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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숨

위키문헌 ― 우리 모두의 도서관.

나는 그가 죽은 줄로만 알았다. 그가 이상한 병에 걸리기는 다섯 달 전쯤이다. 처음에는 입맛이 없어져서 음식은 못 먹으면서도 배는 차차 불러지고, 배만 불러질 뿐 아니라, 온몸이 부으며 그의 얼굴은 바늘 끝으로 꼭 찌르면 물이라도 서너 그릇 쏟아질 것같이 누렇게 되었다. 그의 말을 들으면 배도 그 이상으로 되었다 한다. 그렇다고 몸이 어디가 아프냐 하면 그렇지 않고, 다만 어지럽고 때때로 구역이 날 뿐이다.

그는 S의원에 다니면서 약을 먹었다. 그러나 병은 조금도 낫지 않고 점점 더해 갈 뿐이다. 마침내 그는 S의원에 입원하였다.

나는 매일 그를 찾아가보았다. 그는 언제든지 안락의자에 걸터앉아 있다가 내가 가면 기뻐서 맞고 곧 담배를 청한다. 예수교 병원이라 입원 환자의 담배 먹는 것을 금하므로 그는 내가 가야 담배를 먹는다. 간호부는 그와 서로 아는 처지이므로 다만 씩 웃고 볼 따름이다. 그의 뛰노는 성질은 병원 안에 가만히 갇혀 있는 생활이 무한 견디기 힘든 것 같았다.

그러는 동안, 나는, 무슨 일로 여행을 좀 하게 되어 그 준비로 이삼 일 동안 병원에 못 갔다가, 이삼 일 뒤에 작별을 하러 가니까 그의 병이 격변하여 면회 사절이라 한다. 원장은 마지막 그에게 죽음을 선고하였단 말을 들었다. 나는 그만 집으로 돌아왔다.

‘그가 죽는다. 그 활기가 목 안에 차고 남아서 그 주위의 대기에까지 활기를 휘날리던 그가 죽는다. 믿을 수 없다, 사람의 목숨이란…….’ 나와 그와의 교제는, 때는 없었다. 그러나 깊었다. 나는 곤충학에 대하여 연구를 하고 있을 때에, 그는 시에 대한 천재로서, 그의 시는 때때로 신문 이나 잡지상에서 볼 수가 있었다. 그렇지만 그와 나 사이에는 공통점이 있었다. 자연을 끝까지 개척하여 우리 인생을 정력뿐으로 된 세계를 만들어보겠다는 과학자인 나와, 참 자기의 모양을 표현하고야 말겠다는 예술가인 그 와는, 참 자기를 표현한다하는 데 공통점이 있었다. 나와 그의 교제의 때는 없었으되, 깊은 것은 이와 같이 서로 주지상(主旨上)의 공통점을 토정한 데 말미암았으리라. 그가 죽음을 선고받았다는 말을 들을 때에 나의 놀란 것은 ‘사회를 위하여, 아까운 재자(才子)를 하나 잃는 것이 슬프므로’라고 하고는 싶지만, 그 실로는 이만큼 서로 통정한 벗(나에게는 그 M만큼 서로 이해하는 벗이 또다시 없다)을 잃어버리는 것이 나 자신을 위하여 싫었다.

이튿날, 나는 마침내 되게 앓는 벗을 버려두고 오래 벼르던 여행을 강원도 넓은 평원으로 떠났다. 나의 여행의 목적은 곤충채집에 있다.

포충망과 독호를(毒壺) 가지고 벌판을 이리저리 두 달 동안을 돌아다닐 동안은오절류(隱五節類), 호접류(胡蝶類), 모시류(毛翅類) 등에 속할 진귀한 벌레를 많이 얻었다. 이로 말미암아 죽어가는 대로 M을 얼마 동안 버려두고 잊고 있었다.

여행을 끝내고 돌아온 때에 내 책상에는 여러 장 편지가 있는 가운데 M의 편지도 있었다.

나는 죽는다. 원장까지 할 수 없다 한다. 나는 살아 있는 모든 사람을 미워한다. 그들에게 하루바삐 나와 같은 경우가 이르기를 바란다. 군에게도……. 그러나, 나는, 죽기 전에 군에게 이 대필 편지로써라도 작별은 안 할 수가 없다. 군을, ‘살아 있는 사람’으로서 미워는 하지만 동시에 사랑하는 벗으로서는 죽기까지 잊을 수가 없다. 나의 이렇게 편벽된 마음을 군은 용서할 줄 믿는다.

이와 같은 뜻의 글이 M의 글씨가 아닌 글로써 병원용전(病院用箋)에 씌어 있다.

개를 끝없이 사랑하던 애가, 개가 박살당한 뒤에 깨닫는 것 같은 외로움을 맛보면서, 나는, 이 편지를 쓰던 당시의 일을 머릿속에 그려보았다.

M은 뚱뚱 부은 몸집을 억지로 한 팔로의지하고, 반만큼 일어나서, 대필인에게 구슬을 한다. 대필인은 ‘살아 있는 모든 사람을 미워한다’는 조목에 와서는, 그런 구(句)는 그만두자고 한다. M은 낯을 찡그리고 목쉰 소리로 고함친다. 너는 이렇게 죽는 사람의 마지막을 무시하느냐고. 대필인은 놀라 서 할 수 없이 쓴다. M은 맥난 몸을 덥석 병상 위에 도로 놓은 뒤에 눈을 감는다. 이제 곧 이를 죽음은 생각 안 나고, 그에게는 삶에 대한 끝없는 집착만 깨닫는다.

‘나는 왜 죽느냐! 모든 사람은, 사람뿐 아니라 모든 동물은, 식물은 심지어, 뫼, 시내, 또는 바위까지라도 살아 있는데, 나는 왜 죽느냐. 전차가 다닌다. 에잇! 골난다. 모두 다 이 세상에 죽어버려라. 없어져라, 나와 함께 없어져버려라!”

끝까지 흥분된 그는, 벌떡 일어나 앉는다. 누렇게 부은 얼굴에는, 그대로 남아 있던 피가 모여서 새빨갛게 충혈이 된다.

