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철 산문집/일기초
○ 昭和二年(소화이년) 四月十二日(사월십이일) (火(화))
[편집]三月十五日(삼월십오일)밤 집에서─어머니를남기고─ 떠난지가 벌서 한달을 바라본다. 떠날제생각은 그 다음날이라도 病院(병원)에가서 내몸을 튼튼케할 꾀를하고 工夫(공부)도 곳 착실하게시작하리라는 마음이었는데─ 이것도 한 게으름의나타남이다 나는이것을 이겨넘겨야겠다 요몇일 가슴이편치않은 모양이니 내일은 기어 병원에를 가보겠다. 그리고 독일어 그외의 공부를 따복 따복 시작해야겠다.
나는 역시 죽는날까지 공부에매여달리는것이 일일까보다.
병으로 몸을버리지않는限(한)에서 三個月(삼개월)안에Otto's German-Conversation Grammar를 잡아쥐여야겠다.
What we have lost in extension, we must recover in intensity 丁抹農業振興(정말농업진흥)의 標語(표어)란다.
We must recover all that we have lost.
이래도 不足하다 lost만 recover 해가지고 자라랴?
○ 四月二十五日(사월이십오일)
[편집]그동안의 모든 나아감에는 또한 遲遲(지지)한 모양이있다 나의 心理的(심리적) 肉體的(육체적)으로 發生(발생)하는 습관은 하로날 하로아침에고치기를 바라지는 못할일일것이다. 그러나 모든意志(의지)를 송곳끝같은 한點(점)으로 集中(집중)하여야겠다는必要(필요)는 어느때나 줄지는않는다.
그동안 獨逸語(독일어)는겨우 名詞(명사)의 語尾變化(어미변화)를 넘겼을 뿐이다. 이또한 豫定(예정)에 늦어짐이었다. 다시한번 허리띠를 졸라매야할까 單子(단자)도 第一(제일)카─드를 마스터하지 못한모양이다 하로를 세갈래로 난호아 한쪽은英語(영어), 한쪽은 獨逸語(독일어), 한쪽은內容(내용)있는思想書(사상서)에 써야할것이나 消化不良(소화불량)에 對(대)한 저 품은 모든計劃(계획)의 實行性(실행성)을없새준다. 李重澈君(이중철군)에게서 얻어다먹는藥(약)에 약간의효험을 보는듯도 하니 그것도 더이어보아야 알겠다 요새는 날이따뜻함김에 조곰돌아다니게 되여서 나음인지도모르겠다.
○ 五月十一日(오월십일일)
[편집]한 달이 훨훨지나고 두달이 또한 날나가는구나 어린애자라듯 무럭무럭자라는 새잎들은 어느새 편지쓰는사람들에게 쓰기좋은綠陰(녹음)두글자를 받히게되였고나.
내게는 무엇이 어떻게자랐는냐 豫定이 그대로 이루어나가는수야 내게있으랴마는 아침에 오─틋 죽을 먹고 지난지가 아마 二週日(이주일)은 될가보다 중철군(重澈君)에게서 消化劑(소화제)는 그대로갖다먹는中(중)이나 약간의 효험이 있는지어쩐지 獨逸語(독일어)공부는 Auxiliary의 Conjugation을 하는 中(중)이다 이것도 그리많이 한셈은 되지못하나 요사이는 너무 專力(전력)을 여기다하는모양이다 亦是(역시) 英語(영어)와科學書類(과학서류)에대한시간을 좀떼어야될터인데 저녁먹은 뒤의시간을 어떻게利用(이용)할까 공부하기는무섭고 놀기는승거운일이라 무엇에다던지 좀利用(이용)을 해야 할터인데 요새일기는 변태이다 아침받오로 몹시차고 오후에는 바람이다 어대로가기는 아직너무이른가?
