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인/13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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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二次[제이차]의 慘劇[참극][편집]

황교장이 가지고 있는 커다란 회중시계 뒷뚜껑에 붙은 사진속의 처녀와 남수가 어디선가 주웠다고 하는 문제의 사진 속의 처녀와 그리고 해월이가 미술품 수집실에 떨어뜨린 사진속의 처녀가 모두 똑 같은 인물이라는 실로 이상야릇한 사실을 안것은 유불란이었다.

유불란은 거기서 더 그 자리에 앉아 있을 수 없는 초조와 흥분을 한아름 품고 황세민 교장을 식당에 남겨둔체 백화점을 뛰어 나왔다.

『이상한 일이다! 똑 같은 인물의 사진을 해월이도 가지고 있고 황세민도 가지 그 있고, 그리고 또 남수가 주웠다는 사진은 대체 누가 가지고 있던 것일까?……』

초하(初夏)의 종로네거리가 유불란 탐정의 눈에는 마치 황당무개한 백일몽(白日夢)의 풍경처럼 비치는 것이었다.

『해월과 황세민? 해월과 황세민?』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복수귀 해월과 황세민 사이에 있어야만할 그 어떤 관련성의 실마리를 잡을 수가 없었다.

십년 전 아메리카 『 , 「 」「샌프란시스코」로부터 삼백만원이란 거액을 품고 표연히 귀국한 황세민 —— 그리고 삼백만원이란 대금을 모두 교육사업에 던진 황세민 —— 그러나 그와같은 거액이 어디서 들어왔는지를 밝히지 않는 황세민 —— 특별히 영어와 중국어에 능통했으나 남달리 높은 교육을 받은 사람 같지도 않아 보이는 황세민 —— 얼굴이 노동자처럼 거무틱틱 하니 볕에 찌들은 황세민 —— 남수의 말에 의하면 사회사업 같은데는 꿈도 안꾸던 백영호씨로 하여금 혜성전문학교를 위하여 칠십만원 제공문제를 승락시켰던 황세민 —— 그리고 복수귀 해월의 것과 똑같은 사진을 시계 뒷뚜껑에 붙여 가지고 다니는 황세민 ——』

깊고 깊은 의혹의 굴속으로 빠져 들어가는 자기를 가다듬으며 유탐정은 지나가는 「택시」를 잡아타고 효자동 혜성전문학교를 향하여 쏜살같이 몰아 댔다.

이윽고 혜전 현관 앞에서 「택시」를 내린 유탐정은 황교장과의 면회를 수부에 청하였다.

『교장선생님은 아침에 외출하셔서 아직 돌아오시지 않았읍니다.』

하는 늙은 소사에게

『그렇습니까. —— 그러나 오후 한 시에 황교장과 교장실에서 만나기로 약속이 되었었는데 — 나는 이러한 사람입니다.」

하고 유탐정은 얼토달토 않은 가짜 명함을 꺼내 소사에게 주면서

『한시까지는 아직 십분이 남았으니까, 하옇든 좀 기다려 보기로 하지요.』

『네 그럼 이리로 들어 오시지요.』

소사는 의아스런 눈치로 유탐정을 쳐다보면서 교장실과 접한 응접실로 그를 인도하였다. 만일 교장실과 응접실이 접하여 있지 않았던들 유탐정은 어떠한 수단을 써서라도 교장실에서 황교장을 기다렸을 것이다.

그러나 응접실과 교장실이 문 하나 사이에 두고 서로 통하게된 사실을 안 유탐정은 인도하는 대로 응접실 의장에 유유히 걸터 앉아서 황교장을 기다리는 것이다.

이윽고 소사가 차를 가져다가 유불란씨에게 권하고 다시 밖으로 나가자마자 그는 벌떡 의자에서 몸을 일으켜 교장실로 통하는 「도어」를 열고 옆방으로 들어 갔다.

교장실로 들어 가자 그는 곧 뜰에 면한 유리창의 「커 — 텐」을 내리고

「테이블」위에 놓인 서류함(書類凾)을 뒤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거기서 목적물을 발견하지 못한 유불란은 이번에는 「테이블」설합 속에서 조그마한 수금고 을 끄집어 (手金庫) 내어 그 속에 들은 편지 뭉치를 조사하기 시작하였다.