‘아, M은 죽었다.’ 벗을 생각하는 정인지,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인지, 나의 눈에는 뜨거운 눈물이 떠올랐다.

남보다 곱이나 삶에 집착성에 있던 M은, 남보다 곱 죽음을 싫어하였을 것은 정한 일이다. 그런 M이, 자기에게 죽음이 이르렀을 때에 온 천하여 없어져버리라고 고함친 것이 무슨 이상한 일일까?

나는 곧 전화로써 S의원에 M의 무덤을 물어보았다. 벗의 혼을 위로하려는 정보다도, 나의 양심에 M에 대한 반정(反情)을 시인시키기 위해서 그의 무덤 위에 한 잔의 술이라도 붓지 않을 수 없었다. 병원측의 회답은 요령을 얻을 수가 없다. M이라 하는 사람이 입원하였지만 완쾌하여 퇴원하였다 한다. 이름 같은 딴 사람인가 하여 다시 물어보았지만 자기는 아직 견습 간호원이니까 잘 모른다 하므로, 원장을 찾으니, 원장은 여행 중이요, 대진(代 診)은 병중(病中)이요, S라 하는 M의 간호부는 이제 그만두었다 한다.

나는 교자에 돌아서 앉아서, 하하하하 웃기 시작하였다.

“M이 살았어! M이 죽고도 살았어! 죽음은 즉 삶의 밑이란 말인가? 하하하 하”

그렁저렁 한 달이 지나서, 나흘 전 일이다.

한 달 동안을, 생각하여도 평안북도 이상으로는 생각 안 나는 M의 고향을 또 생각하며 있을 때에, 사환애가 들어와서, 꼭 M 같은 사람이 찾아왔다 한다.

‘M은 안 죽었다! 그러나, 이런 일이 능히 있을까? 원장이 내던진 환자를 누가 살렸을까? 그가 살아 있다! 견습 간호원의 전화, M이 죽으면 신문에도 났을 터인데, 나는 못 봤다. 그는 살았다.’ 한 초 동안에, 이만큼 정돈된 생각이 머리에 지나가며, 흩어진 머리를 본능적으로 거스르며, 나는 문으로 뛰어나갔다. 문에 이르렀을 때에, M의 모양은 안 보였지만, M에게서 난 듯한 활기가, 그 근처 대기 중에서 맛볼 수가 있었다. 나는 문을 박차고 뛰어나가서, 마주치는 사람을 붙들었다.

“왔구만. 왔구만. 죽지 않구, 튼튼해서……”

“그만, 안 죽었네.”

M의 목소리다. 나는 눈을 들어 M을 보았다. ‘언제 병을 앓았나?’ 하는 듯한 혈기가 가득 찬 그의 얼굴은 정다운 웃음을 띠고 나를 들여다본다.

“자, 들어가세.”

나는 그를, 안다시피 하여 응접실로 들어와서 함께 앉았다. 나는 물었다.

“그런데, 웬일이야?”

그는 물끄러미 보고 있다. 나는 그 ‘웬일’을 설명하지 않을 수 없었다.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 다니니…….”

“사람의 목숨 한 개에 금 1전 5리의 정가표가 붙어야겠데.”

이번은 내가 물끄러미, 그를 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는 설명하였다.

“이 감상 일기를 보면 알겠지. 어떻든 난 다시 살았네. 한 달 전에 퇴원해서, 한 달 동안을 유쾌한 여행을 하구. 지금은 전에 곱 되는 왕성한 원기를 회복해가지구, 자네 앞에 나타나지 않았나? 암만 왕성한대두 정가 금 1전 5리지만…….”

그는, 그의 특색인 악필로써 원고용지에 되는 대로 쓴 원고를 한 줌 내놓는다.

나는, 그 ‘1전 5리’의 이유를 빨리 알고 싶어서 원고를 빼앗는 듯이 하여 읽기 시작하였다.


나와 목숨

─ M의 감상 일기


조각글ㆍ1


생각다 못하여, 친척들의 친고를 들어서, 나는, 그리 아프지는 않되, 불유쾌하게 배가 저릿저릿하고 구역이 연하여 나오는 병의 몸을, 억지로 인력거에 싣고, 우리의 눈에는 현세 지옥으로 비치는 병원으로 입원차로 향하였다.

인력거의 검은 바퀴가 돌을 치고 들썩들썩 울릴 때마다, 그 불유쾌한, 오히려 극도로 아픈 편이 시원할 만한 배의 경련이 일어나며, 구역이 목에까지 나와서 걸려서 돌아간다.

하늘은, 망원경으로 내다보는 것같이 조그맣고 그 빛은 송화빛 이상으로 노랗고, 잿빛 이상으로 어둡다. 끝없이 노란 것 같기도 하고, 또는 곧 머리 위에서 누른 것 같기도 하다. 그리고, 거기는, 샛노란, 괴상한 구름이 속력을 역(力)하여서 인력거와 경주하자는 듯이 남편으로 달아난다. 샛노란 해는, 꼭 아마 맞은편에 정면으로 보아도 눈이 시지 않도록 어둡게 걸려 있다. 구름은 약간 있지만, 흐린 봄날대고는 맑은 셈이다. 그러나, 내 눈에는 겨울날보다도 더 어두웠다.

해도 어둡거니와, 그보다 더 어두운 것은 나의 머리이다. 별로 어둡고 무겁고, 내 살이라고 똑똑히 알지 못하리만큼, 온전히, 나의 몸과는 몰교섭인 살덩이가 염치없이 몸집 위에 올라앉아 있고, 몸집과 머리를 연한 그 이상 한 무엇인지 모를 흐늘흐늘하는 앞으로 늘어진 것에게서는, 그치치 않고 구역이 자꾸 난다. 구역이 나면서도 그것이 토하여지면 오히려 낫겠지만, 이 구역은 그것은 영문 ……, 모를 것으로서, 몸속에서만나고, 침은 뱉으면 몇 초가 못 되어 입으로 다시 차고, 또 뱉으면 또다시 차고 하며, 가슴에서 일어난 구역을, 꿀꺼덕 참으면, 그 구역은 배로 내려가서 한참 배에서 돌아가 다가, 돌아서서 머리로 가서는, 모든 감각을 없이 하며, 도로 돌아서서 손가락으로 가서는 거게 경련을 일으킨다.