○ 六月三日(유월삼일)
[편집]오─매 달이슬적바꿔였네 日氣(일기)가 괴상스럽게차고궂어서 No Summer를 云云(운운)하더니 요새四五日(사오일) 비로소다수어서 겹것으로고치고 길로다니면 겨드랑에 땀이젖는다. 五月十四日(오월십사일)엔가 水利組合(수리조합)일로 아버지께서 오셔서 約一週日(약일주일)묵어가시고 그동안 社會運動者中央協議會(사회운동자중앙협의회)가 開催(개최)되였었고 하여서 한週日(주일)동안 공부는 아조○이되고 말았었다 그뒤에도 課程(과정)을 잇다금비여서 獨逸語三個月豫定(독일어삼개월예정)이 아무래도 實行(실행)될것 같지않다 來週日(내주일)에는 十二指腸蟲(십이지장충)관계로 三四日(삼사일)동안 入院(입원)을하여야 할 모양이다.
中央協議會(중앙협의회) 첫날午前午後(오전오후)를보고 議場整理(의장정리)와議事進行(의사진행)의 混亂(혼란)을보고 寒心(한심)스럽게 녀겼더니 밤에들어 常設非常設問題(상설비상설문제)에들어가 間道金午山(간도김오산) 東京催益翰(동경최익한)의設(설)은 다理論言辯(이론언변)에 感服(감복)할만한點(점)이있었다 二十六日(이십육일)엔가 다시 槿友會創立大會(근우회창립대회)가있었다. 金活蘭(김활란)의 純無垢(순무구)한 態度(태도)와 黃信德(황신덕)의 言論(언론)이 若干(약간) 異彩(이채)를發(발)하고있었다.
○ 六月十三日(유월십삼일)
[편집]이 노─ㅌ에다는 이따금붓을대고 세월의 빠름을 한하는듯 말하게된다 그것도 내가무슨 세월이 다라난다고 항상 걱정을하는것은아니나 노─ㅌ를 펼때마다 날자적은것이 건너뛰는 것을보고 한동안 잊어버리고 지내는날이 「이리도길었는가」새삼스럽게 늣겨워하는것도 인정에 어글어짐은 아닐가.
날이 이어가물고 더워서 더웁다고 구둔버려 인사를하게된다 시골서는 물을 기다린다한다.
지난七日(칠일)에入院(입원)(세부란스)하야 처음으로 병원살림맛을보았다. exotic한기대를 전에혹 가저보았든일도 있었는데 極(극)히平凡(평범)하고 지루하였다 十一日(십일일)에 退院(퇴원)하다. 십이지장충이 스물여섯마리가나왔다고 우슴을 받았다.
胃(위)는筋質衰弱(근질쇠약)アト―ニ―, 胃液(위액)은普通(보통), 呼吸音銳利(호흡음예리), 呼氣延長(호기연장) 右肺(우폐)가 特(특)히 沈着(침착)되고 血檢(혈검)에 헤모그로빈 80% 貧血症(빈혈증) 이것이 몸둥이現狀(현상)이다 Good food, fresh air, exercise 란다.
六月二十六日(육월이십육일)
[편집]三防(삼방)길三百里(삼백리) 무에그리멀다고 미루고미루다 廿二日(이십이일)에는 떠나게되였는것을 뜻밧 康昊君(강호군)으로 말미암아 하로를 미루었더니 廿三日(이십삼일)에는 三防(삼방)은못갈지언정 반가운비가하로終日(종일) 부슬부슬내렸다 밤이나들면 포군히쏟아질까 바랬더니 亨雨(형우)집에들갔다 열시에 나와보니 새파란하늘에 별이 총총하다 농사하는사람의 서운함이야 말할것없것지. 亨雨(형우)가 Love is great thing for me. 라고! 오해다! 그가나를 오해하는구나 그러나 피치못할건오해다 다 웃어라! 나는 외로움에견디는 공부가 더필요하다 가슴을에이듯한 외로움을 꾹꾹씹어삼켜야한다 나의 가려가는 길이 그것을 그렇게하는길이다 내스사로 추린것이니 내목구멍으로 넘어가야지
마음의 외로움에 가슴이 싀어이네
어루만지는손 다정히 물려놓네
아서라 손수지은칼 나를베다 어이리.
