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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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올 봄에 동경을 떠나 나와 S역 근처에 있는 내 집이라고 와서 보니(그 집이란 것도 실상 내 집이 아니요 내 형님 집이다) 집안 형편이 참 말이 못 된다. 식구는 십이 명 아니 십오륙 명 식구가 되는 대가족이 과히 넓지 못한 집구석에 옹기종기 모여 산다. 좁은 방구석에 어린아이들만 모여 앉은 것을 보아도 쪽박에 밥 담아 놓은 셈이다. 그 속에는 내 소생이 두어 개 끼여 있다.

그래 그 다수 식구가 무엇을 먹고 사느냐 하면 아침에는 조밥, 저녁에는 조죽, 수 좋아야 쌀밥, 어떤 때는 좁쌀깨나 섞인 풋나물죽, 그것도 끼니를 이어 가느냐 하면 그도 그렇지 못하다. 양식 있는 날이 이틀이면 없는 날이 하루, 두 끼 먹으면 한 끼 굶고 한 끼 먹으면 두 끼 굶어 대개 이 모양으로 살아 나간다. 그것도 남의 땅마지기나 십여 두락 얻어서 소작하는 덕택에 남에게 장릿말이나 변전량이나 얻어 오는 까닭이었다.

온 집안 식구의 얼굴 꼴이라니 노랑꽃들이 피어 있다. 모두 생기라고는 조금도 없어들 보인다. 그리하면서도 눈에는 무슨 사람의 오장을 쏘는 듯한 살기보다는 좀 약미를 가진, 보기에도 이상히 싫게 하는 악착한 표정들을 띠고 있다. (오랫동안 불행에 처하여 고통을 속으로 새기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그 중에도 신경질적인 사람에게 이런 것을 흔히 본다.)

가난한 집에는 싸움이 많다더니 사람들이 모두 악만 남아 그러한지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걸핏하면 싸움질을 일으킨다. 어찌 되어 나가려는 집안인지 집안이 그만 난장판이 되고 말았다. 어른도 어른 노릇을 못 하고 아이도 아이 노릇을 못 한다.

달며들며 며칠 동안에 이러한 광경을 본 나는(다섯 해 전 내가 집에 있을 때에는 물론 이 지경은 아니었다) 무슨 '산지옥' '아귀 수라장'을 연상하게 되었다. 대다수의 조선 사람 생활이란 것을 미루어 짐작하게 되었다(우리 조선에서 이보다 더 참혹한 광경을 보기는 예사이지마는).

내가 온 뒤에 예전보다는 새로운 화기가 집안에 돌게 되었다는 꼴이 이 모양이다. 그 화기가 돈다는 것은 나를 오랫동안 보지 못하다가 만나 보게 되므로 반가운 생각들이 나서 그리한다는 것도 얼마간 이유는 되지마는 그보다도 더 큰 것은 내가 돌아온 뒤에는 온 집안을 살릴 무슨 큰 수가 생기리라는 희망에서 나온 것이었다.

내가 집에 들어와 자리에 앉아 여러 사람들과 인사를 마치고 나서 그 다음은 내 노모의 소청으로 그 동안 내가 객지에서 지내던 이야기를 대강 말하고 난 뒤에 이번에는 내 청으로 집안 형편 이야기를 물었다.

이 사람 입, 저 사람 입에서 번갈아 가며 토막진 이야기가 나온다. 그 중에도 제일 수다하다는 내 형수씨 한 분이 남보다 좀 길게 이야기를 꺼내어 놓더니만 말끝에 하는 말이다.

"아이고 인자 우리집에는 아무 걱정도 없어요. 새 서방님(나)이 무얼 서울 가셔서 변호사 같은 벼슬을 하시면 적어도 한 달에 몇만 냥씩 버실걸. 하다못해 군수고 도장관 같은 것을 하시자면 여반장으로 하실걸…… 대학교 졸업한 양반이 무엇을 못 하실라구…… 여보게 새댁(소위 내 아내 되는 군을 쳐다보며) 자네는 참 인자 수났네. 호강하네. 고생 끝에 낙이 온다고 인자 참 다……."

나는 이 말이 하두 어이가 없고 우습기도 하여 빙긋이 나오던 웃음 끝이 선뜻 잘라지며 엄연히 입을 꽉 다물고 속으로 끌어 들어가는 눈알이 때묻은 거적자리 방바닥만 바라보게 되었다.

"그 아이가 무슨 그런 것을 할 리는 없지마는 좌우간……."

하고 말끝을 멈추는 이는 형님이었다. 그는 시체 사정을 조금 안다는 이다. 그러나 그 '좌우간'이라는 말끝에는 무슨 많은 기대를 한다는 의미가 감추어 있다.

"그러나저러나 집안 형편도 그렇고 공부도 다 마치었으니 인자 좀 살 도리를 생각하여야 할 것이 아니냐."

하고 말하는 이는 안부인으로는 좀 점잖다는 머리가 하얗게 세고 주름살이 여지없이 잡힌 내 늙으신 어머니의 하시는 말씀이었다.

이러고저러고 나는 아무 말대척이 없이 앉아 듣기만 하였을 뿐이다.

밤이 되어 여러 식구는 안방(칸반이나 되는)에다 한데 몰아넣고(모여 앉아 있는 모양만 보아도 시루 속에 자라난 콩나물 대가리 같다) 나는 뜰 아랫방으로 내려가게 되었다.

신문지쪽으로 바른 찌든 냄새와 먼지 냄새가 마음의 코를 찌르는 침침한 방 안에서 까막까막하는 한구석에 놓인 석유 등불을 대하고 앉았다 누웠다 하다가 나중에는 그만 '잠이야 자거나 말거나 누워서 밝히리라'고 생각하고 거미줄이 이리저리 얽히고 파리가 듬성듬성 붙어 있는 천장만 바라다보고 누웠다.

머리가 띵하고 정신이 아득하다. 마치 단꿈을 깨치고 보니 몸이 철망의 현실에 누운 셈이다. 실상 동경역에서 또는 부산역에서 나를 태우던 기차가 나를 실어다가 이 초옥지대에다 내려놓았다.

드러누워서 생각하던 나는 늘 하여 오던 결심이 이때에 더 굳어지며 별안간 윗입술이 아랫입술을 내려 덮으며 머리를 반경련적으로 흔들거리며,

"하는 수 없어, 모두 굶어 죽으면 죽었지."

하고 혼자 이런 말을 하였다.

이렇게 결심한 이상에는 비록 어떠한 꼴이 눈앞에 보인다 하더라도 걱정할 것도 없고 생각할 까닭도 없다. 그러나 종시 마음이 개운할 수는 없다. 다시 한번 더 재처,

"에끼 모든 생각이 다 사라져 가고 말아라."

하고 입술을 또 꽉 다물었다.

방 안을 휘 한번 돌아보았다. 그때에 비로소 자기 혼자 몸이 이 적적하고 쓸쓸한 방에 있음을 깨달았다. (안방은 물론 사람 소리로 요란하다.) 자기가 이런 방을 혼자 쓴다 함은(자기의 성격이 조용한 것을 좋아하는 까닭으로 예전에는 세상없어도 꼭 방 하나를 독차지하고 지내었다) 여러 사람에게 대하여 너무나 미안쩍다. 그래서 지금 나는 출입하신 형님이 돌아오시면 물론 같이 자려니와 우선 방 안에 들어가 우리 어머니와 그 외의 어린아이들이나 끌고 내려와서 너무나 엎쳐덮쳐 지내는 안방 사람들의 사정을 좀 보아 주리라고 생각하고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할 즈음에 문 밖에서,

"아버지!"

하고 부르는 목소리는 아홉 살 먹은 내 큰딸의 소리였다. 나는 아무 대답도 없었다.

"아버지!"

하고 또 부르며 문을 열고 나타났다. 바로 그 뒤에 다섯 살 먹은 둘째딸을 안고 선 사람은 소위 내 아내였다.

그들은 한꺼번에 쭉 들어온다. 나는 얼른 생각하기를,

'저것들을 내 식구라고 벌써부터 내게로 내민단 말인가.'

하고 안방 사람들 인심이 너무 조급함을 좀 이상히 생각하였다. 물론 다른 이유도 있지마는…….

"왜들 들어왔니?"

하고 나는 윗목에 멧산자로 한덩어리져 앉아 있는 세 모녀를 보고 말하였다. 그들은 아무 대답도 없다. 아내라는 사람은 등잔불을 측면으로 대하고 앉아서 벽에 비친 그 얼굴 그림자 중앙에는 쑥 내민 광대뼈가 옆으로 엇비슷하고 문수릇한 산봉우리를 그리었다.

'어지간히 말랐군.'

하고 나는 속으로 생각하며 말했다.

"왜들 내려왔어? 나는 할머니와 큰아버지나 모시고 잘라고 드는데……."

"그처럼 오래간만에 만나는데두……."

마누라쟁이는 크고도 쑥 들어간 눈으로 원망스러운 듯이 흘끗 쳐다보고는 다시 벽으로 고개를 돌린다.

"누가 언제는 한 방구석에서 정다웁게 자본 적이 있었나?"

하고 나는 퉁명스럽게 말을 하고 나서는 인제 와서 또 새삼스럽게 미워하는 말투를 낸 것을 뉘우쳤다.