‘죽어라.’ 나는 저주한 뒤에 눈을 감았다. 눈을 감아서 밖에 감각이 적어지니, 죽게 불유쾌하던 그 경련과 구역이 아픔으로 변하고 만다. 경련보담은 아픔이 어 찌 나은지 모르겠다. 숨을 편히 쉴 수가 있다.

‘이것이다! 사람이란, 눈을 감은 뒤에야 처음으로 낙을 얻는다.’ 나로서도 뜻을 모를 생각을 한 뒤에, 기껏, 먼지 많은 공기를 들이마셨다.

인력거는, 경종을 연하여 울리며, 험한 길의 돌을 차고 올라뛰면서 멀리서천축까지라도 가는지, 한없이 한없이 달아난다. 11시 반에 인력거에 올라서 아직 오포 소리를 못 들었지만, 내게는, 하루를 지나서 그 이튿날 저녁 이라도 된 것 같다. 시간을 좀 알고 싶었지만, 내 손에서 내 포켓까지는 몇 세기의 상거와 몇 백 리의 거리가 있으므로 못하였다.

참다 못하여 눈을 떴다.

경종에 놀라서 후덕덕후덕덕 가로 뛰는 사람들은, 마치, 우리가 흔히 상상하는 바 지옥의 요괴들이 염라대왕 앞에서 춤을 출 때의 뛰는 모양, 그것이다.

“재미있다.”

중얼거렸다.

무엇인지, 하늘의 요괴들이 모두 내려와서 나를 간지럼시키는 것 같다. 온 몸에 참지 못할 경련이 일어나고, 땀구멍마다 구역이 난다. 나는 칼이라도 하나 있으면 인력거에서 뛰어내려서 여남은 사람 찔러 죽이지 않고는 못 견디리만큼 긴장되었다.

내가 이 병(의사도 모르는)에 들리기는 두 달 전이다. 첫번에는 음식이 먹기 싫었다. 배는, 언제든지 불러 있었다. 자양분이 많다는 빵을 먹어보았지만, 그것도, 곧 도로 입으로 나왔다. 배는, 애 밴 계집애같이, 차차 불러오다가 며칠 지나서는, 그것이, 마치, 잘 익은 앵두와 같이 새빨갛고 말쑥하게 되어서, 바늘로 꼭 찌르면, 눈에 눈물 맺히듯 앵즙이라도 맺힐 듯이 되 고, 그와 함께 그 반대로 얼굴에는, 눈에 충혈된밖에는 핏기운 없이 노랗다 못하여 파랗게까지 되었다. 머리는 차차 무거워져서, 마지막에는 온 체중이 머리로 모였다가, 지금은, 머리와 몸집은 온전한 두 개체가 되었다. 나는 때때로 머리를 어디다가 처치할꼬 생각하였다.

정신은 하나도 없어졌다. 이전 공상에 나타났던 일과 실재와 일을 막 섞어서, 나는, 참 행복아의 즐거움도 누려보고 어떤 때는 그와 반대로 끝없는 비애로 속을 썩여 본 일도 있다. 역사상의 유명한 사람 몇이와 우교(友交)까지 맺어본 일이 있었다. 때때로 현실의 병중인 내가 생각될 때는, 머리에서부터 냉수를 끼얹은 것 같은 소름과, 어떻다 형용할 수 없는 악마적 무서움이 마음을 깨뜨린다.

진단한 의사는, 누구든, 아무 표정 없이 돌아서고, 약이라고 주는 것은, 쓸데없는 물과 가루이다.

입원. 마침내, 나는 면할 수 없이 여기 마주치게 되었다.

망원경으로 보는 것같이 조그맣고 샛노란 하늘은 흔들리고, 죽음의 이상하게 범벅된 거리는, 그 하늘 아래서 아니 하늘 위에서…… 어딘지 모를 데서 목마른 소리로 지껄이고 있다.

구역을 참다 못하여 눈을 또 감았다. 인력거는 그냥 한없이 달아난다. 눈 가죽을 꿰고, 햇빛은 주홍빛이 되어 피곤한 시신경을 지나서, 목을 늘이고 있는 뇌에 가서, 싫다는 뇌를 잡아가지고 희롱을 한다.

오포의 쾅하는 소리를 들으며 눈을 뜨니, 인력거는 채를 놓으며, 눈앞에는, S의원의 시뻘건 지옥이 두 손을 포켓에 넣고 보기 싫은 웃음을 웃고 있다.

나는 흡력으로 말미암아, 스르륵 병원 안에 빨려들어갔다.


조각글ㆍ2


마치 지옥이다. 처참 산비(酸鼻), 어떻다고 형용할 수가 없다.

“우, 우, 우…….”

외마디의 신음하는 소리.

“아유, 아유, 아유…….”

단말마의 부르짖음.

시끄러운 전차 소리도 없어지고, 맞은편에서 생각나는 듯이 때때로 울리는 기차의 고동 소리만 들릴 때에, 아래, 위, 곁방, 할 것 없이 10리 사방에서 울려오는 듯한 귀곡성. 아아, 이 지옥이 아니고 무엇이냐, 전갈의 공격을 받는 병인들의 부르짖음이 아니고 무엇이냐. 무섭다든 어떻다든 형용할 수 가 없다. 떨린다. 맹렬히 달아나는 기차의 떨리는 투다.

‘그렇다, 나는 달아난다.’ 나는 생각하였다.

죽음을 향하고 맹렬히 ‘달아난다. 힘껏 뛰어라. 그러다가 악마를 만나거 든? 때려라. 악마는 푸른빛이다, 네 붉은빛으로 그 푸른빛을 지워내려라.

그러면 자줏빛 된다. 자줏빛 불꽃이 된다.’

“아이, 사람 살류…….”

가까운 어느 방에선가 고함친다.

“바보. 자줏빛 불꽃으로 싸워라!”

“후…….”

그 사람은 또 소리 지른다.