그 중에서 필적이 꼭 같은 두개의 영문(英文)편지를 골라 가지고 내용을 한번씩 읽어 본 후에 발신인의 주소 성명을 부리나케 자기 수첩에다 적어 놓고 다시 응접실로 돌아 와서 소사를 불렀다.

『황교장이 아직 안 돌아 오시니 내일 다시 찾아 오겠다고 여쭈시요.』

혜성전문학교를 뛰어 나온지 약 삼십 분 후였다.

태평동 자기 서재 암록색 소파에 누운 유불란은 이제 방금 혜전 황 교장실에서 적어 가지고 온 수첩을 물끄러미 들여다 보고 있었다.

▲ 월리엄·엔더 — 슨 ▲ 샌프란시스코·해안통(海岸通)삼백 오십 칠 번지.

『월리엄·엔더 — 슨과 황세민 교장 사이에 어떠한 관계가 있는가?……』

월리엄·엔더 — 슨이 황세민에게 보낸 두 장의 편지의 내용을 요약해서 말하면 —— 지금 경영난에 빠진 혜성전문학교를 구하는 의미에서 약 오십만 원 가량을 돌려 달라는 황세민의 간절한 청탁을 『월리엄·엔더 — 슨』

이 완곡하게, 그러나 극히 친절한 태도로 거절하는 편지였다. 얼마 동안 쇼파에 누워서 수첩을 들여다 보고 있던 유불란은 벌떡 몸을 일으키어 「테이블」로 가서 펜을 들었다.

유불란은 펜을 놓고 초인종을 눌러 젊은 서생을 불러 들였다.

『「죤·피 ― 터」씨에게 치는 전보다. 빨리 국으로 가서 타전하여 주게.』

『네에.』

『그리고 오늘부터 사흘 동안은 삼청동 주은몽씨 댁에서 묵을테니 내게로 배달되는 중요 서신은 하나도 빼지 말고 보내 주게.』

『네 그러겠읍니다.』

서생은 전문을 가지고 다시 밖으로 나갔다.

『유탐정이 전보를 친 「「죤·피 ― 터」씨로 말하면 로스안젤스에서 변호사 개업을 하는 한편 사립 탐정으로서 이름이 높은 중년 신사이다.

로스안젤스·××스트리—트·××번지죤·피터 — 샌프란시스코·해안통 삼백 오십 칠 번지의 월리엄·엔더 — 슨과 경성 혜성 전문 학교 교장 황세민과의 관계를 상세히 보고하라.

서울·코리아 유 불 란 재작년 봄 유탐정이 여행을 하였을 때 「동양의 신비와 범죄」라는 책의 저자로서 특히 동양에 관한 범죄 사건에 유달리 흥미를 가지고 있는 이

「죤·피 ― 터」씨를 찾아 본 후부터 두 사람 사이에는 십 년 지기와 같은 친분이 맺어졌던 것이다.

그것은 하옇든 이제부터 필자는 복수귀 해월이가 연출한 제 이차 참극의 전말을 기록해야만 할 때가 왔다고 생각한다.

언제든지 그러했지만 이번에도 해월은 탐정 유불란의 바로 눈 앞에서 사람을 죽였다는 실로 불가사이한 사건이 일어났던 것이다.

유불란은 백남수의 말대로 그가 여행으로부터 돌아 오기까지 약 사흘 밤을 오상억 변호사와 함께 삼청동 남수의 집에서 묵었다.

그러나 아아, 그 사흘 동안이야 말로 유탐정에게 있어서는 실로 여러 가지 의미로 초조와 번민의 연쇄였다.

첫째로는 사건을 하루 바삐 해결해야 되겠다는, 말하자면 탐정으로서의 초조였고 둘째로는 한개의 연애자(戀愛者)로서의 번민이었다.

더구나 오상억이라는 새로운 경쟁자가 주은몽의 눈 앞에 나타난 이 즈음, 그리고 전과는 달라서 주은몽의 태도가 지극히 애매하여진 이 지음이 아닌가.

오상억과 어깨를 가지런히 하고 정원을 산책하는 은몽의 뒷 모양을 멀리 이층 발코니에서 내려다 보는 유불란의 초조한 가슴 속 —— 자기와 더불어 같이 하는 시간 보다도 오상억과 같이 있는 시간이 많은 주은몽이 아닌가, 조각처럼 단아한 오상억의 어여쁜 용모를 아침 저녁으로 대하지 않으면 아니 되는 유불란의 우울한 마음 —— 차라리 은몽을 눈 앞에 보지 않음이 다행이라 생각하였다.

