미국에서 퍼블릭 도메인인 저작물에는 {{PD-1996}}를 사용하십시오.
 
  1. 첫 회분에는 수녀의 노래로 되어 있으나, 2회분 부터는 수녀로 되어 있음
  2. 이 작품을 썼던 1930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