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정기의 심판/제3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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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臨戰報國團이 組織되기까지의 經緯[편집]

황민화애국운동에 첨단적 역할을 한 조선임전보국단은 일찍이 皇道宣揚과 강력한 실천력의 발휘 등을 취지로 조직된 興亞보국단과 임전대책협의회 양 단체가 합병되어 성립된 것인데 합병되기까지의 裏面에는 金東煥 李晟煥 崔麟 등의 헌신적 역할이 多大하였다. 그 중에도 김동환은 친일거두들을 歷訪하여 동일한 취지를 가진 양 단체가 존재할 필요가 없음에 합병하여 더욱 강력한 황민화애국운동을 전개하자고 역설하였다. 결국 그들의 유도작전이 성공하여 1941년 9월 3일에 양단체 중심인물들이 국민총력조선연맹사무국에서 회합하여 川岸 사무국총장의 斡旋으로 합병하기로 결정하였다. 그리하여 명칭을 朝鮮臨戰報國團이라 명명하고 황민화애국운동의 첨병이 되기를 맹서하였던 것이다.

그러면 臨戰報國團의 모체인 양 단체의 정체를 밝혀보기로 하자.

(1) 興亞報國團 解剖

서기 1941년(소화 16년) 8월 24일 조선호텔에 모인 친일주구배들은 소위 興亞報國團준비위원회를 개최하여 一大 氣焰을 올렸는데 그 강령과 陣營은 如左하다.

綱領及陣營

1. 皇國精神의 昻揚

1. 강력한 실천력의 발휘

1. 시국인식의 철저와 이의 대책결의

1. 勤勞報國의 실행

委 員 長 : 尹致昊

常務委員 : 尹致昊 韓相龍 高元勳 閔奎植 金?洙 朴興植 曺秉相 李聖根 元悳常 鄭僑源 金思演 李升雨 梁柱三 李丙吉 徐光卨 玄俊鎬 李基燦 方義錫 金明濬

(道委員)

경기도 : 尹致昊 韓相龍 高元勳 閔奎植 金?洙 金?洙 朴興植 曺秉相 鄭僑源 崔 麟 李聖根 朴相駿 元悳常 李軫鎬 金思演 李升雨 吳兢善 兪億兼 李丙吉 梁柱三 徐光卨 任明宰 崔南善 李鍾麟 金東煥 韓圭復 金東勳 金時權 孫永穆 李圭元 兪萬兼 金泰勳 金明濬 劉鎭淳 木下永植 木川鳳鎭

충 북 : 李明求 南憲

충 남 : 林昌洙 金甲淳

전 북 : 崔承烈 金英武

전 남 : 玄俊鎬 文在喆

경 북 : 張稷相 徐丙朝

경 남 : 李恩雨 金典幹

강원도 : 朴箕陽 崔準集

황해도 : 金基秀 閔丙德

평 남 : 李基燦 全健永

평 북 : 李熙迪 李泳贊

함 남 : 方義錫 金明學

함 북 : 金定錫 張憲根

(2) 臨戰對策協議會解剖

1941년(소화 16년) 8월 25일 尹致昊, 崔麟, 李聖根, 李軫鎬, 鄭僑源, 韓相龍, 申興雨, 張德秀, 曺秉相, 李光洙, 朴興植, 韓圭復, 金○○, 李鍾麟, 李升雨, 朱要翰 등 400여 명의 親日走狗輩가 府民館에 모여 오후 6시부터 臨戰對策協議會를 敢行하였다. 會는 順序대로 進行되어 決議文을 日帝侵略의 元兇에게 各各 送付, 日帝 陸海軍에 感謝電을 打電, 계속하여 崔麟, 李光洙, 朱要翰이 일어나 愛國至誠에 떨리는 말솜씨로 醜態를 演出하고, 다음에 實踐委員 35명을 選出하고 閉會하였는데, 그 決議文과 綱領 및 委員은 如左하다.

決議文(尹致昊 朗讀)

우리는 皇國臣民으로서 一死報國의 誠을 맹서하여 臨戰國策에 全力을 다하여 協力할 것을 決議함.

綱領

1. 物質 勞務 供出의 徹底化.

2. 國民生活을 最低標準에 引下.

3. 戰時奉公의 義勇化

委員(35명)

尹致昊 韓相龍 李軫鎬 崔麟 申興雨 金思演 李鍾麟 崔楠 鄭僑源 方應謨 趙基? 李聖根 任明宰 元悳常 張友植 金東煥 李升雨 朴基孝 李容愼 李○卨 辛泰獄 崔南善 李鍾殷 韓圭復 金時權 朴仁德 曺秉相 兪億兼 李晟煥 金○○ 朴興植 李丙吉

臨戰對策 大講演會記

前記 臨戰對策協議會에서는 倭皇의 赤子로서의 忠誠을 다하기 위하여 서기 1941년(昭和 16년) 9월 4일 오후 6시 반부터 府民館에서 臨戰對策 大演說會를 開催하였는데, 그들의 犬吠之聲과 같은 말솜씨는 실로 末世紀的 壯觀이었다. 다음에 그들의 演說要旨를 公開한다.

