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오코왼의 후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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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덥고 답답한 것은 오히려 참을 수 있다고 하드래라도 몰려드는 파리떼야말로 역물이다.

편즙시간을 앞두고 수선스럽고 어지럽고 초조한 편즙실의 오후를 파리떼는 제세상인듯 들끓고있다. 얼골과 손을 간지르다가는 목탄지 위에다 불결한 배설을 하고 날러가군 한다.

「추잡한 방안이 천재의 있을 환경이 못되누나.」

삽화가 마란은 시간이 촉박하였음에도 그날 소설에 들어갈 삽화를 아직도 그리지못한채 파리와의 싸움에 정신이 없다. 천재로 자처하는 그에게 휘답답한 편즙실은 버릇없기 짝없는 곳이다.

「천재를 괴롭히는 이놈의 추물 ─ 이놈의 미물 ─ 이놈의 속물……」

파리채 밑에서 한마리 두마리 꺼꾸러져 책상위에 볼 동안에 적은 시체의 무더기가 늘어간다. 마란이 중얼거리는 어투에는 비단 파리떼만을 가르치는것이 아니라 은근히 편즙실안에 웅성거리는 천재아닌 뭇 미물들을 조롱하는 마음도 있다. 국장을 비롯해 과장 부장 주임 기자 사무원 급사 등 흡사 파리떼만큼이나 흔한 속물들도 마란의 비위에는 파리떼와 고를배 없는 평범하고 용렬하고 하잘것없는 존재로 밖에는 비취이지 않는다. ─ 조물주는 무슨 까닭으로 이렇게도 흔한 미물들을 파리떼와 인간들을 맨들었누. 이 흔한 미물들이 죄다 조물주의 똑같은 총애를 바랄 권리가 있단말인가.

생각하다가 문득 어깨를 읏슥 솟구고 입술을 쭝긋 휘인것은 그렇게 생각하는 자기자신은 무엇인가 똑같은 한사람의 미물이 아닌가 미물인까닭에 아직도 그날의 삽화도 못그리고 고민하고 있는것이 아닌가 하고 깨달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깨달음은 전혀 망상임을 뉘우치면서 자기와 주위와는 여전히 엄격하게 구별되어있음을 그의 천재적인 직관과 자부심이 고집스럽게 주장했다. 삽화를 못그린것은 천재적인 고민으로 말미암은것이다. 무더운 기압속에서 볶이우면서 파리떼와 싸우며 초조와 번민속에 사로잡혀있음은 천재로 비약하려는 직전의 일순간이 아니든가. 무엇을 어떻게 그렸으면 좋을는지를 몰라 졸지에 맥힌것이 거의 한시간동안이나 목탄지 위에 붓끝이 머무른채 손가락이 탄식하고 허트러진 머리카락 아래에셔 두눈이 형형이 빛났다. 파리 산양에 정신을 옮기고 또 반시간을 지내는 동안에 편즙시간은 자꼬 임박해오건만 한획도 운필을 못하고있는것이다. 요새와서 여러번채의 버릇이었다. 꽉 맥힌 답답한 창안에셔 답보하기 시작한 예술이 쉽사리 길을 찾지못하고 그 안타까운 괴롬을 표현할 도리를 몰라 매마른 영감과 동기속에서 뼈를 갈면서 꼽박 꼽박 밤낮을 여위어온다.

화푸리나 하듯 파리채를 휘두르는 동안에 애꾸진 시체만 책상위에 늘어가고 목탄지는 어느때까지나 백지의 순결을 지키고있을 즈음 힘차게 처든 파리채에 요번에는 커다란 미물이 걸렸다. 등 뒤으로 돌아오든 급사가 파리채로 보기 좋게 면상을 얻어맞고 그 별안간의 봉변에 재수없다는듯이 눈ㅅ자위가 돌면서 퉁명스럽게 앞에 나타났다.

「마선생님 망녕이신가요. 저까지 잡으실려구.」

「넌 파리보다 낫단말이지.」

빈정대는 한마듸가 어린 마음을 노엽히고야 말었다. 급사는 정색하면서 자기 맡은 의무로 어른을 윽박으러 들었다.

「딴소리 말구 얼구 그림이나 주세요. 몇시나 됐나 시계를 좀 쳐다보시구요.」

소년은 여러해동안의 신문사 생활로 편즙시간의 엄격하고 가혹함과 그것이 기사를 담당한 사람들의 마음을 얼마나 초조하게 바수는가를 누구보다도 잘 터득하고있었다. 자기가 던진 독촉의 한마듸가 사모하는 화가의 가슴속에 준 효과를 마치 그의 멱살이나 잡은듯이도 통쾌하게 역이면서 소년은 더욱 짓걸인다.

