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삼국사기/권13/유리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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瑠璃明王立(류리명왕립) : 유리명왕이 왕위에 올랐다.
諱類利(휘류리) : 그의 이름은 유리인데,
或云孺留(혹운유류) : 혹은 유류라고도 하였다.
朱蒙元子(주몽원자) : 그는 주몽의 맏아들이다.
母禮氏(모례씨) : 그의 어머니는 예씨이다.
初朱蒙在扶餘(초주몽재부여) : 처음에 주몽이 부여에 있을 때,
娶禮氏女有娠(취례씨녀유신) : 예씨에게 장가 들었는데 그녀에게 태기가 있었다.
朱蒙歸後乃生(주몽귀후내생) : 주몽이 떠난 뒤에 아이를 낳았는데
是爲類利(시위류리) : 이 아이가 유리였다.
幼年出遊陌上(유년출유맥상) : 유리가 어렸을 때, 거리에 나가 놀면서
彈雀誤破汲水婦人瓦器(탄작오파급수부인와기) : 참새를 쏘다가 물긷는 부인의 물동이를 잘못 쏘아 깨뜨렸다.
婦人罵曰(부인매왈) : 그 부인이 꾸짖어 말하기를
此兒無父(차아무부) : "이 아이는 애비가 없어서
故頑如此(고완여차) : 이렇게 논다"라고 하였다.
類利慙(류리참) : 유리가 부끄럽게 여기고 돌아와서
歸問母氏(귀문모씨) : 어머니에게 물었다.
我父何人(아부하인) : "우리 아버지는 어떤 사람이며
今在何處(금재하처) : 지금은 어디에 계십니까?"
母曰(모왈) : 어머니가 대답하였다.
汝父非常人也(여부비상인야) : "너의 아버지는 비상한 사람이어서
不見容於國(불견용어국) : 나라에서 용납하지 않았기에,
逃歸南地(도귀남지) : 남쪽 지방으로 도망하여
開國稱王(개국칭왕) : 나라를 세우고 왕이 되었다.
歸時謂予曰(귀시위여왈) : 아버지가 떠날 때 나에게 말하기를
汝若生男子(여약생남자) : '당신이 만약 아들을 낳으면,
則言我有遺物(칙언아유유물) : 나의 유물이
藏在七稜石上松下(장재칠릉석상송하) : 칠각형의 돌 위에 있는 소나무 밑에 숨겨져 있다고 말하시오.
若能得此者(약능득차자) : 만일 이것을 발견하면
乃吾子也(내오자야) : 곧 나의 아들일 것이오'라고 말했다.
類利聞之(류리문지) : 유리가 이 말을 듣고
乃往山谷索之(내왕산곡색지) : 바로 산골로 들어가 그것을 찾았으나
不得(불득) : 실패하고
倦而還(권이환) : 지친 상태로 돌아왔다.
一旦在堂上(일단재당상) : 하루는 유리가 마루에 앉아 있었는데,
聞柱礎間若有聲(문주초간약유성) : 기둥과 주춧돌 사이에서 무슨 소리가 나는 듯하여
就而見之(취이견지) : 가보니,
礎石有七稜(초석유칠릉) : 주춧돌이 칠각형이었다.
乃搜於柱下(내수어주하) : 그는 곧 기둥 밑을 뒤져서
得斷劒一段(득단검일단) : 부러진 칼 조각을 찾아냈다.
遂持之與屋智句鄒都祖等三人(수지지여옥지구추도조등삼인) : 그는 마침내 이것을 가지고 옥지·구추·도조 등의 세 사람과 함께
行至卒本(행지졸본) : 졸본으로 가서,
見父王(현부왕) : 부왕을 만나
以斷劒奉之(이단검봉지) : 부러진 칼을 바쳤다.
王出己所有斷劒合之(왕출기소유단검합지) : 왕이 자기가 가졌던 부러진 칼 조각을 꺼내어 맞추어 보니,
連爲一劒(련위일검) : 하나의 칼로 이어졌다.
王悅之(왕열지) : 왕이 기뻐하여
立爲太子(립위태자) : 그를 태자로 삼았는데,
至是繼位(지시계위) : 이 때에 와서 왕위를 잇게된 것이다.
二年秋七月(이년추칠월) : 2년 가을 7월,
納多勿侯松讓之女爲妃(납다물후송양지녀위비) : 다물후 송양의 딸을 왕비로 맞았다.
九月(구월) : 9월,
西狩獲白獐(서수획백장) : 서쪽 지방으로 사냥을 나가 흰 노루를 잡았다.
冬十月(동십월) : 겨울 10월,
神雀集王庭(신작집왕정) : 이상한 새들이 대궐에 모였다.
百濟始祖溫祚立(백제시조온조립) : 백제 시조 온조가 왕위에 올랐다.