그는 옛날부터 내 학대와 미움을 여간치 않게 받아 왔으므로 여간한 일에는 시들하게 생각하도록 신경이 마비가 되어 그러한지 또한 오랫동안 보지 못하던 소위 남편에게 대한 체모를 생각하고 억지로 참음인지 아무 말대거리도 아니 하고 잠잠히 앉았을 뿐이라 나는 더 견딜 수가 없어서(이 세상에 보기 싫은 사람을 억지로 참고 대하기라는 것은 여간한 고통이 아니다),

"들어들 가, 어서."

하고 재촉하였다.

"들어가긴 왜 들어가요. 여기서 잘걸."

이러한 무신경 몰염치한 따위였다.

"자? 여기서 자? 그러지 말고 아이들이나 두고 가든지…… 안방이 좁고 하니 당신이나 어서 들어가오."

하고 어찌하였든지 귀찮은 것을 떼어 쫓아 들여보내려고 타이르는 말조로 하였다.

"들어가긴 왜 들어가요? 나는 여기서 자고 내일이라도 서울 가신다면 나도 따라갈걸. 사람이 이 노릇을 하고 사느니 죽어 버리지."

"무엇 어째? 참 기막힌 소리도 다 한다. 살고 말고 그런 것은 다 몰라. 나는 나 혼자 할 일만 다 하자 하여도 기막힌데, 살리기는 누구를 살려. 그러고저러고 다 듣기도 싫고 보기도 싫어."

"모르면 누가 안단 말이오?"

나는 듣기가 몹시 귀찮아서 상을 찌푸리며,

"듣기 싫어, 어서 들어가."

하고 좀 높은 소리를 쳤다. 이번에는 저편에서도 성이 좀 나서,

"아따, 제기 사람을 싫어해도 분수가 있지."

하고 말하는 품이 옛날에도 드문드문 나오던 거슬거슬한 성미를 또 부리기 시작한다. 나는 화증이 더럭 나서,

"들어가라면 들어가지 무슨 잔말이냐. 보기 싫어, 어서 들어가."

하고 소리를 버럭 질렀다.

그는 반항하는 기세가 더 높아지며 얼굴을 내게로 돌리며,

"인자 와서 나를 또 보기 싫다 하면 어쩌란 말이오?"

"그러니까 진작이라도 어디로 가라고 그리하였지……."

"가기는 어디로 가?"

"어디로? 다른 사람에게 시집가라는 말이야."

하고 나는 비웃는 말투로 하여 붙이었다.

여기까지 이른 그는 기가 막히는 모양이다. 말이 나올지 울음이 나올지 웃음이 나올지 어찌할 줄을 모르는 모양이다. 어린애들은 나를 무슨 낯선 이방 사람이나 대한 것처럼 무서운 듯이 흘끔흘끔 쳐다들 본다. 이 광경은 부부나 친자 사이에 하는 태도가 아니요, 무슨 원수나 대적을 하는 셈이다.

큰 말소리가 나올 줄 미리 짐작하였던 그는, 어이가 없던지, 그 반대로 도리어 나지막한 목소리를 내며,

"그래 사람을 박대하여도 분수가 있지. 시집온 지 근 십수 년에 갖은 고생을 다 하여 가며 젊은 살기가 다 빠졌는데, 인제 와서 또 새삼스럽게…… 더군다나 자식새끼가 없으면 나 혼자 몸이야 산으로 가거나 물로 가거나……."

하고 애걸 비스름하게 말한다.

"나는 몰라. 자식새끼고 무엇이고 다…… 누가 낳고 싶어 낳나, 장가들고 싶어 들었나."

혼자말로,

"세상에 참 망할 악연도 있다. 고약한 운명도 있다."

"그러면 우리 세 모녀가 다 죽으란 말이오?"

하고 조금 말소리가 높아지며 떨렸다.

"몰라, 죽든지 살든지 나 몰라. 참 몰라. 참……."

하고 나는 아래턱이 부르르 떨렸다.

과연 그러냐고 묻는 듯이 나를 노려보고 있는 그는,

"아, 참말씀이오?"

하고 따지는 말투로 묻는다.

"참말이고, 여부가 있어, 내가 빈말을 할까."

"참말."

하고 그는 재차 따진다. 그 말소리는 목이 메었다.

"참말."

하고 나는 엄절히 대답하였다. 이제는 더 참을 수 없는 모양이다. 그는 급한 경사지에 세운 비석 모양으로, 금방 쓰러질 듯이 다스리고 앉아, 무심코도 처참한 얼굴빛으로 앞 방바닥만 바라다보고 있는 눈에는 눈물이 뚝뚝 떨어진다.

"그러면 우리 세 모녀는 죽어 버리자!"

하는 목소리는 목구멍을 긁어 나오면서도 떨렸다.

저의 어머니의 얼굴만 바라다보고 있던 두 아이는 차례로 잇대며,

"어머니, 어머니."

하며 어머니의 옷자락을 붙든다. 그리하는 것이 그의 슬퍼하는 기세를 더 돕는다. 이때껏 까막까막하던 등불도 작은 눈동자를 가만히 떠서 앞으로 전개되려는 마당을 기다리는 것 같다. 그는 무릎에 얹히었던 손으로 방바닥을 치며, 몸을 그쪽으로 쓰러뜨리며,

"아이고, 이 일을 어찌한단 말인가?"

하고 그만 울음을 내어놓는다. 그 울음은 뱃속 밑에서 울려 나오는 것 같았다. 큰딸아이도 따라 운다. 둘째딸아이는 더 놀란 듯이,

"어머니, 어머니."

하고 고함을 내어놓으며 운다.

나는 벌떡 일어서며,

"에끼 망할것, 울기는 왜 울어. 나는 저 꼴 보기 싫어 이 밤이라도 당장 서울로 가겠다, 에이."

하고 화를 내며 문 밖으로 뛰어나갔다.

바깥은 몹시 어둡다. 어둡기 전부터 하늘에 끼었던 구름이 인제 보슬비가 되어 소리 없이 내려온다.

몇 발자국 걸어나가며 사방을 돌아보니 사방이 갑자기 더 어두운 것 같다.

'땅 위의 모든 것은 다 어둠의 운명으로 꽉 잠겨 버렸다' 하는 느낌이 선뜻 일어난다. 안방을 향하고 나오던 나는 안방 댓돌 끝까지 와서야 비로소 안방에 불이 꺼졌음을 알았다. 여러 사람의 코고는 소리가 뒤섞여 일어난다. 뜰 아랫방 울음 소리는 점점더 높아 갔다. 나는 무엇보다 첫째 그 울음 소리를 피하려고, 안방 굴뚝 모퉁이로 돌아가 처마 밑으로 기어들어갔었다. 울음 소리는 여기까지 들린다. 안방 사람들이, 더구나 잠이 귀하신 어머니께서 혹시 잠이나 깨어서 들으시고서 아닌밤중에 온 집안이 법석이나 아니 날까 하고 염려하였다. 그러나 다행히 잠이 깊이들 든 모양이다.

나는 뒤꼍 쪽으로 몇 발짝 더 나가 서서 어둠을 대하고 우두커니 서 있었다. 울 너머로 건넌마을 뉘 집의 빤한 등불이 보인다. 나뭇가지에 가리어서 그러한지 수없이 사라졌다 나타났다 한다. 나는 어둠을 향하여 후― 하고 한숨 한 번을 길게 쉬었다. 그 한숨 소리는 몹시 떨리었다. 가슴도 물론 멍울멍울하여진다. 울음 소리는 희미하게 들리다 말다 한다. 옛날에 수없이 하던 이 골머리 아플 만한 작은 연극을 오늘 저녁에 와서, 닥치자마자 또한 새삼스러이 되풀이한 생각을 할 때에 '닿자 그처럼 할 것은 없을 것을' 하고 뉘우치기도 하고 속이 아니꼽기도 하였다―---아프지마는 아니꼬웠다. 나는 답답증이 펄쩍 나서,

"엣 이대로 가자! 오늘 밤에 정처없이 어디로 가버리자!"

하고 입 속으로 지껄이고 걸음을 내어 사립문 쪽으로 향하였다. (가는 비 맞는 것도 헤아리지 않고) 문을 열고 나섰다. 밤은 어둡고 고요하다. 가는 비 소리조차 나지 않는다. 다만 들리는 것이라고는 나뭇잎에서 이따금씩 듣는 빗방울 소리, 멀리서 은은히 전하여 오는 물방아에 물 내리는 소리였다. 그 물은 도리어 봄밤의 적막을 더 돋울 뿐이다. 나는 한걸음 두걸음 걸어 앞집 문 앞을 지나 또 한집 두집을 지나 마을 어귀에 나서서 건넌마을로 건너가는 그 중간에 있는 매방아 앞까지 이르렀다. 울음 소리가 여기까지는 들리련마는, 생각이 날 때마다 은은히 귀에 들리는 것 같다. 더구나 어린아이들의 울음 소리가 더 마음에 걸린다. 멈추고 섰던 발을 다시 내놓으려다가 나는 그 매방아 앞에 선 시꺼먼 '노송나무'를 보고 깜짝 놀랐다. 그 나무 밑에는 우물이 있다. 어두워서 보이지는 않지마는 우물 생각을 하고 가슴이 선뜩하였다.