‘담배가 있었것다.’ 나는 벌떡 일어나서, 자리옷째로 침대에서 내렸다. 밖에서 들어오는 반사 빛으로 침대 자리 한편 귀를 들치고 아까 먹다가 감추어둔 담배를 꺼내 붙여 물고, 안락의자에 가서 걸터앉았다. 담배는 맛있는 것이다. 담배를 위생 에 해롭다 어떻다 하는 의사들은 바보다. 그런 자들은 위생이 무엇인지를 분변하지 못하는데 천하 대바보다. 위생에는, 생리학상의 위생과 심리학상의 위생과 두 가지가 있다. 정신상으로써 몸의 건강을 보전하는 법과 직접 육체상의 위생으로써 몸의 건강을 보전하는 것과 두 가지가 있다. 담배는 정신적 위생에 드는 그 대표자일 수밖에 없다.

나는 폐로 기껏 들이쉬었던 담뱃내를 코로, 입으로, 뺨의 고즈넉함을 향하여 내다뿜었다. 그것에 놀란 듯이 기적 소리가 한번 날카롭게 난다.

누군지 큰소리로 하품을 한다. 목숨의 뿌리까지 토하는 하품이다. 즉 거기 연하여 무서운 소리가 귀를 쳤다.

“아, 야, 아, 아, 아, 아유 죽겠다. 후…….”

무서운 물건이, 눈에 머리에 떠오른다, 머리 쪼개진 사람이 침대 위에 누워 있다. 얼굴은, 왼편 뺨께는 모두 피가 적셔 시꺼멓게 되어있다. 머리에서 이마에 걸쳐서 붕대를 하고, 그 아래 시커먼 살 가운데 새빨갛게 된 눈만 반짝반짝한다. 표정 같은 것은 전연 없고, 다만 입을 반만큼 벌리고 있을 따름이다. 나는 빠져 없어졌다. 소리를 낼 때도입은 못 움직인다. 혀만 끓는 기름같이 뛰놀 따름이다. 아픔은 바늘을 수만 개 꽂은 모자를 뇌에 씌우는 것 같은 아픔이다.

우르륵 몸이 떨린다.

그 곁 침대에는 팔을 자른 사람이, 붕대 속에 감춘 조그마한 팔을 보이지 않을 정도로 움직이고 있다. 또 곁에는 다리를 자른 사람이 있다. 또 그 곁에는 배 짼 사람이 있다. 형형색색의 부르짖음이 거기서, 생과 산 사람을 저주하고 있다.

마치 무간지옥의 축소도다, 아니 확대도다.

“죽어라!”

큰 소리로 고함쳤다.

“죽겠다…….”

누가 거기 대답같이 부르짖는다.

‘그렇지만, 죽음이란 무엇인가?’ 나는 생각하였다.

‘죽음은 갈색이다. 그렇지만 그 이상으로는? 갈색이다. 갈색이다.’ 알 수 없다. 나의 머리가 대단히 나쁘게 된 것을 마음껏 깨달았다.

‘죽음은 갈색이다. 그리구…….”

더 모르게 된다.

“아이 죽겠구나, 죽겠구나.”

꽤 멀리서 조그마한 소리가 들린다.

즉, 대단히 잔인한 일을 해보고 싶은, 막지 못할 불길이 일어났다.

‘죽여줄라, 기다려라. 그편이 너희들에게는 오히려 편하리라.’ 펜나이프가, 가지고 온 원고용지 틈에 있는 것을 생각하고, 나는 안락의자 에서 휘들휘들 일어섰다.

아직껏 흐릿하니 보이던, 갈색 기둥과 흰 석회벽이, 시커먼 아니 시퍼런, 끝없는 넓은 대기로 변할 때에 나는 생각하였다.

‘넘어진다.’ 그 생각이 머리에 채 인상되기 전에, 눈앞에 번쩍하면서 나는 쾅, 그 자리에 넘어졌다.


조각글ㆍ3


아직까지 똑똑히 기억한다.

입원한 지 열이레째 되는 밤이다.

나는, 곤충을 만지고 있는 W를 걸핏 보면서 잠이 들었다.

아마 새벽 5시쯤 되었겠지, ‘형님, 형님’ 부르는 나의 아우의 소리를 들었다. 집은 입원하기 전에 내가 있던 사주인(私主人)이지만, 저편 방에 동 경 있을 아우도 있고, 고향 있을 어머니도 있는 모양이다.

나는 곧 ‘왜?’ 하고 대답하였다.

그 뒤에는 아무 소리 없다.

한참 기다렸다.

또, ‘형님 형님’ 하는 소리.

‘왜?’ 나는 또 대답하였다.

한참 기다렸지만, 또 아무 소리 없다.

나는, 벌떡 일어서서 곁방문을 탁 열었다. 거기는 어머니도 없고, 아우도 없다. 뿐만 아니라 세간이라고는 하나도 없고, 텅텅 빈 방에 전둥빛만 맑게 빛난다.

나는, 꼿꼿이 섰다. 온몸에 소름이 쪽 끼친다.

이삼 초 동안 이렇게 서 있던 나는 자리에 누으려고, 빨리 돌아섰다.

그때에, 아무것도 없던 저 모퉁이에 이상한 괴물이 나타난다.

갈색의 악마다. 뺨과 입 좌우편은 아래도 늘어지고, 눈은, 멀거니 정기 없고, 그러나, 그 속에는 바늘을 감춘 듯한 날카로움이 있다.

‘갈색이다. 갈색이다.’ 나는 속으로 부르짖었다.

그런즉, 그 악마는, 목쉰 소리로 ‘하하하하’ 웃기 시작하였다. 나는, 갑자기 담대하게 되어서 그에게 물었다.

“무얼 하러 왔느냐?”

“무얼 하러? 난 여기 못 온대던?”

“못 오지, 못 와!”

“아니, 그렇게 성내지 말기로 하세. 곁방 사람 데리러 왔다가 너한테 좀 들러보러 왔다.”

“들러볼 필요가 없다.”

“아니, 넌 언제나 우리한테 와서 내 부하가 될지 그것 좀 보러 왔다.”

“난 안 된다. 결단코 네 부하는 안 된다.”

“하하하하.”