三年秋七月(삼년추칠월) : 3년 가을 7월,
作離宮於鶻川(작리궁어골천) : 골천에 이궁을 지었다.
冬十月(동십월) : 겨울 10월,
王妃松氏薨(왕비송씨훙) : 왕비 송씨가 죽었다.
王更娶二女繼室(왕경취이녀계실) : 왕이 다시 두 여자에게 장가를 들어 후취를 삼았는데,
一曰禾姬(일왈화희) : 한 사람은 화희이니
鶻川人之女也(골천인지녀야) : 골천 사람의 딸이고,
一曰雉姬(일왈치희) : 다른 한 사람은 치희이니
漢人之女也(한인지녀야) : 한 나라 사람의 딸이었다.
二女爭寵(이녀쟁총) : 두 여자는 서로 사랑을 차지하려 했으므로
不相和(불상화) : 화목하게 지내지 못했다.
王於涼谷造東西二宮(왕어량곡조동서이궁) : 왕은 양곡에 동궁과 서궁 2궁궐을 지어
各置之(각치지) : 각각 따로 살게 하였다.
後王田於箕山(후왕전어기산) : 그 후, 왕이 기산으로 사냥을 떠나
七日不返(칠일불반) : 7일 동안 돌아오지 않았다.
二女爭鬪(이녀쟁투) : 두 여인은 다투다가
禾姬罵雉姬曰(화희매치희왈) : 화희가 치희를 욕하며 말했다.
汝漢家婢妾(여한가비첩) : "네가 한인의 집에 살던 비첩으로서
何無禮之甚乎(하무례지심호) : 어찌 무례함이 이토록 심한가?"
雉姬慙恨亡歸(치희참한망귀) : 치희는 부끄럽고 분하여 집으로 도망가버렸다.
王聞之(왕문지) : 왕이 이 소식을 듣고
策馬追之(책마추지) : 말을 채찍질하여 쫓아 갔으나,
雉姬怒不還(치희노불환) : 치희는 분함을 참지 못하여 돌아오지 않았다.
王嘗息樹下(왕상식수하) : 그 후 왕이 나무 밑에서 휴식을 취하다가,
見黃鳥飛集(견황조비집) : 꾀꼬리가 모여드는 것을 보고
乃感而歌曰(내감이가왈) : 느끼는 바 있어 노래를 불렀다.
翮翮黃鳥(핵핵황조) : "펄펄 꾀꼬리 이리저리,
雌雄相依(자웅상의) : 암수가 서로 의지하며 노는데,
念我之獨(념아지독) : 나의 고독을 생각하니
誰其與歸(수기여귀) : 누구와 함께 돌아가리."
十一年夏四月(십일년하사월) : 11년 여름 4월,
王謂羣臣曰(왕위군신왈) : 왕이 여러 신하에게 말했다.
鮮卑恃險(선비시험) : "선비가 자기네 땅의 지세가 험한 것을 믿고,
不我和親(불아화친) : 우리와 화친하려 하지 않으며,
利則出抄(리칙출초) : 정세가 유리하면 나와서 약탈하고,
不利則人守(불리즉인수) : 불리하면 들어가 수비를 하니,
爲國之患(위국지환) : 나라의 걱정거리로다.
若有人能折此者(약유인능절차자) : 만약 이들을 제거하는 자가 있다면
我將重賞之(아장중상지) : 내가 장차 큰 상을 주겠노라."
扶芬奴進曰(부분노진왈) : 부분노가 앞으로 나와
鮮卑險固之國(선비험고지국) : "선비는 지세가 험준하며,
人勇而愚(인용이우) : 사람들이 용감하고 우직하여
難以力鬪(난이력투) : 힘으로 싸우기는 어렵지만,
易以謀屈(이이모굴) : 꾀로써 그들을 굴복시키기는 쉽습니다"라고 대답하였다.
王曰(왕왈) : 왕은 말하기를
然則爲之奈何(연칙위지나하) : "그렇다면 어떻게 하겠는가?"라고 물었다.
答曰(답왈) : 부분노가 대답했다.
宜使人反間入彼(의사인반간입피) : "거짓 간첩을 만들어 그들에게 보내어
僞設我國小而兵弱(위설아국소이병약) : 거짓말을 하되, '우리 나라는 작고, 군대가 약하므로
怯而難動(겁이난동) : 겁이 나서 움직이지 못한다'고 하면,
則鮮卑必易我(칙선비필이아) : 선비가 반드시 우리를 얕잡아 보고
不爲之備(불위지비) : 수비를 하지 않을 것입니다.
臣俟其隙(신사기극) : 제가 그 틈을 기다려
率精兵從間路(솔정병종간로) : 정병을 거느리고 사잇길로 들어가
依山林以望其城(의산림이망기성) : 산림 속에 숨어서 그 성을 노리고 있겠습니다.
