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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철 산문집/편집 잔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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寄稿規定(기고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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寄稿範圍(기고범위) (創作詩(창작시), 翻譯詩(번역시), 硏究等(연구등))

第二號(제이호) 原稿締切期日(원고체절기일) 三月二十日(삼월이십일)

이 雜誌(잡지)를 보시고 이 雜誌(잡지)에 자기의 作品(작품)을 실른것이 과히싫지않다고 생각하시는분은 아끼지말고 玉稿(옥고)를 더지십시오.

發表(발표)되는것이 의례當然(당연)한일이고 發表(발표)되지않는것은 그야말로 編輯者(편집자)의 眼力(안력)에 責任(책임)이있다는 自信(자신)을 가지시고

原稿採擇(원고채택)에對(대)하야 自働計算器(자동계산기)와같은 公評(공평)을 期(기)할수없수以上(이상) 어쩌는수 없이 編輯(편집)同人(동인)의 눈이라는 조그만한 문턱을 넘게됩니다 우리同人(동인)들의意向(의향)까지는 될수있는대로 偏僻(편벽)된個人(개인)의趣味(취미)에기울어지지않으려 힘쓰나 그것은 차차로 編輯(편집)의 實際(실제)에서 證明(증명)하겠읍니다. 外國詩(외국시)의 飜譯(번역)에는 반다시 原作者名(원작자명)과 詩題等(시제등)을 그外國語(외국어)로 적으시고 더욱이 本文(본문)을 寫送(사송)해 주시거나 出處等(출처등)을 밝히 가르쳐주시면 親切(친절)하신 노릇이겠읍니다.

詩文學 後記(시문학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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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時(시)를 살로색이고 피로쓰듯 쓰고야만다 우리의時(시)는 우리 살과피의맺힘이다 그림으로 우리의詩(시)는 지나는거름에 슬적 읽어치워지기를 바라지못하고 우리의 詩(시)는 지나는거름에 슬적 읽어 치워지기를 바라지 못하고 우리의詩(시)는 열번스무번 되씹어읽고 외여지기를 바랄뿐 가슴에 느낌이 있을 때 절로 읆어나오고 읆으면 느낌이 이러나야만한다 한말로 우리의詩(시)는 외여지기를求(구)한다. 이것이 오즉하나 우리의 傲慢(오만)한宣言(선언)이다.

사람은 生活(생활)이다르면 감정이같지않고 敎養(교양)이같지않으면, 感受(감수)의 한계가 딸아다르다 우리의 詩(시)를 알고느껴줄 많은사람이 우리 가운데있음을 믿어 주저하지않는 우리는 우리의 조선말로 쓰인詩(시)가 조선사람전부를 讀者(독자)로 삼지못한다고 어리석게 불평을 말하려하지도 않는다.

이것이 우리의 自限界(자한계)를 아는 謙遜(겸손)이다.

한민족의 言語(언어)가 발달의어느정도에이르면 口語(구어)로서의존재에 만족하지 아니하고 文學(문학)의 형태를 요구한다 그리고 그 文學(문학)의 成立(성립)은 그민족의言語(언어)를 完成(완성)식히는길이다.

우리는 조금도 바시대지아니하고 늘진하거름을 뚜벅거려나가려한다 虎勢(호세)를 펴서 우리의存在(존재)를 인정받으려하지아니하고 儼然(엄연)한存在(존재)로써 우리의存在(존재)를 戰取(전취)하려한다.

이미一家(일가)의 품격을 이루어가지고도 또 이루어었음으로 作品(작품)의發表(발표)를 꺼리는詩人(시인)이 어덴지 여러분이 있을듯싶다. 우리의同人(동인)가운데도 자가의詩(시)를 처음 印刷(인쇄)에 붙히는 二三人(이삼인)이 있다 우리는 모든謙虛(겸허)를準備(준비)하야 새로운 同人(동인)들을 맞이하려한다.

第一號(제일호)는 編輯(편집)에急(급)한탓으로 硏究(연구)紹介(소개)가 없이되였다. 앞으로는 詩論(시론), 時調(시조), 外國詩人(외국시인)의紹介等(소개등)에도 있는힘을 다하려한다. 더욱이 여러가지 어긋짐으로 樹州(수주)의 詩(시)를 못시름은 遺憾(유감)이나 次號(차호)를 기약한다.