그는 목쉰 소리로 방 안의 모든 물건이 쪼개져나갈 듯 웃었다.

“그럼 우리 상관이 될 작정으로 있니?”

“상관두 안 된다. 나는 결코 너희들 있는 데는 가지 않는다.”

“며칠 동안이나…….”

“며칠? 한 달, 두 달, 1년, 5년, 10년, 20년, 50년, 나 죽기까지…….”

“언제나 죽을 것 같던?”

“그거야 하느님이 알지.”

“흥, 하느님? 그것은, 참말루는 내가 안단다.”

“거짓말이다. 거짓말이야!”

“그거야, 지나 보면 알걸. 하하하하하. 우리 그러지 말구, 서로 좋두룩 잘 타협해보세. 그래서…….”

“타협두 쓸데없어!”

“그래서, 자네가 이담에 우리나라에 오면, 난, 자네에게 훌륭한 권세를 줄 테니.”

“넌, 날 꾀니?”

“그때는, 자네에게 부러울 것이 무엇이야?”

“사람은 떡으로만 살지 않는다.

“그럼, 또 무어루 사노?”

“자기의, 발랄한 힘으로! 삶으루!”

“그 발랄한 힘, 그 발랄한 삶을, 네가 ‘다스리는 권세’를 잡았을 때에 쓰면 오직 좋으냐?”

“난 네 권리 아래 깔리기가 싫다!”

“그것이다……. 사람이란 것의 제일 약한 점은. 사람은, 다만 한갓 권리 다툼에 자기의 모든 장래와 목숨을 희생한다. 너두 역시 약한 물건이다.

“아니다, 사람의 제일 위대한 점이 거기 있다!”

“하하하하. 사람에게두 위대한 점이 있니? 그것은 우선 우리 사회에선 제 일 약한 자의 하는 일인데…….”

“알고 싶니?”

악마는 씩씩 웃고 있다.

“알기 싫다, 듣기 싫다”

“그럼 왜 물언?”

“다만 물어본 뿐이다.”

“그럼 설명 안 해두 되겠지?”

“안 해두? 내가 물어본 뒤엔 설명하구야 견딘다.”

“하하하하, 역시 듣고 싶긴 한 게로구나. 우리 사회에서 제일 강한 자가 하는 일은, ‘마음에 하구 싶은 것은 꼭 하구야 만다’는 것이다, 알았니?”

“그렇기에, 나두 너희한테 가기 싫기에, 꼭 안 가구 말겠단 말이다.”

“그게, 사람의 지기 싫어하는 좀스러운 성질이란 말이다. 자, 마음속엔 가고 싶지?”

“난 다 ─ 싫다, 다만 네가 빨리 물러가기만 기다린다.”

“넌 내가 있는 것이 그리 싫으냐?”

악마는 노기를 띠고 묻는다.

“그렇다!”

“싫으면 이럭헐 뿐이다.”

하면서, 그는 수리의 발톱 같은 손을 벌리고, 내게로 다가온다.

“앗! 앗!”

나는 조그마한 부르짖음을 냈다.

이 순간, 이것이 꿈이로다 하는 생각이 머리에 떠올랐다. 나는 온몸의 힘을 눈으로 모으고, 눈을 힘껏 벌렸다.

눈은 번쩍 떠졌다.

꿈이다, 하면서, 나는 어두운 길을 자꾸 걸었다.

저편 앞에는, 빛이 보인다. 빛을 향하여, 나는, 무제한으로 걸었다. 끝이 없다. 얼마나 걸어야 끝날지는 당초에 할 수 없다. 몇 시간, 아니 며칠을 걸었는지 모르겠다. 겨우 그 빛 있는 데 가서, 거기를 보니, 이 세상에도 이런 집이 있었겠는가 할 만한 광대한 궁전이 있다. 나는 그 궁전 안에 들어갔다. 어디가 출입문인지 알 수 없는 집이다.

나는 한참 돌다가 허락도 없이 남의 집에 들어온 것은 그른 일이다 생각나서 돌아서서 나가려 할 때에,

“M, 왜 나가나? 들어오게.”

하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그편을 보았다. 낯은 익되 누군지 모르는 사람이다.

“자넨 누군가?”

“나? 아까두 만나보지 않았나? 자넨 정신두 없네.”

나는 다시 그를 보았다.

악마다.

갈색 악마.

나는,

“어디 가나?”

하는 소리를 들으면서, 돌아서서 어둠을 향하여 자꾸 달아났다.

2만 3천 리는 뛰었으리라, 저편 앞에 큰 집이 있으므로, 구해달라고 나는 그 집으로 뛰어들어갔다.

그 집은 아까 그 궁전이다. 어디로 돌아서, 나는 아까 거기 돌아 왔다.

나는 또 돌아서서 달아났다.

몇 번 이랬는지 모르겠다. 도착하는 집은 모두 아까 그 집이다. 나는, 어찌할 줄 몰라서, 또 달아났다. 동천은 차차 밝아온다.

저편에, 누가, 콧소리를 하면서 온다.

“사람 살리우.”

하면서 나는, 그에게로 뛰어갔다. 그는, 늙은이다. 그러고도 나의 아우다.

“형님, 왜 이러시우?”

“사람 살려라.”

그는 내 설명을 안 듣고도, 벌써 아는 듯이, 자기가 아는, 권세가 무한 큰 사람이 있는데, 거기 가서 구원을 청하자고 한다.

둘이서는, 그리로 뛰어갔다.

참 훌륭한 집이다. 나를 거기 섰으라고 한 뒤에, 자기 혼자 먼저 들어가서 주인을 데리고 나온다.

그 역시 갈색의 악마다.

“너는, 나를 왜 이리 쫒아다니니?”

나는 악마에게 고함쳤다.

“내가 널 쫓아다녀? 네가 날 방문하지 않았니?”

그는 말한다.

“죽여주리라.”

하면서, 어딘 듯 차고 있던 검을 빼 쥐었다.

“왜 그러세요?”

아우가 고함친다.

“이놈, 너두 저놈의 부하로구나.”

하면서 나는 아우부터 먼저 치려 하였다. 어느 틈에 그는, 나의 목을 쥐고 흔들기 시작한다.

