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치광이
1
[편집]벌써 4년 전 일입니다. (어떤 자는 말하였다.)
나는 백두산 뒤 청석하라는 조그마한 촌에 살았습니다. 그때 우리 집은 뒤에 절벽이 있고 앞에 맑은 시내가 있는 사이에 외따로 있었습니다. 형제가 없는 나는 늘 우리 집에 있는 농군과 함께 김도 매고 소도 먹이면서 아주 재미있게 지내었습니다. 그리고 사이만 있으면 처가로 갔었습니다. 내가 가면 장모께서는 “사위, 사위” 하시면서 떡도 해 주고 엿도 달여 줍니다. 그리고 장인께서는 낮이면 밖으로 나가시고 밤이면 이웃에 가서 장기나 두시다가 잘 때나 돌아오십니다. 그런 까닭으로 집에서는 아버지의 책망이 두려워서 기를 못 펴던 나는 처가에만 가게 되면 뛰고 소리치고 바로 내 세상이 되지요. 그러므로 나는 처가에 가기를 늘 즐겨 하였습니다. 집에서도 처가에 간다면 책망이 없었습니다.
첫 여름 흐뭇히 더운 어떤 날이었습니다. 보리밭 밀밭 조밭 김도 아시가 지나고 후치질까지 다 필한 나는 말과 소는 농군에게 먹이라고 부탁하고 처가로 갔습니다. 처가는 우리 집에서 이십 리나 북쪽으로 더 가서 달리소라는 곳에 있었습니다. 아침을 먹고 해가 퍼져서 나는 감발을 하고 막대를 끌고 집을 떠났습니다. 이곳은 삼림이 울창하고 풀이 우거졌고 물 고인 진창이 많아서 발감개를 하지 않고서는 다닐 수 없습니다. 그리고 군데군데 중국사람 집에 사나운 개가 어찌 많은지 몽둥이 없이는 다닐 수 없습니다.
안팎 십 리나 되는 우리 집 뒤영을 타들덕거리면서 넘었습니다. 이 영을 넘으면 무성한 나무 그늘 속 그리 크지 않은 시냇가에 연하여 쓰러져 가는 초가집들이 있습니다. 이것은 ‘백하구상’이라는 동리입니다. 나는 어느새 백하구상을 지났습니다. 그리하여 양장 같은 냇가 돌길로 찌찌한 풀내를 맡으면서 백하구상이란 곳에 다다랐습니다. 이곳은 흑룡강과 백하가 합수되는 곳입니다. 나의 처당은 흑룡강을 건너서 있습니다. 나는 중국사람의 구유 같은 통궁이 배를 타고 높고도 험한 벼랑 앞 순하고 깊은 물을 돌아 건넜습니다. 강안에 내린 나는 푸른 버들 속을 지나 경사가 완완한 옥수수밭 옆길에 올라섰습니다. 얼른 보기에는 산 같지 않게 완완한 산중턱에 외따로 놓인 처가가 퍼―런 기장밭 저편에 보였습니다.
나는 다리 아픈 것도 잊어버리고 걸음을 바삐하는데 바람결에 이상스러운 소리가 들립니다. 이때 나의 신경은 긴장하였습니다. 나는 발을 멈추고 가만히 섰습니다. 그 소리는 확실히 장바 두어 거리나 나가서 저편 산속에서 납니다. 그러나 벌써 풀문이 막혀서 무엇인지 잘 보이지도 않고 웅얼웅얼하는 것이 무슨 소린지? 그리고 나뭇가지를 뚝뚝 꺾는 것은 산짐승 같았습니다.
‘저것이 곰이나 아닌가?’
나는 생각하였지요. 그렇게 생각하니 어찌 무서운지 한꺼번에 뛰어서 처가로 갔습니다. 장인께서는 밭으로 나가시고 장모만 집에서 베를 짭니다. 장모께서는 내가 마당에 들어서는 것을 보시더니 말코를 벗어 놓고 베틀에서 내려서 엿감주 한 사발을 떠다 줍디다. 나는 단숨에 들이켰습니다.
“어― 달아. 나는 오늘 오다가 곰을 보았어요.”
나는 가장 큰 자랑거리나 있는 듯이 호그럽게 말했습니다. 그리고 마루에 앉았습니다.
“응! 무얼……. 곰을…… 아이 끔찍해라! 어디서 보았누?”
베틀에 앉으려던 장모는 놀라운 안색으로 나를 봅니다.