廿四日(이십사일)에 雨(우)의보냄을받고 호을로 三防(삼방)으로오다 車(차)속에서 다정이말부치든 여자의 인도로 一二旅館(일이여관)으로 왔으나 남의 집조다 조그만데 존엄이 상하는듯 목적의藥水(약수) 옛부터나려오며 하로살이에 비기는목숨 그래도 무슨기대를가지고 이약을먹어보고 저노릇을하여보고 요행을바라는꿈같은마음 애처롭지아니하랴! 한끼밥을먹고 몇잔을마시고 스사로 뱃속을 드려다보는마음 오래두고 껌벅어림보다는 한번에 활작타오르고말았으면야! 물의利害(이해)는 길게두고보아야 自水(자수)관으로 보름을 정하고 옮았다 방의깨끗함이란던지 其他設備(기타설비)가 있음직하다마는 어제밤 기생다리고 온패가 남의잠을 밋지게하고간 오늘은 개울물소리에 통소리가 바람따라올뿐이다 기각봉으로나림이 唯一(유일)한 散步(산보)요 운동인데는 울창한 大松(대송)숲사이에 훤칠한 길을가진 釋王寺(석왕사)가 부러워진다.
○ 七月卅日(칠월삼십일)
[편집]붓이 무던히 오래떳다 三防(삼방)서열흘 긴장마를 치루고 十七日(십칠일)에 서울로가서 누이의入院(입원) 其他(기타)를 보살피고 二十三日(이십삼일)밤 다시 三防(삼방)으로 서울을떠나다 三防(삼방)있는동안 서로알아진몇분 처음 以堂金殷鎬(이당김은호)와 거의一週間(일주간)을 같이보내다 다정하고 친함이 오래사괸과같어 서울가서도 잠간찾다.
郭玄成(곽현성), 和田松校(화전송교), 金錫奎(김석규), 金貴南(김귀남), 李漢永夫妻(이한영부처)이 여러분과 愉快(유쾌)로운몇날을 보내다 柳葉對(유엽대) 李用雨(이용우)의의론中(중) 柳葉氏(유엽씨)의 藝術至上主義的(예술지상주의적) 藝術論(예술론)을 곁듣다 允植君(윤식군)의 詩稿(시고)를 보였더니 格言風(격언풍)의 小句(소구)를 讚揚(찬양)할뿐이다 괜한짓을하여서 김군(金君)에게 미안한마음까지 생긴다 그러나 柳葉君(유엽군)의 눈도! 하는 感(감)이있다.
○ 七月八日(칠월팔일)
[편집]七月卅一日(칠월삼십일일)에 三防(삼방)을떠나 元山(원산)으로가다. 처음 松鶴館(송학관)에 얼핏들었다가 金錫奎君(김석규씨)가 먼저와서 얻어가지고 있는 朴泰茂氏方(박태무씨방)으로 옮기다 날마다 열시지나서부터 午後(오후)네다섯시까지 소금물에잠갔든몸을 모래볕에 말리고말리고 새까마케 벗어지도록말렸다. 그러나 중간에감기로 七八日(칠팔일)께 부터 닷새동안을 府內(부내)에가서쉬다 十八日(십팔일)에 夫任敦(부임돈) 李敬愛(이경애) 兩人(양인)의結婚式(결혼식)을 구경하고 十九日(십구일)밤 車(차)로 金貴南(김귀남) 金尙鎔氏(김상용씨)로더불어 京城(경성)으로오다 아래 호복다리에 조그맣게 부르튼것을 손톱으로 긁었다가 그것이드디여 부슴럼이되여 한週日(주일) 고생을하였다 四日(사일)에 偶然(우연)히 漢江(한강)을나가게 되여 뽀─ㅌ에 손을대여보고 그뒤날마다 二三時間(이삼시간)을 저었다 運動(운동)으로 極上(극상)의效果(효과)가 있을듯하더니 될수있는대로 게속해 볼생각이다.