나는 얼른 길을 고쳐 딴 길을 잡아, 더 작은 길을 취하여 걸어 나아가게 되었다. 예전에 지나친 일이 모두 눈에 떠오른다. 나는 별안간 공포와 연민의 정이 폭발하여지며,

"그 우물!"

하고 혼자 가만히 부르짖었다.

그 우물에 대한 이야기는 이러하다.

지금부터 십 년 전 그 아내라는 사람이 내게 쫓기어(내가 그를 쫓아내게 된 것도, 열다섯 살이나 되어서 성의 눈이 떠지기 시작한 까닭이다. 그가 열여섯, 내가 열두 살 먹어 장가들 때에는 도리어 좋아서 남보고 자랑을 한 걸, 자기 친가에 가 사 년이나 있다가 온 것을, 오던 날, 바로 또 가라고 야단을 치고 내밀었더니 그는 그 길로 그만 우물에 가 빠졌었다. 그것도 마침 그의 친정에서 교군하여 가지고 온 사람들이 동네 구경하러 나섰다가 우물 깊이가 얼마나 되는가 하고 들여다보다가 발견하여 꺼낸 것인데 그때 건져 내는 그는 꼭 죽은 줄로만 알았었다. 그때 그 모양이라니! 흐트러진 머리, 퉁퉁 부은 살, 코와 입에서는 물이 쏟아져 나오다가 나중에는 피) 나중에 그가 우리집(그때는 지금 이 집보다도 더 크고 좋은 집인데 아까 그 매방아 집에서 너더댓 집 건넌 집이다. 지금은 이곳이 좀 번화하여진 까닭으로 잡화상 겸 고리대금업자인 일본 사람이 그 집에 들어 있다. 지금 들어 있는 집도 물론 그자에게 잡혀 있다 한다) 건넌방 아랫목에 누워서 정신이 다 든 뒤에, 윗목에 있는 나를 눈떠 보더니(그때 그 눈빛이란 것을 무엇이라고 말하였으면 좋을는지…… 이 세상의 가장 되는 원한과 애원을 말하자면 아마 그 눈빛을 가리켜 말할 수밖에 없다) 그 넋이 풀린 검은 눈에 눈물이 질 흘러내린다. 그러지 아니하여도 물에 빠지기까지는 늘 속으로 '그것이 죽기나 하였으면 좋겠다' 하고 은근히 죽기를 바라 보기도 하였으나, 지금은 도리어 뉘우치고 불쌍한 생각이 나서 견디지 못하던 터이라, 나는 그만 달려들어 그의 누운 가슴을 껴안고 볼을 대었다. 그때 그의 얼굴에는 아무리 귀하던 나의 눈물일망정, 몇 방울 떨어졌을 것이다. 무언 가운데 두 사람은 감격한 강화를 맺었다. 내 맏딸아이도 그때 그 강화조약 체결의 소산이었다. 그러나 그 뒤에도 부부간 애정이라는 것은 딴 문제였다.

봄의 깊은 밤은 춥다. 가는 비 맞아 추진 몸이 오솔오솔하여진다. 그 우물에 대한 지나간 일이 필름 모양으로 지나간 뒤에 또 이런 생각이 일어 나온다―---앞으로도 그런 일이, 아니 그보다 더한 일―---세 모녀가 한꺼번에 죽어…… 지금 그 방 안에 세 모녀가 엎으러져 우는 모양이 눈에 떠오른다. 울음 소리가 귀에 또 들리는 것 같다. 가슴이 찌르르하여진다. 앞으로 걸어나가던 발길을 홱 돌이켜 도로 집으로 향하여 오려 하였다. 그러다가 우뚝 서서 잠깐 생각하기를,

'내가 왜 이렇게 약한 인정에 끌리어, 자기 운명을 자기가 자꾸 얽어 매게 되노? 이 왜 가지를 쪼개인 무쇠쪽 같은 비통한 의지의 눈동자를 가지게 되지 못하였노.'

이 모양으로 생각하고는 찌르르거리는 가슴을 억지로 가라앉히려고 하였다. 그러나 그도 소용없다. 터져 나오기 시작하는 연민의 정은 막을 길이 없었다. 나는 발을 탁 구르며,

'아이고, 나는 하는 수 없다! 나는 약한 사람이다.'

하고는 그만 집을 향하여 발을 급히 내어놓았다.

열어 놓았던 사립문을 다시 닫고 돌아서, 그 방문을 쳐다보았다. 불은 그저 켜 있다. 소리 없이 걸어 그 방문 앞에 가 서서 가만히 귀를 기울이고 들었다. 울음 소리는 아주 없어졌다. 다만 어린아이 숨소리인지, 작은 숨소리만 일어난다. 간혹 소스라치는 듯한 숨소리가 길게 난다. 방 안은 조용하다. 그러나 아까 들리던 그 울음의 여운이 길이길이 사라지지 않고 방 안에 떠도는 것 같다. 나는 방문을 가만히 열고 들어가 서서 그들의 동정을 살펴보았다. 그들은 모두 무슨 몹쓸 칼날이나 총알에 맞아 엎으러져 있는 모양 같다. 방 중앙에는 큰딸, 그 다음에는 그, 또 그 다음에는 작은딸, 그는 홑적삼 입고 솜저고리는 벗어 아래편에 볼을 땅에 대고 엎으려져 누운 딸을 웃통만 덮어 주고 맨 윗목에 누워 있는 작은딸은, 왼손을 이마에 대고 엎으러져 있는 자기의 바른 팔과 치맛자락으로 덮어 주었다.

'모성애란 것은 대단한 참것이다.'

하는 생각이 얼른 지나간다.

그는 바스러지는 듯한 몸이 깊이 땅 속으로 가라앉아 들어가는 것 같이 누워 있다. 사라져 가는 혼의 자태이다. 나는 달려가 왈칵 껴안으려 하였다. 그러나 마음을 고쳐 먹고, 아랫목에 깔린 담요를 걷어, 그들을 슬그머니 덮어 주었다.

그리고 나는 비 맞은 양복 저고리를 벗어 걸고, 샤쓰 바람으로 그대로 아랫목에 다스리고 앉았다. 가슴에는 크게 일어나려던 회선풍이 그대로 주저앉고 소낙비를 내려 부으려던 검은 하늘이 그대로 멀뚱멀뚱하고 있는 것 같다. 다만 때때로 귀에 들리는 울음 소리의 여운(지금은 그들의 숨소리가 울음 소리의 멜로디로 변해 들린다)이라든지, 가끔가끔 눈에 띄는 그들의 애처로이 누운 모양, 이것이 가슴속을 스쳐갈 때마다 어두운 가슴속에는 굵은 빗방울이 뚝뚝 떨어지는 것 같다.

나는 아무 생각도 할 수 없다. 생각할 까닭도 없다. 다만 무너지려는지, 터지려는지, 어찌 될 줄을 모르는 컴컴한 앞이 있을 뿐이다. 앞 뿐 아니라 뒤도 옆도 다 캄캄한 것뿐이다. 다만 그 캄캄한 세계의 이쪽에서 저쪽으로 올라가는 무슨 비통한 휘파람 소리가 이따금씩 일어날 뿐이다. 그것은 고통과 절망으로부터 나오는 부닥칠 곳 없는 생(生)의, 아니 영혼의 고적한 숨이었다.

나는 눈을 감았다. 쓰린 명상의 세계로 혼이 파묻혀 들어가려는 것이다. 이 모양으로 얼마 동안을 지내었다.

봄밤은 짧다. 먼 마을에 닭 우는 소리 일어난다. 그 소리를 따라 이웃집 닭이 또 홰를 치며 운다. 때는 한 굽이 넘어간다. 이리하여 영원은 또 새 날을 맞이하고 묵은 날을 보내게 된다. 나는 닭의 소리와 어울려 긴 한숨 한 번을 내어쉬고 명상을 깨뜨리었다. 방 안은 그저 까막거리는 등불로 유지하고 있다. 나는 옆으로 쓰러져 누워서, 잃어버린 명상을 다시 회복하게 되었다.

어느 겨를에 잠이 들었었다. 한숨을 잤는지 반숨을 잤는지 모르나, 잠이 깨어 눈을 떠볼 때, 내 옆에는 작은딸, 발 끝에는 큰딸을 갖다 누이고 아까 그 담요로 나까지 엄불러 덮어 주었다. 그리고 그는 윗목에 가서 혼자 쪼크리고 누웠다. 나는 벌떡 일어나 달려가 그를 껴안고 아랫목으로 끌고 내려와, 담요를 더 펴서 덮이고, 한자리에 같이 누워 자게 되었다.

그 이튿날이라도 내가 바로 서울로 올라올 것이지마는 이 아픈 맛을 좀더 견디어 보리라고 참고 집에 머물러 있었다. 또는 오랫동안 그리고 그리던 아들(더구나 자애가 유명하고도 오십 줄에 낳은 막내아들인 고로)을 하루 동안이라도 더 대하여 보고 싶다는 노모의 만류도 있었던 까닭인 고로, 이튿날 서울로 떠나오게 되었다. 집에서 떠날 때에

"아무쪼록 속히 무슨 도리를 생각하여라. 집안 형편 생각을 하고……."

하고 부탁하는 이는 또한 내 형님이었다.