「인쇄부에선 판을 다 짜놓구 지금은 선생의 삽화만을 기다리는 중예요. 소설은 있어두 그림이 가야죠. 창 빠진것같이 그 자리만 허옇게해서 찍을수두 없는 노릇이구. 직공들의 사정두 좀 살피구 일분이 바뿌게 신문을 기다리는 수백만 독자의 심중두 생각해 주세야죠.」

「허옇게해서 찍으렴. 너까지 날 귀찮게구니. 신문이 내겐 원수구 시간이 내겐 지옥이다. 책을 벳기듯 그렇게 술술 되는 그림이 아니야. 너두 파리두 신문두 내겐 죄다 원수야 원수.」

제 괴롬을 못 이겨 마란은 기어코 화를 내버렸다. 의자에서 벌덕 일어서면서 파리채로 금시 급사를 후려갈길 신융이다. 급사는 그제서는 제일이 바뻐서 사정이나 하듯 겸양하면서 손을 못고 빌 지경이다.

「그만하시구 어서 그려주세요. 붓을 들구 조희위에다 단숨에 냉큼 그려주세요. 아무래도 좋으니 구불구불 몇줄만 그려주세요. 시간은 없구 큰일났어요.」

「네겐 아무래두 좋와두 내겐 좋지않어. 이 답답한속에서 그림이 되다니. 예술이 그렇게 수월한것이드냐 오늘은 그림이 없다. 인쇄부에가서 그렇게 일러라.」

「얼른 그리세요. 삽화를 주세요.」

「없달밖엔. 천재를 괴롭히는 이 미물들아.」

은혜를 조르는 거지같이 소매에 매여달리는 급사를 뿌리치고 마란은 편즙실을 횅하니 내뺀다. 뒤ㅅ문을 나서 복도를 걸어 급스럽게 뒤뜰에 나려서는 꼴이란 지옥을 벗어나랴는 뜻인듯도 하다. 해방된 플로메슈스같이 땅을 저벅저벅 밟으며 호흡을 깊게하면서 활개를 펴보나 초조한 심사에는 문밖도 답답하다. 하늘이 얕고 공기가 무거웁다. 해를 먹음은 검은 구름같이 속이 달고 확근 거린다.

오늘은 백화점의 경기구도 뜨지않고 도회의 허공은 그리다가 버린 수채화같이 흐리멍덩하게 푸러져있다. 빛과 그림자의 구별을 가지지못한 건축들은 아름다운 입체감을 잃어버리고 단조한 평면속에서 표정도 감정도없이 하품만 하고있다. 삼라만상이 괴롭고 따분하다.

신문사 뒤ㅅ문ㅅ간에 사람들이 둘러싸고선것은 아마도 또 무슨 장사치리라. 약장수도 오고 붓장수도 왔다 어떤때에는 인삼장수가 와서 메마른 이끼속에 도라지같이 꼬치꼬치 꼬인 풀뿌리를 헤치면서 사람들을 모왔고 때로는 자라 장수가 나타나서 산 자라의 옆꾸리를 찔러 선지를 내서 입술에 묻히면서 부족증에는 직효라고 선전하는것이었다. 뒤ㅅ문ㅅ간에는 언제나 이렇게 온전하지못한 객군만이 뫃여드는 법인 모양이다. 오늘은 또 무슨 장사치인구 하고 마란은 가까히 가서 사람들틈으로 엿보다가 뜨끔해서 소스라치면서 뒤ㅅ걸음질쳤다.

조그만 나무궤를 안고 선것은 땅군이었다. 궤속에 한뭉치가되여 굼실굼실 느리고 누은것은 독사의 한떼. 삼ㅅ단같이 흩어지고 서리워서 고개들을 꼬추들고 철망속에서 혀를 널늠거리는 꼴은 흡사 세상을 저주하랴는것인듯 보는 눈에 능굴지고 께름칙한 독을 께얹는다. 이놈의 미물은 대체 무슨 인연으로 아담때부터 사람의 원수가 되였누. 사람들은 그 흉칙한 꼴에 몸서리를 치면서도 둘레둘레 그것을 둘러싸고 보고섰음은 또 무슨 까닭일꾸. 뭇 시선 앞에서 자랑스럽게 그 한놈의 목을 손가락으로 올켜쥐고 널늠거리는 혀를 뽑아뵈이는 땅군의 심청머리도 또한 알수없는 것이다. 사람의 자식이 아니요 뱀의 종족이란 말인가. 그렇게 대담하고 추잡하고 야만스런 그녀석은.

