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두석 재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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童話

망두석 재판

옛날 어느 시골에 아주 재판 잘하는 원님이 한 분 잇엇습니다. 어떠케 재판을 공평하게 잘 하는지 소문이 굉장해서 그가 맡은 골(郡) 이외에 다른 곧에서까지 재판하기 어려운 일은 모두 그에게로 가저 왓고 가저 오기만 하면 아무리 어려운 일이라도 턱—턱— 시원스럽게 처리하여 내군 하엿습니다. 그런데 한번은 짜장 어려운 일이 생겨서 그 원님도 쩔쩔 매여 똥을 싸기는커녕 방기도 안 나오게 속이 탈 일이 생겼습니다.

오월단오(五月端午) 명절이 가까워 오니까 시골마다 돌아다니며 팔려고 필목 장사 한 사람이 서울 가서 좋은 비단 수십 필을 사서 질머지고 시골로 나려오다가 비단 짐이 무겁기는 하고 더웁기는 하고 숨이 차니까 길까 잔듸밭 망두석(돌로 사람을 만들어 세운 것) 앞에 비단 짐을 나려놓고 그 앞에 앉어 쉬이다가 그만...... 하도 고단하야...... 꼬박 꼬박 졸앗습니다. —한참이나 졸다가 깜박 정신이 돌아 깨어 이러나 보니까 큰일 낫습니다. 등 뒤에 놓앗든 비단 짐이 감쪽같이 없어젓습니다.

이 비단 장사는 깜짝 놀래어 눈을 크게 뜨고 아무리 휘휘 두르며 찾어 보앗으나 인적 없는 시골 산길이라 지나가는 사람도 하나 없고 잇느니 소나무와 잔듸밭과 묻엄과 돌맹이로 깍가 세운 망두석 뿐이라 물어볼 곧도 없고 찾어 볼 수도 없엇습니다. 그래 그 비단 짐을 이곧 원님 보고 찾어 달라는 엉뚱한 송사엿습니다. 바람잡이도 분수가 잇지...... 텅텅 비인 산속에서 낮잠 자다가 잃어 버리고 와서 그것을 찾어 달라니 아무리 머리가 맑고 재판 잘하는 원이기로 그거야 찾어 주는 수가 잇겟습니까?

그러나 한 골의 원이 되어서 백성의 송사를 모른다 할 수도 없고 더구나 재판 잘하기로 이름난 자기가 이번에 그것을 찾어 주지 못하면 이름이 떠러지겟으니 아무리 생각하여도 못 찾어 주어서는 안 되겠는데 증거는커녕 아무 끝도 잡을 수 없어 참말로 원은 밥맛도 줄어지고— 속으로 몹시 끙끙 앓고 잇엇습니다.

『암만 해도 이번에는 꾀를 못 내나 보다』

『이번 송사야말로 너무 어처구니 없는 송사이니까 원님도 별 수가 없나 보이......』

백성들은 모히는 곧마다 그 소문이고 이아기하는 사람마다

『이번에는 정말 못 찾는다』

하엿습니다.

『귀신이나 하나님 같으면 알 수 잇을는지...... 그것을 어떠케 알어 낸단 말인가』

『그렇지 그래 찾어 달라는 놈이 밋친 놈이지......』

누구나 이번 송사만은 으례 못 찾는 것으로 인정하고 이렇게들 수근거렷습니다.

그러나 그러면 그럴수록 원님의 속은 바작바작 탓습니다. 이렇게 잠잠히 여러 날 잇을 수도 없을 뿐더러 백성들은 아주 못 찾는 줄 알고 락망하는 모양이니 한시바삐 도적을 잡을 도리를 하여야겟는데...... 하고 밤에도 잠을 이루지 못하엿습니다.

×

과연— 무슨 꾀를 생각하엿는지 여러 날 꼭 담을고 잇는 원님의 입에서 기어코 명령이 나렷습니다. 이렇게 엉터리 없는 송사에 어떤 명령이 나리는가 하고 일동은 귀를 기우리고 듯노라니까 천만뜻밖에

『그 비단을 잃어버릴 때 아무도 그 옆을 지나간 사람이 없고 다만 그 옆에 망두석이란 놈이 잇엇으니 필시 망두석의 조화인즉 그놈을 당장 잡어 오너라』

하는 고로 밑에 대령하고 잇든 사람들은 하도 어이가 없어서 어떤 사람은 픽픽 웃고 어떤 사람은 눈이 동그래젓습니다.