<演題及演士>

極東의 決戰과 吾人의 覺悟 --- 尹致昊

泣訴 --- 崔麟

愛國의 至誠과 此機會 --- 李晟煥

勝戰의 길은 여기에 있다 --- 朴仁德

東京 大阪은 이렇다 --- 辛泰嶽

太平洋 風雲의 展望 --- 申興雨

30년 전의 回顧 --- 李鍾麟

松花江水여 말하라 --- 金東煥

<極東의 決戰과 吾人의 覺悟>--- 尹致昊

世界는 언제든지 戰爭이 있어 왔다. 이것이 인류의 역사이다. 이번도 적은 전쟁에서 시작되어 세계의 운명을 결정할 獨蘇戰爭이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지금 米英은 그 老獪스런 手段으로 여러 가지로 제국의 행로를 방해하고 있으나 최후의 승리는 우리 대일본제국에 있다. 이에 半島 同胞는 국책에 순응하여 光榮의 赤子로서 天皇陛下에 몸을 바쳐야 하겠다...云云.(이하 略)

<泣訴> --- 崔麟

우리 조선사람은 時局 認識이 아직도 부족하다. 또한 말보다 실천이 急務이다. 지금 당면한 시국은 東亞共榮圈 확립과 新東亞 건설에 있는 바 우리 민중은 이 목적을 위하여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아니되겠다. 지금 미국이 상투적으로 말하는 민족자결주의에 속아 넘어가서는 아니되겠다. 米英 指導하에 세계평화는 영구히 바랄 수 없다. 지난번 近衛 수상의 '멧세지' 내용이 어떠한지 알 수 없는 바이지만, 내가 만일 '멧세지'를 보낸다면 “일본의 실력과 국책과 대화정신을 米國 大統領이여! 다시 인식하라”고 보내고 싶다. 조선사람은 內地人에 비하여 ‘희생심’이 부족하다. 이 비상 시국에 반도민중의 희생적 각오를 한 번 더 강조한다.(이하 略)

<愛國의 至誠과 그 機會> --- 李晟煥

반도청년이 궐기할 기회는 바로 이 때이다. 약소민족은 孤立할 수 없고 오직 대국가 주위에 한 덩이가 되지 않으면 아니 될 것으로, 이때 지성을 다하자...云云.(이하 略)

<勝戰의 길은 여기에 있다> --- 朴仁德

“1천 2백만 여성이 본직을 다하여 銃後의 가정을 지키며 물질생산에 협력을 할 각오가 있어야 하겠소. 이것이 바로 승리의 길이라 하겠소”라고, 닭의 똥꾸녕같은 입술로 지꺼렸다.

債券 街頭 遊擊隊 行狀

臨戰對策大講演會를 끝마친 臨戰對策協議會에서는 “이로서 실천으로!”라는 슬로건을 세우고 동 회원 70여 명을 총 동원하여 債券街頭遊擊으로 나섰다. 즉 동년 9월 7일 70여 명을 시내 11개 장소로 배치시켜 각각 채권을 들고 나서서 “銃後奉公은 채권으로부터”라고 외치며 정신에 이상이 없는 한 도저히 할 수 없는 추태를 연출하였는데, 실로 그들 무리의 행동은 가증스러운 것보다도 가소롭기 짝이 없었다.

鐘 路 隊 : 尹致昊 韓相龍 崔麟 李光洙 金東煥 李容愼 方應謨 朴仁德 毛允淑

光化門隊 : 朴相駿 李聖根 閔奎植 梁柱三 金晟鎭 金東進 兪億兼 朴英熙

西大門隊 : 申興雨 朱要翰 具○玉 盧昌成 蘇完奎 辛鳳祚 高鳳京

黃金町隊 : 高元勳 朴興植 張友植 李鍾麟부부 朴彰緖 등

南大門隊 : 金甲淳 曺秉相 元悳常 吳競善 李覺鐘 李○卨

本 町 隊 : 李軫鎬 愼鏞頊 金時權 金○洙 任興淳 金昇福 崔貞熙 辛泰嶽과 그의 딸

明治町隊 : 金明濬 崔○學 李淑鍾 李昌變 李鍾會

京城驛隊 : 鄭僑源 李敦化 朴基孝 宋今璇 金思演부녀 孫弘遠

鐘路 4隊 : 韓圭復 李鍾殷 吳龍鐸 趙大河 외 천도교회 일파

東大門隊 : 尹益善 崔元燮 全富一 李定宰 咸○勳

淸凉里隊 : 成義慶 鄭仁果 洪世雷 元翊常 趙基? 鄭廣朝(가족총동원)

連絡本部 : 李晟煥 李奎載(화신 사교실내 가족 총동원)

2. 臨戰報國團 準備委員會[편집]