“바로 이 앞산 모퉁이에서!”
나는 손을 들어 가리켰습니다.
“아! 저런―. 그려 사람을 보고 가만히 있어?”
장모는 더욱 놀랐습니다. 나는 대답이 구구하였습니다. 곰인지 호랑인지 무슨 소리만 듣고 보지도 못한 것을 본 체한 것이 이제 거짓말로 탄로되게 되니 그윽이 부끄럽기도 하고 무슨 큰말이나 한 체하던 용기조차 꺾어졌습니다.
“무서워서 보지도 못하고 뛰어왔습니다.”
“나는 또 보았다구! 그럼 곰인 줄은 어찌 알았나?”
장모는 빙긋이 웃습니다. 문제는 더욱 빡빡하게 되었습니다.
“웅얼웅얼하면서 나무를 꺾는지 뚝딱찍끈해요. 그리고 우실렁우실렁 다니는 듯해요.”
나는 될 수 있는 대로 기운 있도록 말하려 하였습니다.
“하하하하하.”
장모께서는 즐겁게 웃습니다.
“바로 이 앞이지?”
장모는 그저 웃으면서 턱을 쳐들고 내 들어오던 길을 가리킵니다. 나는 나의 거짓에 웃지나 않는가 하여 더욱 무류하였습니다. 그래 대답을 못 하고 있었습니다.
“흥 사위가 미치광이 지껄이는 것 들은 게로군!”
또 웃습니다. 나는 미치광이란 소리에 일종의 호기심이 울렁거렸습니다.
“네? 미치광이라니요?”
나는 의심스럽게 물었습니다. 이때 무류한 찰나를 벗어 버리게 된 것도 다행하게 생각하였습니다.
“여기 그런 사람 하나 있지! 혼잣말 잘하는 사람!”
장모는 베를 짱짱 짭니다. 홀로 말하는 사람이 어떤 사람일까 나는 더욱 의심이 났습니다.
“왜 혼잣말 할까요?”
나는 짧은 곰방대에 담배를 담으면서 물었습니다.
“누가 아나! 아무도 없으면 몹시도 지껄이지! 그러나 일은 잘해!”
“무슨 말을 해요!”
“몰라 무어라고 하는지? 공부하다 미쳤대!”
장모는 채를 뽑아서 다시 꼽습니다.
“무슨 공부?”
“누가 아나. 장수가 되려고 산에 가서 도를 닦다가 미쳤다든가?”
내 일찍 산에 들어서 도를 닦다가 귀신의 힐난에 미친다는 말은 늙은이들에게서 들었으나 이때까지 본 일은 없었습니다. 이제 짐승으로 나를 속이고 놀래이던 것이 그런 사람이라니 어떠한 잔가 하고 나는 이윽히 상상에 머리를 썼습니다. 어쩌면 공부하다가 미치나? 도를 닦는데 귀신이 어떻게 히마를 주나? 과연 귀신이 있는가? 어떠한 사람인데 무엇을 바라고 도를 닦다가 귀신이 어떻게 하여서 미쳤나? 이렇게 생각할수록 그 미쳤다는 사람이 보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미치광이라는 소리에 혼자 찾아가기는 무섭고 또 산길에 피곤한 다리는 다시 걸을 용기도 없었습니다. 나는 머리에 썼던 수건을 벗어서 얼굴에 먼지를 씻고 잠잠히 앉아서 허덕 그늘 속에서 베 짜는 장모를 물끄러미 보았습니다.
“왜 그러고 앉았나? 기운 없나? 방에 들어가서 드러눕지.”
나를 보시는 장모는 낯에 걱정스러운 빛이 보였습니다. 그것은 내가 항상 앓으니 또 어디가 아파서 그런가 걱정함이겠지요.
“아니요.”
나는 몸을 한번 틀면서
“그 사람이 어디 있어요?”
하고 나는 또 미치광이를 생각하였습니다.
“누가? 응! 미치광이 말인가? 저 건너 되놈[中國人]의 집 옆댕에 있는 김참봉 집에 있지.”
“그걸 한번 보았으면.”
“그건 보아 무엇해? 밤이면 우리 집에 놀러 오지!”
나는 장모에게 들은 말을 종합하여 미쳤다는 그 사람의 신상을 상상하면서 앞강으로 발 씻으러 나갔습니다.