그와 같은 초조 가운데서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 마침내 사흘이 지난 날 밤 아홉시쯤해서 탐정소설가 백남수가 여행으로 부터 돌아왔던 것이다.

이것은 나중에야 안 일이지만 그 때 여행으로부터 남수가 가지고 온 보고야 말로 이 세상이 가질 수 있는 가장 큰 비극의 하나인 동시에 우리들이 느낄 수 있는 가장 무서운 비밀의 하나 였다.

그렇다! 제 이차의 참극이 일어난 것은 백남수가 여행으로부터 돌아온 바로 그날 밤이었다.

그 날밤도 서울장안엔 짙은 밤안개가 비오듯이 흐르고 삼청동공원 일대는 그 깊고 깊은 무막(霧幕)속에서 고요히 잠들고 있었다.

그즈음 —— 이층 응접실에는 여행으로부터 돌아온 남수를 중심으로 하고 오상억 유불란 , , 은몽, 정란 —— 이 네사람이 묵묵히 앉아 있는 남수의 심각한 얼굴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래 오빠, 여행은 어디로 갔었어요?』

하고 정란은 물었으나 남수의 입은 통 열려지지 않는다.

『백군, 보건대 이번 여행에서 무슨 대단한 수확을 얻어온 듯 한데 —— 어떤가? 왜 그리 잠자코만 있는거야?』

하고 이번에는 오변호사가 묻는다. 아무런 말도 묻지 않고 그저 남수의 얼굴을 무섭게 쳐다보고만 있는 것은 유불란과 은몽뿐이다.

그러나 유불란은 남수의 얼굴만을 쳐다보는 것은 아니었다. 거기 앉아있는 사람들의 얼굴들을 하나도 빼놓지 않고 그 재빠른 눈초리로 하나씩 하나씩 엿보는 것이다. 은몽의 얼굴, 오상억의 얼굴, 정란의 얼굴들을 ——

『오빠, 그래 그 사진속의 인물이 누군지 아셨어요?』

하고 재차 묻는 정란의 말에 남수는 비로서 입을 열었다.

『정란 너는 네방으로 가거라 그리고 ——』

이번에는 은몽을 향하여

『은몽씨도 자리를 잠깐 사양해 주세요.』

하고 정란과 은몽이 응접실로부터 퇴장하기를 은근히 청하였다.

『왜요 오빠! 여기 있으면 어때요?』

하고 정란은 적지않게 오빠를 나무라면서 의자에서 일어섰다.

『그런게 아니다. 심장이 약한 여인네들이 들어서는 안될 이야기니까 그러는 게지 —— 은몽씨 정란과 같이 잠깐만 자리를 비켜 주시요.』

이리하여 은몽과 정란은 적지않게 불쾌한 얼굴빛으로 응접실을 나왔다.

열시를 치는 괘종소리가 텅빈 복도로부터 뗑 — 뗑 — 울려온다.

창밖은 여전히 짙은 안개의 장막이다.

정란과 은몽이 밖으로 나간지 일 분 후, 남수는 사방을 한번 휘 둘러 보고 나서 비로소 묵직한 입을 열었다.

『불란씨! 오군!』

하고 부르는 남수의 굵다란 목소리는 비상하게 떨린다.

『하옇든 백군, 자네가 알고 있는 모든 것을 찬찬히 이야기해 보게나.』

『음 —— 그러나 지금 이 자리에서 그것을 이야기해서 될런지 어쩔런지 나는 두려워 하네. 아직 확실한 증거를 잡지 못했으니까 단언할 수는 없네만 우리는 이 사건을 다시 한번 맨 처음부터 음미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아아, 나는 지금 그와 같은 기다란 이유를 늘어 놓을 여유를 갖지 못했단 말이야. 나는 실로 무서운 사실을 발견하였네!」

그러면 자네는 『 그 사진 속의 처녀가 누군지 알고 있다는 말이지?』

『음 —— 알지, 알고 말고! 의외의 인물, 꿈에도 생각 못했던 실로 의외의 인물이다!』

남수의 목소리는 극도의 흥분으로 말미암아 점점 커져간다. 점점 더 떨리는 것이다.

그러나 바로 그 때였다.

복도로 통하는 「도아」가 약 한 치 가량 방싯하니 열리자 회색빛 도는 권총 뿌리가 살그머니 나타나지 않는가!

남수는 여전히 말을 계속한다.

