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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과수 30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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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평생을 통하여 병 한번 변변하게 앓아보지 못 한 몸이라 1년에 한 번이나 2년에 한 번 감기쯤 앓았다기로서니 이틀 이상을 병석에 누워 본 일이 없었던만큼 병석으로 로만스 같은 것은 있을 까닭이 없읍니다.

그러다가 지난 초여름에 감기로 이틀 동안 앓고난 끝에 다른 병이 함께 생겨 수십일 동안이나 병석에 누워 지냈고 그러는 동안에 심심하기 냉수 같은 것이나마 이야기거리가 한두 가지 생기고보니 내 몸을 돌보아 생각한다면 불행이라고도 하겠지마는 '신가정'(新家庭)을 위해서는 다행한 일일는지도 모르겠읍니다.

감기로 드러눕기는 5월 초1일 사흘째 되던 날 아침에는 일어나서 학교에도 가 보았지마는 아무래도 몸과 기분이 평시와 달랐던 것입니다. 집안에 의사가 네 분이나 되것만도 별로 의사의 진찰을 받아본 일이 없던 몸이 이 날만은 집안 의사들을 다 제쳐놓고 내과를 전문하는 다른 의사의 집으로 발길을 들여 놓지 않을 수 없었읍니다.

늑막염! 이 말은 내 귀를, 내 마음을 적지 않게 놀라게 했습니다.

늑막염쯤으로야 설마 허무하게 죽기까지야 하랴─ 하는 생각은 가졌지마는 내 병이 사실로 늑막염이라면 하루 이틀에 졸연히 일어나지 못할 것을 앎에 몹시도 귀찮게 생각되었읍니다. 할 수 없이 그 날 저녁때부터는 제법 중병 환자처럼 약병도 머리맡에 놓고 체온기며 찜질할 물 주머니 같은 것도 준비를 한 다음에 넉넉잡고 한 1주일 앓아 볼 작정으로 배포를 차리고 누웠읍니다.

바로 그 다음 다음날 아침입니다. 난데없이 등기 '가끼도매' 우편 한장이 날라 왔읍니다. 이상히 생각하고 급히 떼어본 즉 그것은 먼 곳에 있는 나의 맏조카 한테서 내 생을 축하하는 의미로 보내어 준 돈표였던 것입니다. 생일(?) 가만히 생각해 보니 그 날은 과연 내 생일임에 틀림이 없읍니다. 십여 년 동안을 두고 객지로 떠돌아 다닌 까닭에 나는 이 몇 해 동안에 한 번도 생일을 기억해 본 적이 없읍니다. 사실 이 날도 내 자신은 감쪽같이 잊어버리고 있었던 것인데 의외에 이 편지를 받고 보니 마치 신비스런 음악을 들을 때와 같이 내 가슴 속에는 알 수 없는 무엇이 간질간질하게 턱밑까지 기어올랐다가 다시 살금살금 가라앉는 것을 깨달았읍니다. 제 생일도 모르고 지난 것을 원통하거나 처량하게 생각한 것은 아닙니다마는 이날을 잊어버리지 않고 기억해 두었다가 멀리서 축하 편지와 돈까지 보내어 준 조카의 사랑과 정성에 나는 눈물지우며 감격했던 것입니다. 감격 끝에 부질없는 슬픈 생각까지 떠올랐읍니다마는 그것을 여기에 썼다가 만일 동정해 주시는 분이 계시다면 내게는 또 다시 큰 걱정거리가 되겠기에 그때 잠깐 떠올랐던 그 슬픔이란 것은 까서 말씀하지 않으렵니다.

그 다음날에는 학교에 통지를 하여 불가불 며칠동안 결근을 해야겠다는 사유를 말했읍니다. 자 ─ 이 날부터 입니다. 내가 파인애플 통에 난리를 만난 것이 ─ 8,90명 학생들에게 내가 늑막염으로 앓는다는 것이 알리어지자 매일같이 4,5명, 혹은 10여명의 학생이 문병 왔읍니다. 1주일 예정으로 드러누웠던 것이 2주일이 지나고 다시 병원에 입원까지 하게 되었으니 화란춘성하고 만화방창하던 이 긴긴 여름날들을 홀로 쓸쓸히 병석에 누워지날 적에 가끔가끔 찾아와 주는 학생들이야말로 나에게는 실로 큰 위안이었읍니다. 그러나 여기에 한 가지 곤란한 것이 있었읍니다. 허구한 날 뒤를 맞대어 찾아오다시피 하는 그 많은 학생들이 마치 '클라스 회'에서 결의나 한 듯이 한결같이 파이애플 한 통씩 사 가지고 옵니다그려. 한두 통쯤은 좋고 10여 통까지도 좋았읍니다마는 20통 30통 ─ 나날이 늘어가니 무슨 수로 이것을 다 처치하겠읍니까? 제 몸이 성하다 치고서라도 하루 한 통씩이면 2~3일 후에는 물릴 것을 자리에 누워서 앓는 놈이 모과수를 먹으면 몇 통이나 먹겠읍니까.