“사람 살리우!”

하면서 나는 눈을 번쩍 떴다.

“왜 그러세요?”

하면서 간호부가 나를 흔든다.

나는, 술 취한 것 같은 눈으로, S의 자고 깬 혈기 있는 얼굴을 쳐다보았다.

병이 갑자기 더해지기는 이날부터다.


조각글ㆍ4


오늘, 원장에게, 더할 수 없다는 선고를 받았다.

오후 2시쯤이다. 견디지 못할 구역을, 땀구멍마다 깨달으면서 잘 때에, 슬리퍼를 끌면서 오는 몇 사람의 발소리를 들었다.

가분가분 가만히 나는 것은, 어젯밤에 고향에서 올라온, 나의 어머니다.

대진의 발소리도 난다. 마지막의 독일 학자와 같이 뚜거덕 뚜거덕하면서도 질질 끄는 소리는, 코 위에 안경을 주어 붙이고, 그 안경이 내려지는 것을 두려워하는 듯이 머리를 잔뜩 젖히고, 한 손은 사무복에 넣고, 한 손은 저으면서 오는 양인인 원장의 발소리다. 나는, 그 발소리를 들을 때마다 눈살이 찌푸려지는 것을 깨닫는다. 발소리도 교만하게 울린다.

나는, 움직이기 싫으므로, 그냥 눈을 감고 코를 골며 있었다.

석회산과 알코올 냄새가 물컥 나며, 선뜩한 손에 내 손을 잡는다. 나는 그냥 코를 골며 있었다. 귀밑에서 째깍째깍하는 시계 소리가 어머니의 소리가 날 때에, 나의 소학교 때의 벗인 대진은 그 말을 못하게 하며 소곤거린다.

“어머님, 걱정 마세요. 하늘이 무너져두 솟아날 구멍이 있대지요, 아무련들…….”

그들은 내 침대로 가까이 온다.

나는 눈을 번쩍 떴다.

그들은 놀라는 모양이다.

“어떤가? 좀 낫지.”

대진 R은 웃는다.

“다 ─ 낫네.”

나는 천장을 바라보면서 대답하였다. 이렇지 않기를 원하였지만 목소리는 조금 떨렸다.

“이제 며칠 있으면 다 ─ 낫지.”

“흥! 며칠?”

나는 아무 표정 없이 그의 말을 부인하였다. 어머니는, 아무 말없이 서 있을 뿐이다. R은 잠깐 놀란다.

“R, 정말 가르쳐주게, 난 죽지, 살 수 없지?”

어머니의 우는 소리 곁에서 R의 부인하는 소리가 들린다.

“설마, 자네 같은 든든한 사람이 죽으면 이 세상에 살 사람 있겠나?”

나는 천장을 계산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동서로 좀 장방형으로 된 천장을 정사각형으로 치려면, 동서에서 몇 치를 내어서 남북으로 붙여야 할지 나는 이제 잘 아는 바이다. 그것을 한참 계산하다가 나는 또 물었다.

“그래두, 아까 원장이 그러더만, 죽으리라구…….”

대답이 없다. 어머니의 울음은 흐느낌으로 변하였다.

한참 있다가 R은 말한다.

“다 들었나?”

“것두 못 들으면 귀머거리지.”

나는 공연히 성이 나서 R에게 분풀이를 하였다.

“아…… M, 걱정 말게. 하늘이 무너져두 솟아날 구멍은 있다니, 사람의 목숨이 그리 싼 줄 아나!”

좀 있다가 R은 말했다.

“사람의 목숨이 그리 비싼 줄 아나?”

그는 대답이 없다. 나는 두 번째 그에게 같은 말을 물었다.

“R! R! 정말 말해주게, 사람 살리는 줄 알구 정말루 말해주게, 죽었으면 죽을 준비두 상당히 해야겠기에 말이네!”

“난 모르네. 내 생각 같애서는 걱정 없는데 원장은 할 수 없다니 모르겠네.”

그는 말하고, 어떻든 그리 마음 쓰지 말고 있으라고 한 뒤에 어머니를 데리고 나갔다.

나는 천장을 바라보았다.

거리에는 전차, 인력거, 자동차들의 지나가는 소리, 지껄이는 사람의 소리 들도, 삶을 즐기는 것은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그런데 벽 하나 사이하고 있는 여기는,

“음 ─ 음 ─ 우 ─ 우─.”

삶을 부러워하다 못하여 저주하는 소리로 변한 소리가 찼으니 어떤 아이러니한 일이냐?

자동차의 지나가는 소리와 함께 방이 좀 흔들린다.

‘저 자동차 안에도 사람이 탔겠지, 나보담 삶을 즐길 줄을 모르는 자, 나보담 삶에 대한 집착이 적은 자, 혹은 옆에 계집이라도 끼고 가는지도 모르겠다. 음, 골난다. 그보담 더 살 필요가 있고 그보담 더 살 줄 아는 나는, 이 내 모양은, 무슨 모순된 일이냐.’ 생각할 필요가 없다. 나는 죽는다. 이삼 일 뒤에 혹은 오늘이라도…….

나는 벌떡 일어나서, 머리 밑에 있던 잉크병을 쥐어서 거리로 향한 문을 향하여 내던졌다.

병은 문에 맞고 깨어져서, 푸른 물을 사면으로 뿌리면서 떨어진다.

하하하하, 나는 웃다가 놀라서 몸을 꼭 모두었다. 사흘 전 꿈에 들은, 그 악마의 웃음소리(목쉬고도 모든 물건이 쪼개져나갈 듯한)를 내 웃음 속에서 발견하였다. 나는 도로 누웠다.

오히려 천연히, 나는 천장을 바라보았다.

죽음이란 이상한 ‘ ’ 범벅된 물건은, 아무리 하여도 머릿속에 들어앉지 않는다. 이상하다.

‘내가 죽는다?’ 나는 퀘스천 마크를 붙여서 생각해보았다. 아무리 하여도 이상하다. 기름에 물 한 방울 들어간 것 같다. 아니, 물에 기름 한 방울 들어간 것 같다.