『유불란씨, 나는 마침내 해월의 정체를 안 것 같읍니다.! 아아, 만일 나의 상상에 틀림이 없다면……』

그 때, 유탐정이 입을 열었다.

『그렇습니다. 나의 상상에도 틀림이 없다면……』

『아, 그럼 유불란씨도 역시……』

그러나 유불란은 거기 대한 대답을 피하고

『하옇든 그 사진의 처녀가 누군지를 빨리 가르쳐 주시요.』

그 때, 문 틈으로 뾰족 나온 피스톨의 구멍이 그 어떤 목적물을 향하여 소리 없이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그 어떤 목적물을 향하여 움직이고 있던 문 틈의 권총 뿌리!

그 차디찬 권총 뿌리가 마침내 한개의 심장을 노리면서 우뚝 멎지를 않았 는가!

『뭘 그리 주저하시오? 하옇든 그 사진 속의 인물이 누군지……』

하고 유불란이 재차 물었을 때, 백남수는 그 무엇을 결심한 것 같은 비장한 얼굴을 번쩍 들며 입을 열었다.

『그것은 지금으로 부터 약 삼십 년 전……』

그러나 그 한마디가 이 세상에 남겨 놓은 백남수의 최후의 목소리였다.

『탕 ——』

하고 방안을 진동시키는 한방의 총소리!

『앗!』

하고 외치는 유불란 ——

『악』

하고 의자에서 뛰어 일어나는 오상억 —— 머리를 약간 앞으로 숙이고 두 손으로 「테이블」귀를 잡은 남수의 몸뚱이가 짚으로 만든 허수아비처럼 힘없이 앉았던 의자와 함께 털썩하고 방바닥에 쓸어진다.

『어디냐?』

하면서 남수의 쓰러진 몸뚱이를 쓰러안는 유탐정 ——

『복도다! 복도다!』

하고 부르짖으며 쏜살같이 복도로 뛰어나가는 오상억 변호사 —— 안았던 남수의 몸뚱이를 내던지고 오상억 뒤를 따라 달음질해 나가는 유탐정 ——

『앗, 해월이다! 해월이!』

하고 외치는 오상억 변호사의 높은 목소리가 그 때 복도로부터 들려왔다.

『뒤를 따라라!』

하고 고함을 치면서 「도어」밖으로 뛰쳐나간 유탐정 —— 그는 거기서 무엇을 보았는가? —— 해월이, 해월이, 저 무서운 살인귀 해월이 —— 머리에서부터 발뒤축까지 치렁치렁한 주홍색 「만또」로 전신을 둘러싼 살인귀 해월이가 권총을 휘저으면서 기다랗게 뻗힌 복도로 층층대를 향하여 화살같이 달리고 있지 않는가!

『유불란씨, 빨리 빨리!』

하고 고함을 치면서 해월의 뒤를 따르는 오변호사 ——

『해월의 그림자를 놓쳐서는 안됩니다!』

하면서 오상억의 뒤를 따르는 유탐정 ——

『앗! 해월이가 아랫층으로 내려갑니다!』

새빨간 「만또」를 범나비처럼 펄럭이며 비상한 속력으로 층층대를 뛰어 내려가는 해월의 그림자 —— 앗, 절박한 위험! 아랫층 침실에는 은몽이 잠들어 있을 것이다!

『오상억씨! 놓쳐서는 안됩니다! 은몽씨가 침실에서 잠자고 있으니까 ——』

하고 주의시키는 유탐정의 초조한 부르짖음 —— 오상억의 뒤를 따라 층층대를 미끌어지 듯 달음박질해 내려간 유불란 탐정은 그 때 왼편으로 기다랗게 뻗힌 넓은 복도를 미친듯이 달리는 해월의 불덩어리처럼 새빨간 그자림을 보았던 것이다.

그러나 그 순간 유탐정은 가슴이 써늘해짐을 전신에 느끼고 우뚝 멈춰섰다.

왜 그러냐하면 오상억에게 쫓기는 살인귀 해월이가 바른편으로 빠져나가지 않고 현관을 그대로 지나 「아뜨리에」를 거쳐 그 다음방 은몽의 침실로 들어가지 않는가!