王使以羸兵(왕사이리병) : 이 때 왕께서 약간의 군사를
出其城南(출기성남) : 적의 성 남쪽으로 출동시킨다면,
彼必空城而遠追之(피필공성이원추지) : 적은 틀림없이 성을 비우고 먼 곳까지 추격해올 것입니다.
臣以精兵(신이정병) : 그리되면 저는 정병을 거느리고
走入其城(주입기성) : 그들의 성으로 달려 들어가고,
王親率勇騎挾擊之(왕친솔용기협격지) : 왕께서 용감한 기병을 거느리고 그들을 양쪽에서 협공하면
則可克矣(칙가극의) : 승리할 수 있을 것입니다."
王從之(왕종지) : 왕이 이 의견을 따랐다.
鮮卑果開門出兵追之(선비과개문출병추지) : 선비는 과연 성문을 열고 군사를 출동시켜 추격해왔다.
扶芬奴將兵走入其城(부분노장병주입기성) : 이 때, 부분노가 군사를 거느리고 성으로 달려 들어가니,
鮮卑望之(선비망지) : 선비가 이것을 보고
大驚還奔(대경환분) : 크게 놀래어 다시 성안으로 달려 들어 왔다.
扶芬奴當關拒戰(부분노당관거전) : 부분노는 성문에서 싸워
斬殺甚多(참살심다) : 그들을 수없이 목베어 죽였다.
王擧旗(왕거기) : 그 때, 왕이 깃발을 들고
鳴鼓而前(명고이전) : 북을 올리며 전진하였다.
鮮卑首尾受敵(선비수미수적) : 선비가 앞뒤로 적을 맞이하여,
計窮力屈(계궁력굴) : 대책이 없고 힘이 다하자
降爲屬國(강위속국) : 항복하여 속국이 되었다.
王念扶芬奴功(왕념부분노공) : 왕이 부분노의 공로를 생각하여, .
賞以食邑(상이식읍) : 상으로 식읍을 주었다.
辭曰(사왈) : 부분노는 사양하며 이르기를
此王之德也(차왕지덕야) : "이는 왕의 덕이 훌륭한 결과입니다.
臣何功焉(신하공언) : 저에게 무슨 공이 있겠습니까?"라고 말한 채,
遂不受(수불수) : 끝까지 상을 받지 않았다.
王乃賜黃金三十斤良馬一十匹(왕내사황금삼십근량마일십필) : 왕은 황금 30근과 좋은 말 열 필을 주었다
十三年春正月(십삼년춘정월) : 13년 봄 정월,
熒惑守心星(형혹수심성) : 형옥(화성)이 심성 성좌에 머물렀다.
十四年春正月(십사년춘정월) : 14년 봄 정월,
扶餘王帶素遣使來聘(부여왕대소견사래빙) : 부여왕 대소가 사신을 보내와 방문하고,
請交質子(청교질자) : 인질의 교환을 요청하였다.
王憚扶餘强大(왕탄부여강대) : 왕은 부여의 강대함을 두려워하여,
欲以太子都切爲質(욕이태자도절위질) : 태자 도절을 인질로 보내려 하였다.
都切恐不行(도절공불행) : 그러나 도절이 두려워하여 가지 않자
帶素恚之(대소에지) : 대소가 분개하였다.
冬十一月(동십일월) : 겨울 11월,
帶素以兵五萬來侵(대소이병오만래침) : 대소가 군사 5만을 거느리고 와서 침범하였으나,
大雪(대설) : 큰 눈이 내려
人多凍死乃去(인다동사내거) : 동사자가 많이 생기자 곧 돌아갔다.
十九年秋八月(십구년추팔월) : 19년 가을 8월,
郊豕逸(교시일) : 교제에 쓸 돼지가 달아 났다.
王使託利斯卑追之(왕사탁리사비추지) : 왕은 탁리와 사비를 시켜 잡아오게 하였다.
至長屋澤中得之(지장옥택중득지) : 그들은 장옥 늪에 이르러 돼지를 발견하고,
以刀斷其脚筋(이도단기각근) : 칼로 다리의 힘줄을 잘랐다.
王聞之怒曰(왕문지노왈) : 왕이 이를 듣고 노하여 말했다.
祭天之牲(제천지생) : "하늘에 제사지낼 희생에
豈可傷也(개가상야) : 어찌 상처를 낼 수 있는가?"
遂投二人坑中(수투이인갱중) : 왕은 두 사람을 구덩이 속에 던져
殺之(살지) : 죽였다.
九月(구월) : 9월,
王疾病(왕질병) : 왕이 병들었다.
巫曰(무왈) : 무당이 이르기를
託利斯卑爲祟(탁리사비위수) : "탁리, 사비의 귀신이 화근이 되었다"고 하므로,
王使謝之(왕사사지) : 왕이 그를 시켜 귀신에게 사죄하게 하였다.
卽愈(즉유) : 곧 왕의 병이 나았다.
