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팔번뇌/만월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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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사람 일들 없어 예와 눈물 뿌렸단다,
천지(天地)도 업이거니 왕업(王業)이란 무엇이니,
석양(夕陽)의 만월대(滿月臺) 터를웃고 지나가노라.

其二[편집]

사람 같은 그림 속에 그림 같은 사람 모여,
공보담 빠른 눈짓 번개처럼 치고맞던,
향진(香塵)을 아니 찾으랴 구정(毬庭) 밟고 가리라.

高麗時, 每於端午節, 預選武官年少者, 及衣冠子弟, 擊毬於九逵之旁, 設龍鳳帳殿, 自殿前左右, 各二百步許, 當路中, 立毬門, 路之兩邊, 以五色錦段, 結婦女之幕, 飾以名畵彩毬, 擊毬者, 盛服盡飾, 窮極侈靡, 一鞍之費, 直中人十家之産, 分作二隊, 立左右, 妓一人執毬而進, 步中奏樂之節, 擲毬送中, 左右隊, 皆趨馬而爭毬, 先中者爲首擊, 餘皆退立, 觀者山積.

(龍飛御天歌注)

其三[편집]

송악산(松嶽山) 봄 수풀에 갖은 새가 노래하고,
‘병풍(屛風)에 그린 황계(黃鷄)’ 나래 치며 울려건만,
‘연쌍비(燕雙飛)’ 한번 간 넋은 돌아 언제 오는고.

○五冠山, 孝子文忠所作也, 忠居五冠山下, 事母至孝, 其居距京都三十里, 爲養祿仕, 朝出暮歸, 定省不少衰, 嘆其母老, 作是歌, 李齊賢, 作詩解之曰, 木頭雕作小唐鷄, 筋子拈來壁上栖. 此鳥膠膠報時節, 慈眼始似日平西.

(高麗史卷七十一, 樂志二)

시방 부르는 황계사(黃鷄詞)의 “병풍(屛風)에 그린 황계(黃鷄) 수탉이, 두 나래 둥덩 치고 짧은 목을 길게 빼어, 긴 목을 에후리어, 사경(四更) 일점(一點)에, 날 새라고 꼬끼오 울거든 오랴는가”는 이 원사(原辭)로서 유래(流來)하는 것인가 한다.

○禑, 自動江仁任別壁, 率群妓十餘騎, 吹角, 興燕雙飛, 井驅入京, 奪人笠於道, 爲的而馳射之, 禑興燕雙飛, 井轡如多也岾, 日以爲常時燕雙飛, 衣冠興禑無異, 路人望之未辨.

(東國通鑑辛祹十三年條)

신우(辛禑)는 호색황일(好色荒逸)하는 군주(君主)로 고려사(高麗史)에 전(傳)하였다. 그 폐행(嬖幸)한 자(者) 중(中) 기명(妓名)으로 사상(史上)에 오른 자(者)에 개성(改成), 칠점선(七點仙), 연쌍비(燕雙飛) 등(等) 여럿이 있는데 연(燕)은 그 중(中)에서도 수총(殊寵)을 받은 자(者)이었다. 이인임(李仁任)은 총신(寵臣)이요 다야점(多野岾)은 그 별서(別墅)의 있던 곳이니 우(禑)의 가장 사랑하는 유락지(遊樂地)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