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록담/비 (산문)

위키문헌 ― 우리 모두의 도서관.
둘러보기로 가기 검색하러 가기

몸이 좀 으슬으슬 한데도 물이 찾아지는 것은 떳떳한 갈증이 아닌 것을 알 수 있다.

입시울이 메마르기에 꺼풀이 까실까실 이른 줄도 알았다. 아픈 데가 어디냐고 하면 아픈 데는 없다고 할 수 밖에 없다. 손으로 이마를 진찰하여 보았다. 알 수 없다.

이마에 대한 외과(外科)가 아닌 바에야 이마의 내과(內科)이기로소니 손바닥으로 알 수 있을 게 무어냐. 어떻게 보면 열이 있고 또 어찌 생각하면 열이 없다. 그러나 이 손바닥 진찰이 아주 무시되어 온 것도 아니다.

이 법이 본래 할머니께서 내 어린 이마에 쓰시던 법인데 이 나이가 되도록 이 법으로써 대개는 가볍게 흘리어 버리기도 하고 아스피린 따위로 타협하여 버리기도 하고 몸이 찌뿌드드한데도 불구하고 단연 부정하여 버리고 항간으로 일부러 분주히 돌아다니기도 하였다.

기숙사에서 지날 적에는 대개 펴 놓인 채로 있던 이불 속으로 가축처럼 공손히 들어가 모처럼만에 흐르는 눈물이 솜 냄새에 눌리워 버리기도 하였다.

대체로 손바닥 판단이 그대로 서게 되고 마는 것이었다.

오늘도 오후 두 시의 나의 우울은 나의 이마에 나의 손이 가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용이(容易)히 결정하지 아니하였다.

보리차를 생각하였다. 탁자 위에 찻종이 모조리 뒤집혀 놓인 대로 있는 놈이 하나도 없다. 놓일 대로 놓여 있음에 틀림없다. 그러나 그것은 찻종으로 차가 마시워졌다는 것 밖에 아니된다. 이것이 마신 것이로라고 바로 놓아두는 것이 한 예의로 되었다.

예의는 이에 그치고 마침내 찻종이 있는 대로 치근치근하고 지저분하고 보리찌꺼기를 앉힌 채로 있게 되는 것이다.

오늘은 날도 몹시 흐리고 음산하다. 오피스 안에는 낮불이 들어왔는데도 밝지 않다.

목멱산(木覓山) 중허리를 내려와 덮은 구름은 무슨 악의를 품은 것이 차라리 더러운 구름이다. 11월 들어서서 비눌 같고 자개장식 같고 목화 피어나가듯 하는 담담한 구름은 아니고 만다.

시계가 운다. 울곤 씨그르르‥‥‥울곤 씨그르르‥‥‥ 텁텁한 소리가 따르는 것은 저건 무슨 고장일까 짜증이 난다.

종이 운다. 이 약 종으로서 무슨 자차분하고 의젓지 않은 소리냐. 어쨌든 유치원 이래도 여운을 내보지 못한 소리다. 별안간 이 관제(管制) 중에 산도야지 귀창이라도 찢어 헤칠 만한 격렬한 사이렌소리를 듣고 싶다. 지저분한 공기에 새로운 진폭이 그립다.

약간 흥분을 느낀다.

군데군데가 덥다. 먼저 이마, 그리고 겨드랑이, 손이 마저 발열하고 보니 손이란 원래 간이(簡易)한 진찰에나 쓰는 것 밖에 아니된다.

빗낱이 듣는가 했더니 제법 떨어진다. 아연판 같이 무거운 하늘에서 떨어지는 비는 아연판을 치는 소리가 난다.

뿌리는 비, 날리는 비, 부으 뜬 비, 붓는 비, 쏟는 비, 뛰는 비, 그저 오는 비, 허둥지둥하는 비, 촉촉 좇는 비, 쫑알거리는 비, 지나가는 비, 그러나 11월 비는 건너가는 비다. 2박자 폴카춤 스텝을 밟으며 그리하여 11월 비는 흔히 가욋것이 많다.

Separator.jpg

벌써 유리창에 날벌레 떼처럼 매달리고 미끄러지고 엉키고 또그르 궁글고 홈이 지고 한다. 매우 간이(簡易)한 풍경이다.