서울은 이십만 인구의 도회로서 무직업한 빈민이 십팔만이라는 말은 신문 기사를 보고 알았지마는 세계 지도 가운데 이러한 데가 또 있거든 있다고 가리켜 내어 보아라. 말만 들어도 곧 아사자, 걸식자가 길에 널린 것 같다. 배보다 배꼽이 더 크다는 셈으로 이십만 인구에 걸식자가 십팔만!

나도 물론 이 거대한 걸식단 가운데 신래자(新來者)의 한 사람이 되었다.

남촌이라는 이방인 집단지인 특수지대를 제해 놓고 그 외는 다 퇴락하여 가는 옛 건물, 영쇠하여 가는 거리거리, 바싹 마른 먼지 냄새로 꽉찬 듯한 기분 속에서 날로날로 더 패멸 조잔의 운명의 길로 돌아가는 서울이란 이 땅, 아니 전 조선이라는 이 땅, 그 속에 굼질대는 백의인―---빈사상태에 빠진 기아군.

아무것도 없다. 아무것도 없다!
이 사막에는 이 초지(草地)에는 아무것도 없다.
마른 땅과 마른 뼈밖에는 아무것도 없다!
이 땅에 장차 무엇이 오려노?
이 무리에게 장차 무엇이 닥치려뇨?
죽음! 옳도다, 죽음밖에는 아무것도 없다.
'이 땅에 불을 내리지 않나!
이 초지에는 차라리 불을 내리지 않나.'
디디고 선 것은 마른 땅,
가지고 있는 것은 이 몸의 뼈,
모래 녹여 화약 만들 수 없나?
뼈 갈아 창 치울 수 없나?
죽음의 구덩이에 춤이나 추어 보게.

자, 인제부터는 내가 서울서 지내어 온 일, 또는 앞으로 지내어 가는 모양, 그것을 대강 좀 적어 보자.

내가 서울 와서 보니 몸 하나 둘 곳도 별로 없다. 처음에는 친구의 뒤꽁무니를 따라다니며 얻어먹고 끼여 자고 하다가 그도 오래 할 수 없는 일이라 우선 외상밥이라도 먹어야 하겠기에 어느 친구의 지시로 하숙에 들어가서 있다가 필경에는 거기서도 밥값으로 인하여 쫓겨나고 말았다. 그 다음에는 또 주인 있는 남의 사랑방에 가서 붙어 있는 친구를 쫓아가 덧붙이기 노릇을 하여 가며 사먹는 것이라곤 상밥, 설렁탕, 호떡, 그도 없으면 굶고…….

이 모양으로 봄을 보내고 여름도 또한 다 가게 되었다. 나는 오륙 삭 동안을 어찌 지내어 왔는지 꿈결같이 아득하다. 내성생활이고 예술창작이고 무엇이고 다 이 기분과 이 생활 속에서는 생각하고 돌아다볼 겨를이 없었다. 그것도 처음에는 굶는 때가 간혹 있다 하더라도 그 배고픈 고통을 달게 이기고 참아 나갔지마는 그것도 너무 시들하도록 도수가 지나 가니까 별수없다. 사람이 그만 구복을 위하여 사는 동물이 되고 말았다. 그리하면서도 자기의 약함을 뉘우치는 때도 있었다. 그러나 하는 수 없다! 다만 개나 도야지 같은 동물로 타락되고 말았다. 여기에 한 가지 예를 들어 보면 그다지 도수가 지나도록 배가 고프지 아니할 때에도 길에 나서면 그래도 무슨 시상도 나고 사색도 일어나고 하더니 그 고비를 지내고 보면 이것도 저것도 없다. 길에 널린 것이 모두 다 먹을 것으로만 보인다. 돌멩이고 나무 조각 같은 것이 떡 조각이나 면보 조각으로 보인다. 그러다가 좋은 운수가 터져서 배를 채우고 나게 될 때에는 백치나 소아 모양으로 일종의 희열과 만족을 느끼게 된다. 걸인의 심리를 잘 짐작할 수 있다. 그러다가 갑자기 자기라는 것을 돌아다볼 때에는 냉조의 웃음이 슬쩍 터져나온다. 그 웃음 속에는 슬픔도 섞이어 있다. 별수없다. 이때껏 현자를 배우려 하고 군자를 강작하려던 무반성하고도 천박한 인도주의자―---이상주의자가 그만 자만심이 쑥 들어가 버리고 말았다. (물론 자기가 못생긴 줄은 알지마는) 어떤 때는 하루에 한 끼쯤 먹거나 말거나 하고 삼사 일 계속되는 기근기가 닥쳐올 때에는 친구고 무엇이고 사람이라면 귀치 않은 생각이 나서 취운정이나 삼청동 같은 나무 그늘 좋고 잔디밭 있는 곳으로 찾아가서 낮으로부터 밤까지 혼자 구부리고 앉아 쑥 들어간 검은 눈을 끄먹끄먹하고 지낼 때도 있었다. 그러나 그도 언제까지 그 모양으로 견디어 나갈 수는 없는 일이다. 다시 개 모양으로 육식 냄새를 맡으려 거리로 뛰어나오게 된다. 그 배고픈 고통을 면하려고 한 끼라도 남에게 얻어먹자면 구차를 떠나서는 그도 될 수 없다. 이 세상에서 구차를 떠나려면 자살이나 도피밖에는 다른 수 없다. 그래 구차한 짓을 한 번 하고 배 앓고, 두 번 하고 배 앓고, 어떤 때는 사는 것이 더러워서 '굶어 죽더라도 그 따위 짓은 아니 하겠다'고 결심하였다가도 또 구차. 자― 사람이 이 모양으로 살아 나가니 나중에는 그만 양심까지 흔들린다. 이래서야 비로소 외적 생활의 무서운 압박으로 인하여 내적 생활을 돌아볼 여지가 없는 온 세계 무산군의 고통을 알 수 있다.

이때부터 내 사상생활의 전환의 동기가 생기었다. 이때껏 '식, 색, 명예만 아는 개 도야지 같은 이 세상 속중들이야 어찌 되거나 말거나 나 혼자만 어서 가자, 영혼 향상의 길로'라고 부르짖던 나는 나 자신 속에서 개를 발견하고 도야지를 발견한 뒤에는 '위로 말고 아래로 파들어 가자―---온 세계 무산 대중의 고통 속으로! 특히 백의인의 고통 속으로! 지하 몇천 층 암굴 속으로!'라고 부르짖었다.

마른땅 위에 꿈질대는 것은 다만,
'뼈의 사람', 아니 '사람의 뼈'뿐이다.
뼈를 태우자, 뼈를 썩이자, 그 속에서 사랑의 씨가 돋게 하자, 새 생명이 터져 나오게 하자.
'백의인의 고통,
백의인의 고통
땅에 금 한번 그어 놓고 보자!'

이때이다. 이때에 시골서 무슨 기쁜 소식이나 오기만 기다리고 기다리던 아내란 사람이 견디다 못하여 어린아이들을 끌고 나를 찾아 서울로 왔다.

어느 일갓집에서 그를 만나 본 나는,

"어디 살아나가 봅시다."

하고 말하였다.

연애가 다 무엇이야, 피 마른 조선 사람에게도 연애가 있나? 애정 없는 아내하고 살아나가 보자, 쓴맛이 얼마나 대단한가? 거지는 살림 못 하나, 고생 맛이 얼마나 대단한가 좀 견디어 보자, 하는 생각이 반발적으로 일어나는 나는 살림하고 살겠다고 대담히 말하였다.

그리하고 우선 그들은 염치불구하고 가난한 일갓집에 맡기어 놓고 어떻게 하든지 며칠 내로 돈을 주선해 가지고 셋방이나 하나 얻어 살림을 시작하여 볼 작정이다. 그러나 돈 구처할 도리는 없다. 별수없다. 이때껏 '이것이야 내가 아직 발표할 수 없지' 하고 양심의 지조를 지켜 내려오느라고 꾹 파묻어 두었던 시집 원고를 부랴부랴 초고에서 주워 모두어 가지고 어느 책사를 찾아가서 염치 좋게 싸구려 장사, 물건 팔 듯이 내어놓았다. 거기서 거절을 당하였다. 얼굴이 화끈화끈하는 나는 뒤통수를 두드리고 문 밖으로 뛰어나왔다. 그 길로 어느 친구를 찾아가 그 친구의 아는 책사로 같이 찾아갔다. 다행히 거기서는 성공하였다. 판권을 육십 원에 팔아 가지고 선금 이십 원을 찾고 그 나머지 사십 원은 출판 허가가 나온 뒤에 찾기로 하였다.

자, 이만하면 되었다. 하고 아내란 사람에게로 달려와 보고를 마친 뒤에 셋방을 찾으려고 나섰다. 방을 구한다는 것이 필경에 이 북촌 막바지 삼청동―---지금 들어 있는 이 곁방이었다.

두 달 치 방세 선금 십 원, 나머지 십 원은 솥개, 그릇개, 나뭇단, 쌀말.

이만하면 네 식구 일주일 가량은 걱정 없이 지내게 되었다.

내 생애의 페이지에 연필 따위로나 한 금을 그을 만한 이 살림살이 최초일 밤이었다.

