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련이 나라

위키문헌 ― 우리 모두의 도서관.

옛날에요. 퍽도 미련한 어른만 골고루 모여서 사시는 나라가 있었어요. 그 나라에서는 날마다 날마다 허리가 부러지게 미련하고 우스운 일만 일어났습니다. 우스운 중에도 우리에게 가르침을 주는 점도 적지 않은 고로 이제 그 미련이 나라에서 일어난 일을 하나씩 둘씩 이야기하여 드릴 터이나 따뜻한 봄날 풀밭에 누워서 읽어 보십시오. 봄날 심기가 더욱 상쾌할 터이니까요.

지고 간 대문[편집]

따뜻한 봄날이어요.

젊은 남자 한 사람이 저의 집을 비워 놓고, 먼 시골로 가는데요, 저의 집 대문짝과 문설주를 빼어서, 그 큰 것을 억지로 짊어지고, 땀을 뻘뻘 흘리면서 가거든요.

그래 하도 이상하여서,

“여보게, 먼 시골로 간다는 사람이 왜 자네 집 대문을 헐어 짊어지고 가나?”

하고, 물었습니다. 그러니까, 그 젊은 양반 대답이,

“대문을 그냥 두고 가면, 도둑놈이 들어가겠으니까, 떼어서 짊어지고 가지요. 대문만 내가 가지고 가면, 아무도 우리 집에 못 들어갈 것이니까요.”

하거든요.

묻던 사람도 그럴 듯하여,

“옳지, 그거 참 그럴 듯한 꾀로군!”

하고 탄복하더랍니다.


성 쌓아 새 잡기[편집]

한 농네에 전에 못 보던 이상하고 예쁜 새가 나뭇가지에 날아와 앉아서 재미있게 울거든요.

그래 그것을 잡아 보려고, 온 동네 사람들이 모두 모여서, 그 동네의 둘레를 삥 둘러 높다랗게 담을 쌓았습니다.

“이렇게 삥 둘러싸면, 달아날 틈이 없겠지!”

하고요. 그러나, 그 많은 사람들이 점심도 못 먹고, 자꾸 쌓고 있는데, 새는 공중으로 후루룩 날아가 버렸습니다. 그러니까, 모두들 하는 말이,

“인제 놓쳤으니 내일 다시 오거든 에워싸게.”

하고 헤어지더랍니다.


요 다음에는 더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지요.


(《어린이》 1926년 4월호의 부록 《어린이세상》 6호)

물독 속의 도둑[편집]

한 점잖은 주인 내외가 잠을 자는데, 도둑이 들어와서 마루 밑에 숨었습니다.

마누라 “아이고, 여보 영감! 마루에서 무언지 덜컥덜컥 하는 소리가 나니, 아마 도둑인가 보오.”

아내가 남편보고 이렇게 말하는 소리를 듣고, 도둑놈은 들키는가 싶어 가슴이 선뜻하였습니다.

영감 “무얼? 아마 마루 밑에서 쥐새끼들이 그러는 거겠지…….”

이렇게 주인 영감이 대답하는 소리를 옳다구나 하고,

도둑 “찍 찍 찍찍!”

하고, 쥐 소리를 하였습니다.

영감 “그것 보지, 저게 쥐새끼 소리 아니고 무언가!”

마누라 “쥐 소리요? 유달리 소리가 큰걸요. 쥐는 아니어요.”

영감 “그럼 고양이겠지.”

도둑 “야옹 야옹!”

영감 “저것 보지, 고양이 아닌가.”

마누라 “고양이보다는 소리가 큰 걸요. 고양이도 아닌가 보오.”

영감 “고양이보다 소리가 크면 개겠지.”

도둑 “멍멍 멍멍멍!”

도둑놈이 개 소리까지 합니다.

영감 “저것 보아! 개 소리지.”

마누라 “개 소리하고는 다른걸요.”

영감 “그럼 닭 소린 게지!”

도둑 “꼬꼬 꼬꼬 꼬꼬꼬!”

영감 “저거 닭 소리 아닌가”

마누라 “닭소리보다는 소리가 몹시 큰걸요.”

영감 “그럼 송아지 소린 게지.”

도둑 “엄매 엄매!”

마누라 “송아지 소리보다 큰 걸요.”

영감 “그럼 코끼린 게지.”

도둑놈도 코끼리 소리는 알 수가 없으니까, 급한 대로,

도둑 “기리 기리 기릿!”

마누라 “아이구머니, 저게 무슨 소리요? 코끼리도 웁니까! 저건 분명히 도둑놈이요.”

영감 “그럼 나가 보지.”