二十年春正月(이십년춘정월) : 20년 봄 정월,
太子都切卒(태자도절졸) : 태자 도절이 죽었다.
二十一年春三月(이십일년춘삼월) : 21년 봄 3월,
郊豕逸(교시일) : 교제에 쓸 돼지가 달아 났다.
王命掌牲薛支逐之(왕명장생설지축지) : 왕이 장생 설지에게 명하여 뒤쫓게 하였다.
至國內尉那巖得之(지국내위나암득지) : 그는 국내 위나암에 이르러서 돼지를 붙잡아
抱於國內人家(포어국내인가) : 우선 국내 사람의 집에서
養之(양지) : 기르게 하였다.
返見王曰(반견왕왈) : 설지가 돌아와 왕에게 말했다.
臣逐豕至國內尉那巖(신축시지국내위나암) : "제가 돼지를 따라 국내 위나암에 갔는데,
見其山水深險(견기산수심험) : 그곳 자연이 준험하고,
地宜五穀(지의오곡) : 토양이 오곡을 재배하기에 적합하며,
又多麋鹿魚瞥之産(우다미록어별지산) : 또한 산짐승과 물고기 등 산물이 많은 것을 보았습니다.
王若移都(왕약이도) : 왕께서 그곳으로 도읍을 옮긴다면,
則不唯民利之無窮(즉불유민리지무궁) : 백성들의 복리가 무궁할 뿐 아니라,
又可免兵革之患也(우가면병혁지환야) : 또한 전쟁에 대한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될 것입니다."
夏四月(하사월) : 여름 4월,
王田于尉中林(왕전우위중림) : 왕이 위중림에서 사냥을 하였다.
秋八月(추팔월) : 가을 8월,
地震(지진) : 지진이 있었다.
九月(구월) : 9월,
王如國內觀地勢(왕여국내관지세) : 왕이 국내에 가서 지세를 돌아 보고 오다가
還至沙勿澤(환지사물택) : 사물 못에 이르러,
見一丈夫坐澤上石(견일장부좌택상석) : 한 사나이가 연못 가운데의 돌 위에 앉아 있는 것을 보았다.
謂王曰(위왕왈) : 그가 왕에게 이르기를
願爲王臣(원위왕신) : "왕의 신하가 되기를 원합니다"라고 하였다.
王喜許之(왕희허지) : 왕이 흔쾌히 허락하고,
因賜名沙勿(인사명사물) : 그에게 사물이라는 이름과
姓位氏(성위씨) : 위씨라는 성을 주었다.
二十二年冬十月(이십이년동십월) : 22년 겨울 10월,
王遷都於國內(왕천도어국내) : 왕이 국내로 도읍을 옮기고,
築尉那巖城(축위나암성) : 위나암성을 쌓았다.
十二月(십이월) : 12월,
王田于質山陰(왕전우질산음) : 왕이 질산 북쪽에서 사냥하면서
五日不返(오일불반) : 닷새 동안이나 돌아오지 않았다.
大輔陜父諫曰(대보합부간왈) : 대보 협보가 말했다.
王新移都邑(왕신이도읍) : "왕께서 새로 도읍을 옮겨,
民不安堵(민불안도) : 백성들이 아직 안정되지 못했습니다.
宜孜孜焉(의자자언) : 따라서 응당 열심히
刑政之是恤(형정지시휼) : 사회의 안정과 정치와 백성의 구휼 사업을 돌보아야 할 것인데,
而不念此(이불념차) : 이러한 일을 생각하지 않고,
馳騁田獵(치빙전렵) : 말을 달려 사냥을 떠나면
久而不返(구이불반) : 오랫동안 돌아오지 않으니,
若不改過自新(약불개과자신) : 왕께서 만일 이러한 잘못을 고쳐 자신을 새롭게 하지 않는다면,
臣恐政荒民散(신공정황민산) : 정치는 황폐하고 백성들은 흩어져
先王之業(선왕지업) : 선왕의 업적이
墜地(추지) : 사라지지 않을까 두렵습니다."
王聞之震怒(왕문지진노) : 왕이 이 말을 듣고 크게 노하여
罷陜父職(파합보직) : 협보의 관직을 파면하고,
俾司官園(비사관원) : 관가의 장원을 관리하게 하였다.
陜父憤(합보분) : 협보가 분개하여
去之南韓(거지남한) : 그 나라를 떠나 남한으로 갔다.
二十三年春二月(이십삼년춘이월) : 23년 봄 2월,
立王子解明爲太子(립왕자해명위태자) : 왕의 아들 해명을 태자를 삼고,
大赦國內(대사국내) : 국내의 죄수들을 크게 사면하였다.
二十四年秋九月(이십사년추구월) : 24년 가을 9월,
王田于箕山之野(왕전우기산지야) : 왕이 기산의 들에서 사냥하다가
得異人(득이인) : 비상한 사람을 만났다.