석유 등잔불로 희미하게 밝힌 방 안에 (나는 문명의 혜택을 너무나 받지 못하는 사람이다) 서울 살림에도 역시 석유 등불, 구멍나고 때끼인 장판방, 어느 때에 도배한 것인지 검누르게 끄을은 벽, 세간이라고는 한구석에 놓인 보퉁이 하나, 헌 상자때기 하나, 윗목에 앉은 세 사람, 아랫목에 앉은 나, 이 네 사람의 마음과 잘 조화된 방 안 방 밖의 우울한 분위기, 이들의 앞 운명을 암시하는 듯한 까막거리는 등불, 늦은 철 더 강하여진 무기를 가지고 여기저기서 호응하는 모기떼.

나는 부채를 들어 왼편 어깨에 붙어 앉아서 주사침을 내려 박는 모기를 탁 때려 쫓으며 윗목에 나란히 앉은 세 사람을 슬쩍 쳐다보았다. 아닌겨울에 훗훗한 남풍이 불어오는 셈으로 변체의 기조 같은 내 마음씨에 그만 때아닌 봄철을 만난 듯한 아내란 사람은 그의 표정과 행동을 보아도 넉넉히 알 수 있다.

더운 줄도 모르고 어린 딸을 무릎 위에 앉히고 땀 난 손으로 그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그의 얼굴은 예전에 보지 못하던 평화와 현숙의 표정이 드러나보인다. 그의 눈은 크지마는 눈빛이 검은 까닭으로―---말하자면 봄이나 가을 맛의 성격을 가진 사람의 눈빛이 아니요, 겨울 맛이 있는 눈빛이다―---그러한 표정을 드러냄에는 너무 적당치 못하다. 그러나 그의 입과 그의 가생이에는 그런 표정이 드러났다.

그 표정을 본 나는 적이 마음이 쾌하였다. 그러나 마음의 깊은 구석에서는 늘 서마서마하여진다. 마치 귀엽지 못한 짐승을 억지로 길들일 양으로 손으로 쓰다듬어 주는 느낌과 같다. 나는 얼굴을 얼른 돌리었다. 나는 이때껏 그의 얼굴을 한 번이라도 자세히 쳐다본 적은 없다. 혹시 무슨 말을 할 때에도 늘 고개를 들지 않고 말하는 것이 그에 대한 버릇이 되었다. 특별히 지금 와서 자세히 본 셈이다. 그러나 오래 쳐다볼 기운은 없다. 그는 어린 딸을 일으켜 세워 내게로 밀어 보내며,

"저 아버지한테로 가거라. 아버지한테 가."

한다.

어린 딸은 주저주저하며 내 옆으로 온다. 나는 그를 안았다. 그의 손을 만져 보기도 하고 볼을 대어 보기도 하였다. 아마 이것도 처음일 것이다. 자식 귀여운 생각이 아니 날 수 없다. 나는 거듭 이쪽 뺨을 대어 보았다.

내 무릎 위에 앉아 까막까막하고 등불을 쳐다보는 그 눈은 몹시 귀여웠다. 유리알같이 맑은 눈이었다. 그는 꼭 다문 어여쁜 입을 방긋이 벌리어,

"저기 저 모기…… 소리해, 남모르는 소리두 하지……."

하고 이런 동화 같은 말을 한다. 그 말을 들은 나는 신통한 생각이 매우 나서 곧 입을 한번 대려 하였다. 그러나 그만두었다.

이것을 보라! 이런 기막힌 일이 어디 있을까? 이 아이가 남의 아이 같더라도 이런 귀여운 말을 들을 때에는 그렇지 못할 터인데 더구나 제 소생에 대하여 이런 생각이 안 일어난다는 일을 생각한다면…….

본능으로는 귀여운 생각이 나나, 심령으로는 이것을 부정…… 이 심령에 빛을 가로막는 이 악희의 운명!

나는 주먹을 부르르 움켜쥐었다.

그렇다고 자살하기는 싫다. 도피하기도 싫다. 어디 좀 견디어 나가보자! 억지를 쓰고 살아 보자! 빙양의 백웅같이…… 최후에는 피를 얼음 위에 쏟아 놓고 죽더라도…….

'조선 사람에게는, 아니 내게는 이것조차 뺏어 갔구나! 우주 생명으로부터 내어버린 자식이로구나. 그러나 어디 좀 견디어 보자.'

이렇게 생각하고 나는 속 눈동자를 뒤바꿔 굴려 내려감았다. 가슴 속으로 울려 들어가는 목기침을 한번 하였다. 그 기침 소리는 땅 속을 울리는 신음성같이 들리었다. 그리고 어린 딸에게 대하여서는 갑자기 더 걸린 생각이 나섰다. 바싹 껴안고 볼을 한번 대고 나서는 슬그머니 내려놓았다.

그 아이는 저의 어미에게로 향하여 간다. 가다가 옆에 놓인 물그릇을 밟았다. 그릇은 엎어지고, 물은 방바닥에 흥건히 쏟아졌다. 그의 모든 그 버릇이 또 뛰어나왔다. 어린아이를 훔쳐 갈긴다. 아이는 소리쳐 운다. 나는 상을 찡그리고 고개를 옆으로 돌리었다.

"에이그, 지긋지긋한 년, 급살을 맞을 년!"

하고 그는 아이를 또 때린다. 아이의 울음 소리는 더 높아 간다. 나는,

"이 살림살이 시작이 지옥의 초입이로구나."

하고 화를 펄쩍 내며 밖으로 뛰어나가 툇마루 끝에 가서 걸터앉았다. 그는 더 계속하며,

"아이고 지긋지긋……."

한다.

그 '지긋지긋' 소리가 저주에로 가는 소리같이 들린다. 나는 참다 못하여,

"에잇……."

소리를 치고는 구두짝으로 그를 훔쳐 때리려다가 그만두었다. 아주 밖으로 멀리 가버리려다가 '참자, 참어. 마른 뼈에 제 물이 우러날 때까지 참자' 하고 눈감고 앉아 있다가 방 안이 조용한 것을 보고 '인자들 자거라' 하고 나는 다시 눈을 감았다. 어느 때까지이고, 눈감고 앉은 이 모양으로 밤을 보내고 싶었다. 눈감는 버릇은 아픈 버릇이다. 그 속은 검은 하늘빛과 같은 세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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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하여 일주일을 지내었다. 한 달을 지내었다. 또 한 달을 지내었다. 어찌 지내어 가는 모양인지 정신 차릴 수가 없었다. 어느 때를 굶었는지 어느 때를 먹었는지 헤아릴 수 없다. 다만 끼를 때우기에 힘을 쓰고 사는 인생이 되고 말았다. 그 밖에는 생활의 의의를 찾을 수 없게 되었다.

생명의 침체다, 아주 침체다. 예전쯤 해서 무슨 내성생활을 한다고 반성의 고통을 느끼며 쓰리니 아프니 하던 때는 참으로 황금시대이다. 몇 달 전 자기 혼자 지낼 때는 오히려 유토피아 시절이다. 그런 기아의 영광, 고적의 낙로를 지금 앉아서는 도저히 바랄 수 없는 일이다.

어제 저녁에 집주인이 방세를 내라고 여러 말을 하며 나가라 어찌 하거라 하기에, 나 역시 참다못하여 큰소리 몇 마디 하였더니, 도리어 그만 창피한 꼴을 톡톡히 당하고 말았다. 홧김에 저녁도 아니 먹고 밖으로 뛰어나가며,

"왜 저녁은 아니 하오. 쌀이 없소?"

하고 아내라는 사람보고 물었더니,

"쌀이 없기는 왜 없어요. 인자 차차 하지요."

한다.

나는 그 길로 나서서, 어느 친구를 찾아가서 저녁을 얻어먹고, 밤이 늦도록 놀다가 이내 그곳에 쓰러져 자고 늦은 아침때나 되어서 집으로 돌아왔다. 방에 들어와 보니, 아내라는 사람은 큰딸아이의 머리를 빗기고 앉아 있다.

"아침은 그저 왜 아니 해?"

하고 물었다.

그는 아무 대답도 없다.

"아침은 왜 안 지어?"

하고 또 물었다.

또한 대답이 없다. 나는 쌀이 없는 줄 알았다.

"계숙(작은딸)이는 어디 갔어?"

"몰라요, 어디 갔는지 고대 나갔는데……."

나는 방문 밖으로 나와, 안 주인집 쪽으로 기웃이 들여다보았다. 그 집에는 한참 아침상이 벌어졌다. 이것 보아, 계숙이가 주인집 식구 밥 먹는 꼴을 우두커니 바라다보고 그 집 댓돌 옆에 쭈그리고 앉았다. (이런 것도 처음 보는 모양이다.) 그것을 본 나는 가슴이 찌르르 하며 창자까지 울려 내려오는 것 같았다. 빠르게 손짓을 하여 그를 불러 내었다. 그리고는 번쩍 안고 방으로 들어가 무릎 위에 앉히고 물어 보았다.

"너 배고프냐? 어제 저녁밥 먹었는데 그렇게 배고플 것이 무엇 있담."

"아니, 안 먹었어요."

하고 어린 딸은 눈자위가 꺼진 눈을 까막까막하며 대답한다.

"아 참으로 안 먹었어, 어제 저녁을?"

"그럼 안 먹었지."