도둑놈이 달아날 곳이 없으니까, 급한 대로 부엌 속으로 뛰어 들어가서는 물독 속에 들어가 숨어서, 얼굴만 물 위에 내놓고 앉았습니다. 주인이 물독을 들여다보다가 물 위에 있는 도둑 얼굴을 보고,

영감 “이게 무언가? 바가진가 도깨빈가?”

하니까,

도둑 “박 박 박!”

영감 “으응 바가지로군…….”

하고 안심하고, 도로 들어가서 자더랍니다.


(《어린이》 1926년 6월호의 부록 《어린이세상》 8호)

송아지와 밀가루 부대[편집]

미련이 나라의 어떤 점잖은 양반 한 분이, 장날 장터로 송아지 쉰 마리를 사러 가다가, 좁은 다리 위에서 아는 이를 만났습니다.

첫째 “자네 어디 갔다 오나”?

둘째 “장터에 갔다 오는 길일세. 자네는 어디에 가는 길인가?”

첫째 “나는 송아지 쉰 마리 사러 장에 가는 길일세.”

하니까, 그 사람이 깜짝 놀라며,

둘째 “어이구, 송아지를 쉰 마리씩이나 사서, 어느 길로 끌고 오려나”?

첫째 “물론 이 길, 이 다리 위로 오지.”

하니까, 그 사람은 아까보다도 더욱 놀라면서,

둘째 “이 좁은 다리 위로 송아지 쉰 마리를 어떻게 끌고 건넌단 말인가? 안 되네 안 되어.”

첫째 “왜 못 건너간단 말인가?”

둘째 “못 건너가네, 못 건너가.”

첫째 “왜 못 건너간단 말인가?”

둘째 “암만 그래도 안 될 말일세. 무슨 수로 쉰 마리를 끌고 이 다리를 건넌단 말인가?”

첫째 “글쎄, 건너간다는데 왜 못 건넌다고 그러나?”

둘째 “못 건너가네, 못 건너가!”

이렇게 두 어른이 건너가네, 못 건너가네 하고, 다리 위에 서서 온종일 싸우고 있었습니다.

해가 지고 어둡기 시작하는 저녁때가 되었습니다. 다른 어른 한 분이 장터에서 밀가루 한 부대를 사서 짊어지고 돌아오는데, 다리 위에 이르렀을 때, 좁은 다리 위에 두 사람이 서서 건너가네 못 건너가네 하고 싸우고 있는지라, 무슨 소린지는 모르겠으나, 하여튼 싸움이 끝나거든 건너가려고, 무거운 부대를 짊어진 채 한참이나 서서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암만 기다려도 싸움은 끝나지 않고, 밤이 되도록 건너가네 못 건너가네 하고만 있으므로, 하도 갑갑하여,

셋째 “여보, 당신들 아까부터…….”

첫째·둘째 “여보, 아까부터가 아니라 아침부터라오.”

셋째 “그렇습니까? 그럼 잘못했었습니다. 아침부터 무얼 건너가네 못 건너가네 하고 싸우십니까?”

첫째 “그런 게 아니라오. 내가 송아지 쉰 마리를 사 가지고 이 다리로 건너가겠다 하니까, 이 사람이 못 건너간다고 해서, 이렇게 싸우고 있다오.”

셋째 “그래 송아지 쉰 마리를 사기는 정말 샀나요?”

첫째 “인제 사러 가는 길이요.”

셋째 “장은 다 파했는걸요.”

첫째 “아차차, 그럼 다 틀렸군!”

셋째 “여보시오, 싸움은 그만두시오. 내가 당신 두 분께 할 말씀이 있으니, 내 등에 있는 밀가루 부대를 좀 내려 주시오.”

첫째와 둘째가 셋째의 등에 지고 있는 밀가루 짐을 내려 주었습니다. 그러니까, 그 사람이 밀가루 부대의 주둥이를 풀어헤치더니, 개천에다 대고 거꾸로 들어 밀가루를 모두 개천 물에 쏟아 버리고 나서, 빈 부대만 훌훌 털어서, 첫째와 둘째의 코 앞에 내밀면서,

셋째 “당신 두 분의 머리 속이 이 부대같이 텅 비었소.”

하더랍니다.

건네가네 못 건네가네 하고, 온종일 싸우고 섰던 두 분과, 머리 속이 비었다는 말을 하려고, 밀가루 한 부대를 쏟아 버린 어른이, 어느 분이 더 똑똑한지요?