兩腋有羽(량액유우) : 그는 양쪽 겨드랑이에 날개가 있었다.
登之朝(등지조) : 그를 조정에 등용하여
賜姓羽氏(사성우씨) : 우씨 성을 주고,
俾尙王女(비상왕녀) : 왕의 딸을 아내로 삼게 하였다.
二十七年春正月(이십칠년춘정월) : 27년 봄 정월,
王太子解明在古都(왕태자해명재고도) : 왕태자 해명이 옛 도읍에 남아 있었다.
有力而好勇(유력이호용) : 그는 힘이 세고 용감하였다.
黃龍國王聞之(황룡국왕문지) : 황룡국 왕이 이 소문을 듣고
遣使以强弓爲贈(견사이강궁위증) : 사신을 보내 센 활을 선사하였다.
解明對其使者(해명대기사자) : 해명이 그 사신 앞에서
挽而折之曰(만이절지왈) : 활을 당겨 꺾으면서 이르기를
非予有力(비여유력) : "내가 힘이 센 것이 아니라
弓自不勁耳(궁자불경이) : 활 자체가 강하지 않다"고 말했다.
黃龍王慙(황룡왕참) : 황룡왕이 부끄러워 하였다.
王聞之怒(왕문지노) : 왕이 이 말을 듣고 노하여
告黃龍曰(고황룡왈) : 황룡왕에게 이르기를
解明爲子不孝(해명위자불효) : "해명은 자식으로서 효성이 없으니,
請爲寡人誅之(청위과인주지) : 청컨대 나를 위하여 죽여 버리라"라고 말했다.
三月(삼월) : 3월,
黃龍王遣使(황룡왕견사) : 황룡왕이 사신을 보내
請太子相見(청태자상견) : 태자와 만나기를 요청하였다.
太子慾行(태자욕행) : 태자가 가려고 하니
人有諫者曰(인유간자왈) : 어떤 사람이 만류하며 간하기를
今鄰國無故請見(금린국무고청견) : "오늘 이웃 나라에서 이유없이 만나자고 하니,
其意不可測也(기의불가측야) : 그 의도를 알 수가 없다"고 하였다.
太子曰(태자왈) : 태자가 말하기를
天之不欲殺我(천지불욕살아) : "하늘이 나를 죽이려 하지 않는다면,
黃龍王其如我何(황룡왕기여아하) : 황룡왕이 나를 어찌하겠는가?"라고 하면서
遂行(수행) : 드디어 떠났다.
黃龍王始謀殺之(황룡왕시모살지) : 황룡왕이 처음에는 그를 죽이고자 하였으나,
及見不敢加害(급견불감가해) : 만나보고는 감히 해치지 못하고,
禮送之(례송지) : 예절을 갖추어 돌려 보냈다.
二十八年春三月(이십팔년춘삼월) : 28년 봄 3월,
王遣人謂解明曰(왕견인위해명왈) : 왕이 사람을 보내 해명에게 말했다.
吾遷都(오천도) : "내가 도읍을 옮긴 것은,
欲安民以固邦業(욕안민이고방업) : 백성들을 안정시켜 국가의 위업을 다지려는 것인데,
汝不我隨(여불아수) : 네가 나를 따르지 않고
而恃剛力(이시강력) : 힘이 센 것을 믿고
結怨於鄰國(결원어린국) : 이웃 나라와 원한을 맺었으니,
爲子之道(위자지도) : 자식된 도리가
其若是乎(기약시호) : 이와 같을 수 있는가"
乃賜劒使自裁(내사검사자재) : 그리고 태자에게 칼을 주어 자결하게 하였다.
太子卽欲自殺(태자즉욕자살) : 태자가 즉시 자결하려 하니
或止之曰(혹지지왈) : 어떤 사람이 말리면서 말했다.
大王長子已卒(대왕장자이졸) : "대왕의 맏아들이 이미 죽었으므로,
太子正當爲後(태자정당위후) : 태자께서는 정당하게 후계자가 될 것입니다.
今使者一至而自殺(금사자일지이자살) : 지금 왕의 사자가 한 번 와서 말한다 하여 자결한다면,
安知其非詐乎(안지기비사호) : 왕의 지시가 진실이라는 것을 어떻게 알겠습니까?"
太子曰(태자왈) : 태자가 말했다.
嚮黃龍王以强弓遺之(향황룡왕이강궁유지) : "전번에 황룡왕이 강한 활을 보냈기에,
我恐其輕我國家(아공기경아국가) : 나는 그들이 우리 나라를 업신여길까 걱정되어,
故挽折而報之(고만절이보지) : 일부러 활을 잡아 당겨 꺾음으로써 답한 것인데,
不意見責於父王(불의견책어부왕) : 뜻밖에 부왕의 견책을 당하게 되었다.
