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삼국사기/권11/헌강왕
헌강왕
[편집]헌강왕(憲康王)이 즉위하다.
이름은 정(晸)이고, 경문왕(景文王)의 태자이다. 어머니는 문의왕후(文懿王后)이고, 왕비는 의명부인(懿明夫人)이다. 왕은 성정이 총민(聰敏)하고, 책 보기를 매우 좋아하며, 눈으로 한 번 본 것마다 입으로 외웠다.
원년(875년)
[편집]즉위하고, 이찬(伊湌) 위홍(魏弘)을 상대등(上大等)으로 삼고, 대아찬(大阿飡) 예겸(乂謙)을 시중(侍中)으로 삼아 벼슬을 내렸다. 내외(內外 ; 중앙과 지방)의 사형수 이하 죄수를 크게 사면하였다.
2년(876년)
[편집]2년(876년)
봄 2월 황룡사(皇龍寺)에서 승려들에게 공양하고(재승(齋僧) ; 공양승중(供養僧衆)), 백고좌회(百高座會)에서 베풀어 강경(講經)하였는데, 왕이 친히 행차하여 들었다.
가을 7월 사신을 당나라에 들여보내 토산물을 바쳤다.
3년(877년)
[편집]3년(877년)
봄 정월, 우리 태조대왕(太祖大王 ; 고려 태조 왕건)이 송악군(松岳郡)에서 태어났다.
4년(878년)
[편집]4년(878년)
여름 4월 당 희종(僖宗)이 사신을 내려보내 왕을 책봉하여 사지절(使持節) 개부의동삼사(開府儀同三司) 검교태위(檢校太尉) 대도독(大都督) 계림주제군사(雞林州諸軍事) 신라왕(新羅王)으로 삼았다.
가을 7월 사신 당 조정에 보냈으나, 듣기로 황소(黃巢)의 난이 일어나서, 그만두었다.
8월 일본국 사신이 오니, 왕이 조원전(朝元殿)에서 (사신을) 불러 만났다.
5년(879년)
[편집]五年,春二月,幸國學,命博士已下講論。
三月,巡幸國東州郡,有不知所從來四人,詣駕前歌舞[1],形容可駭,衣巾詭異,時人謂之山海精靈古記謂,王卽位元年事,
夏六月,一吉飡信弘叛,伏誅,
冬十月, 御遵禮門觀射。
十一月,獵穴城原。
6년(880년)
[편집]六年,春二月,太白犯月。侍中乂謙退,伊飡敏恭爲侍中。
秋八月,熊州進嘉禾。
九月九日,王與左右,登月上樓,四望,京都民屋相屬,歌吹連聲。王顧謂侍中敏恭曰:「孤聞今之民間,覆屋以瓦不以茅,炊飯以炭不以薪,有是耶?」敏恭對曰:「臣亦嘗聞之如此」因奏曰:「上卽位以來,陰陽和,風雨順,歲有年,民足食,邊境謐靜,市井歡娛。此聖德之所致也。」王欣然曰:「此,卿等輔佐之力也,朕何德焉?」
7년(881년)
[편집]七年,春三月,燕羣臣於臨海殿,酒酣上鼓[2]琴,左右各進歌詞,極歡而罷。
8년(882년)
[편집]여름 4월에 일본국 왕이 사신을 보내 황금 300량과 야광주[明珠] 10개를 바쳤다.
겨울 12월 구미현 여자가 한 번에 세 아들을 낳았다.
9년(883년)
[편집]九年,春二月,王幸三郞寺,命文臣各賦詩一首。
11년(885년)
[편집]十一年,春二月,虎入宮庭。
三月,崔致遠還。
冬十月壬子,太白晝見。遣使入唐,賀破黃巢賊。
12년(886년)
[편집]十二年,春,北鎭奏:「狄國人入鎭,以片木掛樹而歸。」遂取以獻,其木書十五字云:「寶露國與黑水國人,共向新羅國和通。」
夏六月,王不豫,赦國內獄囚。又於皇龍寺,設百高座講經。
秋七月五日,薨。諡曰憲康,葬菩提寺東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