本誌(본지)는 一(일), 三(삼), 五(오), 七(칠), 九(구), 十一月(십일월)의 隔月刊行(격월간행)으로할作定(작정)이다 여러가지 形便(형편)도있거니와 詩(시)의雜誌(잡지)로는當然(당연)할일일듯싶다. 이번號(호)는 어쩌는수없이 三月(삼월)에나가게되였으나 第二號(제이호)는四月初(사월초)에(原稿締切(원고체절)三月二十五日(삼월이십오일)) 第三號(제삼호)는五月(오월) 編輯(편집)에 주문이 있으시는이는 거침없이……

(龍兒(용아)) (1930.3 《詩文學》 창간호)


詩文學(시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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編輯後記(편집후기)……첫재로 去年六月(거년유월)에 第二號(제이호)에 내고는 同人(동인)들의 사정으로 여태껏 讀者諸位(독자제위)와 隔阻(격조)해왔음을 스사로 미안히 녀깁니다.

본시 隔月刊行(격월간행)의 豫定(예정)이였으나 이번부터 發行回數(발행회수)를 年四回(년사회)(三月(삼월), 六月(유월), 九月(구월), 十二月(십이월))刊行(간행)으로 變更(변경)하는대신 發行期(발행기)를 約束(약속)과 틀리지않게하기를 期(기)합니다.

美(미)의追求(추구)……우리의 감각에 녀릿녀랏한 기쁨을 이르키게하는 剌戟(랄극)을 傳(전)하는美(미), 우리의 心懷(심회)에 빈틈없이 폭 들어 안기는 感傷(감상), 우리가 이러한 詩(시)를 追求(추구)하는것은 現代(현대)에있어 힌거품 물려와 부디치는 바휘우의古城(고성)에 서있는 感(감)이 있읍니다. 우리는 조용히 거러 이나라를 찾어볼가 합니다.

또 한가지 말해둘것은 이번 우리 詩文學同人中(시문학동인중)에서 異河潤(이하윤) 朴龍喆(박용철)兩人(양인)이 編輯(편집)을 맡어 『文藝(문예)月刊(월간)』이라는 文藝全般(문예전반)을 取扱(취급)하는 雜誌(잡지)를 十一月(십일월)부터 創刊(창간)하기로되였읍니다. 여러분의文藝(문예)知識(지식)을 넓히고 文藝趣味(문예취미)를 涵養(함양)하는데 조그만한 도음이 될가합니다. 詩(시)의感賞(감상)을 깊게하는데 文藝全般(문예전반)의 造詣(조예)를 必要(필요)하는것은 多言(다언)을 要(요)치아니할줄 압니다.

여러분의 많은贊助(찬조)를 바랍니다.

詩文學(시문학)이 여러분의 寄稿(기고)를 기다리는것은 前號(전호)에 發表(발표)한方針(방침)과 같습니다.

詩文學(시문학)一,二號(일이호)는 自畵自讚(자화자찬)으로서만이아니라 長遠(장원)한 美的(미적)價値(가치)를가진作品(작품)이 많이 실렸읍니다 各各(각각)七,八十部(칠팔십부)殘品(잔품)이 있으니 所用(소용)되시는분은 本社(본사)로 直接注文(직접주문)해주십시오.

─(龍(용))─ (詩文學 第三號(1930.6))


「文學(문학)」 編輯餘言(편집여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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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單純(단순)또謙遜(겸손)하게 一九三四年(일구삼사년)을 하나의 出發(출발)의 契機(계기)로해서 文學(문학)에對(대)한 우리의 熱情(열정)을 더욱强化(강화)시키고 文學(문학)에對(대)한 우리의認識(인식)을 한층 明確(명확)히 하기위해서 이 조고만한 月刊紙(월간지)를가지고 여러분과 한가지 우리의 에스프리를 단련해가련한다.