今父王以我爲不孝(금부왕이아위불효) : 이제 부왕이 나를 불효하다고 생각하여
賜劒自裁(사검자재) : 칼을 내려 자결케 하니,
父之命(부지명) : 아버지의 명령을
其可逃乎(기가도호) : 거역할 수 있겠느냐?"
乃往礪津東原(내왕려진동원) : 태자는 여진 동원으로 가서
以槍揷地(이창삽지) : 창을 땅에 꽂아 놓고,
走馬觸之而死(주마촉지이사) : 말을 타고 달려 그 창에 찔려 자결하였다.
時年二十一歲(시년이십일세) : 이 때 나이가 21세였다.
以太子禮(이태자례) : 태자의 예식으로
葬於東原(장어동원) : 동원에 장사지내고,
立廟(립묘) : 그곳에 사당을 세웠다.
號其地爲槍原(호기지위창원) : 이에 따라 그 땅을 창원이라 하였다.
論曰(론왈) : 논자는 말한다
孝子之事親也(효자지사친야) : 효자가 어버이를 섬김에 있어서는,
當不離左右以致孝(당불리좌우이치효) : 마땅히 어버이의 곁을 떠나지 않는 것으로 효도를 삼아,
若文王之爲世子(약문왕지위세자) : 마치 문왕이 세자 시절에 행동하듯 하여야 한다.
解明在於別都(해명재어별도) : 해명은 옛 도읍에 살면서
以好勇聞(이호용문) : 용맹을 좋아한다고 소문이 났으니,
其於得罪也宜矣(기어득죄야의의) : 그는 당연히 죄를 범한 것이다.
又聞之傳曰(우문지전왈) : 또한 전해오는 말에 이르기를
愛子敎之以義方(애자교지이의방) : "아들을 사랑하거든 옳은 방향으로 가르치고,
弗納於邪(불납어사) : 사악한 길로 들어가지 않도록 하라"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으니,
今王始未嘗敎之(금왕시미상교지) : 왕이 처음에는 한 번도 가르친 일이 없다가,
及其惡成(급기악성) : 죄악이 이루어진 다음에
疾之已甚(질지이심) : 지나치게 미워하여
殺之而後已(살지이후이) : 죽여 버리고 말았으니,
可謂父不父(가위부불부) : 이야말로 애비는 애비답지 못하고,
子不子矣(자불자의) : 자식은 자식답지 못하다고 할 수 있다.
秋八月(추팔월) : 가을 8월,
扶餘王帶素使來讓王曰(부여왕대소사래양왕왈) : 부여왕 대소의 사신이 와서 왕을 꾸짖기를
我先王(아선왕) : "우리 선왕이
與先君東明王相好(여선군동명왕상호) : 그대의 선왕 동명왕과 서로 의좋게 지냈는데,
而誘我臣逃至此(이유아신도지차) : 이제 우리 신하들을 이곳으로 도망하여 오도록 유인하는 것은,
欲完聚以成國家(욕완취이성국가) : 백성을 모두 모아 나라를 세우려는 것이다.
夫國有大小(부국유대소) : 나라에는 대국과 소국의 구분이 있고,
人有長幼(인유장유) : 사람에도 어른과 아이의 구분이 있으니,
以小事大者禮也(이소사대자례야) : 소국으로서 대국을 섬기는 것은 예절이며,
以幼事長者順也(이유사장자순야) : 아이가 어른을 섬기는 것은 순리이다.
今王若能以禮順事我(금왕약능이례순사아) : 이제 왕이 만약 예절과 순리로써 우리를 섬긴다면,
則天必佑之(즉천필우지) : 하늘이 반드시 도와
國祚永終(국조영종) : 나라의 운명이 영원히 보존될 것이지만,
不然則欲保其社稷難矣(불연즉욕보기사직난의) : 그렇지 않으면 사직을 보존하려 해도 어려울 것이다"라고 말하였다.
於是(어시) : 이에
王自謂(왕자위) : 왕은 스스로 이르기를,
立國日淺(립국일천) : 나라를 세운 역사가 짧으며,
民孱兵弱(민잔병약) : 백성과 군대는 약하므로,
勢合忍恥屈服(세합인치굴복) : 치욕을 참고 굴복하여,
以圖後効(이도후효) : 후일의 성과를 도모하는 것이 형세에 합치된다고 했다
乃與羣臣謀(내여군신모) : 이에 여러 신하들과 함께 의논하여
報曰(보왈) : 부여왕에게 보고 하기를
寡人僻在海隅(과인벽재해우) : "과인이 바다 한 구석에 외따로 살아왔기에
未聞禮義(미문례의) : 예의에 대한 것을 듣지 못하였다.
今承大王之敎(금승대왕지교) : 이제 대왕의 교시를 받고 보니,
敢不惟命之從(감불유명지종) : 감히 명령을 따르지 않을 수 없다"고 회답하였다.
