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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삼국사기/권18/고국양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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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국양왕(故國壤王)은 휘가 이련(伊連)이요, 혹은 어지지(於只支)라 한다. 소수림왕(小獸林王)의 아우이다. 소수림왕이 재위 14년에 훙하였는데, 자식이 없었기에, 아우 이련이 즉위하였다.

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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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여름 6월, 왕이 4만 명을 출병하여 요동(遼東)을 공격하였다. 이에 앞서, 연(燕)나라 왕 수(垂)가 대방왕(帶方王) 좌(佐)에게 명하여 용성(龍城)을 지키게 하였다. 좌가 아군이 요동을 습격한다는 사실을 듣고, 사마(司馬) 학경(郝景)을 보내, 장병으로 하여금 이를 구하게 하였다. 아군이 공격하여 이를 물리치고, 마침내 요동과 현도(玄菟)를 함락하였다. 남녀 일만을 포로로 삼아 돌아왔다.

겨울 11월에[1], 연나라 모용(慕容) 농(農)이 장병을 이끌어 침입하였고, 요동과 현도의 두 군을 되가져갔다. 처음에, 유(幽)와 비(冀)의 유민이 많이 투항해 왔던 고로, (모용) 농은 범양(范陽)의 방연(龐淵)을 요동 태수로 삼고 이들을 초무(招撫)[2]케 하였다.

12월에, 땅이 흔들렸다.

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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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봄 정월, 왕자 담덕(談德)을 세워 태자로 하였다.

가을 8월, 왕이 군사를 이끌어 남쪽 백제를 정벌하였다.

겨울 10월, 복사꽃과 자두꽃이 피었다. 소가 말을 낳았는데, 다리가 여덟이요 꼬리가 둘이었다.

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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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여름 4월, 크게 가물었다.

가을 8월, 황해(蝗害)가 있었다.

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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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년

봄에, 흉년이 들어 사람들이 서로 잡아먹었다. 왕이 창고를 열어 (물자를) 나눔으로써 이를 구제하였다.

가을 9월에, 백제가 침공해 와, 남쪽 변경의 부락을 약탈하고는 돌아갔다.

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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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

가을 9월에, 백제가 달솔(達率) 진가모(眞嘉謨)를 보내, 도압성(都押城)을 쳐부쉈다. 200명을 포로로 삼아 돌아갔다.

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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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

봄에, 사신을 보내 신라와 수호(修好)하였다. 신라 임금이 조카 실성(實聖)을 보내 와, 볼모로 삼았다.

3월에, 왕이 교(敎)를 내려, 불법을 숭상하여 믿고 복을 구하도록 하였다. 유사(有司)[4]에 명하여, 국사(國社)를 세우고, 종묘(宗廟)를 보수하게 하였다.

여름 5월, 왕이 훙(薨)하였다. 고국양(故國壤)에 장사 지내, 호(號)를 고국양왕(故國壤王)이라 하였다.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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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十一」, 三國史節要 「十」. 舜 「十」.
  2. 불러 어루만져 위로함
  3. 原本 「九」. 廣開土大王陵碑에 의거 계산 수정. 燾 「九(八)」
  4. 담당 업무자