宇宙(우주)의 모든事象(사상)은 그것이본시부터 明確(명확)과分離(분리)되여 存在(존재)해있는것이 아니다. 그것은 모두 하나의 連環(연환)을 이루고 그 境界(경계)는 언제나 混融(혼융)되여있는것이다. 그것을 分離(분리)시켜볼수 있는것은 우리의認識(인식)가운데 存在(존재)해있는 다만 한가지의能力(능력)이다.

文學(문학)이라는 藝術(예술)은 藝術(예술)가운데서도 다른社會的現像(사회적현상)─政治(정치), 道德(도덕), 哲學等(철학등)과 가장 混緣(혼연)되기쉬운形態(형태)이다. 더구나 現在(현재)와같이 人類歷史(인류역사)가 하나의 全然(전연)새로운文化(문화)의 生成(생성)을 앞둔混沌期(혼돈기)에 있어서 우리가 文學(문학)에對(대)한認識(인식)을 分明(분명)히해두지아니하면 우리는 創作(창작)에있어서나 鑑賞(감상)에있어서나 誤謬(오류)와混亂以外(혼란이외)의 아모進展(진전)도 가지지못할것이다.

文學(문학)은 우리를 어떻게 맨드러주는가. 웨 우리는 文學(문학)을 좋아하는가 웨 特別(특별)히 우리는 文學(문학)을일삼는가. 政治(정치)나 科學(과학)의 論文(논문)을 쓰지아니하고 何必(하필)文學(문학)을 쓰는가, 文學(문학)은 다른社會的現象(사회적현상)과 어떤點(점)에서 共通(공통) 또 相異(상이)되는가. 우리는 여기對(대)해서 쉬지않고 反省(반성)할 機會(기회)를 갖지하니하면 아니된다. 우리의 이 조고만努力(노력)이 文學(문학)에留意(유의)하는 우리─넓은 意味(의미)의 우리에게 文學(문학)에對(대)한 하나의새로운 反省(반성)의機會(기회)를 준다면 이것은 우리의出發(출발)이 바랄수있는 高價(고가)의報酬(보수)라할수있다.

우리는 여기나타난 結果(결과)가質(질)로나 量(양)으로나 微弱(미약)한것을 누구보다 스사로 不足(부족)하게 여기는者(자)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것으로 여러분의娛樂(오락)과 消日(소일)의資料(자료)로서가아니고 實(실)로 하나의 思索(사색)의실마리되기위하야 提供(제공)하는것이다.

우리는 우리의가난한精神(정신)과 物力(물력)을가지고 이러한선물을 사랑하는 여러분앞에 내여드리기를 실상 부끄러워하는것이나 가난한대로 드리지 않고는 못견디는것을 드리기를 한편으로는 은근히 자랑스러워하는 것이다.