○ 十一月三日(십일월삼일)
[편집]九月十日(구월십일)(陰八月秋夕(음팔월추석))에 집에를 다니러갔었다 집에 다른연고는없었으나 聖喆(성철)이가 리질로오래고생을하여서 무장댁에는 우아래로 경황이없었다 그러나 내가 거기있는동안에 차츰 회복이 되여서 나아가는것을 보았었다 約一週日(약일주일)이지난뒤에 강골누님에게를 다니러가기로작정하고 康津金允植君(강진김윤식군)에게가서 오래ㅅ만에맞나 이야기가 끝날줄을 모르고 三日後(삼일후)에 강골을 갔었다 進來湜來軍(진래식래군)이 다집에있었서 사흘을또쉬였다 누님은 생각기깐에 늙지는 않았었으나 그 조마조마하는 모양은 一種(일종)애처러웠다 二十七日夜(이십칠일야)에 允植君(윤식군) 한가지로 松汀里(송정리)를 떠나서 서울로왔다 十月一日(시월일일)에京城發(경성발) 어두운뒤에 長安寺(장안사)에到着(도착)하였다 毘盧峯(비로봉)에 永郞峯(영랑봉)건너는 特冒險(특모험)을하였다 金次斗(김차두)라는 젊은修道者(수도자)가 길을引導(인도)하여준 德(덕)이였다 內金剛(내금강)을다돌고 八日(팔일)에 九龍淵(구룡연)구경을다녀와서急滯(급체)로 설사가나서 九日(구일)에는 정신을못채리고 午後(오후)에바로떠나서 長箭(장전) 元山(원산) 京城(경성)에돌아왔다.
十一日(십일일)에 주인을 平洞(평동)으로 옮기였다.
○ 昭和四年三月十日(소화사년삼월십일)
[편집]金剛山(금강산)서돌아온 三十日(삼십일)동안 永郞(영랑)과한가지 フタミスシ 경성식당으로 커피차먹기가일이고 밤거리를 鐘路(종로)한길로 太平通(태평통)골목으로 목을놓아 하 하 하 웃고 거칠것없이 싸다녔다 그 우슴에 비록속에있는 굴형을감초려는 示威(시위)였을망정 방약무인하는 白眼(백안)의 행동이였을망정 우슴의 한달이였다.
十二月一日(십이월이일)에 집으로돌아오다 내딴엔 다 예산이있는일이었다 中學生雜誌(중학생잡지)경영이 慾望(욕망)의焦點(초점)이였다 그러고 돈이 事業(사업)에絶對必要(절대필요)한道具(도구)로 要求(요구)되였다 앞으로 滿一年(만일년)동안 希望(희망)과落望(낙망)의 賭朴的興奮(도박적흥분)가운데서 지냈다는것은 辯名(변명)의길없이 돈에 머리숙인일이었다 承喆從兄(승철종형)의紹介(소개)로 咸鏡道行(함경도행)한참 問題(문제)되였다. 十二月一日(십이월이일)은 어떻든 記憶(기억)될날이다.
昭和三年一月十一日(소화삼년삼월십일일)은 家庭的衝突(가정적충돌)의 한 頂點(정점)을 이루었다 月末(월말)부터 새방을거처하였다 二月三日(이월삼일)은 春喆君(춘철군)의 신행날이었다.
二月十五日(이월십오일)에 康津(강진)을 가서 一週日(일주일)만에 돌아왔다 永郞君(영랑군)은 建設委員長(건설위원장)이라는 弄談(농담)을 할만큼 店建(점건)에 골몰하였다.
그사이에 三部詩篇等(삼부시편등)에 着手(착수)하였다.
二月十日(이월십일)(正月初二日(정월초이일))이었다 詩雜誌(시잡지)의 出版等(출판등)의 決定的(결정적)의론을 하고 三月下旬(삼월하순)의上京(상경)을 約(약)하였다.
四月(사월)에 누의는 梨花(이화)로갔다.