그렇다고 미리 모과수는 사 가지고 오지 말라는 통지를 띄울 수도 없지 않아요? 마치 모과수는 말고 다른 것이나 사 가지고 오라는 것 같아서……. 그러나 하여튼 한 달 동안에 그 많던 모과수를 별로 남의 힘을 빌지도 않고 나 혼자서 모조리 처치해 버린 것을 생각하면 지금도 이에서 달콤한 신물이 고여 오릅니다.

병석에 누운 지 2주일이 지난 후, 병원에 입원을 하고 나니까 그날 밤에는 어떤 젊은 목사 한 분이 내 옆의 병상에 나를 동무하여 찾아와서 누웠읍니다. 자기 손으로 자기 옷을 훌훌 벗고 싱글싱글 웃은 소리를 해 가며 드러눕는 폼이 아무리 보아도 병자같지는 않았읍니다. 사연을 알고 보니 이 목사님은 (미국을 가려는 것도 아니었건만) 무슨 생각이 있었든지 12지장층을 떼이러 왔던 것입니다.

12지장충이 얼마나 독한 놈인지 알고 싶어하는 분은 현미경을 들여다보실 것 없이 12지장충 약을 한두개 잡수어 보시면 잘 아실 것입니다. 약을 먹기 위하여 일부러 저녁을 굶고 온 목사님은 설사약을 자시고 몇 시간 후에 12지장충 약을 서너 알 자신 모양인데 그 이튿날 새벽쯤 되더니 일장의 희활극을 연출하십니다. 그 분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마는 옆에 누워 있는 내 눈에는 이것이 희극이 아니라면 허리를 끊는 연극이라고 말하고 싶었습니다. 4,5시간 전까지도 멀쩡하던 양반이 아이고 사람 죽는다고 야단야단이지요. 변소 출입이 마치 풀방구리에 쥐 드나들듯 잦아지더니만 나중에는 힘 없는 다리로 출입하는 것 귀찮다는 듯이 옆에야 누가 있거나 말거나 드러누운 그 자리에서 좍좍 입니다그려.

그 이튿날은 외 종일 정신을 못 차리시고 누워 계시더니 저녁 때에는 그의 부인의 손에 부축이 되어가지고 바로 그 전날 밤 입원하던 때에 보던 사람과는 아주 딴 사람이 되어가지고 간신히 퇴원만은 하셨읍니다. 그 악착스런 12지장충 떼려다가 사람잡을 뻔 했다고 죽는 소리를 하며 나갔는데 나중에 들으니까 약기운이 그래도 부족해서 12지장충은 한 마리도 나오지 않았다고 하니 이분만은 행여 미국가실 생각은 마시라고 권하고 싶었읍니다. 병원에 7,8일 드러누워 있는 동안은 왜 그리도 쓸쓸했는지요. 거기다가 식후마다 약을 세가지씩 주는데 그 중에도 한 가지 물 약은 어찌도 이상야릇한지 시고, 떫고, 쓰고, 찝질하고 또 이렇고 저렇고 ─두말 할 것 없이 나는 이 약을 마실때마다 어떻게나 상이 찌푸려졌던지 요새도 그 생각을 하면 입 속에 군침이 빙빙 돕니다마는 2,3일만 더 참으면 아주 가끔 완치될 것을 이 약 먹기 귀찮아서 너무 일찌기 퇴원한 죄로 반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약봉이 내 주머니를 떠나지 않게된 것 생각하면 지긋지긋 합니다. 그러나 병상에 누워 있던 수십일 동안에 당하던 일 듣고 본 일을 생각하면 요절할 것도 한 두 가지가 아닙니다마는 이것을 여기에다 쓴다면 여러분 중에 행여나 그 재미스러운 경험을 해보시랴는 의용병(義勇兵) 환자가 나서실 염려도 없지 않으므로 웬만큼한 정도에서 붓을 멈추어 버리고 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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