‘나는 죽는다.’ 나는 다시 생각하였다. 즉, 차차, 차차 무거운 ‘죽음’ 이 머리에 들어앉는다.

‘나는 죽는다. 왜? 나는 살고 싶은데 왜 죽어? 누가 나를 죽여! 살겠다는 나를 누가 죽여! 모든 사람은 죽었다. 그러나 나는 그냥 살고 싶다. 나의 발랄한 생기, 힘, 정력, 이것들을 마음껏 이 세상에 뿌리기 전에 내가 왜 죽어? 나의 활동은 아직 앞에 있다. 그것을 버리고, 내가 왜 죽어! 나는 결단코 안 죽으리라. 원장의 말이 무에냐!’ 갑자기, 슬픈 것 같은 노여운 것 같은, 이상한 감정이 나의 머리를 짓누른다.

“죽는다!”

나는 고함쳤다.

그 뒤에 맥없이 눈을 감았다.


조각글ㆍ5


담배가 먹고 싶다. 견디지 못하도록 먹고 싶다.

문으로 내다보이는 저편 앞에 담뱃내 나는 것을 보면, 그것이라도 먹고 싶다.

담배 부스러기도 없다. 더군다나 성냥은 더 없다. 누구든 담배 한 꼬치 주는 사람은 없느냐?

아, 마침내, 담배는 먹지 못하고 죽어버릴까?


조각글ㆍ6


수술하였다. 배를 짼 뒤에, 무엇이라든가를 꺼내고 무슨 쇠를 안으로 대고 얽어맸다 한다.

수술하기는 오전 10시쯤이다.

나는, 수술대로 가서 수술상 위에, 백정에게 끌려가는 양의 마음으로 올라 누웠다 원장은 내 목숨을 . 보증하지 못하겠다 하되, 나의 벗 대진 R이 아무래도 죽을지면 최후 수단을 써보자고 복부 수술을 하게 된 것이다.

R은 수술의를 갈아입은 뒤에, 매스, 집게, 이상하게 생긴 갈고리들을 소독 한다.

마음은, 아무래도 내 몸속에 들어가 있지 않는다. 어떤 때는 소독하고 있 는 R도 보고, 또 어떤 때에는 내 몸에서 이삼척 떠서 나를 내려다보고 한다. 한참 나를 내려다보던 나의 마음은 또 R에게 향하였다. R은 내게 등을 향하고 간호부와 함께 그냥 기구를 만지고 있다.

‘무엇을 저리 오래 하노……. 아니, 더 오래 해라, 할 수만 있으면 내년까지라도 하여라.’ 내 마음은, 참다 못하여 떠가서 R의 맞은편에 섰다. R은 메스를 소독하고 있다. 잘 들게 생겼다 저것이 내 배를 쑥쑥 쨀 것인가 생각하매 무서워진다. 참 잘 들게 생겼다. 그놈으로 견주면, 이 세상의 모든 물건이 겨냥만 하여도 썩썩 잘라질 것 같다.

마음이 내려 앉지를 않는다.

‘몇 시간 걸리는가.’ R은 맞은편에 있던 나의 마음은, 이런 생각을 하면서 돌아왔다.

그러나 내 몸속에는 역시 안 들어가고 이상하게 떨고 있다.

나는 일어날까 생각하였다. 몸이 수술대에 붙어 있지 않는다.

한 30분이나 걸린 뒤에 조수 몇 사람이 들어오며, R과 간호부는 내게로 온다.

마음은 화다닥 내 몸속에 뛰어들어와서 숨었다. 나는 힘껏 눈을 감았다.

달각달각하는 소리가 들다가 무엇이 입과 코를 딱 막는다.

‘괴롭다’ 생각할 동안, 에테르의 향기로운 냄새가 코를 찌른다.

마음은 차차 평화스레 몸에서 떠올라간다. 머릿속에는 서늘한 바람이 불면서 차차, 차차 재미스러워온다. 그 뒤는 모르겠다. 잠들 때에 눈에 걸핏 보 인 것은, 그것은, 의사도 아니요 죽음도 아니요 또는 삶도 아니요, 무덕무덕 사람의 코 같은 데서 나오는 담뱃내다.

나는 어두운 길을 자꾸 걸었다.

‘나는 시방 어디로 가는고?’ 나는 생각하였다.

‘응, 악마한테 간댔것다.

똑똑히 생각나는 악마한테, 가는 길을 나는 더듬어서 어둡고도 밝은 길을 걸었다.

나는, 어느덧 그의 광대한 집에 이르러 훌륭한 그의 응접실에 그와 마주 앉았다. 그는 오늘 사람의 모양(젊은이의)을 하고 빛나는 옷을 입고, 허리띠에는 큰 불 붙는 돌을 차고 있다.

“왔나?”

“왔네.”

“무얼 하러 왔나?”

“좀 부탁할 게 있어서 왔네.”

“무얼.”

“그런데…… 자네, 전에 잘 타협해보자구 안 그랬나? 거기…….”

“하하하하, 사람이란 뜻밖에 정직한 물건이야! 거짓말이야, 그건 다 …….”

성도 안 난다. 나는 다시 물었다.

“거짓말이야?”

“그럼, 거짓말하면 나쁘나?”

“나쁘잖구!”

“그건 인간 사회에서 하는 말이라네!”

물어보기가 부끄럽지도 않다.

“우리 사회에선? 속이는 자는 영리하구, 속는 자는 미욱하다지.”

“악마 사회는 다르다.”

나는 웃었다.

“그럼 난 가겠네.”

“왜? 자넨 나한테 물어볼 일이 있지 않나?”

그 말을 들으니 물어볼 말이 있었던 듯하다.

“응, 있네. 가만, 무에던가…….”

“생각해보게.”

한참 생각하였다. 그리고 물었다.

“난 죽은 뒤엔 무얼 되겠나?”

“되긴 무에 되어! 다만 내세에 갈 뿐이지.”

“내세? 천국, 지옥?”

“하하하하 아무렇게 해석해두 좋으네, 그거 전세와 같은 내세가 있는 줄만 알면…….”

“전세?”

그럴듯하다.