「이놈의 미물두 결국 내게 영감을 주지는못하누나. 내 예술을 싻트게하지는 못하누나. 우리 조상의 원수는 내게두 필경은 원수밖에는 못되누나.」

마란은 외면하고 걸음을 옮기다가 문득 그 미물을 아름답게 노래한 옛 시인을 생각했다. 아롱거리는 등어리를 해빛에 반짝이면서 풀속으로 굼시르르 사라지는 뱀의 모양을 찬미한 시인의 심청머리는 또 대체 어떤 것이었던구. 그 능굴진 추물의 모양이 시의 세상에서는 아름다울는지 몰라도 그림속에서 빛날리는 만무해. 푸르고 붉은 늘메기의 색채라면 또 몰라두 단조로운 회색만의 독사의 꼴이 그림이 될수는 만만 없는노릇이야. 아무리 천재기로서니 현대화에 있어서 그 추물을 취급할수는 없구말구…….

중얼거리면서 마란은 등뒤에 점점 뱀의세상을 멀리했다. 신문사의 돌벽과 흐린 하늘이 앞에 가로놓여 마음은 더욱 초조하다.

그날 그가 그려야 할 소설의 삽화라는것은 괴로워하는 현대 남녀의 자태였다. 남녀는 피차의 연애만으로 괴로워하는것이 아니라 두사람 앞에는 시대가 놓였고 력사가 물결치고 겹겹의 파도가 휩쓸려와서는 송두리채 육신을 뽑아갈랴는것이었다. 그위에 두 사람에게는 길러도 길러도 진할줄모르는 안타까운 애욕의 오뇌가 그치지 않는다. 여자는 기어코 주인공 앞에서 흑이냐 백이냐 좌냐 우냐 함께 길을 떠나겠느냐 싫으냐─의 코다짐을 하건만 사내는 아직도 결단을 못하고 육신을 틀면서 번민한다.

그 한회분의 소설에 있어서 마란은 대면하는 남녀의 풍경을 그릴까 여자의 나체를 그릴까 망사리다가 남자의 얼골을 그리기로 작정했다. 괴로워하는 얼골의 표정을 가장 효과적으로 그려서 소설전체의 표정을 상징하랴는것이었다. 그 계획에 기뻐하면서 붓을 든것이 종시 뜻대로 이루워지지를 않었다. 자기자신도 필경은 주인공과 다름없는 현대인의 한사람이요 괴롬도 같은것이니 하고 거울을 놓고 자기의 얼골을 그려볼랴고 애썼으나 도무지 운필의 동기가 서지를 않었다. 이마의 주름살을 그려보아도 어울리지않고 찌그러진 볼의 선을 그어보아도 자연스럽지 못하고 다구지게 물고있는 두 이를 보이랴고하니 그림으로서의 기품이 없어지면서 속되고 천해졌다. 이다지도 내게 천분이 없었든가 지금까지의 자신은 다 어듸로 갔는구 하고 반나절이 지내도록 삽화한장을 이루지못한채 번민속에서 바시랑거릴뿐이었다. 무서운 날이었다.

화가 마란에게는 진정 천분이없는것도 아니어서 이 몇해동안의 그의 업적은 놀라웠고 화단에서의 지위도 지금에는 벌써 선배들을 물리치고 확호한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나체를 그릴때에는 도랑을 연상시키는 힘찬 선과 미끈한 텃취로서 신선한 감각을 노렸으나 원래 그가 사숙하고있는 선배는 코호인지라 인물화에는 그의 영향이 뚜렷했고 비평가들도 그것을 지적했다. 코호의 모방자라는 것이 자랑이면 자랑이었지 조금도 부끄럼이 안되리만치 그는 이를 누구보다도 높게 평가하고 흠모해온다. 코호가 그린 농민의 얼골같이 개성적이요 성격적인 훌륭한 예술을 남겨 보겠다는 것이 마란의 꼭 하나의 원이었다. 신문사에서 삽화쟁이로 입에 풀칠은 하고있을망정 예술가로서의 야심은 누구에게도 밑지지않었다. 그러게 한장의 삽화에도 예술의 기품을 담으랴고 전력을 다했든것이다. 그러든것이 요새와서는 예술의 지향에 금이 가고 방법에 대한 회의가 생기기 시작하면서 제작의 감흥이 불현듯이 줄어갔다. 전과같이 아무런 대상이 나가 반다시 충동을 주는것이 못되고 주위에 웅성거리고있는 허다한 괴롬을 표현하기에는 또한 기력이 부쳤다. 결국 자기도 같은 괴롬속에 빠져있음을 안것이요 괴롬속에서는 괴롬을 표현하기가 난사임을 깨달은것이다. 그날 소설의 주인공의 표정이 곧 자기의 표정인까닭에 붓을 대기가 어려웠고 그 자기의 표정이라는것은 대체 어떤것인지 자기로서 오히려 선과 주름을 가릴수 없었다. 영감의 근원은 매마르고 무딘 감동위에는 몬지가 보얗게 앉게 되었다.