(《어린이세상》 호수 알 수 없음)

거꾸로 매단 절구[편집]

미련한 어른만 사는 나라에도 새로운 물건 이치를 발명해 내는 연구가가 계셨습니다. 하루는 굉장한 새 발명을 하였다고, 집집으로 다니면서 떠들길래, 무슨 신통한 새 발명을 또 했는가 하고, 이 집 저 집에서 미련한

어른들이 새 옷을 꺼내 입고, 길이 막히게 꾸역꾸역 모여들었습니다. 새 발명을 했다는 연구가가, 헛간에 큰 절구 있는 곳에 서서, 큰 소리로 연설하는 말씀이,

“에헴. 다른 연구가 아니라, 쌀 찧는 데 관한 발명이므로, 살림살이에 대단히 소중한 발명입니다. 에헴, 누구든지 쌀을 찧을 때에 공이를 번쩍 들었다가, 쾅쾅 놓아서 찧는데, 그것을 가만히 보고 연구한즉, 공이를 쾅하고 아래로 내려 놓는 것은, 쌀을 찧으니까 필요하지마는, 위로 번쩍 드는 것은 아무 필요가 없이 헛된 힘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쌀을 찧느라고 내려 놓을 때에는 오히려 힘이 안 들고, 아무 필요도 없이 공연히 위로 번쩍 드는 데도, 도리어 힘이 많이 듭니다. 그래서 이 사람은 연구하기를, 어떻게 하면 힘을 들여가면서 위로 번쩍 드는 것을 잘 이용할까 하고 생각한 결과, 굉장히 편리하고 유익한 것을 발명하였습니다. 에헴, 자세히 들으십시오. 공이를 내려놓을 때는 힘을 안 쓰고, 위로 쳐들 때에는 많은 힘을 쓰니까, 위에도 아래와 같은 절구 하나를 거꾸로 매달아 놓고, 거기다가 쌀을 부어 두면, 공이를 위로 쳐들 때에는 위로 거꾸로 달린 절구의 쌀이 찧어 질 것이 아닌가 말씀입니다. 그러면 공이를 한 번 들었다 놓는데, 위 아래 두 군데 쌀이 한꺼번에 찧어지니까, 우리의 살림살이가 대단히 편해질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이 굉장스런 연설을 들어 보니, 참말 그럴 듯한지라, 모였던 사람들이 모두 손뼉을 치면서 기뻐하고, 연구가를 위하여 만세를 부르면서 헤어져 돌아갔습니다.

돌아가서는 곧 실행을 하려고, 집집에서 절구 하나씩을 더 장만하느라고 야단이 났습니다. 절구가 모자라서 절구값이 금시에 몇십 갑절이나 비싸지고, 나중에는 아무리 돈을 많이 주고 사려도 절구가 하나도 남지 않았습니다.

그래 땀을 뻘뻘 흘리면서, 절구를 모두 거꾸로 천장에다 디룽디룽 매달아 놓았습니다. 그러나 쌀을 부을 수가 도무지 없었습니다. 부으면 쏟아지고, 부으면 쏟아지고 하여, 암만하여도 쌀이 붙어 있지를 않았습니다.

하다 하다 못하여, 연구가를 일일이 모셔다가 지휘를 받아서 해 보았으나, 참말 연구가가 자기 손으로 하여 보아도 쌀을 부을 재주가 도무지 없었습니다.

“여러분, 잠깐만 더 기다리십시오. 내가 거꾸로 매단 절구에 쌀을 붓는 법을 마저 연구할 터이니까요.”

하였습니다. 그러니까, 모든 사람들이 또 손뼉을 치고 기뻐하면서,

“네, 제발 좀 그것도 연구해 주십시오.”

하고, 빌었습니다.

그러나 연구가는 끝끝내 그 방법은 발명해 내지 못하고 죽었답니다.


(《어린이》 1926년 7월호의 부록 《어린이세상》 9호)

자반 비웃을 먹은 뱀장어[편집]

미련이 나라에 사는 미련한 양반들이 제일 좋아하는 밥반찬이 있으니, 그것은 자반 비웃이었습니다 . 그러나 이 자반 비웃이 그 나라에는 없고, 오십리 밖에 있는 다른 나라에 가야 사다 먹게 되므로, 미련한 양반들의 생각에도 그것이 불편하거든요, 그래서 미련한 양반들이 일제히 한곳에 모여서 회의를 열었습니다. 시간이 되니까, 한 양반이 벌떡 일어나더니, 하시는 말씀이,

“오늘 회의는 다른 게 아니라 우리가 자반 비웃을 잘 먹는 것은 우리들의 특성인데, 그놈을 한 번 먹자면, 오십 리나 되는 곳을 가야 사 오게 되니, 이런 불편한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래서 그렇게 불편하지도 않고 아주 편하게 자반 비웃을 먹을 도리가 없을는지, 그것을 다 같이 의논해 보려고 모인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 중에 좋은 의견이 있으면 말씀해 주십시오.”