똑똑지 못한 말로 거듭 대답한다. 어제 저녁에 쌀이 없으면서도 있다고 거짓말을 하여 내 걱정을 덜려던 아내란 사람의 심사를 인제 짐작할 수 있다. 어린 딸 말 끝에 아내란 사람은 벽으로 고개를 외면하며 긴 한숨을 쉰다. 나는 가슴속이 무슨 돌덩이나 집어넣어 굴리는 것같이 아팠다. 내 살이라도 베어서 먹일 수 있다면 넉넉히 그러할 수 있을 것 같다. 과연 말이지, 자기가 열 끼 굶을지언정, 그 죄 없고 약한 것들의 한 끼 굶는 것이란 차마 볼 수 없는 일이다. (처자 거느리고 빈궁한 살림살이 하여 본 사람이 아니면 이런 것을 모른다. 또는 이 세상 대다수의 약한 인간이 이 무서운 생명의 핏줄에 눌리어, 양심의 죄를 지어 가며 살려고 애쓰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이때에 안으로부터 주인 마누라쟁이의 목소리가 나며,

"계숙 어머니 있수?"

한다.

나는 혹시 어린아이 먹이라는 밥이나 주려고 부르는 듯싶은 구차한 생각까지 얼른 일어난다. 밥은 고사하고 이 따위 말이다.

"방세 어떻게 되었수? 오늘은 불가불 좀 써야 하겠는데."

한다.

"글쎄 아직 안 되었나 봐요."

계숙 모의 대답이었다.

"안 되면 어찌한단 말이오. 방도 안 내놓고 세도 안 내고."

하고 아니꼽살스러운 말투였다.

나는 주먹을 불끈 쥐고 일어서며,

"참, 이 세상……."

하고 밖으로 뛰어나갔다.

밖에는 지금 야단이 났다. 늦은 가을의 야단이 났다. 한없이 높은 하늘에, 바람은 그 복판을 치며 굴러 나간다. 보라. 북악산 꼭대기 하늘에서도 가을이 '아우―' 소리치며, 인왕산 꼭대기 하늘에서도 가을이 '아우―' 소리친다. 그 아우 소리는 서로서로 엇갈려, 서울이 바라다보고 있는 대공의 궁개를, 빈 독 속에 울리는 사람 소리같이 '아우―' 하며 울려 나간다. 그 아픈 호령 아래에, 이 산밑 저 산밑, 늘어선 나무의 잎잎들은 함부로 땅 위에 내려 굴며 곤두박질한다.

곤두박질이다! 땅 위에 곤두박질이다! 모든 것이 다 이 땅 위에 곤두박질이다.

길 위에 꿈질대는 사람이 모두 다 곤두박질할 듯싶다. 경복궁 긴 담을 안고 내려오는 나도 한번 곤두박질하고 싶었다.

나는 발을 탁 구르며,

'지금은 이런 생각 할 때가 아니다. 밥이다. 돈이다.'

생각하고는 발을 빨리 내어놓으며, 숙주감 다리를 건너서 안동 네거리를 지나 종로로 향하고 내려갔었다. 여기까지 오며 한 생각은 책사에서 돈 찾아낼 궁리였다.

'그 동안 허가가 나왔으면 다행이요, 그렇지 못하더라도 억지로 떼쓰고 다만 십 원이라도 뺏어 내자.'

하고 이렇게 생각한 나는 바로 책사를 찾아가게 되었다. 그 교활하고도 야박한 소인간(小人間)의 전형으로 생긴 책사 주인 얼굴 대하기는 무엇보다 싫었다. 그는 전일 같으면, 생쥐 같은 눈을 요리조리 굴리며, 쥐꼬리만한 지혜를 가지고, 점잖다는 사람이라도 한번 다루어 보려고, 또는 정다운 체하느라고 뱅글뱅글 웃으며, 얄궂한 말썽을 부릴 터인데 웬셈인지 오늘은 그렇지도 않다. 시침을 뚝 떼고 다스리고 앉아서,

"아 ○선생, 마침 잘 오셨구려."

하고 할끗 한번 쳐다본다. 그 쳐다보는 눈치는 사람을 경멸히 여기는 눈치다. 그리하는 것이 조금만 이해가 틀리면 빼끗 돌아가는 서울 깍쟁이 마음씨의 본색이다. 서울 사람 중에도 장사치, 그들은 확실히 '생쥐 인간'이라고 할 수 있다. 용의 새끼가 못 되면 미꾸라지가 된다는 셈으로 그들은 망골 자손으로 되고 말았다.

그는 거듭 말을 내며,

"이것, 보시오."

하고 책상 서랍 속으로 반지 넓이만한 좀 두꺼워 보이는 종이쪽을 꺼내며

"검열하러 들여보낸 그 시집이 압수를 당하였답니다."

하고 때묻은 책상 위에 떨쳐 놓는다.

"압수?"

하고 나는 가슴이 덜썩 내려앉으며 그 종이쪽으로 눈이 갔다. 그 첫머리에는 통지서, 그 다음에는 무엇무엇…… 중간에 내려가다가 눈에 번쩍 뜨이는 것이 불허가…… 그 끝으로 무슨 국 무슨 검열계 인(印)이 있다.

"무슨 까닭으로 불허가랍디까?"

하고 나는 물었다.

"불허가는 고사하여 놓고, 저작자를 좀 취조하여 보겠다고까지 합디다."

내 눈에는 그 왜놈 경찰들의 걸터앉은 모양, 그 독살스러운 눈, 입, 매몰스러운 말투, 그런 것이 번쩍 떠오르며, 눈앞에 있으면 곧 주먹으로 내리갈길 듯싶게, 얼굴에 상기됨을 깨닫겠다.

"무슨 까닭으로?"

하고 물었다.

"무슨 까닭으로요? 불온하다고……."

"불온이라니 무엇이 불온? 그러지 아니하여도 조금이라도 걸릴 듯싶은 것은 죄다 빼었는데……."

"좌우간 어디가 어떻기에…… 당신이 미운 생각이 나서 그리하였는지도 모르지……."

이 말은 주인의 말이었다.

"미워, 내가 미워?"

얼굴이 화끈하여지며 나는 이런 말을 하였다.

"상전이 종이 미우면, 발 뒤꿈치가 왜 달걀 같으냐고 트집을 잡는다더니, 그 셈인 게로군."

하고 말하는 사람은 그 옆에서 우편 소포들을 노끈으로 얽고 있는 차인꾼의 말이다.

"그래 그것은 그리 되었지마는, 선생 갖다 쓴 돈 이십 원 조건은 어찌한단 말씀이오?"

"그 돈이요, 지금 내가 갚을 도리가 있을 것 같으면 곧 갚아 드리겠쇠다마는 바로 말이지 지금 내가 돈이 없소. 그러하니 조금 참으면 내가 겨를을 타서 하다못해 무슨 번역 같은 것이라도 하여 드릴 터이니……."

하고 쾌쾌히 말을 하였다.

"언제 그것은……."

"언제일 것이 아니라 틈만 있으면……."

하고 나는 바로 그 책사 문 밖으로 뛰어나왔다.

얼굴에 오르는 상기는 가라앉지 않고 점점더 높아지는 것 같다. 하늘이 땅으로 내려앉는 것 같고 땅이 하늘로 올라가는 것 같다. 길에 보이는 사람을 모조리 때려눕히고 싶다.

그럴 즈음에 뒤로서 나막신 소리가 딸깍딸깍 나더니 별안간,

"요보, 빠가."

하는 콕 찌르는 듯한 소리가 난다. 나는 고개를 홱 돌려보았다.

옆에 손가방을 들고 인버네스를 입은 사람은, 얼른 보아도 십수년 이 땅에서 살아온 고리대금업자나 장사하는 일본 사람이다. 그 옆에는 그자의 차인꾼 같은 조선 사람, 또 앞으로 서너 발자국 되는 거리에 선 사람은 헙수룩한 조선 사람의 지게꾼. 아마 그 지게꾼이 짐 지러 종로 시장으로 달려가다가, 옆으로 오는 일본 사람의 몸을 좀 몹시 부딪쳤던 모양이다. 그 일본 사람은 손으로 지게꾼의 어깨를 훔쳐 때리며,

"요보, 빠가, 나쁜 사람이…… 조리 가는데, 와 이이리……."

하고 살기 띤 눈으로 지게꾼을 노려본다.

"영감상이 잘못했어."

하고 아무 반항도 없이 옆을 슬쩍 피하는 것은 지게꾼이다.

그 인버네스 입은 사람의 그 눈, 그 입, 모든 것이 다 제가 가지고 있는 소악 동물의 잔인성을 있는 대로 다 드러낸다. 그러지 아니하여도 이 유순한 백의인 피를 제멋대로 빨아먹고 제멋대로 학대한 관습의 표정이 그 얼굴에 '인'박여 있다. 마치 무슨 살이 볼록하게 찐, 털이 까칠까칠한 독충 같아 보인다. 나는 그만 발로 뭉개어 죽이고 싶은 생각이 칵 났다. 주먹이 부르르 움키어 쥐어지며 쫓아가려 하였다. 정신이 아뜩하다. 땅이 핑 돈다. 나는 그 땅에 쓰러질 듯싶다. 어느 겨를에 그들은 어디로 헤어져 갔다. 나는 정신을 좀 돌리려고, 시장 건너편에 있는 공동변소로 들어갔다. 나와서 그대로 벽에 기대고 섰다가 나중에야 지린 냄새가 코를 찌름을 깨닫고 밖으로 나왔다.