초조와 괴롬이 그날같이 큰 때는 없었다. 새로운 생명을 배ㅅ속에 간직한 산모의 괴롬도 그러한것일까. 피곤한 신경으로 반나절을 부대끼우다 나니 이제는 육신도 마음도 권태속에 잠겨 객관을 바라보는 눈에는 광채가 없었다. 얕은 하늘을 바라보면서 두손을 뒤통수에 깍지끼니 제물에 입이 버러지며 하품이 날 지경이다.

「그까짓 뱀이 다 무어야. 그따위 미물이 내 예술을 살린다. 천만에 천부당 만부당이지 내 예술이 그렇게 허름하게 탄생할줄 아냐. 현대의 코호는 호락호락 붓을 안든다구 엿주어라.」

중얼거리면서 마란이 별안간 걸음을 빨리한것은 행여나 급사가 쪼차나와 자기의 뒤를 따르고 있지나않을까 생각한 까닭이다. 지금에있어서 무엇보다도 두려운것은 조그만 미물 급사의 독촉이었다. 될수만있다면 그 하로를 그대로 살몃이 급사의 독촉에서 편즙의 의무에서 빠져서 모르는곳에 숨어있고 싶었다. 예술을 강잉히 뺏으랴는자는 모두 악마로밖에는 보이지 않었다.

「아웅.」

하면서 급사가 금시 뒤ㅅ덜미를 치지나않을까 겁을 먹으면서 도라다보지도 않고 힝하니 걸음을 빨리하는 꼴이 자기스스로도 속으로는 가관으로 여겨졌다. 흡사 꿈속에서 아귀에게 쫓기우는 신융과도 같았든까닭이다. 언제까지나 그렇게 쫓기워야 할것인구.

「으악.」

별안간 들리는 날카로운 고함은 쫓아오는 급사의 아웅 소리는 아닌모양이었다. 너무도 오독갑스런 외마듸였든까닭에 마란은 모르는결에 문득 걸음을 멈추었다.

「아이구.」

두번재 고함에 마음을 다구지게 먹었든 마란도 뒤를 안도라다 보는수가 없었다. 도라다보고 안놀라는수도 없었다.

쫓아오는줄로만 알았든 급사의 ─ 목소리는커녕 자태도 안보히고 고함은 멀리 뱀을 둘러싸고 섰든 군중속에서 난것이었다. 아마도 비상한일이 일어난 모양, 단정하게 섰든 사람의 테두리가 어지럽게 헤트러졌고 그속에서 독사의 궤ㅅ작을 떨어트린 땅군은 설설 뱀을 돌면서 기괴한 춤을 추는것이다.

「아이구머니 아니구머니.」

팔을 흔들며 쩔쩔 매는 품이 심상한 춤은 아니었다. 기쁠때에 추는 춤이 괴로울때에도 자연스럽게 나오는것일까. 물끄럼이 땅군의 양을 바라보다가 마란은 무서운 생각에 이르렀다.

「아니 그럼……」

급스럽게 가까히 달려갔다가 짜장 뜨끔해 몸서리를 치고 섰다. 참혹한 꼴을 보았다. 땅군은 독사에게 손을 물리운것이었다.

「위태위태하더니. ─ 독을 가진 물건은 어느때나 사람을 해야구야 말어.」

「주인을 물다니 불측한 즘생같으니.」

사람들은 짓거리면서 땅군의 고민하는 양을 물끄럼히들 바라볼뿐 팔다리를 하나식 거들어 그의 괴롬을 덜어주는 도리는 없었다. 기쁨은 함끼 난울수 있어도 괴롬속에는 한몫 참례할수 없는노릇이다. 어떻게하면 그자리를 건질수있을는지 지혜도 생각도없이 사람들은 완전히 바보들이었다.