미련한 양반들은,

“글쎄, 좋은 꾀가 없을까?”

하고, 서로 서로 좋은 의견이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그 중에도 똑똑하고 영악하다는 양반 하시는 말씀이,

“자, 여러분! 이렇게 하는 것이 어떨까요? 우리 동네에 큰 연못이 하나 있지요?”

“암, 있지요.”

“그 연못에다 자반 비웃을 한꺼번에 듬뿍 사다가 집어 넣고, 한참 동안 그대로 내버려 둡시다. 그러면, 그놈이 연못 속에서 새끼를 까고 또 까서, 나중에는 굉장히 많아지지 않겠습니까. 그 때에는 우리가 마음대로 잡아다 먹는 것이 어떨는지요?”

이 의견을 들어 보니, 참말 그럴 듯한지라, 모였던 사람들은 모두 손뼉을 치면서,

“그 의견이 좋소.”

하고, 소리쳤습니다. 그래서 그 곳에 모였던 사람들은 그 자리에서 돈들을 거둬 모아 가지고, 오십 리 밖에 가서, 자반 비웃을 한꺼번에 오백 마리나 사다, 그 동네 연못에 집어 넣었습니다.

그 후 한 일 년 지나서,

“인제는 오백 마리나 되는 놈이, 새끼를 한 마리씩만 낳아도, 천 마리는 되었으리라.”

하고, 하루는 온 나라 양반들이 모두 그물과 낚시를 가지고, 연못가에 몰려와서, 일 년 전에 집어 넣어 둔 자반 비웃을 잡느라고 야단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웬일인지 그 많은 사람들이 하루 온종일 그물을 치고 낚시를 던져도, 자반 비웃은 한 마리도 잡히지 않고, 맨 지푸라기와 흙덩어리만 걸려 올라왔습니다.

그래 여러 양반들은 까닭을 알 수가 없어서,

“웬일일까? 웬일일까?”

하고, 떠들었습니다. 그러자 한 양반이,

“그 놈들이 혹시 물 속에 있는 진흙을 파고 들어가 숨어 있는지도 모르니, 누구든지 물 속으로 뛰어 들어가서, 흙 속을 한 번 찾아보는 것이 어떻습니까?”

하니까, 여러 사람들은 또 그럴 듯한지라,

“옳소!”

하고, 소리쳤습니다. 그래 헤엄 잘 치는 양반을 한 분 뽑아서, 물 속으로 들여 보냈습니다.

물 속에 들어간 양반이 한참 진흙 속을 손으로 더듬다가, 무엇인지 손에 물큰 쥐어지는 게 있어서, 무언가 하고 두 손으로 꼭 붙잡고 얼른 물 밖으로 나와 보니까, 그것은 큰 뱀장어였습니다.

여러 사람들은 그제야,

“옳지, 저 뱀장어란 놈이 그 자반 비웃을 죄다 잡아먹었구나!”

생각하고, 너무도 분하고 원통하여서,

“그놈은 우리 여러 사람이 먹을 반찬을 저 혼자 먹은 놈이니, 모가지를 뎅겅 잘라 죽여라!”

하기도 하고,

“아니다. 그놈을 죽이되, 온 몸을 갈갈이 찢어 죽여야 한다.”

하기도 하고,

“아니다. 그놈은 불 속에다 넣어서 태워 죽여야 한다.”

하고, 제각기 야단들이었습니다.

그러니까, 그 중에도 좀 똑똑하다는 양반이 하시는 말씀이,

“아니오. 그놈을 그렇게 칼로 베거나 불에 태워 죽이면 얼른 죽어 버릴 터이니, 좀더 오래 괴롭히다가 죽도록 하자면, 물에 빠뜨려 죽이는 것이 제일입니다. 그놈이 진흙 속에 꼭 파묻혀 사는 것을 보면, 물을 그 중 싫어하는 모양이니까, 그렇게 죽이는 것이 어떻습니까!”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하는 것이 좋을 듯해서.

“그렇게 하자!”

하고, 소리쳤습니다. 그래 뱀장어는 미련한 양반들이 맛있게 잡수실 자반 비웃을 죄다 잡아먹었다는 죄로, 미련한 양반들에게 꼭 붙잡혀서, 연못물 속에 던져졌습니다. 그러니까, 뱀장어는 좋아라고 물 속으로 헤엄쳐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미련한 양반들은 뱀장어가 물 속으로 가라앉는 것만 보고, 자기네들의 원수를 잘 갚았다고 손뼉을 치면서,

“에그, 죽여도 참 시원스럽게 죽였다!”

고, 좋아서 입을 ‘헤에’ 벌리고 돌아가더랍니다.


(《어린이》 1926년 12월호의 부록 《어린이세상》 13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