2
[편집]모기떼가 어떻게 심한지 나는 저녁 뒤에 장인과 같이 뜰에 피워 놓은 모깃불 곁으로 나갔습니다. 이웃집 김장의도 오고 박서방의 부자도 놀러왔습니다. 옅은 안개가 사방을 아른히 둘러 싸서 동산 위에 높이 솟은 달빛은 으스름한 것이 그윽한 회포를 자아냅니다. 석벽이 병풍같이 둘린 동산 아래를 휘돌아 내려가는 강물 소리는 이날 밤의 정조를 더욱 농후케 하는 듯하였습니다.
“달이 물을 에웠네!”
모깃불에 옥수수 이삭을 굽던 정월돌(박서방의 아들)이는 달을 쳐다보고 코를 훌쩍 들이마시면서 중얼거렸습니다. 모깃불에 가 민상투 바람으로 돌아앉았던 어른들은 약속이나 한 듯이 일시에 달을 쳐다봅니다. 나도 쳐다보았지요. 달을 한가운데로 둥그런 무지개가 가락지 모양으로 어른히 둘렸습니다.
“또 비가 오랴나?”
김장의는 살짝 지나가는 바람에 캐―한 모깃불 연기가 낯에 스치는 것이 아치러운지 이마를 찡기고 손으로 연기를 휘휘 부칩니다.
“후치질이나 한 다음에 비가 와야지!”
걱정하시는 장인의 소리는 남의 소리 하듯 별로 걱정같이 들리지 않았습니다.
“무얼 비가 와도 이제야.”
하고 김장의는 담배를 퍽퍽 빨더니 침을 찍 뱉고,
“올가을에는 소나 한 마리 사게 될까.”
하면서 자기의 농사는 남부럽지 않다는 듯이 배를 만집니다.
“암! 김장의야 소 한 마리야 파고 심은 닥나무지! 소만 사겠소.”
말없이 우두커니 앉아서 담배만 피던 박서방은 한숨을 휘― 쉽니다. 지주에게 묵은 양식값이 있는지요?
“미치광이 또 온다. 저 미치광이!”
바로 내 옆에 앉아서 노루꼬리 같은 노―란 머리태를 회회 두르면서 이 사람 저 사람의 낯을 쳐다보면서 꺼멓게 탄 옥수수 알을 뽑아 먹던 정월돌이는 저편을 보면서 나직이 소리를 칩니다.
“이 자식 또 들오면 매 맞을라.”
박서방은 책망합니다. 나는 ‘낮에 나를 놀래던 미치광이 오는 게다!’ 생각하면서 저편을 보았습니다. 달빛이 으슥한 호박밭 가 돼지우리 뒤로 검은 그림자가 우줄우줄 오는 것이 보입니다.
“그렇게 사나운가요?”
나는 박서방을 쳐다보았습니다.
“가만 버려두면 일없지만 저를 욕만 하면 세는 것이 없어요. 저거번 이 밭 임자가 미치광이라고 했다고 돌멩이로 때려서 머리가 터졌소.”
박서방은 무슨 성수가 났는지 흥분된 어조였습니다. ‘밭 임자를 때리고 견딘다. 참말 미친 게다.’ 나는 이렇게 생각하였습니다. 이곳 밭 임자는 모두 중국사람입니다. 그 되놈들이 어떻게 무지한지 제가 글렀더래도 작인이 비위에 맞지 않으면 작인의 벌어 놓은 곡식을 빼앗고 주지 않거나 쫓거나 때리거나 그렇지 않으면 남몰래 죽이는 수가 흔합니다. 이렇게 머리를 디밀고 일하는 작인은 모두 조선 사람입니다.
“어디 사람인가요?”
“잘 알 수가 없어요. 홍원서 왔다고도 하고 북청서 왔다고도 하고 제 나이도 몇인지 모르는걸요?”
이렇게 그의(미치광이) 신상담(身上談)을 주고받는 사이에 그는 벌써 우리 앞에 나타났습니다. 이때 나는 몸서리가 칩디다.
“어! 조생원님이오.”
장인께서는 웃으면서 먼저 인사를 합니다. 그는 아무 대답도 없이 한쪽에 쭈그리고 앉더니 꽁무니에서 짤막한 담뱃대를 꺼내면서,
“담배 한 대 주오.”
하고 좌중에 손을 내밉니다. 그 어조는 조금도 서툴지 않으나 음성은 좀 청청스럽습니다. 박서방은
“제기 담배는 뫼산이야!”