委 員 長 : 尹致昊

副委員長 : 崔麟

準備委員 : 崔麟 高元勳 李晟煥 朴基孝 金思演 朴興植 金東煥 韓相龍 金?洙 李聖根 金時權 辛泰嶽 朴仁德 申興雨 李光洙 張○秀 등

結成式 앞두고 各道에 遊說隊 派遣

출회장소 집회 시일 파견위원 성명

춘 천 읍 10월 18일 高元勳, 李晟煥

대 전 부 10월 10일 朴基孝, 李晟煥

청 주 읍 10월 11일 朴基孝, 李晟煥

해 주 부 10월 11일 崔 麟, 金思演

평 양 부 10월 13일 高元勳, 朴興植

신의주부 10월 11일 李聖根

함 흥 부 10월 14일 韓相龍, 金東煥

청 진 부 10월 15일 韓相龍, 金東煥

대 구 부 10월 18일 金時權

부 산 부 10월 19일 金時權

진 주 부 10월 18일 金?洙, 辛泰嶽

광 주 부 10월 19일 金?洙, 辛泰嶽

임전보국단의 기금으로 20만 원 제공한 자

金?洙 朴興植 閔奎植

3. 朝鮮臨戰報國團 結成大會記[편집]

나라를 송두리채 팔아먹고도 오히려 부족하여 5천 년의 빛나는 단군민족의 국유문화와, 심지어는 우리 민족의 유일한 전통적 문화재인 우리말과 우리글까지 말살하고, 소위 창씨제도를 실시케하여 성까지 강탈하고, 청장년을 징병이니 징용이니 보국대니 학병이니 하여 죽음의 구렁 속으로 몰아넣던 이땅 인민의 원수 친일파 매국도배들의 집단 臨戰報國團은 서기 1941년(昭和 16년) 12월 22일 오후 4시 府民官 대강당에서 倭奴 대표들과 尹致昊, 崔麟, 李聖根 등 준비위원과 각도 발기인 대표 등 6백여 명이 모인 가운데 그 결성의 막을 열었다. 이 神人이 공노할 친일 매국배들이 일본을 위하여 盡忠報國을 맹세하는 대회석상에서 준비위원장 尹致昊를 대신하여 崔麟이 개회사를 하였는데, 그 요지는 다음과 같다.

“적성국가에 포위되어 있는 오늘의 우리 황국은 興亡岐路에 입각하여 국민의 一大奮起를 바라마지 않는 바로, 반도 2천 4백만 민중도 이에 분연히 임전태세의 정비 강화에 호응하여 朝鮮臨戰報國團을 결성하기로 된 것이다.”

다음으로 座長에 高元勳이 선임되었는데, 高元勳의 동의로 “출전 장병의 苦勞를 감사한다”는 感謝電을 打電하기로 채택하고, 다음에 준비위원으로서의 李晟煥의 결과 보고가 있었고, 이어 朝鮮臨戰報國團의 취지, 강령, 규약 등을 낭독 결정하고, 이어 역원 선정, 다음에 단장에 被任된 崔麟으로부터의 취임인사가 있었고 폐회하였는데, 취임인사의 요지는 다음과 같다.

“本 團의 성격과 운영으로 보아 실로 사명이 중대한 바 반도민중들의 자발적 분기라고는 하지만 軍, 官, 民이 일체가 되어야 목적을 달할 수 있다. 여기에 미력을 다하겠다...云云”

趣旨書(金東煥, 李光洙 大力作)

我國은(註: 日本) 現今 有史以來 가장 중대한 시국에 직면하고 있는 동시에 또한 가장 숭고 존엄한 大東亞共榮圈 확립의 성업 완수의 途上에 있다. 차제 황국에 亨生한 자는 누구임을 불문하고 각자의 分에 응하여 그 誠을 竭하고 국운의 진전에 기여하지 않아서는 안될 것은 물론이다. 차제를 당하여 我等 반도민은 과연 현재의 태도 그대로 나가도 좋을런지 설령 我等은 특별지원병 외에 일반적으로 병역에 服하는 명예의 기회를 가지지 못하나 적성을 가지고 정신적, 물질적 또는 勞務的으로 전력을 기울여 銃後奉公에 일층 철저하여서 충렬한 장병의 분투에 대응하고, 무한한 황은의 만분의 일에 奉報하는 방도가 열리고 있다. 그리고 이와 같이 해서 반도가 物心 共히 兵站 기지됨의 진가를 발휘하는 것은 이 기회를 놓치고서는 재차 얻지 못할 것으로 생각된다.

이는 我等 下記한 자 등의 확연히 일어나는 애국의 지성으로부터 감히 自端함이 없이 이에 국민운동의 강력한 일개인으로서 ‘朝鮮臨戰報國團’의 설립을 기도하고, 널리 반도 2천 4백만의 제군에게 微哀를 호소하려는 所以이다. 我等의 취지를 찬성하고 憂를 같이하여 志를 함께하는 강호의 諸士는 속히 來參하여 이 애국운동의 발전 조성에 全幅의 협력을 해주기를 요망하여 마지않는 바이다.