그러나 빗방울은 관찰을 세밀히 하게 하는 것이 아닐까. 내가 오늘 유유히 나를 고늘 수 없으니 만폭(滿幅)의 풍경을 앞에 펼칠 수 없는 탓이기도 하다.

빗방울을 시름없이 들여다보는 겨를에 나의 체중이 희한히 가볍고 슬퍼지는 것이다. 설령 누가 나의 쭉지를 핀으로 창살에 꼭 꽂아 둘지라도 그대로 견딜 것이리라.

나의 인생도 그 많은 항하사(恒河沙)와 같다는 별 중의 하나로 비길 바가 아니요, 한 점 빗방울로 떨고 매달린 것이 아닐런가.

이것은 약간의 갈증으로 인하여 이다지 세심하여지는 것이나 아닐까.

그렇지도 아니한 것이, 뛰어나가 수도를 탁 터쳐 놓을 수 있을 것이겠으나 별로 그리할 맛도 없고 구태여 물을 마시어야 할 것도 아니고 보니 나의 갈증이란 인후나 위장에 따른 것이라기보다는 순수히 신경적이거나 혹은 경미한 정도로 정신적인 것일지도 모른다.

오피스를 벗어 나왔다.

레인코트 단추를 꼭꼭 잠그고 깃을 세워 턱아리까지 싸고 소프트로 누르고 박쥐우산 안으로 바짝 들어서서 그리고 될 수 있는 대로 가리어 디디는 것이다.

버섯이 피어오른 듯 호줄그레 늘어선 도시에서 진흙이 조금도 긴치 아니하려니와 내가 찬비에 젖어서야 쓰겠는가?

안경이 흐리운다. 나는 레인코트 안에서 옴츠렸다. 나의 편도선을 아주 주의해야만 하겠기에 무슨 경황에 폴 베르렌의 슬픈 시「거리에 내리는 비」를 읊조릴 수 없다.

비도 추워 우는 듯하여 나의 체열을 산산히 빼앗길 적에 나는 아무렇지도 않은 것 같이 날씬하여지기에 결국 아무렇지도 않다고 했다.

여마(驢馬)처럼 떨떨거리고 오는 흰 버스를 잡아탔다.

유리쪽마다 빗방울이 매달렸다.

오늘에 한해서 나는 한사코 빗방울에 걸린다.

버스는 후후룩 떨었다.

빗방울은 다시 날려와 붙는다. 나는 헤어 보고 손가락으로 비벼 보고 아이들처럼 고독하기 위하여 남의 체온에 끼인 대로 참하니 않아 있어야 하겠고 남의 늘어진 긴 소매에 가리운 대로 잠척해야 하겠다.

빗방울마다 도시가 불을 켰다. 나는 심기일전하였다.

은막(銀幕)에는 봄빛이 한창 어울리었다. 호수에 물이 넘치고 금잔디에 속잎이 모두 자라고 꽃이 피고 사람의 마음을 꼬일 듯한 흙냄새에 가여운 춘희(椿姬)도 코를 대고 맡는 것이다. 미칠 듯한 기쁨과 희망에 춘희는 희살대며 날뛰고 한다.

마을 앞 고목 은행나무에 꿀벌 떼가 뒤웅박처럼 끓어나와 잉잉거리는 것이다. 마을 사람들이 뛰어 나와 이 마을지킴 은행나무를 둘러싸고 벌떼소리를 해가며 질서 없는 합창으로 뛰고 노는 것이다. 탬버린에, 하다못해 무슨 기명 나부랭이에 고끄라나발 따위를 들고 나와 두들기며 불며 노는 것이다. 춘희는 하얀 질질 끌리는 긴 옷에 검은 띠를 띠고 쟁반을 치며 뛰는 것이다.

동네 큰 개도 나와 은행나무 아랫동에 앞발을 걸고 벌떼를 집어 삼킬 듯이 컹컹 짖어댄다.

그러나 은막에는 갑자기 비도 오고 한다. 춘희가 점점 슬퍼지고 어두어지지 아니치 못해진다. 춘희가 콩콩 기침을 할 적에 관객석에도 가벼운 기침이 유행된다. 절후의 탓으로 혹은 다감한 청춘 사녀(士女)들의 폐첨(肺尖)에 붉고 더운 피가 부지중 몰리는 것이 아닐까. 부릇 나는 것일지도 모른다.