─《文學》 第一號(1934.1) ─

編輯餘言(편집여언)……우리가운데「文學(문학)을 한다」고쯤하는사람이면 누구나 적어도 한때의 文學愛好(문학애호)의時期(시기)를 가져보았을것이다. 그愛好(애호)는 六七歲(육칠세)때의 심청전 소대성전의耽讀(탐독)에서 그 첫얼굴을 나타내 가지고 나종「베르테르의슬픔」이나「투르게네프」의 愛讀(애독)에서는 그將來(장래)의 方向(방향)을 決定(결정)하다싶이도 하였을것이다 뒤에다시「장 크리스토프」에서 구원을 얻거나「고르키─」에서 깨닫는 바 있었거나하는것은 오히려 다음게단에 속하는 문제라고보여진다. 어떠튼 한때에 그가 文學(문학)을 사랑하기를 寢息(침식)보다 더하든 시절을 통과한것만은 확실하다. 이것을 文學靑年時代(문학청년시대)라고 해서 幼稚(유치)한때에 헡된戀愛熱情(연애열정)같이 비웃으려하고 그것을 오래가지는 것을 西洋(서양)사람이 남의앞에서 제안해에게 키스하는것을 보드시 誹謗(비방)하려는 嗜好(기호)가 있다. 이것이 흔히는 賢明(현명)이라기보다 熱情(열정)의 冷却(냉각)과 純情(순정)의 揚棄(양기)일뿐인것같다. 아무러한 愛好(애호)의 精神(정신)을가지지 아니한 心情(심정)에서 나타나는 文學 的作品(문학적작품)이 無情愛(무정애)한夫婦生活(부부생활)의 繼續(계속)에 있는 그偶然(우연)한事實(사실)같이 沒趣味(몰취미)한것은 또한避(피)치 못할 것이아니냐. 實(실)로 우리는 愛情(애정)의過剩(과잉)에서 困惑(곤혹)되는것이아니라 純情(순정)의缺乏(결핍)에서 萎縮(위축)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스사로 외람된붓을들어 저魅惑(매혹)있는 存在(존재)의 創造(창조)라는 자랑스런業(업)에 從事(종사)하는것도 그 은근한模倣(모방)의元型(원형)이 가슴속에 어렴풋이 남어있는 까닭이오, 우리가 東西古今(동서고금)의 典籍(전적)가운대를 헤메여서 찾으려하는것도 저한때의 華麗(화려)한 經驗(경험)의類似(유사)한反覆(반복)을 求(구)하는데서 나오는것이다. 그러나 單純(단순)한愛讀者(애독자)라는것과「文學(문학)을 한다」는것과의 사이에는 若干(약간)의 相異(상이)가 있는것같다. 愛讀者(애독자)라는것이 忘却(망각)이라는 人體(인체)의奇妙(기묘)한 機構(기구)를가지고 남의 주는 剌戟(랄극)에 應(응)하여 單(단)히 受容的(수용적)으로 同一(동일)한 經驗(경험)과 興奮(흥분)의 레바퀴속에 맴돌기를 즐기는傾向(경향)이있는데 反(반)하야「文學(문학)을한다」는것은 이 被動的經驗(피동적경험)을 分析(분석)하는 方法的精神(방법적정신)에서出發(출발)하야 類似(유사)가운대의相異(상이)의發見(발견)에 오히려 힘을쓰게되고 未踏(미답)의 曠野(광야)에 探求(탐구)의 大膽(대담)한 발길을 내놓게까지 되는것이다. 여기서 大衆(대중)의 文學(문학)과 少數文學(소수문학)하는이들의 文學(문학)이 分化(분화)하기에까지 이를수있는것이다. 그러나 그어느길에서나 文學愛好(문학애호)의精神(정신)을 喪失(상실)한 乾性(건성)의 沙漠(사막)속에서 아무런寶石(보석)도 發見(발견)되지 모 할것은 또한自明(자명)한일이다.

─(龍(용)) (《文學》 第二號 (1934.2))─

編輯後記(편집후기)……後輯子(후집자)는 讀者(독자)에게 무언지 애풀로지가 있어야만 하는것인가보다. 이러한 말이 있다한다.「文學(문학)」誌(지)는 讀者(독자)의 모든程度(정도)를 參酌(참작)해서 親切(친절)을다하는 써―비스의 精神(정신)이不足(부족)하다고. 그러나 우리가 참으로 남의趣味(취미)를 어데까지나 마춰나갈수 있는것인가 매우 疑問(의문)이다. 오히려 各自(각자)가 자기의 趣味(취미)와 意慾(의욕)을 딸아 共鳴(공명)해서 딸아오고 아니딸아오는것은 나종 結果(결과)로서 나타날뿐인것이아닌가. 어디까지던지 讀者(독자)의 程度(정도)를 考慮(고려)하는 新聞小說(신문소설)에서도 傑作(걸작)이야 産出(산출)될터이지마는, 文學其他(문학기타)의 예술에 있어서『저사람의 理解(이해)와 趣味(취미)는 이러이러하니 우리는 이런물건을 맨들어 주어야겠다』는 先入見(선입견)을 가지게되면 쓰는 힘에 대할 節制(절제)가 자연 생기게 되여 全生命(전생명)을傾倒(경도)한類(류)의 第一級(제일급)의 傑作(걸작)은 아니나오는것이 아닐까. 그럼으로 우리가 대관절 藝術道(예술도)로 나갈 希望(희망)이라도가진다면 우리는 남의 顔色(안색)을 둘러볼 必要(필요)없이 자기의 趣味(취미)와 意慾(의욕)의 길을 强烈(강렬)한 거름으로 걸어나가고 그結果(결과)로 생기는 모든것은 ─누구에게 맡길가─「惡魔(악마)에게나 맡겨」두는것이 좋을것같다.


