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뭉게구름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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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운 날 오후의 구름 보는 재미.
 아침에 없던 구름이 오후만 되면 어디서 오는지 모르게 날마다 모여든다.
 회색빛 음산한 구름도 아니고, 그렇다고 싸늘한 비늘구름이 조각조각 흩어져 있는 것도 아니다.
 하이얀 솜을 펴논 것보다도 더 희고 더 부드럽고……, 그리고, 그 둥글고 깊고 그윽한 뭉게구름이 하얀 노인처럼 유한하게 떠 있는 것이다.
 ‘여름 구름은 봉우리가 많다.’
고 한 옛날 사람의 말대로 그렇게 희고 부드러운 구름에는 산봉우리보다도 더 첩첩하게 봉우리가 많다. 그러나, 결코 산봉우리처럼 그냥 많기만 한 것도 아니다.
 알 수 없는 비밀을 가지고 한없는 변화를 부리고 있는 것이 여름의 뭉게구름이다.
 불볕이 내리쬐는 넓은 마당 그 한 끝에 서 있는 높은 버드나무의 머리 위로 멀리 보이는 한 뭉치의 뭉게구름.
 첩첩이 일어난 봉우리와 봉우리 속으로 휘몰아 들어가보았으면 거기에는 반드시 옛날 얘기 듣던 신선들의 잔치가 벌어져 있을 듯도 싶다.
 부채 든 손을 쉬고 무심히 앉아서 가만히 쳐다보고 있으면 하얀 봉우리 위에서 선녀들이 춤을 추는 모양이 눈에 보이는 듯한 때도 있다.
 그러나, 한참이나 보고 있는 동안에는 어느 틈에 구름의 형상이 변해 버린다.
 높다랗게 우뚝 솟은 봉우리가 어느 틈에 슬그머니 가로 퍼져 가지고 옆에 있더너 구름과 아무 말없이 합쳐 버리고 만다. 그러면 구름 한편 쪽에는 옅은 보랏빛으로 보드라운 그늘이 지어진다.
 간간이 부는 바람에도 나무 끝은 한들한들 조용하게 흔들린다. 그러나, 그 뒤로 보이는 뭉게구름은 까딱도 하지 않는다. 어니 때까지도 그 자리에 머물러 있을 것 같다.
 그러나 가만히 보고 있으면 구름도 움직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더할 수 없이 천천히 움직이지 않는 것처럼 가만히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느리게 움직이면서도 구름은 만나면 합치고, 합치고는 새로운 봉우리를 짓는다.
 그런가 하고 보고 있으면, 어느 틈에 보드랍던 보랏빛 그늘이 검은 그늘로 변해 가지고 햇볕을 가리면서 주먹같은 물방울을 내리 쏟는다. 모래를 내리 쏟는 듯한 형세로 발마이 나게 내리 쏟는다.
 “으아아.”
 “소낙비다.”
하고 소리를 치면서 맥고 모자를 벗어 들고 양복쟁이가 뛴다. 미인이 뛴다.
 학생이 뛴다. 순사가 칼을 붙잡고 뛴다. 길가의 처마 밑마다 길 가던 사람이 쭉 늘어서 있다. 그 길로 인력거가 위세 좋게 달아난다.
 낮잠 자던 부인이 놀라 깨어 일어나서 황망히 장독의 뚜껑을 덮고 빨래를 걷고 나니까 뚝뚝 소낙비는 그치고 햇볕이 반짝 난다.
 “잘도 속이네.”
하고 부인은 빨래를 다시 넌다. 처마 밑에 늘어섰던 사람이 모두 헤어져서 걸어간다.
 타던 기와 지붕과 가까운 산들이 세수를 하고 난 것처럼 깨끗하고 산뜻해지고 더 한층 선명하게 햇볕이 비친다. 빙수보다도 더 달고 서늘한 여름 낮의 한 줄기 양미(시원한 맛)! 이것도 잊지 못할 뭉게구름의 비밀의 하나다.
 소낙비가 지나간 후는 저녁때 가까운 때다. 소나기 장난에 시치미를 떼이는 뭉게구름이 높이로보다는 옆으로 길어져 가지고 무슨 회의나 잔치에 참례하는 것처럼 약속한 듯이 한쪽으로만 모두들 쏠리어 간다.
 그러면 여름의 하루가 무사히 저물고 서늘한 저녁 기운이 돌기 시작한다.
 불볕밖에 아무것도 없는 듯싶은 더운 날, 뭉게구름의 변화를 바라보는 것은 분명히 여름의 좋은 흥취의 한 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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