『앗, 위험!』

『은몽씨가 위태하다! 오상억씨, 빨리 따라 들어 가시요! 나는 이 현관으로 나가서 침실 들창문 밖으로 갈테니 —— 빨리 빨리!』

그 순간이었다. 은몽의 찢어지는 듯한 목소리가

『악 ——』

하고 복도로 굴러나왔다. 뒤이어 한방의 총소리가

『탕 ——』

하고 방안의 공기를 찢으며 날아온다.

은몽의 찢는 뜻한 부르짖음과 뒤이어 터져나오는 총소리 한방 —— 아아,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유불란 탐정은 너무나 잘 안다.

『해월은 마침내 은몽을 죽였구나!』

유불란은 마음속으로 그러게 중얼거리며 걸려있는 현관문을 꿈결처럼 열어 젖히고 정원으로 뛰어 나갔다.

밖은 두꺼운 안개의 담장이다. 그때 다시

『아, 앗 ——』

하고 부르짖는 공포에 찬 은몽의 목소리가 들리었다.

뒤이어 오상억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아? ——』

하고 놀라고

『은몽씨 ——』

하고 외치는 것을 들으면서 현관 밖에 달려있는 외등(外燈)이 보얗게 비치는 짙은 안개의 장막 속으로 유탐정은 뛰어 들어갔다.

유탐정이 침실을 향하여 「아뜨리에」들창 밖에 있는 넓은 꽃밭을 나는 듯이 휘 돌고 있을 그 때였다.

『앗! 저 놈이 들창 밖으로……유불란씨 빨리, 빨리 —— 저 놈을 붙들어 주시요!』

하는 오상억 변호사의 미친듯이 날뛰는 목소리가 들렸다.

『오냐!』

유탐정은 두꺼운 안개속을 유심히 바라보며 꽃밭을 뺑 돌아 침실을 향하여 달리면서

『어디 어디?……』

하고 외쳤다. 그 때

『저기다, 저기 간다!』

하고 침실 들창 밖으로 상반신을 내밀고 정신없이 고함을 치는 오변호사의 그림자가 안개속으로 희미하게 보인다.

『어디, 어디?』

유불란은 달려가자 마자 그렇게 외쳤다.

『저 편이다, 저 편으로 도망갔다!』

유불란이 달려온 반대쪽을 가리키며 들창을 뛰어넘은 오상억도 유탐정의 뒤를 따랐다.

그러나 —— 아아, 신출귀몰한 살인귀 해월의 그림자는 보이지 않는다.

안개속을 아무리 뒤져 보았으나 있을리 만무한 해월 —— 해월은 안개라는 자연의 가장을 이용하였던 것이다.

유탐정과 오변호사가 침실로 부터 부리나케 뛰어 들어 왔을 때, 은몽은 분홍빛 「파쟈마」를 입은 채 침대위에 쓸어져 있었다.

『은몽씨!』

치밀어 오르는 격정을 억제하면서 유탐정은 은몽의 연연한 몸을 잡아 일으켰다.

『아, 은몽씨는 아무데도 상하지 않았읍니다. 총알은 이처럼 ——』

하고 옆에 있던 오변호사가 외쳤다.

은몽을 쏜 해월의 총알은 목표가 어그러져 침대 머리맡 조그만 탁자 위에 놓여 있는 화병을 깨뜨렸다. 방바닥에 흩어진 장미꽃과 가루처럼 부스러진 화병 ——

『은몽씨, 정신을 차리시요!』

유탐정은 그러면서 은몽을 침대 위에 누이었다.』

『은몽씨, 아무런데도 상한데가 없읍니다. ——』

오상억도 은몽을 흔들었다. 그러나

『오빠가……남수 오빠가 ——』

하고 외치면서 층층대를 뛰어 내려오는 정란의 무서움에 어린 목소리를 들은 유불란은 은몽을 오상억에게 맡기며

『이층엘 올라가 볼테니 은몽씨를 ——』

하고 복도로 뛰어 나갔다.

『아, 유선생님! 오빠가 오빠가 ——』

하고 팔에 매어 달리는 것을 유불란은

『정란씨 포도주가 있거든 빨리 은몽씨에게 갖다 드리시요.』

한마디를 남겨놓고 이층으로 뛰어 올라갔다.

남수의 몸뚱이를 중심으로 하고 일면 피의 호수(湖水)다. 총알은 조금도 어김없이 남수의 심장을 꾀뚫었던 것이다.

유불란은 무엇보다도 먼저 쓸어진 남수의 피묻은 「포켙」을 뒤지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이렇다할 아무 것도 발견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맨 나중에 문제의 처녀사진이 끼어 있는 조그만 수첩을 펴 보았을 때 그는 불현 듯 중얼거렸다.