또하나 이런말이 있다한다.「文學(문학)」誌(지)는 朝鮮文壇(조선문단)에 對(대)한 關心(관심)이 不足(부족)하다고. 아닌게아니라「文學(문학)」誌(지)는 文壇的關心(문단적관심)을 意識的(의식적)으로 節制(절제)하고있다. 그러나 所謂文壇的關心(소위문단적관심)과 朝鮮文學(조선문학)의 建設(건설)을 爲(위)한 熱意(열의)와는 全緣(전연)別物(별물)인것이다. 우리가 실상 한줄의 創作(창작)을 쓰고 한줄의 紹介文(소개문)을 쓰고 한줄의 번역을 하는 것이 모도 朝鮮文學(조선문학)의建設(건설)을위하는 熱意(열의)에서 나온일이아니면 아니된다. 우리는 그것이 별난 各譽(각예)도 별난收入(수입)도 가져오는것이 아닌줄을 안다. 다만 熱意(열의)가 있을 뿐이다 그런데 실상 우리는 甲(갑)이 某月刊誌上(모월간지상)에 數頁(수엽)의短篇小說(단편소설)을 發表(발표)하면 그것이 잘되고잘못된점과 傑作(걸작)이고 駄作(태작)인것을 判斷(판단)해서 그것을 文章(문장)으로 印刷(인쇄)하고 또乙(을)이 某新聞學藝欄(모신문학예란)에 數日間評論(수일간평론) 文(문)을 揭載(게재)하면 반드시 그是非(시비)를 따져야하는 類(류)의 文壇的關心(문단적관심)의 過多(과다)에依(의)해서 禍(화)를 받아왔을 뿐이다.

이러한 狹窄(협착)한關心(관심)의結果(결과)는 日本(일본)말의 所謂(소위) 「ドングリの背景べ」를[1] 現出(현출)할憂慮(우려)가 充分(충분)히 있는 것이다. 오히려 貴重(귀중)한것은 멀리떠나서 바라보는精神(정신), 거기서 수리개같이 내리襲擊(습격)하는 精神(정신)이다. 우리가 第一(제일)로 第二(제이)로 또 第三(제삼)으로 必要(필요)한것은 文學(문학)에 대한 眞實(진실)한 熱意(열의)뿐이지, 文壇的關心(문단적관심)같은것과는 疎遠(소원)해지면 질사록 좋은것이 아닌가한다 ─ 編輯者(편집자)는 敢(감)히 이러한 愚見(우견)을 가지고 있다.

─《文學》 第三號 (1934.4)─


독자 문예란의 두방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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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생활 讀者文藝欄(독자문예란) 朴龍喆先生考選(박용철선생고선)

우리는 이 독자 문예란의 선택의 표준으로 시(詩)와 산문(散文) 두개의 방향(方向)을 세우려 합니다.

시(詩)는 지금까지 여러분의 작품을 많이 실어오던 동요란(童謠欄)의 정신대로 예술에 있어서 상상적(想像的) 발명력(發明力)을 기를수 있는 방향으로 나가려 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선배(先輩)의 좋은 시작(詩作)을 많이 읽고 외이시고, 더 너그럽고 더 날카롭고 더 탄력(彈力)있는 마음씨로 모든것을 대하여서, 깊은 감정(感情)과, 재조있는 착상(着想)과 음률적(音律的)인 말을 가진 좋은 시(詩)를 쓰도록 노력해 주십시요.