四月二十日(사월이십일)에 떠나겠다는通知(통지)를하고 路費(노비)의拒絶(거절)을當(당)하였다 二十三日(이십삼일)이였든가 明心(명심)의訪問(방문)을받았다 三日(삼일)을留(유)하고갔다 京城(경성)을 强行(강행)하려는 計劃(계획)이 模倣(모방)의毒矢(독시)에 中趖(중좌)되고 鬱鬱(울울)의 日字(일자)를 보내다 五月十九日(오월십구일)이든가 永郞(영랑)이光州(광주)를왔다 光州(광주)가서하로지나고 그이튼날같이와보니 누의가 와서있었다. 身弱(신약)이理由(이유)이나 家庭問題(가정문제)의解決(해결)을 自任(자임)하는모양이었다 희생적精神(정신)의過多(과다)가 나를 괴롭게한다 永郞(영랑)과하로를즐기기爲(위)하여 無等山(무등산)에를 올랐다 瑞石(서석)의꼭대기는 돌로 더큰山(산)의模形(모형)을 새긴느낌이었다.
누의에對(대)하여 態度(태도)의表明(표명)이있었고 같이 工夫(공부)를하기로하였다.
詩文(시문)을읽히고 社會問題其他(사회문제기타)의 槪念(개념)을얻게하는것이 위선目標(목표)일듯하다.
○ 九月六日(구월육일)
[편집]여름동안에 여러아오들과 朝鮮歷史講義(조선역사강의)를 하였다 엉터리없는 歷史抄(역사초)를꾸미며 수많은問題(문제)가 알수없다는것만알았다 남을 가르쳐본다는것은 참으로큰공부다 아는것과모르는것이 正確(정확)한區分(구분)이서게된다 어떻던지 二十餘日間(이십여일간)에 檀君以下(단군이하) 合邦(합방)까지를끝내였다.
鳳君(봉군)은 和文詩集(화문시집), 月下の一郡等(월하일군등)에서 詩(시)를추려읽히고 コムミナ―ルの煙管(연관), ウエルテルの 悲しみ(카나시미)를 읽히고 ベ―ベル婦人論(부인론)을 여름걸려서겨우읽혔다 나는 八月末(팔월말)부터 經濟學(경제학)의輪廓(윤곽)이 좀쥐여질듯싶어서 카─버─ , 高敎龜吉(고교구길), 阿部賢一(아부현일), イリ―, 의것들을 通讀(통독)하였고 앞으로도 原論(원론)의草案(초안)을 잡어볼가한다, 九月一日(구월일일)에 鳳(봉)과亨(형)을떠나보내고 좀서운하기도할까 참 그안에 外叔母(외숙모)의 喪(상)으로 在千君(재천군)을 생각하고 水原(수원)을갔었다.
三川(삼천)으로 校村(교촌)을다녀왔고 光州(광주) 田病憲(전병헌)이라는 의원을맞나서 加味玆降湯(가미자강탕)을 먹기로 하였다 四月五日(사월오일)은 身熱(신열)이좀있어서 누어지냈다.
言語槪念(언어개념)의 成立過程(성립과정)을 認識論(인식론)과言語學(언어학)을 連結(연결)시켜서 發展道程(발전도정)대로따라서 좀캐여 보아야지科學(과학)이란 科學的言語槪念(과학적언어개념)의 構成(구성)이될듯하다. 事物間(사물간)의關係(관계)(規則性(규칙성), 共通性(공통성), 復起性等(복기성등)이 있는)의新發見(신발견)은 새로운 槪念言語(개념언어)를 成立(성립)시켜야할것이다.
言語的詐欺術(언어적사기술)이 얼마나많은것인지 正體暴露(정체폭로)가 絶對必要(절대필요)의노릇.
○ 十月二十七日(십월이십칠일)
[편집]十月二十二日(십월이십이일)에야 어렵든서울길을 떠났다 그 전날에 允植(윤식)에게電報(전보)를해서 熙喆(희철)과 서히 同行(동행)되였다 驛(역)에 닿으니 亨喆(형철)이 亨雨(형우)와같이나오고 鍾佑(종우)와 晶來(정래)도나왔었다 서로갈리여 雨(우)에게로 갔다가 아침뒤에 學校(학교)로 龍河(용하)를찾고 茶屋町(다옥정)에서 서히다시맞나 博覽會(박람회)를갔다 그러지않아 고된몸이 몬지에 사람에 견딜수가없었다.