綱領

1. 我等은 皇國臣民으로서 皇道精神을 宣揚하고 사상의 통일을 기한다.

1. 我等은 전시체제에 卽하고 국민생활의 쇄신을 기한다.

1. 我等은 勤勞報國의 정신에 기해서 國民皆勞의 實을 거두기를 기한다.

1. 我等은 국가 우선의 정신에 기해서 國債의 소화, 저축의 勵行, 물자의 공출, 생산의 확충에 매진하기를 기한다.

1. 我等은 국방사상의 보급을 圖하는 동시에 一朝有事之秋에 의용방위의 實을 거두기를 기한다. 4. 咀呪받을 叛逆者 群像

朝鮮臨戰報國團 陳容[편집]

<顧 問> 尹○昊 李軫鎬 韓相龍 朴重陽

<常務理事> 申興雨(高靈興雨) 朴基孝(三井基義) 金?洙 閔奎植 朴興植 金思演 方義錫 曺秉相(夏山茂) 李容愼(公山容愼) 鄭僑源(島川僑源) 金時權(菊山時權) 金東煥(白山靑樹) 韓圭復(井垣圭復) 李鍾麟(瑞原鐘麟) 李聖根(金川聖) 李鍾殷(廣田鍾殷) 李晟煥(安興晟煥) 元悳常(元村肇)

<專任理事> 李晟煥

<理 事> 崔○學 李丙吉 兪億兼 玄○允 崔○善 具滋玉 辛泰嶽 金甲淳 李圭元 張○秀 丁殷燮 金基秀 李明求 玄俊鎬 金瑞圭 高一淸 金明學 安種哲 李基燦 張稷相 方○謨 張憲根 金慶鎭 金英武

<監 事> 朴相駿 金○洙 孫泳穆 金東勳 金明濬

<評 議 員> 任興淳 盧昌成 李晶燮 金東進 徐椿 咸○勳 金昇福 金周益 吳龍鐸 趙基? 兪萬兼 李鍾殷 金泰錫 崔奎東 李兼奎 閔奭鉉 張騏植 李相協 金明夏 安寅植 柳光烈 李○求 趙東植 李升雨 蘇完奎 張友植 吳競善 李鍾會 朴彰緖 孫弘遠 梁○三 張錫元 韓翼敎 徐光卨 朴昌薰 鄭求忠 李駿烈 鄭仁果 金○○ 鄭春洙 朴英熙 趙大河 鄭顯謨 李○卨 愼鏞頊 朴勝彬 朴仁德 任明宰 白基肇 金晟鎭 梁在厦 安鍾和 李淑鍾 黃信德 毛○淑 崔貞熙 文在喆 鄭雲用 金星權 成義慶 李漢復 朴世宗 金鴻亮 閔丙德 金相殷 李重甲 閔泳殷 金元根 李鍾悳 梁相鄕 崔昇烈 張炳善 宋和植 金信錫 車南鎭 金東準 金璋泰 李冕載 金○元 蔡弼近 崔鼎? 李熙迪 姜利璜 李泳贊 趙永禧 南百祐 李昌仁 金定錫 尹錫弼 徐丙朝 申鉉求 朴浣 朴熙道 李覺鍾 金基德 등

<團 長> 崔麟

<副 團 長> 高元勳

<總務部長> 申興雨

<部 員> 李晟煥 沈明燮 李容愼 金根鎬

<事業部長> 李晟煥

<部 員> 朱○翰 趙基? 吳龍鐸 金善 毛○淑 田村芙紀子

<戰時生活部長> 李光洙

<部 員> 具○玉 林孝貞 金東煥 李晶晟 崔○熙 金善 朴奉愛

盡忠奉公을 神前에 선서

朝鮮臨戰報國團은 10월 22일에 결성하고 그 이튿날 아침 단장 崔麟 이하 약 백명이 朝鮮神宮에 참배하여 신전에 盡忠奉公을 선서하였고, 李晟煥이 선서문을 낭독하였는데 그 요지는 다음과 같다.

吾等은 임전체제 하에서 一切의 사심을 떠나 과거에 拘泥되지 않고 개개의 입장에 사로잡힘이 없이 2천 4백만 반도민중은 盡忠奉公할 것을 玆에 선서함.

5. 臨戰報國團 各道 支部[편집]

平北支部

서기 1941년(昭和 16년) 10월 11일 臨戰報國團 준비위원 李聖根이 지방 유세대로 신의주에 來到함을 기회로 평북지부 발기총회를 동월 17일에 개최하여 역원을 선출하니 亡種들의 성명은 다음과 같다.