다음 산문란(散文欄)에서는 여러분의 언어묘사력(言語描寫力)을 기르는 방향으로 여러분을 이끌어 볼까합니다. 묘사력은 문학에 있어서의 한 기초적(基礎的)인 기술(技術)입니다. 여러분의 나이로 언제까지나 소년잡지의 독자로 또 독자문예의 투고자로 있을 것이 아닙니다. 나이와 공부가 함께 자라서 자기 천분(天分)에 대한 자각(自覺)이 생기고 환경이 허락하면, 조선의 문학의 한구통이를 메고 나설 일꾼이 되실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한 주(株)의 꽃피는 나무, 곡식걷우고 가마귀 나르는 들 농사꾼들이 모혀 밥먹는 광경, 복남이가 어름타다가 개천애 빠지고 집에 못들어가는 이야기, 순히가 벼루ㅅ돌에 물을 가지고 실수를 한 이야기, 길동이와 막동이가 무엇이 어찌어찌해서 머리가 터지도록 싸호던 이야기, 가믄해에 이동내와 저동내 사이에 큰 물쌈이 났던 이야기, 이렇게 한가지 광경으로 부터 적고 큰 사건(事件)까지를 말로 그려서 읽는 사람이 그것을 분명히 알아보게할 힘이 없으면 그러한 터우에 문학의질은 세워지지않습니다. 그림그리는 사람들은 뎃상이라는 것을 합니다. 장내에 여러가지 그림을 그릴 준비게단(準備階段)입니다. 조각해서 맨든 사람얼굴이나 사람몸동이를 검은 목탄을가지고 이모저모로 돌려놓고 작고 그립니다. 큰 화가(畵家)가 된 사람에는 이 뎃상공부를 여러 해를 애써한 사람이 많다합니다. 여러분도 이 뎃상공부하는 셈 잡고 학교에서 동내에서 이러나는 여러가지 광경과 사건을 그려보십시오. 도화시간에 꽃나무하나를 그리며 그림과 꽃나무를 비켜보고 비슷하게 되였나 않되였나 해서 고치고 새로 그리고하든 모양으로 글도 고치고 새로 쓰고 해서 사건을 분명하게 독특하게 전하도록 애를 써보십시요. 이 연습이 여러분이 장차 시나 소설을 쓰는데 교양있는 사람으로 편지라도 한장 깨끗이 쓰는데 적지않은 도움이 될것입니다.

끝으로 한가지 부탁은 여러분의 쓴글이 여기 발표되고 않되는것을 돌보지 말고 꾸준하게 써보내주시라는것입니다. 발표하는 지면에 제한이 있고 글이 좀나은 것을 골르게 되여서 여러분의 애쓰신 원고를 읽어만 보고 한편구석에다 쌓놓게 됩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스사로 공부하시는 셈만잡고 쉬지말고 노력해 주십시요. 글씨를 잘쓰는데는 조히와 먹을 없애는수 밖에 없다는 말이 있읍니다. 여러분 잘 생각해 보십시요.

(박용철)


글쓰는 여러분에게 = 選者(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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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의 동요는 웨 그리 모도 같습니까. 모도 똑 같이 소위 동요라는 냄새가 납니다. 글을 쓰랴면 눈과 귀와 모든 감각을 날카롭게해야 할것은 물론입니다. 묘한 생각도 맨들어내야합니다. 여러분의 동요에는 아닌게 아니라 날카롭고 묘한데가 있읍니다마는, 모도 마음이 좁습니다. 동요식이라고 부를 좁은 창문을 통해서 세상을 내다보는것 같습니다. 좁은 창문을 깨트리십시요. 마음을 훨씬 자유롭게 넓히십시오. 동요라고 시(詩) 그밖에 문학(文學)과 아모 다른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은 동요를 쓴다는 생각에 너무 붓잡히지 말고, 자기힘에 미치는 시(詩)를 쓰는 생각으로, 쓸수있는 가장 좋은 글을 쓸 생각으로 동요를 쓰십시요. 그래야만 동요도 좋은 동요가 써집니다. 독서의 범위를 동모들이 쓴 동요나 동화에만 한하지말고 널리 여러 가지를 보십시오. 먼저 사람으로 커져야 글도 커집니다.

단문(短文)이라고 한 것은 여러분이 날마다 직접보고 당한일 가운데서 재미있다고 생각하고 동모들에게 이야기라도 하고싶은것을 글로 써 보기를 바랍니다.

라이선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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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도토리 키 재기’ 정도의 뜻