『부부암(夫婦岩)의 비밀?』

『부부암(夫婦岩)의 비밀?……부부암의 비밀?……』

유불란은 잠깐 동안 수첩을 뚫어질 듯 드려다 보며 그렇게 중얼거려 보았다.

문제의 처녀사진이 끼어 있는 「페 — 지」 일면에는 「부부암의 비밀」

—— 이란 문구가 여기저기 너저분하게 가득 씌어 있었던 것이다.

『남수의 글씨다!』

그러니까 남수는 이번 여행으로부터 「부부암의 비밀」과 이 사진 사이에 얼켜있는 그 어떤 무서운 비밀을 탐지해 가지고 왔던 것에 틀림 없었다. 그러면 「부부암의 비밀」이 도대체 무엇을 말하는가?……

유불란은 문제의 자신과 수첩을 자기 「포켙」에 쓸어 넣고 경찰서에 전화를 건 다음 아랫층 은몽의 침실로 내려갔다.

기절했던 은몽은 정란이가 가져온 한 잔의 포도주를 마시고야 비로소 무서운 악몽으로 부터 깨어났던 것이다.

『아, 유선생님!』

하고 자리에서부터 몸을 일으키려는 은몽을 제지하면서 유불란은 은몽의 이야기에 귀를 기우렸다.

은몽의 파리한 얼굴에는 아직 공포의 빛이 사라질 줄을 몰랐고 옆에 앉은 정란은 오빠 남수의 무참한 죽음에 눈물을 흘린다.

이층 남수의 방에서 나온 은몽과 정란은 복도에서 서로 헤어졌다. 정란은 삼층 자기 방으로 올라가고 은몽은 아랫층 자기 침실로 내려왔다.

『침실로 내려와서 자려고 「파쟈마」로 바꾸어 입고 침대에 누워 있는데 어디선가 탕하고 총소리가 나겠지요. 그때 깔짝 놀라 몸을 일으키고 가만히 귀를 기우렸더니 이층으로 올라가는 층층대를 뛰어 내려오는 사람의 발자욱 소리가 가슴이 덜컥하고 내려 앉아서……』

그래 은몽은 부리나케 침대에서 한번 뛰어 내렸다가 무서워서 다시 침대 위로 뛰어 올라가려했다. 그 순간 문이 벌컥 열리고 ——

『아 무서워요, 무서워요! 저 해월이가, 온몸이 불덩어리처럼 새빨간 해월이 가 그렇게 벌컥 뛰어 들어 오자마자 나에게 권총을 겨누고……그래 그만 악하고 소리를 치면서 침대에 납작 엎디는 순간 탕하는 총소리에 침대에서 그만 방바닥으로 떨어졌어요 . —— 오선생이 뛰어들어온 것 까지는 알지만 그리고는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겠어요. —— 하고 오들오들 떨면서 설명을 하는 은몽의 말에

『하옇든 은몽씨는 신수가 좋습니다.』

하고 옆에 섰던 오상억이 은몽을 위로 하면서

『내가 뛰어 들어 온 것과 은몽씨가 침대에서 떨어진 것과 그리고 해월이 가 빨간 「만또」를 박쥐처럼 펄럭거리면서 들창 밖으로 뛰어나간 것이 말하자면 모두 똑같은 순간이었지요. 안개만 없었던들 ——』

『그래 남수씨는 종래……?』

하고 묻는 은몽의 말에 유불란은 그 비장한 얼굴을 두어 번 끄떡거릴뿐, 그의 모든 사색을 빼앗은 것은 남수의 수첩에 적혀 있는 「부부암의 비밀」이었다.

『하옇든 경찰서에 전화를 걸었으니까 곧 오겠지요.』

하고 침대위에 엎드려서 느껴 우는 정란의 어깨를 유불란은 다사롭게 어루만져 주었다.

『그 놈은……그 놈은 글쎄 우리 오빨 왜 죽이는거요?』

하는 원한에 찬 정란의 말에

『모두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 기왕 돌아가신 오빠를 울어보았자 소생시킬 수도 없는 일이니 진정 하세요. ——』

하는 유불란의 부드러운 음성.

이리하여 살인마 해월이가 연출한 제 이차 참극은 또 한개의 생명을 피로 물들였다는 가장 처참한 「에피로 — 그」와 함께 막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