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이동

바다와 나비/쥬피타추방

위키문헌 ― 우리 모두의 도서관.

파초 이파리처럼 축 늘어진 중절모 아래서

빼어 문 파이프가 자주 거룩지 못한 원광을 그려 올린다.

거리를 달려가는 밤의 폭행을 엿듣는

치켜 올린 어깨가 이 걸상 저 걸상에서 으쓱거린다.

주민들은 벌써 바다의 유혹도 말다툴 흥미도 잃어버렸다.


간다라 벽화를 흉내낸 아롱진 잔에서

쥬피타는 중화민국의 여린 피를 들이켜고 꼴을 찡그린다.

"쥬피타 술은 무엇을 드릴까요?"

"응 그 다락에 얹어둔 등록한 사상일랑 그만둬.

빚온 지 하도 오래서 김이 다 빠졌을 걸.

오늘밤 신선한 내 식탁에는 제발

구린 냄새는 피지 말어."


쥬피타의 얼굴에 절망한 웃음이 장미처럼 희다.

쥬피타는 지금 실크해트를 쓴 영란은행 노오만 씨가

글쎄 대영제국 아침거리가 없어서

장에 계란을 팔러 나온 것을 만났다나.

그래도 계란 속에서는

빅토리아 여왕 직속의 악대가 군아가만 치드라나.


쥬피타는 록펠러 씨의 정원에 만발한

곰팡이 낀 절조들을 도무지 칭찬하지 않는다.

별처럼 무성한 온갖 사상의 화초들

기름진 장미를 빨아먹고 오만하게 머리 추어든 치욕들.


쥬피타는 구름을 믿지 않는다. 장미도 별도......

쥬피타는 품안에 자빠진 비둘기 같은 천사들의 시체.

거문 피 엉클인 날개가 경기구처럼 쓰러졌다.

딱한 애인은 오늘도 쥬피타더러 정열을 말하라고 조르나

쥬피타의 얼굴에 장미 같은 웃음이 눈보다 차다.

땅을 밟고 하는 사랑은 언제고 흙이 묻었다.


아무리 대려 보아야 스트라빈스키의 어느 졸작보다도

예쁘지 못한 도, 레, 미, 파...... 인생의 일주일.

은단추와 조개껍질과 금화와 아가씨와

불란서 인형과 몇 개 부스러진 꿈 조각과......

쥬피타의 놀음감은 하나도 재미가 없다.


몰려오는 안개가 겹겹이 둘러 싼 네거리에서는

교통순사 로오랑 씨 로오즈벨트 씨 기타 제씨가

저마다 그리스도 몸짓을 흉내내나

함부로 돌아가는 붉은 불 푸른 불이 곳곳에서 사고만 일으킨다.

그 중에서 푸랑코 씨의 직립부동의 자세에 더군다나 현기증이 났다.


쥬피타 너는 세기의 아픈 상처였다.

악한 기류가 스칠 적마다 오슬거렸다.

쥬피타는 병상을 차면서 소리쳤다

"누덕이불로라도 신문지로라도 좋으니

저 태양을 가려다고.

눈먼 팔레스타인의 살육을 키질하는 이 건장한

대영제국의 태양을 보지 말게 해 다고."


쥬피타는 어느 날 아침 초라한 걸레조각처럼 때 묻고 해어진

수놓은 비단 형이상학과 체면과 거짓을 쓰레기통에 벗어 팽개쳤다.

실수 많은 인생을 탐내는 썩은 체중을 풀어 버리고

파르테논으로 파르테논으로 날아갔다.


그러나 쥬피타는 아마도 오늘 셀라시에 폐하처럼

해어진 망토를 두르고

무너진 신화가 파묻힌 폼페이 해안을

바람을 데불고 혼자서 소요하리라.


쥬피타 승천하는 날 예의 없는 사막에는

마리아의 찬양대도 분향도 없었다.

길 잃은 별들이 유목민처럼

허망한 바람을 숨 쉬며 떠다녔다.

허나 노아의 홍수보다 더 진한 밤도

어둠을 뚫고 타는 두 눈동자를 끝내 감기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