인제는 돈 구처할 생각이 앞을 선다. 다시 책사 앞을 지나 그 윗골목 안 여관에 들어 있는 H란 사람을 찾아갔다. 그는 돈푼 있는 덕택에 동경까지 갔다 와서, 지금은 유경을 하면서 공명열에 날뛰는 사람이다.

그 골목에 들어가자마자 길에서 그를 만났다.

"참 오래간만일세그려. 그래 어디를 가나?"

하고 셀룰로이드 검은 테 안경 속으로 게슴츠레한 탐욕적이면서도 엉큼스러워 보이는 눈을 위로 지릅떠서 쳐다보며 말하는 사람은 H였다.

"오래간만일세. 내가 지금 자네를 만나려고……."

하고 대답하였다.

"응 나를? 자네가 나를 찾아와……."

하는 말은 의심도 끼이고, 또 찾아오지 아니할 사람을 찾아왔다는 비웃는 말이다. 실상 나는 서울로 온 뒤에 그를 찾아본 적이 없었다. 두 사람은 나란히 서서 그 골목을 나온다. 마음먹은 일은 냉큼 말이 아니 나온다. 골목 밖을 나설 때, 그는 옆 가게에 가서 담배를 산다. 오 원짜리 지폐를 내어 주고 바꾸는 것을 본 나는 은근히 속으로 성공의 가망이 있음을 믿었다. 잠깐 주저하다가 그만 단도직입적으로,

"여보게, 내 급히 쓸 데가 있으니, 돈 좀 꾸어 주게."

하였다.

어안이 벙벙해서 지릅뜬 눈으로 나를 쳐다보던 그는 쾌연히 대답하며,

"그러지, 얼마나?"

한다. 참 의외의 대답이다. 이때껏 내가 그에게 그런 말을 하여 본 적이 없고, 또는 나를 구제하여 주었다는 말을, 한고향 친구들에게 자랑하자는 이야깃거리도 된다. 또는 그보다도 당장에 돈 가진 것을 들킨 터이다. 이만큼 음흉하고 엉큼한 사람의 뱃속을 뻔히 짐작할 수 있다.

"얼마든지 자네 여유 있는 대로……."

"내가 이 돈을 꼭 쓸 데가 있어서…… 내게는 한 푼이라도 여간 새로운 때가 아닐세마는……."

하고 일 원 한 장을 내어 준다. 그 밖에 더 할 수 없다는 눈치가 역력하다.

"고마워."

하고 두말 아니 하고 받아 가지고 돌아섰다. 급한 걸음으로 집을 향하였다.

내가 이런 구걸의 짓을 한 것이 지금 처음 한 짓이 아니다. 벌써 여러 번이다. 그러나 구차하고 녹록한 생각이 나기는 지금도 마찬가지다. 살아나가는 것이 구차스러웠다.

"인자 이 노릇은 다시 할 수 없다."

하고 나는 결심하였다. 별안간 등에 물을 끼얹는 것같이 선뜩하여지며 온몸이 오슬오슬한다.

"몸이 야릇하군."

혼자말하고, 걸음을 더 빨리 내어놓았다. 몸이 이런 때에는 무슨 생각이 더 잘 일어나고 더 잘 돌아가는 법이다.

'내가 그런 짓을 할 수 있을까…… 할 수 없다. 내게는 그런 초인의 의지가 없다. 할 수 없다. 그러면 어찌할꼬? 그러면 이렇게나 하여 볼까. 아이들은 고아원에나 갖다 두고, 아내란 사람은 남의 안잠자기로 들여보내고…… 그러나 그도 그들에게 대하여 여간치 않은 비극이다. 이 비극을…….'

이 모양으로 결심을 하였다마는, 어느 때에 이 결심을 실행한다는 것은 아직 보류안이다.

한참 걷고 보니까 발이 속히 떼어 놓아지는지 더디 떼어 놓아지는지도 알 수 없다. 평평한 땅이 쑥 들어가 보이기도 하고, 나와 보이기도 한다. 멀리 오는 사람도 어른어른하여 보인다. 집이나, 나무나, 담이나, 전간목이나 그들은 무슨 힘으로 저렇게 뻗대고 서 있는지 알 수 없다. 다리가 허전허전하여지며 더 걸을 수 없다. 발을 멈추었다. 경복궁 담을 손으로 짚고 눈을 딱 감고 섰다. 귀가 막막하다. 무슨 소리인지 잉잉 소리만 들려 온다. 정신을 차려,

"어서 가자."

하고는 허전허전한 다리에 힘을 주어 꼬누며 내어 걸었다. 집에를 쫓아 들어가 보니 끝에 아이는 쓰러져 잠이 들고, 그 외 모녀는 한데 쪼그리고 앉았다가 일어서 맞는다. 그들은 굶기를 버릇하기는 나보다 훨씬 굳센 것 같다. 파리한 얼굴들이지마는 나보다는 싱싱하여 보인다. 나는 방문 안에 쓰러질 듯이 들어와 주저앉으며 주머니 속에서 일 원 한 장을 꺼내어 내어놓으며,

"자, 어서 쌀 사고, 나무 사고……."

하고는 담요와 이불을 한데 겹쳐 쓰고 아랫목에 누웠다. 한기는 점점 더 심하여 간다. 몸이 들썩들썩하도록 떨리기 시작한다. 몸이 깊은 땅 속으로 끌려 들어가는 것 같다가도, 별안간 무슨 배나 탄 모양으로 온몸, 온 천지가 흔들리는 것 같기도 하다. 이마와 눈은 마치 뜨거운 화로가 성이나 낸 것같이 후끈후끈하기도 하고 뜨끔뜨끔하기도 하다. 엄지손가락 끝과 다른 손가락 끝을 마주 대어 문질러 볼 때에는 그 손가락 끝에 만져지는 것이 무슨 몹시 억세고도 두툴두툴한 석벽을 만지는 것 같았다. 그것이 석벽이냐 하고 생각할 때에는 별안간 무슨 끝없이 높은 성벽이 눈앞에 나타난다. 그러다가 그 성벽이 와그르 하고 무너진 때에는 그 무너져 흩어진 성벽의 돌 쪼각쪼각이 돌이 아니요, 금방 가없는 물구덩이에 일어나는 파륜(波輪)이 되고 만다. 그럴 때는 손가락 끝에 만져지는 것이 무슨 명주 고름이나 물결같이 보드러워진다. 그러다가는 이것도 저것도 아니고, 다만 햇살이나 번개 같은 것이 눈앞에 왔다갔다 사라졌다 꺼졌다 한다. 그러다가는 그만 정신을 잃고 말았다. 혼수상태에 빠지고 말았다.

잤는지 앓았는지 분간할 수 없이, 얼마 동안을 지낸 뒤에 흔들어 깨우는 이가 있었다. 희미한 등불 밑에 아내는 윗목에 눌러앉았다.

"너희들 밥 먹었니?"

하고 아이들을 거들떠보고 물어 보았다.

"네."

"저 아이들은 벌써 먹었어요."

하고 연하여 대답하는 사람은 큰딸과 그 모였다.

"어서 잡수셔요. 밥을 좀 끓였더니."

하고 아내란 사람은 말한다.

나는 그 끓인 밥을 서너 번 떠먹었다. 더 먹을 수가 없다. 수저를 상 위에 딱 세워 잡았다.

"좀 나우, 잡수셔요, 너무 애쓰시고 시장하던 끝에 병환이 나셨는가봐요, 억지로라도 잡수셔요."

나는 서너 번 더 떠먹고,

"아이고, 더는 못 먹겠다."

하고 수저를 놓고 그만 다시 쓰러졌다. 정신이 아까보다는 든 모양 같다. 그러나 신경을 조금만 건드려도 마구 흥분이 될 상태이다. 어린아이들은 꾸벅꾸벅들 존다. 몹시 시장하던 끝에 밥을 먹은 까닭인 것이다.

"졸리거든 드러누워들 자려무나."

하는 사람은 문 밖에 앉아 인제 밥상을 붙들고 앉은 아내라는 사람의 소리다. 아이들은 툭툭 쓰러진다. 예전에는 자기가 한 호기심을 가지고 대하던 빈민굴이 지금 자기가 당하게 되고 말았다. 윗목에 나란히 누운 아이들을 쳐다볼 때에는 갑자기 불쌍한 생각이 난다. 화끈화끈한 눈에 눈물이 흐름을 깨달았다.

"에, 내가 왜 이렇게 센티멘틀하여졌나. 신경이 약하여졌군."

하고 눈을 돌려 등불을 쳐다보았다. 그 광력이 미미하기 반딧불 같은 등불이건마는, 별안간 길고도 날카로운 광선의 송곳으로 내어지른다. 눈이 뜨끔하여지며 눈을 감았다.

낮일이 몹시도 마음에 거리낀다. 그자에게 돈을 그 모양으로 구걸한 것이 몹시도 구차하였다.

"구걸이란 것은 참 구차한 것이야."

하고 혼자 중얼거렸다.

"구차! 구차! ……구걸하느니 차라리 도적질을 하지. 그보다는 덜 구차하다."

하고 입 속으로 중얼거리었다.

절도가 구걸보다는 덜 구차하다.

'그러나 그 역시 구차한 일이야, 남의 눈을 속이는 것이니까…… 차라리 강도가 떳떳하다…… 그렇다, 떳떳하다. 시대 양심으로는 조금도 부끄러울 것이 없다.'