二十二日(이십이일)에는 允植(윤식)과 培材(배재)에서마초아 진고개를돌고 稔性彬(임성빈)을찾다가 못만났다 二十三日(이십삼일)에는 允(윤)과 任性彬(임성빈)을맞나서 午後(오후)에다시 博覽會(박람회)를가서 萬國街(만국가)를구경하고 二十四日(이십사일)에 允(윤)이 나와서 崔承一(최승일)을찾었으나 맞나지못하고 鍾佑(종우)를찾어보았다 二十五日(이십오일)에는 蹴球大會(축구대회)를 하로종일보고나서 저녁에 任性彬(임성빈) 李承晩(이승만) 永郞(영랑)과 같이 鄭芝溶(정지용)을찾었다 생각든바 老熟(노숙)보다는 學生風(학생풍)이앞서고 날낸才華(재화)에 俗流攻擊(속류공격)이 비오듯하였다 그러나 나는 그의넘우굳은카톨릭이 좀걱정되였다 그의 年前(연전)에 보여주는 繁華(번화)하고멋있는作風(작풍)이 없어졌을 가하고. 雜誌(잡지)의이약이는 손쉽게 同意(동의)가나왔다 밤이 늦어서 집으로돌아왔다 二十六日(이십육일)에는 이틀밤이나찾다못만난 龍河(용하)를 學校(학교)로가보고 熙喆(희철)이를맞나고 午後(오후)에 重澈(중철)에게同行(동행)하려고 學校(학교)에를갔다가 龍河(용하), 東赫(동혁), 鄭琪燮(정기섭)과 료리집에가서 저녁을 먹었다. 二十七日(이십칠일)에는 아침에 亨雨(형우)네의 敎會(교회)길과갈려서 崇二洞(숭이동)으로 鄭寅普氏(정인보씨)를 찾었다. 갈이나와서 宗敎禮拜堂(종교예배당)에들어갔다가 다시 鄭氏宅(정씨댁)으로갔다 孤寂(고적)함을 탓하는先生(선생)과 한나절을이약이하고 거기서 帝大學生(제대학생) 閔泰植(민태식), 成樂緖兩君(성낙서양군)을 만났다 저녁에돌아와서 이것을 썼다.
○ 十二月二十三日(십이월이십삼일)
[편집]맘먹었던것을 일우지못하고 다시집에와서야 이것을쓴다 十二月七日(십이월칠일)엔가 鐵原(철원)을 가서 貞姬(정희)집에 가묵었다 安養寺(안양사)의하로밤과 歡待(환대)의三日(삼일)을지나서 十一日(십일일)에 누이를 다리고 같이서울을왔다 竹添町三丁目四九(죽첨정삼정목사구)에서 우아래방에서 남매가처음지내보았다 貞姬(정희)와 그아버지에게서 돌우오라는 便紙(편지)가 이따금온다 鳳(봉)애는드디여 二十三日(이십삼일)엔가 다시鐵原(철원)으로 갔다 雜誌(잡지)의일은 수얼스럽게되는듯 도하였으나 詩文學(시문학)이라는 命名(명명)을 하였을뿐 二十七日(이십칠일)을 第一次期日(제일차기일)로定(정)해보았으나 實行(실행)할아모재조도없었다 그동안에 芝溶(지용)에게서 金素雲(김소운)을 알게되였다 日本內地(일본내지)서 공들인 朝鮮民謠集(조선민요집)을 낸 사람으로 마음속에 熱(열)을 가지고 이길에 精進(정진)하는 사람으로 뵈였다 우리의일에 協力(협력)을 約束(약속)하였다
이한달에는 朝鮮(조선)에도큰일이있었다(中畧(중략))允植(윤식)과나는 이밖에 京城(경성)을 떠나 집으로 돌아왔다詩文學(시문학)의일은 原稿關係(원고관계)도있거니와 明春(명춘)으로밀우고, 이것이 在京五十日(재경오십일)의 所得(소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