李熙? 黃觀河 高一淸 李貞根 李泳普 白基肇 姜利璜 등 (이하 略)

慶北支部

동년 12월 7일 제2차대전이 폭발하기 전날 대구부 내 旭町공립국민학교 강당에서 崔麟 韓圭復, 李晟煥이 참석한 가운데 臨戰報國團 경북지부 결성대회가 개최되었는데, 고문 4명, 상임이사 15명, 이사 36명, 평의원 46명, 감사 4명을 선출하고, 선서문을 낭독하고 崔麟으로부터 ‘大東亞共榮圈 확립과 태평양’, 韓圭復으로부터 ‘朝鮮臨戰報國團의 사명’이라는 제목으로 축사가 있었고, 이어 폐회하였는데 피선된 상임이사는 다음과 같다. 鄭海鵬 李龍雨 徐丙國 徐丙朝 徐丙元 徐喆圭 鄭雲用 金龍周 安炳圭 文明琦 李浩 李採雨 金聖在 金斗河 秋谷秉和

咸北支部

서기 1942년(昭和 17년) 1월 13일 亡種들이 다수 모인 가운데 臨戰報國團 함북지부 결성대회가 개최되었는데 이 날 피선된 役員은 다음과 같다.

金弘燮 李奎榮 車學淳 金秉洽 趙岐煥 李載夏 崔冕載 朴時俊 金周益 崔天煥 朴建三 朴東烈 金日憲 呂○○ 朴周亮 崔智煥 全應九 金大源 尹錫弼 張仁德 吳快一 金昌一 金基哲 李昌仁 金瀨根 金定錫 崔英旭 金在洙 姜鶴秉 金泰龍 張彩極 車運轍 南潤九 朴昇鍾 沈鍾勳 李鍾奎 東野黃? 李觀鎭 利川英文 祥原弼顯 大山茂松 黃鍾國 武本盛達 甑山東 ?卿東 松山雲鶴 張憲根

(각 도마다 臨戰報國團 지부가 있지만 지면관계로 略함.)

6. 臨戰報國團 全鮮大會記[편집]

결성식 이래 강령을 ‘슬로건’으로 하여 皇民化운동을 맹렬히 전개하여 혁혁한 공적을 세운 일제 赤狗輩의 소굴 임전보국단은. 앞으로 더욱 강력한 태세로서 소위 대동아전쟁 완수를 推進코저 서기 1941년(昭和 16년) 12월 14일 오전 10시 부민관 강당에서 倭奴 대표들과 단장 최린 이하 전선 각도 대표자 1천여 명이 모인 가운데 전선대회를 열었다. 회는 宮城遙拜로서부터 진행되었고, 친일거두 韓圭復이 소위 宣戰大詔를 봉독하자 崔麟이 등단하여 일제의 원흉 東條 못지않게 우국의 지성이 철철 넘는 듯한 간사한 목소리로 大獅子吼하였다. 그 연설의 요지는 如左 하다.

“지난 8일 전 세계의 公敵인 英米에 선전을 포고한 지 1주일도 못 되어 우리 황군은 諸戰에서 혁혁한 전과를 거두고 있다. 우리는 국민의 피와 감격으로서 이 첩보에 환성을 올려야 한다. 日, 獨, 伊 삼국협정 등 전부가 국운의 隆昌을 말하는 것으로 우리는 이 광영을 더욱 빛내야 한다. 병참반도 2천 4백만 민중의 책무는 더욱 重大且大 하여졌다. 그런데 반도민중 가운데는 황군의 위대한 실력에 신뢰할 줄만 알고 銃後戰의 중요성을 잘 인식하지 못한 사람이 있다. 그러므로 우리 민중의 지도자들은 일선과 銃後가 다같이 挺身奉公 해야만 한다는 것을 널리 일반 민중에게 인식시켜 가지고 사상의 통일, 군수자료의 헌납, 노무의 공출 등 銃後의 직책을 다하여야 한다.”

다음의 결의문과 감사전보를 일선에 발송할 것을 결의하였는데, 그 결의문과 감사전문의 내용은 如左 하다.

決議文

吾人은 반도 2천 4백만의 황민이 일심일체가 되어 대미영 선전의 大詔를 奉載하여 대동아전쟁 완수의 천업에 殉하고자 결사분투할 것을 盟誓함. 右決議함.

感謝電文

對米英 선전의 大詔를 奉載하고 경성에서 전선 국민대회를 개최함에 당하여 황군장병의 충용에 대하여 심심한 감사의 意를 표함.

그리고 이 날 결의된 諸案은 如左 하다.

(1) 戰時下 思想統一運動의 구체적 방책에 대하여는

思想統一案

① 교육勅語 및 宣戰大詔의 정신보급 철저

② 大東亞戰爭의 意義의 보급 철저

③ 시국 및 戰況 뉴스의 보급 해설

④ 國家, 國民歌, 講話, 漫談

實踐方法

① 단원부부 및 가정의 실천

② 단원 각자 애국반 및 부락연맹 보조

③ 전시생활 선전대 조직

(2) 군수자재 헌납운동에 대하여는

① 2천 4백만 전 민중이 한 사람도 빠짐없이 赤誠의 헌금을 하여 대헌납운동을 추진

회가 끝난 다음 이들 忠犬들은 즉시 朝鮮神宮에 필승기원 참배하였다.