하면서 쌈지에서 담배 한 잎새를 꺼내 줍니다. 그는 별소리 없이 대에다 꾹꾹 담아서 풀썩풀썩 피웁니다. 일동은 고요히 그만 봅니다. 담배를 퍽퍽 빨 때마다 번적번적 하는 불빛은 달빛을 등진 그의 낯을 번득번득 비칩디다. 그때마다 보이는 그의 우뚝한 성깔스런 코와 때가 검은 낯빛은 무섭게 보입니다. 쭈그리고 앉았던 그는 맨땅에 펄썩 주저앉아서 담배를 퍽퍽 빨더니 모깃불에다 침을 탁 뱉고 허공을 보면서 무어라고 말합니다. 말하다가는 또 담배를 빱니다. 담배를 빨고는 또 침을 뱉습니다. 침을 뱉고는 또한 허공을 보며 무어라고 중얼중얼합니다. 나는 무슨 소리를 하나 하여 주의를 하여 들었지요. 그러나 전혀 알 수가 없었습니다. 곁에 있는 이들은 모두 빙그레 웃습니다. 정월돌이는 손으로 입을 막고 킥킥 웃습니다. 그러나 미치광이는 남이야 웃거나 말거나 남이야 무어라고 하거나 말거나 조금도 쉬지 않고 어떤 때는 높게 어떤 때는 낮게 중얼중얼 합니다. 이렇게 숭얼거릴 때마다 무엇을 꼭 보는 듯하여요. 허공에 펀―히 보는 것이…….
“조 생원 책이나 보지.”
소랑소랑한 박서방은 빙글빙글 웃었습니다. 미치광이는 방을 물끄러미 봅니다.
“저 방에 있소. 저 선생님이 가지고 오셨소.”
박서방은 나를 보고 눈을 껌쩍거리면서,
“책을 좀 주오. 읽는 것을 봅시다.”
합니다. 나는 책을 읽는다는 것이 하도 신기하여서 방으로 들어가면서,
“자― 이리 들어오시오.”
하고 그자를 방으로 청하였습니다.
“그것을 뭬라고 방으로 부르나?”
부뚜막에서 바느질하시던 장모께서는 말씀합니다. 그러나 나는 그 대답을 하지 않고 그자를 방으로 청하였습니다. 박서방과 정월돌이는 빙글빙글 웃으면서 문턱에 걸터앉습니다. 깁―고 찢어지고 때가 더덕더덕한 중국 의복을 입은 미치광이는 조금도 서슴지 않고 신 신은 채로 방 가운데 펄썩 앉습니다. 나는 시렁에서 『영웅루』라는 중국 소설을 집어서 그에게 주었습니다. 그는 받아서 읽습니다. 역시 웅얼웅얼하는데 알아들을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책 첫 페이지를 편 지가 이슥토록 더 번지지 않습니다. 나는 그의 동정을 살피느라고 시간 가는 줄도 몰랐습니다.
한참 읽던 그는 목침을 찾아서 누우려고 합니다.
“에 누워서는 안돼……. 책을 이리 주어. 저 선생님도 보셔야지.”
문턱에 앉았던 박서방은 방으로 들어와서 그의 잡은 목침을 빼앗습니다.
“저 책을 달라고 하시오. 그냥 두면 날이 밝도록 들고 있어요.”
박서방은 나더러 또 말합니다. 미치광이는 가만히 앉아서 책을 이윽히 보다가 아까운 듯이 나를 주면서,
“좋은 책이오. 문리가 없이는 못 읽겠소!”
합니다. 나는 책을 받으면서,
“무슨 책인지 알겠소?”
하고 웃었습니다. 그러나 아무 대답 없이 벽에다가 걸어 놓은 기름불을 쳐다보면서 또 중얼중얼 홀로 말합니다. 아아 무서워! 이때 불 아래서 똑똑히 보니 그의 두 눈의 검은자위는 샙뜨는 듯이 똑같이 미간으로 몰켰는데 형용키 어려운 무서운 빛이 환합디다. 나는 그만 어찌 무서운지 밖으로 나왔지요.
“병신은 병신이라도 체면은 여간이 아니야! 저번 날 김참봉이 어디 간 날 밤에는 집에 들어오지 않았더래……. 그래 그 이튿날 아침에 보니까 그 비가 몹시 오는데 강가 보릿짚 속에서 자고 왔더라나!”