Separator.jpg

춘희(椿姬)는 점점 지친다. 그러나 흰 나비처럼 파닥거리며 흰 동백꽃에 황홀히 의지하련다. 대체로 다소 고풍스러운 슬픈 이야기래야만 실컷 슬프다.

흰 동백꽃이 아주 시들 무렵 춘희는 점점 단념한다. 그러나 춘희의 눈물은 점점 깊고 세련된다.

은막에 내리는 비는 실로 좋은 것이었다. 젖어질 수 없는 비에 나의 슬픔은 촉촉할 대로 젖는다. 그러나 여자의 눈물이란 실로 고운 것인 줄을 알았다. 남자란 술을 가까이 하여 굵을 수도 있다.

그러나 여자에 있어서는 그럴 수 없다. 여자란 눈물로 자라는 것인가 보다. 남자란 도박이나 결투로 임기응변할 수도 있다. 그러나 여자란 다만 연애에서 천재다.

동백꽃이 새로 꽂힐 때마다 춘희는 다시 산다. 그러나 춘희는 점점 소모된다. 춘희는 마침내 일가(一家)를 완성한다.

옆에 앉은 영양(令孃) 한 분이 정말 눈물을 흩으러 놓는다. 견딜 수 없이 느끼기까지 하는 것이다. 현실이란 어느 처소에서나 물론하고 처치에 곤란하도록 좀 어리석은 것이기도 하고 좀 면난(面赧)하기도 한 것이다. 그레타 가르보 같은 사람도 평상시로 말하면 얼굴을 항시 가다듬고 펴고 진득이 굴지 않아서는 아니될 것이다. 먹새는 남보다 골라서 할 것이겠고 실상 사람이란 자기가 타고 나온 비극이 있어 남 몰래 앓을 병과 같아서 속에 지녀 두는 것이요 대개는 분장으로 나서는 것임에 틀림없다.

어찌하였던 내가 이 영화관(映畵館)에서 벗어나가게 되고 말았다.

얼마쯤 슬픔과 무게(重量)를 사가지고----

거리에는 비가 이때껏 흐느끼고 있는데 어둠과 안개가 길에 기고 있다.

다이아가 날리고 전차가 쨍쨍거리고 서로 곁눈 보고 비켜서고 오르고 내리고 사라지고 나타나는 것이 모다 영화와 같이 유창하기는 하나 영화처럼 곱지 않다. 나는 아주 열(熱)해졌다.

검은 커튼으로 싼 어둠 속에서 창백한 감상이 아직도 떨고 있겠으나 나는 먼저 나온 것을 후회치 않아도 다행하다고 하였다. 그러나 다시 한 떼를 지어 브로마이드 말려들어가듯 흡수되는 이들이 자꾸 뒤를 잇는다.

나는 휘황히 밝은 불빛과 고요한 한 구석이 그리운 것이다. 향그러운 홍차 한 잔으로 입을 추기어야 하겠고 나의 무게를 좀 덜어야만 하겠고 여러 가지 점으로 젖어 있는 나의 오늘 하루를 좀 가시우고 골라야 견디겠기에. 그러니 하루의 삶으로서 그만치 구기어지는 것도 어찌 할 수 없는 일이다.

별로 여색(女色)이나 무슨 주초(酒草) 같은 것에 가까이 해서야만 그런 것이 아니라 하루를 지나고 저문 후에는 아무리 다리고 편다 할지라도 아주 판판해질 수도 없는 것이다. 더욱이 절후가 이렇게 고르지 못하고 신열이 좀 있고 보면 더욱 그러한 것이다. 사람의 양식으로 볼지라도 아무리 청명하게 닦을지라도 다소 안개가 끼고 그을고 하는 것을 면키 어려운 것이 아닌가.

그러므로 빗방울이라든지 동백꽃이라든지 눈물이라든지 의리 인정, 그러한 것들이 모두 아름다운 것이기도 하고 해로울 것도 없고 기뻐함직도 한 것이나 그것이 굴러가는 계절의 마찰을 따라 하루 삶이 주름이 잡히고 피로가 쌓인다. 설령 안개같이 가벼운 것임에 지나지 않을지라도.

이대로 집에 돌아가서 더운 김으로 얼굴을 흠뻑 추기고 훌훌 마실 수 있는 더운 약을 마시리라. 집사람 보고 부탁하기를 꿈도 없는 잠을 들겠으니 잠드는 동안에 땀을 거두어 달라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