7. 所謂 聖業完遂의 大氣焰을 吐露한 米英打倒 大講演會記[편집]

자기네의 영달과 부귀를 위해서는 국가도 민족도 염두에 없다는 피에 굶주린 잡귀들이 모인 全鮮대회를 끝마친 臨戰報國團은 동일 오후 6시 부민관 강당에서 犬吠之聲과 같은 미영 타도 대연설회를 열었는데 그 연설 요지를 지상에 공개한다.

<적의 降伏하는 날까지>--- 金東煥(白山靑樹)

“우리의 적 蔣介石의 정권을 비롯하여 영미를 이 지구상에서 격멸치 않고서는 오늘의 ‘배급미’까지라도 편히 얻어먹을 수 없는 형편이다. 그 완강하다고 하는 米英 함대도 불과 3, 4일에 격멸되고 있는 것을 보면 이제야 敵性國家는 天罰을 받는 날이 돌아왔나 보다.

蔣介石은 이제 오로지 항일을 버리고 그가 진실로 나갈 길이 있을진대 그 거느린 수백만군을 저 영국에서 신음하는 인도나 ‘비루마’에 진군시켜 그들을 구원함도 좋으렷다. ‘루즈벨트’로 말하더라도 이제 比律賓 등이 我國의 수중에 들게 되면 태평양상에 촌토의 발 붙일 곳도 없어 대통령 자리를 내어놓는 전락의 몸이 될 것이다. 또한 전통과 역사를 가진 인도를 착취하는 영국 여기도‘처칠’의 餘命은 멀지 않을 것이며, 동아 천지에서 이 3대 적이 물러서는 날 동양의 10억 민중은 갱생의 길을 얻게 될 것이다.”

<사상도 함께 영미 擊滅>--- 李光洙(香山光郞)

“12월 8일 황공하옵께도 내리옵신 宣戰大詔는 우리 2천 4백만 민중에게도 한 사람 한 사람이 다같이 받든 것이다. 그러나 아직도 우리들 중에는 이를 깨닫지 못하는 이가 있는 모양이다. 이제는 다 청산하고 천황폐하의 뜻으로 돌아와야 할 것이다. 이제 우리의 나갈 길이 있다면 오직 皇國臣民으로서 각오를 굳게 하여 나는 “천황폐하 어른의 아들이니라”는 생각을 늘 잊지 말고, 이 성업 완수에 매진할진대 子子孫孫 영화를 얻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아니하면 다만 멸망의 길이 있을 뿐이다.”라고 말하고 자유주의 개인주의적 사상을 버리고 황실중심주의로 돌아오라고 결론지었다.

<타도 미영 침략주의>--- 李晟煥

“탐욕의 牙城 백인 제국주의의 張本 米英을 이제 격멸함이 없이는 우리 자손의 발전을 바랄 수 없다. 아직도 그 甘夢에서 깨지 못하고 8개조 선언을 내세우고 다시 세계경찰권을 장악하려는 야심 밑에 ‘루즈벨트’와 ‘처칠’이 회견하였던 죄악의 군함은 수일 전 우리 황군의 폭격 밑에 분쇄되고 만 것을 보면 米英의 침략주의는 이제 ‘심판의 날’을 만난 것이다. 여기에 있어서 2천 4백만 민중은 오직 一環一心이 되어 수백 년 수천 년 우리 자손들의 장래를 생각하며 성전 완수에 최대 협력하여야 할 것이다.”

<一怒而安天下>--- 李敦化(白山一熊)

“이번 대동아의 전쟁의 뜻은 明之明과 같아서 설명이 필요치 않다. 태평양에서 지금 들리는 비행기 대포소리에는 一怒而安天下라는 속삭임이 있다. 미영의 물질문명이란 빵 속에다가 ‘아편을’ 넣은 문명이다. 支那 민중이 여기에 속아난 것이다. 이들은 전 지구를 식민지로 만들어 착취 위에 高樓巨閣을 세워 놓고서 인종차별로 시종하였을 뿐으로, 이들의 가면적 문명에 우리는 속아왔던 것이다. 미영 문명은 이제 말세를 점하는 때를 당하였다. 한번 정의를 들고 나선 우리 황국의 一怒에 이들의 가면은 전복되고 새로운 문명이 초래될 것이다”라고 역설하며, 대동아전쟁은 하늘이 보는 하늘이 명하는 성전이므로 오직 머지 않아 승리가 약속될 뿐이라고 끝을 맺었다.