『사또님! 망두석은 산 사람이 아니라 돌맹이로 만들어 세운 것입니다』

하고 한 사람이 간신히 입을 열어 일깨웟것만 그래도

『잔말 말고 잡어오너라』

하고 호령하는지라 아무리 웃으운 명령이지만 하는 수 없이 라졸들이 우르르 몰려가서 그 비단장사가 비단 짐을 나려놓고 쉬엇다는 곧에 가서 거기 우뚝 서 잇는 망두석을 포승으로 칭칭 감어서 여러 사람이 굴리어 왔습니다.

『비단 도적이라고 망두석을 잡어 갓다지!』

『망두석을 잡어다 놓고 재판을 한다지!』

이런 소문이 왓작 퍼젓습니다. 그래 어떤 사람은 원님이 밋첫나 보다 하고 또는 무슨 게교를 부리나 보다 하고 쑥덕쑥덕 야단들이엇습니다.

『대관절 망두석이 말을 해야 재판을 하지!』

『그러게 말야 그 재판 볼만한 하겟네!』

『우리 구경 가세 처음 보는 일이니......』

『나도 가겟네!』

『나도 가지!』

『어서 가세!』

하고 왼 시골이 벌컥 뒤집혀 나도 나도 하고 늙으니 젊으니 할 것 없이 모다 망두석 재판을 구경한다고 모여들어서 와글와글 떠들엇습니다.

원님은 밖에 구경꾼이 가뜩 모여든 것을 보고 부하 한 사람을 불러서

『재판 구경을 하게 해 달라거든 저 많은 사람들 중에서 제일 돈 많고 점잖어 보이는 사람만 골라서 한 三十명만 들여 보내라』 하고 넌즛이 일럿습니다.

그 말대로 라졸들은 문을 꼭 지키고 서서 돈 많고 점잖은 사람만 三十명을 들여 주엇습니다. 몇백 명이나 되는지 다른 사람들은 들어 오지도 못하고 밖에서 와글와글 떠드는데 안에서는 재판이 시작되엇습니다.

돌맹이 망두석을 포승으로 묶은 채 마당에 엎어놓고 원님이 대청에서 호령호령 하엿습니다.

『네 이놈! 도적놈이 네 앞에 잇는 비단 짐을 집어가는 것을 못 보앗을 리 없으니 어떤 놈이 집어 갓는지 본 대로 말하여라 만일 바른 대로 말하지 않으면 네가 도적놈하고 공모를 하고 집어간 것이나 또는 네놈이 집어간 것으로 인정할 터이다. 어서 말해』

그러나 돌맹이가 말을 할 리가 잇습니까.

『어서 말해 본 대로 말해』라 졸랏습니다.

구경꾼들이 손으로 입을 가리고 터저 나오는 웃음을 억지로 막엇습니다.

『어— 저놈이 그래도 말을 안 하는 것을 보니 제가 집어 간 모양이다. 저놈이 바른 대로 말할 때까지 볼기를 따려라』

라졸들은 터저 나오는 웃음을 억지로 참으면서 곤장을 들어 망두석의 볼기를 때렷습니다.

『그놈이 그러케 마저도 말을 안 하니 더 아프게 단단히 따려라』

명령이 나리니까 라졸들은 힘을 다하야 몹시 따렷습니다. 그러나 소용 잇습니까. 볼기채만 딱! 하고 부러저서 두 토막이 낫습니다.

어찌도 보기에 웃웁든지 구경하고 잇든 사람들이 허리를 붇들고 깔깔깔 웃엇습니다.

그 웃음소리를 듣는 원님은 짐즛 놀라는 체하며 그곧을 바라보더니 두 눈을 부라리고 무서운 소리로

『응? 아니 저놈들이 어떤 놈들인데 감히 이 마당에를 들어와 잇느냐』

하고 호령을 하엿습니다. 구경꾼들은 뜻밖에 벼락을 맞나 웃음도 다 들어가고 움칫하며 얼굴들이 벍—애서 어쩔 줄을 몰랏습니다.