이때까지 침묵을 지키던 김장의는 누가 묻지도 않는 말을 합니다.
“왜 강가에서 잤을까?”
내가 물은즉,
“젊은 계집(김참봉의 아내)이 혼자 자는 집에서 자기가 싫다고 그러지요.”
김장의는 대답합니다.
“더군다나 김참봉의 여편네하고 그 뒤에 있는 되놈하고 배가 맞은 것을 보았다나 저 미치광이가……. 그런 뒤로는 김참봉만 없으면 집에서 자지 않어!”
박서방은 제가 더 잘 안다는 듯이 말합니다. 스르르 지나는 바람에 몹시 타들어 가던 모깃불은 화르르 화염이 일어났습니다. 으슥하던 주위는 환합니다. 정월돌이는 불을 흔들어 끕니다. 불 꺼진 뒤에는 여전히 몽롱한 달빛이 뜰을 쌌습니다. 사람들은 잠깐 사이에 침묵하였습니다. 앞강의 물소리는 출렁출렁 의미 깊게 들립니다.
이때 미치광이는 방으로서 나옵니다.
“조 생원 가나!”
장인께서는 소리를 쳤으나 그는 여전히 대답 없이 숭얼숭얼하면서 돼지우리 뒷길로 저벅저벅 갑니다. 나는 그의 그림자가 사라질 때까지 보았습니다.
“참 별 사람이야 미친 것 같기도 하고 성한 사람 같기도 하고……. 헐벗었으니 뉘 것을 훔칠 줄 아나, 배고프니 밥을 달라나! 주면 먹고 안 주면 말고……. 그래도 일은 잘해. 김을 매는 것이나 나무를 하는 것이나 한다하는 장정이 와도 못 따르겠던 걸! 저번에도 강가서 돈 백 냥을 얻은 것을 김참봉을 주었대! 그래야 김참봉은 저 사람을 신발 하나 새로 사 주지 않어!”
“아 김참봉이야 소도적놈인데!”
김장의의 말 뒤에 박서방은 때나 만난 듯이 김참봉을 욕합니다.
“저 사람도 내지(조선)에 부모, 처자가 있으면 저런 줄은 모르고 좀 기대릴까!”
장인께서는 고향이 그리운지 달을 쳐다봅니다. 달은 어느새 중천에 가까웠습니다.
미치광이 간 뒤에 이러한 회화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누구나 그의 내력을 아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다만 장모님의 말과 같이 장수가 되려고 공부하다가 미쳤다 할 뿐입니다. 그것도 추측인지 사실인지 확실치 못한 말입니다. 나는 이날 밤에 자리 속에서 그 미치광이의 신상에 숨었을 비밀을 머리가 아프도록 상상하여 보았습니다. 이 때 내 눈에 비치고 마음에 떠오른 그 미치광이는 미치광이 같지 않게 생각하였습니다. 나는 ‘그가 도리어 우리를 미쳤다고나 하지 않을까’고도 생각하였습니다. 그 두 눈을 또렷이 뜨고 허공을 볼 때 그는 확실히 딴 세계를 보는 듯하며 만나려는 어떤 이를 만난 듯이 생각났습니다.
3
[편집]나는 그 이튿날 급한 볼 일이 생겨서 ‘양물인재’라는 곳에 갔다가 십여 일 후 돌아오는 때에 처가에 들렀습니다. 이때에는 그 미치광이가 없었습니다. 박서방께서 들으니 이러합디다.
―말썽 많은 김참봉의 아내가 중국사람하고 연애(?)를 걸다가 어떻게 서툴러서 미치광이한테 세 번이나 들켰습니다. 그러나 미치광이는 아무 말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김참봉의 아내는 발설이 될까 겁이 나서 미치광이가 밥을 도적질한다고 남에게 거짓말로 모함하였습니다. 귀 넓은 김참봉은 그 말을 옳게 듣고 미치광이를 죽도록 때려서 쫓았습니다. 미치광이는 김참봉 집에서 일 잘하여 준 보수라고 할런지 돈 한 푼 못 받고 매를 죽도록 맞고 쫓겼건만 아무 소리 없이 태연자약한 태도로 갔다 합니다.
그 후에는 벌써 4년째나 그 미치광이의 소식을 나는 못 들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늘 돈도 계집도 모르고 천애이역에 표박 유리하여 태연자약하는 그 미치광이를 그윽히 생각합니다. 그 미치광이는 지금 어디 가서 살았는지 죽었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