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팔번뇌/웅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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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지나 가고 보니 거친 흙이 한 덩이를,
한숨이 스러질 제 웃음 또한 간 곳 없네,
반천년(半千年) 오국풍진(五國風塵)이 꿈 아닌가 하노라.

조선사상(朝鮮史上)에 있어서나 전(全) 동양사(東洋史)에 있어서나 가장 흥미(興味)와 교훈(敎訓)이 많은 시기(時期)는 언제보담도 반도(半島)에서 삼국(三國)이 패권(覇權)을 다투던 때이었다. 이것이 안으로는 조선(朝鮮)의 민족적(民族的) 사회적(社會的) 문화적(文化的) 통일(統一)의 기운(機運)인 동시(同時)에 밖으론 동양(東洋)의 국면(局面)에 일(日), 지(支), 조(朝) 삼국(三國)이 정립(鼎立)하게 되는 시단(始端)이었다. 고구려(高句麗)의 강대(强大)를 줄이려 하는 신라(新羅)의 당세이용(唐勢利用)과 신라(新羅)의 압박(壓迫)을 벗어나려 하는 일본(日本)의 백제(百濟) 원호(援護)가 오합대권(五合大權)처럼 어울려서 외교적(外交的) 군사적(軍事的) 기략(機略)의 있는 대로를 다하는 광경(光景)은 진실로 고금(古今) 초절(超絶)의 장관기관(壯觀奇觀)인데 그 중심무대(中心舞臺)가 실로 이 금강(錦江) 일조(一條)이었다. 그러나 이제 무엇이 남앗는가. 쌍수산(雙樹山) 밑으로서부터, 웅진(熊津)으로, 석탄(石灘)으로, 백마강(白馬江)이 지나려가는 사십리(四十里) 장제(長堤)에 눈에 띠우는것은 포플러 행수(行樹)뿐이었다. 누선십만(樓船十萬)과 비휴백만(豼貅百萬)의 들레고 북적어린 것이 발자국 하나이나 어대있어!

其二[편집]

물 아니 길으신가 들도 아니 넓으신가,
쌍수산(雙樹山) 오지랖이 이리 시원한 곳에서,
켜 묵은 답답한 일을 구태 생각하리오.

其三[편집]

해오리 조는 곳에 모래 별로 깨끗해라,
인간의 짙은 때에 물 안든 것 없건마는,
저 둘만 제 빛을 지녀 서로 놓지 않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