時王子無恤(시왕자무휼) : 이 때, 왕자 무휼은
年尙幼少(년상유소) : 나이가 아직 어렸다.
聞王欲報扶餘言(문왕욕보부여언) : 그가 왕이 부여에 회답하려 한다는 말을 듣고,
自見其使曰(자견기사왈) : 직접 부여의 사신을 보고 다음과 같이 말했다.
我先祖神靈之孫(아선조신령지손) : "우리 선조는 신령의 자손으로서
賢而多才(현이다재) : 현명하고 재주가 많았었는데,
大王妬害(대왕투해) : 대왕이 질투하고 모해하였고,
讒之父王(참지부왕) : 부왕에게 참소하여
辱之以牧馬(욕지이목마) : 말이나 기르게 하는 직위를 주도록 욕을 보인 까닭에
故不安而出(고불안이출) : 불안하여 탈출했던 것이다.
今大王不念前愆(금대왕불념전건) : 이제 대왕이 전날의 잘못은 생각하지 않고,
但恃兵多(단시병다) : 오직 군사가 많은 것을 믿어
輕蔑我邦邑(경멸아방읍) : 우리 나라를 멸시하고 있으니,
請使者(청사자) : 사신은
歸報大王今有累卵於此(귀보대왕금유루란어차) : 돌아가서 대왕에게 '이곳에 알을 쌓아 놓았으니,
若大王不毁其卵(약대왕불훼기란) : 만약 대왕이 그 알을 무너뜨리지 않는다면
則臣將事之(즉신장사지) : 내가 대왕을 섬길 것이요,
不然則否(불연칙부) : 그렇지 않으면 섬기지 못하겠다.'고 보고하라.
扶餘王聞之(부여왕문지) : " 부여왕이 이 말을 듣고
徧問羣下(편문군하) : 여러 사람에게 그 뜻을 두루 물었다.
有一老嫗對曰(유일로구대왈) : 한 노파가 대답하여 이르기를
累卵者危也(루란자위야) : "쌓아놓은 알은 위태로운 것이니,
不毁其卵者安也(불훼기란자안야) : 그 알을 무너뜨리지 않는 자는 편안할 것이다"라고 대답하였다.
其意曰(기의왈) : 노파의 말은 이러하다
王不知己危而欲人之來(왕불지기위이욕인지래) : 곧, 왕이 자신에게 위기가 왔음을 알지 못하고 오히려 남이 와서 굴복하기를 강요하고 있으니,
不如易危以安而自理也(불여역위이안이자리야) : 이는 스스로 위기를 만들지 않고 차라리 평화를 택하여 자기 나라를 먼저 잘 다스리는 것만 못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二十九年夏六月(이십구년하륙월) : 29년 여름 6월,
矛川上有黑蛙與赤蛙羣鬪(모천상유흑와여적와군투) : 모천에서 검은 개구리와 붉은 개구리가 떼지어 싸우다가,
黑蛙不勝死(흑와불승사) : 검은 개구리가 이기지 못하고 죽었다.
議者曰(의자왈) : 이러한 현상을 보고 해설하는 사람이 말했다
黑北方之色(흑북방지색) : "검은 것은 북방의 색깔이니,
北扶餘破滅之徵也(북부여파멸지징야) : 북부여가 파멸될 징조"라고 말했다.
秋七月(추칠월) : 가을 7월에
作離宮於豆谷(작리궁어두곡) : 두곡 땅에 이궁을 지었다
三十一年(삼십일년) : 31년,
漢王莽發我兵伐胡(한왕망발아병벌호) : 한 나라 왕망이 우리 군사를 동원하여 오랑캐를 치고자 하였다.
吾人不欲行(오인불욕행) : 우리 군사들이 가기를 원하지 않으므로
强迫遣之(강박견지) : 강제로 협박하여 보내려 하니,
皆亡出塞(개망출새) : 모두 변방으로 도망하여
因犯法爲寇(인범법위구) : 법을 위반하고 약탈을 하였다.
遼西大尹田譚追擊之(료서대윤전담추격지) : 요서 대윤 전담이 그들을 추격하다가
爲所殺(위소살) : 죽었다.
州郡歸咎於我(주군귀구어아) : 한 나라 주와 군에서는 우리에게 잘못을 돌렸다.
嚴尤奏言(엄우주언) : 엄우가 왕망에게 아뢰어 말하기를
貊人犯法(맥인범법) : "맥(貊) 사람들이 법을 위반하고 있으니,
宜令州郡(의령주군) : 마땅히 주군들로 하여금
且慰安之(차위안지) : 그들을 위무토록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今猥被以大罪(금외피이대죄) : 지금 함부로 그들에게 큰 죄를 묻게 되면,
恐其遂叛(공기수반) : 그들이 반란을 일으킬까 걱정된다.