그럼 “, 전세. 태월중(胎月中) 생활 몇 달, 또 그 전세 정액 생활 며칠, 또 그 전세두 있구…….”

그럴듯하다.

“정액 생활에서 태내 생활루 들 때에, 정액이란 것은 죽어버리고 정충만 태와 태아로 변하지 않았나? 또 그것이 인간 생활로 변할 때엔, 태는 죽어 버리구 태아만 사람으루 되지 않았나? 속에 영(靈)이란 것을 간직해가지 구……. 그게 또 이제, 몸집을 벗어버리구 영만 내세루 갈 것은 정한 일이지……. 그 뒤엔, 또 내내세로 가구. 하하하하.”

“정말인가, 거짓말인가? 자네 말은 믿을 수가 없네.”

“아무렇게 생각해두 좋으네!”

“그럼, 자넨 무언가? 천국두 없구 지옥두 없으면 자네가 있을 필요는 무엔가?”

“나? 우리 악마라는 것을 그렇게 해석하면 우린 울겠네. 우리는 즉 사람의 정이구 사람의 본능이지.”

그럴듯하다.

즉, 무엇이 기쁜지 차차, 차차 기뻐온다. 나는 일어서서 춤을 추기 시작하였다. 발이 땅에 붙지 않는다. 한참 재미있게 출 때에, 누가 내 발을 잡아 당긴다.

“누구냐!”

“자네 아닌가?”

악마가 대답하였다.

“술이나 먹고, 춤추게.”

나는 그에게 술을 실컷 먹인 뒤에, 어두운 길로 나섰다.

나는, 어느 전장에 갔다. 무변광야다. 대포 소리는 나지만 어디서 나는지 도 모르겠다. 나 있는 데에는 대단히 밝되 저편은 밤과 같다.

총알이 하나, 내 배에 맞았다. 나는 꺼꾸러졌다.

총 맞은 데가 가렵다.

누가 와서 발을 잡아당긴다. 나는 벌떡 일어서서, 도로 어두운 데로 향하였다.

비슷비슷한 꿈을 수십 개 꾼 뒤에 깼다.

나는 어느덧 내 침대 위에 있고 밤이 되었다.


조각글ㆍ7


입원한 지 두 달 수술한 , 지 한 달에 겨우 퇴원하게 되었다. 조선유수의 의학자라는 자에게 죽음을 선고받았던 나는, 그래도 다시 살아서 퇴원하게 되었다.

4년 만에, 너울너울한 조선복을 입고, 나는 편안히 안락의자에 걸터앉았다.

나는 살아났다, 거짓말 같다.

나는 퇴원한다, 더욱 거짓말 같다.

내 죽은 혼이, 그래도 아직 인간 사회에 마음이 있어 헤맨다. 이것이 겨우 정말 같다.

전차가 지나간다. 저것도 다시 탈 수 있다.

사람들이 다닌다, 나도 저 사람과 같이 되었다.

아, 이것이 참말인가?

담배를 먹을 수 있다, 여기 이르러서는, 다만 공축(恐縮)할밖에는 도리가 없다.

“기차 시간 되었네.”

“자, 이젠 가자.”

R의 소리와 어머니의 소리가 함께 내 귀를 친다.

“다시 살아서 여행을 떠난다, 거짓말이다 거짓말이다.”

하면서 나는 그들을 따랐다.

그러나, R과 S의 작별을 받고, 어머니와 함께 큰 거리에 나서서 저편에 와글거리는 사람떼를 볼 때에, 조금씩 조금씩 머리에 기쁨이 떠오른다.

‘맨날 죽음과 삶 사이에 떠돌며, 무서운 소리로 부르짖는 저 무리들에게 도 하루바삐 나와 같은 기쁜 경우가 이르기를 원하며 마지않는다.’ 나는 생각하면서, 너울너울, 어머니와 함께 사람들에 끼면서 담배를 붙여 물었다.

나는 보기를 끝내고 M을 보았다. M은 내 책상 위에서 어떤 잡지를 보고 있었다.

무슨 일이냐, 사람의 목숨을 이와 같이 보증할 수가 없느냐. 내가 맨날 다루는 곤충도, 빛으로 살로 그들의 목숨을 보증하며 짐승들도 그들의 체질로써 목숨을 보증할 수가 있는데, 동물의 영이라는 사람의 목숨이, 이렇게까지 철저한 자기로서는 보증할 수가 없고, 이와 같이 위험하기 한없는 의사에게 달렸다고야, 이 무슨 일이냐, 이 무슨 일이냐. M으로서 만약, 대진의 벗이 없었던들 오늘날 저와 같이 생기로 찬 몸을 얻어가지고 다시 만났을 수가 있을까?

나는 M을 찾았다.

“M.”

“다 보았나?”

“사람의 목숨이, 이렇게꺼정 보증할 수 없는 물건이란 말인가?”

“이 세상에, 의사의 오진으로 몇 천만 사람이 아까운 목숨을 버렸을지, 생각하면 무섭데!”

“자넨 다행이네, 살아나서!”

“그렇지, 내게는 R이라는 좋은 벗이 있었기에…….”

“살아났지, 그렇지 않으면 죽을 것을…….”

나는 그의 말을 이었다.

“그래.”

나는 좀 높은 곳에 있는 우리 집에서, 내려다보이는 장안을 둘러보았다.

거기 먼지가 보얀 것은 억조창생이 삶을 즐기는 것을 나타낸다. 아아, 그러 나 그들의 목숨을 누가 보증할까? 의사의 조그마한 오진으로 그들은, 금년 에라도, 이달에라도 죽을지 모를 것을…….

나는 다시 M을 보았다.

건강. 그것의 상징이라는 듯한 그의 둥그런 얼굴은, 빛나는 눈으로써 나를 보고 있었다.

이 저작물은 저자가 사망한 지 50년이 넘었으므로, 저자가 사망한 후 50년(또는 그 이하)이 지나면 저작권이 소멸하는 국가에서 퍼블릭 도메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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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9년에서 1977년 사이에 출판되었다면 미국에서 퍼블릭 도메인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미국에서 퍼블릭 도메인인 저작에는 {{PD-1996}}를 사용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