떨어진 궤ㅅ작 속에서는 독사들이 그물사이로 혀를 널늠거리는 것이 희생된 주인을 측은히 여김인지 저주함인지 미물의 뜻을 헤아릴수 없다. 주인을 문 놈은 어떤 놈인구 필연코 복수의 쾌감에 잠겨있으려니 하고 마란은 그놈을 찾아낼랴고 두리번거리나 그놈이 그놈이어서 분간할수가 없다. 그놈으로서 보면 사람의 모양 또한 그럴까.

「아이구머니 사람 살리우.」

신음소리에 마란은 뱀에서 시선을 돌려 다시 땅군을 바라보았다. 그의 얼골을 보았다. ─ 무서운 얼골을 보았다. 모르는결에 주춤하고 몸이 가다듦을 느꼈다. 수선만을 떨고 똑바로 못보았든 그의 표정을 비로소 보고 우뢰나 맞은듯 육신이 울린것이다.

괴롬의 얼골이란 이런것인가. 아품의 표정이란 이런것인가. 눈이 까지고 볼이 틀어지고 눈섭이 휘이고 이가 갈리고 ─ 이것이 고통의 극치인것인가.

「흐음. 이것이로구나.」

꿈에서나 깨여난듯이 마란은 홀연히 깨달으면서 깊게 탄식했다. 위대한 새로운 발견이었다. 반생동안에 처음 얻은 경험이요 받은 감동이었다.

「바로 이것이로구나.」

씨이서어가 애급을 정복했을때에 외쳤다는 「왔다 보았다 이겼다」의 감동도 그러한것이었든지 참으로 「이겼다」는 고함과도 흡사했다. 놀람은 어느결엔지 기쁨과 만족으로 변했다.

「반날동안 반생동안 찾든것을 이제 얻었구나. 비로소 내 예술을 얻었구나. 이것을 그리자. 이 얼골을 그리자.」

영감의 샘이 금시 하눌에서 그의 몸으로 옮아온듯 두눈이 형형히 빛나고 머리카락이 꼬추섰다. 흥분으로 말미암아 와들와들 떨리고 어깨가 실눅어려 육신의 중심을 잡을수가 없다. 내리기 시작한 신장대 모양이다. 거울을 놓고 얼골을 찡그려보아도 얻지못했든 괴롬의 영감을 땅군의 얼골에서 찾었다. 이제야말로 운필의 동기를 확적히 잡었다. 초조와 괴롬은 흩어지고 만족과 법열이 얼골에 서리워갔다.

「오늘은 세상에서 제일가는 삽화를 그리리라. 일생일대의 걸작을 그리리라. 라오코왼의 조각 이상의 예술을 맨드리라. 발칙한 급사의 독촉을 그림으로 물리치리라. 거만한 편즙장의 입을 놀람으로 막아버리리라.」

손에는 어느결엔지 사생첩이 들려있었고 새로운 페이지위에 땅군의 얼골이 한획 두획 윤곽을 이루워갔다. 트로이의 라오코왼은 적군의 휼계를 간파한 까닭에 뱀에게 물렸건만 땅군은 뱀을 팔랴다가 뱀에게 물렸다. 수천년전의 괴롬이 오늘에 재생되어 마란의 예술을 도울줄 뉘 알았으랴. 마란의 그림이 라오코왼 군상의 조각에 못미치리라고 누가 말하랴.

「이제서야 내 거울속을 똑바로 보았구나. 소설의 주인공의 표정을, 내 표정을 똑바로 보았구나. 땅군이여. 라오코왼의 후손이여. 잠시 내 모델이 되라. 내 그대의 괴롬을 후세에 전하리니 나를 믿으라.」

세기의 고통은 무상의 기쁨으로 변해 지금 마란으로 하야금 모든것을 잊어버리고 제작에 열중시켰다. 사람들도 비로소 영문을 알고 마란에게로 주의를 보내왔고 땅군도 그의 열정에 감동되어 잠시 몸을 움즉이지않고 정숙하게 그를 향하는것이었다.

요번에야말로 짜장 그림 독촉을 나왔든 급사도 말을 잊고 그의 옆에 우두커니 서있었다. 모든것이 일순 걸작의 탄생을 위해 엄숙한 침묵을 지키고 있는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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