扶餘之屬(부여지속) : 부여의 족속 가운데
必有和者(필유화자) : 반드시 그들을 추종하는 자가 있을 것이니,
匈奴未克(흉노미극) : 우리가 오랑캐를 부수지 못하고 있는 지금
扶餘濊貊復起(부여예맥복기) : 다시 부여, 예맥이 일어난다면
此大憂也(차대우야) : 이는 큰 걱정거리이다"라고 하였다.
王莽不聽(왕망불청) : 왕망은 이 말을 듣지 않고
詔尤擊之(조우격지) : 엄우에게 공격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尤誘我將延丕斬之(우유아장연비참지) : 엄우가 우리 장수 연비를 꾀어내어 목을 베어
傳首京師(전수경사) : 한 나라 서울로 보냈다.
(兩漢書及南北史皆云(량한서급남북사개운) : [양한서와 남북사에는 모두
誘句麗侯鄒斬之(유구려후추참지) : "구려후 추(騶)를 꾀어 목을 베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
莽悅之(망열지) : 왕망이 기뻐하여
更名吾王爲下句麗侯(갱명오왕위하구려후) : 우리 왕을 하구려후(下句麗侯)로 개칭하고,
布告天下(포고천하) : 이를 천하에 포고하여
令咸知焉(령함지언) : 모두 알게 하였다.
於是(어시) : 이로부터
寇漢邊地愈甚(구한변지유심) : 한 나라 변경을 침범하는 일이 더욱 심해졌다.
三十二年冬十一月(삼십이년동십일월) : 32년 겨울 11월,
扶餘人來侵(부여인래침) : 부여가 침범해왔다.
王使子無恤(왕사자무휼) : 왕이 아들 무휼로 하여금
率師禦之(솔사어지) : 군사를 이끌고 이를 방어하게 하였다.
無恤以兵小(무휼이병소) : 무휼은 병력이 적어
恐不能敵(공불능적) : 대적할 수 없음을 염려하여,
設奇計(설기계) : 기묘한 계책을 내어,
親率軍伏于山谷以待之(친솔군복우산곡이대지) : 직접 군사를 거느리고 산골짜기에 숨어 기다리고 있었다.
扶餘兵直至鶴盤嶺下(부여병직지학반령하) : 부여 군사가 곧바로 학반령 아래에 이르자,
伏兵發(복병발) : 숨겼던 군사를 출동시켜
擊其不意(격기불의) : 불의의 공격을 하니,
扶餘軍大敗(부여군대패) : 부여 군사들이 크게 패하여
棄馬登山(기마등산) : 마필을 버리고 산으로 올라갔다.
無恤縱兵盡殺之(무휼종병진살지) : 무휼이 군사를 풀어 그들을 전부 죽여 버렸다.
三十三年春正月(삼십삼년춘정월) : 33년 봄 정월,
立王子無恤爲太子(립왕자무휼위태자) : 왕자 무휼을 태자를 삼고,
委以軍國之事(위이군국지사) : 군사와 국정에 관한 일을 맡겼다.
秋八月(추팔월) : 가을 8월,
王命烏伊摩離領兵二萬(왕명오이마리령병이만) : 왕이 오이와 마리에게 명하여 군사 2만 명을 거느리고
西伐梁貊(서벌량맥) : 서쪽으로 양맥을 공격하여
滅其國(멸기국) : 멸망시키고,
進兵襲取漢高句麗縣(진병습취한고구려현) : 계속 진군하여 한 나라의 고구려현을 습격 탈취토록 하였다.
(縣屬玄菟郡(현속현토군) : [현은 현토군에 속한다.] )
三十七年夏四月(삼십칠년하사월) : 37년 여름 4월,
王子如津(왕자여진) : 왕자 여진이
溺水死(닉수사) : 물에 빠져 죽었다.
王哀慟(왕애통) : 왕이 슬퍼하며
使人求屍(사인구시) : 사람들로 하여금 시체를 찾게 하였으나
不得(불득) : 결국 찾아내지 못하였다.
後沸流人祭須得之(후비류인제수득지) : 그 후, 비류 사람 제수가 시체를 찾았다고
以聞(이문) : 알려왔으므로,
遂以禮葬於王骨嶺(수이례장어왕골령) : 곧 예식을 갖추어 왕골령에 장사지내고,
賜祭須金十斤田十頃(사제수금십근전십경) : 제수에게 금 10근과 밭 10경을 주었다.
秋七月(추칠월) : 가을 7월,
王幸豆谷(왕행두곡) : 왕이 두곡에 행차하였다.
冬十月(동십월) : 겨울 10월,
薨於豆谷離宮(훙어두곡리궁) : 왕이 두곡 이궁에서 붕어하였다.
葬於豆谷東原(장어두곡동원) : 두곡 동원에 장사지내고,
號爲琉璃明王(호위류리명왕) : 호를 유리명왕이라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