<루즈벨트여 대답하라>--- 朱○翰

“比律賓을 독립시킨 것이나 9개국 조약으로 중국의 자주독립이니 영토보존이니 주장한 것도 결국은 미국의 침략적 문호개방이었고, 그들이 말하는 海洋自由란 미영 두 나라만의 생존을 위한 수작이다. 이렇게 假面 속에서 착취에 급급하던 米英을 위하여 우리 일본은 8일 새벽 폭탄의 세례를 보낸 것이다. 개전 수일만에 미국 함대의 7할을 격멸한 이 보도는 전세계를 놀래이고 있다. 이 위력에 일본의 株券은 자꾸 오르건만 미국의 주권은 폭락 일로에만 있어 아무런 가치도 없다. 우리는 이렇게 동양인이 잘 살 수 있는 東亞共榮圈을 세우고 있다. 지금 우리의 가정에는 고무신과 석유가 없지만 우리 皇軍의 손에 蘭印이 장악되는 날도 머지 않아 실현이 될 것이다.”라고 大氣焰을 올리고 “2천 4백만아! 諸君은 奸敵 米英의 노예가 될 터이냐 대동아의 주인이 될 터이냐.”하고 절규하였다.

<東亞共榮圈의 확립>--- 玉?珍

“여러분은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러 왔다는 미국 선교사들의 교만과 차별을 잘 알고 있지 않은가. 다시 지도를 한번 펴보자. 이들은 10억만이 사는 東洋의 구석구석을 점령 착취하고 있지 않는가. 자유주의 백년간에 富를 獲得한 나라는 米英 양국이다. 이 지구 위에 ‘부의 균등’을 위하여 또는 동아의 공존공영을 위하여 우리 일본이 주장하는 신질서의 전쟁이 계속되고 있다. 이 新秩序主義는 몰락하는 자유주의 위에 들어설 새 主義로서 이 목적 관철을 위하여 半島 동포는 최대의 협력을 해야 할 것이다. 우리가 현재 생활상 당하는 곤란도 米英에 책임이 적지 않다. 기필코 우리는 대동아의 공존공영의 최고 이상을 획득하여 간악한 米英의 착취와 침략을 격멸시켜 聖業完遂에 邁進하지 않으면 아니될 것이다.”

8. 民族魂을 秋波에 싫고 倭帝의 王冠을 획득한 狼子群[편집]

왜정시대에 우리나라 인테리 여성의 행동은 尖端的이었다. 복잡다단한 추세의 飜弄을 받아 역경에 지배를 받은 인테리 여성도 있겠지마는 대부분은 자아의 정신을 근본적으로 말살시키고 대담하게도 왜정의 총애를 받아 富貴功名을 얻으려는 야망에서 민족혼을 추파에 실리고 돌진한 여성이 많이 있었음은 민족적으로 遺憾千萬이라고 아니 할 수 없다. 그러나 그들이 과거를 반성하고 更生의 정신으로 민족을 지도한다 하면 다행으로 여기겠지마는 오히려 왜정시대보다 한 술 더 떠서 軍政에 아참하여 순박한 朝鮮여성으로 하여금 정신을 混亂케 하는 여성이 있음은 재검토하지 않을 수 없다. 功名이란 양심을 埋葬시키는 灰色帳幕인지 어떤 여성은 무슨 黨을 조직하고 최고 간부급에서 여보란 듯이 국회의원 출마까지 하였다. 위선의 가면이란 수명이 길지 못하거늘 진리가 용서치 못하는 緣故이다. 그러니만큼 그들의 더러운 야망은 劈頭에 실패하고 말았던 것이다. 오늘은 金가의 품으로 내일은 李가의 품으로 굴러다니며 자기의 살덩어리를 파는 매춘부는 차라리 동정할 여지나 있겠지마는 철면피하게 大道를 활보하는 소위 여성의 지도자라는 자들의 죄악은 도저히 민족적으로 용서치 못할 뿐만 아니라 또한 그들의 죄악을 묵과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여기에 朝鮮臨戰報國團 決戰婦人大會 석상에서 大氣焰을 토로한 諸 여사들의 연설 요지를 공개하여 민족의 냉엄한 심판에 임하려 하며 그들 개인 개인의 죄악사는 後輯에 소개하겠다.

決戰婦人 大演說會記

서기 1941년(소화 16년) 12월 27일 오후 2시 府民? 대강당에서 朝鮮臨戰報國團 決戰婦人大會를 결성하고 그날 밤 6시에 左記 연사가 강연하였다.

迷夢에서 깨자 林孝貞

軍國의 어머니 崔貞熙

여성의 武裝 金??

가정의 신질서 任宰

銃後여성의 각오 許河伯

여성도 戰士다 毛?淑

사회 朴仁德

開會 劈頭에 朴仁德 여사가 左와 如히 개회사를 하였다.