『저놈들을 모다 묵거서 갓다가 두어라』

호령이 추상같이 나리니 큰일 낫습니다. 들어오지 말라는 것을 억지로 뿌리치고 들어온 것도 아니건만 이제 원님이 호령호령하니 별 수 없이 갇히겟는지라 간신히 라졸을 시켜서

『죽을 죄로 잘못 하엿습니다 그 대신 돈으로 벌금을 얼마던지 받힐 터이니 갇우는 것만은 용서하여 줍시사고 엿주어 달라』

하엿습니다. 그랫더니 원님은

『그러면 너이가 모르고 들어왓다 한즉 이번에는 특별히 용서를 할 터이니 그 대신 지금 곳 돌아가서 비단 옷감 한 필씩만 사다가 받혀라』

하엿습니다.

『아무 말슴인들 거역할 수 잇사오리까만 이 시골에서 지금 당장 비단 한 필을 살곧이 어대 잇습니까?』

하고 사정사정하니까 원님은

『응 못 사오겠다 그러면 못 사올 놈만 그냥 잡어 갇워라』

하고 여전히 호령이 대단한 고로 다시 아무 간청도 못하고 그냥들 뿔뿔이 헤저 나갓습니다.

재판은 그만 끝이고 애매한 망두석은 도로 광속에 갖다 두엇습니다. 원님은 속으로 『인제는 되엇다』 하고 몇을 만에 처음으로 얼굴에 웃음을 띄엇습니다.

잠깐 지난 후에 구경꾼들이 명령대로 제각기 비단 한 필씩을 사 가지고 와서 원님께 받혓습니다. 이상하게도 그 많은 비단이 모조리 꼭 같은 종류의 것이엇습니다.

원님은 곳 도적마진 비단 장사를 불러서 그 비단을 내어 주엇습니다.

『이 비단이 네가 잃은 그 비단이 확실하지!』

『녜 녜 분명히 제가 잃어버린 그 비단이올시다』

하면서 비단 장사는 자기 물건을 도로 찾어 주는 원님의 재조를 신통해 하엿습니다.

『그런데 대관절 수효는 맛는가 헤어 보아라』

비단 장사는 그 비단을 두서너 번 헤어 보고

『수효는 두 필이 모자랍니다만 두 필쯤 못 찾은 것은 괜찬습니다』

하엿습니다.

『아니 아니 그러면 남저지두 마저 찾아야지!』

원님은 즉시

『그대들은 이 비단을 어대서 사 왓는가』 하고 구경꾼들을 바라 보앗습니다.

그중에 한 사람이 허리를 굽실하며

『이 시골에는 아시다 싶이 비단 파는 곧이 없어서 걱정 하엿더니 마츰 저 남문 밖 여각 집에 비단 파는 사람이 왓다 하기에 거기 가서 사 가지고 왓습니다』

하고 고해 받혓습니다.

『으응 그래 그러면 다른 사람들도 모다 거기서 사 왓지......』

『녜 지금 말슴대로 남문 밖 여각 집 총각에게서 사 왓습니다』

원님은 곳 그곧으로 라졸을 보내어 그 총각을 잡어 왓습니다.

『이놈 네가 일헤 전에 아무곧 망두석 앞에서 비단 짐을 훔처 가지고 잇다가 오늘 팔앗지...... 그리고 아즉도 네 놈이 두 필을 가지고 잇지』

빤히 알고 뭇는 듯한 이 말에 총각놈도 속힐 수 없음을 알엇든지 모다 바른 대로 자백하고 남어지 두 필까지 내어 놓앗습니다.

×

원님은 처음부터 비단을 도적해간 놈이 비단을 팔 곧이 없어서 주체 못하고 잇을 것을 짐작하고 그러케 꾀를 내어 여러 사람에게 당장 비단 벌금을 받히라면 어떤 놈이든지 도적놈이 『수가 낫다』 하고 비단을 팔 터이니 그놈을 잡으면 된다고 금치고 잇엇든 것입니다.

망두석을 묵거온 것도 물론 구경꾼을 모아들이는 한 수단에 지나지 않엇든 것입니다. 그래 비단은 비단대로 고대로 찾아 주고 또 총각 도적은 옥에 가두고 총각이 받은 돈은 도로 뺏어서 비단 사온 구경꾼들에게 난호아 주엇습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