하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거기에도 한 가지 번민은 있다. 설사 강도질을 하여 성공한다 하더라도 한 가지 번민이 있을 것은 진리에 대한 모순이다―---이 같은 수단을 부리지 않고는 살 수가 없느냐 하는 번민이었다. 그러나 그 번민쯤은 영광으로 알고 가지고 지낼 것이다. 그것은 위대한 번민이다. 최고의 번민이다.'

하고 잇대어 생각하였다.

'그러면, 파산을 하지 말고 강도질을 할까? 파산인가 강도인가?'

하고 눈을 떠 어린아이들을 쳐다보았다.

'만일에 저것들을 아무 의지할 곳 없는 고아원에다 보내면…….'

하고 생각할 때에 가슴이 찌르르한다. 예전 동경서 스가모에 있는 고아원에 들어가 구경하던 일이 번뜻 눈에 떠오른다. 그 얼굴에 노랑꽃이 피는 고아들, 어릿어릿하고 이리저리 몰려다니는 모양이 몹시 걸려 보였었다. 그들은 무엇보다 사랑에 주린 아이들이다. 따뜻한 어머니 품에 안겨 자라나지 못한 까닭으로 그같이 응달에서 자라난 풀싹 모양으로 시들시들하게 되었다. 이까지 생각한 나는 갑자기 더 불쌍한 생각이 났었다. 다시 한번 그들의 쓸쓸하게도 누워 있는 모양을 쳐다보고는, 눈에 눈물이 핑 돌음을 깨달았다. 내가 약하고 못생겼다는 생각도 났건마는 하는 수 없다. 나는 다시 눈을 감았다.

"파산? 강도? ……강도다! 강도!"

하고 주먹을 부르르 움키어쥐었다.

'그러면 내가 강도질을 할 수가 있을까? 칼이나 무슨 연장을 가지고 남의 집 담을 뛰어 넘어가서, 으르고 돈 뺏어 낼 용기가 있을까? 그 용기가 의문이다…… 나는 비겁하다…… 또는 그 일이 성공보다 십의 팔구는 실패에 돌아갈 것이다. 그러고만 보면 값없는 비극만 일으킬 것이다. 결국은 무지한 모험만 되고 만다.'

이런 때에 소위 지혜의 타산이란 것이 자기 성격의 결함인 비겁을 옹호하게 하고 그쪽 기세를 더 도웁게 된다.

'그러면 어찌할꼬? 이것도 저것도 마단 말이냐? ……어떻게 살아나갈꼬? ……또는 자기가 시대 고통의 구덩이를 파고들어가자던 결심이 무엇인가? 이 모양으로 지혜의 가르침이라는 것보다는 오히려 비겁한 생각이 더 나서…… 비겁, 참 지지리 못났다! 내가 이 모양으로 비겁하단 말인가?'

하고 힘없는 주먹을 쥐어 보았다. 한참 무의식경으로 있었다. 그러다가 주먹을 불끈 쥐고 벌떡 일어나며,

'강도다! 강도!'

하고 경련적으로 입을 오무리며 결심하였다. 방 안이 움찔하여지는 것 같다. 화로에 꽂힌 인두가 눈에 번뜻 뜨이며,

'저것을 들고…… 아니다, 부엌에 있는 식칼을 들고…….'

하고 속으로 번개같이 생각하고는 당장 곧, 뛰어나가고 싶었다. 방문턱에 드러누워 자던 아내란 사람이 깜짝 놀라서 일어나며 휘둥그렇게 뜬 눈으로,

"아이고, 왜 그러세요? 헛소리만 하시는 줄 알았더니, 저 모양으로 일어나 앉으셔서……."

한다.

"아니야, 아니야, 좀 잠이 안 와서……."

"아이고 어떻게 하나."

"아니야, 어서 드러누워 자. 나도 곧 잘 터이니……."

하고 다시 누웠다. 주먹을 또 움켜쥐고,

'강도다! 강도!'

하고 속으로 부르짖었다.

'칼을 들고 어디로 가나…… 옳다. 이웃집 벽돌담 한 집…… 그 담을 넘어가서…… 사랑에 뛰어들어가…… 으르고 돈을 뺏어…… 그리고는 다시 그 담을 뛰어넘어와 산으로 도망질하여 그러다가 집으로 돌아와…….'

이렇게 생각하고는 잠깐 무의식.

'아, 지금 내가 이렇게 생각할 것은 아니다. 몸이 성한 뒤에…… 우선 병이 나아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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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은 어두컴컴하다. 그러나 동쪽 하늘에는 그믐 새벽달이 돋으려는 셈인지 검은 구름 사이가 훤하여진다. 잘 보이지 않던 길로 높은 담의 희미한 윤곽이 들여다보인다. 그 옆 산 밑으로 선 소나무도 수묵화같이 보인다.

'아, 이 달도 없는 밤이었더면!'

하고 생각할 때에, 별안간 그 돋으려고 얼비치었던 달빛이 검은 구름으로 아주 덮인 까닭인지 그만 캄캄하여지고 만다.

'잘되었다!'

생각하고 담을 뛰어넘으려 하였으나, 종시 그 달빛이 의심스러웁다. 그러나 담을 뛰어올랐다. 왼손에 들었던 칼이 담에 '득―' 하고 긁히는 소리가 난다. 가슴이 덜썩 내려앉았다. 담 위에 몸을 걸치고 서서 그 안을 들여다보았다. 두어 칸 들이 건너편으로 사랑 모퉁이에 전등불이 반쯤 내어비친다. 그러나 이 담 쪽에는 비치지 아니한다.

'그 안으로는 바로 사랑방이거니' 생각하고는 슬쩍 뛰어내렸다. 다행히 발 구르는 소리는 아니 났었다. 그러나 가슴은 두근두근하였다. 무엇이 몸을 지긋지긋 잡아당기며 꽉꽉 찌르는 것이 있다. 손으로 만져 보니 화초나무다. 아마 가시 달린 만생 장미인 듯싶다. 옷에 붙은 나뭇가지를 떼고 나서, 왼손의 칼을 바른손에 옮기어 잡고는 발을 가만 가만히 옮겨 놓았다. 뒤뜰 한가운데까지 왔다. 별안간 어디서 '탕탕' 소리가 난다. 깜짝 놀라며 발을 멈추고 섰다. 가슴이 뚝딱뚝딱한다. 자세히 듣고 보니 그 소리는 시계 치는 소리다. 석점을 치는 듯싶다. 다시 발을 옮겨 놓았다. 방 모퉁이까지 왔다. 몸은 어두운 그늘에 감추고 고개만 내어밀어 그 안을 엿보았다. 바로 그 옆이 큰사랑방이다. 그 방에는 불이 켜 있다. 반쪽 덧문은 닫혀 있고 반쪽 덧문은 열려 있다. 다른 방에는 모두 불을 끈 것 같다. 다만 뜰아랫방 등불이 바깥으로 내어걸려 있다. 아까 그 담에서 보이던 등불빛이 곧 이 등불임을 알겠다. 가만히 한 발을 들여놓아 방 안을 엿보았다. 방 아랫목에는 엷은 천의를 덮고 누워 자는 늙수그레한 영감쟁이가 아마 주인인 듯싶다. 그 옆으로는 요강, 재떨이가 놓여 있다. 큼직한 갓을 씌운 전등이 천장 복판에 걸려 있다. 나는 그만 얼결에 쑥 올라가며 방문을 열려 하였다. 그 방문 미닫이가 닫힌 것이 아니라 열려 있다. 나는 방 안으로 성큼 들어가며, 칼을 바로 누운 사람에게 겨누고 앉았다. 누운 사람은 눈을 떠보더니 벌벌 떨며 일어나 앉더니만, 두말 아니 하고 벽장문을 열어, 작은 금고를 꺼내어 놓고, 떠는 손으로 금고 문을 열더니, 십 원짜리 지폐 뭉텅이를 수북하게 내어놓는다. 나는 그것을 주머니 속에 넣고, 그도 모자라서 바지 가랑이에 집어넣고, 밖으로 뛰어나왔다. 밖을 나서고 보니 아까 그 담이 아니요, 바로 큰길이다. 길이 훤하다. 사람이 왔다갔다한다.

'이것 큰일났고나! 벌써 날이 다 새었고나.'

하고 가졌던 칼을 옆에 집어던지고 두근거리는 가슴을 안고 걸음을 걸으려 하나 발이 잘 떨어지지 않는다. 담 넘어 뒷집에서 아우성 소리가 일어난다. 별안간 순사 하나가 달려온다. 나는 옆에 놓인 칼을 집어 그 순사를 찔렀다. 그는 거꾸러졌다. 그러면서 바로 그 뒤로 수없는 순사가 달려온다. 나는 황황히 칼을 내어두르려 할 제, 뒤에서 누가 나를 냅다 때린다. 나는 앞으로 거꾸러졌다. 여러 순사는 나를 붙잡으려 들이덤빈다.

"아이고!"

소리를 질렀다. 눈을 번쩍 떴다. 온몸에 땀이 줄― 흐른다.

등불은 그저 방 안을 비치고 있다. 그들은 그저 윗목에 쓰러져 있다. 미지의 운명을 짊어지고 고이 누워 자는 그들, 그들을 에워싼 어두운 밤은 자모같이 또는 악마같이 애무하는 듯, 예시하는 듯.

고약한 꿈이다. 밤은 길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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