“전세계 인류의 적 앙그로식손의 혈통을 받은 老英帝國과 혼혈종인 양키 亞米利加와 미몽에 꿈꾸는 장개석은 이제야 우리 皇軍의 正義劍道하에 멸망받게 됨은 시간문제입니다. 이제 우리 1천 5백만 여성은 당당한 황국여성으로서의 천황폐하께 충성을 다할 千載一遇의 劃時期입니다. 이에 우리 반도여성을 대표로 하여 결전보국부인회를 조직하고 오늘날과 같은 특별대강연회를 개최하게 되었습니다. 云云”(이하 略)

<迷夢에서 깨자>--- 林孝貞

“우리는 시국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체 하면서도 아직도 헛된 꿈 속에서 해매이고 있는 자가 얼마든지 있다. 여러분! 이 시국을 누구보다도 깊히 인식하고 있다 하면 무슨 불만 불평이 있겠습니까. 웨! 채권을 사지 않고 增稅가 된다고 매점매석 행위를 敢行합니까. 웨! 아들을 지원병으로 내놓지 않는가. 이제 우리들은 우리의 피까지 우리의 몸까지 모든 것을 이 전쟁에 제물로 바치지 않으면 아니된다. 우리는 아직까지도 庶子 行爲로 民籍하고 있었다. 이 庶子생활을 완전히 버리고 천황폐하의 赤子로서 나가자! 우리에게 칼이나 총의 차례가 못온다 하면 주방에 있는 食刀나 부지깽이라도 들고 이 전쟁에 나서야 할 것이다.”

<軍國의 어머니>--- 崔貞熙

“우리들은 국군의 어머니로써의 秋毫도 부끄럽지 않을 만한 인격과 실력을 갖추지 않으면 아니된다. 그리고 우리는 아들이나 딸이나 아낌없이 나라에 바칠 의무가 있다. 우리 1천 5백만 여성이 한 맘 한 뜻으로 銃後奉公한다 하면 우리의 千秋萬代 내려가면서 代代孫孫이 황국신민으로서의 무한한 행복을 누릴 것이다. 만약 이번 대동아전쟁에 진다 하면 우리는 가족도 없다. 재산도 파괴된다. 국가도 가족도 없는 사회에 우리의 생명이 어찌 있겠는가. 있는 것은 오직 멸망뿐이다.”

<女性의 武裝>--- 金??

“저 黑奴 解放의 싸움을 聖戰이라고 했고 십자군의 싸움도 聖戰이라고 했다. 그러나 이제 聖戰은 정말로 내려진 것이다. 동아 10억의 민족을 해방하고 광명으로 인도하려는 道義의 전쟁이다. 우리 銃後 半島女性은 지금 이 道義전쟁에 한 사람의 투사로써 가담하고 있다는 광영을 가졌다. 도의의 전쟁에 여성은 모름지기 도의의 무장을 갖추자는 말이다. 희생의 투구를 쓰고 赤誠의 갑옷을 입고 긴장과 자각으로써 허리띠를 매고 제일선 장병과 보조를 같이 하여 道義를 무시한 물질 제일주의의 서양문명을 박차버리고 東亞의 천지로부터 米英을 격퇴하여 버리자!”(이하 略)

<家庭의 新秩序>--- 任宰

“우리의 가정은 戰場이요 우리는 戰士다. 전장인 가정과 전사인 우리들은 먼저 우리들의 의식주를 決戰體制로 고쳐야 할 것이다. 보시요! 긴 치마자락을 가슴에 잔뜩 안고 다니면서 戰士행위를 어찌합니까. 우리는 마음도 武裝함과 동시에 표면에 나타나는 우리의 의복도 무장하지 않으면 銃後奉公을 다할 수 없소이다. 蒼空을 보시요. 저 인류의 적 양키의 醜翼이 빈번하게 날아오지를 않습니까. 刻一刻으로 전쟁은 深刻하여지는 오늘날 우리는 충성을 다하여 몸과 마음을 나라에 바칩시다.”(이하 略)

<銃後女性의 覺悟>--- 許河伯

“우리 여성 가운데 아직도 비단옷에 여우목도리를 두르고 다니는 분이 있다 하면 그야말로 비국민적 행위입니다. 우리는 가락지를 뽑아 던지고 마음속에 용솟음치는 허영과 사치를 없애버려야 하겠습니다. 만약 아직까지도 모든 허영의 구렁에서 해매이는 여성이 있다 하면 그건 우리들의 銃後를 좀먹는 病菌일 것이다.”(이하 略)

<女性도 戰士다>--- 毛?淑

“새 世紀를 창조하는 우리 여성은 과거 몇십년부터 살아오던 여성들보다 확실히 행복의 절정에 서 있다고 볼 수 있다. 이 위대한 영예를 가진 우리가 생활선에서 힘을 잃어 버린다 하면 완전한 승리는 차지할 수 없다. 米英을 격멸할 자는 亞細亞요 大日本帝國이요, 국가의 뒤에서 밀고 나가는 원동력은 아내요 어머니이다. 우리 여성 중에 한 사람의 ‘잔다크’나 ‘나이팅게일’을 요구하는 바가 아니라 1천 5백만 여성의 총력을 요구하는 때입니다. 우리들 여성의 머리 속에 ‘大和魂’이 없고 보면 이 위대한 승리의 역사는 이루어질 수 없는 것입니다.”(이하 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